독서노트를 보니 이 책은 거의 보름만에 다시 읽는다. 한동안 다른 책들에 정신이 팔려서 이 책은 잠시 손을 놓고 있었는데, 몇 날 몇 일을 돌고돌아 드디어 오늘 다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블로그를 활용한 마케팅을 할 때 검색엔진에 상위노출이 되기 위해서는 키워드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들었더라도 검색엔진에 노출이 안되면 잠재고객들이 해당 서비스 제공자가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검색엔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게 키워드가 잘 노출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이 좀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저자는 법률 분야 전문직들의 마케팅을 도왔던 이력이 있는 분이기에 본문에는 주로 이와 관련된 예시들이 나오긴 하지만, 어떤 분야든 간에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이라면 자신의 비즈니스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본문에 나온 키워드에 기반한 마케팅 전략들을 자신의 업종에 맞게 잘 응용하여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수익을 올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 마케팅을 잘하는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요?" 하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필자는 단연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적 달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키워드를 얼마나 발굴해서 가지고 있는가? 이것으로 평가할수 있습니다." - P96

세무 분야를 예시로 들면, 세무 키워드를 많이 알고 있을수록 세무 마케팅 이해도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키워드에 따라 고객의 문의를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 P96

간혹 콘텐츠와 글쓰기 실력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사항이지만, 콘텐츠보다 키워드가 더 우선입니다. 블로그 마케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키워드를 먼저 발굴하고, 그에 따른 콘텐츠를 만드는 순서로 진행해야 합니다. - P96

사람들은 네이버를 활용할 때, 키워드를 중심으로 검색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블로그로 스스로를 브랜딩하고 전문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키워드‘라는 개념을 자세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블로그 지수가 무엇이며, 이 지수에서는 어디까지 키워드를 활용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효율적으로 블로그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97

전문자격사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며, 어떤 고객을 상대하느냐에 따라 키워드의 발굴 방식이 달라집니다. 타깃 고객에 따라 다른 블로그에서는 활용하지 않는 키워드들을 발굴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를 상위노출하여 고객의 문의 및 수임을 유도해낼 수 있습니다. - P97

고객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검색 여정이 존재하고, 고객마다 검색 여정이 각각 다릅니다. 블로그 마케팅을 한다면, 이런 고객의 검색 여정을 파악하고 각 단계에 맞춰 키워드를 상위노출시킬 줄 아는 노련함이 필요합니다. - P97

고객의 검색 여정은 어떻게 나눌 수 있고 그 검색 여정에서는 어떤 키워드를 활용해야 할까요? 더 나아가서 그런 키워드를 어떻게 발굴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블로그를 운영해야 합니다. - P97

하나의 포스팅에 하나의 키워드만 쓰는 것이 거의 정석 - P98

저품질 블로그란 어떤 글을 작성해도 그 글이 네이버에 노출되지 않는 블로그를 뜻합니다. - P98

콘텐츠를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좀 더 깊은 수준의 키워드를 입력하여 검색합니다. 얕은 수준의 키워드, 깊은 수준의 키워드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이런 감각을 익히는 것 또한 블로그 마케팅의 실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 P99

여러 각도로 검색하면서 맥락을 파악하고,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최적의 법률 키워드는 조회수가 높지 않습니다. 정확히 이런 지점에서 블로그 지수가 낮은 블로그에 기회가 생깁니다. 전문자격사로서의 브랜딩과 마케팅 효과도 높일 수 있습니다. 조회 수가 높은 법률 키워드라는 이유로 무작정 콘텐츠를 작성해서는 안 됩니다. - P99

검색엔진이 오랜 시간 쌓은 온라인 콘텐츠 생태계는 아직 우리에게 너무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검색엔진은 아직 세무를 포함한 법률분야에서 매우 효율이 높은 브랜딩 · 마케팅 창구입니다. 이 생태계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틀이 명확해지면, 네이버 블로그 마케팅의 효과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작은 키워드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P99

홈페이지형 블로그는 개인 블로그를 좀 더 신뢰감 있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디자인 업체들이 만들어낸 서비스입니다. - P100

차별화되지 않은, 디자인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홈페이지형 블로그는 돈만 낭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브랜딩과 마케팅으로 고객이 의뢰하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홈페이지형 블로그가 아니라, 다른 준비가 필요합니다. 바로 자신의 글이 어떤 형식으로 보일 것인가 고려하는 것입니다. - P101

인과관계를 설정하여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이 글쓰기입니다. 그러므로 뛰어난 변호사와 변리사는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달변의 능력보다 사람을 설득하는 문장의 가치를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 P101

온라인으로 고객을 만나고자 하는 전문자격사에게는 글쓰기 역량이야말로 가장 먼저 갖춰야 하는 능력입니다. 브랜딩과 업무 능력을 보여주고, 고객을 설득하는 모든 문제를 글쓰기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101

자기 능력을 서비스로 판매하는 전문자격사는 두 가지 책무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자신의 신뢰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이 안심합니다. 자신의 법률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신뢰성을 계속 구축해 놓아야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특히 계속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고객이라면 신뢰성은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 P102

두 번째로 다른 곳과의 차별성을 부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이를 무시하면 더 싼 가격으로 더 빨리 처리하겠다는 저렴함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품질의 서비스는 고객이 속속들이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로 자신의 서비스를 홍보할 때, 신뢰성과 차별성을 글로 잘 어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지식을 머리로는 알아도 정작 블로그 글을 쓸 때 바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글쓰기 능력이야말로 진짜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 P102

글의 가치는 때로는 사용한 단어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쓰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마케팅 글쓰기는 문법과 가독성이 글의 내용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 P102

글로 먹고사는 변호사와 변리사의 경우, 문서의 신뢰도를 높이기위한 기술을 강조합니다. 서체와 줄 간격, 밑줄 사용, 심지어 하드 스페이스(줄 바꿈 없는 공백)까지 깐깐하게 따지고 듭니다. 하드 스페이스를 활용할 줄 모르면 절대 좋은 계약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도 있을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깐깐하게 이 기능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까요? 문서의 형식이 신뢰성과 전문성을 나타내는 창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P102

대리인은 의뢰인을 대신해서 말하고 문서로 사람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주고 신빙성을 부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런 디테일까지 신경 쓰기 때문에, 전문자격사가 작성하는 문서의 가치가 높은 것이 아닐까요? - P103

블로그 글 또한 전문가의 서비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블로그 글에 신뢰도와 가치를 높이려면 어떤 테크닉이 필요한지 익혀야 합니다. - P103

블로그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곧 글의 상품화를 의미합니다. 내 생각, 내 주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가치를 만들어내기에 사람들은 누군가의 글을 보고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합니다. - P103

가치를 만들어내는 글은 내용만 좋아서는 안 됩니다. 한눈에 보기 편해야 합니다. PC에서든, 모바일에서든 한눈에 글을 읽기 쉽게 디자인되어야 내용도 눈에 들어옵니다. 블로그를 세팅하고 마케팅을 진행할때 반드시 이런 사항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P103

개인 사무소를 개업하고 운영하다 보면, 전문적인 지식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가 옵니다. 그래서 전문가와 경영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해낼 수 있도록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전문직의 자존심과 콧대를 다 내려놓고 내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 P104

고객의 마음은 참 모순적입니다. 마케팅인 것을 알면서도 진실된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조회 수, 좋아요 같은 데이터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 P105

법률 서비스는 현재 우리의 상황, 혹은 앞으로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문제들을 다릅니다. 그렇다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당연히 글에 전문적인 지식과 디테일을 녹이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정작 법률 마케터들이 쓴 글을 보고 연락하는 경우가 더 많고 수임도 더 많이 됩니다. - P105

과연 고객이 전문 지식과 디테일을 보고 연락할까요? 고객이 법률 서비스를 알아볼 때 제일 꺼리는 글은 어려운 전문 지식으로 가득 찬 글입니다. 애초에 고객이 주도적으로 판레, 케이스들을 모두 검토하고 자신의 상황을 정리해서 문의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직접적으로 고객의 법률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전문 지식이 아니라면, 그런 글을 보고 연락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 P105

애초에 고객이 원하는 글은 전문자격사가 잘 썼다고 생각한 글과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법률 마케터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 걸까요? 이들의 가정은 애초에 다릅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은 사실 전문적인 지식과 디테일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관점 전환은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과 디테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얽매는 관념이 없어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P105

전문자격사가 블로그 마케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케팅 글쓰기의 포맷을 아는 것입니다. 전문 지식과 디테일을 녹여내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마케팅 글쓰기 포맷을 익힌 다음, 전문 지식과 디테일을 넣으면 법률 마케터들보다 훨씬 많은 문의와 수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전문자격사에게 있는 전문 지식과 법률적 디테일은 절대 마케팅 대행사가 따라올 수 없는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것을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면 될 뿐입니다. - P106

전문직의 업무 글쓰기와 마케팅 글쓰기는 활용하는 언어부터 설득 대상까지 모두 다릅니다. 법률적인 글은 근거와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반면, 마케팅 글쓰기는 사람의 욕망, 허영심 등의 비논리를 다릅니다. - P106

변호사의 글은 독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상대편 검사일 수도, 의뢰인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독자는 판사입니다. 판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사건과 관련 있는 법률 요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쓰기를 해야합니다. 이때 주장의 맥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법률 지식을 함축한 법률 용어를 사용합니다. - P106

판사와 글로 의사소통하여 판결을 쉽게 내려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설득하는 것이 변호사가 작성하는 글의 목적입니다. - P106

판사에게는 주장의 맥을 짚어주는 탁월한 법률 용어가 고객에게는 무슨 말인지조차 해석 불가능한 외계어 ...(중략)...
그래서 경력 있는 전문자격사가 고객과 소통할 때는 쉬운 용어로 설명하라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법률 용어를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주는 것이 좋은 글이고 서비스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107

고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 용어를 해석해주고 쉽게 읽히도록 배려하는 것은 마케팅 글쓰기의 과정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P107

고객은 법률 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작성했다고 연락하지 않습니다. 고객에게는 쉽게 써놓은 글조차 어렵게 다가옵니다. 정말 고객에게 필요한 글은 법률 용어를 쉽게 읽히도록 해석해 놓은 글이라기보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신뢰가 생기고 끝까지 일을 맡길 만한 업무 가치관이 묻어 있는 글입니다. - P107

전문 지식을 잘 드러내기만 하면 고객을 잘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입니다. 고객은 대부분 전문가의 전문성을 파악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임무는 간단합니다. 고객이 전문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글에 여러 장치를 넣는 것입니다. - P107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 마케팅 글쓰기를 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장치를 고민해야 합니다.
첫째, 해당 글을 보는 고객의 법률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고객이 부딪히는 문제들을 짚어주기만 해도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대응 방안을 제시할 때도 고객이 더 집중해서 글을 보게 될 것입니다. - P107

둘째, 자신을 드러내는 데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객은 내가 부끄러워 겸손하게 이야기한 것인지, 정말 전문성이 없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고객을 망설이게 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문장을 써보세요. - P108

셋째, 상담을 유도합니다. 상담으로 유도하지 못하는 글은 자원봉사밖에 되지 않습니다. 법률문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상담으로 유도해보세요. - P108

전문직이 생각하는 전문성과 고객이 느끼는 전문성은 다릅니다. 고객이 느끼는 전문성이 어떤 것인지 잘 알수록 마케팅 글쓰기를 잘할 수 있습니다. - P108

전문성을 드러낼 때 자주 빠지는 함정 ...(중략)... 가장 대표적인 실수는 법 조항이나 판례를 그대로 적는 것입니다. - P108

법 조항은 전문자격사가 해석해서 실무에 적용해야 할 사항이지,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지적인 게으름을 의심받기 좋습니다. 법 조항을 잘 찾는 것은 고객이 원하는 전문성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P109

네이버는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콘텐츠를 검색 노출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블로그 운영에도 큰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 부분을 유의해서 글을 작성해야 합니다. - P109

편하게 과정을 뛰어넘고,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그사람에게 깊은 상처와 뜻깊은 교훈을 줍니다. 그럼에도 사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는 ‘쉽게‘라는 달콤함이 주는 위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문직 마케팅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마케팅 대행사는 절대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습니다. - P110

마케팅 대행사는 전문자격사의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다른 생각을 못 하게 만듭니다. 머릿속이 화끈거리고, 가슴은 두근거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누가 해결책을 제대로 알려줬으면 하는 갈증. 그 갈증은 바닷물과 같습니다. 마셔도 절대 채워지지 않는 갈증입니다. - P111

마케팅 대행사에 의존하지 말라는 말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케팅 대행사에 일을 맡기는 이유는 ‘내가 굳이 어려운 일을 해야 할까?‘ 하는 의구심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 P111

사람마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지점이 존재합니다. 전문자격사에게 전문직 마케팅이 굳이 알아야 하는가 의구심이 들고 개의치 않는 지식에 해당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심리를 마케팅 대행사가 파고들어 자신들의 활용 가치를 어필하는 것입니다. 다만 마케팅 대행사를 활용했을 때의 부작용은 숨긴 채로 말입니다. - P111

필자는 마케팅 대행사에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한계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직 마케팅 대행사들은 전문직 마케팅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하기 힘듭니다. - P112

전문직 마케팅 대행사라면, 전문직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마케팅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력을 여럿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전문가의 신뢰도를 보여줄 실력 있는 콘텐츠 마케터를 대행사에서 꼭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문직 마케팅 대행사 중에서 실력 있는 콘텐츠 마케터를 데리고 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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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썼던 작품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저자의 의도와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저자가 소설을 쓰기 전에 소재가 될만한 것들을 간단히 적어두었던 메모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었지만 독자인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에 저자의 책을 몇 권 완독했는데, 이 완독 덕택에 이 에세이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내용들이 좀 더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 속에 숨겨져 있던 저자의 의도들을 보다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전부는 힘들더라도(마음같아서는 다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힘들 수 있기에) 몇 권은 읽고 이 에세이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해의 밀도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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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밑줄친 문장 중에 ‘울면서 쓴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에 더해 흐름이 끊기는 게 싫어서 했던 저자의 행동들을 보면서, 저자가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창작의 고통과 인내 속에서 써내려간 글들이 결코 그냥 뚝딱하고 나온 것이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뭐 뻔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고통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영어 속담(?)인 No pain, No gain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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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뒷부분에는 저자가 자그마한 정원을 가꾸면서 썼던 일기들이 시간 순서에 맞춰 나온다. 정원을 손수 키워본 사람만이 쓸 수 있을 법한 진솔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네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어. 하지만 거절하기 싫었어. - P52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_김광석 <나의 노래> - P53

쓴다……… 쓴다.
울면서 쓴다.

흐름을 끊기 싫어 부엌에 선 채로 요기를 했다.
화장실에 뛰어갔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온 힘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 P54

지극한 사랑에서 고통이 나오고, 그 고통은 사랑을 증거하는 걸까? - P55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 절반 죽어 있던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 소설.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켜는 소설. - P56

반쯤 죽어 있던 사람이 혼들과 함께, 단 한 순간 삶으로 함께 건너올 수 있지 않을까요? - P57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과정에서 내가 구해졌다면,
그건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였을 뿐이었다.

글쓰기가 나를 밀고 생명 쪽으로 갔을 뿐이다. - P57

그렇게 덤으로 내가 생명을 넘겨받았다면, 이제 그 생명의 힘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생명을 말하는 것들을, 생명을 가진 동안 써야 하는 것 아닐까? - P58

함께 이별한 것 끌어안은 것
간절히 기울어져
붙잡았던 것 그러다
끝내 놓친 것
헤아릴 수 없네 - P67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빛이 변하지 않는 - P69

철망 바닥에 눕는 새는 죽은 새뿐 - P70

기억해, 제때 헝겊을 벗기는 걸

(눈뜨고 싶었는지도 모르니까,) - P71

나는 깨어난다
다시 눈을 뜬다

이 세상에서 하루를 더 산다 - P72

그러나 비명 소리 속에서
신음 속에서
울부짖음 속에서

다시 눈을 뜬다

이 세상에서 하루를 더 산다 - P73

희망이 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물었지

어쩌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런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에게도 희망은 있어 - P74

내가 나일 뿐이라면
나는 너를 만날 수 없지

너가 너일 뿐이라면
너는 나를 만날 수 없어 - P74

나는 결코 나로서만 살고 있지 않아,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모든 걸 나는 살아내니까

너는 결코 너로서만 살고 있지 않아,
너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모든 걸 너는 살아내니까 - P75

이상하지 않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우리를 두껍게 만든다는 것

두렵지 않아?
결코 통과한 적 없는 시공간의 겹들이 우리를 무겁게 만든다는 것 - P75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수십억의 겹으로
부풀어 오르니까

수십억의 겹이
응축돼 단단해지니까 - P75

살아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상상하는 일

그런 것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희망은 있어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 P76

그런 공동주택들에서 햇빛이란 남동쪽이나 서북쪽 창을 통해 들어와서는 베란다나 거실, 방의 일부에 엉거주춤하게 몸을 걸치고 있다가 이내 완고한 콘크리트 벽뒤로 사라지는, 불완전한 방문을 반복하는 손님 같은 존재였다. - P93

햇빛이 잎사귀들을 통과할 때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식물과 공생해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이다. - P95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 P97

매일, 매 순간 빛이 달라진다. - P105

죽지 않는다면. 살아남는다면. 마침내 울창해진다. - P106

낮에는 햇빛을 먹고 밤에는 자라나 보다, 식물들은. (사람 아이들처럼.) - P111

거울의 빛을 사용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거울이 반사한 빛을 한 번 더 반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빛이 비스듬히 잎들을 가로지를 때 행복한데, 이 감정은 아마 식물과 공생하도록 진화된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 P113

흙 위로 꼭 죽은 것처럼 보여도 뿌리가 살아 있으면 되살수 있다 - P115

정원을 키울 수는 없으니 내가 레고 인형처럼 작아졌다고 상상했다. 그럼 울창한 숲이겠지, 압도하는. - P116

뿌리에는 힘이 있다. - P117

크게 자랄 풀은 뽑아야 하지만 저렇게 작은 것은 해가 되지 않는다고. - P119

어느 쪽이든 건강하고 무성하니 그걸로 됐다고, 원하는 대로 하라고 - P121

식물을 기를 때는 오직 그들이 잘 자라기만을 바란다. 나와 상호작용을 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농담도 위트도 감사도 따뜻한 말도 필요하지 않다. 그냥 잘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 - P127

이제는 화분을 더 들이고 싶지 않다. 있는 식물들만이라도 잘 키우고 싶다. - P138

식물에 진딧물과 응애가 생기는 것이 물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듬뿍 물을 주었다. - P150

북쪽 벽을 초록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그렇게 해주고 있다. - P160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 - P166

충분히 살아냈어. - P166

햇빛.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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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맨 처음 나온 단편 소설 ‘밝아지기 전에‘ 초반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 대해 잠시 정리해보자면 일단 화자가 한 명 나오고 ‘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자의 딸이 나온다. 그리고 화자에게는 동생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중학교 기간제 교사이고, 다른 한 명은 그냥 막내 여동생이라고 지칭된 인물이 있다. 소설 속에서 화자는 자신이 여행을 갈 때 이 막내 여동생에게 자신의 자녀인 ‘윤이‘를 믿고 맡길 정도로 꽤나 신뢰가 있는 관계인듯 보인다.

한편 화자와 친한 은희 언니라는 사람이 있는데, 소설 속에서 이 은희 언니의 남동생은 급성 복막염으로 인해 스물 여섯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은희 언니의 어머니는 몇 해 전 홀로 되었다고 하며 다리가 불편한 상황이다.

은희 언니는 남동생을 하늘 나라로 보낸 뒤 해외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다니다가 일 년 내내 여름인 해외의 어느 도시에 머물게 되는데, 화자인 주인공은 이런 은희 언니의 삶을 궁금해 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이런 화자의 궁금증에 대한 은희 언니의 답변이다.

뭐가 됐든 간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에 대해 간접적인 얘기만 듣는 것과 내가 직접 경험하면서 겪어보는 것은 그 깊이의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한 간접 경험이 약간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기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그 밀도가 깊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마도 소설 속 은희 언니도 독자인 나의 이런 생각과 비슷한 맥락으로 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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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언니는 네팔, 인도, 미얀마 등과 같은 나라를 여행하는데,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에 나온 운남성, 타클라마칸 사막, 양곤, 인레 호수, 바간의 거대한 사원 군락 등은 개인적으로 이번 독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관련된 사진들도 여러장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자연 경관에 대한 여행 욕구가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직접 가봐도 좋을 것 같다.

소설 속 이국적인 장소들을 얘기하다보니 잠시 곁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독자인 내가 새롭게 느꼈던 점 하나를 언급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각각의 작품들마다 결말 부분이 뭔가 긍정적으로 마무리 되는 걸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 단편 소설의 경우는 좀 달랐다. p.37에 밑줄친 내용을 참조하면 좋은데, 부정적인 메시지를 긍정적인 메시지로 바꾸는 이 장면이 독자인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말과 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과학적인 근거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결국 모든 것이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우리 각자의 삶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글을 쓰는 사람은 인생도 긍정적으로 잘 풀리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자꾸 안좋은 쪽으로 인생이 흘러갈 것이다. 이는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살다보면 객관적으로 좋지 못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그런 상황에 놓일지라도 나의 생각을 긍정적으르 바꾸고 안좋은 상황 속에서도 좋은 것을 보려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처음에는 꼬여버린 것처럼 느껴졌던 상황도 좋은 쪽으로 달리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인생 전체를 살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살다보면 매번 좋은 일만 있을 순 없기에,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기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글을 쓰면서 ‘생각과 말(또는 글)과 행동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언젠가 다른 책에서도 한 번 봤었던 글인데, 오늘 독서를 통해 이 말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은 삼위일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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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수록된 ‘회복하는 인간‘ 이라는 단편 소설은 주인공이 발목 부분에 어떤 통증을 느끼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소설의 제목처럼 이 통증이 비록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회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만 이야기가 흘러가면 스토리가 너무 밋밋하다고 느낀건지 작가는 이 주인공이 자전거 타기를 유일하게 좋아했다는 설정을 집어넣었다. 물론 이를 통해 순간순간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는 주인공이지만, 어느날 주인공은 자전거를 타다가 그만 넘어져서 큰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로 인해 예전부터 만성적으로 느껴왔던 발목 부분의 통증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고 지금 느껴지는 통증만을 다시금 온 몸으로 자각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주인공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소설이 마무리된다.

다음으로는 이 소설에 나온 표현적인 측면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겠다. 일일이 나열하긴 좀 힘들지만 이 소설에서는 미래에 벌어질 어떤 일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모른다‘ 는 식의 문장이 나오는데, 이런 표현을 통해 저자가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해보자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모든 인간의 마지막은 죽음으로 귀결되는데, 심지어 이 죽음의 시점까지도 언제라고 정확히 알 수 없는 게 우리 인간인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행복감을 느끼던 자전거를 타다가 부상을 당해 죽을거라고 과연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보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의 매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살다가 때가 이르러 행복하게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면 그만한 호상이 또 어디있을까 싶다. 이 단편 소설을 통해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을 생각하다보니 종교 쪽에도 문득 관심과 호기심이 생긴다. 관련된 책들을 만나고 읽어볼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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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나온 단편 소설의 제목은 ‘에우로파‘라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단어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어서 검색창에 검색해보니 그리스 신화의 여성으로 유럽 대륙과 목성의 위성 유로파, 원소 유로퓸의 어원이 된 인물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실제로 소설 속 본문을 읽다보면 목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추측해본다면 아마도 저자는 이 ‘에우로파‘라는 단어를 목성의 위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에서는 화자인 ‘나‘와 ‘인아‘라는 인물 이렇게 둘이 주가 되어 대화가 이어지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화자인 ‘나‘라는 인물이 외형은 남자인데, 성(性)정체성 같은 게 여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나‘와 ‘인아‘는 단순한 친구 그이상의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듯 보인다. 본문에는 직접적인 표현같은 게 나와있진 않지만, 아마도 ‘나‘가 동성애 커플 가운데 남자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커플들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뭔가 일정 선을 넘을 수 없는 그런 좀 애매한(?) 관계가 마치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소설 속 결말도 뭐가 속시원하게 끝난다기보다는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게 어쩌면 ‘나‘와 ‘인아‘의 관계와도 비슷해보였다.

‘에우로파‘라는 용어는 아까 위에서 목성의 위성이라고 얘기했었는데, 여기서 위성의 본질을 잠깐 생각해보자면 위성은 행성의 근처에서 행성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지만, 행성과 결코 접하지는 않는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자인 나는 가깝긴 하지만 결코 닿을 수는 없는 그런 관계를 상징하는 의미로 저자가 ‘에우로파‘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소설 속에 나온 ‘나‘와 ‘인아‘의 관계도 목성과 목성의 위성 간의 관계의 본질과 비슷한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나름대로 근거있는 추측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생각과 비슷할지 여부를 100% 확신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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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나오는 단편 소설의 제목은 ‘훈자‘라는 것이었다. 독자인 나는 처음에 이것이 ‘혼자‘라는 말의 오타 혹은 사투리 같은 것인줄 알았는데, 본문을 읽다보니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 인근에 위치한 소도시의 이름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기에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해보니 훈자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참 이 소설집을 통해 생소한 지역들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이 소설에는 어떤 한 여자가 나오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여자는 습관적으로 훈자를 생각하곤 한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계속해서 훈자를 생각하게 만드는지는 독자인 나도 궁금하다. 뒷부분을 좀 더 읽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듯하다.

직접 겪어봐야지, 말로는 설명 못 해. - P15

조만간 또 떠날 거야. 돌아와보니까 그래야 한다는 걸 알겠어. - P16

사람 몸을 태울 때 가장 늦게까지 타는 게 뭔지 알아? 심장이야, 저녁에 불을 붙인 몸이 밤새 타더라. 새벽에 그 자리에 가보니까, 심장만 남아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어. - P19

아직도 모르겠어.
지글지글 끓는, 마지막 지방이 타들어가고 있는 그 심장을보고 있는데, 왜 저절로 내 손이 심장 위로 올라왔는지. - P19

이 길이 내 숨구멍이었다.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눈비가 내려도,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플 때를 제외하면 날마다이 산책로를 걸었다. 걸으면서는 되도록 생각 없는 상태를 유지하려 했지만, 어떤 사람들에 관한 기억은 자주 떠올랐다. - P20

변명하고 싶다. - P21

설렌다. 정말 여기로 네가 오다니. - P21

어떤 관계에나 존재하는 오해와 환상이 그녀와 나 사이에도 있었다. - P22

처음의 인상이란 잘 지워지지 않는 것 - P22

관계에 시간이 밴다는 것 - P29

망치로 머리를 맞은 짐승처럼 죽지 않도록,
다음번엔 두려워하지 않을 준비를 하겠다고.
내 안에 있는 가장 뜨겁고 진실하고 명징한 것,
그것만 꺼내놓겠다고.
무섭도록 무정한 세계,
언제든 무심코 나를 버릴 수 있는 삶을 향해서. - P32

지금 내가 있는 데가 오후 세 시라는 것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한 번뿐인 하루를 손아귀에 꽉 쥔 채, 어쩔 줄 모르며 으스러뜨려왔다는 것을. - P33

그러지 마, 라고 그때 말했어야 했다. 그러지 마.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뿐인걸.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설계된 것뿐인걸. 존재하지 않는 괴물 같은 죄 위로 얇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아가지 마. 잠 못 이루지 마. 악몽을 꾸지 마. 누구의 비난도 믿지 마. - P35

‘나의 심장‘이라고 이름 붙였던 파일을 불러내자, 하나뿐인 서늘한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문장을 지우고 기다린다. 온 힘으로 기다린다.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 그녀가 회복되었다, 라고 첫 문장을 쓴다. - P37

당신이 지금 당신의 자전거를 보고 있는 것은, 그것이 당신에게 기쁨을 주었던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타는 일 말고는 어쩌면 어떤 일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자전거를 탈 때에만, 당신의 삶이 실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세상의 모든 화려한 행복이 매 순간 당신을 따돌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느낌도 조용히 떨쳐졌다. - P55

그 기쁨을 기억하게 될까 봐 당신은 두려워하고 있다.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던 아찔한 속력을, 하천 옆으로 난 자전거 도로를 힘차게 달리던 감각을 기억해낼까 봐 당신은 두렵다. - P56

인대, 근육, 신경이 다 모여 있는 곳이라서, 가능하면 수술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 P57

이제야 살아나네요. - P59

정말 더디네요. 이렇게 더딘 것도 드문 케이스인데요. - P60

당신이 기쁨을 두려워한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당신은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 - P61

괜찮아. 진짜 금방 낫는대. 시간만 지나면 낫는대. 누구나 다 낫는대. - P62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 P63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 P65

휴일 오전에 직장인을 불러내는 건 범죄 행위란 거 알지? - P70

에우로파,
얼어붙은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해도
결국 만져볼 수 없을 차가움 - P76

밖에 나가고 싶다. - P78

(나, 요즘 프랙탈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 깜짝 놀랐어. 우리 몸속 혈관들이 뻗어 나가는 선, 하천들이 지류를 만들며 뻗어 가는 선, 나무들이 하늘로 가지를 뻗어올리는 선들이 모두 닮아 있다니. 지하철 입구에서 빠져나오는 인파의 움직임도 비슷한 선들을 그리고 있다니. 그렇다면, 혹시 사람의 인생도 그럴까? 공간이 아니라 시간 안에서, 우리 삶이 어떤 수학적인 선... 기하학적으로 추측 가능한 선들을 따라 나아가고 있는 걸까?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올 때마다 생각하게 돼. 함께 수학적인 곡선을 그리며 걷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 사람들과 내가 비슷한 몸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비슷한 곡선으로 뻗어간 핏줄들 속에 거의 같은 온도의 피가 흐르고, 세찬 심장의 압력으로 그게 순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지 않아? 그 사람들은 결코 내 삶의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고, 나 역시 그들의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함께 그 선들을 그리고 있다니.) - P82

비겁한 사람의 인생이란 긴 형벌과 다름없는 거야. - P84

종종 나는 눈부신 쇼윈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안에 진열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색색의 에나멜 구두들, 짧거나 치렁치렁한 치마들, 자잘한 큐빅들이 박힌 화려한 머리핀과 브로치 들이 저토록 눈부시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P86

저런 것들을 믿으면 안 돼, 라고 그녀는 언젠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냥, 환영 속을 걷는 거라고 생각해. - P86

불면증이 좋은 점도 있어. 연습할 시간이 끝없이 생겨난다는 거지. - P89

네가 되고 싶은 것이 되어서 와. - P90

그들은 나에게
죽음을 요구한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겠다. - P92

그때였지,
내 심장에 차디찬 불이 당겨진 건.
한 꺼풀 비늘이
내 눈에서 힘껏 벗겨진 건. - P93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암석 대신 얼음으로 덮인 달

지구의 달처럼 하얗지만
지구의 달처럼
흉터가 패지 않은 달

아무리 커다란 운석이 부딪친 자리도
얼음이 녹으며 차올라
거짓말처럼 다시 둥글어지는,
거대한 유리알같이 매끄러워지는 - P95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크게 색깔과 형태를 바꾸지 않고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몸을 바꾼다. - P96

(내 안에서는 가볼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봤어.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어. 그걸 깨달은 순간 장례식이 끝났다는 걸 알았어. 더 이상 장례식을 치르듯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물론 난 여전히 사람을 믿지 않고 이 세계를 믿지 않아. 하지만 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그런 환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 P98

사실, 공연보다 더 좋은 건 혼자 있는 시간이야. 아마 누구나 그럴걸 - P100

웃기지 마. 내가 널 사랑한다고 해서, 그런 답을 네가 나한테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닥쳐. 닥치라고. - P100

나 역시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고통을 주는 데가 있는 인아의 웃음을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그녀가 나를, 내가 그녀를깊게 상처 입히리란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산책이 영원하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 P102

낮게 날지 마. 그러다 죽어. - P109

훈자.
그렇게 깊이 그 여자가 생각하는 것은 훈자다. - P110

만년설이 에워싸고 있고, 살구꽃이 끝없이 피어 있습니다. - P111

그날 퇴근길에 그 여자는 가까운 대형 서점에 들러 《론리플래닛》 파키스탄 편을 찾았다. 영문판뿐이었고, 그나마 훈자에 관한 부분은 네댓 페이지에 불과했다. - P111

훈자, 천 년 전에 멸망한 훈자국의 유적. 파키스탄 동북쪽 산간 지방의 오지. 그곳에 가려면 두 개의 육로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첫번째는 중국 신장의 국경 도시인 카슈가르에서 꼬박 이틀 동안 버스로 달리는 길, 두번째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버스로 하루 걸리는 길이었다. - P111

훈자 사람들은 자그마한 체구에 동서양의 인종이 보기 좋게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가난한 스웨터를 입었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듯 이를 드러낸채 그 여자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 P112

그 여자는 첫번째 육로가 마음에 들었다. 인부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며 건설했다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절벽 길을 달리다 날이 저물면 교통빈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다음날 새벽 다시 버스에 올라 하루를 더 꼬박 달려야 한다. 어디로 눈을 들어도 해발 육천 미터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보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길. 탄식처럼 갑자기 훈자는 나타날 것이다. 지대가 높아, 늦은 봄이 되어서야 살구꽃이 지천으로 피는 곳. 가을이면 말린 살구가 가게마다 그득한 곳. 한 번 들어가면 떠나고 싶지 않아지기 때문에 장기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곳. - P112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여자는 훈자 인근 지역의 정세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첫번째 육로의 기점인 카슈가르는 신장 위구르 독립운동의 성소가 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끈질긴 내전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오지인 훈자는 변함없이 조용할 테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육로는 안전하다고만 하기 어려웠다. - P116

훈자로부터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그 여자는 이따금 등화관제와 야간 폭격, 소년들의 자살 폭탄 테러에 관한 악몽을 꾸었다. - P116

오랜 시간 계속되어온 습관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훈자를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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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는 글은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처음 나오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이사를 위해 창고 정리를 하다가 유년 시절에 썼던 일기장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그 일기장에 적혀있던 사랑에 대해 쓴 짧은 시가 독자인 나의 눈길을 끌었다. 누가 봐도 어린 아이가 쓴 것 같은 순수함이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처음 밑줄친 이 문장이 이 책의 뒷표지에도 큼지막하게 적혀있어서 더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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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보니 그동안 작가님이 썼던 작품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나볼 수 있었고, 거기에서 파생된 어떤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한 작품이 나오는데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투입되며, 그 작품의 퀄리티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한 작가님의 숨겨진 노력이 어떠했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한강 작가님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던 게 이 에세이에서 작가님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가님이 쓰신 다양한 작품들을 읽고 나서 각각의 작품별로 작가님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별도의 코멘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런 나의 기대를 지금 읽는 이 에세이가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준 것 같다.

이 에세이는 한강 작가님이 그동안 쓰셨던 작품들을 전부 다는 힘들더라도 대표작들을 몇 개 읽어본 뒤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작품들에서 작가님이 의도했던 바를 훨씬 더 깊이있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작가님이 코멘트한 작품들 중에 개인적으로는 《작별하지 않는다》외의 다른 작품들은 거의 다 완독을 한 상태에서 이 에세이를 접했기에 보다 심도있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작별하지 않는다》의 경우 초반부만 일부 읽다가 한동안 읽지 못했는데, 이 에세이를 통해 동기부여가 되어 쭉쭉 읽어나가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솔직한 마음같아서는 이 에세이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작별하지 않는다》를 완독하고 난 뒤 다시 이 에세이를 읽는 게 최선일 것 같긴 한데, 개인적으로 얼마전까지 작가님의 심도있는 작품을 5권정도 읽었더니 지금 시점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고 싶다는 마음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이 에세이를 쭉 읽어나가는 게 비록 최선은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나의 상태에서 그나마 타협할 수 있는 차선책 정도는 될 것 같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 P10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 - P11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 ㅡ지금도 좋아한다ㅡ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일 년, 길게는 칠 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 P12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ㅡ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ㅡ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 P12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P13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 P13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 P14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 P14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ㅡ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ㅡ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 P15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 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 P16

오래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 P17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P18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 P19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P19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 P20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 P20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 P21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소년이 온다)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P21

내가 이 소설(소년이 온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소년이 온다)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 P22

이 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 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 길을 걷는 동안 소설(작별하지 않는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 P23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 P24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 P24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 P24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P25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 - P26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 P26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 P26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 P28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 P29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 P29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 P29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중략)...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 P34

언어라는 실을 통해 타인들의 폐부까지 흘러 들어가 내면을만나는 경험. 내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꺼내 그 실에 실어, 타인들을 향해 전류처럼 흘려 내보내는 경험. - P34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왜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것들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졌고,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들입니다. - P34

우리가 이 세계에서 잠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세계에서 우리가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 P34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 P35

소설이 출간되었다.

더 이상 새벽에 일어나 초를 켜지 않아도 된다. - P39

더 이상 이 소설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이 소설에서 풀려날 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자유를 얻으면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늘려가지 않아도 된다. - P41

가벼워진다.

더 가벼워진다.

뼈와 가죽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 P42

동트기 전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이제 멀어진 사람 같은 나의 소설을,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있었는데, 결사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버텨주었는데, 나만 여기 남았구나. - P42

그런데 ‘나‘는 원래 누구였던가?
예전에 나였던 사람은 이미 이 소설로 인해 변형되었으므로 이제 그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바꿔 물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텅 빈, 헐벗어 있는 이 사람은? - P42

오후 내내 누워 음악을 듣는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도 한다. - P43

한 가지 생각ㅡ결심ㅡ이 떠오른다.

다시 쓰면 된다, 소설을.
그것만이 다시 연결될 방법이니까. - P43

어쨌든 루틴이 돌아온다.
매일 시집과 소설을 한 권씩 읽는다, 문장들의 밀도로 다시 충전되려고.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과 걷기를 하루에 두 시간씩 한다, 다시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 - P44

나는 더 이상 얼고 싶지 않다. - P45

나는 일어날 거야.
해처럼 떠오를 거야.
통증을 무릅쓰고
그걸 천 번 반복할 거야. - P45

소설을 써갈수록 점점 살게 되었다 - P46

마지막 장면에서 경하가 성냥 불꽃을 켰을 때 알았다. 이것(작별하지 않는다)이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걸. 깨어진 유리를 녹여 다시 온전한 덩어리로 만드는 불길인 걸. - P46

스스로 묻고 답하고 길을 찾으려 더듬어간 기록들이다. - P46

기도.
치고 들어오는 세계.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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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포장지를 뜯었을 때 느껴지는 향이 강렬합니다. 이후 뜨거운 물에 내려서 마셔보니 겉표지에 써있는 레몬티 향이 느껴져서 내가 지금 커피를 마시는 건지 그냥 커피맛 나는 레몬티를 마시는 건지 잠시 헷갈릴 정도 였습니다. 커피가 좀 식은 뒤에는 얼음을 넣어 아이스로도 마셔봤는데, 이때 은은한 살구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겉봉 마지막에 써있는 캐러멜 향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많이 느끼진 못했지만 레몬향과 살구향을 커피에서 함께 느낄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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