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 말미에 ‘격자형 체제‘라는 것이 잠시 소개되었었는데, 이는 단순한 사다리 형태의 수직형태가 아닌 수직과 수평의 관계들이 여러 경로로 연결되어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권한이 상대적으로 적은 직원들이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지지해줄 상사를 찾는 것이 수월해져서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현해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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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우주인이 되기를 강렬히 열망하는 한 인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 사람이 노력하고 각종 장애물들을 뛰어 넘으며 결국 꿈을 이루어내는 이야기는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에게 소소한 감동을 줄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우주인이 된 이 사람의 이야기는 비단 그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쓰여질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이야기에서 핵심 메시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자가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낸다는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책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저자는 우리들이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기존의 방식들로는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각각의 사례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줄기 혹은 핵심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나와있는 평가방식과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사람을 바라보고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 속의 내용에서 잠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 일일지는 약간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과연 객관적일 수 있는가 혹시 주관적인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최선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그건 또 아니기에 평가방식도 생물들의 진화처럼 점점 진화해나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 진화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저자의 주장은 유의미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같은 선진국들에서 실제적인 변화의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문의 내용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는 결국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그러한 변화의 움직임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생겨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사회가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격자형 체제는 상사를 에둘러 가거나 상사를 건너뛰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제거하는 게 목적이다.

나약한 지도자는 전령의 입을 막고 사살한다. 강한 지도자는 전령의 전언을 환영하고 감사를 표한다. 위대한 지도자는 전령의 전언을 증폭하고 전령을 격상할 체제를 구축한다.

우리가 회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면 나머지 사람들이 제시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놓치게 된다.

우리의 가장 대단한 잠재력은 우리 안에만 숨어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우리 사이에서 잠재력의 불꽃이 일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팀 바깥에서 잠재력의 불꽃이 비롯되기도 한다.

성공은 인생에서 도달한 지위가 아니라 성공하려고 애쓰면서 극복한 장애물로 가늠한다. -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 미국의 교육자이자 흑인 인권운동가)

삶에서 남들이 우리의 잠재력에 대해 내리는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

사람들이 도달한 높이만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면 안된다.

이미 탁월한 성과를 올린 응모자들을 선호하는 체제는 대단한 성과를 이룰 역량이 내재된 후보들을 과소평가하고 간과하게 된다.

과거의 성과를 미래의 잠재력과 혼동하면 커다란 장애물을 극뵥하는 성과를 이룬 사람들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가파른 언덕을 올랐는지, 얼마나 멀리까지 올라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다이아몬드 원석의 진가는 처음부터 눈부시게 빛나는지가 아니라 열과 압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좌우한다.

경험도 한 사람의 자격을 평가하는 데 타당한 지표가 되지 못한다.

이력서 상으로 20년 경력을 지닌 후보는 한 해 동안 한 똑같은 경험을 20번 반복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특정한 일을 했는지가 아니라 특정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량을 얼마나 잘 습득할 역량이 있는지가 관건이다.

극도로 복잡한 직업은 예외였다. 이런 직업에서 경험은 업무 수행 능력을 가늠하는 타당한 예측 지표였다. 이러한 직업에는 외과 수술과 로켓 과학처럼 고도의 인지적 역량이 요구되는 분야 뿐만 아니라, (중략) 경험이 중요한 유치원 교사처럼 사회적 정서적으로 힘든 직업도 포함된다.

과거의 업무 수행성과는 새로운 일자리가 과거의 일자리와 비슷한 기량이 필요할 때만 도움이 된다.

직장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무능한 수준‘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과거 경력에서 이룬 성공을 바탕으로 계속 승진하다가 그들의 역량으로는 버거운 새로운 역할의 덫에 갇히게 된다는 뜻이다.

재능은 최저 한도를 설정하고 품성은 최고 한도를 설정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이 출발점을 결정한다면, 습득한 품성은 얼마나 멀리까지 갈지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품성 기량은 늘 즉각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우리가 겉모습을 초월해 그 이상을 보지 못하면 뛰어난 숨은 잠재력을 놓치게 된다.

업무 성과는 역량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업무의 난이도도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얼마나 역량이 있어 보이는지는 수행하는 과제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잠재력을 평가할 때 실행에만 집중하고 난이도를 무시한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쉬운 과제를 잘 해낸 후보들을 선호하고 역경을 극복한 후보들을 무시한다. 그들이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갈고 닦은 기량들(특히 이력서에 나타나지 않는 기량들)을 보지 못한다.

대부분 체제는 난이도를 드러내고 측정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그렇게 설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오래전에 이미 사람들이 똑같은 사건에 반응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사람의 끔찍한 경험은 다른 사람에게는 단순히 차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게 방해물에 불과한 게 다른 사람에게는 넘기 힘든 장애물일지도 모른다.

다이빙에서는 난이도를 계산할 수 있지만, 삶에서 겪는 역경의 난이도를 계량화하는 공식은 없다. 이게 바로 오래전부터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집단의 역경을 고려하는 정책이 개인이 감내해온 모든 역경을 포착하지는 못한다.

결국 잠재력을 가늠하는 핵심적인 지표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역경의 강도가 아니라 그 역경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다. 바로 사람들이 역경에 대응하는 방식이 훨씬 바람직한 선발 체제가 평가해야 할 대상이다.

선별 체제는 맥락 속에서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레슬링 선수는 자기 체급에 맞는 급수에서 경쟁해야 하듯이 말이다.

역경이란 대부분 엄격한 학점이나 경제적 시련보다 훨씬 주관적이고 측정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삶의 여정에서 독특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얼마나 장족의 발전을 했는지 측정할 방법이 필요하다.

진전을 잠재력의 징표로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기대치를 합리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뇌를 쥐어짜는 질문을 할 가능성이 가장 큰 면접관은 자기도취 성향이나 가학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성향이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면접보는 사람이 쩔쩔 매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똑똑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자기가 한심하다고 느껴야 정상이다.

여러분이 속한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여러분은 압박감에 놓여 성과를 제대로 못 내게 된다.

그는 히브리어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라는 뜻에서 센터를 콜 야촐(Call Yachol)이라 일컬었다.

"이게 썩은 사과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오래된 골동품 사과다. 하루에 사과 한 알을 먹으면 의사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고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영양소를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뒷마당에 씨앗을 심을수도 있다."

콜 야촐의 작업 예시는 사람들에게 성공할 두번째 기회를 주도록 설계되었다.

알고리듬은 인간이 판단을 내리는 데 고려해야 할 사항일 뿐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한 사람의 기량은 그가 하는 말과 과거에 한 일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잘 가늠한다.

사람들이 실수하는지 알아보려고 하기보다, 그들에게 자신이 지닌 최고의 기량을 드러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을 때 보이는 반응은 그들이 첫 번째 시도에서 보인 성과보다 그들의 품성을 들여다보고 더 정확히 파악할 창문이 되어준다.

"NASA가 당신을 탈락시키게 해요. 당신 스스로 탈락시키지 말고"

"하늘에 별은 하나 이상이고 인생에서 목표와 목적도 하나 이상이다."

15년 동안 우주인 후보 프로그램에 응모한 끝에 에르난데스는 마침내 선발되어 우주에 가게 되었다. "희소식을 들은 순간 온몸이 감각을 잃었다"

사람을 평가할 때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하는 일보다 보람된 일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압력을 가해 눈부신 광채를 드러나게 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압력에 직면해온 이들을 간과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는 게(그리고 그들의 잠재력이 빛나도록 하는 게)우리가 할 일이다.

꿈을 꼭 붙들라. 꿈이 사라지면, 삶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가 된다. -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 미국의 시인)

원대한 꿈을 지닌 사람들이 더 큰 성과를 올린다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남들 생각만큼 자신은 뛰어난 사람이 아니며, 언젠가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 알게 된다고 불안해하는 증상)

독학으로 무언가를 깨우친 주도력

성공은 자신이 애초에 지닌 역량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역량과 동기가 좌우한다.

그들은 나를 잘 몰랐고, 따라서 나는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기로 했다.

휴가 때에도 나는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서 내가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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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내 경우를 볼 때 돈과 관련된 약속을 지키는 친구들은...

1년 전 독서기록에 밑줄 쳤던 내용을 다시 읽어보면서 역시 돈은 빌려주는 게 아니라는 말을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돈의 액수를 떠나서 빌려줘도 머리아프고 안 빌려줘도 머리아프면 그냥 안 빌려주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그냥 푼 돈 정도를 아예 주는 게 낫다는 주의인데 근데 간혹 또 푼 돈 준다고 그러면 ‘나를 거지로 아냐‘ 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에 그냥 아예 사적인 금전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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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세라 바트먼‘ 이라는 아프리카 코이족의 한 여성이 나왔었는데 이 사람에 관한 얘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 여성을 착취(?)하여 돈을 벌고자하는 식민지 지배국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과거의 좋지 않은 문화들이 예나 지금이나 계속 조금씩 변형되면서 이어져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의식이나 문화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조금씩 나아지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어떤 다른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한채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지 못한 관습들이 뿌리깊게 남아있음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국 좋은 문화이든 좋지 못한 문화이든 관계없이 어떤 문화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 갑자기 뚝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쭉 이어져 왔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문화의 힘이라는 게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강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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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19세기 초에 과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인종간 차이와 위계를 성문화하는 작업들에 대해 나오는데, 읽다보니 결론(예를 들어, 유럽인이 아프리카인들보다 우월하다 혹은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 같은 것들)을 먼저 정해놓고 그에 맞는 근거들을 끼워맞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코이족 여성의 경우 일반적인 아프리카인들보다 피부색이 덜 검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큰 엉덩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 위계에서 가장 바닥을 차지한다는 식의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그것도 소위 과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보면서 19세기에 참 별의별일들이 다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요즘 시대에 이런 식의 발상을 하는 과학자가 있었다면 아마 욕이란 욕은 다 먹고도 남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아닐수 없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처럼 어떠한 시각 또는 관점을 가지고 사느냐가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은 결국 위에서 언급했던 문화의 힘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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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읽다가 p.103에 <고디스 레이디스 북> 이라는 여성 잡지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 잡지사에 채용된 세라 헤일이라는 편집자가 여성의 날씬함을 도덕성, 아름다움, 백인성과 동일시하는 논리를 확립했다는 말이 나온다. 근데 저자의 말과 뒤에 이어지는 글들을 종합해서 생각하다보니 이러한 논리라는 것도 어쩌면 특정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지극히 주관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마다 각자 선호하는 취향이 다들 다른데 어떤 특정한 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그것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다 라는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선호나 취향을 강요하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종교를 강요한다거나 아니면 특정 기호 식품을 강요한다는 등의 행위는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도 한 번 쯤은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어떤 것을 권했을 때 운좋게도 상대방이 흔쾌히 응한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권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구든 간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취향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특정한 생각이 강요되거나 무조건적으로 주입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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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읽다가 p.117에 밑줄친 문장 중에 예술사학가이자 사물 전문가인 줄즈 프라운Jules Prown 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이 책의 부분들 중에 가장 강력하게 느껴진 문장이었다. 총 두 문장인데 다시 한 번 적어보겠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의 존재는, 그 물건이 만들어질 때 인간의 지성이 작동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인공물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에 존재한 정신 패턴의 증거가 되겠지요.˝

독자인 나는 이 두 문장을 보면서 단지 이것이 이 책에 나온 엉덩이와 관련된 소재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창조해낸 모든 물건들에 적용가능한 ‘생각‘ 혹은 ‘관념‘, 좀 더 있어보이는 용어를 써보자면 ‘철학‘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보면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고 때론 해로운 것도 있고 참 다양한 스펙트럼의 물건 혹은 사물들이 존재한다. 위에 나온 문장에 근거해 이를 재해석 해보자면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고 그 사이에 정도의 차이가 세세하게 나눠진 다양한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그 안에 존재하는 물건들을 사용하거나 혹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새롭게 창조하여 사용할 것이다.

우리가 ‘원인과 결과‘ 혹은 ‘투입과 산출‘ 이라는 말들을 종종 쓰는데 위 문장에 나왔던 용어를 잠시 빌려서 얘기해보자면 이는 결국 인간의 지성이 밑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언급한 물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고 넓듯이 인간의 지성 또한 그 범위가 굉장히 넓다고 할 수 있는데, 세상에 선과 악이 어쩔 수 없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곤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좋은 쪽으로 인간의 지성이 발현되어서 세상이 되도록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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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나오는 내용에서는 19세기 여성들이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엉덩이 부분을 부풀려서 옷을 입는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버슬, 퍼프, 페티코트, 크리놀린 등 패션에 대한 배경지식이 딱히 많지 않았던 나에겐 좀 낯설었던 용어들이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면서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 세상은 넓고 분야마다 디테일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디테일들도 결국에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자가 직접 만났던 패션 역사학자인 에드위나 어먼의 말을 인용하여 빅토리아 시대(18,19세기)에 엉덩이를 변형시키는 의류를 디자인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독자인 내가 느낀 바를 나만의 용어로 적어보자면 너무 적나라할 정도로 오픈되어 있던 것들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한 결과물이 위에서 언급한 버슬 등과 같은 엉덩이를 변형시키는 의류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엉덩이라는 것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있을 줄 미처 몰랐었는데 본문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배운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다음 포스팅에서 추가적인 이야기들을 더 이어가보도록 하겠다.

"바트먼의 공연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 건 확실해요. 하지만 동시에 아프리카의 야만과 원시적인 흑인 여성에 관한 생각을 굳히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선 원시인들이 발가벗고 뛰어다닌다는 유의 생각 말이에요. 백인들은 세라 바트먼을 볼 때 그들이 이미 문화에 심어놓은 온갖 것들을 투사하고 있었어요." 홉슨이 말한다. - P97

바트먼의 인기가 그의 살아생전에 끝나지 않았듯, 그의 이미지에 결부된 인종 이데올로기도 오래 지속되었다. 바트먼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지난 뒤에도 바트먼의 신체에 대한 도착증은 19세기와 20세기 대중문화에 새겨져 영향을 발휘했다. - P97

바트먼의 삶과 유산을 연구한 역사학자 샌더 길먼이 말하듯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둔부의 이미지에 연결되었고, 그 정수는 호텐토트의 둔부였다." - P97

그렇게 바트먼은 정체성을 빼앗기고 상업적 실체가 되었고, 그에게 붙었던 별명은 그와 닮은 이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용어가 되었다. - P98

바트먼은 ‘엉덩이 큰 코이족 여자‘로서 초기 인류학 박물관의 주춧돌을 이룬 디오라마와 진귀품 전시장에 갇혔다. 그가 유일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첫 번째였을 뿐이다. - P98

자넬 홉슨은 18세기 과학자들에게 인종을 구별하는 근본적인 수단은 피부색이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19세기 초에 이르자 과학자들은 인간의 급을 나누고 인종 차이와 위계를 성문화하는 방식으로 피부색보다는 해부학과 신체 형태를더 선호하기 시작했고, 바트먼은 달라진 논리를 증명할 증거로 곧잘 호출되었다. - P100

코이족은 아프리카 적도 지방 사람들에 비해 피부색이 밝았는데, 유럽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한때 세운 기준에 의하면 이 사실은 코이족이 아프리카인 중에서 위계가 높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19세기 유럽 과학자들은 코이족이 가장 위계가 낮은 인종이라는 생각에 집착했다. 결국 과학자들은 코이족 특유의 신체 특징인 (이것 역시 미심쩍은 개념이지만) 큰 엉덩이를 내세워, 이것이야말로 코이족이 인간 위계에서 가장 바닥을 차지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 P100

퀴비에가 바트먼을 해부하고 적은 보고서(퀴비에 생전에만두 번 이상 재판을 찍은 책)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출처로 널리 인용되며 새로운 형태의 인종 질서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 P100

코이족 여성의 신체와 엉덩이에 흥미를 보인 건 해부학자뿐만이 아니었다. 유전과 인종에 관심이 깊었던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1853년의 저서 《열대 아프리카 탐험가 이야기 The Narrative of an Explorer in a Tropical South Africa》에 발가벗은 "호텐토트" 여성을 만나서 "정확한 신체 치수"를 알아낼 날을 학수고대한다고 적었다. - P101

대중을 감질나게 한 건 주로 코이족 여성의 엉덩이였지만,
골턴이 가장 주의를 기울인 대상은 두개골이었다. 이는 결국 그가 문자 그대로 "잘 태어났다"라는 뜻으로 지은, 우생학이라는 새 학문의 주춧돌이 되었다. - P101

19세기 내내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들은 온 세상 사람들의 두개골 치수를 재고 또 재면서, 이미 확고하게 정해놓은 답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으려 했다. 그 답은, 유럽 혈통의 백인들이 지상에서 가장 진화한 종이며 따라서 가장 똑똑하고 문명화되었다는 것이었다. - P101

골턴과 다른 우생학자들은 백인이 유색인종보다 더 위계가 높은 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백인으로 분류하는 사람들 내에서 급을 나누는 데에 열중했다. - P101

1899년 경제학자 윌리엄 Z. 리플리 William Z. Ripley는 큰 인기를 끈 저서 《유럽의 인종 Races of Europe》에서 에머슨과 터너보다 더 넓게 유럽인들을 분류했다. 두개골 치수·얼굴과 코의 형태·피부와 눈의 색깔·키를 기준으로 유럽인을 세 부류(게르만, 알프스, 지중해)로 나누고, 그중 어디에 속하는지 결정했다. 이 분류 체계에는 물론 위아래가 있었는데, 게르만과 북유럽인이 최상위층이고 남유럽인들이 최하위층이었다. 인종 위계체계가 다 그렇듯 리플리의 체계도 과학적으로 볼 때 헛소리였다. - P102

인종 위계는 이렇게 요동치면서 19세기 미국의 과학, 철학, 대중문화에 스며들었고, 개인의 신체 부위(코, 머리, 엉덩이 무엇이든)는 그가 어떤 인종에 속하는지 결정하는 체계의 구성요소로 여겨졌다. - P103

1836년에 <고디스 레이디스 북>에서는 세라 헤일Sarah Hale이라는 편집자를 채용했다. 학자 사브리너 스트링스Sabrina Strings에 의하면 헤일이 편집장으로 있던 시대에 여성의 날씬함을 도덕성, 아름다움, 백인성과 동일시하는 뒤틀린 논리가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 P103

<고디스 레이디스 북>의 지면에서 흑인, 외국인, 섹슈얼리티와 연상 관계에 놓인, 눈에 띄게 튀어나온 엉덩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실은 큰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체로 아프리카성과 동일시되던 시기였다. 헤일은 그 대신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의 미적 이상으로서 엉덩이 없이 날씬한 여성의 이미지를 내놓았다. 스트링스에 의하면 헤일 치하의 <고디스 레이디스 북>에서는 날씬한 여자가 도덕적으로 잘 배운 여자이자 인종 우월성을 가장 잘 체현한 여자다. - P104

19세기 사람들은 정확히 무엇 때문에 흑인 엉덩이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엉덩이가 흑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그토록 지독한 연상 관계를 맺게 된 건 어째서였을까? 샌더 길먼은 19세기 중반에 엉덩이가 여성 생식기의 대용품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한다. 19세기의 과학자들과 얼빠진 대중이세라 바트먼 같은 사람의 엉덩이를 보면서 외음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나머지, 엉덩이가 하이퍼 섹슈얼리티를 함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P104

흑인 여성의 커다란 엉덩이는 그에게 커다란 생식기가 달렸음을 암시한다고 여겼고, 커다란 생식기는 높은 성욕과 더불어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증거가 되었다. - P104

엉덩이에서 외음부를 연상하는 건 기묘하다. 두 신체 부위는 전혀 다르고, 기능도 딴판이지 않은가. 하지만 당대의 과학 문헌에서 여성 해부학의 가장 은밀한 두 부위는 꾸준히 융합된다. - P104

19세기 말에 이르자 인류학자 아벨레 데 블라지오 Abele de Blasio는 큰 엉덩이와 섹슈얼리티의 관련성을 더 밀고 나간 끝에 엉덩이 큰 백인 성노동자에 관한 연구 시리즈를 책으로 펴냈다. 다양한 인종의 성노동자와 그가 "호텐토트"라고 부른 여성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보려는 목적이었다. - P105

그(블라지오)는 (중략) 성적으로 일탈한 여성은 누구나 큰 엉덩이를 지녔고 따라서 큰 엉덩이가 성적 일탈의 증표라고 주장했다. 블라지오에 의하면 인종을 불문하고 여자가 큰 엉덩이를 지녔다는 건 과도한 성욕을 지녔음을 의미했다. - P105

우생학자들은 사람과 신체를 기본적으로 ‘적합‘과 ‘부적합‘
두 가지로 분류했다. 그들은 빈곤과 범죄 같은 문제들이 불공평한 체계, 인종차별, 계급 격차 때문이 아니라 나쁜 유전자에서 비롯한다고 믿었다.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은 가난한 사람을 낳았고, 범죄자들은 더 많은 범죄자를 낳았다. 그들이 보기에 최종으로 세상의 고통을 없앨 방식은 "부적합한" 사람들의 재생산을 막고 "적합한" 사람들에게 아이를 더 낳으라고 장려하는 것이었다. - P107

피커딜리에서 세라 바트먼을 구경거리로 무대에 올린 우생학과, 인종 분류에 관한 미심쩍은 과학이 지금 우리 눈엔 시간차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 시대에도 불임 시술 정책이나, 몸이 언급되고 분류되는 방식을 뒷받침하는 이론과 편견의 형태로,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 P108

디아스포라(원래 살던 땅을 떠나 이국으로 향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 - P110

"정의를 이룩했다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어요. 내일은 또 다른 권리를 빼앗길 테니까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두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되죠. 정의는 언제나 과정입니다." - P112

스커트를 커다랗게 부풀리는 크리놀린과 페티코트는 거대하고 묵직해서 착용자를 압도시켰다. - P116

블루머 (무릎에서 조이는 헐렁한 반바지) - P116

여자를 속박하고 통제하는 코르셋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 등장인물이 코르셋 끈을 푼다는 건, 자유를 찾아 나서거나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 P116

빅토리아 시대 속옷 가운데, 내가 알기로 아직 드라마에서 중요한 의미로 쓰인 적이 없는 품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버슬bustle이다. 버슬은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허리에 묶는 아코디언 형태의 틀이나 통통한 쿠션 등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가짜 엉덩이‘인 버슬은 19세기 말 여성의 실루엣을 결정했다. 버슬을 착용한 여자는 풍성하게 주름 장식이 된 소파를 연상시켰으며 실제 신체 부위는 모조리 감추었음에도 큰 엉덩이를 지닌 사람처럼 보였다. - P116

인터넷에서 버슬의 이미지를 검색하면, 턱부터 발목까지 장식 술과 프릴을 요란하게 매달고 드레스 단추를 끝까지 채운채 고상을 떠는 여자들이 나온다. 그들의 신체 윤곽은 1810년에 널리 인기를 끈 세라 바트먼의 만화와 일종의 시각적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17

내가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알게 된 사실은, 과거의 사물과 의복은 우리에게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다는 점이다. - P117

버슬의 인기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터놓고 이야기하기는커녕 좀처럼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신체, 젠더, 인종에 관한 관념이 우리 삶의 가장 일상적인 것에 어떻게 아로새겨졌는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 P117

문서와 단어들이 전해주는 건, 누군가가 언어로써 보고한 역사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 P117

그러나 사물과 의복은 우리 정신의 다른 부분에 말을 걸어온다. 꿈이나 농담이나 말실수가 그렇듯, 우리가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고 보관하는 방식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 느낌과 믿음을 살며시 드러내곤 한다. - P117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의 존재는, 그 물건이 만들어질 때 인간의 지성이 작동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예술사학가이자 사물 전문가인 줄즈 프라운Jules Prown은 말한다. "그렇다면 인공물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에 존재한 정신 패턴의 증거가 되겠지요." 다시 말해 현재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고, 사물의 제작자는 알게 모르게 그안에 자신의 문화와 믿음과 욕망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 P118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의상 수집품을 자랑한다. 나는 그곳에서 수집한 버슬들을 살펴보면서 줄즈 프라운이 가능하다고 말한 그 일, 과거의 무의식을 엿보는 일을 해낼 작정이었다. - P118

최초의 버슬, 즉 버슬의 원형은 옷이 여성의 몸에 감기지 않도록 허리의 잘록한 부분에 작은 면 패드를 대어 묶은 것이었다. - P120

버슬은 천이 다리 사이로 들어가 가랑이에 끼는 걸 방지해주는 수단이었다. - P120

태피터 드레스 아래에는 여러 겹의 면 치마를 받쳐 입는게 보통이었는데, 착용자는 그 무게와 열기를 견뎌야 했다.
이런 디자인의 의도는 커다란 퍼프를 만들어내서 드레스의호화로움과 풍성함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 P121

여러 겹의 페티코트를 입는다는 건, 페티코트 여러 벌을 살 만큼의 돈이 있다는 의미였다. 패션의 많은 품목이 그러하듯, 당대에 치마는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여자들은 크리놀린으로 갈아탔다. 크리놀린은 말갈기와 고래수염을 주재료로 하다가 나중엔 철로도 만들었다. 이는 페티코트의 일종으로, 면 치마만큼 무겁고 덥지 않으면서 치마를 더 크게 부풀릴 수 있었다. 1850년대에 이르자 치마는 여자들이 출입구를 지나갈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 P121

이때 버슬이 등장한다. 1868년에 대중화된 버슬은 1880년대 초에 이르자 더 커지고 더 불룩해졌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솜이나 말갈기를 채운 쿠션을 허리에 버클로 매단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재료가 발전하고 제조업자들이 매출을 올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면서, 버슬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자리에 앉을 때면 엉덩이 밑에서 접히는 아코디언 식의 디자인을 적용한 것, 부풀린 망사 받침대나 복잡한 스프링 구조를 활용한 것도 있었다. - P121

버슬의 인기는 계급을 초월했다. 어떤 여자들은 드레스 내부를 신문지로 채우기도 했고 (세간에는 <타임스>가 최고의 선택이라고들 했다) 오늘날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들처럼 페티코트를 주름 잡아서 허리에 핀으로 고정하기도 했다. 어린 소녀들마저도 버슬을 착용했다. - P122

19세기의 다른 의류에 비해 버슬은 패션 역사학자들에게 외면받았지만, 그래도 버슬이 큰 인기를 끈 이유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버슬이 단순히 코르셋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버슬을 착용한 여자들은 커 보이기보다 작아 보이는 데에 관심이 있었으며, 큰 엉덩이가 강조하는 날씬한 허리야말로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었다는 논리다. 여기에는 여성들이 엉덩이가 커 보일 부담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언제나 날씬한 허리를 원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 P124

또 다른 이론에서는 버슬을 엉덩이 확대장치보다는 간소화된 크리놀린으로 간주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치마가 터무니없이 컸던 1870년대에 버슬은 당시 여자들이 흔히 겪던 문제에 대한 실용적 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버슬을 착용할 경우, 치맛자락을 전부 뒤쪽으로 몰아서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 P124

버슬의 부상은 유물론적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18세기말 제1차 산업혁명이 벌어지면서 천을 구하기가 쉬워졌고,
1870년대와 1880년대에는 재봉틀의 발명으로 여자들이 전보다 빠른 속도로 직접 옷을 재봉하고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발전은 드레스 메이커들에게 큰 심려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직접 옷을 만들며 옷에 들어가는 재료의 원가를 알게 된 여성들이, 훨씬 큰돈을 지불해 드레스를 사는 관행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드레스 메이커들은 영민하게 대처했다. 전문적인 드레스 메이커의 가치를 입증하고자 버슬에 복잡한 솔기와 장식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버슬은 부의 상징이라는 자리마저 꿰찼다. 한마디로, 숙녀는 소파처럼 꾸밀수록 부유해 보였다. - P124

애초에 이론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모두가 ‘왜‘를 묻지만, 사실 패션엔 ‘왜‘가 없습니다." 어느 패션 역사학자가 내게 말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한 어떤 발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과장되어 터무니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사라지고 다음 유행에게 자리를 넘겨줍니다." 종 모양 크리놀린은 풍성한 버슬로 대체되고, 버슬은 1920년대 튜브 형태의 의상에 자리를 넘겨준다. 인체에 걸칠 수 있는 옷의 형태는 한없이 많고, 특정 형태에 질릴즈음 우리는 다음 유행으로 넘어간다. - P125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이런 설명들은 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버슬은 누가 뭐래도 엉덩이를 커 보이게 하는장치다. 버슬로 인해 허리가 잘록해 보였을 수는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버슬 자체의 모양에도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19세기 말에 살았던 사람들은 분명히 불룩 튀어나온 큰 엉덩이를 가진 여자를 보는 걸 좋아했거나, 스스로 그런 여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 P125

패션이 맥락 없이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사이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건, 패션이 역사 바깥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매일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지 선택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치·과학·몸에 관한 생각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전제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패션만 예외일 수 있을까? - P125

(패션 역사학자 에드위나) 어만은 빅토리아 시대에 살던 많은 사람이 실제로는 서로의 몸을 예민하게 느끼며 지냈다고 지적한다.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서로 몸을 비비며 지냈어요. 집마다 화장실이 따로 있지 않았고요." 중앙 하수 처리 시스템이 생기기 전이었고, 가정 대부분은 사적인 침실이 없었으며, 여성의 속옷은 보통 가랑이가 막혀 있지 않아 쉽게 치마를 들어 올리고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굳게 문을 닫은 침실과 화장실 뒤에 감추는 몸의 진실이, 그때는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 P126

서로 그만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치마만 들어 올리면 화장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정도로 노출된 타인의 몸을 흔히 보며 살았기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엉덩이의 기능과 그 산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 그들이 엉덩이를 변형시키는 의류를 디자인한 건 바로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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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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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실제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 바람직한 행동양식과 삶의 태도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해야 할 바람직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이 당장은 어려울지라도 향후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는 관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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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존감을 높이는 기술‘이라는 소제목의 글로 시작한다. 저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악착같이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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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나오는 내용에서는 공부의 활력과 관련하여 저자와 저자의 아내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에 대해 나온다. 저자는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비단 저자의 가정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도 상호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만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르기에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호존중이라는 가치가 정말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는 어느 한 쪽만 노력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기에 사회전반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인간의 마음도 결국에는 자연의 마음과 같다는 말을 하며 자연의 마음을 경험해보자는 말로 글을 마무리 하는데, 이게 어찌보면 별 것 아닌 말 같지만 사실 어떤 것의 본질을 좇아가다보면 인간도 결국 자연에 속한 한 개체이기에 저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자연에 속해있고 자연은 인간들로 이루어져있기에 우리 인간이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잘 배운다면 이 사회가 좀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악착같이 찾아봐라‘ - P283

한 번 사는 인생을 왜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삽니까? 우리는 눈만 뜨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쭈그리고 앉아 있지 말고, 나가서 뒤져보고 찔러보고 열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책도 읽어보면서 찾아야 합니다. 무언가 관심이 가는 일이 보이면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찾아가 보는 거예요. - P283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길이 눈앞에 보입니다. ‘이거다!‘ 싶으면 그때 전력으로 내달리면 됩니다. 제가 정확하게 그렇게 했어요. 한 10년쯤 달리다 보니 처음에는 친구들보다 훨씬 늦었는데, 10년 정도 지나면서 남들보다 조금씩 앞서가고 있더라고요. - P286

저는 똥물학과 학생으로 우울한 대학 생활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뭘 하면 좋을까?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죠. - P286

제가 돈 되는 공부를 했으면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었겠죠. 그렇지 않아서 희소가치가 있었습니다. - P287

제 아들이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어요. 양가 아버지가 한마디씩 하는 순서가 있었답니다. 그때 제가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의 시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를 언급하며 부부로서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며 살라고 말했습니다. - P288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것은 바로 연대solidarity였다.
인간은 연대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꼭 몸으로 뭉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마음으로 뭉칠 수 있다.
이 이상 분열하면 안 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보장해주는 길이 필요하고, 그 길 안에서 공간을 내어주는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공부를 왜 할까?‘ 스스로에게 묻고 묻다 보면 결국 삶을 잘 살려고 하는 건데요. 공부를 제대로 한다면, 공부할수록 사는 품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 P290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며 살자‘라는 말은 모든 관계 맺기에 있어 황금률 같습니다. - P291

공부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진입장벽 자체가 허물어져야 해요. - P291

무작정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로, 학연이나 성별로 자격을 만들어주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 P292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사회적 지위와 맞물려 있습니다. 교육이 편견의 담을 더 높이 쌓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되죠. - P293

우리 부부가 왜 서로에게 활력이 될까를 생각해보면요.
서로의 뜻을 존중하며 살고자 하는 삶이 지닌 본연의 가치를 배움 속에서 다져왔기 때문일 겁니다.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데는 바로 그 존중이 바탕으로 자리 잡혀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각자가 뿜어내는 가치가 보입니다.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다양성의 가치도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네, 저마다의 삶 속에 저마다의 공부가 있습니다. - P293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 - P293

공부란 한 사람을 성숙시키는 길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체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을 사려 깊게 만드는 도구 같아요. 공부가 익을수록 우리는 관계를 보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죠. ‘삶으로서의 공부‘로 다가옵니다. - P293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삽니다. 내 마음이 곧 내가 사는 세상이죠. 관계의 망이 얽힌 지점들을 좇다 보면 내 삶의 주된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볼 수 있어요. 내가 힘써 미칠 수 있는 영역이 보인다면 바른 선택에 다가갈 기회를 좀 더 갖지 않을까요? 내 세상의 안녕을 도모할 가능성도 커질 터입니다. 이때 우리의 앎은 세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P295

지식은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삶을 살리는 통찰로 솟구칠 구조물을 만들어냅니다. - P296

우리의 공부는 나의 미래를 만들어갈 뿐 아니라 그 환경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할 모두의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나를 위해 시작한 공부라 할지라도 ‘모두‘로 뻗어가기에 그 공부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무한히 확장될 것입니다. - P296

"자연계는 총체적인 교육입니다" - P296

"새들은 지도 없이 바다를 건너고 같은 장소에 착륙합니다. 온몸으로 감지하죠. 다람쥐도 인식하고 나무도 인식합니다. 아몬드 나무의 마음은 봄에 하얀 꽃들로 복제됩니다. 수많은 일이 벌어지지만 자연계는 스스로 조절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인간의 마음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의 마음을 경험합시다." - P297

힘써 배워요. 들판을 거닐며 배우는 줄 몰랐는데 배웠듯이, 우리 그렇게 공부해요. 그리고 온 삶을 감각하는 거예요. ‘나‘와 ‘모두‘의 삶은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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