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세라 바트먼‘ 이라는 아프리카 코이족의 한 여성이 나왔었는데 이 사람에 관한 얘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 여성을 착취(?)하여 돈을 벌고자하는 식민지 지배국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과거의 좋지 않은 문화들이 예나 지금이나 계속 조금씩 변형되면서 이어져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의식이나 문화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조금씩 나아지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어떤 다른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한채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지 못한 관습들이 뿌리깊게 남아있음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국 좋은 문화이든 좋지 못한 문화이든 관계없이 어떤 문화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 갑자기 뚝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쭉 이어져 왔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문화의 힘이라는 게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강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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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19세기 초에 과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인종간 차이와 위계를 성문화하는 작업들에 대해 나오는데, 읽다보니 결론(예를 들어, 유럽인이 아프리카인들보다 우월하다 혹은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 같은 것들)을 먼저 정해놓고 그에 맞는 근거들을 끼워맞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코이족 여성의 경우 일반적인 아프리카인들보다 피부색이 덜 검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큰 엉덩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 위계에서 가장 바닥을 차지한다는 식의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그것도 소위 과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보면서 19세기에 참 별의별일들이 다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요즘 시대에 이런 식의 발상을 하는 과학자가 있었다면 아마 욕이란 욕은 다 먹고도 남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아닐수 없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처럼 어떠한 시각 또는 관점을 가지고 사느냐가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은 결국 위에서 언급했던 문화의 힘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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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읽다가 p.103에 <고디스 레이디스 북> 이라는 여성 잡지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 잡지사에 채용된 세라 헤일이라는 편집자가 여성의 날씬함을 도덕성, 아름다움, 백인성과 동일시하는 논리를 확립했다는 말이 나온다. 근데 저자의 말과 뒤에 이어지는 글들을 종합해서 생각하다보니 이러한 논리라는 것도 어쩌면 특정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지극히 주관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마다 각자 선호하는 취향이 다들 다른데 어떤 특정한 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그것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다 라는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선호나 취향을 강요하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종교를 강요한다거나 아니면 특정 기호 식품을 강요한다는 등의 행위는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도 한 번 쯤은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어떤 것을 권했을 때 운좋게도 상대방이 흔쾌히 응한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권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구든 간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취향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특정한 생각이 강요되거나 무조건적으로 주입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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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읽다가 p.117에 밑줄친 문장 중에 예술사학가이자 사물 전문가인 줄즈 프라운Jules Prown 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이 책의 부분들 중에 가장 강력하게 느껴진 문장이었다. 총 두 문장인데 다시 한 번 적어보겠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의 존재는, 그 물건이 만들어질 때 인간의 지성이 작동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인공물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에 존재한 정신 패턴의 증거가 되겠지요.˝

독자인 나는 이 두 문장을 보면서 단지 이것이 이 책에 나온 엉덩이와 관련된 소재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창조해낸 모든 물건들에 적용가능한 ‘생각‘ 혹은 ‘관념‘, 좀 더 있어보이는 용어를 써보자면 ‘철학‘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보면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고 때론 해로운 것도 있고 참 다양한 스펙트럼의 물건 혹은 사물들이 존재한다. 위에 나온 문장에 근거해 이를 재해석 해보자면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고 그 사이에 정도의 차이가 세세하게 나눠진 다양한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그 안에 존재하는 물건들을 사용하거나 혹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새롭게 창조하여 사용할 것이다.

우리가 ‘원인과 결과‘ 혹은 ‘투입과 산출‘ 이라는 말들을 종종 쓰는데 위 문장에 나왔던 용어를 잠시 빌려서 얘기해보자면 이는 결국 인간의 지성이 밑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언급한 물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고 넓듯이 인간의 지성 또한 그 범위가 굉장히 넓다고 할 수 있는데, 세상에 선과 악이 어쩔 수 없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곤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좋은 쪽으로 인간의 지성이 발현되어서 세상이 되도록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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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나오는 내용에서는 19세기 여성들이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엉덩이 부분을 부풀려서 옷을 입는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버슬, 퍼프, 페티코트, 크리놀린 등 패션에 대한 배경지식이 딱히 많지 않았던 나에겐 좀 낯설었던 용어들이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면서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 세상은 넓고 분야마다 디테일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디테일들도 결국에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자가 직접 만났던 패션 역사학자인 에드위나 어먼의 말을 인용하여 빅토리아 시대(18,19세기)에 엉덩이를 변형시키는 의류를 디자인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독자인 내가 느낀 바를 나만의 용어로 적어보자면 너무 적나라할 정도로 오픈되어 있던 것들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한 결과물이 위에서 언급한 버슬 등과 같은 엉덩이를 변형시키는 의류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엉덩이라는 것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있을 줄 미처 몰랐었는데 본문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배운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다음 포스팅에서 추가적인 이야기들을 더 이어가보도록 하겠다.

"바트먼의 공연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 건 확실해요. 하지만 동시에 아프리카의 야만과 원시적인 흑인 여성에 관한 생각을 굳히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선 원시인들이 발가벗고 뛰어다닌다는 유의 생각 말이에요. 백인들은 세라 바트먼을 볼 때 그들이 이미 문화에 심어놓은 온갖 것들을 투사하고 있었어요." 홉슨이 말한다. - P97

바트먼의 인기가 그의 살아생전에 끝나지 않았듯, 그의 이미지에 결부된 인종 이데올로기도 오래 지속되었다. 바트먼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지난 뒤에도 바트먼의 신체에 대한 도착증은 19세기와 20세기 대중문화에 새겨져 영향을 발휘했다. - P97

바트먼의 삶과 유산을 연구한 역사학자 샌더 길먼이 말하듯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둔부의 이미지에 연결되었고, 그 정수는 호텐토트의 둔부였다." - P97

그렇게 바트먼은 정체성을 빼앗기고 상업적 실체가 되었고, 그에게 붙었던 별명은 그와 닮은 이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용어가 되었다. - P98

바트먼은 ‘엉덩이 큰 코이족 여자‘로서 초기 인류학 박물관의 주춧돌을 이룬 디오라마와 진귀품 전시장에 갇혔다. 그가 유일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첫 번째였을 뿐이다. - P98

자넬 홉슨은 18세기 과학자들에게 인종을 구별하는 근본적인 수단은 피부색이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19세기 초에 이르자 과학자들은 인간의 급을 나누고 인종 차이와 위계를 성문화하는 방식으로 피부색보다는 해부학과 신체 형태를더 선호하기 시작했고, 바트먼은 달라진 논리를 증명할 증거로 곧잘 호출되었다. - P100

코이족은 아프리카 적도 지방 사람들에 비해 피부색이 밝았는데, 유럽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한때 세운 기준에 의하면 이 사실은 코이족이 아프리카인 중에서 위계가 높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19세기 유럽 과학자들은 코이족이 가장 위계가 낮은 인종이라는 생각에 집착했다. 결국 과학자들은 코이족 특유의 신체 특징인 (이것 역시 미심쩍은 개념이지만) 큰 엉덩이를 내세워, 이것이야말로 코이족이 인간 위계에서 가장 바닥을 차지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 P100

퀴비에가 바트먼을 해부하고 적은 보고서(퀴비에 생전에만두 번 이상 재판을 찍은 책)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출처로 널리 인용되며 새로운 형태의 인종 질서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 P100

코이족 여성의 신체와 엉덩이에 흥미를 보인 건 해부학자뿐만이 아니었다. 유전과 인종에 관심이 깊었던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1853년의 저서 《열대 아프리카 탐험가 이야기 The Narrative of an Explorer in a Tropical South Africa》에 발가벗은 "호텐토트" 여성을 만나서 "정확한 신체 치수"를 알아낼 날을 학수고대한다고 적었다. - P101

대중을 감질나게 한 건 주로 코이족 여성의 엉덩이였지만,
골턴이 가장 주의를 기울인 대상은 두개골이었다. 이는 결국 그가 문자 그대로 "잘 태어났다"라는 뜻으로 지은, 우생학이라는 새 학문의 주춧돌이 되었다. - P101

19세기 내내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들은 온 세상 사람들의 두개골 치수를 재고 또 재면서, 이미 확고하게 정해놓은 답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으려 했다. 그 답은, 유럽 혈통의 백인들이 지상에서 가장 진화한 종이며 따라서 가장 똑똑하고 문명화되었다는 것이었다. - P101

골턴과 다른 우생학자들은 백인이 유색인종보다 더 위계가 높은 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백인으로 분류하는 사람들 내에서 급을 나누는 데에 열중했다. - P101

1899년 경제학자 윌리엄 Z. 리플리 William Z. Ripley는 큰 인기를 끈 저서 《유럽의 인종 Races of Europe》에서 에머슨과 터너보다 더 넓게 유럽인들을 분류했다. 두개골 치수·얼굴과 코의 형태·피부와 눈의 색깔·키를 기준으로 유럽인을 세 부류(게르만, 알프스, 지중해)로 나누고, 그중 어디에 속하는지 결정했다. 이 분류 체계에는 물론 위아래가 있었는데, 게르만과 북유럽인이 최상위층이고 남유럽인들이 최하위층이었다. 인종 위계체계가 다 그렇듯 리플리의 체계도 과학적으로 볼 때 헛소리였다. - P102

인종 위계는 이렇게 요동치면서 19세기 미국의 과학, 철학, 대중문화에 스며들었고, 개인의 신체 부위(코, 머리, 엉덩이 무엇이든)는 그가 어떤 인종에 속하는지 결정하는 체계의 구성요소로 여겨졌다. - P103

1836년에 <고디스 레이디스 북>에서는 세라 헤일Sarah Hale이라는 편집자를 채용했다. 학자 사브리너 스트링스Sabrina Strings에 의하면 헤일이 편집장으로 있던 시대에 여성의 날씬함을 도덕성, 아름다움, 백인성과 동일시하는 뒤틀린 논리가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 P103

<고디스 레이디스 북>의 지면에서 흑인, 외국인, 섹슈얼리티와 연상 관계에 놓인, 눈에 띄게 튀어나온 엉덩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실은 큰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체로 아프리카성과 동일시되던 시기였다. 헤일은 그 대신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의 미적 이상으로서 엉덩이 없이 날씬한 여성의 이미지를 내놓았다. 스트링스에 의하면 헤일 치하의 <고디스 레이디스 북>에서는 날씬한 여자가 도덕적으로 잘 배운 여자이자 인종 우월성을 가장 잘 체현한 여자다. - P104

19세기 사람들은 정확히 무엇 때문에 흑인 엉덩이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엉덩이가 흑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그토록 지독한 연상 관계를 맺게 된 건 어째서였을까? 샌더 길먼은 19세기 중반에 엉덩이가 여성 생식기의 대용품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한다. 19세기의 과학자들과 얼빠진 대중이세라 바트먼 같은 사람의 엉덩이를 보면서 외음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나머지, 엉덩이가 하이퍼 섹슈얼리티를 함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P104

흑인 여성의 커다란 엉덩이는 그에게 커다란 생식기가 달렸음을 암시한다고 여겼고, 커다란 생식기는 높은 성욕과 더불어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증거가 되었다. - P104

엉덩이에서 외음부를 연상하는 건 기묘하다. 두 신체 부위는 전혀 다르고, 기능도 딴판이지 않은가. 하지만 당대의 과학 문헌에서 여성 해부학의 가장 은밀한 두 부위는 꾸준히 융합된다. - P104

19세기 말에 이르자 인류학자 아벨레 데 블라지오 Abele de Blasio는 큰 엉덩이와 섹슈얼리티의 관련성을 더 밀고 나간 끝에 엉덩이 큰 백인 성노동자에 관한 연구 시리즈를 책으로 펴냈다. 다양한 인종의 성노동자와 그가 "호텐토트"라고 부른 여성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보려는 목적이었다. - P105

그(블라지오)는 (중략) 성적으로 일탈한 여성은 누구나 큰 엉덩이를 지녔고 따라서 큰 엉덩이가 성적 일탈의 증표라고 주장했다. 블라지오에 의하면 인종을 불문하고 여자가 큰 엉덩이를 지녔다는 건 과도한 성욕을 지녔음을 의미했다. - P105

우생학자들은 사람과 신체를 기본적으로 ‘적합‘과 ‘부적합‘
두 가지로 분류했다. 그들은 빈곤과 범죄 같은 문제들이 불공평한 체계, 인종차별, 계급 격차 때문이 아니라 나쁜 유전자에서 비롯한다고 믿었다.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은 가난한 사람을 낳았고, 범죄자들은 더 많은 범죄자를 낳았다. 그들이 보기에 최종으로 세상의 고통을 없앨 방식은 "부적합한" 사람들의 재생산을 막고 "적합한" 사람들에게 아이를 더 낳으라고 장려하는 것이었다. - P107

피커딜리에서 세라 바트먼을 구경거리로 무대에 올린 우생학과, 인종 분류에 관한 미심쩍은 과학이 지금 우리 눈엔 시간차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 시대에도 불임 시술 정책이나, 몸이 언급되고 분류되는 방식을 뒷받침하는 이론과 편견의 형태로,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 P108

디아스포라(원래 살던 땅을 떠나 이국으로 향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 - P110

"정의를 이룩했다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어요. 내일은 또 다른 권리를 빼앗길 테니까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두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되죠. 정의는 언제나 과정입니다." - P112

스커트를 커다랗게 부풀리는 크리놀린과 페티코트는 거대하고 묵직해서 착용자를 압도시켰다. - P116

블루머 (무릎에서 조이는 헐렁한 반바지) - P116

여자를 속박하고 통제하는 코르셋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 등장인물이 코르셋 끈을 푼다는 건, 자유를 찾아 나서거나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 P116

빅토리아 시대 속옷 가운데, 내가 알기로 아직 드라마에서 중요한 의미로 쓰인 적이 없는 품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버슬bustle이다. 버슬은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허리에 묶는 아코디언 형태의 틀이나 통통한 쿠션 등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가짜 엉덩이‘인 버슬은 19세기 말 여성의 실루엣을 결정했다. 버슬을 착용한 여자는 풍성하게 주름 장식이 된 소파를 연상시켰으며 실제 신체 부위는 모조리 감추었음에도 큰 엉덩이를 지닌 사람처럼 보였다. - P116

인터넷에서 버슬의 이미지를 검색하면, 턱부터 발목까지 장식 술과 프릴을 요란하게 매달고 드레스 단추를 끝까지 채운채 고상을 떠는 여자들이 나온다. 그들의 신체 윤곽은 1810년에 널리 인기를 끈 세라 바트먼의 만화와 일종의 시각적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17

내가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알게 된 사실은, 과거의 사물과 의복은 우리에게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다는 점이다. - P117

버슬의 인기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터놓고 이야기하기는커녕 좀처럼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신체, 젠더, 인종에 관한 관념이 우리 삶의 가장 일상적인 것에 어떻게 아로새겨졌는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 P117

문서와 단어들이 전해주는 건, 누군가가 언어로써 보고한 역사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 P117

그러나 사물과 의복은 우리 정신의 다른 부분에 말을 걸어온다. 꿈이나 농담이나 말실수가 그렇듯, 우리가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고 보관하는 방식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 느낌과 믿음을 살며시 드러내곤 한다. - P117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의 존재는, 그 물건이 만들어질 때 인간의 지성이 작동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예술사학가이자 사물 전문가인 줄즈 프라운Jules Prown은 말한다. "그렇다면 인공물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에 존재한 정신 패턴의 증거가 되겠지요." 다시 말해 현재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고, 사물의 제작자는 알게 모르게 그안에 자신의 문화와 믿음과 욕망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 P118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의상 수집품을 자랑한다. 나는 그곳에서 수집한 버슬들을 살펴보면서 줄즈 프라운이 가능하다고 말한 그 일, 과거의 무의식을 엿보는 일을 해낼 작정이었다. - P118

최초의 버슬, 즉 버슬의 원형은 옷이 여성의 몸에 감기지 않도록 허리의 잘록한 부분에 작은 면 패드를 대어 묶은 것이었다. - P120

버슬은 천이 다리 사이로 들어가 가랑이에 끼는 걸 방지해주는 수단이었다. - P120

태피터 드레스 아래에는 여러 겹의 면 치마를 받쳐 입는게 보통이었는데, 착용자는 그 무게와 열기를 견뎌야 했다.
이런 디자인의 의도는 커다란 퍼프를 만들어내서 드레스의호화로움과 풍성함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 P121

여러 겹의 페티코트를 입는다는 건, 페티코트 여러 벌을 살 만큼의 돈이 있다는 의미였다. 패션의 많은 품목이 그러하듯, 당대에 치마는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여자들은 크리놀린으로 갈아탔다. 크리놀린은 말갈기와 고래수염을 주재료로 하다가 나중엔 철로도 만들었다. 이는 페티코트의 일종으로, 면 치마만큼 무겁고 덥지 않으면서 치마를 더 크게 부풀릴 수 있었다. 1850년대에 이르자 치마는 여자들이 출입구를 지나갈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 P121

이때 버슬이 등장한다. 1868년에 대중화된 버슬은 1880년대 초에 이르자 더 커지고 더 불룩해졌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솜이나 말갈기를 채운 쿠션을 허리에 버클로 매단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재료가 발전하고 제조업자들이 매출을 올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면서, 버슬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자리에 앉을 때면 엉덩이 밑에서 접히는 아코디언 식의 디자인을 적용한 것, 부풀린 망사 받침대나 복잡한 스프링 구조를 활용한 것도 있었다. - P121

버슬의 인기는 계급을 초월했다. 어떤 여자들은 드레스 내부를 신문지로 채우기도 했고 (세간에는 <타임스>가 최고의 선택이라고들 했다) 오늘날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들처럼 페티코트를 주름 잡아서 허리에 핀으로 고정하기도 했다. 어린 소녀들마저도 버슬을 착용했다. - P122

19세기의 다른 의류에 비해 버슬은 패션 역사학자들에게 외면받았지만, 그래도 버슬이 큰 인기를 끈 이유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버슬이 단순히 코르셋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버슬을 착용한 여자들은 커 보이기보다 작아 보이는 데에 관심이 있었으며, 큰 엉덩이가 강조하는 날씬한 허리야말로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었다는 논리다. 여기에는 여성들이 엉덩이가 커 보일 부담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언제나 날씬한 허리를 원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 P124

또 다른 이론에서는 버슬을 엉덩이 확대장치보다는 간소화된 크리놀린으로 간주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치마가 터무니없이 컸던 1870년대에 버슬은 당시 여자들이 흔히 겪던 문제에 대한 실용적 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버슬을 착용할 경우, 치맛자락을 전부 뒤쪽으로 몰아서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 P124

버슬의 부상은 유물론적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18세기말 제1차 산업혁명이 벌어지면서 천을 구하기가 쉬워졌고,
1870년대와 1880년대에는 재봉틀의 발명으로 여자들이 전보다 빠른 속도로 직접 옷을 재봉하고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발전은 드레스 메이커들에게 큰 심려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직접 옷을 만들며 옷에 들어가는 재료의 원가를 알게 된 여성들이, 훨씬 큰돈을 지불해 드레스를 사는 관행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드레스 메이커들은 영민하게 대처했다. 전문적인 드레스 메이커의 가치를 입증하고자 버슬에 복잡한 솔기와 장식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버슬은 부의 상징이라는 자리마저 꿰찼다. 한마디로, 숙녀는 소파처럼 꾸밀수록 부유해 보였다. - P124

애초에 이론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모두가 ‘왜‘를 묻지만, 사실 패션엔 ‘왜‘가 없습니다." 어느 패션 역사학자가 내게 말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한 어떤 발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과장되어 터무니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사라지고 다음 유행에게 자리를 넘겨줍니다." 종 모양 크리놀린은 풍성한 버슬로 대체되고, 버슬은 1920년대 튜브 형태의 의상에 자리를 넘겨준다. 인체에 걸칠 수 있는 옷의 형태는 한없이 많고, 특정 형태에 질릴즈음 우리는 다음 유행으로 넘어간다. - P125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이런 설명들은 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버슬은 누가 뭐래도 엉덩이를 커 보이게 하는장치다. 버슬로 인해 허리가 잘록해 보였을 수는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버슬 자체의 모양에도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19세기 말에 살았던 사람들은 분명히 불룩 튀어나온 큰 엉덩이를 가진 여자를 보는 걸 좋아했거나, 스스로 그런 여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 P125

패션이 맥락 없이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사이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건, 패션이 역사 바깥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매일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지 선택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치·과학·몸에 관한 생각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전제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패션만 예외일 수 있을까? - P125

(패션 역사학자 에드위나) 어만은 빅토리아 시대에 살던 많은 사람이 실제로는 서로의 몸을 예민하게 느끼며 지냈다고 지적한다.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서로 몸을 비비며 지냈어요. 집마다 화장실이 따로 있지 않았고요." 중앙 하수 처리 시스템이 생기기 전이었고, 가정 대부분은 사적인 침실이 없었으며, 여성의 속옷은 보통 가랑이가 막혀 있지 않아 쉽게 치마를 들어 올리고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굳게 문을 닫은 침실과 화장실 뒤에 감추는 몸의 진실이, 그때는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 P126

서로 그만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치마만 들어 올리면 화장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정도로 노출된 타인의 몸을 흔히 보며 살았기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엉덩이의 기능과 그 산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 그들이 엉덩이를 변형시키는 의류를 디자인한 건 바로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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