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본문의 스토리 맥락에서 큰 비중이 있다거나 특별히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우리의 신체 중에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이 사례처럼 생계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라면 그 소중함의 무게가 좀 더 묵직하게 느껴질 듯하다.

대개의 기타리스트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다치게 되면 존재 이유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 P25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나에 대한 단순한 기억에 지나지 않아." - P26

"산은 그것을 보는 각도, 계절, 시각 또는 보는 사람의 기분 하나에도 그 모습을 싹 바꾸어버리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산의 일부분, 아주 하찮은 일부분만 파악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30

나는 성교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그것은 뭔가 한정된 형태의 가능성을 연상케 한다. - P33

"자네는 사념思念만이 존재하고 표현이 뿌리째 뽑힌 상태를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양 박사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지옥이지. 사념만이 소용돌이치는 지옥이야. 한 줄기의 빛도 없고 한 움큼의 물도 없는 땅속의 지옥이지. 그리고 그것이 지난 42년간의 내 생활이었네." - P60

"양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대체 어떤 느낌이죠?"
"특별한 건 없네. 그저 양이 있다고 느끼는 것뿐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느끼는 거야. 양이 내 속에 있다고 말이야. 아주 자연스런 느낌이지." - P62

"양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중국 북부, 몽고 지역에서는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라네. 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양이 체내에 들어온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라고 여겨지고 있지. 예를 들어서 원元나라 시대에 출판된 어떤 책에는 칭기즈칸의 체내에는 ‘별을 짊어진 백양‘이 들어가있었다고 쓰여 있지." - P63

"사람의 체내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은 죽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있다네. 그리고 양을 체내에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죽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나 양이 달아나버리면, 그 불사성不死性도 상실되는 거지. 모든 것은 양에 달린 거네. 양은 마음에 들면 몇십 년이라도 같은 데에 있고, 마땅찮으면 홱 나가버리지. 양이 달아나버린 사람들은 보통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고 불리는데, 즉 나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거네." - P63

"나는 양이 내 몸속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줄곧 양에 관한 민속학이라든가 전승을 연구하기 시작했네.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오래된 책을 뒤져보기도 했지. 그러던 중 사람들 사이에 내 속에 양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것이 내 상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네. 내 상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나는 ‘정신착란‘이라는 딱지가 붙여져 본국으로 소환되었어. 이른바 식민지병이라는 거지." - P63

"근대 일본의 본질을 이루는 어리석음은, 우리가 아시아의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거네. 양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지. 일본에서의 면양 사육이 실패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양모 식육의 자급자족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되었기 때문이고, 생활에서의 사상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던 거네. 시간을 따로 떼어 결론만을 효율적으로 훔쳐내려고 한 거야. 모든 일이 그래. 다시 말해서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은 거지. 전쟁에 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 P64

"양의 목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모르지"라고 양 박사는 내뱉듯이 말했다. "그걸 알 수 없다네. 양은 내게는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았거든. 하지만 놈에게는 뭔가 거대한 목적이 있었지. 그것만은 나도 알 수 있었어. 인간과 인간의 세계를 변화시킬 만한 거대한 계획 말이야." - P64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이미 양의 자취는 없었어. 그제야 비로소 나는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네. 한마디로 지옥이야. 양은 사념만을 남겨두고 간거야. 그러나 양 없이는 그 사념을 방출할 수 없어. 그것이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는 거지." - P65

나는 양 박사를 떠난 뒤의 양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양이 옥중의 우익 청년의 체내에 들어갔다는 것. 그는 출옥하여 곧 우익의 거물이 되었고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 정보망과 재산을 쌓아 올렸다는 것. 전쟁 후 A급 전범이 되었으나, 중국 대륙에서의 정보망과 교환한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는 것. 대륙에서 가지고 돌아온 재산을 밑천으로 전후의 정치·경제·정보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장악했다는 것 등등. - P66

"‘양이 빠져나간 사람‘에게 있어서 어설픈 의식 따위는 차라리 없는 게 편하다네." - P66

"그 인물의 경우도 나와 마찬가지야. 이용가치가 없어진 거지.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고, 양은 한계에 이른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어. 아마 그는 양이 진짜로 원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겠지. 그의 역할은 거대한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고, 그 역할이 끝나자 버림받은 거지. 마치 양이 나를 수송 수단으로 이용했듯이 말일세." - P67

"나는 그 양에는 더 이상 말려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내가 그 좋은 예지. 그 양에 말려들어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왜냐하면 양의 존재 앞에서는 일개 인간의 가치관 따위는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네. 그러나 어쨌든 자네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 - P71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거야." - P73

"나도 가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도대체 무얼 찾으면 되는 것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르는 겁니다. 저의 아버지는 줄곧 무엇인가를 찾으시던 어른이랍니다. 지금도 찾고 계시죠. 저도 어려서부터 계속 아버지의 꿈에 나타났던 흰 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지요. 그래서인지 인생이란 그런 것이구나, 라고 믿어버리게 된겁니다.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것이 진짜 인생이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 P74

"양 박사의 역할은 끝났어. 그 뒤의 양의 행적은 우리가 찾아야만 한다고." - P75

아이누 :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 열도 등지에 분포하는 소수민족. - P80

이시카리가와 : 홋카이도에 있는, 일본의 3대 강 중의 하나. - P80

사일로 : 곡식 · 마초 등을 저장하는 탑 모양의 건축물. - P93

현재가 현재이기를 포기해버린다면 역사는 역사가 아닌 게 되어버린다. - P95

역사는 조금씩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었다. - P100

사람들은 모두 무관심과 권태라는 굵은 고삐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 P103

"걱정 마, 아무리 형편없는 마을에도 여관은 반드시 있는 법이거든." - P108

"16세기의 스페인에서는 양을 몰 때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온 나라에 있어서 임금님도 거기는 들어가지 못했다는군." - P120

"어쨌든 양은 겁만 먹지 않으면 온순한 동물이어서 개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니까." - P120

"댁은 자신의 인생을 따분하다고 생각하나?"
"모르겠어요."
"양도 비슷하겠지"라고 관리인은 말했다.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해봤자 알 턱도 없을 테니까. 마른풀을 먹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가벼운 싸움도 하고, 배 속의 새끼 생각도 하면서 겨울을 나는 거지." - P133

"양들도 싸움을 하나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잘 싸우지"라고 관리인은 말했다. "무리 지어서 행동하는 동물은 모두 그렇지만, 양의 사회에서도 양마다 확실한 서열이 정해져 있어. 한 울타리 속에 50마리의 양이 있으면 서열1위부터 50위까지 있지. 그리고 모든 양이 자신의 위치를 똑바로 인식하고 있어."
"대단하네요"라고 하는 그녀.
"그래서 관리하기가 쉬운 거야. 제일 높은 서열의 양을 끌고가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니까." - P135

"어떤 양이 다쳐서 힘을 못 쓰게 되거나 하면 서열이 불안정해지거든. 그러면 그 아래의 양이 위로 올라오려고 도전하지. 그렇게 되면 사흘가량은 우당탕거리며 소란을 피워대는거야." - P135

"그런데 제일 불쌍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씨받이 수컷이지. 양의 하렘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들어본 적 없다, 라고 우리는 말했다.
"양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교미의 관리야. 그러니까 암컷은 암컷끼리, 수컷은 수컷끼리 격리시킨 다음 암컷 우리 속에 수컷을 한 마리만 넣어주는 거야. 대개 제일 강한 서열 1위의 수컷이지. 다시 말해서 가장 좋은 씨를 받는 거야.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면 씨받이 수컷은 원래의 수컷 우리로 되돌아 오는데, 그동안 우리에서는 새로운 서열이 정해지게 되지. 씨받이 수컷은 교미를 한 덕분에 체중이 절반이나 준 형편이니까 어떤 놈과 싸워도 승산은 제로야. 그런데도 다른 모든 양과 차례로 한 번씩은 싸워야 하니 참담한 거지." - P136

"양은 어떤 식으로 싸우나요?"
"머리로 박치기를 해. 양의 머리는 무쇠처럼 단단하고 속이텅 비어 있어." - P136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확실히 낡게 마련인가 보다. - P150

음악은 사상만큼 기억 속에서 퇴색하지 않는다. - P158

주위의 모든 사물을 흐르는 대로 맡겨두는 수밖에 없었다. - P163

어딘가에서 초점이 어긋나 진짜 나는 현실의 내가 아니게 되고 만 것이다. - P166

그녀가 없어 쓸쓸했지만, 쓸쓸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구원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쓸쓸함이라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작은 새들이 날아가버린 뒤의 고요한 모밀잣밤나무 같았다. - P168

여기서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지 않으면 시간에 대한 정상적인 감각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 P169

아무리 생각해본들 이치에 닿지 않는 상황에서 이치에 닿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72

두 지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기묘한 일이었다. 멀리 떨어진 대지 위에서 사람들이 지금도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나를 배제한 채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가장 기묘했다. - P173

"가끔 말이지, 그, 양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부딪쳐서 그렇게 된다고. 뭐 나쁜 뜻이 있었던 건 아니야. 게다가 당신도 나를 책망하는 듯한 말을 해서." - P182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양 사나이는 동물과 똑같다. 이쪽이 가까이 가면 물러서고, 이쪽이 물러서면 다가온다. 계속 여기에 있을 거라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캐내면 되는 것이다. - P184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면 특별히 알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걱정거리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 P194

요컨대 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나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다. - P196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207

혼란이 가라앉자 이번에는 울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기괴하고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쥐는 뭔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검은 옷의 남자도 뭔가를 알고 있다. 나만 아무것도 모른 채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은 모두가 어긋나 있고, 내 모든 행동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물론 내 인생은 항상 그런 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누구도 책망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이런 식으로 나를 이용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용하고, 짜내고, 때려눕힌 것은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정말 마지막 한 방울이었던 것이다. - P208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고 지금 당장에라도 산을 내려가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가장 간단한 일은 소리 내어 울어버리는 것이었지만 울 수도 없었다. 훨씬 뒤에 내가 정말로 울어야 할 뭔가가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 P209

모든 것이 나와는 관계없이 전개되고 있다. 나의 존재와는 관계없이ㅡ누구의 존재와도 관계없이ㅡ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다. 눈은 내리고 다시 눈은 녹는다. - P212

"나에게도 화를 낼 권리는 있어"라고 나는 말했다. 나 자신을 향해 한 말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화를 낼 권리는 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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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 -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신태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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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속에서 독자들에게 뭔가 생각할거리들을 지속적으로 던져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독자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에 나온 문장의 의미를 상상해보거나 곱씹어가며 읽어나가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권을 집중해서 끝까지 읽었다면 하권에서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자연스레 궁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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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원 미상의 남자의 부탁을 받고 여자친구와 함께 특정한(?) 양을 찾으러 떠나기로 한다. 근데 이 여정이 최소 1달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보이자 기르던 고양이를 위에서 언급한 신원 미상의 남자에게 맡기기로 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에서는 ‘나‘가 고양이를 부르는 별도의 이름이 그동안 없었음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 뭔가 철학적으로 느껴졌다. 독자인 나의 철학적인 지식이 부족한 관계로 이 말이 어떤 철학자와 관련이 있는지까지는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만드는 문장임은 분명해보인다.

근데 글을 쓰다보니 문득 ‘데카르트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뭐 이런 말 있지 않나? 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
.
.
.
뒤이어서는 ‘나‘와 신원 미상의 남자 밑에서 일하는 어느 운전사와의 다소 추상적인(?) 대화가 오가는데, 어떤 사물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가는 듯한 모습이 나름대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름이 뭐죠?"
"이름은 없어요."
"그럼 뭐라고 부르지요?"
"부르지 않아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에요." - P272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데 이름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은데요?"
"정어리도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지만, 아무도 이름 같은 건 붙이지 않아요."
"하지만 정어리와 인간 사이에는 우선 마음의 교류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데다 제 이름이 불린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야 뭐, 붙이는 건 자유겠지만." - P272

"다시 말해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인간과 마음을 교류할 수 있으며, 게다가 청각을 가진 동물만 이름이 붙여질 자격이 있다는 말이 되겠군요." - P272

"그렇다면 목적성이라는 것은 이름에 있어서는 양의적인 요소겠네요?"
"그렇습니다. 목적성만이라면 번호면 되지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당한 것처럼 말이지요." - P276

"하지만 말이죠, 만약에 이름의 근본이 생명의 의식 교류 작업에 있다면 왜 역이나 공원, 야구장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요? 생명체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중략)...
"호환성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예를 들어서 신주쿠 역은 하나밖에 없고 시부야 역과 바꿀 수는 없잖아요. 호환성이 없다는 점과 공장에서 생산되는 대량 생산물이 아니라는 점. 이 두 가지면 어떻습니까?" - P276

"그렇다면 그것은 물체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역할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뜻이 되겠군요. 그건 목적성이 아닌가요?" - P277

"가령 내가 의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어딘가에 꽉 고정되었다고 하면, 내게도 훌륭한 이름이 붙을까요?" - P278

"비행기 덕분에 열 시간 이상이나 시간이 절약되는 셈 아냐? 그만큼의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시간은 아무 데도 안 가. 가산될 뿐이지. 우리는 그 열 시간을 도쿄에서든 삿포로에서든 마음대로 쓸 수가 있는 거야. 열 시간이면 영화를 네 편 보고 식사를 두 번 할 수 있지. 안 그래?"
"영화도 보고 싶지 않고, 식사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건 그쪽 사정이지. 시간 탓은 아니야." - P281

"있잖아, 시간은 팽창해?"라고 그녀는 내게 물었다.
"아니, 시간은 팽창하지 않아"라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말했는데도 전혀 내 목소리 같지 않았다. 나는 헛기침을 한 다음 가져온 커피를 마셨다. "시간은 팽창하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 시간은 늘어나고 있잖아. 당신이 말했듯이 가산되고 있고."
"이동에 필요한 시간이 줄었다는 것뿐이야. 총 시간은 변하지 않아. 단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것뿐이란 말이야."
"영화를 보고 싶다면 말이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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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가 되어 알게 된 책이다. 개인적으로 몇 일 전 박성준 역술가 님의《운명을 보는 기술》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일단 앞부분만 살짝 읽어봤는데, 그 책과 이 책을 함께 읽어보면서 비교분석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시작해본다.

책 제목이 다소 도발적이다.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독자인 나는 아직 잘 모르지만, 그냥 직관적으로 ‘사주는 없다‘고 말하면 이쪽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아마도 노발대발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도 나름대로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해보고 내린 결론일 것이기에, 이번 독서를 통해 양측이 주장하는 논거들을 비교해보면서 어느 쪽의 얘기가 더 그럴싸한지를 판단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듯하다.

그럼 이제부터 역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한 번 들어가보겠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하나 마나 한 말일 뿐이다. 운명도 그런 것 아닐까? 하나 마나 한 말 같은 것. - P6

무속인은 신내림을 받아서 신에게 의지하지만, 역술인은 공부를 해서 사주를 풀이한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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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은 소설 속 등장인물인 ‘나‘와 바를 운영하는 ‘J‘와의 대화인데 뭔가 표현이 신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의 핵심은 ‘껍데기가 바뀌어도 본질은 똑같다‘라는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또한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 성향에 따라서는 변화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무작정 변화를 거부하면서 기존의 관점이나 가치관 등을 고수하려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소설 속 ‘나‘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변화의 파도를 거스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빠르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바람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서 소설 속 ‘나‘와는 반대로 생각하여 불평이나 불만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버린다면 1차적으로는 그 당사자의 마음이 타들어가기 시작할 것이고 2차적으로는 그 주변인들의 마음까지도 부정적인 에너지에 점령당할 것이다.

문득 이런 문장이 생각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어때, 가게가 달라져서 어수선하지?"
"그렇지 않아"라고 나는 말했다. "혼돈이 그 모양을 바꾸었을 뿐이지. 기린과 곰이 모자를 맞바꾸고, 곰과 얼룩말이 목도리를 서로 바꾼 거야." - P159

"시대가 바뀐 거지"라고 나는 말했다. "시대가 바뀌면 여러가지가 바뀌는 법이지. 하지만 결국은 그걸로 된 거야. 모든게 뒤바뀌는 거니까.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없지." - P160

이곳에서는 이미 새로운 규칙이 세워져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멈출 수는 없다. - P166

"이제는 모두 다 끝나버린 게 아닐까? 혹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 P170

"5년이나 지나면 모든 일들은 완전히 변해버리게 마련이지." - P171

내게는 알 수 없는 일이 무수히 많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현명해지는 건 아닌가 보다. - P173

"성격은 조금씩 변하지만 평범함이라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라고 어떤 러시아 작가가 쓴 말이 생각났다. 러시아인은 가끔 아주 재치 있는 말을 한다. 겨울 동안에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 P173

세계는 나와는 관계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나와는 관계없이 길을 건너고, 연필을 깎고,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서 1분에 50미터 나아가는 속도로 이동하고, 갈고닦은 제로의 음악을 커피 라운지에 흩뿌리고 있는 것이다. - P176

세계ㅡ이 말은 언제나 내게 코끼리와 거북이가 필사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원반을 생각나게 했다. 코끼리는 거북이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북이는 코끼리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어느 쪽도 세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P176

작은, 정말로 작은 데서부터 사람은 나이를 먹어간다. 그리고 지울 수없는 얼룩처럼, 그것은 조금씩 온몸을 뒤덮어간다. - P177

"어떤 한정된 시간에 기다리는 일에만 집중하면, 이제 나머지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고 말아. 그것이 5년이든 10년이든 한 달이든 마찬가지지." - P178

비현실적인 것이란 그리 오래가진 않지. - P179

"보드카에 그레이프프루트를 탄 것을 뭐라고 하지?"
"솔티 도그." - P180

나는 두 잔째 위스키를 제일 좋아한다. 첫 잔의 위스키로 한숨 돌린 기분이 되고, 두 잔째의 위스키로 머리가 정상이 된다. 석 잔째부터는 맛 따위는 없다. 그저 위 속에 들이부을 뿐이다. - P182

"그러나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 정직과 진실의 관계는 선두船頭와 선미船尾의 관계와 비슷해. 먼저 정직함이 나타나고, 마지막에 진실이 나타나는 거야. 그 시간적인 차이는 배의 규모에 정비례하지. 거대한 사물의 진실은 드러나기 어려운 법이야. 우리가 생애를 마친 다음에야 겨우 나타나는 것도 있지. 그러니까 만약에 내가 당신에게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책임도 당신의 책임도 아니야." - P190

"우리는 재력이 부족한 한 마리 늑대니까요." - P191

"인간을 대충 두 가지로 나누면 현실적으로 평범한 그룹과 비현실적으로 평범한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당신은 분명히 후자에 속하지. 이건 기억해두는 게 좋을걸. 당신이 걸어온 운명은 비현실적인 평범함이 걸어온 운명이기도 하니까." - P194

뻐꾸기는 저녁땐 울지 않는다. - P196

"세계는 평범하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그렇다면 세계는 처음부터 평범했는가? 그렇지 않아. 세계의 원초는 혼돈이고, 혼돈은 평범이 아니야. 평범해지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생활과 생산 수단을 분화시키고 나서부터지.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를 설정함으로써 그 평범함을 고정시켰어. 그래서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시즘에 직결되는 거지. 마르크스를 긍정해. 그는 원초의 혼돈을 기억하고 있는 흔치않은 천재 중의 한 사람이니까. 나는 똑같은 의미에서 도스토옙스키도 긍정하고 있어. 그러나 나는 마르크시즘을 인정하지 않아. 그건 너무나 평범하거든." - P204

앞으로 나아가는 부분이 ‘의지 부분‘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부분이 ‘수익 부분‘이야. - P214

"의지는 분열될 수 없어. 100퍼센트 계승되거나 100퍼센트 소멸되는 것 둘 중 하나일 뿐이지." - P215

"‘의지‘란 뭐지요?"라고 나는 물어보았다.
"공간을 제어하고, 시간을 제어하고, 가능성을 제어하는 관념이지." - P215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자기인식의 부정이야. 거기에서 비로소 완전한 혁명이 실현되는 거지. 당신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노동이 자본을 포함하고 자본이 노동을 포함하는 혁명이야."
"환상처럼 들리는데요."
"그 반대지. 인식이야말로 환상이야." - P215

"내 설명은 나와 그 의지 사이의 관련을 또 다른 언어적인 관련으로 나타낸 것일뿐이야. 인식의 부정은 또한 언어의 부정과도 관련 있는 거야. 개인의 인식과 진화적 연속성이라는 서구 휴머니즘의 두 기둥이 그 의미를 잃을 때, 언어도 역시 그 의미를 잃는 거지. 존재는 개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혼돈으로서 있어. 당신이라는 존재는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저 혼돈일 뿐이야. 나의 혼돈은 당신의 혼돈이기도 하고, 당신의 혼돈은 나의 혼돈이기도 하지. 존재가 커뮤니케이션이고, 커뮤니케이션이 존재인거야." - P216

"개개의 질량은 변함없는데 의식만 확대되어 가면 그 궁극에 있는 것은 절망뿐인 거야. 내가 말하는 평범함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지." - P216

"평범함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며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 P222

"볼을 잡은 이상 골대까지 달리는 수밖에 없겠지. 설사 골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 P222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막연하게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만약 우주인이 내게 "이봐, 적도는 시속 몇 킬로미터로 회전하고 있지?"라고 묻는다면, 나는 몹시 난처해할 것이다. 아마 나는 화요일 다음에 왜 수요일이 오는지조차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고 비웃을까? - P225

"하지만 밝아오지 않는 밤이 없는 것처럼, 끝나지 않는 교통 체증도 없지요." - P227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초조해진다는 건 스스로 패배하는 거거든요." - P227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매일 밤 전화를 걸고 있는걸요." - P227

"하지만 모두가 하나님께 전화를 건다면, 회선이 너무 복잡해서 항상 통화 중이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오후에 전화번호를 문의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동시적인 존재거든요. 그러니까 한꺼번에 백만 명이 전화를 건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백만 명과 동시에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 P228

"선생님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 고민하고 있는 일을 솔직하게만 말씀하시면 되는 겁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을 이야기하더라도, 하나님은 따분해하시거나 경멸하시거나 하는 법이 없거든요." - P230

"어쨌든 움직이라고. 당신은 시간을 너무 허비하는군. 자신이 처한 입장을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을 그런 입장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당신 자신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 P236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설사 허사로 끝난다 하더라도 양을 찾아다니는 편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거나 협박을 당하거나 휘둘리고 싶지 않아." - P242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명령을 받거나 협박을 당하거나 휘둘리면서 살고 있어. 그리고 찾아야 할 것조차도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 P242

모든 것에는 철학이 있고, 운명이 있다. - P247

"누구나 잃고 싶지 않은 게 한두 개는 있는 법이지. 당신에게도 말이야" - P250

"인간에게는 욕망과 프라이드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이 반드시 있는 법이지. 모든 물체에 무게중심이 있듯이 말이야. 우리는 그것을 찾아낼 수 있지. 두고 보면 당신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 P250

세상에는 그런 타입의 돈이 존재한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고, 쓰고 나면 비참한 기분이 되고, 다 써버렸을 때에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자기혐오에 빠지면 돈을 쓰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땐 돈이 없다. 구원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 P252

"그렇지.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닮은꼴이지. 다른 점은 그는 자신의 의지로 도망쳤고, 나는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해 내동댕이쳐졌다는 거지." - P254

"이상한 말 같지만, 도저히 지금이 지금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내가 나라는 것도 어쩐지 딱 와닿지 않아. 그리고 여기가 여기라는 것도 말이야. 언제나 그래. 훨씬 뒤에 가서야 겨우 그게 연결되는 거야. 지난 10년 동안 줄곧 그랬어."
"왜 하필이면 10년이지?"
"끝이 없기 때문이지. 그뿐이야." - P255

"아주 길었던 것 같은 느낌이야. 아주 길었고,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어." - P257

"내 친구 왓슨의 생각은 한정된 좁은 범위의 것이기는 하지만 매우 집요한 데가 있다" - P258

"너와 함께였기 때문에 해올 수 있었던 거야"라고 그는 말했다. "이제까지 혼자 뭔가를 해서 제대로 된 적이 없다고." - P265

"약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네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장이야. 세상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면 아이 따위는 만들지 말았어야지.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일을 하고 술 같은 건 마시지 말아야지." - P266

그러나 내가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도, 그도 알고 있었다. 6년이나 함께 일을 해보면 그만한 것은 알게 되는 법이다. - P267

예순이 되었을 때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허사였다. 한 달 후의 일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 P267

"메시지는 만물 속에 이미 있습니다. 꽃에도 돌에도 구름에도......." - P270

"누가 만들었든 신의 의지라는 것은 만물 속에 깃들어 있지요."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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