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한강 작가님의 책을 지난 달부터 몇 권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 소설《채식주의자》는 지난 달에 완독을 했고, 《여수의 사랑》, 《작별하지 않는다》는 첫 부분만 조금 읽다가 한동안 읽지 못해 손놓고 있다. 그리고《희랍어 시간》은 약 1/3정도 읽다가 잠시 쉬고 있는 상태다.

위에 적어놓은 작품들은 작가님이 쓴 수많은 작품들 중 일부이긴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사이에서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꿈‘이라는 것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핵심 소재가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에 읽었던《채식주의자》에서도 어떤 꿈에서 본 이미지를 바탕으로 뒤에 나올 이야기들의 분위기를 어느정도 유추해볼 수 있었는데, 오는 읽기 시작한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도 꿈에서 본 이미지가 하나 등장한다. 물론 작가가 쓴 작품마다 꿈에서 본 이미지들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꿈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것이 허용되는 공간을 바탕으로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하는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시도가 독자인 나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꿈 속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통해 이야기가 어디로든 흘러갈 수있는 자유가 있다는 점이 좋게 느껴졌다. 향후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유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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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다가 중간에 정확한 제목을 알 수 없는 어떤 책의 내용이 일부 인용된다. 인용된 내용을 보면 별의 탄생에 관한 것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개인적으로 예전에 읽었던 칼 세이건의《코스모스》가 생각났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그 책을 읽어내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완독을 하고나서 오늘처럼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접하다보니 별에 관한 일말의 지식도 없을 때보다는 확실히 낯선 감이 덜하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된다. 이를 통해 비록 사소할지라도 배경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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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플랑크의 시간‘ 이라는 양자역학과 관련된 개념이 하나 소개되는데, 여기에 뒤어어지는 내용에서 개인적으로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동 저자의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에서 만났던 ‘마크 로스코‘라는 화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저자의 작품에서 이 화가의 이름이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저자의 생일과 마크 로스코의 사망일이 약 9개월 가량 차이나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이게 무슨 상관인가 할 수도 있겠으나, 저자는 마크 로스코가 죽는 시점에 자기 자신이 부모의 씨로부터 이세상에 잉태되었다는 것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듯 보인다. 지구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생명이 사라짐과 동시에 또다른 생명이 생겨나는 것이기에 어떤 생명의 영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저자의 작품이 위에서 언급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였는데, 거기서 어느정도 예습이 되어서인지 오늘 이 소설을 읽을 때는 그때보다는 좀 더 익숙한 것들이 많아진 듯하다. 저자만이 가진 감성과 어떤 느낌들을 시집을 통해 살짝 맛봤다면 이 소설을 통해 저자만이 가진 감성과 느낌들을 좀 더 깊이있게 경험하는 것 같다.

문득 간밤의 꿈이 떠올랐다. 꿈의 다른 정황은 흐릿해 잡히지 않고, 하얗고 목이 긴 새 한 마리가 마른 땅 위에 서 있던 것만 떠올랐다. 새가 우는 동안 새의 머리에서부터 흰 빛이 빠져나갔다. 내 눈앞에서 새의 목 아래까지 투명해졌다. 흰 날갯죽지로 덮인 몸뚱이 아랫부분과 가늘고 긴 두 개의 다리만 남았다. 이제 더 노래하면 완전히 투명해지겠구나, 생각하다 눈을 뜨자 깊은 밤이었다. - P7

후회하지 않을 거다. - P8

나는 탁자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미소 짓고 있었지만, 나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리잔을 들어 그의 얼굴에 차가운 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유리잔을 깨고 예리한 사금파리로 그의 목을 겨눌 수 있었다. - P14

인주는 언제나 자신의 그림 귀퉁이에 굵은 8B 연필로 구슬 주(珠) 자를 썼어요. 그 먹그림에 서명이 없는 건, 그걸 그린 사람이 그런 행위를 싫어했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완성해놓고도, 그게 자기가 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믿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 P15

태연한 거짓말들을 키보드에 두드려갔을, 지금 담배를 집고 있는 그의 축축하고 말랑말랑한 손가락들을 차례로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나는 말했다. - P15

기다리는 답신은 오지 않았다. 내가 보낸 메일의 수신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메일을 보낸 뒤 사흘 동안 나는 수없이 컴퓨터를 켰다 껐고, 그때마다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함께 켜졌다가 캄캄해졌다. - P16

내가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침묵할 수 있는 공간과 약간의 돈을 갖기 위해서다. - P17

모든 별은 태어나서 존재하다가 죽는다. 그것이 별의 생리이자 운명이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은 별로부터 왔다. 별들과 같은 생리와 운명을 배고 태어난 인간은 별들과 마찬가지로 존재하다가 죽는다. - P17

별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우리 은하와 같은 나선은하들의 원반에는 젊은 별들과 밝은 구름 덩어리들이 실들에 꿰어져 돌고 있는 듯한 모습의 나선팔들이 있다. 이 나선팔들에서 지금도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있다. - P17

이미 태어난 뜨거운 별에서 나오는 강한 빛이 주위의 물질을 밀어붙인다. 늙은 별이 터지며 나온 충격파가 주위에 있던 성간구름을 수축시킨다. 자극받은 성간구름은 계속 수축한다. 이 수축된 성간구름이 별이 되기 위해서는 구름의 질량이 일정한 값보다 커야 한다. 이것이 중력수축에 필요한 ‘진스의 임계질량‘이다. 구름의 질량이 임계질량을 넘어서는 순간 별의 일생이 시작된다. - P18

초신성이 폭발하면, 그 은하를 구성하는 10억 개의 별들의밝기를 합한 것만큼의 빛이 수일 동안 방출된다. 지구가 속한 은하에서 초신성이 폭발했던 15세기의 기록들은 밤마다 그 빛으로 책을 읽올 수 있을 정도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 P18

흰 점 같은 별들 위로 거대하고 둥글게 퍼져나가는 불꽃을 나는 들여다본다. 붉으면서 푸르고, 희면서 검다. 죽음이면서 시작이다. 늙은 별이 폭발한 바로 그 에너지로, 희부연 성간구름들 속에서 새 별이 태어난다. - P18

나를 놓고 싶지 않다. 지금은 나를 놓아서는 안 된다. - P17

......인간에게는 느껴지지 않지만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멈추지 않는 팽이처럼 돈다. 적도 위에 있는 사람은 초속 460미터로 지축 둘레를 회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와 동시에 지구는 한 해에 한 바퀴씩, 초속 3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인간이 만든 어떤 로켓보다 빠르게 지구는 우주 공간을 날아가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천체들은 이와 같은 숙명적인 반복운동을 하고 있다. - P19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 태양 역시 우리 은하의 중심을 축으로 공전한다. 태양의 공전 속도는 초속 250킬로미터다. 우리 은하에는 별들이 1천억 개쯤 있는데, 원반에 있는 별들은 모두 태양과 비슷한 속력으로, 같은 시계 방향으로 공전한다.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8천 파섹 떨어진 거리에 있으니, 약 2억 년 뒤에 우리 은하를 한 바퀴 돌고 현재의 자리로 되돌아올 것이다. - P19

12킬로미터 높이의 대류권과 그 너머의 성층권, 열권을 합한다 해도 대기권의 높이는 고작 450킬로미터,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에 불과하다. - P20

나에게 중요한 건 그리는 순간이니까. 그게 전부니까. - P28

이해하기 위해 나는 거기 서 있었다. 무언가를 이해하려 할 때 나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그 대상을 보고, 들여다보고, 또 본다. 대체 이것들은 뭘 의미하는 건가. 이 작업들에 바쳐진 인주의 일 년은. 마지막이 되어버린 일 년은. - P30

이 그림들의 사진을 보여주면, 홀치기염일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판화가 아니냐고 묻기도 하고, 물방울의 입자를 찍어서 한지에 감광액을 발라 인화한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P31

소금이나 세제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럼 어떻게?
먹과 물만으로 가능해요.
먹이 마르기 전에 물을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먹이 번져가게 하는거란 말입니까? 세제나 소금, 아교를 쓰지 않으면 불가능할 텐데요.
아니요. 먹과 물의 농도가 다르니까, 삼투압의 원리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면...... 이만큼, 이 손바닥만큼 번져나가는 데 열흘이 걸려요. 그러니까 저만한 크기의 그림이 완성되려면 두 달에서 석 달쯤 걸렸을 거예요.
전문가들의 생각과 다르군요.
식물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한 거라고 했어요. - P32

그것들은 추측이고 상상일 뿐이지 증거가 되지 않아요. - P33

그 사람의 방식으로 이해한 거였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 P33

.....당신에게, 그걸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 P33

책을 쓴 건, 그게 나에게 남겨진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서 쓴거라고 할 수도 있어요. 내가 설령 그 여자의 삶을 왜곡한다 해서, 그 여자가 살았던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관없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 P34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냉정하게 생각하기 위해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 P35

그는 매우 논쟁적인 사람임이 분명했다. 긴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았고, 공격적이면서도 침착했고, 확신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가 평생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무기이자 연장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세 치의 혀와 능란한 글. - P36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는 인주를 사랑하고 있었다.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도. - P36

안 됩니다.
그는 갑자기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그 순간 나 역시 그를 이해했다. 그의 고통을. 숨겨진 집착을. 더이상의 요구는 불필요했다. 나는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나가지요. - P37

모든 도시들, 국경선과 흙과 바다, 숲과 골목과 시궁창, 무덤과 개들, 나무들, 연인들, 감옥, 전쟁터, 교실과 극장, 장례행렬, 덜컹거리는 지하철, 고함치는 노천 시장 들은 450킬로미터의 대기권 안쪽에 있다. 더러 융기하고 더러 가라앉은 지각 위에 넓거나 좁은 무수한 도로들 틈에, 450킬로미터의 납작한 두께 안에 삶이 펼쳐져 있다. - P38

납작함 속에서 치열하게, 납작함 속에서 안이하게, 납작함 속에서 웃고 말하고 병들고 춤춘다. 납작한 세계의 안쪽을 땀 흘리며 껴안는다. 죽음의 순간까지, 아니, 죽음 뒤에도 육체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다만 시선과 생각들, 의식들만이 이상한 생명처럼, 혼령처럼 성운 사이의 텅빈 어둠 속을 헤엄쳐 다닌다. - P39

이제는 아니지・・・・・・보이저호가 있으니까.
1978년 우주 공간으로 진수된 보이저호가 해마다 보내온 사진들이 신문들과 과학잡지에 컬러 화보로 실리면, 삼촌은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오려 작업실 책상 앞에 붙여놓곤 했다. 그는 호들갑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깊은 감동이나 충격을 받은 일은 오히려 되도록 말하지 않았다. - P39

앞으로 오십 년 안에 보이저호는 태양계를 벗어날 거야. 그때부턴 별들 사이의 무한하고 텅 빈 공간 속으로 끝없이 나아가겠지. ・・・・・・그렇게 은하의 중심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올 때쯤이면, 지구에선 수억년이 흘러 있겠지. - P39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글을 시작할때만은 종이에 쓰는 것이 희곡을 쓰던 때의 버릇이었다. - P40

소박하게 살면 빠듯이 살아질 만큼의 수입이란, 불필요한 욕망을 일깨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안한 것이었다. - P40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다. 백지 앞에 앉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공포를. 쓰레기 위에 덮인 눈 같은 생활의 고요가 물기와 썩은 고깃점들에 뒤범벅이 되는 순간의 예감을.
그러나 지금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팔 년 만에, 백지 위에 무엇인가를 쓰려고 한다. - P40

어떻게든, 강석원의 글과는 전혀 다른 것을. 전혀 다른 사실들을. 분명한 건 하나뿐이다. 내 말들은 그의 말처럼 매끄럽지 않을 것이다. 견고하지 않을 것이다. 일사불란하지 않을 것이다. - P41

나는 더듬을지도 모른다.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내 말들로 그의 말에 부딪칠 거다. 부서질 거다. 부술 거다. 조각조각 부수고 부서질거다. - P41

생명이 타들어간다고 느낄 때 물을 마시게 되는 것은 물이 생명이기 때문일까. 몸의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 P41

내일 인주의 방으로 갈 것이다. 열쇠 수리공을 불러 새로 열쇠를 맞춰서라도 들어갈 것이다. 삼촌의 그림을, 아니, 인주의 그림을 볼 것이다. 이해하려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않으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 P42

지금은 여기서, 아직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원히 연장되는 시간을, 정적을 견뎌야 한다. - P42

고대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젊은 신 마르두크는 모든 신들의 어머니 티아마트ㅡ혼돈ㅡ를 죽인 뒤 그 몸통을 반으로 갈라 하늘과 대지를 만들고 머리로 산과 강을 만든다. - P43

몽고의 신 오치르바니는 태초의 바다에 사는 뱀ㅡ혼돈ㅡ로순을 잡아 우주의 중심인 수메르 산에 세바퀴 감고 머리를 부숴버렸다고 전해진다. - P44

중국의 반고 신화에서는 오랜 세월 잠자던 거인 반고가 태어나면서 자신이 태어난 근원인 알을 깨뜨리는데, 맑은 기운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탁한 것은 가라앉아 땅이 된다. 후대로 내려와 장자에 이르면 혼돈은 숙과 홀이 뚫어준 일곱 개의 구멍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 P44

붉은빛의 불덩어리 새든, 태초의 바다에 사는 뱀이든, 근원의 알이든 혼돈은 죽는다. 머리가 부서지고, 깨뜨려지고, 구멍이 뚫려 죽는다. 그 죽은 몸에서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초목과 짐승들이 태어난다. - P44

우주의 시작은 양자역학적인 물리량이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앞뒤를 따질 수 있는 고전적인 시공간은 태초 이전에는 무의미하다. 고전적인 우주가 태어나기 전까지 우주의 에너지는 0이지만, 시공간은 양자역학적 혼돈 상태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그러던 어느 확률적 순간, 에너지의 벽을 뚫은 시공간이 팽창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고전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적용된다. 오랜 혼돈이 갈라지고 천지가 창조되는 짧은 시간, 우주는 급팽창하고 물질이 생성된다. 놀랍도록 신화에 가깝게, 플랑크의 시간이라고 불리는 10^‐43초, 그 찰나의 찰나에. - P44

나는 잠자코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의 가운데가 분할되었고, 서로 다른 색채의 커다란 사각형 두 개가 바탕색을 향해 번지며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색채가 번지게 하기 위해서, 붓 대신 스펀지를 쓰기도 했다고 해. - P45

색채들의 충돌이 인간의 내부에서 스며나오는 감정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시작도 끝도 없던 혼돈이 방금 갈라져 피 흘리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그토록 단순한 구도의 비구상 화면에서 극적으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 P45

큰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친밀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이 사람은 말했어. 작은 그림을 그린다는 건, 스스로를 경험 밖에 두고 거기서 그 경험을 환등기나 축소경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했지.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면, 자기가 그 안에 들어가 있어서 어떤 것도 한눈에 볼수 없게 된다고 했어. - P46

도록을 넘겨갈수록 로스코의 색채들은 어두워졌다. 말년의 그림들은 짙은 푸른빛과 검정, 회색, 진한 갈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할된 화면들은 어두운 정신과 더 극단적으로 어두운 정신의 끈질긴 대비처럼 보였다. 그 사이사이로, 불안할 만큼 밝고 생경한 색채의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 P46

얼핏, 그의 죽음을 즈음해 형성되고 있었을 내 첫 세포를 생각했다. 어머니조차 모르는 사이 연붉은 자궁안에 막 한 점으로 맺혔을 그것을. 바로 그 무렵, 북반구의 2월 하순,
차가운 흙 속에서 아직 썩지 않았을 그의 손을.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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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내용이 나왔었는데, 오늘은 이에 관한 얘기가 추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지난 포스팅에서도 잠시 언급했었지만, 진짜 참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사피엔스》,《호모데우스》등 이 책 이전에 나온 저자의 책들을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 이《넥서스》를 통해 저자의 글을 처음 접해보게 되었는데, 왜 유발 하라리의 책이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선택받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설득력 있는 논리,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이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점을 선거가 아니라 대화에 맞추면 수많은 흥미로운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런 대화가 어디서 이루어지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 P210

북한의 경우는 평양에 있는 만수대 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687명이 모여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최고인민회의는 북한의 공식 입법기관으로 알려져 있고 5년마다 대의원 선거가 치러지지만, 실질적인 권한 없이 다른 어딘가에서 내려진 결정을 승인하는 거수기 역할만 한다. 형식적인 대화는 그저 정해진 각본에 따라 진행될 뿐, 어떤 사안에 대한 누군가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다. - P211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없을 때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들을 수 없을 때도 죽는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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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책 소개를 대략 살펴보니, 어떤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얘기들을 저자만의 논리에 맞춰 풀어나가려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시간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느라 낭비하고 있는 역설 - P-1

볼테르가 오래전에 말했듯이 착각은 모든 기쁨 가운데 최고의 기쁨이 아니던가. - P-1

그 실수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실수였다는 것이다. - P-1

유혹을 뿌리치기는 매우 어렵다. 모든 유혹을 뿌리치기는 훨씬 더 어렵다. - P-1

마감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내야 할 돈을 제때 내지 못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 P-1

같은 시각에 약속을 이중으로 잡는 것은 부도 수표를 쓰는 것과 같다. - P-1

우리는 대개 시간 관리와 돈 관리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P-1

시간을 잘못 관리하면 당혹스러운 일을 마주하거나 목표한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된다. - P-1

우리는 이 책에서 결핍scarcity을 무언가를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적게 가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겠다. - P-1

결핍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의 어떤 공통적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 P-1

본인들이 결핍을 연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굶주림을 연구했다. 하지만 굶주림은 결핍의 궁극적인 형태가 아닌가! - P-1

거의 집착하다시피 음식을 생각하는 이런 행위는 오히려 배고픔의 고통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 P-1

배고픔이 그들의 관심과 생각을 사로잡은 것이다. - P-1

결핍은 정신을 사로잡는다. 배고픈 사람들이 오로지 음식만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결핍을 경험할 때마다 그 결핍에 흡수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때 정신은 충족되지 않은 필요를 자동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추구한다. - P-1

결핍은 어떤 것을 매우 적게 가질 때의 불쾌함 그 이상이다. 결핍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결핍은 사람의 정신을 그 자신의 무게로 무겁게 짓누른다. - P-1

개인의 정신에서 현재 가장 위에 놓여 있는 개념이 무엇인지 파악 - P-1

어떤 개념이 우리의 생각을 차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개념과 관련된 단어들을 보다 빠르게 포착한다. ...(중략)... 특이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들이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지 추론할 수 있다는 말이다. - P-1

피실험자들이 보이는 반응의 속도와 정확성을 보면 결핍이 배고픈 사람들의 정신을 어느 정도로 사로잡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P-1

의식적인 차원을 넘어서 잠재의식적인 차원에서 반응이 일어나게 할 정도로 빠른 인지과정을 관찰하기 위함 - P-1

복잡한 고차원의 계산은 0.3초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보다 더 빠른 반응은 보다 자동적인 잠재의식적 과정에 의존한다. - P-1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하겠다고 선택을 하는 것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 P-1

우리는 결핍이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묘사할 때 ‘사로잡는다captur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P-1

결핍은 항상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결핍은 정신의 주인이 원하든 말든 인식 대상을 빠르게 포착한다. - P-1

목마름이나 배고픔은 모두 육체와 관련된 갈망이지만, 육체적인 갈망과 관련성이 적은 다른 결핍들 역시 정신을 사로잡는다. - P-1

주의력이 사로잡히면 경험도 변용된다. - P-1

짧지만 고도로 (초점이) 집중된 사건들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주의 집중력이 급격하게 증가해서, 연구자들이 ‘주관적인 시간 확장subjective expansion of time‘ 이라고 이름 붙인 어떤 느낌이 촉발된다. 주의력이 그만큼 많이 집중됨에 따라 그 사건이 실제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처리되는 정보의 양이 평소보다 더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 P-1

주의를 사로잡은 결핍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 혹은 그 대상의 속도를 인식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 P-1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정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상기하게 된다 - P-1

브래들리는 사회적으로 배가 고픈 사람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관계의 요리책을 뒤적이는 것이다. - P-1

물리적인 결핍은 도처에 널려있지만 결핍을 느끼는 감정(결핍감)은 그렇지 않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다. - P-1

어떤 경우에는 결핍, 즉 시간의 유한성을 예리하게 인식하는 반면, 다른 경우에는 설령 그런 결핍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것을 거리가 먼 실체처럼 느낀다. 결핍감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실체와 전혀 별개이다. - P-1

문제가 되는 어떤 것을 인지하는 우리의 주관적 인식subjective perception역시 결핍감을 초래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느끼는 이런 욕망들은 개인이 속한 문화와 그의 성장 과정, 그리고 심지어 유전적 특질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 P-1

사람이 무언가를 마음 깊이 갈망한다면, 이는 그 사람의 생리적인 욕망 때문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1

사람이 느끼는 추위의 정도가 그 사람이 놓인 환경의 절대적인 온도뿐 아니라 그의 신진대사에 따라서도 좌우되는 것처럼, 결핍감 역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 P-1

부족하게 가진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또 이는 가령 건강이나 안전 혹은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결핍은 불만과 투쟁으로 이어진다. - P-1

결핍은 단지 물리적인 제한만은 아니다. 결핍은 일종의 정신적 경향, 즉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결핍이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바뀐다. 그 변화가 수십 분의 1초이든 몇 시간이든 혹은 며칠이나 몇 주에 걸쳐서 지속되든 간에 말이다. - P-1

결핍은 우리 정신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깨닫는 데에, 우리가 여러가지 대안을 놓고 저울질을 하는 데에, 우리가 깊이 고민하다 마침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에, 그리고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핍을 느끼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결핍을 느끼지 못할 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에게 닥친 문제들을 처리한다. - P-1

결핍이 정신을 사로잡으면 사람은 보다 더 엄격해지고 능률적이 된다. - P-1

정신을 단단히 집중하고 있을 땐 부주의한 실수는 잘 저지르지 않는다. 그래서 요컨대, 결핍이 사람의 정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유는 결핍이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라고 정리할 수 있다. - P-1

우리는 결핍에 이미 지배되어 있고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결핍으로 회귀하기에, 인생의 나머지 일들에 배분할 정신의 여유가 없어진다. - P-1

빈곤은 하룻밤을 꼬박 새우는 것 이상으로 사람의 인지능력을 떨어뜨린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원래 대역폭이 좁았던 것은 아니다. 빈곤이라는 경험은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 사람의 대역폭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 P-1

온갖 형태의 모든 결핍은 대역폭의 축소라는 동일한 현상으로 이어진다. 대역폭은 행동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것이 좁아지면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된다. - P-1

결핍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을 만든다. - P-1

결핍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논리는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적으로 작동한다. - P-1

결핍의 사고방식은 결핍의 내용에 따라 더욱 중요하게 작동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P-1

결핍의 논리는 여러 영역을 관통하기 때문에 비슷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각각의 결핍이 미치는 영향은 서로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 P-1

우리가 이 책에서 하는 주장은 매우 단순하다. 결핍이 사람의 주의를 사로잡는다는 것, 그리고 결핍이 주는 이익, 즉 절박한 필요를 보다 잘 통제한다는 이익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 P-1

그런데 넓게 보면 우리가 치러야 하는 결핍의 대가는 매우 크다. 당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일들을 무시하게 되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훨씬 비효율적인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 P-1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주제로 삼아 연구할 때 누릴 수 있는 이점 중 하나는 그 연구 대상이 전문가와 비전문가에게 동일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 P-1

캘빈 : 창의성은 수도꼭지를 튼다고 그냥 나오는 게 아니야. 느낌이 있어야 나오지.

홉스 : 어떤 느낌?

캘빈 : 막판에 몰려서 돌아 버릴 것 같은 느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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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의 소제목은 <관계에도 ‘신선도‘가 있다> 이다. 여기서는 상대방이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선을 넘는 행동을 했을 때 적절한 대응방식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본문을 통해 보다 더 명확하게 구체화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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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나오는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으면서 저자가 삶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느꼈거나 깨달았던 것들을 이것저것 만나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내 스스로를 점검해보거나 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불쾌하다고 표현해도 상대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건 이미 상한 관계이니 빠르게 손절해라. - P82

그 행동이 나를 서운하게 하고 불쾌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상대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상대는 더 이상 나의 기분을 신경쓰지 않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해 버린 관계가 맞다. - P82

지금 상대가 하는 행동이 가장 낮은 레벨이라는 걸 잊지 말자. 우유는 상하고 나면 그 이후에 썩을 일만 남았다. - P82

한결같이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은 예의라는 선을 긋고 넘어오지 않는다. 소중한 관계가 상하지 않도록 항상 관리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곁에 두면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나에게 상처 주는 일 따위를 애초부터 만들지 않는다. - P83

나부터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그런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엄격한 기준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예의라는 선을 넘지 않으며 유유상종하기 때문이다. - P83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무례한 사람들뿐이라면 나부터 문제가 있지 않은지 체크해 봐야한다. - P83

오롯이 홀로 일어설 힘이 생기면 더 이상 관계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고 상대의 무례한 행동을 보며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된다. - P84

외로움에 허기져 상한 우유라도 벌컥벌컥 들이켜는 미련한 사람과 이미 배가 부른 상태로 우유가 상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가차 없이 하수구로 흘려버릴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의 차이는 여유로운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 P85

자기 자신과 친해지면 나라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감정인지 정확하게 캐치하고 보살펴 줄 수 있다. 이렇게 자신과 친한 사람들은 가스라이팅을 당할 일도 없다. 내 말에 제일 먼저 귀 기울여 주니 타인의 말장난 따위로 자신을 의심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 P85

마음이 울적할 때 카톡 리스트를 뒤져 보며 누구에게 연락할까 고민할 시간에 혼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가거나,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 보거나, 혼자 맛집에 찾아가 혼밥도 해 본다. 이런 오붓한 데이트는 자신과 대화를 나눠 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 P86

나 자신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쌓다 보면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되고 혼자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 - P86

결국 나 자신부터 건강하고 독립된 존재가 되어야 - P87

사람들이 지닌 가벼움과 묵직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은 마음 중심추의 무게 차이였다. 마음 중심추가 무거운 사람이 있고 마음 중심추가 가벼운 사람이 있는데 이건 사회적인 위치나 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역이었다. - P89

유난히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들을 상황에 따라 번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말의 무게나 사람 간의 약속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오직 지금 상황에서의 손익을 계산해서 그때그때 언행을 달리하며 얕은 수를 쓴다. 자신은 상황에 따라매사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장 발밑에 한 치 앞만 볼 줄 알고 전체적인 숲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 P90

이들(자신의 이득에 따라 언행을 번복하는 사람들)은 당장의 불편함이 싫고, 돈 몇 푼이 아쉬워 사람 간의 신뢰를 저버리는데 그 이후에 따라오는 엄청난 손실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의 주변에 진실된 사람이 없다고 토로하는데 본인이 먼저 주변인들에게 신뢰를 깨버렸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자신의 과오로 껍데기만 남은 인맥 속에 살며 끝까지 남 탓만 하는 안타까운 케이스다. - P90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행동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기에 타인의 눈에도 한없이 만만하고 가벼워 보일 수밖에 없다. - P91

언과 행의 불일치는 타인과의 약속에 앞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 - P92

마음의 중심추가 무거운 사람이 뱉는 말은 국새가 찍힌 공문서와 같다면 마음의 중심추가 가벼운 사람이 뱉는 말은 대충 휘갈겨 쓴 법적 효력이 없는 각서와도 같다. - P92

마음의 중심추를 무겁게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신뢰를 뒷받침할 수 있는 현명함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사사로운 손익에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인품을 쌓아야 한다. - P93

충분한 시간 동안 고심하고 현명하게 판단하여 간결하게 마무리 지은 언행을 번복하지 않으며 설사 시간이 지나서 그 결정이 틀렸다고 해도 그때 당시 내가 내렸던 판단을 존중하는 사람 - P93

여행은 단순한 여가 생활이 아닌 세상을 보는 시야와 나의 세계관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므로 나에게는 반드시 주기적으로 타 줘야 하는 놀이기구다. - P99

하고 싶으면 맞아서라도 했고 하기 싫으면 맞아서라도 안 했다. - P108

주관적인 아름다움으로 평가되는 정답 없는 예술은 우리의 삶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 P115

인생을 수치화하고 많이 가지고 누릴수록 아름다운 삶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삶에 대한 고찰을 거듭할수록 삶은 수치로만 평가할 수 있는 단순한 영역이 아니었다. - P115

금이라는 재료가 차고 넘쳐도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면 결코 ‘아름다운 삶‘이라는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116

삶은 인성, 습관, 취향, 라이프 스타일, 성취, 부, 사랑과 같은 복합적인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개개인의 독창적인 작품인데 여기서 고작 한두 가지가 결여되어 추한 형태로 변질돼 버린 삶도 있고, 대부분이 결여되어도 기어이 예술로 승화해 내는 삶도 있다. - P116

지독한 가난 속에서 나흘간 커피로만 끼니를 때우며 캔버스에 열정을 불태웠던 반 고흐, 연인이자 뮤즈였던 디에고의 배신에 대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프리다 칼로처럼 그들의 삶은 고통마저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 P116

결국 삶이라는 작품의 최종 가치는 주어진 재료보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역량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똥손에게 금이 주어지고, 금손에게 흙이 주어진다면, 그램 수로 가격을 책정하는 귀금속 상가에서는 똥손이 만든 금붙이를 더 높게 쳐줄 것이다. 그러나 예술성에 가치를 매기는 갤러리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 P117

나는 내팽개쳐 두었던 흙을 모아 손에 꼭 쥐어 보았다. 그 속에는 소란했던 기억들과 크고 작은 고통의 알갱이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 P117

흙은 초라하고 투박하지만 생명을 품는다. 이제이 흙을 재료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여 나만의 독창적이고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 P117

제가 추측하기엔 스트레스 과다로 인해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일시적으로 혈압이 높게 나왔을 것 같아요. - P124

취향은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인생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틀이었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창조하게 될 인생의 중요한 방향키였다. - P128

인간의 인생은 각자 여러 갈래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데 그 갈래에는 개인의 취향이 절대적으로 반영된다. - P129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를 획득해야만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하나, 나는 ‘부‘보다 얼마나 ‘건강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 P130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취향부터 바꾸어야 한다. 음지에 있는 취향을 양지로 끌어올려 건강한 방향으로 바꾸어야 하고, 거기서 좀 더 가치있고 우아한 취향까지 추구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춘다면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윤택해진다. 취향을 바꾸면 내가 머무르는 장소가 바뀌고 인간관계가 바뀌고 인생관이 바뀌고 직업이 바뀌고 건강까지 바꿀 수 있다. - P130

취향의 방향성을 체크할 때 가장 유용한 방법은 이번 달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는 거다. 소비내역은 개인의 취향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척도다. - P131

"각자의 다양한 세계를 글로 자유롭게 표현해 내는 게 시예요.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시는 서로 세계관이 맞지 않구나 생각하시면 돼요. 한번 시도해 보세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어요." - P139

"재밌는 걸 하고 살아요, 돈을 좇지 말고. 그러면 결국 성공해요." - P142

"이것저것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좋아하는 일이면 우선 시작해! 퀄리티가 좀 떨어져도 분명히 그에 맞는 독자층이 있어." - P144

"무조건 좋은 조건에서 시작해야 성공한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 - P144

"정체되어 있는 시기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영상을 올리다 보면 구독자가 다시 확 늘어나는 시기가 와. 항상 꾸준함이 중요해." - P144

"다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말고 계속해 나가면 돼." - P144

자신이 만들어 낸 약속을 한결같이 지켜 내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 P149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가지면 나를 둘러싼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기 시작한다. 내가 머무르는 공간, 내가 매일 쓰는 물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돌보는 반려동물. 이 모든 것들 또한 자신의 삶의 일부이니까 사랑을 담아 세심하게 보살피게 된다. - P150

자신의 가게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장만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내며 한결같은 맛을 유지할 수 있다. - P151

자신의 삶에 애정이 담긴다면 한결같이 꾸준해진다. - P151

살다 보면 나의 의지와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 P155

가끔은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거세게 흐르는 물살에 내가 가고자 했던 반대 방향으로 배가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럴 땐 손에 쥔 노를 내려놓고 물살이 이끄는 대로 가만히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 P156

"손해 좀 보면 어때. 그냥 넘겨 줄 때도 있는 거야, 살다 보면." - P165

부정적이고 무례한 것들에 나의 시선이 머물지 않도록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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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행위자체가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했었다. 집중이 잘 될 때야 자기가 공부하는 내용과 관련된 것들을 적어보는 것이야 당연지사지만, 만약에 집중이 너무 안 될 경우에는 그냥 종이에 끄적이는 낙서라도 하는 것이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낙서가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적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저자는 공부 일기를 꾸준히 적어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보다는 단지 자신의 하루 공부 시간이나 집중한 시간 등을 기록 하면서 스스로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또한 그날 공부했던 것들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려보면서 기억을 오랫동안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단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사항으로 저자는 공부 일기를 너무 잘 쓰려고 하지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건 누구한테 보여줄 것도 아니고 단지 위에서 언급했던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살다보면 때로 수단이 목적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이는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으로 살면서 늘 주의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얘기를 여기에 대입해보자면 수단은 공부 일기라는 것이고 궁극적인 목적은 공부를 통한 성취도 향상이다. 공부든 일이든 뭐가 됐든 간에 자신의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공부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다. 에세이가 아니다.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갖지 않아도 된다. ‘오늘의 교훈‘은 없어도 된다. 하루 동안 공부한 시간을 돌아보면서 생각나는 것을 쓰면 된다. 공부 일기는 다른 사람이 검사하는게 아니다. 일기처럼 누군가 읽을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쓰면 된다. - P92

노트에 날짜를 쓰고 오늘 읽은 책 제목과 단락 제목을 적는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 처음 알게 된 용어와 개념 설명을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적는다. 오늘 공부한 내용에 이어서 내일 공부할 내용을 쓴다. 말 그대로 공부에 관해서 ‘아무거나‘ 쓴다. - P92

공부 일기도《안네의 일기》처럼 자기 생각을 ‘기록‘하는 데 충실하게 쓰면 된다. - P93

공부 일기에 인상적인 일, 나중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만 적는 게 아니다. 느낌과 사실을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된다. 점심 식사 메뉴를 적어도 상관없다. 꾸준히 쓸 수 있다면 무엇이든 적는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을 했다면 그 일을 쓴다. - P93

공부할 기분이 나지 않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냈다면 ‘아무것도 안했다‘라고 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 빈번하다면 문제가 되지만 몇달에 한 번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휴식‘이라고 쓴다. - P93

《메모의 기술》을 쓴 광고 디렉터 사카토 켄지는 자기 생각을 되돌아보기위해 일기에 생각과 느낌을 적는다고 했다. 생각을 적는 게 내키지 않을 때는 책에서 읽었던 문장을 옮겨 적거나 문제집에서 틀린 문제를 베껴 적는다. 그러다가 일기에 적을 내용이 떠오르기도 한다. - P93

꾸준히 써둔 공부 일기를 시간 날 때 읽는다. 그러면 공부한 내용 외에 자신의 나쁜 습관이 보인다. 공부 계획표를 지키지 않은 것,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로 하고 늦잠 잔 것, 공부할 범위를 자주 수정하는 것 등을 알 수 있다. - P93

공부일기는 쓰면 나쁜 습관을 발견하고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우선 자신의 습관을 인지해야 한다. 나쁜 습관을 고치는 첫 단계는 나쁜 습관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 P94

공부 일기는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는 게 아니다. 공부한 내용을 깨끗하게 옮겨 적는 노트 필기나 틀린 문제를 적는 오답 노트도 아니다. 공부한 시간, 공부에 관한 생각과 감정의 기록이다. 공부 일기에 생각을 적으면 자기 앞에 있는 문제가 뚜렷해진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 해결책도 나온다.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과 편견, 새로운 생각도 알 수 있다. 공부에 관한 고민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 P94

종이에 쓰면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단순해지고 구체화된다. 자기 생각을 눈으로 확인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계획을 지키지 않는 자신을 인지한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스스로 변화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 P94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을 읽는 이유에 관해서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만든 다음 읽는다. 눈으로 읽지 말고 손으로 읽어라. 부지런히 초록하고 기록해야 생각이 튼실해지고 생각과 의견이 확립된다.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당시에는 요긴하다 싶었는데 필요할 때 찾을 수 없게 된다. - P95

깨달음이 있으면 반드시 기록하라. - P95

기억을 믿지 말고 손을 믿고 부지런히 기록한다. 기록은 생각의 실마리다. 기록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기록하고 본능적으로 기록한다. - P95

평소에 관심 있는 사물이나 일에 대해 세세히 관찰해서 기록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 P95

메모 중에 쭉정이는 솎아내고 알맹이를 추려 계통별로 분류한다. 그리고 현실에 활용한다. 속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이 정리한 지식체계와 연결한다. - P95

기록은 불완전한 기억을 보완하는 도구이며 생각을 정리한다. 학습 후에 필기 또는 메모를 다시 보는 습관을 들이면 장기기억에 저장되고 기억이 강화된다. - P96

아인슈타인, 뉴턴, 프랭클린, 에디슨, 다빈치, 빌 게이츠, 다산 정약용은 메모광이다. 메모가 종교였다면 이들은 틀림없이 이 종교를 믿었고 광신도가 되었을 것이다. 위대한 메모광은 아이디어를 기록해서 발전시키고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결과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 P96

기억해야 하는 내용을 종이에 적은 다음 그 내용을 반복해서 읽고 다시 정리하면 기록의 효과를 볼 수 있다. - P97

종이에 손으로 쓰는 행위와 손으로 쓴 내용을 다시 읽는게 중요하다. - P97

"읽은 책은 손이 기억한다. 문장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이 책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_소설가 이노우에 하사시 - P97

기억하고 싶다면 종이에 손으로 써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는 사람이 많은데 종이에 쓰는 것과 비교해서 기억에 남는 양이 적다. 스마트폰으로 기록의 효과를 보려면 찍어둔 사진을 자주 보고 종이에 적어야 한다. 결국, 종이에 적어야 기억에 남는다. - P97

기록하는 습관은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종이에 적으면서 학습한 내용을 정리한다. 종이에 쓸 내용을 간추리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한다. - P97

복잡해서 이해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종이에 적은 다음 생각하면 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종이에 적으면 잠재의식에 있던 지식이 의식 영역으로 나온다. 머릿속에서 문제 해결과 관련된 지식과 정보가 연결된다. 새로운 발상 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른다. - P98

둘째, 집중력이 향상된다. 종이에 적는 동안 문제에 집중한다. 어떤 문제든지 집중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종이에 쓰기 전까지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랐던 문제가 종이에 쓰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로 바뀌기도 한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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