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들을 함께 읽다보니 이 책은 한동안 손놓고 있다가 거의 3주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와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관련된 내용들이 나왔는데, 두 이야기에서 공통된 교훈을 하나 도출하자면 바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의미를 찾아내자‘는 것이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대로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은 게 현실이다. 그리고 어떨 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저자는 각자가 원했던 상황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간에 그 안에서 살아갈 의미를 발견할 때 사람이 생존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니체의 말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도 막연히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까운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이것도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삶의 의미를 찾는 것과 유사해보인다.

본문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독자인 나만의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내가 만나는 모든 상황들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객관적인 상황과는 별개로 주관적인 행복감과 의미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_니체 - P124

행복해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주위에 언제나 공기처럼 존재하는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 P124

과학적 증거를 따라가다 마침내 마주한 진실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실이 밝혀져 오히려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 P126

현행 도로교통법상 구급차, 소방차 등은 ‘긴급 자동차‘에 해당해 긴급 상황 시 신호와 속도를 위반해도 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 - P127

도덕적 선택의 아이러니에 놓였을 때 우리는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을 떠올려야 한다. 칸트는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를 통하여 보편적인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라고 말했다. - P129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과연 모든 사람이 선의의 거짓말을 허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의 신뢰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 P129

과학자는 세상이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든 말든, 누가 비난하든, 다른 말을 하든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말해야 한다. 법의학자의 근거는 오로지 과학뿐이고, 과학은 세상을 모르고, 세상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치열하고 철저해야 한다. - P129

‘근설영춘近雪迎春‘이라는 단어가 있다. 가까울 근, 눈설,
바라볼 영, 봄 춘 자로 이루어진 사자성어다. ‘내가 놓인 환경이 눈 덮인 추운 겨울이라 해도 나는 꽃이 피는 봄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라는 뜻이다. 나는 이 같은 마음으로 법의학의 세계를 살아간다. - P130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는 말도 좋아한다. ‘매화는 추운 곳에서 꽃을 피우지만 향기를 구걸하거나 팔지 않는다.‘ 매화의 고고한 태도로 나도 내 삶을 살아가고 싶다. 겨울의 엄혹함 속에서도 진실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매서운 추위가 몰아쳐도 과학자의 지조를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 P130

통상 하나의 사건으로 3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면 대형 참사라고 한다. 화재, 폭발, 붕괴, 추락, 침몰, 자연재해 등의 원인으로 수십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들을 말한다. - P133

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흔히 구조대원, 의료진, 소방, 경찰, 군인 등이 현장에 뛰어드는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또 한 축의 인력이 바로 법의학자다. 시신을 찾고 해당 시신의 신원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재나 폭발, 건물 붕괴,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는 시신의 외형이 훼손된 경우가 많아 육안으로는 신원을 파악할 수 없기에 법의학자의 역할이 절실해진다. 그래서 법의학자는 평시에는 ‘사인死因을 찾는 사람‘이지만, 이때만큼은 ‘사람을 찾는 사람‘이 된다. - P134

한 사람의 생명은 행성의 무게보다도 무겁다. 하나의 죽음보다 다수의 죽음이 더 무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죽음은 그렇게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것이지만, 수백명이 사망한 현장에 서 있노라면 그 거대한 슬픔과 분노가 살아 있는 인간을 압도한다. - P141

치유가 동반되지 않는 한 우리는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치유는 잊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 P141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숨이 멎있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다. 즉,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 그 사람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지게 된다. - P141

안타깝게 사고의 희생자가 된 분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사고의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죽음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 P142

문제의 근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건의 단면만 볼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주변의 환경과 맥락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원인을 제대로 짚어야 그에 맞는 해결책이 나올수 있다. - P158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야 시스템이든 물리적 구조든 바꿀 수가 있다. 그래야만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다. - P161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까?‘를 우선순위에 둘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우리 함께 극복하자‘라는 기조가 먼저여야 한다. - P162

이 세상의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다른 이가 겪은 사고, 사건, 고통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 P162

인간의 실수를 무력하게 방치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막을 수 있다 - P169

실수가 연속해서 벌어지고 이를 제어할 안전장치가 없다면 처음 몇 번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뚫리고 만다.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처럼. 지금 당장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안 생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누군가 구멍을 막고 있어도 그 방어막이 얇거나 그 사람이 실수를 하면 마침내 구멍은 뚫리고 치명적 위험이 발생한다. - P174

결과 발생만 없으면 우리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모래성처럼 토대가 허물어지고 구멍을 막는 벽이 얇아지고 있는데 그걸 모른 척하는 것이다. - P174

내 실수를 말할 수 있는 분위기, 내 실수를 말해도 비난받지 않는 분위기, 다른 사람의 실수를 비난하고 낙인 찍지 않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다. 드러내야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구멍이 다뚫려 무너지기 전에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실수를 솔직하게 말하고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 그것이야말로 안전한 세상을 위한 첫걸음이다. - P174

"실수는 인간의 본성이다 To err is human." - P175

많은 사고들의 근본 원인을 들여다 보면 실수가 다른 실수들로 도미노처럼 이어질 때 참혹한 결과가 발생한다.
즉, 우연한 실수가 또 다른 실수로 연결되며 발생하기 때문에 그중에 하나만 빠졌어도 끔찍한 결과까지는 이어지지 않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실수 하나하나를 탓하고 몰아세우는 일은 때로는 참사를 예방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P175

중요한 것은 실수의 연쇄를 끊는 것이다. 하나의 작은 실수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이미 벌어진 실수를 통해 오류를 분석하고 예방책을 빠르게 세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 P176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며,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탑승자들끼리 서로 몸무게를 계산하고 적정 중량에 맞는지 따져가며 탈 수는 없다. 일정 중량이 되면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처럼, 우리의 시스템도 그렇게 설계되어야 한다. - P176

우리가 실수에 대해 흔히 하는 두 가지 착각이 있다. 하나는 주의를 집중하고 계속 훈련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수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실수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 P176

또 하나의 착각은 처벌을 강화하면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처벌로 실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처벌이 강화되면 범죄를 은폐하려는 경향 역시 강화된다. 이런 식으로는 실수나 사고를 줄일 수 없다. 처벌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처벌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177

나쁜 사람을 단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고, 대안을 제시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적절한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P177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약병 라벨을 혼동할 수 있고, 아무리 타인의 실수를 일깨워주어도 도무지 개선되지 않는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 P177

개인의 주의 집중만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인간에게 잘못을 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책임자의 처벌은 그다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실수가 인간의 본성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 P177

엄격히 말하면 레일이 먼저 있었고 그다음 기차가 만들어진 것이다. - P179

그렇다. 제도가 먼저다. - P179

아무리 훌륭한 운반 도구라 해도 레일이 튼튼하고 견고해야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 P180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 P181

생일상 받으려고 한 달을 굶다가 굶어 죽는다 - P181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가장 마지막 사람이 되어주는 것 - P188

시스템의 결함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안전을 위한 국가적 시스템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 P194

진짜 안전을 지키려면 오히려 실수를 드러내야 한다. 실수를 말하고 공개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찾고, 이를 교정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 P195

실수를 말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 실수한 동료를 비난하거나 낙인찍지 않는 문화가 안전을 구축할 수 있다. - P196

대형참사의 경우 시스템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반드시 경제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투자하는 돈을 줄이기 위해서 철근을 빼먹고, 싸구려 재료를 사용하고, 적재 용량의 몇 배를 싣는다. 그런데 이런 태도야말로 소탐대실이다. 사고가 나면 복구하는 비용은 안전 비용의 7배가 소모된다. 7분의 1의 비용으로 안전을 유지할 수 있음에도 리스크를 감내하며 안전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 P197

범죄자 찾기가 아니라 불안전한 지점을 찾는 일에 집중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반복되는 사고는 개별 사람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기억하자.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회라면, 적어도 시스템의 결함으로 반복되는 죽음은 없어야 한다. - P197

그 사람이 생전에 뭘 했는지 불문하고, 죽음의 사인을 밝히는 과정은 최대한 정확하고 단순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 P201

남은 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니까. - P201

사실 마음의 아픔을 달래는 데는 육체적 활동이 꽤 도움이 된다. - P202

목표를 정하면 어떻게든 실행하기 위해 거기에 매진하기 때문이다. - P202

병문안을 가거나 조문을 갔을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론은 ‘아무 말도 하지 말자‘이다.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 그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는 것, 그 정도가 좋겠다 싶다. - P203

간혹 옆 사람들이 위로한답시고 그동안의 기억을 자꾸 잊으라고 할 때가 있다. 그만 잊고 떠나보내라고 그런데 가까운 이는 그 사람의 경험이 내 몸에 체화돼 있다. 그 존재가 내 안에 있다.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라‘, ‘빨리 잊어라‘ 그렇게 종용할 필요가 없다. - P203

때로는 슬픔의 시간을 갖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슬플 때는 슬퍼하고 아플 때는 아파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허락해주어야 한다. 이별의 슬픔을 외면하거나 회피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한 뒤에야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좋은 이별이며,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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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여자가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했지‘ 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 장면이 나왔었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임신했을 당시 장티푸스에 걸려서 약을 과다하게 복용했는데, 이로 인해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성한 아이를 낳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하여 임신중절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의사와 상담까지 하고 중절을 하려했으나 하늘의 뜻이었는지 그녀의 어머니는 결국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중절약속을 했던 병원에 가지 않았다. 이런 복잡한 우여곡절 끝에 소설 속 그녀는 결국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태어난 후 자신의 출생이 쉽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들으면서 이 세계가 자신에게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

독자인 나 또한 이 부분을 집중해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의 삶과 독자 개개인의 삶이 물론 제각각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 나온 모든 생명체는 그냥 거저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할 수 있었다. 또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세계는 그녀에게 당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만나 우연히 허락된 가능성, 아슬아슬하게 잠시 부풀어오른 얇은 거품일 뿐이었다. - P52

오직 서늘한 감각뿐이었다. 눈이 내리는, 귀를 틀어막은 것처럼 조용한 거리. 처음 보는 사람들. 혼자인 자신의 몸. - P54

가장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녀를 이해한다는 그의 말이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담담하게 알았다. 모든 것을 묵묵히 수습하는 침묵이 두 사람을 둘러싼 채 기다리고 있었다. - P55

아니요.
그녀는 펜을 집어, 탁자에 놓인 백지에 반듯한 글씨로 적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 P55

말할 수 있었을 때, 이따금 그녀는 말하는 대신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보았다. 말하려는 내용을 시선으로 완전하게 번역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처럼. 말 대신 눈으로 인사하고, 말 대신 눈으로 감사를 표하고, 말 대신 눈으로 미안해했다. 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 P55

그에 비하면 언어는 수십 배 육체적인 접촉이었다.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간다. 혀가 마르고 침이 튀고 입술이 갈라진다. - P55

그 육체적인 과정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낄 때 그녀는 오히려 말이 많아졌다. 긴 문어체의 문장으로, 유동하는 구어의 생명을 없애며 말을 이어갔다. 목소리도 평소보다 커졌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수록 점점 사변적으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는 시기에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없었다. - P55

말을 잃기 직전, 그녀는 어느 때보다 활달한 다변가였다. 어느 때보다 오래 글을 쓰지 못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이 쓴 문장이 침묵 속에서 일으키는 소란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 때로는 글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두 단어의 배열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구토의 기미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말을 잃은 원인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었다. - P56

δύσβατος γέ τις ό τόπος
φαίνεται καὶ ἐπίσκιος.
ἔστι γοῦν σκοτεινὸς καὶ
δυσδιερεύνητος.
이곳은 어느 쪽으로도
발을 내디디기 힘든 장소야.
사방이 어두침침해서,
무엇을 찾기도 힘든 곳일세. - P56

・・・・・・뭐 그냥 폐허에 대한 흥미죠. 고대 크메르 문자가 사원의 돌에 새겨져 있던데, 개인적으론 고대 희랍 문자보다 더 보기 좋더군요. - P57

깊게 숨을 들이쉰다. 숨소리가 분명하게 들린다. 말을 잃은 뒤, 때로 그녀는 자신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말과 닮았다고 느낀다. 마치 목소리처럼 대담하게 침묵을 건드린다. - P57

그녀는 더 힘주어 연필을 쥔다. 조심스럽게 숨을 내쉰다. 그 문장에 밴 감정이 백묵 자국처럼, 무심히 굳은 핏자국처럼 드러나는 것을 견딘다. - P58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가장 많이 상상해 눈앞에 그리는 얼굴은 자신의 얼굴일 것이다. - P59

이따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기보다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낀다. 따뜻한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밥이라고 느낀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물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자신이 결코 밥도 물도 아니라고, 그 어떤 존재와도 끝끝내 섞이지 않는 가혹하고 단단한 물질이라고 느낀다. - P59

γῆ ἔκειτο γυνή.
한 여자가 땅에 누워 있다. - P59

아이의 동그란 눈 속에 그녀의 얼굴이 비쳐 있는 것이 보였다. 비쳐 있는 그녀의 눈 속에 다시 아이의 얼굴이 비치고, 그 얼굴 속 아이의 눈에는 또다시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끝없이 비치고 있었다. - P60

그녀의 눈 속에 침묵하는 그녀가 비쳐 있고, 비쳐 있는 그녀의 눈 속에 다시 침묵하는 그녀가...... 그렇게 끝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 P62

오래전에 끓어올랐던 증오는 끓어오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있고, 오래전에 부풀어올랐던 고통은 부풀어오른 채 더이상 수포가 터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물지 않았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 P62

까다로운 시제, 명사들의 격변화, 복잡한 태의 용법들을 끈질기게 뚫고 들어가 불완전하고 단순한 문장을 만든다. - P63

γῆ ἔκειτο γυνή.
한 여자가 땅에 누워 있다.

χιὼν ἐπὶ τῇ δειρή.
목구멍에 눈雪.

ῥύπος ἐπὶ τῷ βλέφαρῳ.
눈두덩에 흙. - P64

얼어붙은 표면 위로 무수한 핏자국을 날마다 끼얹어놓을 뿐, 이즈음 아이의 고백으로 인해 생긴 새로운 고통은 그녀의 침묵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 P64

말로 열리는 통로가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갔다는 것을, 이대로 가면 아이를 영영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았다. 알면 알수록 통로는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갔다. 간절히 구할수록 그것을 거꾸로 행하는 신이 있는 것처럼. 신음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더 고요해졌다. 피도 고름도 눈에서 흐르지 않았다. - P65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 P66

그때에는 그녀에게 말言이 있었으므로, 감정들은 더 분명하고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몸속에는 말이 없다.
단어와 문장들은 마치 혼령처럼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보이고 들릴 만큼만 가깝게 따라다닌다.
그 거리 덕분에, 충분히 강하지 않은 감정들은 마치 접착력이 약한 테이프 조각들처럼 이내 떨어져나간다. - P67

그녀는 다만 바라본다. 바라보면서, 바라보는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눈에는 계속해서 다른 사물들의 상象이 맺히고, 그녀가 걷는 속력에 따라 움직이며 지워진다. 지워지면서, 어떤 말로도 끝내 번역되지 않는다. - P67

마치 그녀의 몸속에 있는 말들이 먼저 헛웃음을 터뜨리고, 그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것 같았다. - P68

χαλεπὰ τὰ καλά.
칼레파타 칼라.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

세 번역이 모두 그르지 않은 것은, 고대 희랍인들에게 아름다움과 어려움과 고결함이 아직 분절되지 않은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모국어에서 ‘빛‘이 처음부터 밝음과 색채라는 두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 P69

그동안 내가 어른이 된 탓에 사물들이 조금씩 작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 P70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처음에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한 단어였다는 것을, 밝음과 색채 역시 그렇게 한 몸이었다는 것을 그때만큼 생생하게 실감한 적은 없었다. - P70

세계는 환이고 산다는 건 꿈꾸는 것이다 - P71

새벽에 깨어서 거실로 나오면 모든 가구들이 푸른 헝겊에 싸여 있는 것 같았지. 파르스름한 실들이 쉴새 없이 뽑아져나와 싸늘한 공기를 그득 채우는 것 같은 광경을, 내복 바람으로 넋 없이 바라보며 서 있곤 했어. 마치 황홀한 환각 같던 그 광경이 약한 시력 때문이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지. - P73

사실, 건강이 걱정스러운 사람은 오히려 너야. 너는 불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지 않니. 무엇에든 몰두하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서, 결국엔 병을 얻고 마는 사람이지 않니. - P75

고개를 수그린 채 너는 중얼거렸어. 형편없는 악기인 네 육체와, 이제 곧 불러야 할 노래 사이의 정적이 벼랑처럼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 P80

네 목소리론 네 얼굴을 만져줄 수 없는 모양이구나. 그러면 무엇이 너를 만져줄까. 아마 나는 절망을 느꼈던 것 같아. - P80

가끔 생각해.
혈육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서글픈 것인지. - P80

우리가 그토록 연하고 부서지기 쉬웠을 때, 지구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옮겨다닐 때, 우리는 한 바구니에 담긴 두 개의 달걀, 같은 흙반죽에서 나온 두 개의 도자기 공 같았지. 네 찌푸린 얼굴, 우는 얼굴, 깔깔 웃는 얼굴 속에서 내 유년은 금이 가며, 부서지며, 가까스로 무사히 모아 붙여지며 흘러갔지. - P81

이제 네 시디는 다 돌아갔고,
밤은 아까보다 더 깊어졌어.
네 목소리가 정적 속에 스며들어서,
이 정적이 어쩐지 따스하게 느껴진다. - P83

눈을 감는 것과 뜨는 것이 거의 다르지 않은, 먹보다 진한 내 눈의 밤이. - P83

하지만 믿을 수 있겠니. 매일 밤 내가 절망하지 않은 채 불을 끈다는 걸. 동이 트기 전에 새로 눈을 떠야 하니까. 더듬더듬 커튼을 걷고, 유리창을 열고, 방충망 너머로 어두운 하늘을 봐야 하니까. 오직 상상 속에서 얇은 점퍼를 걸쳐입고 문 밖으로 걸어나갈 테니까. 캄캄한 보도블록들을 한 발 한 발 디디며 나아갈 테니까. 어둠의 피륙이 낱낱의 파르스름한 실이 되어 내 몸을. 이 도시를 휘감는 광경을 볼 테니까. 안경을 닦아 쓰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짧은 파란 빛에 얼굴을 담글 테니까. 믿을 수 있겠니. 그 생각만으로 나는 가슴이 떨려. - P84

παθεῖν
μαθεῖν

‘수난을 겪다‘는 뜻의 동사와 ‘배워 깨닫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거의 흡사하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언어유희로 두 가지 행위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P85

하지만, 이 단어들의 중첩을 단순히 언어유희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에게 무엇인가를 배워 깨닫는 일은 글자 그대로 수난을 의미했으니까요. 소크라테스 자신은 생전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도, 그를 지켜본 젊은 플라톤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되었을 겁니다. - P86

언젠가는 낱장마다 잔뜩 밑줄이 그어진 갈레노스의 원서를 들고 와, 해부학과 관련된 부분의 해독을 희랍어 강사에게 부탁해 강사를 난처하게 하기도 했다. 원전 해석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그에게 강사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고대 희랍어는 유럽 사람들도 다들 어려워해요. 한국의 젊은 사람들한테 한문 고전을 바로 독해하라고 하면 어려워하는 것처럼………… 여기서 너무 완벽하게 해가려고 하진 마세요. - P87

흑판에 씌어진 모국어 단어들이 그녀의 오른주먹 안쪽에, 땀으로 축축해진 육각 연필의 매끈한 표면에 소리없이 으깨어져 있다. 그녀는 그 단어들을 알지만, 동시에 알지 못한다. 구역질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 단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것들을 쓸 수 있지만, 쓸 수 없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다. 조심스럽게 숨을 내쉰다. 들이마시고 싶지 않다. 깊게 들이마신다. - P87

왜 일 년 동안 까만 옷만 입어야 돼?
덤덤한 목소리로 그녀는 대답했다.
마음이 밝아질까봐 그런 거 아닐까.
마음이 밝아지면 안 돼?
죄스러우니까.
할머니한테? .....그치만 할머닌 엄마가 웃으면 좋아하잖아.
그제야 그녀는 아이를 돌아보고 웃었다. - P89

더 견딜 수 없을 만큼 피로해지기 위해 걷는다. 이제 돌아가야 할 집의 정적을 느낄 수 없게 될 때까지, 검은 나무들과 검은 커튼과 검은 소파, 검은 레고 박스들에 눈길을 던질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걷는다. 격렬한 졸음에 취해, 씻지도 이불을 덮지도 않고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 수 있을 때까지 걷는다. 설령 악몽을 꾸더라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기 위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까지 뜬눈으로 뒤척이지 않기 위해 걷는다. 그 생생한 새벽시간, 사금파리 같은 기억들을 끈덕지게 되불러 모으지 않기 위해 걷는다. - P90

아름다운 사물들은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은 꿈을 꾸는 상태에 있는 거라고 플라톤은 생각했고, 그걸 누구에게든 논증을 통해 설득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세계에선 그렇게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오히려 모든 꿈에서 깨어난 상태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실 속의 아름다운 사물들을 믿는 대신 아름다움 자체만ㅡ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만을ㅡ믿는 자신이. - P94

제논과 세슘137. 반감기가 짧아 곧 사라졌을 방사성 요오드131. - P96

조각난 기억들이 움직이며 무늬들을 만든다. 어떤 맥락도 없이. 어떤 전체적인 조망도 의미도 없이. 조각조각 흩어졌다가 한 순간 단호히 합쳐진다. 무수한 나비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멈추는 것처럼. 얼굴을 가린 냉정한 무희들처럼. - P100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 P102

모든 것이 파편으로 다가와.
파편인 채 그대로 흩어진다. 사라진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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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안에 내재된 속성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특정한 행동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그리고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비교적 최근에 완독했던 《통섭》의 저자인 에드워드 월슨의 추천사가 이 책 맨 앞에 나와 있어서 반가웠다. 이외에도 유명한 책들을 썼던 다른 저자들(찰스 두히그, 데이비드 이글먼, 조너선 하이트, 폴 R. 에얼릭, 마이클 셔머) 의 추천사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일단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여건이 된다면 추천사에서 만났던 분들의 책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일단은 이 책에 집중하자. 이 책만 해도 두께가 엄청나게 두껍다.)

인간은 나를 해치려는 다른 인간들의 위협에 늘 쫓기면서 사는 존재다. - P11

우리가 폭력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논점이다. 우리가 싫어하고 겁내는 것은 잘못된 종류의 폭력, 잘못된 맥락의 폭력이다. 옳은 맥락의 폭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 P11

‘옳은‘ 종류의 공격성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한다. - P12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행동이 악랄한 공격 행동일 수도 있고 자기희생적 사랑의 행동일 수도 있다는 이 모호함이야말로 폭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폭력은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인간 경험의 하나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 P12

인간이 서로를 해치는 현상은 보편적이지도 불가피하지도 않다는 깨달음 - P13

이 책을 다 읽으면, 어떤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과 이른바 ‘심리학적‘ 혹은 ‘문화적‘ 측면을 구별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 둘은 뗄 수 없이 얽혀 있다. - P13

우리가 복잡하고 다면적인 현상을 다룰 때 흔히 쓰는 인지 전략은 그 측면들을 낱낱이 쪼개어 여러 가지 범주로, 즉 여러 가지 설명 단위로 나누는 것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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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이 시집에 나온 시구들에 대한 해설자의 해설을 일부 살펴봤다. 해설자 분이 아무래도 이 쪽 분야의 전문가이시다보니 일반인인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까지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도 이 시집에 나왔던 시구들 중 몇 가지를 해설자가 직접 골라서 설명해준다. 비록 여기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아니지만, 마치 이런 곳들에 직접 방문했을 때 작품이나 전시품들의 중요 포인트들을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앞에서 한 번씩 읽었던 시구들이라 그런지 읽었던 시들을 회상하며 그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강의 시는 곳곳에서 영혼의 상처에 대해 말하면서 그 상처가 결코 회복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영혼의 상처가 회복 불능의 것이고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의 삶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그런 삶에는 분노와 슬픔을 넘어 절망과 무기력과 체념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 P146

삶을 절망 속에 방기할 수 없는 영리한 사람들은 남은 삶을 위해 영혼의 상처를 애써 봉합하려 한다. 그러나 한강의 화자들은 고통과 마주하는 일을 피할 생각이 없다. 절망과 무기력에 빠질 생각도 없다. 한강에게 상처의 고통을 지속하는 일은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 된 듯하다. - P146

삶의 위기는 쉼 없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자체를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누군가는 안간힘을 쓰며 삶을 향해 가까스로 손을 내밀겠지만, 손을 잡아주기는커녕 다시 산산조각 내버리고 마는 잔인함이 우리의 삶 안에 내장되어 있기도 하다. - P147

특별한 불행과는 무관하게 삶과 전면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민감하고도 강한 영혼과 허약한 육체에 대해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 P148

타락한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한강의 화자들은 그 불화를, 즉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아픔을 주로 육체의 고통을 통해 드러내곤 한다. 상처받은 무구한 영혼의 존재가 피 흘리는 육체를 통해 체화되는 형국이다. - P148

한강의 세계관은 육체를 영혼의 그릇으로 생각하는 고전 철학의 그것에 가깝다. 인간의 육체는 보잘것없는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그 허상으로 인해 오히려 영혼의 존재가 더 숭고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순수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피 흘리는 육체를 완전히 저버릴 수 없다. 타락한 세계로부터 영혼의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해서 인간은 고통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강은 말하는 듯하다. - P148

고통의 삶을 통해서만 영혼의 소유자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 확인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인간의 삶 속에 이미 구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 속에서 살아내는 것 자체가 구원인 셈이다. "영혼의 동지(同志)인 나의 육체"가 흘리는 피눈물을 그저 감내하는 것만이 타락한 세계에 처한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다. - P151

언어와 더불어 인간은 영혼의 존재가 되었다. 한강의 시를 읽는 우리는 이제 언어와 영혼을 동의어로 취급해야 한다. - P151

육체를 피 흘리게 함으로써 세계와 불화하는 무구한 영혼의 존재를 증명했듯, 한강의 시는 다른 한 편에서 일상의 언어를 피 흘리게 함으로써 침묵으로부터 최초의 언어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순간을 복원해내려고 한다. - P152

인간의 말이 순수해질 때 그것은 그림과 가까워진다. - P152

그(막스 피카르트)에 따르면 그림의 침묵은 "말의 어머니"이다. 그림은 "인간이 말로 타락하기 이전의 낙원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그림의 침묵에 대항하면서 말이 "최초의 현존"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말을 배우기 이전 아이의 영혼이 그림으로 충만하다는 사실을 참고할 수 있다. - P152

침묵에 맞서 자신의 현존을 획득하려는 순간의 말은 온전히 진실된 것이었다. 그러나 침묵의 그림을 해석해내려는 말은 이미 타락한 것이 된다. 막스 피카르트가 정신분석을 비판하면서 꿈의 그림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꿈의 그림을 훼손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신분석은 ‘파괴된 말‘을 사용하여 ‘파괴된 그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 P152

말할 수 없는 것에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오히려 침묵의 이미지인 미술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 P153

언어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지속하지만, 그림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한다. - P153

언어가 주는 고통과 싸우는 것, 즉 일상의 언어에 대해 불편한 이물감을 드러내는 것은 최초의 말이 지닌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다. - P153

어둠 속에서 오히려 보려 하고 빛 속에서 오히려 듣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언어의 물질성을 활용한 일상적 소통의 익숙함을 거절한 자들이다. - P154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 P3

어둠을 보고 빛을 듣는 그 불편한 세계가 그녀에게는 왜 투명한 세계가 되는 것일까. 순수한 관념으로서의 언어와 마주할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 P154

피투성이의 고통과 더불어 말 자체도, 그리고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영혼도 비로소 진실할 수 있다고 - P154

도구로서의 언어가 아닌 존재로서의 언어 - P154

흔히 타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것은 소리에 둔감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저 분절되지 않은 소리의 덩어리로 감지될 뿐이다. 마치 침묵의 공간에 있는 듯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침묵 속에서라면 눈앞에 있는 사물들이 더 명징해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명징하고도 낯선 풍경속에서 오히려 자기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경험이 뒤따라야한다. - P155

개기일식의 순간에는 태양이 달의 그림자에 온전히 가려짐으로써 한낮의 시간에도 암흑을 경험하게 해준다. - P156

어떤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자신의 진실과 마주하는 응시 - P157

거울을 통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직접보려는 사람처럼 마주할 수 없는 것을 기어이 보고자 하는 - P157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 침묵과 어둠의 공간에서 시인이 발견하는 것은 순수한 언어의 존재이다. - P157

선이 아닌 단지 면으로 이루어진 마크 로스코의 거대한 추상화를 마주하고 있는 심정을 한강은 "어떤 소리도/광선도 닿지 않는/심해의 밤‘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으로 그려낸다. - P159

침묵과 암흑의 공간에 놓여 "내가/나라는 것도" 잊은 채 시인은 천천히 자신의 실핏줄 속으로 번져오는 "당신의 피"를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의 피"를 감지하는 그 생생한 느낌이 바로 누군가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영혼의 만남을 위해서는 소리도 빛도 방해가 될 뿐이다. - P159

죽음으로부터 삶이 탄생하고 어둠으로부터 빛이 탄생했다. - P159

앞에서 우리는 언어가 그림의 침묵으로부터 생겨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소리도 빛도 없는 공간에서 ‘나‘의 실핏줄에 스며들고 있는 "당신 영혼의 피"를 우리는 언어의 영혼이라 불러볼 수도 있을 것이다. - P160

언어가 타락한 세계를 애써 거절하는 방법은 오로지 침묵뿐 - P162

말을 배울 때 우리가 처음 접하는 것은 오로지 재귀적 용법만을 갖는 명사들이다. 그 무엇의 이름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일 뿐인 말들의 존재를 생각하며 자신의 영혼과 언어의 넋이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드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말과 동거하는‘ 시인의 숙명이자 환희라고 - P162

일상의 언어에 익숙해진 혀를 녹인 이후에 비로소 천천히 입 밖으로 뱉어지는 말들이 모여 비로소 시를 이루게 되는 것 - P162

"어깨를 안으로 말고/허리를 접고/무릎을 구부리고 힘껏 발목을 오므려서" "지워진 단어"(<심장이라는 사물>)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한강은 시인이 된 이후부터 줄곧 언어와 한몸이 되어 언어의 타락을 앓고 있다. 그리고 언어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고통의 시간과 더불어 자신의 영혼이 구원되기를 바라고 있다. - P163

침묵에서 진실된 말을 건져 올리려는 - P163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애초에 그림과 말은 분절되지 않는 침묵의 공간을 그 기원으로 공유하고 있다. - P164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 P164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고통의 시금석 - P164

"살아 있으므로" - P164

달의 그림자에 가려 붉은 테두리로만 존재하던 태양이 개기일식이 끝나는 순간 다시금 빛을 내기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는 한강의 더딘 작업속에서 훼손된 언어와 영혼이 본연의 빛을 되찾는 순간을 분명 목격하게 될 것이다. - P164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 P164

(살아 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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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시에 나오는 문구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그 의미를 음미할수록 시의 맛(?)을 좀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시의 특성상 소설이나 비문학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긴 문장은 아니지만, 짧은 문장 속에 깊은 의미가 농축되어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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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8부터는 이 책과 관련된 해설이 나온다. 해설자는 막스 피카르트의 철학 에세이《인간과 말》이라는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인간과 말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보탠다. 이러한 설명은 나 같은 일반인들이 쉽게 생각하기 힘든 인간과 말의 관계에 대한 좀 더 심오한 속성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어지는 해설에서는 ‘인간과 말‘이라는 키워드에 기반하여 한강 작가의 소설 중《희랍어 시간》이라는 작품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온다. 아무래도 이 소설과 오늘 읽고 있는 시집의 작가가 동일하다보니 감정선이라든지 말하고자하는 바가 공통되는 부분들이 없을 수가 없는데, 해설자께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셔서 나중에《희랍어 시간》을 읽을 때 좀 더 깊이있게 읽어볼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뒤이어서는 이 시집에 나왔던 시들 중 몇 가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핵심 시구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 더 명료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 P87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아
너도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 - P93

이 도시의 고통이 가만히 앞질러 가면
나는 가만히 뒤처져 가고 - P95

파르스름한 불꽃심이 흔들리는 건 혼들이 오는 거라는데요 혼들이 내 눈에 앉아 흔들리는데요 흥얼거리는데요 멀리 너울거리는 겉불꽃은 더 멀어지려고 너울거리는데요 - P96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뿐이야 - P97

어떤 꿈은 양심처럼
무슨 숙제처럼
명치 끝에 걸려 있었다 - P97

숙제를 풀지 못하고 몇 해가 갔다 - P98

지금 나는
거울 저편의 정오로 문득 들어와
거울 밖 검푸른 자정을 기억하듯
그 꿈을 기억한다 - P99

태양보다 400배 작은 달이
태양보다 400배 지구에 가깝기 때문에
달의 원이
태양의 원과 정확하게 겹쳐지는 기적에 대하여 - P102

마주 보는 두 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서로를 가리는 순간
완전하게 응시를 지우는 순간 - P103

시계를 다시 맞추지 않아도 된다.
시차는 열두 시간 - P104

사물이 떨어지는 선,
허공에서 지면으로
명료하게

한 점과
다른 점을 가장 빠르게 잇는

가혹하거나 잔인하게,
직선

깃털 달린 사물,
육각형의 눈송이
넓고 팔락거리는 무엇
이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선 - P105

로카 : 남미 대륙 남부의 원주민들을 절멸시키고 아르헨티나를 건설한 군인. - P107

거울 이편과 반대편의 학살을 생각하는 나는

난자하는
죽음의 직선들을 생각하는 나는 - P106

단 한 군데에도 직선을 숨겨놓지 못한
사람의 몸의 부드러움과

꼭 한 번
완전하게 찾아올
중력의 직선을 생각하는 나는 - P106

나를 공격할 생각은 마 - P109

마주 볼 수 없는 걸 똑바로 쏘아볼 것
그러니까 태양 또는 죽음,
공포 또는 슬픔 - P111

비스듬한 행성의 축을 타고
그토록 멀리 미끄러져 내려왔으니
시선의 각도에 맞추어
달의 윗면이 오므라든 거라고 - P113

어린 고라니들이 나무 아래 비를 피해 노는 동안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는 어미 고라니가 있었다
사람 엄마와 아이들이 꼭 그렇게 하듯이 - P115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 P121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 P121

가거라

무엇을 꿈꾸느냐 계속 걸어가거라 - P121

하늘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텃새들은
제 몸무게를 떨치며 날아올랐다
저렇게 날기 위해 나는 몇 번을 죽어야 할까
누구도 손잡아줄 수는 없었다 - P122

무슨 꿈이 곱더냐
무슨 기억이
그리 찬란하더냐 - P122

어서 가거라 - P123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 P124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
늘 거기 눈뜬 슬픔,
슬픔에 바친다 내
생생한 혈관을, 고동 소리를 - P125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남은 것은 없었던 그해 늦봄 - P127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 P131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 P132

무엇이 나를 걷게 했는가, 무엇이
내 발에 신을 신기고
등을 떠밀고
맥없이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는가 - P134

무엇이 내 속에 앓고 있는가, 무엇이 끝끝내
떠나지 않는가 내 몸은 - P134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 P135

작가란 누구인가. 일상적 소통을 위해서든 심오한 진리의 전달을 위해서든 모든 인간이 점차 기능적으로 완벽한 말만을 추구해갈 때, 말의 효용성에 무심한 채 그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자가 바로 작가이다. - P138

될 수 있는 한 언어를 비효율적으로 다루려는 문학적 행위와 관련된 인간의 욕망은 결코 줄거나 퇴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사실은 말과 관련된 인간의 능력과 욕망이 대체 불가의 것임을 확인시켜준다. 인간이 지닌 다양한 능력을 완벽하게 대체하고 그것을 멋지게 초과하는 다양한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능력만큼은 그 대체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 P139

인간은 살아 있는 내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말한다. 침묵하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상대로 말하고 있으며 잠자고 있는 순간에도 마치 무성영화처럼 펼쳐지는 꿈속에서 말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음‘과 더불어 놀라운 사유를 창조해내고, ‘말할 수 없음‘과 더불어 언어 너머 심연의 존재를 증명하기도 한다. 인간의 조그만 육체 안에는 이처럼 엄청난 말이 존재한다. 우리가 실제로 감지하는 말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말에 비하면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 P139

작가는 이처럼 기능적인 것으로 퇴화한 언어를 붙잡고 그로부터 진리를 발견하려는 자이다. - P139

"커다란 유혹이자 동시에 위험" - P139

말을 그 원천으로부터 새롭게 퍼 올리는 작업은 유혹적이지만, 시인은 말과 더불어 자기 안의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 P139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 안의 심연 위로 훌쩍 뛰어오르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심연을 잠재우고, 심연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 P140

시를 쓴다는 것은 심연을 열어젖히는 행위인 동시에 심연을 메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같은 유혹과 불안 사이에서 고통스러울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어느 정도는 언어를 기능적으로 활용하는 소설가와 달리 시인은 언어를 결코 수단화하지 않고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점에서 저 유혹과 불안에 훨씬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자이다. - P140

인간에 대한 탐색은 언어에 대한 탐색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지어주는 유일한 종차가 바로 언어라는 당연한 사실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모든 특징들이 이 언어에서 파생된다. - P142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고통 - P142

이미지 없는 관념의 세계는 온전히 말로만 이루어진 세계라고 할 수 있다. - P142

이미지와 소리를 상실한 남자와 여자는 암흑과 침묵 속에서 언어 그 자체와 투명하게 대면한다. 이들이 지닌 언어는 각각 한 가지의 물질성을 상실했다는 한계로 인하여 오히려 더 순수한 것으로 거듭난다. - P142

언어를 통해 다양한 감각을 재현하는 것만을 가리켜 시적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강의 소설이 시적이라면 그것은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해야한다. - P143

소설을 읽는 우리라면 고통의 원인에 관심이 많겠지만 시를 읽는 우리는 고통이 드러나는 양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 P143

각자 지니고 있는 영혼의 순도나 크기와 무관하게 인간은 누구나 영혼의 부서짐을 어떤 형태로든 겪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영혼의 부서짐에 대해 애초에 둔감하거나 그것을 애써 모른 척한다. 아마도 평범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 일것이다. 영혼의 부서짐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일도,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 P144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마치 밥 먹듯 반복된다는 사실 - P145

영혼의 부서짐에 대한 분명한 실감은 깨어 있는 영혼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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