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학파는 구를 완벽한 존재로 여겼다. 표면에 있는 모든 점들이 중심에서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 완벽성의 근거로 삼았던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원 또한 완전한 도형이었다. - P368
피타고라스학파는 행성들도 원형의 궤도 위를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행성이 궤도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빠르고 느리게 속력을 바꾸며 움직인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원형이 아닌 운동은 어딘가 결함이 있다고 보았다. 한편 행성은 불완전한 지구와는 달리 ‘완벽한‘ 존재라고 믿었으므로, 행성들에게는 비원형 궤도가 어쩐지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P368
비록 감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이지만 피타고라스 학파는 완벽하고 신비한 세계의 존재를 확신했다. - P368
그렇지만 피타고라스학파와 달리 케플러는 현실 세계에 대한 실험과 관측의 중요성을 깊이 신뢰했기 때문에 행성의 겉보기 운동에 관한 상세한 관측 자료에 따라 원 궤도 운동이라는 전제를 포기했다. 행성들의 궤도는 타원이었다. - P369
실험을 통한 검증 없이 경쟁 중에 있는 가설들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으므로, 과학은 실험에 의존하지 않고는 발전을 할 수 없다. - P370
노예의 정체성은 손을 사용하는 그들의 육체 노동에 있었다. 육체 노동은 바로 노예임을 뜻했다. 한편 과학 실험도 육체 노동이었다. 노예 소유자들은 당연히 육체 노동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과학을 할 만큼의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도 일부 사회에서 체면치레로 ‘gentlemen ‘이라 불러 주는 바로 노예주들뿐이었다. 그러니 과연 누가 과학을 했겠는가? 거의 아무도 과학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 P370
‘gentleman‘ 에 대응하는 우리말의 또 다른 표현인 ‘점잖은 분‘ 을 음미하게 된다. 원래 이 말은 젊지 않은 분에서 왔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젊지 않은 분‘들은 육체 노동과 거리를 두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육체 노동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P372
과학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는 자유로운 탐구 정신이다. - P372
현대(정치적) 제3세계의 커다란 문제는 고등 교육의 기회가 주로 부유층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부유층 출신은 당연히 현상 유지에만 관심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을 하여 무엇을 만든다던가, 또는 기존의 지식 체계에 도전하던가 하는 일을 매우 어려워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 나라들에서 과학이 뿌리 내리기는 지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 P373
플라톤주의자들과 그들의 기독교 후계자들은 지상의 세계는 때 묻고 골치 아픈 곳인 반면에 천상계는 완벽하고 신성하다는 특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지구가 근본적으로 하나의 행성이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우주 시민으로서 지구인의 위상을 망각한 채 살았다. - P375
지구가 하나의 행성이며 지구인은 우주 시민이라는 생각은 피타고라스 이후 3세기가 지난 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아리스타르코스 Aristarcos에서 시작한다. 그는 이오니아의 마지막 과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와서 지적 깨달음의 중심지가 위대한 알렉산드리아도서관으로 이미 이동했기 때문이다. - P375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이 행성계의 중심이고 모든 행성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첫 번째 인물이었다. - P375
그(아리스타르코스)는 월식 중에 달의 표면에 드리워지는 지구의 그림자를 보고 태양은 지구보다 훨씬 크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옳게 추론했다. 그 다음에 따라올 결론은 뻔하다. 그는 태양처럼 큰 물체가 지구처럼 작은 물체의 주위를 회전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추론했다. - P375
아리스타르코스와 코페르니쿠스를 적대시하려는 생각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일종의 지구 중심 우주관에 사로잡힌 우리는 아직도 일상적으로 "해가 뜬다." 하고 "해가 진다." 한다. 아리스타르코스 이후로 2,20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우리의 말투는 여전히 지구가 돌지 않는 듯하다. - P377
시선 방향의 차이에 따른 겉보기 움직임의 변화, 즉 시차視差, parallax - P377
관측이 이루어진 두 위치 사이의 거리가, 즉 기선이 길면 길수록 시차가 크게 관측되고, 따라서 더 멀리 떨어진 물체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 P377
사람의 두 눈 사이의 간격은 일정하게 고정돼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구는 관측자에게 움직이는 관측대를 제공한다. 즉 지구가 6개월이 지나면 궤도의 정반대편에 오므로 지구에서의 기선이 실제로 3억 킬로미터까지 확장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별들이 천구에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6개월의 시간 간격을 두고 관측한다면 매우 멀리 있는 천체라도 그 거리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 P378
별들도 우리의 태양과 같은 존재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리스타르코스였다. 그는 태양을 별들의 ‘반열班列‘에 가져다 놓은 장본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6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별을 관측해 보아도 그 별의 시선 방향에는 변화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별들의 시차를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별들이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에 비해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 P378
사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에는 가장 가까운 별의 시차도 감지할 수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별의 시차 측정이 이루어졌다. 일단 별의 시차가 알려지면 그리스 인들이 발명한 기하학을 이용하여 누구나 그 별까지의 거리를 쉽게 계산해 낼 수 있다. 이렇게 측정한 거리가 가장 가까운 별이라고 해도 수 광년이나 된다. - P378
겉보기의 크기와 실제 거리사이에 성립하는 반비례 관계는 미술과 사진술에서 널리 활용되는 원근법의 근본 원리이다. - P378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천랑성까지의 실제 거리는 8.8광년이다. - P379
별이란 무엇인가? 별이란 광막한 우주 공간에 흩어져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태양이었다. - P380
지구와 지구인이 자연에서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통찰은 위로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보편성으로 확장됐고 옆으로는 인종 차별의 철폐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통찰이 성공을 거두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반대쪽으로 흐르는 물결을 끊임없이 거슬러 가며 저항해야 했다. - P380
지구와 지구인을 우주에서 올바르게 자리 매김하는 일이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의 발전에 원동력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의 결과가 완강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러한 통찰이 천문학 이외의 분야에 초래하게 되는 사회적 영향의 심각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P380
18세기 말,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궁정 음악가이자 천문학자였던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은 별들의 분포를 지도로 작성했다. 허셜이 작성한 별들의 지도에는, 은하수의 띠가 흐르는 평면 안에저 어느 방향으로 보든지 비슷한 수의 별들이 늘어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지구가 은하수 은하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P380
미국의 미주리 주 출신 할로 섀플리 Harlow Shapley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구상 성단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새로이 고안해 냈다. 구상 성단이란 구형으로 분포한 별들의 무리로서 벌 떼를 연상케 하는 아주 매혹적인 천체이다. - P381
섀플리는 먼저 기준이 될 특별한 종류의 변광성을 구상 성단에서 찾아냈다. 그 별들은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지만 그 밝기의 평균값은 일정하다. 그런데 이러한 별들의 원래 평균 밝기가 변광 주기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즉 밝기가 변하는 데 걸리는 주기를 관측을 통해서 알아내면, 그 별의 원래 밝기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 P381
구상 성단에서 특정한 패턴으로 밝기가 변화하는 별을 찾아내고 그 변광주기에서 그 별의 원래 밝기를 추정한 다음 겉보기 밝기와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그 별까지의 즉 구상 성단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낼 수있는 것이다. - P381
원래 밝기를 알고 있는 가로등의 희미한 정도로부터 나와 그 가로등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같은 이치에서 별까지의 거리도 측정할 수 있다. - P381
이렇게 해서 모두 100여 개에 이르는 구상성단들의 거리를 알아낸 다음에, 섀플리는 이들의 3차원적 분포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구상 성단들이 태양계 근방이 아니라, 은하수 은하의 궁수자리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하여, 대칭적인 분포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은하의 중심은 태양계가 아니라 태양계에서 궁수자리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구역에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 P382
100여 개에 이르는 구상 성단들이 바로 우리 은하수 은하의 한가운데에 몰려 있는 막대한 질량 중심점을 궤도 운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구상 성단들이 은하수 은하 안에서 하는 운동은 마치 그 중심 구역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 같다. - P382
1915년 섀플리는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이 아니라 은하의 외진 변방에 있다."라는 참으로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 P382
허셜의 오류는 궁수자리 방향에 있는 많은 양의 미세 고체 입자들 때문이었다. 성간 티끌이라 불리는 이 고체 입자들이 별빛을 아주 효과적으로 흡수·산란하기 때문에, 허셜은 성간 티끌의 장막 너머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별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 P382
이제 우리는 태양계가 은하의 중심핵으로부터 약 3만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고 확실하게 알고 있다. - P382
은하수 은하 내부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현주소는 나선 팔의 가장자리이다. 별들의 밀도가 주위보다 좀 낮고 외지고 후미진 곳이다. - P382
은하수 은하의 중심 지역에는 구상 성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별들이 많다. 은하의 중심핵에서는 육안으로도 밝은 별들을 100만 개 이상이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수는 고작 수천 개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러한 곳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태양, 아니 태양들이 뜨고 지는 것을 계속 보겠지만, 태양들이 진다고 해서 깜깜한 밤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 P383
영국 더럼 Durham 의 토머스 라이트라든가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의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같은 학자는 이미 18세기에 망원경을 통해서 세련된 나선 형태의 빛을 발하는 성운들을 밤하늘에서 알아보고, 이것들이 우리 은하와 같은 존재의 은하라는 예감을 가졌다. - P383
칸트는 안드로메다자리에 보이는 M 31이 수많은 별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은하일 것이라는 구체적 제안을 확실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나선형 성운에 "섬 우주 island universe"라는 멋들어진 이름까지 지어줬다. - P383
한편, 나선형 성운이 우리 은하 바깥에 멀리 떨어져 있는 섬 우주가 아니라, 은하수 은하 내부에서 중력 수축 중에 있는 성간운이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중력 수축의 결과물로서 어쩌면 새로운 태양계들이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결국 나선형 성운까지의 거리 측정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었고, 이를 위해서 무척 밝은 새로운 부류의 변광성이 필요했다. 기준성의 광도가 높을수록 거리 측정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 P383
에드윈 허블 Edwin Hubble이 1924년에 드디어 M 31에서 그러한 변광성을 찾아냈다. 이러한 변광성들의 평균 겉보기 밝기와 원래 밝기를 비교하여, 그는 M 31이 어림잡아 200만 광년은 조금 넘는 매우 먼 거리에 있다고 규명했다. 만일 M 31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다면, M 31의 실제 크기는 은하수 은하의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성간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큰 것일 터였다. 그러므로 나선형 성운 M 31도 하나의 어엿한 은하였던 것이다. - P383
하늘에는 훨씬 더 흐리게 보이는 성운들이 많이 널려 있다. 더 흐리다는 것은 더 멀리 떨어져 있음을 뜻한다. 코스모스의 광막한 어둠 속에는 1000억 개가 넘는 엄청난 수의 은하들이 널리 흩어져 있는 것이다. - P384
우리는 "우주에서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이라는 질문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행성에 살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행성은 따분할 정도로 그저 그런 별에 속해 있다. - P384
태양이라는 이름의 그 별은 은하의 변방, 두 개의 나선 팔 사이에 잊혀진 듯이 버려져 있다. - P384
태양이 속해 있는 은하라는 것도 뭐 그리 대단한 존재도 못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주의 후미진 구석을 차지하고 겨우 십여 개의 구성원을 거느린, 작은 은하군의 그저 그렇고 그런 ‘식구‘ 일 뿐이다. 그런데 그 우주에는 지구의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수의 은하들이 널려 있다. - P384
우리가 이와 같은 우주적 관점을 갖게 되기까지 우리는 하늘을 보고 머릿속에서 모형을 구축해 보고 그 모형에서 귀결되는 관측 현상들을 예측하고 예측들을 하나하나 검증하고 예측이 실제와 맞지 않을 경우 그 모형을 과감하게 버리면서 모형을 다듬어 왔다. - P384
생각해 보라. 태양은 벌겋게 달아오른 돌멩이였고 별들은 천상의 불꽃이었으며 은하수는 밤하늘의 등뼈였다. - P384
은하의 중심에 막대한 양의 질량이 모여 있으므로, 이 질량이 자아내는 중력의 작용으로 구상 성단들은 은하의 중심을 가운데에 두고 궤도 운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상성단들의 공간 분포를 조사하면 은하의 중심을 찾아낼 수 있다. - P385
우리의 은하수 은하도 나선 팔을 갖고 있다. 많은 수의 별과 성단이 은하수 은하 주위를 둘러싸며 거대한 구형의 별무리를 이룬다. - P385
NGC는 새 일반 목록 New General Catalogue의 머리 글자를 따서 만든 약자이다. - P385
인류사의 위대한 발견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우주에서 인류의 지위는 점점 강등됐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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