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경마장에 있는 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복희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했다고 언급했었다. 오늘도 복희와 관련된 얘기가 계속 이어진다.

처음 밑줄 친 부분에서 복희가 말들과 교감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여기 나온 말 뿐만아니라 어떤 동물이든 간에 그들과 잘 교감하기 위해서는 물론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진심이 담긴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서로 직접적인 언어가 통하진 않더라도 그 내면의 마음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 관계에서도 진심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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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 중간에 우서진이라는 인물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기존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이야기의 포커스가 좀 바뀐듯 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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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계속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들간에 서로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이어졌었는데, 이제는 다시 앞서 한 번 나왔던 보경과 은혜 그리고 연재에 대한 얘기가 각각 이어진다. 앞부분에서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과거의 스토리들을 마치 양파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듯이 하나하나 알게 되는 묘미가 있었다. 또한 각각의 인물들과 연계된 또다른 인물들에 대한 스토리도 알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중구난방식이 아닌 뭔가 체계적으로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간혹 어떤 소설들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들쭉날쭉 나타나서 그들간의 관계도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얘기 할 수 있을 듯하다.

복희는 천천히 목덜미를 쓸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말의 체온과 숨결을 더 자세하게 느끼기 위해 선배의 목소리를 따라 눈을 감고, 소리가 피부를 통해 전달될 수 있도록 낮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경주마는 수명이 짧다. 선수로서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수명이 짧았다.

달리지 못하는 말은 말이 아니다.

인간 역시 이따금씩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때가 있었으나 언제나 회생 가능했다. 하지만 말은 말 취급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말은 지구에서 살아갈 이유를 얻지 못했다.

투데이의 병명은 퇴행성관절염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관절을 많이 쓴 결과였다. 연골은 소실되었으며 활막은 염증으로 가득 찼다. 지금쯤이면 걸을 때마다 뼈가 부딪치는 통증을 느낄 거였고 조금 더 지나면 골 미란이 진행될 것이다.

베팅금으로 마방세를 내지 못하는 말들은 얼른 방을 비워주어야 했다. 그래야 더 어리고 빠른 말들이 들어와 돈을 벌어다주기 때문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요, 달릴 때 저 애한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라요. 무작정 빠르게 달리기 위해 다리를 뻗는 것이 아니라 그 발짓이 우아해요. 발레하는 흑조 같아요. 동물 흑조 말고요. 흑조를 연기하는 발레리나요."

우아하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보법 때문일 테고 또 다른 하나는 흑진주처럼 빛나는 투데이의 검은 털 덕분이리라. 복희는 투데이가 달릴 때마다 요동쳤을 검은 물결을 상상했다. 그 역동적인 빛의 물결이 은혜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리라.

"달릴 수 있을 거야."
부질없는 위로였다. 밧줄이 필요한 사람에게 휴지를 뽑아 내민 기분이었다.

"슬프지만 아무것도 못 해주는 주제에 슬퍼하는 것도 웃긴 것 같아서 그냥 보고 있어요."

"취재정신 좋은데 준법정신은 있어야죠."

극이 끝나면 우연히 만났던 두 사람은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앱이 업데이트되는 속도가 동물의 멸종 속도와 같대요. 제가 앱 하나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지구상의 어떤 동물이 완전히 멸종한다는 괴상한 말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꺼낸 지난날을 굳이 수면 위로 올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얹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보호받지 못하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자유를 주다니. 복희는 그것 역시도 착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 여겼다.

서울에 서울숲이 있고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듯이 지구에는 아마존이 있었고 동물들에게는 마사이마라가 있었다. 케냐에서는 마사이마라로 불렸고 탄자니아에서는 세렝게티라고 불렸다.

진화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결과물일 뿐이다.

보경은 단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느끼는 다급함과 초조함이 싫었다. 그러니 모든 일은 예정보다 조금 더 일찍, 버스를 놓치거나 영화 관람 시간에 늦는 일이 없도록 부지런을 떨었을 뿐이었다.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

숨통을 조이는 순간 분명 어느 한 곳이 짓무르기 시작할 거라고 믿었다.

정말로 다급하게 손을 뻗을 때에만 아이들의 SOS를 놓치지 않고 들으면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리라. 섣부른 판단과 간섭은 아이를 답답하게 할 뿐이었다.

보이지 않으면 무엇이든 더 생생해졌다. 상상도, 소리도.

그리움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을 예견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게 준비라도 할 텐데, 친절하지 못했던 이별처럼 그리움도 불친절하게 찾아왔다.

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설령 살이 찢길 정도로 이를 악문 채 버티고 서 있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보호자가 힘을 내야 합니다. 모든 병은 결국 병과 환자, 그리고 보호자 셋의 싸움이거든요.

긴 병은 가족 사이의 부채負債를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잖은 상처를 줬지만 그 상처를 해결할 틈도 없이 또 새로운 상처가 쌓였고, 이전에 쌓였던 상처는 자연스럽게 묻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충분히 빚을 덜어낼 기회가 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끝이 있는 고난이라 다독일 수 있었다.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해 아주 처절하게 울었다.

그 일은 애초에 보경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문제였으므로 탓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많았다. 억울하다고 소리치며 삿대질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손가락이 보경의 가슴을 찔렀다. 날카롭게 파고들어 기어코 상처를 덮어둔 가슴을 짓이겼다.

그날 이후로 보경과 은혜 사이에는 갚을 수 없는 부채가 쌓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결국 서로가 떠안고 있어야 했다.

조금만 게으르면 모든 걸 놓치는 시대가 아니던가.

역시나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먼지가 금방 쌓였다.

또다시 저 박스에 든 것이 무엇인지 잊을 때쯤 찾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잊고 살리라 다짐했다.

속는 척했다. 속는 척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속아질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본인 인생은 본인이 알아서 보듬으세요.

유전성 질환인 푹스내피이상증으로 각막내피세포의 감소가 일반인보다 몇 배는 빠르다는 주원은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미안함이나 고마움 따위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사람 사이에 당연하게 일어나는 화음 같은 것.

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눈물이 날 정도로 속이 엉망이지만 울면 더 엉망이 될 것이다. 시원하게 울었지만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평생토록 울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우는 건 그만두어야 했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안 해서 어쩔 건데?‘

‘징징거려봤자 너만 피곤해‘

속을 갉아먹고 얻은 힘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정한 말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때는 도망치는 기간을 정해뒀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정확한 날짜를 정해두지 않으니 돌아가는 날이 점점 미뤄졌다.

가끔 세상은 은혜가 들어갈 틈 없이 맞물린 톱니바퀴 같았다. 애초에 은혜가 들어갈 수 없게 조립된 로봇 같았다. 그런 세상에 제대로 한 방을 날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때마다 분에 못 이겨 경마장을 찾았다.

투데이는 은혜만의 대나무 숲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비밀이 보장되는 유일한 속마음의 창구였다. 그런 투데이가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어."

울어서 해결되는 일은 없다.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꾸역꾸역 참아내며 다짐하듯 말했다.
"내가 너를 놓지 않을 거야."

나는 강하다. 나는, 지킬 수 있다.

"보고 싶은데 꼭 이유가 필요해? 되게 이상한 걸 물어본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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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다른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구성 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느껴졌다. 보통은 하나의 흐름이 쭉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책에서는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또는 로봇의 입장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서술한 것이 개인적으로 독특하다고 느껴졌다.

대략적인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콜리와 연재 그리고 연재의 엄마인 보경, 연재의 누나 은혜 등과 같은 인물들 각각의 스토리들이 소개되는데, 이것들 중에는 각 캐릭터들만의 고유의 스토리도 있지만, 등장인물들간에 겹치는 사건 등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이야기의 맥을 중간에 놓치지 않고 쭉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연재의 엄마인 보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오는데, 읽어보면서 캐릭터별로 어떤 기질과 특징이 있는지를 좀 더 파악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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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보경이라는 인물은 과거에 배우로 활동했을 정도로 외모가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얼굴에 상처가 생기고 이로 인해 왕성했던 배우활동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외면의 상처뿐만 아니라 내면의 상처까지 유발시키고 말았는데, 어떤 일이 발단이 되어 그 상처들을 조금씩 회복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회복도 잠시였다. 예상치 못했던 또다른 일로 인해 다시 마음에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된다.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꿈꿔왔던 삶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데, 참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하나 내 마음이나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기 정말 힘들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내가 꿈꾸는대로 인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루 다 말하기 힘들정도로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데, 솔직히 이런 요건들을 완벽하게 갖추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작년에 읽었던 유현준 교수의 책에서 저자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정확한 문장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핵심은 바로 ‘차선이 모여서 최선이 된다‘는 말이었다. 내가 매번 최선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기에 내가 생각했던 최선보다는 조금 못미치는 차선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이런 선택들이 모여서 결과적으로 최선을 만들어간다는 말이다. 실제로 유현준 교수도 자신의 책에 고백한 바에 따르면 ‘자기 인생도 결코 자신이 처음에 생각하고 꿈꿨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선책을 선택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 비록 못마땅하거나 꿈꿔왔던 것과는 차이가 있더라도 그 처한 상황에서의 최선을 늘 추구하는 것이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냥 힘겹다고 인생의 끈을 무작정 놓을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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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지수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지수는 연재와 같은 반 친구인데, 가정형편이 평범한 연재와는 달리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으로 영어 유치원은 물론이고, 외국 생활까지 하다 온 친구였다. 물론 연재도 특정 분야에 있어 특출난 재능이 있었지만 그외의 것들에 있어서는 지수보다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연재는 자신과 나이는 같지만 여러면에서 앞서있는 지수같은 친구들을 보며 자괴감이 들곤 하는데, 이것이 비단 이 소설 속 연재만의 느낌은 아닐 듯하다. 특출난 극소수의 인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보았을 고민이지 않을까?

하지만 연재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했던 지수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연재와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는데, 이런 걸 보면서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는 소설 속 설정 상 어느정도 의도된 것이겠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딱히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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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복희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 인물은 기존에 나왔던 인물들과는 별개로 경마장의 말을 관리하는 사람인듯 보이는데, 뒤에 이어질 내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예쁨 받는데 더 많은 사람에게 왜 예쁨 못받겠어?‘ 라는 생각

모친은 인생의 2막이란 원래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보경이 보기에는 시대의 흐름에 탑승하지 못한 예견된 추락일 뿐이었다.

여기가 왜 지하인줄 알겠어?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니까, 이곳에 네가 뿌리를 내려야 지상에 꽃으로 필 수 있다는 말이야.

인간은 숨이 끊겼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삶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게 생겼다. 선남선녀가 목숨을 계기로 만났으니 사랑에 빠지기는 쉬웠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꽤 가쁘게 흘러갔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자 자연스럽게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난 사람은 편안했다.

"3%였잖아요."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꺼진다고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니까요. 3%라는 뜻은 말 그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에요."

소방관과 약지에 반지를 나눠 낀 후부터 보경의 삶은 자신이 그려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배우의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다급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시선보다 단 한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3%도 살았는데 80%는 왜 못살아. 당신 왜 이러고 있어."

모친의 요리 솜씨로 시작됐던 인생은 긴 레일을 돌고 돌아 다시 모친의 요리로 돌아왔다.

요리는 연구하지 않아도 혀가 시키는대로 따라가면 금세 모친이 내던 맛이 났다.

죽음이 확률로 계산되지 않고 예견되지 않는 날들을 쭉 누릴 생각이었다. 연재가 쓰레기같은 기수 휴머노이드를 데리고 오기 전까지는.

"쟤가 뭐를 저렇게 갖고 싶어 한 게 처음인 것 같아서."

예전에는 휴머노이드가 갑자기 나타나서 멀쩡히 은행에 다니던 사람을 밖으로 내쫓더니 이제는 제 딸이 다 망가진 휴머노이드를 가지고 왔다. 어쩐지 눈은 뜨고 있으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빼앗긴 적 없는데 빼앗긴 기분이었고 버려진 적 없으나 버려진 기분이었다. 휴머노이드를 보면 그랬다.

사람은 이따금씩 강렬하게 무언가에 끌렸다. 그게 사람일 수도, 사랑일 수도, 음악일 수도, 물건일 수도 있었다. 그 강렬한 끌림 앞에서는 무엇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월급을 전부 꼬라박을 정도의 강렬한 끌림을, 어제 연재는 다 망가진 콜리를 보고 느꼈으리라.

때때로 어떤 일들은, 만연해질수록 법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일에서 손을 놓아버리고는 했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휠체어를 끌어주는 휴머노이드나 사이보그 다리가 아니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너무 많이 바뀌어야 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어떤 것도,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다 왔잖아. 조금만 더 힘내.

반드시 그곳에 가리라는 마음을 먹자 몸에 힘이 생겼다.

완벽한 차단이란 존재하지 않으리라. 분명 어느 틈으로는 그 화려한 경기를 볼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그 믿음은 오래 걸리지 않아 현실이 됐다.

가족 둘이 모이면 다른 가족의 흉을 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대화가 흘렀다.

가족의 대화란 게 또 그렇듯이 주제도 흐름도 없이 그때그때 튀어나왔다.

"시긴 진짜 빨리도 간다. 1년이 하루처럼 흐르는 것 같아. 징그럽게 빨리도 가."

은혜가 그곳에 오래도록 있고 싶어서 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공간이 은혜가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gyro sensor. 기본적으로 회전하는 물체의 역학운동을 이용한 개념으로 위치 측정과 방향 설정 등에 활용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리모컨, 비행기나 위성의 자세 제어 장치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플라스틱보다 가벼운 카본

들개는 살아 있었다. 숨은 쉬고 있지 않지만 살아 있는 지상의 어떤 생명과도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일부러 할 말 없게 대화를 툭툭 끊는 것

"말하는 꼬라지 진짜 별로다."

다르파가 네 발 달린 휴머노이드라는 걸

어쩔 수 없는 차이는 숨겨지지 않았다.

급이 높은 아이들의 진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다는 것에 있었다.

"좋아. 내가 오늘부터 아주 끝장나게 너랑 친구해준다."

희박한 반전에 기대를 걸 만큼 체력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그러니 연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것.

삶의 격차라는 것이 어느 틈을 비집고 생기는 것인지 한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똑같이 학교에 다니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부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아이들에게는 다가갈 수조차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우리 부모님도 돈을 벌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같은 나이에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까.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각기 다른 몸값을 지니고 나왔다. 연재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세상은 연재와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탄생시켰다. 그제야 삶의 격차가 어느 틈을 비집고 생겼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연재의 균열이라기보다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보다 더 먼 부모님의 삶 어디에선가부터 천천히 시작된 균열일 것이다. 연재가 스스로 절대 여밀 수 없는 크기로 말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힘은 결국 문명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냥 처음부터 같이 가면 될 걸 미련하게 힘을 왜 빼."

"요즘 세상에 공부만 잘해도 모자랄 판에 공부 빼고 다른 거 다 잘해서 뭐 먹고 살 건데?"

이제 찌를 던져 낚시 바늘을 틈에 걸기만 하면 됐다. 지수가 팔짱을 꼈다. 아빠에게서 들은 거래의 기술 중 하나인데, 본디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면 그만큼 매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인생이 언제 한 번쯤 순탄하게 풀리나 생각했는데 그날이 오늘인가 싶었다.

사람들은 돌고래의 지능은 익히 알면서도 말 역시 돌고래와 지능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했다. 말은 인간으로 치자면 6세 정도의 아이큐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손에는 말들이 좋아하는 당근과 각설탕을 함께 준비했다. 각설탕이 말에게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단걸 좋아하는 말들에게 각설탕은 스트레스를 최단시간 안에 풀어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당보다는 스트레스가 최악이었다.

선배는 말의 목덜미를 두드리며 복희에게 이곳을 쓸어보라고, 만져주면 가장 좋아하는 부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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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서로 철저하게 나뉘어져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었다. 또한 두 분야가 철저히 나뉘어 있다보니 오해와 충돌이 반복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었다.

독자인 나는 여기서 서로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을 때 오해와 충돌이 반복된다는 얘기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와닿았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간에 어떤 오해가 있을 때 이것을 대화나 기타 방법 등을 활용하여 그때그때 해결하지 않으면 그 오해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불어나서 그 오해가 점점 커지고 그러다가 마치 풍선이 빵하고 터지듯이 서로간에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원리로 갈등을 겪었다가 결국엔 대화를 통해 관계가 호전되었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기에 더 그러지 않았나 싶다. 해당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까지는 하기 힘들지만 그때의 기억을 잠시 더듬어보자면 초반에는 대화가 오가기는 커녕 서로간에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해가 쌓이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결국 내 쪽과 상대방 쪽 모두 심리적으로 힘들어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특정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대화의 물고가 터졌고, 오해를 품과 동시에 악화되었던 관계가 좋은 쪽으로 개선되었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사건이긴 하지만 결국 오해를 키우지 않기 위해선 가만히 있으면서 시간을 지체하기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상대방을 만나서 서로 대화하고 상대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잠시 곁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늘 시작하는 포스팅에서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두 분야가 서로 이해하기 힘든 근본 원인에 대한 저자의 지적이 나온다. 가장 먼저 저자는 두 분야 간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공통된 언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상대방의 언어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느 한 쪽이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바를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작업이 1차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 직접적으로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이와 관련하여 그냥 개인적으로 문득 떠오른 사례 중 하나는 세종대왕이 한자를 어려워하는 백성들에게 훈민정음을 만들어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한자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우니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만든 것이다.

이 사례를 오늘의 본문 내용에 빗대어 생각해보자면, 과학자들이 자신들은 잘 알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분야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을 보면 그저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과학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사람들을 가리켜 ‘과학 커뮤니케이터‘ 라는 용어로 지칭한다. 요즘으로 치면 과학 유튜버로 유명한 ‘궤도‘ 같은 사람이 해당될 수 있겠다.

어쨌든 이런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을 통해 과학을 낯설고 어렵게만 느끼던 사람들이 과학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그 내용들을 이해해보려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오지랖일수도 있는데 여기서 좀 더 생각을 확장시켜보자면 자기 분야 이외의 것들을 이해함으로써 단지 자기 혹은 자기 분야만 생각하던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과 생각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사회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이런 노력들이 조금씩 쌓이고 쌓여서 학문의 분야를 막론하고 그 경계가 허물어져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통섭‘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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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에서 저자는 자신이 주로 얘기하는 진화론에 상대되는 이론인 일명 창조론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다. 창조론은 성경에서 언급된 것처럼 신에 의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포괄적으로 통칭하는 것인데, 저자는 이 창조론이 객관적으로 드러난 증거들에 근거한 진화론에 비하면 객관성이 상당부분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독자인 나는 이 논쟁에 대해서는 본문에 나온 내용과 저자의 생각만을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내가 어떤 전문 과학자나 신학자가 아니기에 관련 지식도 턱없이 부족한 사람인데, 이런 논쟁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크게 의미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나 진화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성경말씀을 믿는 신학자를 비롯한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 그 누구든 간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잘 생각하고 판단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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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서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유전자가 진화함과 동시에 문화도 진화해나간다는 것을 지칭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유전자의 기본 단위를 탐구하는 것과 유사하게 문화의 기본 단위를 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선 각종 다양한 설들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통해 확인하는 게 좋을 듯하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문화의 기본 단위를 찾기 위해 캐나다의 뇌과학자 엔델 털빙(Endel Tulving)이 제시한 ‘일화 기억‘과 ‘의미 기억‘ 이라는 것의 기본 개념에 대해 소개되어 있다. 이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추가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모든 학자들, 즉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 그리고 인문학자가 하나의 공통된 창조적 정신에 따라 활기차게 활동한다는 해묵은 만병통치약은 계속 이야기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그들은 창조적인 자매들일지는 몰라도 공통된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 P231

학문의 커다란 가지들을 통합하고 문화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과학 문화와 인문학 문화 간의 경계를 국경으로 보지 않고 양쪽의 협동 작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미개척지로 보는 방법뿐이다. - P231

오해는 미개척지를 무시할 때 발생하는 것이지 정신구조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 P231

우리 인류가 유전적 진화에 병행하여 문화적 진화를 덧붙였으며 이 두 진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견해(유전자-문화 공진화, gene-culture coevolution) - P232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 인간 두뇌의 산물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결은 유동적이다. 얼마나 그런지는 불명확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 연결은 편향되어 있다. 즉 유전자는 인지 발달의 신경 회로와 규칙적인 후성 규칙(後成規則, epigenetic rules) 을 만들어 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 P232

마음은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성장한다. 물론 자기 주변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개체의 두뇌를 통해 유전된 후성 규칙들의 안내를 받아 이뤄진다. - P232

뱀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매혹을 이끌어 내는 선천적 경향은 후성 규칙이다. 문화는 은유와 서사를 창조하는 그 공포와 매혹에 의존한다. - P232

문화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부분으로서 각 세대 구성원 개인의 마음 속에서 집합적으로 재구성된다. 구전 전통이 글쓰기와 예술을 통해 증보되면 문화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고 세대를 건너 뛸 수도 있다. 그러나 후성 규칙이 주는 영향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인 것이며 제거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하게 유지된다. - P232

어떤 이들은 주변 문화와 환경에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해 주는 후성 규칙들을 대물림한다. 그리고 그런 규칙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이나 있어도 약한 규칙을 가진 이들은 생존과 번식에서 밀려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좀 더 성공적인 후성 규칙들은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과 함께 개체군 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 두뇌의 해부 생리적 구조가 진화해 왔듯이 행동도 자연선택에 의해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다. - P233

어떤 문화 규범은 경합하는 다른 규범들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한다. 이 때문에 문화는 유전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하지만 그 속도는 일반적으로 훨씬 더 빠르다.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연결은 더 느슨해진다. 하지만 그런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법은 없다. 문화는 정확한 유전적 처방 없이 고안되고 전달되는 정교한 적응들을 통해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P233

뱀과 몽사는 유전자 · 문화 공진화의 분명한 사례이다. 문화 속에 몽사와 그 상징이 얼마나 많이 깃들어 있는지는 그 환경 속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진짜 독사가 살고 있는지와 상관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독사들은 후성 규칙에 의해 주어지는 공포와 매혹의 힘 덕분에 신화적 의미도 쉽게 얻는다. 즉 그 독사들은 문화에 따라 때로는 치유자, 전령, 악마, 또는 신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 P234

유전자 · 문화 공진화는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 과정의 특수한 확장이다. - P234

생물학자들은 대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의 진화의 배후에 자연선택이라는 일차적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 힘은 조상 호미니드 종이 침팬지를 닮은 원시 계통에서부터 분리된 이래 500만 년 혹은 600만 년에 걸쳐 호모 사피엔스를 창조해 낸 원동력이었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는 근거 없는 가설이 아니다. - P234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유전 변이는 원리적으로 분자 수준에서 잘 이해된다. - P234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란 무엇인가? 언젠가 프랑스 생물학자 자크 모노(Jacques Monod)는 데모크리토스의 말을 빌려 "우연과 필연"이라고 간략히 말한 바 있다. - P234

같은 유전자의 다른 형태들(대립 유전자)은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긴 DNA 서열의 무작위적 변이(돌연변이)를 통해 생겨난다. DNA 서열의 몇 지점들에서 이렇게 변이가 생기고 대립 유전자가 유성 생식의 재조합 과정에서 섞임으로써 유전자들의 새로운 혼합이 매 세대마다 새롭게 창조된다. 이때 개체의 생존과 번식을 강화해 주는 대립 유전자는 개체군 내에 퍼지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사라진다. - P235

우연한 돌연변이는 진화의 원료이다. 한편, 환경의 도전은 어떤 돌연변이들이 살아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며 다양한 유전적 원료들을 사용해서 우리를 한 번 더 빚어 낸다. - P235

세대를 충분히 거치면 변이와 재조합은 개체군 내에서 거의 무한정한 유전적 변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인간 유전체 내의 1만 5000~10만 개의 유전자 중에서 단지 1,000개의 유전자가 두 가지 형태로 개체군 내에서 존재한다고 해 보자. 그렇게 되면 상상할 수 있는 유전자 재조합의 수는 10^500개인데 이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들의 수보다 많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일란성 쌍둥이인 경우를 제외하면 두 인간이 동일한 유전자들을 공유할 확률, 또는 두 인간이 동일한 유전자들을 호미니드 계통의 진화를 통해 공유할 확률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다. - P235

각 세대마다 부모의 염색체와 유전자는 한데 섞여 새로운 혼합체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런 재배열이 그 자체로 진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진화에도 일관된 원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연선택이 바로 그런 힘이다. - P235

특정한 해부학적 구조, 생리, 행동을 규정하는 유전자들 때문에 그 개체가 생존과 번식을 더 잘하게 된다면 그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서 점점 많아질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 유전자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생존과 번식을 더 잘하는 개체군도 경쟁하는 다른 개체군들에 비해 더 번성한다. 심지어 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 P235

만일 기적을 믿는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예컨대 신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단 한번에 완전한 형태로 불과 몇천 년 전에 창조했을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은 지구 구석구석에 절묘한 거짓 증거들을 끝도 없이 펼쳐 놓은 이상한 존재가 된다. 그는 그 증거들을 통해 우리를 생명이 몇십억 년 전부터 진화해 왔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기묘한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신약과 구약의 신은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고압적이고 거절도 하고 불같이 화도 내는 신비로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결코 교묘하게 남을 속이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 P236

구체적인 사실들을 잘 알고 있는 생물학자들은 인류 진화의 증거를 전혀 의심하지 않으며 그 진화를 지휘한 힘이 자연선택이라는 사실에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적어도 진화를 설명할 때 꼭 언급해야 할 다른 힘이 있다. 예컨대 DNA의 몇 문자들과 그것에 따라 암호화된 단백질은 긴 기간을 지나면서 우연만으로도 대체될 수 있다. - P236

변화가 너무 점진적으로 일어나서 개체의 진화 계통 나이들을 충분히 측정할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은 세포, 개체 그리고 사회 수준에서 일어나는 진화에 관해 새로운 정보를 더해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동에 개입된 돌연변이는 대체로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런 돌연변이는 상위 수준의 조직들(예컨대, 세포나 유기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P237

문제를 가능한 한 간결하게 하자. - P237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방식은 유전적 진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진화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두 종류의 진화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의 제지를 받기도 하고 사회적 선과 악을 생각하기도 한다. - P237

문화라고 불리는 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창조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초유기체는 정확히 무엇인가? 우선 수많은 사례들을 분석해 온 인류학자들이 이 질문에 답을 해 줘야 한다. 그들은 문화를 삶의 총체적인 방식으로 본다. 즉 종교, 신화, 예술, 기술, 스포츠를 비롯한 모든 체계적 지식으로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그 무엇의 총체가 문화이다. - P237

"문화는 하나의 산물이다. 그리고 역사적이며 아이디어, 패턴, 가치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선택적이고 학습되며 기호들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행동으로부터의 추상이며 행동의 산물들이다." - P237

문화는 또한 전일적이다. 왜냐하면 "분리된 부분들과 대량의 유입물들이 그 속에서 작동 가능한 하나의 체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부분들 가운데에는 인공물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대상들은 인간 마음속에서 개념들로 표상될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 P237

사회 이론 분야에서 20세기를 풍미했던 극단적 후천주의자(nurturalist)들은 문화를 어떻게 볼까? 그들에 따르면 문화는 유전자로부터 출발하기는 했으나 자율적인 존재가 되었다. 들불이 작은 성냥에서 시작되듯 문화는 그 자체로 자율성을 갖게 되면서 창발적 속성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창발적 속성들은 문화를 일으킨 유전적이고 심리적인 과정들과는 더 이상 관련이 없다. 따라서 모든 문화는 문화로부터 온다! - P238

각 사회가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문화에 의해 창조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선물을 교환하고 음식과 술을 나누고 장식을 하고 서로 돌보고 음악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행위들을 통해 기호를 공유하는 마음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것은 외부 실재를 지배하는 공상의 세계로 집단을 통합한다. 사막, 초원, 빙원, 도시 어디건 상관없이 집단은 공상의 세계에서 구성원들을 운명 공동체로 묶어 주는 도덕적 합의와 의식의 그물을 친다. - P238

문화는 생산적인 언어로 만들어진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의적인 단어와 기호의 집합이다. 이런 측면에서 호모사피엔스는 독특하다. 인간 아닌 동물들도 의사소통 체계를 가지고 있다. 매우 정교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동물들은 그 체계를 만들거나 다른 개체들에게 가르치지는 않는다. - P238

인간이 사투리를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노래하는 새의 경우에도 방언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 의사소통 체계는 본능적이며 따라서 세대를 거치면서 변하지 않는다. 꿀벌의 꼬리춤(waggle dance)과 개미의 냄새길은 기호적 요소들을 포함하며 그런 능력과 의미는 유전자에 의해서 정교하게 규정될 뿐 학습을 통해서 변화되지는 않는다. - P238

동물들 중에서 대형 유인원 (great apes, 유인원 중에서 덩치가 큰 동물들을 뜻하는 말로서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보노보 그리고 인간이 여기에 속한다.)만이 진짜 언어 능력에 접근해 있다. 침팬지와 고릴라가 기호들이 표시된 판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으면 그들은 임의의 기호들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 P239

보더 콜리(border collies,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 지방의 목양견.) - P239

보노보를 비롯한 다른 대형 유인원은 동물의 기준으로는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만 한 가지 점에서 인간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그들은 기호 언어를 사용할 수는 있어도 인간처럼 그것을 발명할 수는 없다. - P240

침팬지들은 인간과 유사하게 교활하고 기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동물 중에서 "마키아벨리적 지능(Machiavellian intelligence)"이 가장 뛰어난 존재이다. ...(중략)... 침팬지들은 이합집산에 능하고 권모술수가 뛰어나다. 침팬지는 자신의 의도를 목소리 신호와 자세, 몸의 움직임, 얼굴 표정, 털 곤두세우기 등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를 닮았거나 육체적 제약이 없는 다른 형태의 기호 언어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 P240

사실 대형 유인원은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하게 지낸다.  ...(중략)... "열 마리의 야생 침팬지들이 성별과 나이에 맞게 짝을 지어 곰비 (Gombe) 강 유역의 무화과나무 위에서 평화롭게 먹이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팬지를 관찰한 경험이 없는 이들은 그 나무 밑을 지나간다 해도 그들이 있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 P240

호모 사피엔스는 그야말로 수다쟁이 유인원이다. 인간은 언제나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에게는 말을 하게 하는 일이 입을 다물게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쉽다. - P240

인간은 유아기에 어른들과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말하기를 시작한다. 그때 어른들은 감정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매우 느리며 모음이 많은 단조로운 ‘엄마말(motherese)‘로 아기들을 상대한다. 혼자 있을 때에도 아기들은 앙앙울고 킥킥거리며 일명 ‘아기말(crib speech)‘이라고 불리는 단음절을 계속해서 내뱉는다. 그리고 그런 말을 몇 달간 하고 나면 그들은 복잡한 단어와 어구를 구사하게 된다. 이때쯤에 유아가 구사하는 말의 레퍼토리는 어른의 어휘 수준에 거의 육박한다. 이 레퍼토리는 지겹도록 반복되고 수정되며 실험적으로 혼합된다. 네 살이 되면 평균적으로 어린이들은 문법을 정복한다. 그리고 여섯 살이 되면 미국 어린이들은 적어도 1만 4000단어 정도를 구사할 수 있다. - P241

반면 어린 보노보들은 움직임, 소리, 때로는 기호를 가지고 자유롭게 놀고 실험도 해 보지만 칸지 수준으로 언어 능력이 향상되려면 인간 조련사에 의해 풍부한 언어 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아야 한다. - P241

인간의 아기는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모방의 귀재이다. 그들은 태어난 지 40분 만에 혀를 불쑥 내밀며 어른의 움직임을 따라 머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인다. 12일이 지나면 그들은 복잡한 얼굴 표정과 손동작을 흉내 낸다. 두 살이 되면 말로 하는 설명을 알아들으며 단순한 도구를 사용한다. - P242

언어 본능에 대해서 말하자면 인간은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흉내 낼 수 있으며 엄청난 수다쟁이이다. 문법은 거의 자동적으로 정복하며 엄청난 수의 어휘를 손쉽게 획득한다. 이 본능은 어떤 다른 동물들도 따라올 수 없는 정신 능력에 기반을 둔 인간 고유의 속성임에 틀림없다. - P243

인간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행동은 화석으로 남지않는다. ...(중략)... 대신 고생물학자들은 인류의 발성 구조가 변해 왔음을 말해 주는 화석 뼈들을 가지고 있다. 그 뼈들은 인간의 후두가 침팬지보다 더 밑으로 내려오고 길이도 길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들은 두개골 안쪽에 들어 있는 뇌의 언어 영역에도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 P243

고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사용한 인공물들이 꾸준히 향상되어 왔다는 증거들도 얻었다. 예컨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ius)는 45만년 전에 불을 통제하며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25만 년 전 케냐에서 쓸모 있는 도구를 제작했고 16만 년 전에는 콩고에서 잘 다듬어진 창끝과 단검을 만들어 냈으며 3만~2만 년전에는 유럽 남부에서 종교 의식 때 입는 복장과 장신구를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 P243

우리는 현생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해부학적으로는 이미 10만 년 전쯤에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는 사실을 안다. 그때부터 물질문화는 처음에는 서서히 진화하다가 다음에는 팽창했으며 나중에는 폭발했다. - P243

몇 개의 돌과 뼈 도구에서 시작된 인류의 기술은 농경 • 촌락 사회에 도달하고 난 후에는 경이적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만 현재까지 500만 개의 특허가 등록되었다.) 요컨대 문화의 진화는 지수 함수적인 궤적을 따른다. 여기에 신비가 있다. 도대체 기호 언어는 언제 생겼으며 그것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문화 진화를 폭발시켰는가? - P243

유전자 · 문화 공진화의 궤적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선사 시대의 기록을 재구성하는 일은 뒤로 미루고 현생 인류의 두뇌가 문화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탐구하는 편이 낫다. 그 다음으로 좋은 시도는 아마도 문화의 기본 단위를 찾는 작업일 것이다. 비록 그러한 요소가 적어도 전문가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문화의 기본 단위가 존재하며 어떤 특징들을 가질 것인지 등은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 P244

자연과학의 위대한 성공은 각 물리 현상을 그 구성 요소들로 환원함으로써 실제로 이룩되었다. 과학자들은 현상의 전일론적 속성들을 새롭게 조직하기 위해 그것을 구성 요소들로 분해했다. 예컨대 고분자화학의 발전은 유전자가 정확히 어떤 성질을 갖는지를 밝혀냈고 유전자에 근거한 집단유전학 연구는 생물 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가다듬어 주었다. - P244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은 사람을 비롯한 다른 구체적 대상들에 대한 과거의 직접 지각(perception)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마치 영화 속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과 같다. - P244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은 대상과 개념을 다른 대상과 개념에 연결시킴으로써 의미(meaning)를 상기시킨다. 이런 경우에 그 의미가 그 대상과 개념의 이미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이미지를 표시하는 기호를 통해 연결될 수도 있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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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과학의 한계 중 하나로, 물질적 기술이 주관적 경험을 설명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과학과 예술의 역할 차이가 있음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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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에서는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AI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본문에 따르면 AI가 처음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대략 반세기 전부터 라고 한다. 이것을 알고 난 뒤 독자인 나는 최근에 들어 이 연구들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은 이《통섭》이 처음 한국어 판으로 번역되어 쓰인지도 어느덧 햇수로 20년이 되었으니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사람들에게는 최근의 현상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읽은 챕터는 6장 ‘마음‘ 이라는 것인데, 우리의 뇌에서부터 시작해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 그러한 의식들이 모여 마음이 되는 과정을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알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과학자들의 사고방식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면서 조금씩 진화해나가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게 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과인과 이과인이 어떤 문제를 대하는 접근 방법 또는 사고방식이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작년에 개인적으로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에서도 한 번 접해서 머릿속으로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 《통섭》을 읽으면서 그 사실을 좀 더 깊이있게 느낄 수 있었다. 좋게 생각해보자면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을 갖게 되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너무 많은 걸 알게 되다보면 머릿속이 뒤죽박죽될 수도 있기에 약간은 조심스럽기도 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어느정도 선을 넘지는 않는 게 내 신상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드는데는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잠시 얘기가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흐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흐름에 반드시 올라타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냥 휩쓸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파도의 흐름을 잘 타면서 즐기는 바다의 서퍼들처럼, AI라는 바다에서 다가오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나 또한 능수능란한 서퍼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책에서는 과학 기술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조금이라도 얻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듯 싶다. 솔직히 본문 내용이 무슨 소설책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한문장 한문장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나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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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힘겨웠지만 6장을 다 읽고 다음에 나오는 7장에서는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 챕터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문화라는 것이 크게 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 이렇게 2가지로 쪼개져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독자인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짓는 행태가 불현듯 떠올랐다. 본문의 내용을 읽다보면 이렇게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나누는 행태는 비단 대한민국의 교실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 이렇게 나뉘어지고 나서 자기가 속해있는 분야에만 집중하다보니 상대방이 속한 분야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도 모른다는데 있다. 애초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알고 싶지만 알기 힘든 여건들로 인해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쭉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굉장히 안타까워 하는 듯 보인다.

내용이 좀 길어지는 관계로 이와 관련된 추가적인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좀 더 다뤄보겠다.

주관적 경험을 명백히 해 주는 구분은 사실 다른 곳, 즉 과학과 예술의 역할 차이에 있다. 과학은 누가 파란색 같은 감각들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누가 느낄 수 없는지를 가려내고 왜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한다. 반면 예술은 동일한 능력을 가진 개인들 사이에서 느낌을 전달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과학은 느낌을 설명하는 반면 예술은 그것을 전달한다. - P216

대부분의 인간은 색의 전체 스펙트럼을 보고 전뇌를 통해 반사적으로 그 산물을 느낀다. 정상적인 색지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본 패턴들은 명백히 유사하다. 물론 개인적 기억과 문화적 편향에서 비롯된 추억들 때문에 변이들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이런 변이들도 그들의 뇌 활동 패턴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 P216

예술은 비슷하게 인지한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의존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예술이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의사소통되고 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예술 앞에서 정말로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많은 예술 매체들에서 우리가 드러낸 반응들의 축적을 통해 그사실을 직관적으로 안다. 또한 비판적 분석에 의한 감정의 언어적 기술을 통해서, 그리고 방대하지만 미묘한 차이를 갖고 있는 인류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안다. - P217

느낌의 전달을 통해 문화가 공유된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보는 공통적으로 공유된 느낌이 예술을 통해 환기되고 경험될 때 발생하는 감각과 뇌 체계의 역동적 패턴들을 연구하는 과학으로부터 올 것이다. - P217

어떤 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과 예술은 결코 서로 번역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전통적인 지혜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믿는다. 결정적인 연결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과학과 예술의 공통 속성은 정보의 전달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과 예술의 전달 양식이 논리적으로는 동등할 수 있다. - P217

뇌 활동의 시각 패턴으로부터 그림 모양의 언어를 만든다. 그 결과는 한자(漢字) 같은 기호가 늘어서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각각의 기호는 존재자, 과정, 혹은 개념을 표상한다. 그리고 "마음 대본"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새로운 기록이 다른 언어들로 번역된다. 이것을 유창하게 읽어 낼수록 마음 대본은 뇌 영상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읽혀질 수 있다. - P217

청정한 마음 상태에서 자발적인 피험자들이 일화를 이야기하고 꿈속의 모험을 회상하고 시를 암송하고 방정식을 풀며 멜로디를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 그들의 신경 회로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신경과학 기술에 의해서 시각화된다. 관찰자는 종이 위에 잉크로 씌어진 대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직의 전기 패턴으로 기록된 대본을 읽고 있다. 적어도 피험자의 주관적 경험(느낌)들 중 일부는 틀림없이 전달된다. 관찰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웃거나 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마음 패턴으로부터 주관적 반응들을 상대방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뇌는 상대방의 뇌 활동을 직접 지각함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 P218

이것이 가능하다면 의사소통을 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이 같은 식탁에 함께 앉아 있건 아니면 다른 방에 따로 있건 아니면 심지어 다른 도시에 있건 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초감각 감지와도 유사하지만 단지 피상적으로만 그렇다. 첫 번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린 자기 패를 보고 있다. 신경 심상만으로도 두 번째 사람은 그 사람의 패를 정확히 읽어 낸다. 첫 번째 사람이 소설을 읽으면 두 번째 사람은 그 속의 이야기를 뒤따라 갈 수 있다. - P218

마음 대본의 전달은 사용자들의 문화가 얼마나 공통적인지에 따라 정확도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언어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공통된 부분이 적다면 그 대본은 수백 가지 특성들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테지만 그 부분이 광범위하다면그 어휘 목록들은 수천 가지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가장 효과적인 경우에 마음 대본은 특정한 문화와 각 개인의 마음의 독특한 억양과 꾸밈도 전달하게 될 것이다. - P218

마음 대본은 중국의 서예와 비슷할 것이다. 사실적 · 개념적 정보의 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동양 문명의 위대한 예술 형태중의 하나인 서예 말이다. 표의문자에는 글쓴이와 글을 읽는 이들이 공유하는 주관적 경험들에 따라 미묘한 변이들을 줄 수 있는 미학적 다양성이 숨쉬고 있다. - P218

"서예에 사용되는 비단이나 종이는 흡수성을 가진다. 서예가는 붓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놀리지만 한번 쓰면 지우거나 되돌릴 수 없다. 붓은 마치 마음의 지진계와도 같다. 압력과 손목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예는 마치 그림처럼 공간의 예술이면서 음악과도 같이 시간에 따라 펼쳐진다. 또한 마치 춤처럼 역동적인 리듬을 탄다." - P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난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일 마음이 물리 법칙들에 묶여 있다면 그리고 마음이 서예처럼 해독될 수 있다면 자유 의지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여기서 나는 자유 의지의 일상적인 의미, 즉 다른 이들과 세계의 다른 부분들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대신 자신의 몸과 마음의 물리학·화학적 상태가 부과하는 제약들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P219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의지란 의식적 마음을 구성하는 시나리오들 간의 경쟁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이다. - P219

우세한 시나리오들은 감정 회로들을 환기시킴으로써 공상이 일어나는 동안에 그 회로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 시나리오들은 마음 전반을 활기차게 만들고 집중시키며 몸이 특정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자아는 그런 선택을 하는 듯이 보이는 존재자이다. - P219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는 뇌로부터 독립된 존재자가 아니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기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나리오들의 극 중 주인공이다. 자아는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심 무대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감각들은 몸속에 위치해 있고 그 몸은 모든 의식적 행동들의 통치를 표상하도록 마음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와 몸은 분리될 수 없도록 융합되어 있다. - P219

자아를 시나리오와 독립적으로 창조된 무엇으로 보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자아는 몸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몸도 자아 없이는 오랫동안 생존하기 힘들다. - P220

몸과 자아의 연합은 너무 강해서 물질적 대응물이 없이 영혼만이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배워 왔듯이 심지어 예수와 마리아까지도 몸을 가지고 천국으로 올라갔다. 물론 천상의 속성을 가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몸은 몸이었다. - P220

만일 자연주의적인 마음 이론이 모든 경험적 증거들이 보여 주듯이 정말 옳다면, 그리고 전통 신학에서 말하는 영혼 같은 것도 실제로 존재한다면 신학은 해결되어야 할 새로운 신비를 갖게 될 것이다. 비물질적인 영혼이 마음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지만 몸에서는 분리될 수 없다는 신비를 도대체 어떻게 풀 것인가? - P220

끊임없이 변화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자아는 자신의 행동들을 완벽하게 조종하지는 못한다. 자아는 의식적인 순수 이성적인 선택만으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20

의사 결정을 위한 많은 계산들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꼭두각시 자아를 춤추게 할 수 있는 끈이 존재한다. 예컨대 신경 회로와 분자적 과정은 의식적 사고 밖에 존재한다. 그것들은 어떤 기억들을 합병하고 다른 것들을 삭제하고 연결과 유추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며 이어서 일어나는 감정적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 호르몬의 영향력을 강화한다. - P220

커튼이 걷히고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 장치는 이미 부분적으로 마련되었고 대본들도 많이 씌어진 상태이다. 정신 활동의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이뤄지는 이러한 준비 덕분에 우리는 자유 의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양 착각한다. - P220

우리는 그저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이성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물론 드물게나마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결정하기도 한다. 의식적 마음은 이런 종류의 무지를 해결해야 할 불확실성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 P221

순수 이성과 고정된 목표들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 전지의 마음은 자유 의지가 부족할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인간에게 허락하고 인간이 바보 같은 선택을 할 때마다 불쾌감을 드러내는 신들조차도 그런 끔찍한 능력은 갖지 않으려 한다. - P221

맨 정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정합적인 패턴들을 미시적으로 전이시켜 가는 몸과 마음은 엄청난 수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세포들은 매 순간 인간 지능이 미리 알 수 없는 외부 자극들의 포격을 당한다. 그 사건들은 순차적 정보 전달 방식을 통해 새로운 미세 에피소드, 즉 새로운 신경 패턴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우리가 이 결과를 추적하려면 생각하는 뇌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작동 방식을 채택한 엄청나게 큰 컴퓨터가 필요하다. 게다가 마음 대본들은 거의 무한정하며 그것들의 내용은 개인의 고유한 역사와 생리에 따라 진화한다. 도대체 이것을 무슨 수로 컴퓨터로 구현할 것인가? - P222

인간 사고에 대한 단순한 결정론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통해 몸과 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물리 법칙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개인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하고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자유 의지에 관한 우리의 확신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적응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마음은 숙명론에 옥죄어 퇴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체의 시공간에서, 그리고 인식할 수 있는 자아에 실제로 적용되는 면에서 마음은 자유 의지를 가진다. - P222

기계는 "면전에서 듣는 말들의 의미에 따라 자신의 어법을 결코 바꾸지 못하는 반면 인간의 경우에는 가장 멍청한 사람조차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기계는 "인생의 모든 사건들에서 이성이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만들 듯이 행동할 수는 없다." - P223

과학자들은 무언가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그런 실험을 통해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는 게 결코 아니다. 우주적 질문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당신의 질문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요?" - P223

오히려 그들(과학자들)의 직업은 구체적인 개별 단계에서 한번에 하나씩 우주를 탐구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최고의 보상은 존 키츠(John Keats)의 시에서 코르테스가 다리엔 산의 정상에서 처음으로 광대한 태평양을 바라보았던 것과 같이 저 너머의 광대함에 관한 "무모한 추측"을 한번 해 보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인 키츠의 「처음으로 채프먼의 호머를 읽고」 라는 시에 나오는 광경.) 그들의 지적 풍토에서는 위대한 여행을 멈추는 것보다는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낫고 이론에 대해 몇 마디 첨언하는 것보다는 중대한 발견에 천착하는 편이 더 가치 있다. - P224

흔히 "AI"라 불리는 인공 지능 분야는 전자 컴퓨터가 처음으로 발명된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인공 지능 연구자들은 인공 지능 연구를 지적 행동에 필요한 계산에 관한 연구와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 행동을 복제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한다. - P224

몇몇 선택된 모양을 상이한 방향에서 바라보게 했을 때 어떤 프로그램은 물체와 얼굴을 구별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이 기하학적 대칭성의 규칙에 따라 무언가를 인지하는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또한 어떤 프로그램은 비록 조악하기는 하지만 언어를 번역하기도 하고 축적된 경험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대상들을 일반화하고 분류하는 일도 수행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 마음의 작동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 P224

어떤 프로그램은 미리 선택된 목표들에 따라 특정한 행동 절차를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다. - P224

체스 컴퓨터로 유명한 딥 블루(Deep Blue)는 32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하여 1초에 2억 개의 수를 무작위적으로 조사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 P224

현재는 인간의 모든 사고 능력을 더 높은 수준에서 시뮬레이션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 지능 프로그래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른바 진화론적 계산 기법을 사용해 왔다. 그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여러 개의 선택지를 준 후에 그 프로그램으로 하여금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그에 따르는 가용한 절차들을 수정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그 프로그램은 박테리아와 다른 단세포 개체들을 닮아 가게 된다. 왜냐하면 프로그램이 무작위적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가용한 절차들을 변화시킴으로써 결국 해답의 범위를 좁혀 가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그 프로그램들은 마치 먹이와 공간을 확보하는 생물처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한다. 이 기법을 "진화론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25

어떤 변이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그중 어떤 놈이 성공할 것인지는 늘 예측할 수는 없다. 전체 프로그램으로서 ‘종‘은 인간 설계자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 - P225

실험실을 돌아다니고 학습하며 실제 자원들을 분류하는 로봇을 만들어 내는 일은 컴퓨터 과학자들의 몫이다. 심지어 그들은 특정 목표를 놓고 경쟁하는 로봇들도 창조해 내야 한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박테리아보다는 편형동물이나 달팽이와 같은 단순 다세포 동물의 본능 레퍼토리와 더 유사할 것이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몇십억 년의 생명 진화 역사와 동일한 시간을 횡단하게 될 날이 향후 50년 내로 가능할 것이다. - P225

MIT의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로 대표되는 한 진영은 상향식 접근을 취한다. 즉 설계자들은 다윈적 로봇 모형을 따라 하위 수준에서 상위수준들로 올라간다. 이 방식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통찰을 얻고 기술을 발전시킨다. 때가 되면 휴머노이드가 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226

반면 인공 지능의 창시자이며 브룩스의 동료인 MIT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처럼 하향식 접근을 추구하는 진영도 있다. 하향식 접근을 추구하는 이들은 진화론적 시각은 적용하지 않은 채 학습과 지능의 상위 현상들을 직접적으로 연구한다. - P226

가까운 장래에 인간의 마음에 대한 조잡한 시뮬레이션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뇌과학은 마음의 기본 작동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세련될 것이고 컴퓨터과학은 그 기본 작동을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226

기능적 장애물은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가거나 마음을 통해 나오는 정보 입력의 엄청난 복잡성을 말한다. - P226

합리적 사고는 몸과 뇌 사이의 계속적인 교환이 신경의 방전과 호르몬의 흐름을 통해 일어남으로써 생겨난다. 이때 호르몬의 흐름은 정신 태도, 주의, 목표 선정을 조절하는 감정적 통제의 영향을 받는다. - P226

기계 속에 마음을 복제해 넣기 위해서는 뇌과학과 인공 지능 기술을 완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뮬레이션의 선구자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계산, 예컨대 인공 감정(AE)도 발명하고 설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27

휴머노이드 마음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두 번째 장애물은 인류의 고유한 유전적 역사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진화론적 난관이다. 보편적인 인간 본성ㅡ인류의 심리적 통일성ㅡ은 잊혀진 과거 환경에서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 역사를 통해 생겨난 산물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의 유전적 설계도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다면 시뮬레이션된 마음이 능력 면에서는 대단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인간의 마음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 될 수도 있다. - P227

설상가상으로 비록 그 설계도가 밝혀지고 우리가 그것을 따라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인공 마음이 인간이 되려면 각 개인의 고유함도 흉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일생 동안 겪는 수많은 경험들ㅡ미묘한 감정들과 버무려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운동 감각들ㅡ로 채워진 기억 은행이 마련되어야 한다. - P227

게다가 인공 마음은 사회적일 때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수많은 접촉들을 통해 지성과 감정을 노출한다. 그리고 이런 노출에서 얻은 기억들에는 의미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수많은 연결들이 모든 단어들에 일일이 부착되고 그것들이 감각 정보로서 그 프로그램에 주어진다. 이 모든 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공마음은 튜링 시험에서 계속 낙방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인간 배심원도 인간으로 가장한 인공 마음을 몇 분 내로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P227

자연과학은 양자물리학에서 시작하여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을 아우르는 인과적 설명의 직조물을 짜 왔다. 그 직조물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가닥들은 거미줄처럼 섬세하게 얽혀 있으나 아직도 여기저기 구멍이 보인다. 과학의 궁극적 목표인 예측적 종합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 P229

대부분의 학자들은 흔히 문화가 두 문화, 즉 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으로 쪼개져 있는 것을 고정된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두 영역들, 즉 아폴론적 법칙과 디오니소스적 정신, 산문과 시, 좌뇌 피질 반구와 우뇌 피질 반구는 쉽게 연결될 수 있지만 한쪽 언어를 다른 쪽 언어로 번역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도라도 해야 하는가? 나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요한 목표일 뿐만 아니라 달성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학문의 경계 자체를 재평가해 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 P230

두 문화(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간의 분리가 오해와 충돌의 영구적인 원천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 P230

C. P. 스노는 1959년에 쓴 『두 문화 (The Two Cultures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라는 중요한 에세이에서 "이런 양극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실제적인 손해이고 지적인 손실이며 창조성의 말살이다."라고 말했다. - P230

교육받은 엘리트의 과도한 분화가 바로 문제의 주원인이다. 대중 지식인들과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대중 매체의 전문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사회과학과 인문학 전통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를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 왔으며 자연과학과 사회 행동이나 정체성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거의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 P230

자연과학자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은 인간사와는 동떨어진 좁은 칸막이에만 갇혀 지냈기 때문에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는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생화학자가 법이론과 대(對)중국 통상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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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이 책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독서노트 기록을 보니까 거의 2달만이다. 기억을 더듬기 위해 2달 전 포스팅을 잠깐 살펴봤는데, 지구인이 만든 로봇들이 화성을 테라포밍하기 위한 작업들을 단계별로 하는 과정이 나왔었다. 여기서 잠시 ‘테라포밍‘이라는 것은 지구 외의 행성을 사람이 살기 적합한 환경으로 변형하는 작업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아무튼 오늘은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4번째 단계로 산소를 생산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본문에는 화성의 테라포밍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서 과학자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연구 결과들에 기반하여 지구와는 상당히 다른 화성이라는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시도들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들도 결코 적진 않지만, 이런저런 생각들과 시도들을 끊임없이 해 봄으로써 자신들이 의도했던 결과물을 내고자하는 그 과정자체가 상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과학적 호기심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진정한 과학자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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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에서는 테라포밍 5단계로 화성의 대기를 데우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이 나온다. 이 또한 위의 4단계에서 언급했던 것과 비슷하게 다양한 시도들이 나오는데, 각각의 과학적 아이디어들이 참으로 신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전공자인 분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쉬운 내용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나같은 비전공자들에게는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많았기에 상식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다음 챕터에서는 범고래와 바다표범, 펭귄의 관점으로 서술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생태계라는 것이 정말로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동식물들이 각각의 개체들과 지구의 전반적인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요즘 날씨가 굉장히 더워지고 있는데, 당장 나부터라도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환경을 아끼는 마음없이 무심코 행동하다가는 어느 한 유명한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러다 우리 다 죽어‘ 라는 대사처럼 지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당장 내일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추가적인 요인들로 인해 가속된다면 우리가 발디디고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소멸할 날을 하루하루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지구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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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오스트레일리아 연안에 있는 산호초를 방문했던 이야기가 간략히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다윈하면 그냥 진화론의 창시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외에도 지질학자로써도 유명했다는 사실을 오늘 독서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다윈이 관찰했던 산호초 중에서도 특별히 오늘 읽은 부분에선 환초라는 것이 나오는데,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지구 생명체는 산소가 있어야 호흡할 수 있다. 하지만 화성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다.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이고 아르곤과 질소가 각각 1.9퍼센트를 차지한다. 산소는 고작 0.15퍼센트에 불과하다. - P52

물만 충분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된다. 다만 순수한 물은 전기분해되지 않는다. 나트륨, 염소, 칼륨, 칼슘 같은 전해질이 녹아 있어야 한다. 다행히 화성 토양의 염류가 녹아 있는 물에는 전해질이 충분했다. - P52

화성의 토양에는 산화물과 중금속이 많아서 식량 안전성을 보장하기 힘들었다. - P52

로봇 3원칙이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로봇 안전 준칙이다. - P52

화성의 얼음층과 지하층에서 끌어온 물을 이용해 작물을 수경 재배했다. 깨끗하고 안전했다. 물론 수염뿌리로 되어 있는 외떡잎 식물만 수경 재배할 수 있어서 파인애플, 토란, 고구마, 양파, 콩나물, 감자, 토마토, 딸기, 수박 같은 채소류를 주로 키웠지만 영양을 공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참, 아보카도도 잘 자란다. 하지만 물을 너무 사용하는 문제가 있어서 추천하지 않는다. - P53

작물마다 자라는 온도가 다르다. - P53

지구인은 항상 쉽게 생각한다. - P53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기 전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0.02~0.03퍼센트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인류가 등장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수치는 1억 6000만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단 100년 만에 이 수치를 0.04퍼센트로 변화시켰다. 0.02퍼센트에서 0.04퍼센트로 겨우 0.02퍼센트 올랐을 뿐이지만 두 배가 된 것이다. - P54

화성 대기 중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인데 왜 이렇게 추운가? 대기 구성만으로 행성의 온도가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화성은 태양에서 워낙 멀기도 하거니와 대기 자체가 극히 적다. 대기의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면 무슨 소용인가? 대기 자체가 지구의 2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다. 온실효과가 일어날 방법이 없었다. - P54

대기에 메탄과 수증기, 암모니아, 프레온 가스 같은 온실기체를 살포해 대기의 온도를 높일 궁리를 했다. - P54

혜성에는 온실가스 가운데 하나인 암모니아가 많이 들어 있다. 혜성이 화성 근처를 지날 때 경로를 바꿔서 화성 대기로 진입시키면 마찰열로 혜성이 분해되면서 수증기와 암모니아가 대기로 방출되었다. 화성 대기가 점차 데워졌고 암모니아에는 질소가 들어 있어서 식물을 키우는 데도 유리했다. - P55

화성에는 바다가 없다. 바다가 없으면 생명도 없는 것이다. - P56

지구와 화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구의 구조는 양파처럼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 중심부터 내핵, 외핵, 맨틀, 지각으로 구분된다. - P56

내핵과 외핵은 철과 니켈 같은 무거운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랫동안 식지 않고 용융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무거운 원소들이 아래쪽으로 내려간 것이다. 외핵은 아직도 액체 형태로 내핵을 돌고 있다. 금속 둘레를 금속이 돌면 자기장이 생긴다. 내핵 주변을 외핵이 돌면서 자기장이 만들어졌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이 되었다. 물과 DNA, RNA 같은 생명의 분자를 쪼개는 우주 입자인 태양풍을 지구 자기장이 막아주고 있다. 자기장 덕분에 지구에는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이다. - P57

화성은 일찌감치 식는 바람에 지구와 같은 내부 구조가 형성되지 않았고 자기장도 생기지 않았다. 자기장이 없으니 태양풍을 막을 수도 없다. 태양풍은 화성의 바다를 없애 버렸다. - P57

과학자들은 내 정체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 내(범고래) 학명 오르키누스 오르카Orcinus orca를 지은 사람이 바로 이명법(생물의 이름을 나타낼 때, 속의 이름 다음에 종의 이름을 써서 한 종을 나타내는 방법)을 발명한 칼 폰 린네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P59

내(범고래) 속명 오르키누스는 로마 신화의 ‘오르쿠스‘에서 왔는데, 오르쿠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라고 불린다. 바로 저승의 신이다. 서양 사람들은 나를 ‘죽음을 부르는 고래 killer whale‘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무서운 놈이다. 죽음을 부른다. - P59

범고래는 이빨고래다. 이빨고래는 원래 육식이다. 뭔가를 잡아먹어야 한다. 북아메리카에 자리를 잡고 사는 정주성 범고래들은 물고기와 오징어를 주로 먹는다. 어부들이 싫어하기는 해도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알래스카와 노르웨이의 범고래도 일정한 곳에 머무는 정주성이다. 물고기를 주로 먹지만 가끔 먼바다에 나와 상어와 바다거북을 잡아먹는다. - P59

정주성 범고래와 이주성 범고래의 성향은 200만 년 전부터갈라서기 시작했다. 최근 1만 년 동안에는 유전자도 거의 섞이지 않았다. - P59

남극 범고래도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보통 정주성 범고래처럼 생긴 A형이다. 주로 밍크고래를 사냥해서 먹고 산다. 그렇다. 우리는 수염고래를 잡아먹는 이빨고래다. - P60

B형 범고래는 몸집이 A형보다는 조금 작고 눈 주변의 무늬가 훨씬 크다. 그리고 등이 하얗지 않고 살짝 누런빛이 돈다. 주로 바다표범과 펭귄을 사냥하면서 살아간다. - P60

C형은 B형보다도 작으며 큰 무리를 형성해 남극대구만 먹고 산다. 눈 주변 무늬가 기울어져 있고 등에 누런빛이 돈다. B형과 C형의 누런빛의 착색 원인은 갈색을 띠는 규조류 때문이다. - P60

1820년 바다표범잡이 선장 제임스 웨들이 인간으로서는 처음 진입한 남극해의 어느 바다에서 나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 지역을 웨들해라고 부르고 내 이름도 웨들바다표범이 되었다. - P64

바다는 풍족한 사냥터지만 위험한 전장이기도 하다. - P65

우리의 사냥은 목숨을 건 투쟁이다. - P66

우리(턱끈펭귄) 똥이 줄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바다로 들어가는 철분이 줄었다는 뜻이다. 우리 똥 1그램에는 3밀리그램의 철분이 들어 있다. 예전에는 우리가 매년 521톤의 철분을 남극해에 공급했다. 그러나 이제 절반으로 줄었다. 기후변화의 결과로 펭귄이 바다에 공급하는 철분이 반으로 줄었다는 말이다. - P68

남극의 식물성 플랑크톤은 펭귄 똥이 공급하는 철분을 먹고 성장한다. 플랑크톤이 늘어나면 크릴과 작은 생선에서부터 펭귄, 바다표범, 고래까지 번성할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펭귄 똥의 철분은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펭귄 똥의 철분으로 성장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하기 때문이다. - P68

광합성을 하면 산소가 발생하고 이산화탄소가 감소한다. 이게 엄청난 양이다. 원래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산소의 절반 이상이 바다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대부분을 식물성 플랑크톤이 담당하고 있다. - P68

식물성 플랑크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광합성을 하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채 잡아먹히거나 바다 밑으로 가라앉든 모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전 세계 바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매년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30퍼센트를 흡수한다. 우리 펭귄이 줄어들면 플랑크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이산화탄소 흡수도 감소한다. - P68

모든 생명은 먹이 피라미드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있고 - P69

수염고래는 크릴을 먹고 산다. 사람들이 포경을 통해서 수염고래를 많이 잡아먹었다. 그러면 크릴이 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크릴 양도 줄어들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포식자가 없는데 왜 줄어들까? 고래가 놀라운 일을 하고 있었던 거다. 수염고래는 바다 밑바닥에서 크릴을 먹고 수면으로 올라와서 똥을 눈다. 이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바다 밑바닥에 있던 철분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거다. 그러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하고 크릴, 작은 물고기, 펭귄, 바다표범, 범고래까지 먹이사슬이 또 이어지겠지? 포경으로 고래가 사라지자 철분을 이동시키는 펌프도 망가진 셈이 된 것이다. - P70

고래 똥이 사라지면 바다의 생산력이 감소한다. 수염고래는 매년 똥을 통해 약 1200톤의 철분을 바다에 공급했다. 이건 펭귄이 공급하는 521톤의 두 배가 넘는 양이다. 수염고래와 펭귄의 똥이 사라지면 결국 식물성 플랑크톤도 급격히 줄어든다.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 P70

모든 물질은 고체보다 액체의 부피가 크고, 액체보다 기체의 부피가 더 크다. (고체<액체<<기체) 분자 운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바로 H2O라는 물질이다. 그렇다. 얼음, 물, 수증기를 이루는 바로 그 물질이다. 역시 기체인 수증기는 액체인 물보다 부피가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액체인 물보다 고체인 얼음의 부피가 더 크다. (액체<고체<<기체) - P71

물에 떠 있는 빙산이 다 녹았다고 해보자. 수면 위에 있는 얼음이 녹아 바다로 들어갔으니 해수면 상승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수면 아래 있는 얼음이 녹으면 어떤 효과가 일어날까? 얼음이 차지하는 부피가 물이 차지하는 부피보다 크므로 빙산의 수면 아래 부분이 녹으면 해수면 하강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될까? - P71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있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표현이다. 영어로는 "It‘s just the tip of the iceberg"라고 한다. 실제로 빙산은 전체의 10~20퍼센트만 해수면 위에 있다. 수면 윗부분이 일정하지 않은 까닭은 빙산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주변 바닷물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 P72

바다에 떠 있는 빙산만 녹으면 해수면은 절대로 높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빙산이 녹는 상황이라면 육지 위에 있는 얼음도 녹는다.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얼음은 육지에 있다. 남극대륙, 그린란드,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빙하 그리고 러시아와 캐나다 북부의 툰드라, 안데스, 알프스, 로키, 히말라야산맥의 만년설도 녹는다. 육지 얼음이 녹으면 그대로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 빙하가 모두 녹을 정도로 기온이 오르면 바닷물 자체도 열팽창을 해서 해수면이 높아진다. - P72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 지구 온난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몇 가지 이유만 들어보자. 햇빛의 상당 부분은 눈과 얼음에 반사되어 다시 우주 바깥으로 돌아간다. 지구 온난화로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던 지역의 온도가 높아져 눈과 얼음이 녹으면 지구 표면의 반사율은 감소하고 더 많은 햇빛이 땅과 물에 흡수되어 지구 온도는 더 올라간다. - P72

온대지방의 눈 덮인 겨울 숲에서 겨울을 나는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지혜가 있다. 나뭇잎이 많이 쌓인 지역의 눈에 구멍을 파면 땅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는데 여기에 불을 붙이면 마치 가스레인지처럼 불이 계속 탄다. 땅 위에 쌓인 낙엽이 썩어서 생긴 메탄이 눈과 얼음에 막혀서 배출되지 못하고 고여 있는 걸 사용하는 방법이다. - P73

오랜 기간 얼어 있는 툰드라 지역은 어떨까? 어마어마한 양의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토양에 갇혀 있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이 메탄이 쏟아져 나온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수십 배나 강력한 온실가스다. 지구 온난화는 더욱 가속된다. - P73

빙하가 녹으면 전 세계 사람은 물 부족 현상을 겪을 것이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빙하를 주요 담수원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빙하가 녹으면 사용할 수 있는 담수원이 줄어들어서 먹고 농사에 사용할 물이 부족해진다.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난다. 동시에 산사태, 돌발 홍수가 빈번해지고 새로운 빙하 호수가 형성된다. 빙하호수가 생기는 곳은 대개 인간이 살기 좋은 곳이다. 인간의 서식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 P73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인간 세상은 공평한 적이 없었다. 기후변화의 충격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해 더워지는 곳이 많지만 오히려 추워지는 곳도 있고,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받는 충격이 다르다. 한 나라 안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다른 경험을 한다. - P74

인간 세상은 정말 공평하지 않다. 자연도 그렇다. 야생 생태계도 공평하지 않다. 충격을 더 많이 받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같이 먹이 피라미드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생명들이 그렇다. 펭귄보다는 바다표범이 더 큰 충격을 받고 바다표범보다는 우리 범고래가 받는 충격이 더 크다. 더 먼저 멸종하게 된다. - P75

2024년 4~5월 브라질에 잇따른 폭우가 내려 영국 면적과 맞먹는 브라질 남부의 90퍼센트가 황폐해졌다. 인간이 화석연료와 삼림을 무분별하게 태우는 바람에 폭우 가능성을 두 배 이상 높인 결과였다. - P74

인간은 조금은 별난 존재다. 최고 포식자이면서도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명. 자연사에서 유일한 존재다. - P75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자연경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세계 최대의 산호초 군락) - P76

환초(고리 모양으로 배열된 산호초) - P77

코코스제도는 인도양에 있는 2개의 환초와 27개의 산호섬으로 구성된 제도로 킬링제도라고도 한다. - P78

코코스제도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들다. 오스트레일리아 영토이지만 인도네시아에 훨씬 가까운 인도양에 위치한다. - P79

찰스 다윈, 생물진화론을 발전시킨 생물학자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지질학자이기도 하다. - P79

고리 모양의 환초는 화산섬에 산호가 자란 뒤 섬이 침강하면서 고리 모양만 남은 산호초다. 주로 열대 지방에 많다. 사람들이 환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환초 주변의 물결이 잔잔해서 해상 교통과 군사 기지로써 유용하기 때문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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