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서로 철저하게 나뉘어져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었다. 또한 두 분야가 철저히 나뉘어 있다보니 오해와 충돌이 반복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었다.

독자인 나는 여기서 서로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을 때 오해와 충돌이 반복된다는 얘기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와닿았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간에 어떤 오해가 있을 때 이것을 대화나 기타 방법 등을 활용하여 그때그때 해결하지 않으면 그 오해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불어나서 그 오해가 점점 커지고 그러다가 마치 풍선이 빵하고 터지듯이 서로간에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원리로 갈등을 겪었다가 결국엔 대화를 통해 관계가 호전되었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기에 더 그러지 않았나 싶다. 해당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까지는 하기 힘들지만 그때의 기억을 잠시 더듬어보자면 초반에는 대화가 오가기는 커녕 서로간에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해가 쌓이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결국 내 쪽과 상대방 쪽 모두 심리적으로 힘들어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특정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대화의 물고가 터졌고, 오해를 품과 동시에 악화되었던 관계가 좋은 쪽으로 개선되었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사건이긴 하지만 결국 오해를 키우지 않기 위해선 가만히 있으면서 시간을 지체하기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상대방을 만나서 서로 대화하고 상대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잠시 곁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늘 시작하는 포스팅에서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두 분야가 서로 이해하기 힘든 근본 원인에 대한 저자의 지적이 나온다. 가장 먼저 저자는 두 분야 간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공통된 언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상대방의 언어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느 한 쪽이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바를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작업이 1차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 직접적으로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이와 관련하여 그냥 개인적으로 문득 떠오른 사례 중 하나는 세종대왕이 한자를 어려워하는 백성들에게 훈민정음을 만들어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한자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우니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만든 것이다.

이 사례를 오늘의 본문 내용에 빗대어 생각해보자면, 과학자들이 자신들은 잘 알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분야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을 보면 그저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과학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사람들을 가리켜 ‘과학 커뮤니케이터‘ 라는 용어로 지칭한다. 요즘으로 치면 과학 유튜버로 유명한 ‘궤도‘ 같은 사람이 해당될 수 있겠다.

어쨌든 이런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을 통해 과학을 낯설고 어렵게만 느끼던 사람들이 과학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그 내용들을 이해해보려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오지랖일수도 있는데 여기서 좀 더 생각을 확장시켜보자면 자기 분야 이외의 것들을 이해함으로써 단지 자기 혹은 자기 분야만 생각하던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과 생각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사회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이런 노력들이 조금씩 쌓이고 쌓여서 학문의 분야를 막론하고 그 경계가 허물어져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통섭‘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
.
.
이어지는 글에서 저자는 자신이 주로 얘기하는 진화론에 상대되는 이론인 일명 창조론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다. 창조론은 성경에서 언급된 것처럼 신에 의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포괄적으로 통칭하는 것인데, 저자는 이 창조론이 객관적으로 드러난 증거들에 근거한 진화론에 비하면 객관성이 상당부분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독자인 나는 이 논쟁에 대해서는 본문에 나온 내용과 저자의 생각만을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내가 어떤 전문 과학자나 신학자가 아니기에 관련 지식도 턱없이 부족한 사람인데, 이런 논쟁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크게 의미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나 진화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성경말씀을 믿는 신학자를 비롯한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 그 누구든 간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잘 생각하고 판단하시길 바란다.
.
.
.
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서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유전자가 진화함과 동시에 문화도 진화해나간다는 것을 지칭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유전자의 기본 단위를 탐구하는 것과 유사하게 문화의 기본 단위를 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선 각종 다양한 설들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통해 확인하는 게 좋을 듯하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문화의 기본 단위를 찾기 위해 캐나다의 뇌과학자 엔델 털빙(Endel Tulving)이 제시한 ‘일화 기억‘과 ‘의미 기억‘ 이라는 것의 기본 개념에 대해 소개되어 있다. 이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추가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모든 학자들, 즉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 그리고 인문학자가 하나의 공통된 창조적 정신에 따라 활기차게 활동한다는 해묵은 만병통치약은 계속 이야기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그들은 창조적인 자매들일지는 몰라도 공통된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 P231

학문의 커다란 가지들을 통합하고 문화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과학 문화와 인문학 문화 간의 경계를 국경으로 보지 않고 양쪽의 협동 작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미개척지로 보는 방법뿐이다. - P231

오해는 미개척지를 무시할 때 발생하는 것이지 정신구조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 P231

우리 인류가 유전적 진화에 병행하여 문화적 진화를 덧붙였으며 이 두 진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견해(유전자-문화 공진화, gene-culture coevolution) - P232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 인간 두뇌의 산물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결은 유동적이다. 얼마나 그런지는 불명확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 연결은 편향되어 있다. 즉 유전자는 인지 발달의 신경 회로와 규칙적인 후성 규칙(後成規則, epigenetic rules) 을 만들어 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 P232

마음은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성장한다. 물론 자기 주변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개체의 두뇌를 통해 유전된 후성 규칙들의 안내를 받아 이뤄진다. - P232

뱀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매혹을 이끌어 내는 선천적 경향은 후성 규칙이다. 문화는 은유와 서사를 창조하는 그 공포와 매혹에 의존한다. - P232

문화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부분으로서 각 세대 구성원 개인의 마음 속에서 집합적으로 재구성된다. 구전 전통이 글쓰기와 예술을 통해 증보되면 문화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고 세대를 건너 뛸 수도 있다. 그러나 후성 규칙이 주는 영향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인 것이며 제거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하게 유지된다. - P232

어떤 이들은 주변 문화와 환경에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해 주는 후성 규칙들을 대물림한다. 그리고 그런 규칙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이나 있어도 약한 규칙을 가진 이들은 생존과 번식에서 밀려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좀 더 성공적인 후성 규칙들은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과 함께 개체군 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 두뇌의 해부 생리적 구조가 진화해 왔듯이 행동도 자연선택에 의해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다. - P233

어떤 문화 규범은 경합하는 다른 규범들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한다. 이 때문에 문화는 유전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하지만 그 속도는 일반적으로 훨씬 더 빠르다.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연결은 더 느슨해진다. 하지만 그런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법은 없다. 문화는 정확한 유전적 처방 없이 고안되고 전달되는 정교한 적응들을 통해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P233

뱀과 몽사는 유전자 · 문화 공진화의 분명한 사례이다. 문화 속에 몽사와 그 상징이 얼마나 많이 깃들어 있는지는 그 환경 속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진짜 독사가 살고 있는지와 상관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독사들은 후성 규칙에 의해 주어지는 공포와 매혹의 힘 덕분에 신화적 의미도 쉽게 얻는다. 즉 그 독사들은 문화에 따라 때로는 치유자, 전령, 악마, 또는 신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 P234

유전자 · 문화 공진화는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 과정의 특수한 확장이다. - P234

생물학자들은 대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의 진화의 배후에 자연선택이라는 일차적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 힘은 조상 호미니드 종이 침팬지를 닮은 원시 계통에서부터 분리된 이래 500만 년 혹은 600만 년에 걸쳐 호모 사피엔스를 창조해 낸 원동력이었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는 근거 없는 가설이 아니다. - P234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유전 변이는 원리적으로 분자 수준에서 잘 이해된다. - P234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란 무엇인가? 언젠가 프랑스 생물학자 자크 모노(Jacques Monod)는 데모크리토스의 말을 빌려 "우연과 필연"이라고 간략히 말한 바 있다. - P234

같은 유전자의 다른 형태들(대립 유전자)은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긴 DNA 서열의 무작위적 변이(돌연변이)를 통해 생겨난다. DNA 서열의 몇 지점들에서 이렇게 변이가 생기고 대립 유전자가 유성 생식의 재조합 과정에서 섞임으로써 유전자들의 새로운 혼합이 매 세대마다 새롭게 창조된다. 이때 개체의 생존과 번식을 강화해 주는 대립 유전자는 개체군 내에 퍼지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사라진다. - P235

우연한 돌연변이는 진화의 원료이다. 한편, 환경의 도전은 어떤 돌연변이들이 살아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며 다양한 유전적 원료들을 사용해서 우리를 한 번 더 빚어 낸다. - P235

세대를 충분히 거치면 변이와 재조합은 개체군 내에서 거의 무한정한 유전적 변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인간 유전체 내의 1만 5000~10만 개의 유전자 중에서 단지 1,000개의 유전자가 두 가지 형태로 개체군 내에서 존재한다고 해 보자. 그렇게 되면 상상할 수 있는 유전자 재조합의 수는 10^500개인데 이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들의 수보다 많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일란성 쌍둥이인 경우를 제외하면 두 인간이 동일한 유전자들을 공유할 확률, 또는 두 인간이 동일한 유전자들을 호미니드 계통의 진화를 통해 공유할 확률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다. - P235

각 세대마다 부모의 염색체와 유전자는 한데 섞여 새로운 혼합체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런 재배열이 그 자체로 진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진화에도 일관된 원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연선택이 바로 그런 힘이다. - P235

특정한 해부학적 구조, 생리, 행동을 규정하는 유전자들 때문에 그 개체가 생존과 번식을 더 잘하게 된다면 그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서 점점 많아질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 유전자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생존과 번식을 더 잘하는 개체군도 경쟁하는 다른 개체군들에 비해 더 번성한다. 심지어 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 P235

만일 기적을 믿는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예컨대 신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단 한번에 완전한 형태로 불과 몇천 년 전에 창조했을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은 지구 구석구석에 절묘한 거짓 증거들을 끝도 없이 펼쳐 놓은 이상한 존재가 된다. 그는 그 증거들을 통해 우리를 생명이 몇십억 년 전부터 진화해 왔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기묘한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신약과 구약의 신은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고압적이고 거절도 하고 불같이 화도 내는 신비로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결코 교묘하게 남을 속이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 P236

구체적인 사실들을 잘 알고 있는 생물학자들은 인류 진화의 증거를 전혀 의심하지 않으며 그 진화를 지휘한 힘이 자연선택이라는 사실에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적어도 진화를 설명할 때 꼭 언급해야 할 다른 힘이 있다. 예컨대 DNA의 몇 문자들과 그것에 따라 암호화된 단백질은 긴 기간을 지나면서 우연만으로도 대체될 수 있다. - P236

변화가 너무 점진적으로 일어나서 개체의 진화 계통 나이들을 충분히 측정할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은 세포, 개체 그리고 사회 수준에서 일어나는 진화에 관해 새로운 정보를 더해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동에 개입된 돌연변이는 대체로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런 돌연변이는 상위 수준의 조직들(예컨대, 세포나 유기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P237

문제를 가능한 한 간결하게 하자. - P237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방식은 유전적 진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진화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두 종류의 진화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의 제지를 받기도 하고 사회적 선과 악을 생각하기도 한다. - P237

문화라고 불리는 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창조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초유기체는 정확히 무엇인가? 우선 수많은 사례들을 분석해 온 인류학자들이 이 질문에 답을 해 줘야 한다. 그들은 문화를 삶의 총체적인 방식으로 본다. 즉 종교, 신화, 예술, 기술, 스포츠를 비롯한 모든 체계적 지식으로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그 무엇의 총체가 문화이다. - P237

"문화는 하나의 산물이다. 그리고 역사적이며 아이디어, 패턴, 가치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선택적이고 학습되며 기호들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행동으로부터의 추상이며 행동의 산물들이다." - P237

문화는 또한 전일적이다. 왜냐하면 "분리된 부분들과 대량의 유입물들이 그 속에서 작동 가능한 하나의 체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부분들 가운데에는 인공물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대상들은 인간 마음속에서 개념들로 표상될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 P237

사회 이론 분야에서 20세기를 풍미했던 극단적 후천주의자(nurturalist)들은 문화를 어떻게 볼까? 그들에 따르면 문화는 유전자로부터 출발하기는 했으나 자율적인 존재가 되었다. 들불이 작은 성냥에서 시작되듯 문화는 그 자체로 자율성을 갖게 되면서 창발적 속성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창발적 속성들은 문화를 일으킨 유전적이고 심리적인 과정들과는 더 이상 관련이 없다. 따라서 모든 문화는 문화로부터 온다! - P238

각 사회가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문화에 의해 창조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선물을 교환하고 음식과 술을 나누고 장식을 하고 서로 돌보고 음악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행위들을 통해 기호를 공유하는 마음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것은 외부 실재를 지배하는 공상의 세계로 집단을 통합한다. 사막, 초원, 빙원, 도시 어디건 상관없이 집단은 공상의 세계에서 구성원들을 운명 공동체로 묶어 주는 도덕적 합의와 의식의 그물을 친다. - P238

문화는 생산적인 언어로 만들어진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의적인 단어와 기호의 집합이다. 이런 측면에서 호모사피엔스는 독특하다. 인간 아닌 동물들도 의사소통 체계를 가지고 있다. 매우 정교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동물들은 그 체계를 만들거나 다른 개체들에게 가르치지는 않는다. - P238

인간이 사투리를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노래하는 새의 경우에도 방언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 의사소통 체계는 본능적이며 따라서 세대를 거치면서 변하지 않는다. 꿀벌의 꼬리춤(waggle dance)과 개미의 냄새길은 기호적 요소들을 포함하며 그런 능력과 의미는 유전자에 의해서 정교하게 규정될 뿐 학습을 통해서 변화되지는 않는다. - P238

동물들 중에서 대형 유인원 (great apes, 유인원 중에서 덩치가 큰 동물들을 뜻하는 말로서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보노보 그리고 인간이 여기에 속한다.)만이 진짜 언어 능력에 접근해 있다. 침팬지와 고릴라가 기호들이 표시된 판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으면 그들은 임의의 기호들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 P239

보더 콜리(border collies,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 지방의 목양견.) - P239

보노보를 비롯한 다른 대형 유인원은 동물의 기준으로는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만 한 가지 점에서 인간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그들은 기호 언어를 사용할 수는 있어도 인간처럼 그것을 발명할 수는 없다. - P240

침팬지들은 인간과 유사하게 교활하고 기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동물 중에서 "마키아벨리적 지능(Machiavellian intelligence)"이 가장 뛰어난 존재이다. ...(중략)... 침팬지들은 이합집산에 능하고 권모술수가 뛰어나다. 침팬지는 자신의 의도를 목소리 신호와 자세, 몸의 움직임, 얼굴 표정, 털 곤두세우기 등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를 닮았거나 육체적 제약이 없는 다른 형태의 기호 언어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 P240

사실 대형 유인원은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하게 지낸다.  ...(중략)... "열 마리의 야생 침팬지들이 성별과 나이에 맞게 짝을 지어 곰비 (Gombe) 강 유역의 무화과나무 위에서 평화롭게 먹이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팬지를 관찰한 경험이 없는 이들은 그 나무 밑을 지나간다 해도 그들이 있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 P240

호모 사피엔스는 그야말로 수다쟁이 유인원이다. 인간은 언제나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에게는 말을 하게 하는 일이 입을 다물게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쉽다. - P240

인간은 유아기에 어른들과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말하기를 시작한다. 그때 어른들은 감정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매우 느리며 모음이 많은 단조로운 ‘엄마말(motherese)‘로 아기들을 상대한다. 혼자 있을 때에도 아기들은 앙앙울고 킥킥거리며 일명 ‘아기말(crib speech)‘이라고 불리는 단음절을 계속해서 내뱉는다. 그리고 그런 말을 몇 달간 하고 나면 그들은 복잡한 단어와 어구를 구사하게 된다. 이때쯤에 유아가 구사하는 말의 레퍼토리는 어른의 어휘 수준에 거의 육박한다. 이 레퍼토리는 지겹도록 반복되고 수정되며 실험적으로 혼합된다. 네 살이 되면 평균적으로 어린이들은 문법을 정복한다. 그리고 여섯 살이 되면 미국 어린이들은 적어도 1만 4000단어 정도를 구사할 수 있다. - P241

반면 어린 보노보들은 움직임, 소리, 때로는 기호를 가지고 자유롭게 놀고 실험도 해 보지만 칸지 수준으로 언어 능력이 향상되려면 인간 조련사에 의해 풍부한 언어 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아야 한다. - P241

인간의 아기는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모방의 귀재이다. 그들은 태어난 지 40분 만에 혀를 불쑥 내밀며 어른의 움직임을 따라 머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인다. 12일이 지나면 그들은 복잡한 얼굴 표정과 손동작을 흉내 낸다. 두 살이 되면 말로 하는 설명을 알아들으며 단순한 도구를 사용한다. - P242

언어 본능에 대해서 말하자면 인간은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흉내 낼 수 있으며 엄청난 수다쟁이이다. 문법은 거의 자동적으로 정복하며 엄청난 수의 어휘를 손쉽게 획득한다. 이 본능은 어떤 다른 동물들도 따라올 수 없는 정신 능력에 기반을 둔 인간 고유의 속성임에 틀림없다. - P243

인간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행동은 화석으로 남지않는다. ...(중략)... 대신 고생물학자들은 인류의 발성 구조가 변해 왔음을 말해 주는 화석 뼈들을 가지고 있다. 그 뼈들은 인간의 후두가 침팬지보다 더 밑으로 내려오고 길이도 길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들은 두개골 안쪽에 들어 있는 뇌의 언어 영역에도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 P243

고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사용한 인공물들이 꾸준히 향상되어 왔다는 증거들도 얻었다. 예컨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ius)는 45만년 전에 불을 통제하며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25만 년 전 케냐에서 쓸모 있는 도구를 제작했고 16만 년 전에는 콩고에서 잘 다듬어진 창끝과 단검을 만들어 냈으며 3만~2만 년전에는 유럽 남부에서 종교 의식 때 입는 복장과 장신구를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 P243

우리는 현생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해부학적으로는 이미 10만 년 전쯤에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는 사실을 안다. 그때부터 물질문화는 처음에는 서서히 진화하다가 다음에는 팽창했으며 나중에는 폭발했다. - P243

몇 개의 돌과 뼈 도구에서 시작된 인류의 기술은 농경 • 촌락 사회에 도달하고 난 후에는 경이적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만 현재까지 500만 개의 특허가 등록되었다.) 요컨대 문화의 진화는 지수 함수적인 궤적을 따른다. 여기에 신비가 있다. 도대체 기호 언어는 언제 생겼으며 그것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문화 진화를 폭발시켰는가? - P243

유전자 · 문화 공진화의 궤적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선사 시대의 기록을 재구성하는 일은 뒤로 미루고 현생 인류의 두뇌가 문화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탐구하는 편이 낫다. 그 다음으로 좋은 시도는 아마도 문화의 기본 단위를 찾는 작업일 것이다. 비록 그러한 요소가 적어도 전문가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문화의 기본 단위가 존재하며 어떤 특징들을 가질 것인지 등은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 P244

자연과학의 위대한 성공은 각 물리 현상을 그 구성 요소들로 환원함으로써 실제로 이룩되었다. 과학자들은 현상의 전일론적 속성들을 새롭게 조직하기 위해 그것을 구성 요소들로 분해했다. 예컨대 고분자화학의 발전은 유전자가 정확히 어떤 성질을 갖는지를 밝혀냈고 유전자에 근거한 집단유전학 연구는 생물 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가다듬어 주었다. - P244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은 사람을 비롯한 다른 구체적 대상들에 대한 과거의 직접 지각(perception)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마치 영화 속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과 같다. - P244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은 대상과 개념을 다른 대상과 개념에 연결시킴으로써 의미(meaning)를 상기시킨다. 이런 경우에 그 의미가 그 대상과 개념의 이미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이미지를 표시하는 기호를 통해 연결될 수도 있다. - P2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