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경험을 명백히 해 주는 구분은 사실 다른 곳, 즉 과학과 예술의 역할 차이에 있다. 과학은 누가 파란색 같은 감각들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누가 느낄 수 없는지를 가려내고 왜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한다. 반면 예술은 동일한 능력을 가진 개인들 사이에서 느낌을 전달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과학은 느낌을 설명하는 반면 예술은 그것을 전달한다. - P216
대부분의 인간은 색의 전체 스펙트럼을 보고 전뇌를 통해 반사적으로 그 산물을 느낀다. 정상적인 색지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본 패턴들은 명백히 유사하다. 물론 개인적 기억과 문화적 편향에서 비롯된 추억들 때문에 변이들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이런 변이들도 그들의 뇌 활동 패턴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 P216
예술은 비슷하게 인지한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의존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예술이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의사소통되고 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예술 앞에서 정말로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많은 예술 매체들에서 우리가 드러낸 반응들의 축적을 통해 그사실을 직관적으로 안다. 또한 비판적 분석에 의한 감정의 언어적 기술을 통해서, 그리고 방대하지만 미묘한 차이를 갖고 있는 인류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안다. - P217
느낌의 전달을 통해 문화가 공유된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보는 공통적으로 공유된 느낌이 예술을 통해 환기되고 경험될 때 발생하는 감각과 뇌 체계의 역동적 패턴들을 연구하는 과학으로부터 올 것이다. - P217
어떤 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과 예술은 결코 서로 번역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전통적인 지혜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믿는다. 결정적인 연결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과학과 예술의 공통 속성은 정보의 전달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과 예술의 전달 양식이 논리적으로는 동등할 수 있다. - P217
뇌 활동의 시각 패턴으로부터 그림 모양의 언어를 만든다. 그 결과는 한자(漢字) 같은 기호가 늘어서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각각의 기호는 존재자, 과정, 혹은 개념을 표상한다. 그리고 "마음 대본"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새로운 기록이 다른 언어들로 번역된다. 이것을 유창하게 읽어 낼수록 마음 대본은 뇌 영상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읽혀질 수 있다. - P217
청정한 마음 상태에서 자발적인 피험자들이 일화를 이야기하고 꿈속의 모험을 회상하고 시를 암송하고 방정식을 풀며 멜로디를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 그들의 신경 회로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신경과학 기술에 의해서 시각화된다. 관찰자는 종이 위에 잉크로 씌어진 대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직의 전기 패턴으로 기록된 대본을 읽고 있다. 적어도 피험자의 주관적 경험(느낌)들 중 일부는 틀림없이 전달된다. 관찰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웃거나 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마음 패턴으로부터 주관적 반응들을 상대방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뇌는 상대방의 뇌 활동을 직접 지각함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 P218
이것이 가능하다면 의사소통을 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이 같은 식탁에 함께 앉아 있건 아니면 다른 방에 따로 있건 아니면 심지어 다른 도시에 있건 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초감각 감지와도 유사하지만 단지 피상적으로만 그렇다. 첫 번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린 자기 패를 보고 있다. 신경 심상만으로도 두 번째 사람은 그 사람의 패를 정확히 읽어 낸다. 첫 번째 사람이 소설을 읽으면 두 번째 사람은 그 속의 이야기를 뒤따라 갈 수 있다. - P218
마음 대본의 전달은 사용자들의 문화가 얼마나 공통적인지에 따라 정확도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언어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공통된 부분이 적다면 그 대본은 수백 가지 특성들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테지만 그 부분이 광범위하다면그 어휘 목록들은 수천 가지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가장 효과적인 경우에 마음 대본은 특정한 문화와 각 개인의 마음의 독특한 억양과 꾸밈도 전달하게 될 것이다. - P218
마음 대본은 중국의 서예와 비슷할 것이다. 사실적 · 개념적 정보의 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동양 문명의 위대한 예술 형태중의 하나인 서예 말이다. 표의문자에는 글쓴이와 글을 읽는 이들이 공유하는 주관적 경험들에 따라 미묘한 변이들을 줄 수 있는 미학적 다양성이 숨쉬고 있다. - P218
"서예에 사용되는 비단이나 종이는 흡수성을 가진다. 서예가는 붓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놀리지만 한번 쓰면 지우거나 되돌릴 수 없다. 붓은 마치 마음의 지진계와도 같다. 압력과 손목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예는 마치 그림처럼 공간의 예술이면서 음악과도 같이 시간에 따라 펼쳐진다. 또한 마치 춤처럼 역동적인 리듬을 탄다." - P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난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일 마음이 물리 법칙들에 묶여 있다면 그리고 마음이 서예처럼 해독될 수 있다면 자유 의지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여기서 나는 자유 의지의 일상적인 의미, 즉 다른 이들과 세계의 다른 부분들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대신 자신의 몸과 마음의 물리학·화학적 상태가 부과하는 제약들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P219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의지란 의식적 마음을 구성하는 시나리오들 간의 경쟁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이다. - P219
우세한 시나리오들은 감정 회로들을 환기시킴으로써 공상이 일어나는 동안에 그 회로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 시나리오들은 마음 전반을 활기차게 만들고 집중시키며 몸이 특정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자아는 그런 선택을 하는 듯이 보이는 존재자이다. - P219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는 뇌로부터 독립된 존재자가 아니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기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나리오들의 극 중 주인공이다. 자아는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심 무대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감각들은 몸속에 위치해 있고 그 몸은 모든 의식적 행동들의 통치를 표상하도록 마음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와 몸은 분리될 수 없도록 융합되어 있다. - P219
자아를 시나리오와 독립적으로 창조된 무엇으로 보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자아는 몸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몸도 자아 없이는 오랫동안 생존하기 힘들다. - P220
몸과 자아의 연합은 너무 강해서 물질적 대응물이 없이 영혼만이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배워 왔듯이 심지어 예수와 마리아까지도 몸을 가지고 천국으로 올라갔다. 물론 천상의 속성을 가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몸은 몸이었다. - P220
만일 자연주의적인 마음 이론이 모든 경험적 증거들이 보여 주듯이 정말 옳다면, 그리고 전통 신학에서 말하는 영혼 같은 것도 실제로 존재한다면 신학은 해결되어야 할 새로운 신비를 갖게 될 것이다. 비물질적인 영혼이 마음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지만 몸에서는 분리될 수 없다는 신비를 도대체 어떻게 풀 것인가? - P220
끊임없이 변화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자아는 자신의 행동들을 완벽하게 조종하지는 못한다. 자아는 의식적인 순수 이성적인 선택만으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20
의사 결정을 위한 많은 계산들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꼭두각시 자아를 춤추게 할 수 있는 끈이 존재한다. 예컨대 신경 회로와 분자적 과정은 의식적 사고 밖에 존재한다. 그것들은 어떤 기억들을 합병하고 다른 것들을 삭제하고 연결과 유추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며 이어서 일어나는 감정적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 호르몬의 영향력을 강화한다. - P220
커튼이 걷히고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 장치는 이미 부분적으로 마련되었고 대본들도 많이 씌어진 상태이다. 정신 활동의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이뤄지는 이러한 준비 덕분에 우리는 자유 의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양 착각한다. - P220
우리는 그저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이성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물론 드물게나마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결정하기도 한다. 의식적 마음은 이런 종류의 무지를 해결해야 할 불확실성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 P221
순수 이성과 고정된 목표들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 전지의 마음은 자유 의지가 부족할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인간에게 허락하고 인간이 바보 같은 선택을 할 때마다 불쾌감을 드러내는 신들조차도 그런 끔찍한 능력은 갖지 않으려 한다. - P221
맨 정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정합적인 패턴들을 미시적으로 전이시켜 가는 몸과 마음은 엄청난 수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세포들은 매 순간 인간 지능이 미리 알 수 없는 외부 자극들의 포격을 당한다. 그 사건들은 순차적 정보 전달 방식을 통해 새로운 미세 에피소드, 즉 새로운 신경 패턴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우리가 이 결과를 추적하려면 생각하는 뇌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작동 방식을 채택한 엄청나게 큰 컴퓨터가 필요하다. 게다가 마음 대본들은 거의 무한정하며 그것들의 내용은 개인의 고유한 역사와 생리에 따라 진화한다. 도대체 이것을 무슨 수로 컴퓨터로 구현할 것인가? - P222
인간 사고에 대한 단순한 결정론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통해 몸과 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물리 법칙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개인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하고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자유 의지에 관한 우리의 확신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적응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마음은 숙명론에 옥죄어 퇴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체의 시공간에서, 그리고 인식할 수 있는 자아에 실제로 적용되는 면에서 마음은 자유 의지를 가진다. - P222
기계는 "면전에서 듣는 말들의 의미에 따라 자신의 어법을 결코 바꾸지 못하는 반면 인간의 경우에는 가장 멍청한 사람조차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기계는 "인생의 모든 사건들에서 이성이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만들 듯이 행동할 수는 없다." - P223
과학자들은 무언가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그런 실험을 통해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는 게 결코 아니다. 우주적 질문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당신의 질문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요?" - P223
오히려 그들(과학자들)의 직업은 구체적인 개별 단계에서 한번에 하나씩 우주를 탐구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최고의 보상은 존 키츠(John Keats)의 시에서 코르테스가 다리엔 산의 정상에서 처음으로 광대한 태평양을 바라보았던 것과 같이 저 너머의 광대함에 관한 "무모한 추측"을 한번 해 보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인 키츠의 「처음으로 채프먼의 호머를 읽고」 라는 시에 나오는 광경.) 그들의 지적 풍토에서는 위대한 여행을 멈추는 것보다는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낫고 이론에 대해 몇 마디 첨언하는 것보다는 중대한 발견에 천착하는 편이 더 가치 있다. - P224
흔히 "AI"라 불리는 인공 지능 분야는 전자 컴퓨터가 처음으로 발명된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인공 지능 연구자들은 인공 지능 연구를 지적 행동에 필요한 계산에 관한 연구와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 행동을 복제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한다. - P224
몇몇 선택된 모양을 상이한 방향에서 바라보게 했을 때 어떤 프로그램은 물체와 얼굴을 구별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이 기하학적 대칭성의 규칙에 따라 무언가를 인지하는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또한 어떤 프로그램은 비록 조악하기는 하지만 언어를 번역하기도 하고 축적된 경험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대상들을 일반화하고 분류하는 일도 수행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 마음의 작동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 P224
어떤 프로그램은 미리 선택된 목표들에 따라 특정한 행동 절차를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다. - P224
체스 컴퓨터로 유명한 딥 블루(Deep Blue)는 32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하여 1초에 2억 개의 수를 무작위적으로 조사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 P224
현재는 인간의 모든 사고 능력을 더 높은 수준에서 시뮬레이션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 지능 프로그래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른바 진화론적 계산 기법을 사용해 왔다. 그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여러 개의 선택지를 준 후에 그 프로그램으로 하여금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그에 따르는 가용한 절차들을 수정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그 프로그램은 박테리아와 다른 단세포 개체들을 닮아 가게 된다. 왜냐하면 프로그램이 무작위적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가용한 절차들을 변화시킴으로써 결국 해답의 범위를 좁혀 가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그 프로그램들은 마치 먹이와 공간을 확보하는 생물처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한다. 이 기법을 "진화론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25
어떤 변이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그중 어떤 놈이 성공할 것인지는 늘 예측할 수는 없다. 전체 프로그램으로서 ‘종‘은 인간 설계자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 - P225
실험실을 돌아다니고 학습하며 실제 자원들을 분류하는 로봇을 만들어 내는 일은 컴퓨터 과학자들의 몫이다. 심지어 그들은 특정 목표를 놓고 경쟁하는 로봇들도 창조해 내야 한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박테리아보다는 편형동물이나 달팽이와 같은 단순 다세포 동물의 본능 레퍼토리와 더 유사할 것이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몇십억 년의 생명 진화 역사와 동일한 시간을 횡단하게 될 날이 향후 50년 내로 가능할 것이다. - P225
MIT의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로 대표되는 한 진영은 상향식 접근을 취한다. 즉 설계자들은 다윈적 로봇 모형을 따라 하위 수준에서 상위수준들로 올라간다. 이 방식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통찰을 얻고 기술을 발전시킨다. 때가 되면 휴머노이드가 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226
반면 인공 지능의 창시자이며 브룩스의 동료인 MIT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처럼 하향식 접근을 추구하는 진영도 있다. 하향식 접근을 추구하는 이들은 진화론적 시각은 적용하지 않은 채 학습과 지능의 상위 현상들을 직접적으로 연구한다. - P226
가까운 장래에 인간의 마음에 대한 조잡한 시뮬레이션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뇌과학은 마음의 기본 작동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세련될 것이고 컴퓨터과학은 그 기본 작동을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226
기능적 장애물은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가거나 마음을 통해 나오는 정보 입력의 엄청난 복잡성을 말한다. - P226
합리적 사고는 몸과 뇌 사이의 계속적인 교환이 신경의 방전과 호르몬의 흐름을 통해 일어남으로써 생겨난다. 이때 호르몬의 흐름은 정신 태도, 주의, 목표 선정을 조절하는 감정적 통제의 영향을 받는다. - P226
기계 속에 마음을 복제해 넣기 위해서는 뇌과학과 인공 지능 기술을 완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뮬레이션의 선구자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계산, 예컨대 인공 감정(AE)도 발명하고 설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27
휴머노이드 마음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두 번째 장애물은 인류의 고유한 유전적 역사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진화론적 난관이다. 보편적인 인간 본성ㅡ인류의 심리적 통일성ㅡ은 잊혀진 과거 환경에서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 역사를 통해 생겨난 산물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의 유전적 설계도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다면 시뮬레이션된 마음이 능력 면에서는 대단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인간의 마음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 될 수도 있다. - P227
설상가상으로 비록 그 설계도가 밝혀지고 우리가 그것을 따라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인공 마음이 인간이 되려면 각 개인의 고유함도 흉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일생 동안 겪는 수많은 경험들ㅡ미묘한 감정들과 버무려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운동 감각들ㅡ로 채워진 기억 은행이 마련되어야 한다. - P227
게다가 인공 마음은 사회적일 때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수많은 접촉들을 통해 지성과 감정을 노출한다. 그리고 이런 노출에서 얻은 기억들에는 의미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수많은 연결들이 모든 단어들에 일일이 부착되고 그것들이 감각 정보로서 그 프로그램에 주어진다. 이 모든 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공마음은 튜링 시험에서 계속 낙방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인간 배심원도 인간으로 가장한 인공 마음을 몇 분 내로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P227
자연과학은 양자물리학에서 시작하여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을 아우르는 인과적 설명의 직조물을 짜 왔다. 그 직조물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가닥들은 거미줄처럼 섬세하게 얽혀 있으나 아직도 여기저기 구멍이 보인다. 과학의 궁극적 목표인 예측적 종합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 P229
대부분의 학자들은 흔히 문화가 두 문화, 즉 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으로 쪼개져 있는 것을 고정된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두 영역들, 즉 아폴론적 법칙과 디오니소스적 정신, 산문과 시, 좌뇌 피질 반구와 우뇌 피질 반구는 쉽게 연결될 수 있지만 한쪽 언어를 다른 쪽 언어로 번역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도라도 해야 하는가? 나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요한 목표일 뿐만 아니라 달성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학문의 경계 자체를 재평가해 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 P230
두 문화(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간의 분리가 오해와 충돌의 영구적인 원천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 P230
C. P. 스노는 1959년에 쓴 『두 문화 (The Two Cultures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라는 중요한 에세이에서 "이런 양극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실제적인 손해이고 지적인 손실이며 창조성의 말살이다."라고 말했다. - P230
교육받은 엘리트의 과도한 분화가 바로 문제의 주원인이다. 대중 지식인들과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대중 매체의 전문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사회과학과 인문학 전통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를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 왔으며 자연과학과 사회 행동이나 정체성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거의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 P230
자연과학자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은 인간사와는 동떨어진 좁은 칸막이에만 갇혀 지냈기 때문에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는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생화학자가 법이론과 대(對)중국 통상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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