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먹는 거 조심해야 돼요.
몸 망가지면 안 돼요."

"뭐라긴요. 내 앞에서만 공평한 척하지, 완전 뱀 같은 놈이에요."

회사 정직원도 아닌 파견직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애사심이 깊었다. 자기 일처럼 회사 일에 신경을 썼고 다른 매장의 판매사원들과의 교류도 많았다.

자연히 매장과 경쟁사의 정보통이 되었고 일종의 ‘파견사원들의 왕언니‘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연히 영업부뿐만 아니라 마케팅 및 기획실과의 관계도 깊어졌다.

‘한국공조 정직원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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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제품과 달리 유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생산공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 공장에서는 거대한 전기로에 폐유리를 비롯한 유리 재료를 넣고 고열로 녹여 유리물이 흘러나오면 그것을 몰드에 넣고 제품을 찍어낸다. 전기로는 통상 웬만한 사무실 크기 정도다. 주문받은 제품의 수량만큼 찍어내면 남은남은 유리물은 다 버린다. 그래야 불을 끄고 청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문량이 적을수록 그만큼 남는 유리물이 많아진다.

만일 100만 개 정도의 제품을 계속 생산한다면, 중간에 유리물을 퍼내거나 전기로의 불을 껐다 켰다 하지 않고 계속 가동시킬 수 있다. 소량 생산으로는 어렵겠지만 대량 생산 체제로 바꾼다면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일본 유리 업체로부터 OEM 생산도 하는 업체였기에 품질도 믿을 만했다.

"그럽시다. 한번 해보죠."

스스로 노력해서 주문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품질을 관리하고 비용을 줄여가는 것이 제조업체가 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주문량을 보장해달라니. 그런 요구는 수용할 수가 없었다.

의무적으로 주문량을 정해 계약해달라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오늘 잘 팔리는 상품이 내일도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팔리든 안 팔리든 무조건 주문량을 보장해달라니. 소비자들에게 계속 선택받을 수있도록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진력을 다하는 것이 제조업체의 기본자세가 아닌가. 적당히 안주하려는 태도가 몹시 불쾌했다.

지금은 고객의 욕구가 우선시되는 시대다. 모든 가치는 고객으로부터 나온다. 고객을 중심에 놓고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때 감동받는지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집중하고 또 집중해야 한다.

고객들 자신조차 미처 몰랐던 욕구를 먼저 찾아내 만족시켜 줘야 살아남을 수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매일 갈고 닦아야 한다. 내일이 보장되는 삶은 없으니 말이다.

소비자들은 ‘균일가‘와 ‘저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있다. ‘저가는 곧 싸구려‘라는 인식도 있다. 값이 싸면 으레 물건의 질도 나쁘리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지난 30년은 이런 통념과의 길고 긴 싸움이었다. 우리 상품은 저가이긴 하지만 싸구려는 아니라는 것, 그 자부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중의 하나가 상품에 혼(魂)을 담으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상품이라도 혼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가치가 나올수 없다. 1,000원짜리든 5,000원짜리든 마찬가지다.
정성이 들어가야 원하는 상품이 나온다. 대충 만들면 쓰레기밖에 안 된다. 그래서 상품 하나하나에 집중해한다.

‘혼‘을 담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원료 투입부터 세부적인 작업 과정, 마무리와 검사, 패킹에 이르기까지 상품개발의 전 과정에 역량을 총 집중해야 한다. 장인들이 작품을 만들 듯 강력한 몰입이 필수다. 내 경험으로는 그래야만 완전한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 집중과 몰입이 없으면, 즉 혼을 불어넣지 않으면 불량품이 나오는 등 로스가 발생한다.

상품은 정독해야지 다독하면 안 된다. 철저하게 상품 하나하나에 올인하고 최선을 다해야 그 하나하나가 생명력을 가진다. 그러다 보니 신상품을 개발하는 단계가 꽤 까다롭다.

나는 어디에 놓여 있든 우리 상품을 한눈에 알아본다. 변심한 애인의 눈빛만 봐도 금방 풀이 죽는 연인처럼 상품도 마찬가지다. 개발자의 관심과 애정을 담뿍 받으며 개발된 신상품들은 매장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러나 개발자의 애정 어린 시선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매장에 나오면 풀이 죽은 채 고객에게도 외면당하는 상품이 되고 만다.

물론 개인이 직접 사용해보고 그 내용을 콘텐츠로 만들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광고비를 들여 과장되게 제품을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인위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광고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싸고 좋은 제품이라도 고객이 불편을 느낀다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경쟁자와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다. 거기에서 살아남은 상품만이 곧 경쟁력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흔히 균일가숍은 국민 소득이 낮은 저개발 국가에서 잘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처럼 중산층 비율이 높은 국가에서 더 반응이 좋다. 선진국 소비자일수록 다양한 구매 경험이 있어, 더 합리적이고 알뜰한 소비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용도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사용할 수있는 사회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전한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다양성이 존재하기 힘들다.

불과 10~20년 전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집 안에 가위 하나로 종이도 자르고 옷감도 자르고 머리카락도 잘랐다. 용도에 맞는 가위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혹여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을 구매할 여력이 되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꽃이 열매를 맺는 데만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현재 팔림새가 좋지 않더라도 단종시키지 말고 꾸준히 구색을 갖추면 고객의 눈에 드는 시점이 반드시 온다. 그 시간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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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는 100% 자동화 작업으로 생산된다. 적은 수량으로는 쉽지 않겠지만 100만 개, 200만 개를 한꺼번에 대량으로 생산한다면 생산공정 중에서 원가를 낮출 방법을 분명 찾아낼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일반 소비자들은 알수 없는 전문적인 부분에 대해서까지 문제를 제기하고있었다.
"아, 이거 뭔가 있구나."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관련 업계에서 대대적인 저항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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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100자평]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지금은 이 땅에 발 붙이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년전에 읽었던 책이라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단순히 나 자신의 죽음 뿐만 아니라 호스피스 연명치료와 같은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의식은 없지만 단지 숨이 붙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연명치료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남은 가족들이 감내해야 할 경제적 부담이나 기타 어려움들을 생각했을 때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안락사로 보내드리는게 더 나은게 아닌가 등과 같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주제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죽음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인듯 합니다. 제가 여기 적은 연명치료 이슈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저자분께서 서울대학교 종양내과의사로 일하시는 분이라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시고 경험한 것들을 책에 상당부분 수록해 놓으셨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좀 더 생생하고 실감나는 이야기들을 읽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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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 요건은 돈의 속성을 알고 이 세상에서 돈 버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며 그렇게 번 돈을 효과적으로 쓰는 일이다.

강태기 씨의 모노드라마 <돈>에는 돈의 행방에 따라 여러인물이 등장한다.

이 연극에서 ‘돈‘은 화폐로서의 ‘돈‘을 비롯해 "윤회한다"는 의미의 "돈다"와 미친다는 뜻의 "돈다" 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돈이 사람을 사이코로 만드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고 있는 첫번째 기능은 의식주를 해결하여 준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와 부처까지 인용하는 이유는 어설픈 종교적 사고로 돈 자체를 터부시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돈이 제구실을 하려면 돈이 아닌 다른 가치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결국 돈이 행복의 첫 단추를 채울 기회를 주는 기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단추들은 모두 다른 요소들이 좌우한다는 말이다.

은행이 거만하다고? 돈 많이 벌어 주는 고객들에게는 친절하다. 당신도 당신에게 이익을 많이 주는 손님에게는 그럴 것이다. 정말 은행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은행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다. 당신이 식당을 한다면 굶주린 사람들을 모두 먹이겠다는 말이냐.

당신이 저녁에 술을 파는데 단골손님이 와서 양주 몇 병과 안주 몇개를 시켰다. 다른 손님은 맥주 몇병에 팝콘 안주뿐이다. 당신 같으면 누구에게 신경을 더 쓰겠는가.

자본주의에서 돈을 지불하는 대상은 결국 ‘좀 더 편하고 좋은 것‘을 얻기 위함이다. 당연히 그 질적인 면은 지불하는 돈의 크기와 비례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수고객에게는 특별 대접을 하고 불성실한 고객과는 의도적으로 거래를 줄이는 디마케팅demarketing은 당연한 현상이다.

자본주의사회의 원리는 이렇다. 더 편하고 더 좋은 것을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하라. 지불할 돈이 없다고? 그렇다면 덜 편하고 덜 좋은 것을 가지면 된다.

정말 좋은 사회는 ‘대가를 많이 지불한 사람들‘과 이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받을 수 없는‘ 장애인들이 먼저 앉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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