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누군가와 함께여야 행복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만 해도 꼭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지는 않으니까. 지금껏 쭉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여도 그게 두렵거나 괴로울 것 같지는 않다. 아내나 자식이란 행복은 없어도 다른 가족들이나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이 깊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가족을 이룬 적이 있다면 얘기가 좀 다르다. 그게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면, 그로 인한 상실감이 생긴다고 확신한다. 그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시 가족을 이루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혼자였을 때가 훨씬 행복했고, 누군가와 함께했던 게 너무나 끔찍했을 수도있긴 하다. 단지 작은아빠의 경우는 그렇다. 작은아빠와 숙모는 서로에게 맞지 않는 톱니바퀴였을뿐, 각자가 나쁜 것은 아니었으니까. 서로에게 맞는 인연을 만난다면, 딱 맞는 톱니바퀴를 찾는다면, 서로에게 맞게끔 모양을 다듬을 도구가 있다면, 분명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게 생각처럼 풀리라는 법은 없지만,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대박을 꿈꾸지만, 처음부터 대박을 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일단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잘생기거나 예쁜것을 따지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피부였다. 직원들은 곧 가게의 이미지였으니까.
피부 건강은 피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속의 장기들에 문제가 있으면 올라오기에.
원래 더 유력한 후보들도 있었다. 빼어난 외모를 가졌거나 이미 건강 주스 카페 혹은 바에서 일을 해본 사람들이 그랬다. 내가 그들을 떨어뜨렸는데, 흡연자이거나 음주를 즐기는게 보인 탓이었다. 단순히 흡연과 음주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건강에 유익하지는 않지만, 기호식품이니까. 흡연과 음주를 즐기면서도 장수하는 사람들도 있고.
활발한 소비가 시장경제를 활성화한다. 술은 확실히 그런걸 부추긴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를 먹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담배야 대부분이 세금이니 농으로 흡연자는 애국자라는 말도 있으니까. 흡연이든 음주든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카페 웰웰의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가능한 모든 위험 요소들을 덜어내고 싶었다. 흡연의 경우 피부가 안 좋아질 확률도 높았고, 건강과 신선함을 메인으로 하는 웰웰에서 담배 냄새가 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음주도 피부에 영향을 미칠수 있었다. 가장 흔한 증상으로 열꽃이 피거나 뾰루지가 날수 있었다. 일하기 전날 과음을 해서 근무에 지장을 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고.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작은 부분들도 하나하나 고쳐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뤄냈고, 이루는 중인 것들은 운이 좋아서였다. 내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할아버지가 일으킨 기적 아니던가. 내게 있어서 겸손은 미덕이 아닌 의무다.
말 그대로 문을 여는 순간부터 느낌이 좋았다.
출입문 바로 앞까지가 내부의 줄이고, 이외에는 밖에서 기다려야 된다고 딱 잘랐다.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음료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됐다. 좋은 기억만 안고 가야지, 사업주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재방문율이 떨어지니까.
처음에 유난히 손님이 몰렸던 이유는 단순했다. SNS 때문이었다. 나도혜의 SNS 게시물을 보고 온 것도 있지만, 사람들을 더 빨리 움직이게 한 것은 자신의 SNS를 위해서였다. 인플루언서(influencer). SNS의 많은 구독자들을 통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을 뜻한다.
사실상 새로운 형태의 연예인이나 다름이 없다. 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백만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인플루언서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게시물(컨텐츠)을 올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산다. 혹은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더 빨리 움직인다. 어느 쪽이든 우리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다.
스스로가 많이 변한 것을 느꼈다. 속만 바뀐 게 아니라, 인상자체가 변했다. 바뀐 생각과 마음이 겉으로도 드러나는 걸까. 많이 웃은 탓도 있는 듯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관상 같은 걸 맹신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인상이라는 것은 있다. 자주 짓는 표정에 따라 주름이 생기고, 그렇게 얼굴이 변해간다.
화환 같은 건 절대 보내지 못하게 했다. 어차피 시간 조금 지나면 다 쓰레기인지라.
"아저씨. 말조심해요. 요즘 세상에 나이 더 많은 거 벼슬 아니에요. 손님인 게 벼슬도 아니고, 상호 존중을 해야죠."
일반적으로 청은 과일을 설탕에 재워서 숙성을 거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부패를 막기 위해 염장을 하는 것처럼 설탕은 필수적인 요소에 가깝다. 우리는 고농축에 건강한 청을 만들고 싶었고, 그에 따라 모든 걸 수제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시판되는 대부분의 청은 중탕식으로 원재료를 고온에 끓여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옵션이 있었다. 박종만의 특허 기술이었는데, 고진공 저온 방식으로 추출하여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무설탕 혹은 꿀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가장 큰 장점은 생산이 빠르다는 점이었다. 레시피만 제대로 잡으면 맛도 영양도 훌륭했고. 당연히 수제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뭐?" "손님 입맛에 안 맞을 수도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님께서 드신 건 전부 유기농으로 엄선된 신선한 재료만 써서 정성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결코 막 만든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건 저희 청과 저희만이 아니라, 그 청을 좋아하시는 다른 손님 분들을 욕하는 게 됩니다."
"그렇게 싫으시면, 안 드시면 됩니다. 지불하신 금액은 환불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시길 바랍니다. 계속 여기서 이러시거나,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뭐? 법적인 조취? 뭐 어쩔건데? 내가 누군지 알아?" "손님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도 법적으로 대항해 볼 여유는 충분히 있는 사람입니다." "이, 이거......! 젊은 놈이.…..…...!"
"뭘 어째? 아니, 나를 법적으로 뭘 어쩌니 저쩌니 하잖아! 내 조카가 변호사야! 알아?" "조카 분이 변호사인 게 뭐가 어떤 건지, 무엇으로 문제를 삼을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시고 싶은대로 하십시오. 저도 제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렇게 순조롭기만 할 것같던 카페 웰웰의 오픈은 다소 파란만장하게 변했지만, 결국에는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남자 직원과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따로 차비를 챙겨줬다. 오픈날이라 원래 출근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일을 했기에 시급 외에 소정의 보너스를 지급할 생각이긴 했는데,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준 게 고마워서 조금 더 챙겼다.
투자 중에 가장 쪽박이 날 가능성이 높은 게 사람에게 투자하는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작은 무언가로도 가장 큰 결과물을 낳을 수 있는 것 또한 사람에게 투자(‘투자‘라고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참 빠르다. 빠르게 변하고, 변해가고, 변해갈 것이다. 모든 게 빨라졌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게 퍼지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어제 카페에서 있었던 일은 고스란히 휴대폰 영상으로 찍혀서 인터넷에 퍼져 있었다. 카페 손님들 중 다수가 SNS를 하는 사람들이었으니 더 그럴 수밖에. 그냥 퍼진 정도가 아니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가 ‘건강 주스 카페 갑질‘이었으니까.
영상이 통으로 올라온 건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말이 더 나올 게 없으니까. 내가 걱정했던 부분은 있지도 않은 일을 소설처럼 꾸며내 올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걸 경험해 본 터라 더 예민했고. CCTV 등이 있으니 일이 벌어져도 어차피 이길 수 있는 싸움이겠지만, 그 과정 자체가 싫었다.
기상 시각이 늦어지더라도 하루에 최소 7시간은 꼭 자기 시작했다. 아무리 관리를 해도 수면이 부족한 것을 완전히 채울 수 없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자지는 않는다. 뭐든지 적당해야 좋다. 생마늘이 몸에 좋다고 마구 퍼먹었다가는 위장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처럼.
딴 생각을 하고, 딴 짓을 할 시간을 줄이면 됐다. 깨어 있는 시간에 보다 집중력을 가지고 밀도 높게 일을 보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아이의 귀로 손을 가져갔다. "어, 어......." 아이가 조금 겁을 먹는 듯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프거나 그런 거 아니야. 약속."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아이가 손가락을 걸어왔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지 말지는 모르겠다고. 그리고아이를 가진다면 아들보다는 딸을 갖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게 손가락을 걸어오는 아이를 보니 아이를 가지고 싶어졌고, 아들이든 딸이든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았다. 이름도 모르는 남의 애도 이렇게 예쁜데, 내 애는 얼마나 예쁠까.
나는 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으로 아이의 귀를 막았다. 그리고 동시에 귓불을 주물렀다. 그걸 약 30초 동안 지속했다. 그동안 아이는 편안한지 가만히 있었다. 딸꾹질도 하지않았고.
웰웰의 성공(고작 2주차에 성공여부를 운운하기는 애매할지도 모르지만)에 있어서 시작은 인지도였다. 나도혜의 SNS 마케팅 파워가 큰 도움이 됐고, 여름 모를 진상 손님 하나가 불이 붙은 곳에 기름을 뿌렸다. 기존의 행복 건강즙 이용자들에게도 관심을 사서 도움이 되는 중이었고.
하지만 계속해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가성비와 정직함 그리고 신뢰였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유기농 과채류 주스 및 건강식품을 즐길 수 있었다.
보람이 있었다. 단순히 돈을 벌어서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능력으로 담아낸 건강을 위한 레시피가 활용되는 게 좋았다. 진정으로 마시는 사람들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내 손길이 닿은 것들은 같은 방법이라도 그 효능이 더 뛰어났다. 그게 나의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다.
초심을 잃지 말자.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뇌는 말이다. 너무나 흔하디흔한 이 문구는 너무도 중요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계좌에 꽂히는 돈의 액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 이따금씩 눈이 돌아가려고 한다. 재료를 조금만 아끼면 확 치솟을 마진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 그대로를 계속 유지하자고 다짐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맥을 짚으면 다 아시나요?" 내가 묻자 나도혜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맥을 짚는 것만으로 전부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참고할 수는 있죠. 맥을 짚어서 바로 것이 있고, 거기서 이상한 게 느껴지면 이제 직접적인 문제,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거죠." "그렇군요."
"아무튼 요는 그겁니다. 다른 사람들 시선에 구애받으면 행복도가 좀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기준 아니겠습니까."
"욕하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세요. 어떻게 하든 안 좋게 보고 욕을 하기 위해 준비중인 사람들이니까요. 어차피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봅니다. 자기 눈앞의 일도 잘 모르면서, 만나본 적도 없는 남을 전부 다 안다고 생각하죠."
"원장님은 거울을 보면 스스로의 모습을 다 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 죠?" "하지만 자신의 눈썹이 몇개인지, 모공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 않나요?" "그렇죠. 그건 모르죠."
"눈에 가장 가까이 있는 눈썹의 개수도 알 수 없는데, 어찌 눈앞의 일이라고 다 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운명 속에 우연은 없다고도 하죠. 사람은 어떤 운명을 만나기 전에 자신이 그걸 만들고 있다고요. 저희도 서로의 길을 닦아내고 계속 나아가다가 접점이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길을 이어 붙이신 것은 원장님께서 제게 사업 제안을 하신 덕분이고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이제 시작에 불과했지만, 성공의 빛이 분명히 내리쬐고 있었다.
행복 건강즙 1호점과 2호점, 웰웰 그리고 웰니스까지. 예전에 한창 게임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1스테이지의 보스를 깨고 나면 더 강력한 2스테이지의 보스가 나타났다. 그걸 또 클리어해냈을 때의 기쁨. 그리고빨리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지금도 그랬다. 이제 막 웰니스를 시작했는데, 마음속의 시선은 다음 스테이지를 향하고 있었다.
가난이라는 칼바람은 세차게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나이를 먹을수록 돈의 소중함과 돈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민간요법으로 생김새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동안의 첫 번째 요소, 특히 중년 이상일 경우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피부다. 주름이 얼마나 많고 적은지, 얼마나 깨끗한지 등에 따라 동안과 노안 여부가 갈린다.
"그쵸? 그리고 당연히 음식도 중요한데요. 기본적으로 자주 챙겨 드시기도 좋고 동안에 좋다는 것들이 마늘, 토마토, 녹차입니다. 건강에 좋은 것들이니 드셔서 나쁠것도 없죠."
"술도 줄이시고, 가끔 혼자드시고 싶을 때는 질 좋은 적포도주를 한 잔 정도 마시는게 좋습니다." "오, 와인이요? 와인은 잘 모르는데. 그냥 편의점에서 마시면 되나?" "저렴한 프랑스산 와인도 조심해야 됩니다. 뭐, 가격으로 무조건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잘 알아봐야 해요."
"그런데 와인에서 발암물질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술이라서가 아니라, 나오면 안될 성분이 나온 거죠." "어찌 그런 답니까?"
"여러가지 첨가물들이 들어간 거죠. 와인이 포도를 발효시키는 거잖아요? 일단 포도만으로 발효를 시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효모를 넣어서 인위적으로 발효를 앞당깁니까. 그리고 타닌을 넣어서 색을 더하죠." 박종만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뭐 그딴....먹는 걸로 장난치는 놈들이 제일 나쁜 놈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