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말할 때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 P8
그렇게 작은 보트로 피오르드에 나가는 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춥고 불편하고, 모든 게 물과 파도일 뿐인 피오르드, 여름에는 피오르드에 나가는 게 아주 좋을 수 있다, 피오르드가 새파라면, 피오르드가 파랗게 반짝이면, 피오르드에 햇빛이 비치고 피오르드가 고요하고, 모든 게 푸르고 푸르면, 피오르드는 아마도 매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두운 가을에, 지금 피오르드는 잿빛이고 검고, 색깔이 없다, 그리고 춥다, 파도는 거세고 불안하다, 그리고 겨울엔, 노 젓는 자리가 눈에 덮이고 얼어붙으면, 보트를 띄우고 싶을 때 얼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밧줄을 발로 차 떼어 내야 할 정도가 되면, 그럴 때면 피오르드 위에는 눈 덮인 얼음덩이가 떠다닌다. 그런데 무엇이? 피오르드에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란 말인가? - P10
그는 무척 내향적이고 사람을 꺼린다, 누군가 오면 그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는 그냥 서서 두 손을 어디에 둘지 모른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며, 그냥 서서 당황한다. 그런 모습을 누구나 보게 된다, - P11
그녀는 생각한다, 그는 늘 어느 정도 그런식이었다. 뭔가 소극적이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해주지 않는다고 늘 생각했다. 자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사람들을 방해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어떤 일이든 다른 이들이 원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 P11
믿을 수가 없어,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 P12
그녀는 생각한다. 도대체 그는 왜 온종일 피오르드에 있으려 하는걸까? 그 작은 배에, 작은 나무배에, 나룻배에, - P14
그는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홀로 남았다, 그들에겐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와 그, 항상 둘뿐이었다, - P18
그는 그냥 가 버렸고 사라졌다, 나가 버렸고, 가 버렸다, 그날, 그가 가 버릴 때, 사라질 때, 무슨 말을 했었나? 그는 갈때 무슨 말을 했었나? 그때 무슨 말을 했던가? 아마도 잠깐피오르드에 나간다고? 그가 늘 하던 말, 그러니까 보트를 타고 피오르드에 나가려고 한다고? 아마도 잠깐 낚시를 하겠다고,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늘 그렇듯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가 자주 하던 어떤 말, 그가늘 말하던 평범한 단어와 문장들, 사람들이 늘 하는 그런 말, 그는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 P19
그럼 왜 매일 나가는 거야, 싱네가 말한다 그냥 그러는 거야, 어슬레가 말한다 그냥 그러는 거라고, 싱네가 말한다 응, 어슬레가 말한다 - P20
그런데 왜 집에 있지 않는 거야, 싱네가 묻는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어슬레가 말한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지금 농담해, 싱네가 말한다 어쩌면 난 보트 타고 밖에 있는 걸 좋아하는지도 몰라, 어슬레가 말한다 - P21
당신은 나랑 여기 있고 싶지 않은 거야, 그런 거지, 싱네가 말한다 아니, 그건 아냐, 어슬레가 말한다 하지만 당신 보트는 너무 작아, 싱네가 말한다 난 그 보트가 좋아, 어슬레가 말한다 난 벌써 오래전부터 그걸 갖고 있었어, 긴 세월, 예쁜 보트지, 예쁜 나무 보트야, 당신도 알잖아, 그가 말한다 그래, 알아, 싱네가 말한다 - P21
그는 걷는 게 좋다, 걷게 되면, 제대로 걷기 시작하면, 제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면, 그러면 좋아진다. 그는 생각한다. 그러면 마치 평소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거운 것이조금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 마치 그 무거운 것이 그에게서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움직임이 생기는 것 같다, 늘 그런 무겁고 빡빡하며 미동도 없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 P28
왜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어야 하나? - P30
벽들은 거기에 있고 벽에서 무언의 목소리가 말을 하는 것 같다, 벽들 안에 커다란 혀가 존재하고 그 혀가 단어로는 할수 없을 무언가를 말한다. - P49
그는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그는 어떤 사람이 된 것일까? 그는 왜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그녀는 생각한다. 그는 늘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냥 사라졌다. 그의 보트,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보트를 찾아냈다. 비어 있었다, 십일월 말, 어느 어두운 가을 저녁에 한참 전에, 그게 벌써 이십삼년이다. 1979년이었다. 어느 화요일,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당시에 그녀는 그가 피오르드에 오래 있나 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생각한다. 그가 곧 돌아오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갔다, 조금씩 조금씩, 아니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 너무 괴롭다, 그녀는 생각한다, 아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그녀는 생각한다, 그는 떠났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밖으로 나갔고 그를 기다렸다, 보트 선착장에서 있었다. 어둠 속에, 빗속에, 바람 속에, 거기에 서서 기다렸다, 그는 바로 돌아와야 했을 텐데? 그는 왜 오지 않았나? 하지만 그는 결코 아니다, 그녀는 그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보트만, 그 이후 그날, 그것만 만의 물가에 떠 있었다. 바위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리고 비어 있었다. 아니다, 그 생각을 해선 안 돼, 그녀는 생각한다. - P55
그렇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미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아주 당연했다. - P58
그들은 지나간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치워 버렸고 뭔가 허세를 떠는 체하기도 했다. - P58
그리고 그녀는 그녀다. 그리고 그는 그다. - P81
나가고 싶으면 나가야 한다. 여기에 서 있을 수만은 없다, - P81
그녀는 생각한다. 그는 왜 그러는 걸까? 아니다,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왜 그녀와 함께 있으려 하지 않는 걸까? 그녀는 생각한다. 대신 그는 보트를 타고, 작은 보트를 타고, 작은 나룻배를 타고 나간다. 하지만 이제 그는 돌아와야 한다,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너무도 불안하다, 평소에 그는 이토록 오래피오르드에 나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날씨에는,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어두울 때면, 그리고 이렇게 추울 때면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언젠가 이토록 오래 나가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왜 오지 않을까? 무슨 일인가?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았겠지?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해선 안 된다. - P82
독자는 화자가 서술하는 싱네와 남편 어슬레의 내면에 흐르는 의식을 따라가게 될뿐이다. 그 의식의 흐름 속에서 독자는 상실의 경험, 외로움, 불안, 사랑과 그리움, 자유에 대한 갈망, 존재의 근원, 죽음 등 늘 삶에서 만나게 되는 깊은 사유의 대상을 다시 만난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생각은 우리의 내면에 늘 존재하지만 명확한 답이 없는 것들이고,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 P110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일부로 함께 존재한다. 싱네는 그렇게 인생을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싱네는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며, 현재의 그리움과 불안, 무엇에겐가로 향하는 갈망에 대해서도 자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삶의 과정에서 겪는 복잡한 내면의 의식, 그 자체가 자신의 존재 확인은 아닌지, 또 다른 한편으로 현실 속에 공존하는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삶의 본질은 아닌지, 우리는 싱네의 모습을 통해 또 하나, 삶의 형식을 들여다본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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