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정보나 문자 메시지, 이메일에 둘러싸여 있으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죠."
"맞아요.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기 가장 좋은 때는 명상을 하거나 자연 속에 혼자있을 때죠. 그런 방법을 통해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 생각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존, 다양한 생각, 사람, 문화, 관점 등에 접하는 게 왜 좋은지, 그 장점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 기억하세요?" "그럼요.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찾는 대목에서 나왔었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우면 몸속 어딘가에서 커다란 공명이 울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육체적인 반응을 경험한답니다. 척추를 타고 오는듯한 전율을 느끼는 사람, 기뻐 소리 지르면서 우는 사람 등 다양해요. 깨달음이자 신을 압도하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것들이 바로 존재의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없다, 질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는 것이 방법이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느낌을 스스로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그게 답인 것 같은데요."
‘지난 2년반 동안 내가 1분 1초를 아껴 전력투구해 살아가던 그때에도 태양은 똑같은 모습으로 지고 있었겠지. 몇 시간 비행기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오면 천국이 바로 옆에 있는데, 나는 그런 천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았던 거구나.‘
‘천국은 2년 반 동안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수백만 년, 아니 그 이상 되는 오랜 세월동안 여기 있었을 테고, 해는 그렇게 매일 아름답게 지고, 파도는 밀려오고 있었겠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내 존재가 아주 작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 스트레스 받았던 일들,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그 모든 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인생을 사는 동안 내가 무엇을 하든, 내 결정이 옳든 그르든,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라도, 여전히 그 해변과 석양은 그대로일 거란 생각이 들었죠. 내가 죽고난 이후에도 말이에요. 거기 앉아서 그토록 황홀하게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엄청나게 큰 존재의 작은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왜여기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내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우리 인생 자체가 멋진 이야기랍니다. 단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지, 또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죠."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그날은 정말로 새로운 하루였다.
앤처럼 내게도 변화는 천천히 시작되었다. 카페 문을 나선 뒤부터 내 머릿속에서는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 뒤로도 계속 그 질문은 나를 쫓아다녔는데, 질문에 대한 답을 며칠 만에 찾을 수는 없었다.
휴가를 내어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본다고 곧바로 찾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깨우쳐서 마음에 새길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낼 때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었다. 결국 내가 존재의 이유를 찾은 것은 케이시와 앤으로부터 배운 방법을 다 동원하고 나서였다.
나는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 내가 원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케이시가 이야기해준 대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울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내 존재이유의 가능성을 담는 우주가 훨씬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우주는 내가 처음 여행길에 올랐을 때보다 확연히 더 커져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존재 이유와 그것을 충족할 방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가지 선택을 놓고 저울질 할 때, 즉 하나는 나의 존재 목적을 충족해줄 수 있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단지 그냥 먹고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이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는 너무 자명하고 쉬워 보인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존재 목적을 발견하고 나면 여정을 중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담장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삶이 보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문 앞에서만 서성이다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하는 순간들은 서로 달랐다.
그런 선택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오직 본인 스스로 하는 자발적인 선택만이 의미가 있다.
나의 경우, 일단 마음먹은 일을 행동에 옮기면,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담장 구멍을 통해 보이는 삶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 망설임이 없어졌다. 이제 이 깨달음은 내 인생의 철학이 되었다.
이제는 그 카페와 연관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보내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온갖 광고로 가득한 이메일과 우편물을 보면 케이시가 들려준 녹색 바다거북 이야기가 떠오른다.
케이시가 말한 그 파도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 가기 위해 항상 밀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 파도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나를 밀어주는 파도가 올 때를 대비해 내 힘을 아낄 줄도 안다.
코스타리카 해변에 앉아 있었다는 마이크의 이야기도 자주 생각난다. 큰 그림 속에서 보면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스트레스, 안고 사는 걱정거리,성취감과 상실감 같은 것은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작고 보잘것없는 우리의 존재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좀 더 일찍 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나는 그날 밤 카페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내가 왜 여기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 이유를 충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는 저 문넘어 다른 쪽에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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