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100자평]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2년 전 읽었던 책임에도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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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명보는 서운하지 않았다. 수년째 비슷한 경험을 하다보니, 돈문제가 개입되면 아무리 따뜻하고 친밀하던 관계도 냉랭한 사이로 변모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 터였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개의치 않아. 중요한 건 자네가 보여주는 행동이니까. 성수, 자네는 정말 애국자야."

"우리가 하는 운동의 목적은 그저 멸종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정의로운 일을 하는 거야. 우리가 서로를 설득할 수 없는 평행선상으로 계속 되돌아오고있다는 거 알겠나?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결정하는 것은 진정으로 논리의 영역 밖에 있어. 내 행동 방식을 이해해 주리라 기대하지는 않겠네. 나는 그저 내 영혼이 시키는 걸 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겠지."

그가 지금 이해한 것은, 세상이 그의 가족과 한 무리의 거지 소년들뿐 아니라 그곳에 서있는 모든 이들에게 절박하리만치 어둡고 슬픈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 모두가 공유한 고통이 한 심장의 박동처럼 정호의 온몸을 울렸다.

"얘들아! 여길 떠야 해. 지금 당장!"

야마다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교전 중에는 그 어떤 사람이건 고유의 인간성을 빼앗기고 구분할 수 없는 익명의 집단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에 그 남자는 이미 익숙해 있었다. 모든 전투는 똑같았다. 이쪽에는 내 편이 있고, 맞은편에는 적들이 있다, 그뿐이었다.

총영사 앞에서 발표 공격을 감행하여 미국의 개입을 불러오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알았다. 고요한 침묵이 폭발 후의 화산재처럼 내려앉았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서 반드시 같은 행동을 보인다. 언제나 악착같은 미련을 보이며 매달리고, 언제나 죽음보다 고통을 선택한다.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일이었다. 총탄이 자기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도,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절대로 믿지 못한다. 사실 죽음이야말로 어느 때가 됐든 그 누구라도 맞이할 거라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도 말이다.

"가라." 이토는 말했다.
정말 긴 하루였다. 그의 온몸이 피로감에 쑤셨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잘해냈으니, 이제는 휴식이 필요했다.

"월향이를 따뜻하게 덮어주고 계속 물을 마시게해!"

옥희는 따라오라고 손짓하고는 정호를 부엌으로 데려갔다.
"여기서 너 원하는 거 다 가져가."
"나 음식 얻어 가려고 그런 거 아니야." 정호가 당황하고 실망하여 말했다. "그냥 너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인데."

옥희는 지금까지 살아온 열한 해의 삶보다 훨씬 더 위대한 무엇인가를 약속하는 밝은 빛에 둘러싸여 있었고, 정호는 다가올 그 미래 속 옥희의 모습까지도 미리 넘겨다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값진 물건이 정확하게 그 주인을 찾아가는 걸 볼 때만큼 만족스러운 경우가 없지.

시간은 겨울 안개처럼 흘러갔다. 흐릿하고, 형태도 없으며, 명보의 존재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승객 없이 항해하는 배처럼 홀로 지나갔다.

시간의 세계 밖에 남겨진다는 것은 ‘넌 아무 의미도 없어‘라는 말을 몸에 새겨놓는 듯한특별한 종류의 고문이었다. 수염이 얼마나 자랐는지 새삼스레 실감하는 것만이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사랑이란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느냐에 따라 정의된다. 상대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가 결국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말하는 셈이다.

이는 인생의 마지막 기차에 오를 때 과연 누구와 손을 잡고 있고 싶은지를 고르는 문제이기도 했다. 이제 명보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사랑하는 내 아들 현우에게" 그는 이렇게 쓰기 시작했다.

강한 자 앞에서 용기 있고 약한 자 앞에서 관대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절박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가장 위험하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단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소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두 가지 행동 방식 중 하나를 택해 능숙하게 활용하곤 했다. 그 하나는 극단적으로 은유적이며 섬세한 방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단도직입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정호의 경우에는 둘 중 어떤 태도를 보일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시죠?" 이는 일부러 냉랭한 태도를 보일 때 쓰곤하는 공손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물었다.

"호랑이 사냥을 한 번 간 적이 있어." 야마다가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자네가 평생 볼 수 있을 야수들 중 가장 강하고 영리한 짐승이야."

최근 몇 년 동안 야마다 대좌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자신이 느껴야 하는 감정이 종종 일치하지 않고 어긋나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혹시나 그게 자신을 방해하고 나약하게 만드는 취약점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그는 스스로의 의지력을 시험하고자 내심 가장 하고싶지 않은 일을 의도적으로 해나가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일부러 감방 근무에 지원해, 거칠고 힘든 훈련만이 결국 자신을 강하게 만들 것이라 믿으며 격렬하게 노력하는 운동선수의 신념을 가지고, 가장 악명 높은 반란군들에게 채찍을 휘두르곤 했다.

정호는 자신과 함께 있을 때 옥희가 그처럼 스스럼없이 자유로운 이유도 깨닫게 되었다. 정호 자신을 남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창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중요한 대목에서 그의 팔은 스치듯 잡는 것도 그저 순수하고 사심없는 애정 표현일 뿐이었다.

그건 옥희가 다른 남자들과 있을 때 의도적으로 내비치곤 하는 유혹의 행동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옥희에게 남자로 보이기 위해, 정호는 부자가 되어야 했다. 그들처럼 옥희의 시간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옥희의 존중을 얻기 위해서 였다.

이 생각은 하나의 커다란 계시처럼 다가왔다. 지금껏 정호는 오직 살아남는 것, 그리고 최소한의 아늑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는 충분히 먹고살 만한 식량을 가진 사람들이 왜 그 이상의 돈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인정과 검증을 갈망해서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단순히 말하자면, 둘 중 어느 쪽이 우리한테 더 돈을 많이 쳐줄 건지 알아낸 다음 거기다 충성을 맹세하고 그들의 일을 돕는거지."

"내가 왜 긴장하겠냐? 이 남자가 얼마나 더럽게 부자인지는 몰라도 어차피 너나 나처럼 밥 처먹고 똥 싸는 인간인 건 똑같은데." 언제나처럼 그의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칠게 튀어나왔다. 늘상 있는 힘껏 때릴 줄만 알았지 부드럽게 주먹을 날리는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는 부드러운 말을 하는 방법도 전혀 몰랐다.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건 배고픔이지, 사람 자체는 절대 악하지 않습니다."

상해에서 활동하는 동안 명보는 어떤 이들에겐 돈이나 지위보다도 권력의 쟁취 그 자체가 더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미국영사가 영사관 앞에 모인 사람들 앞에 나와 그들을 돕겠다고 약속하고서는 실제로 아무런 행동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을 그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돈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종종 그들 대부분이 사실 돈 아닌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는 걸 깨닫곤 해요."

"그들은 돈 많은 부자가 되는 게 자신의 최종 목표라고 말하는데, 그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보다 그냥 그렇게 말하는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젊은이는 다시 한번 얼굴을 붉혔다. 조금 전에는 누구의 눈에든 명백히 드러나 보일 자신의 어린 나이와 미숙함 때문에 그랬다면, 이번에는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감춰둔 비밀이 이처럼 만천하에 폭로된 것이 부끄러워서였다.

명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그대와 그대의 벗들이 저와 제가 품은 대의를 위해 일해준다면, 비록 그대들이 부자가 될 거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대들이 실제로 행복을 누리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건 돈으로는 살 수 있는게 아니죠."

명보의 마지막 말을 듣는 정호의 눈앞에 다시 옥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소박한 삶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 바로 그것이 그가 아무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마음속 소망이었다.

명보라면 이러한 소망을 인정하고, 그에 더해 존중해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누구에게도 이처럼 이해받은 적이 없었는데, 방금 만난 이 낯선 사람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그로서는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한철은 옥희를 향한 걱정 때문에 속이 찢어질 듯 상하는 한편, 그렇게 옥희를 염려하는 자신의 마음에 오히려 어느 환희를 겪기도 했다. 그런 기분이 자신을 더 진정한 인간처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철은 감정 같은 것은 고사하고, 그저 이 고된 삶에서 살아남고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만 골몰했을 뿐이었다. 오직 옥희를 걱정하는 순간만이, 고통과 그에 달라붙는 이처럼 달콤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불만 꺼지면 남자들이란 게 다 똑같다고. 일본 놈이든,
한국 놈이든, 다 나쁜 놈들이야."

"난 그 남자를 혐오해."
옥희가 대번에 격렬한 노기를 띠며 말했다.

"자기가 어떤 여자든 가질 수 있고, 여자에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이라고. 권세도 있고 돈도 많고 얼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니까, 여자들도 그런 그놈의 생각을 그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하지만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옥희는 정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연화를 바라보았다.

"세상을 흑백으로 딱 잘라 나눌 수는 없는 법이야."

하지만 남자는 연화를 쓱 올려다보더니 변명하듯 이렇게 얼버무릴 뿐이었다. "물론 연화 양의 노래 실력이 더 출중하다는건 나도 알죠. 하지만 사진발이 더 잘 받는 건 옥희 양인걸!" 연화를 진정 화나게 하는 건, 노래 실력으로 따지면 그저 평범한 수준인 옥희가 밤마다 무대에 올라 관객 앞에서 노래할 기회를 얻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연화는 옥희를 사랑했지만, 친구를 향한 다정함과는 별개로 매일 밤 가슴속에서 치미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납을 가열하면 겉에 하얀 가루가 돋아나는데 이를 ‘납꽃‘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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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8 (완결)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8
아피로 / KW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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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랐던 건강관련 상식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서 유익했고, 특별히 8권에서는 해외에서 김밥사업을 하는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는데, 국내에서 사업할 때와 마찬가지로 진상손님과의 언쟁 같은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국내든 해외든 사람사는데는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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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가 아치 밑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옥희는 형언할 수 없는 눈부신 고양감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거라고.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거라.

별들이 잠자리에 들 무렵, 소년은 서서히 땅을 덥히는 태양의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깼다.

"넌 몇 살이나 먹었냐, 이 버릇없는 새끼야?" 정호가 말했다. "맞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지?" 정호는 아직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향 마을의 거친 아이들 사이에서는 가장 싸움을 잘하는 걸로 정평이 나 있었다.

골격은 작지만 강단 있고 몸놀림이 잽싼 데다, 맞을 때의 고통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를 얼마나 많이 때릴 수 있는지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기에, 그는 저보다 훨씬 더 몸집이 크고 나이가 많은 소년들도 이길 수 있었다.

하늘의 모습은 그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했고, 아버지가 약속했던 것처럼 별다른 용기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저 하늘 어딘가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음을, 자신이 이 세계에 홀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님을 상기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들자마자, 그는 영구의 머리를 향해 힘차게 주먹을 날렸다.

양쪽 다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는 키가 큰 쪽의 신체적 강점이 모두 사라지고, 몸집 차이가 어떻든 상대 위에 올라타 꼼짝달싹 못 하게 누르는 쪽이 무조건 이긴다는 것을 정호는 잘 알고 있었다.

"나도야. 그렇지만 사람은 이틀에 한 번만 먹어도 살 수 있대. 예전에 우리 어머니가 한 말이야."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고유한 의미를 지닌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지 않으면 각자의 인생을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가끔 자신이 경멸하는 집단 중에서도 단 한 사람만을 골라 의외의 우정을 쌓게 되기 마련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각자 자신이 속한 위치가 있는데 말이다.

개화의 계절이 끝나도 동백은 다른 꽃들처럼 갈변하거나 꽃잎 한 장씩 떠나보내며 힘없이 져버리지않는다. 흠 하나 없이 온전한 채로, 심장처럼 붉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꽃 한 송이 전체가 툭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동백은 땅에 떨어지더라도 처음 피어났던 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아름답다.

그러니까 단이도 결국 자신의 감정보다는 돈을 택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다를 바없이 약삭빠른 속물이었다는 말이다. 단이도 결국 환상적인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옥희는 날카롭게 가슴을 꿰뚫는 듯한 실망감을 느꼈다.

그는 시와 춤이 모두 같은 곳, 어느 불가해한 지점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춤을 자신만의 독특한 것으로 새롭게 표현해 냈다. 거의 감지할 수 없는 그 미세한 차이로 인해 다른 여자아이들이 그저 춤을 추는 동안 옥희는 한 마리의 고고한 학이 되고, 전설 속 주인공이 되고, 하나의 계절이 되고, 어떤 추상적인 관념이 되었다.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단이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실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옥희를 바라보았다. 그게 승인의 표시인지 혹은 불만의 표출인지 옥희는 결코 알 수 없었다.

옥희의 머리에 처음으로 은비녀를 꽂았다. 새신부의 상징이었다. 올림머리는, 옥희가 신체적으로는 동정을 간직하고 있을지언정 겉으로 드러나는 신분상 더는 혼인 이전의 상태가 아님을 의미했다.

옥희는 이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어린아이였지만, 이제 기생이 되어 그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러니 네가 틀렸다는 말을 바로 앞에서 듣고 난 지금,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핵심까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과거의 가장 좋은 점은 그것을 이미 지나쳐 왔다는 것이다.

"소위 구경은 해도 만져볼 수는 없다는 거지. 좋은 것들은 다 그런 식이라니까!"

하지만 그들 모두는 각자의 진심을 잘도 감춘채, 그 어떤 원망이나 씁쓸함의 기색도 없이 기쁘게 덕담을 주고 받았다. 굳이 서로를 적으로 삼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삶이 꾸준한 전진의 과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는 젊음 특유의 요건이다.

다른 아이들과 얘기하지 말라는 금지령을 받은 적은 없지만, 단이가 직접 말하지 않았어도 자신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아는 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단이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강력하게 일어났다.

옥희는 그 짐승이 힘이 세고 몸집이 큰 만큼 우리 안에서 겪는 고통도 크리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세상이건만,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나니 배 속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메슥거림이 느껴졌다.

"그 코끼리 말이야." 옥희가 입을 열었다. "온종일 그렇게 고요하게 꼼짝 않고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넌 알겠니?"

"아니야, 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 여기서 나갈 수 있지? 걔가 어디 묶여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 그렇게 덩치가 큰데도, 그 해자를 건너갈 수가 없는 게 분명해. 코끼리는 멀리뛰기를 할 수 없나 봐. 하지만 어떻게든 걔가 탈출할 방법이있을 것 같지 않아?"

"새로 사귄 친구가 동물원에 데려가 줬어. 우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을 봤어! 이상한 건, 난 그걸 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슬퍼지더라."

단단히 얼어붙은 호수위에도 어쩔 수 없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금이 생겨나듯이, 연화와 자신의 우정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찾아왔다는 생각을 옥희는 애써 떨쳐버리려 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이것보다 백배는 더 좋은 걸 너한테 갖다줄 거야."

옥희에 비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정호는 절대로 비굴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탓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그릇같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정호가 가진 지식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의 정신은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흘렀으며 제 스스로 고통을 키워내는 법이 없었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든, 옥희는 그가 장독 같은 마음 안에 깊이 묻어둔 것을 꿋꿋이 지켜내리라 확신했다. 씨처럼 떨어져 내린 곳에서 멀리 탈출하기는 힘들 테지만, 갇힌 존재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만으로 정호는 충분히 행복할 거라고.

단이가 살면서 이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단순히 바쁘게 지내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상당한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투영할 수 있는 여러 ‘과제‘를 기획하고 이들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가는 일을 즐기는 데 있었다.

높은 신분의 남자들이 후계자에게 자기 평생의 업적과 유산을 남겨주듯, 단이 또한 적절하고 가치 있는 계승자를 골라 자신이 아는 모든 것들을 가르쳐주면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다. 남자들이 하는 일을 단이라고 못할 게 뭐 있겠는가?

따뜻한 음료가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동시에 정신을 날카롭게 만드는 익숙한 효과를 발휘하며, 오래전에 마음속 깊이 묻었던 심상들을 다시 꺼내주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일지언정, 그 순간들을 회상하는 추억 자체는 달콤 쌉싸래하니 감미로움마저 느껴졌다.

‘내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여주는 것조차 그 남자에겐 과분해. 그를 무시하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존엄한 선택이야.‘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는 날씨가 훨씬 차갑군요. 상해는 우리나라의 가을 정도로만 서늘해질 뿐이고, 눈도 거의 내리지 않아서요."

"하지만 어디서 당신 본심이 나오는지 알아? 그건 성수 씨 목소리야. 전혀 유감스럽게 들리지 않거든."

남자가 자신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단이에게 미칠 듯한 희열을 안겨주었다.

타인을 유혹할 수 있다는 능력을 스스로 인지할 때 찾아오는 환희스럽고 또렷한 쾌감이 성수를 온통 휘감아 황홀하게 도취시켰다. 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그러한 감정이 사랑에 가장 가깝게 여겨지곤 한다.

소중한 순간들이 늘 그렇듯, 그 시간은 단이가 미처 준비도 하기 전에 끝나버렸다 -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와 함께.

성수와 명보는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단이는 정신없이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외쳤다. "두 분은 어떻게 서로 아세요?"

소주의 독한 기운이 몸을 한 바퀴 얼근하게 돌자, 그들의 굳었던 마음도 조금씩 편안하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황제의 사망 소식이 아니라, 당장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는 뜻이다.

각각 삶의 다른 영역에 확고하고 순결하게 속해 있어야 마땅할 특별한 지인들이 사실은 저희들끼리도 서로 아는 사이며,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정도보다 훨씬 더 친밀한 관계일 수 있음을 깨닫는 건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심 이러한 씁쓸함을 삼키고 있는 건 셋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성수는 이 상황을 모욕과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타고난 교양과 예의범절, 그리고 연신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소주의 진정 효과만이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질투의 감정에 굴복하지 않도록 해주는 유일한 방패막이였다.

이번에는 명보가 술병을 건네받아 직접 단이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자작(自酌)은 술자리의 금기이니만큼 이런 행동은 의례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안에 내포된 특별한 친밀감을 감지한 성수의 마음은 분노로 넘실거렸다.

무엇보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명보의 모습이 지금 그가 내심 성수를 질투하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중에도, 그사실 때문에 단어는 자꾸만 차오르는 은밀한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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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대한 설명을 통해 눈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눈은 지름 2.4cm, 무게 약 7g의 공 모양이다. 모양 때문에 안구라고도 부르는데 각막, 공막, 동공, 홍채, 수정체, 유리체, 망막, 맥락막, 황반부, 시신경 등의 구조물들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세월이 흐르며 각 구조물의 세포 내에서 무수한 변화가 일어난다. - P31

가장 먼저 빛을 받아들이는 ‘눈의 창‘, 각막 안구의 정면에 있는 투명한 지붕 모양의 막으로 흰자위인 공막과 연결된 얇은 막이다. 빛을 받아들이고 굴절시키는 카메라 렌즈와 동일한 역할을 맡는다. - P31

각막은 상피, 보우만막, 실질, 데스메막, 내피세포로 구성되어있다. 이중 내피세포는 20세까지만 해도 3,000개 이상으로 매우 많은데, 점차 노화로 인해 세포의 수가 줄어든다. 내피세포가 심각하게 적어지면 각막이 붓고 혼탁해진다.
대개 내피세포 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2,000개 이상이면 각막에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천성 각막질환이 있거나 외상등으로 인해 내피세포가 2,000개 이하로 줄어들면 각막이 붓고 혼탁해지는 등 투명성을 잃어버려 시력이 떨어진다. - P32

유리체는 젤리 같은 점성 물질로, 안구를 가득 채우고 있다. 혈관조직이 없어서 유리처럼 투명한 색을 띤다. 유리체가 점성이 있고 말랑말랑한 덕분에 눈의 형태가 둥글게 유지되며, 외부의 충격을 흡수해 망막을 보호한다. 게다가 유리체는 눈 속의 염증과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수정체와 각막, 망막, 시신경이 닿아있어 유리체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눈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2

유리체는 99%가 물이며 1%가 콜라겐과 히알루론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콜라겐은 탄력 있는 피부의 열쇠로 떠오르면서 피부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물질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피부의 콜라겐이 줄면서 단력이 떨어져 주름이 생기는 것처럼 유리체도 수축되어 쪼그라든다. 이때 망막과 시신경에 끈끈하게 붙어 있던 조직이 떨어지고, 그중 덩어리진 조직이 안구속을 떠다니면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일부를 가리면 눈 안에 작은 그림자들이 만들어진다. 눈앞에 작은 벌레나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비문증이 생기는 것이다.
위와 같이 유리체가 떨어져나가는 현상 즉, 유리체 박리는 50~60대가 되면 노화로 인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고, 이는 곧 비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P33

유리체가 안구를 채워 동그란 형태를 유지시키는 것처럼 방수는각막과 수정체 사이의 공간을 가득 채운 액체로, 각막이 볼록한 형태를 유지하게 만든다. 방수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배출되며 순환한다. 각막과 수정체에는 혈관이 지나지 않는 대신 방수가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배출시킨다. - P34

정상적인 눈은 방수가 만들어지는 양만큼 눈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안압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방수의 생성과 배출 비율이 항상 일정한 것이다. 그러나 노화가 진행될수록 방수가 배출되는 길이좁아져 막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시신경이 눌리면서 안압이 높아진다. 안압이 증가하면 시신경이 눌리고, 실명을 부르는 안질환인 녹내장이 발생할 수 있다. 또는 방수를 생성하는 모양체에 문제가 생겨, 방수가 지나치게 적게 만들어지거나 아예 생성되지 않으면 안압이 낮아진다. 눈에 일정한 압력이 존재해야 동그란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데, 안압이 낮아지면 심한 경우 안구가 작아지는 현상까지 초래한다.
다시 말해, 노화로 인해 방수의 균형이 깨지면 실명 가능성이 있는 심각한 질환에까지 이를 수 있다. - P34

각막처럼 받아들인 빛을 굴절시키는 원반 모양의 투명한 조직, 수정체. 빛은 각막을 통과하면서 한 번 굴절된 뒤 수정체를 통과한다. 수정체는 양면이 볼록해 항상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는 각막과 달리 두께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물체가 가까이있는 멀리 있는 재빨리 초점을 바꾸고 맞춰, 사물을 즉각적으로 인식하고 본다. - P35

나이가 들면 수정체의 탄력이 떨어지고 딱딱해지기 때문에 두께를 조절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수정체가 본래의 느슨한 상태일 때는 먼 곳을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노화가 진행될수록 가까운 곳을 볼 때 수정체를 볼록하게 만들어 빛을 더 많이 굴절시키는 조절 작용이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수정체의 조절력 감소 때문이 아니더라도, 세월이 쌓여가며 눈에 축적된 자외선으로 손상을 입거나 전신질환으로 인해 수정체의 단백질이 변성되면 수정체가 뿌옇게 흐려진다. 즉, 노인성 안질환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첫 번째, 백내장이 찾아오는 것이다. - P35

수정체는 스스로 두께를 조절하지 못한다. 주위의 근육들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움직임에 따라 두께가 조절된다. 둥근 고리 형태의 모양체는 수정체에 위아래에 위치한 근육이고, 진대는 모양체와 수정체를 연결하는 미세한 끈 모양의 섬유질이다. - P36

모양체는 방수를 만들며, 방수가 순환 과정을 마치고 운반한 노폐물은 모양체를 통해 정맥으로 배출된다. 우리 몸은 30세가 지나면서부터 매년 1% 정도씩 근육이 소실되고, 근육의 힘도 떨어진다. 모양체와 진대도 마찬가지로 힘이 약해지는데, 이는 곧 수정체 두께를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나이가들면 가까운 곳이 잘 안보이는 ‘노안‘ 현상을 겪게 된다. - P36

안구의 가장 안쪽에 빛을 감지하는 시세포가 1억 개 이상 존재하는 망막이 있다. 각막과 수정체를 통과한 빛이 망막에 닿아야 뇌가 사물의 형태나 색을 인식한다. 황반부는 망막에서도 시세포가 밀집되어 있는 부분으로, 노란색의 원 모양을 하고 있어 황반(노란 얼룩 또는 무늬)이라고 불린다. - P37

10개의 층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망막과 인접한 황반부에는 수많은 미세혈관이 지나는데, 이를 통해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아야 눈의 정상적인 기능인 ‘보는 기능‘을 할 수 있다. 피부의 탄력이 떨어지면 주름이 생기고 살이 늘어지는 것처럼 혈관도 늙는다. 탄력을 잃는 것은 물론, 점차 좁아지거나 변성되기 쉽다. 망막과 황반부의 혈관 벽이 약해지고 느슨해지면 혈액과 체액이 흘러나와 혈관 주변의 세포가 붓는다. 심한 경우, 시력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황반부의 ‘중심 시각점‘이 손상되어 실명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풍선에 물을 계속해서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풍선이 터져버리는 현상처럼 말이다. - P38

수정체 앞에 위치한 홍채는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한다.
동공은 홍채 한가운데에 있는 구멍으로,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빛의 양에 따라 커졌다 작아진다. 밝을 때는 홍채가 늘어나면서 동공을 작게 만들어 눈이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줄이고, 어두울 때는홍채가 줄어들면서 동공이 커져 빛을 많이 받아들인다. - P38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양에 맞춰 홍채와 동공이 움직이는 현상을 동공반사라고 부르는데, 제때 동공의 크기가 조절되지 않으면 빛이 번져 보이거나 눈이 부시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 P38

몸의 다른 근육과 마찬가지로, 홍채의 근육이 노화 때문에 탄력과 힘을 잃으면 동공이 제대로 커지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당뇨병이 있거나 전립선비대증 치료약을 복용하면 동공이 잘 커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 나중에 백내장이 발생해 수술을 받을 때 동공이 커지지 않고 수정체가 잘 보이지 않아 수술이 어려워진다. - P38

삶은 달걀 흰자처럼 백색의 불투명한 막을 공막 또는 흰자위라고 부른다. 두께는 약 1mm 정도에 불과하지만 안구를 곁에서 보호하는 튼튼한 막으로, 둥근 형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 P39

공막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얇아진다. 드물게 공막이 얇아지면서 그 뒤에 위치하는 포도막이 비쳐 공막이 푸르스름하게 보이기도 한다. 건강상 문제는 없지만 우유처럼 뽀얗고 또렷해야 할 흰자위의 색이 변했을 때 보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 때때로 노화로 인해 공막이 갈색이나 노란색으로 변하는 색소 침착도 일어난다. - P39

공막과 눈꺼풀 안쪽을 덮은 점막조직을 결막이라고 한다. 얇고 촉촉한 결막에는 모세혈관이 분포되어 있고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다. 결막은 항상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데, 외부에서 침입하는 이물질로부터 각막과 흰자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이때 눈물을 분비하여 이물질을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 P40

결막 역시 나이가 들면 점차 얇아진다. 결막 아래의 테논낭(안구곁을 싸고 있는 안구집)도 결막과 함께 얇아진다. 또는 자외선이나이물질 등의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익상편이라는 안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 P40

익상편이 진행되면 혈관이 있는 결막과 테논낭이 투명한 각막위로 자라 들어가서, 검은자위까지 덮어버린다. 눈 가장자리부터 시작해 각막의 중심부를 향해 삼각형으로 흰색 조직이 생긴다. 초기에는 흰자위의 충혈을 일으키는 것 외에는 통증과 같은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익상편이 계속 자라나 각막을 누르면 난시가 증가해 시력이 감소되거나 사시가 발생하기도 한다. - P40

사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눈 건강을 악화시켜 노안을 앞당긴다는 직접적인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눈이 피로해졌을 때 눈 건강이 나빠지고 눈의 기능도 약해진다. 노안도 빠르게 찾아온다. - P42

도시와 농촌을 비교해봐도, 안경을 쓴사람들이 도시에 더 많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매일 책이나 스마트폰, 컴퓨터를 가깝게 보는 사람들과 들판에서 푸른 자연을 많이 보는 사람들의 차이인데, 아마도 이런 환경 차이에서 눈 건강이 좌우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 P42

컴퓨터 모니터 또는 스마트폰을 볼 때처럼 가까운 곳을 장시간 바라보는 작업은 수정체가 계속 조절 상태에 놓이게 만든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떠올려보자. 매일 똑같은 부위의 근육을 운동하면 한곳에만 피로가 쌓여 오히려 근력이 높아지지 않고, 부상을 입을 위험도가 커진다. - P42

수정체도 마찬가지다. 수정체가 가까운 곳을 보는 더 오래 고정되면서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근육인 모양체가 피로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 모양체의 조절 기능을 약화시키고, 수정체의 탄력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작은 글씨를 들여다보느라 자기도 모르게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자꾸 눈 가까이에 대서 눈을 더욱 피로하게 만든다. - P43

원래 눈은 가까운 물체를 보다가도 먼 물체를 보며 수정체의 두께를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수정체가 계속 두꺼운 상태로 있다 보면 스스로 두께를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져 눈에 피로가 쌓인다. 그리고 그런 수정체의 상태는 노안을 빨리 찾아오게 만든다. 다시 말해 눈에 피로가 축적되면 니이를 불문하고 노안이 앞당겨져, ‘젊은 노안‘이 증가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눈에 피로가 쌓이는 일도 젊은 노안이 찾아오는 일도 피할 수 없다. - P43

눈의 피로는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한번 과도하게 피로가 쌓인뒤 해소되지 않으면 눈 주위에 통증이 생기거나 흐릿하게 보이거나 하나의 물체가 여러 개로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이전의 건강한 눈 상태로 되돌아가기 힘들어지고, 심한경우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줄어 안구건조증을 겪을 가능성도 크다.
즉 피로한 눈에는 어찌할 방법 없이, 노안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 P43

그렇다면 우리가 건강하고 활력 있는 눈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노안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간단하다. 눈의 피로를 가중시키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이와 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가까운 것에 초점을 자주 맞춰야 하는 생활 환경이나 습관을 손봐야 한다. 수정체가 쉽게 피로해지는 상황을 막아야 하는데, 이를 돕는 가장 대표적인 습관으로 50분간 근거리 작업 후 5~10분간 먼곳을 보거나 눈을 감고 쉬는 것을 들 수 있다. - P44

다른 신체 기관에 나타나는 질환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미용사들은 손가락 관절이 뻣뻣하게 굳는 증상이나 손목에 심한 통증을일으키는 수근관 증후군 등의 퇴행성 질환을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욱 자주 앓는다. 택배기사들에게서는 무릎 관절염이나 발목 인대 파열 등의 질환이 빈번하게 나타나며, 나이를 불문하고 퇴행성 질환의 발병 비율이 높다. 특정 활동을 반복해서 같은부위의 근육이나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육과 관절에 쌓인 피로를 풀어주지 못하면 젊은 나이에도 노인들에게서 나타난다는 퇴행성 질환이 찾아온다. 이를 두고 미용가위를 쓰거나 걷고 뛰는 게 문제이니 멀리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 P45

눈의 노화는 다른 신체 부위의 노화는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피로가 쌓여서 불편한 증상이 찾아왔다면 그때그때 쌓인 피로를 해소해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눈을 의식적으로 깜빡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줄어든다. 눈을 깜빡이는 활동이 거의 정지되다시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의식적으로 눈을 깜빡이면서 건조해지는 현상을 막고 긴장을 풀어주어야 한다. - P45

조금 더 구체적으로 눈 깜빡임과 피로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이 평균적으로 눈을 깜빡이는 횟수는 1분에 15~20회다. 신문이나 책, 스마트폰, 컴퓨터 모니터 등을 통해 작은 글씨를 집중해서 들여다보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세밀한 작업을 하는 경우,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1분에 5회 정도로 현저히 줄어든다. - P45

다시 말해 눈을 뜨고 가까이 있는 것을 들여다보는 모든 행동이 피로를 유발시키고, 노화를 성큼성큼 앞당긴다. - P46

그러나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눈의 변화는 갑자기 나타나는게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소하더라도 매일일한 만큼 눈을 쉬게 해주면 노안을 천천히 오게 만들 수 있다.
노안을 진단받고 뒤늦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기보다 어떻게하면 노인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가를 찾아 미리미리 실천하는 게 백배 더 낫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탓한다고 눈이 괴로운 상황을 막을 수 없다. 안 쓸 수 없다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현명하게 시행하자는 것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 노안을 막을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눈을 건강하게 잘 관리해 노안이 찾아오는 시기를 늦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질환을 제때 치료하는 게 차선의 방법이다. - P47

생활은 스마트하게 하되, 눈은 스마트한 생활과 거리를 두려는노력이 필요하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자. 학교에 다닐 때 50분동안 수업을 듣고, 10분 동안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칠판과 책을 뚫어지게 보던 눈도 화장실을 가거나 창밖의 운동장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의식적으로 갖는 휴식 시간은 건강한 눈 상태를오래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처음에는 귀찮고 번거롭겠지만 생각날 때마다 눈을 자주 깜빡이고,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시 창밖을 보는 등 눈 건강을 챙기는 작은 습관들을 실천해보자. 뻑뻑함이나 이물감 등의 불편한 증상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이고, 안구건조증 같은 안질환과 노안의 진행도 조기에 발견하고 스마트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 P47

백 번 묻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처럼 눈은 효과적인 정보의 창이다. 아울러 마음과 생각을 세상에 보여주는 ‘마음의 창‘이다. 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눈이 초롱초롱하고, 따뜻한 마음은 포근한 눈빛으로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눈은 몸의 상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라고 말했다. 눈은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건강의 창‘이기도 하다. 눈은 전신과 연결되어 있다. CCTV처럼 말이다. 눈이 보여주는 위험 신호를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 P49

눈의 흰자위인 공막이 노랗게 변하는 상태를 ‘공막 황달‘이라고 한다. 황달은 그 자체가 질병은 아니지만 질병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전조 증상이다. 해독 기능을 하는 간이 만성 피로나 지나친 건강식품 섭취 등으로 제 역할을 못하게 되면 빌리루빈이란 색소가 증가한다. 빌리루빈과 결합력이 높은 엘라스틴이라는 물질이 공막에 많은데, 이 두 물질의 결합 반응으로 공막의 색이 노랗게 된다.
황달로 인해 색소 침착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공막이 황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흰자위가 노랗게 변한다면 곧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자. - P50

흔히 피곤하면 눈이 빽빽하고 흰자위가 살짝 붉어지는데, 이때 대부분 푹 쉬면 곧 사라진다. 수영장이나 공중목욕탕에서 걸리는 바이러스성 질환인 급성 결막염에 걸렸을 때도 흰자위가 붉게 변하는데, 수술 없이 보존적 치료만으로 나을 수 있다. - P50

한편 흰자에 피가 난 것처럼 출혈이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결막하 출혈로, 고혈압이나 심혈관질환이 있을 때 결막의 혈관이 터지면서 눈이 빨갛게 보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외관상 눈이 시뻘겋게 보여 걱정되겠지만 대개 결막하 출혈은 시력이나 눈 건강에 특별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눈을 문지르거나 만지지 않으면 피부 표면에 멍이 들었다가 점차 사라지듯 결막하 출혈도 자연스럽게 낫는다. 그러나 결막하 출혈이 자주 반복된다면 혈액이 응고되는 능력이 떨어지는 혈소판 장애일 수 있으니, 전신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 P51

고혈압이나 당뇨, 동맥경화 같은 혈관질환이나 뇌질환이 있으면 갑자기 사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는 커튼을 친 것처럼 한쪽눈의 시야가 어두워지기도 한다. 뇌종양이 생겼을 때는 하나의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가 발생할 수도 있다. - P51

12개의 뇌신경 중 3개가 눈을 움직이는 근육에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뇌질환으로 뇌신경이 손상되면 눈을 움직이는 기능이 저하되고, 눈의 움직임 이상으로 복시가 발생하기도 한다. 눈은 비교적 작은 기관이지만 미세한 혈관들이 모여 있고, ‘눈이 보는 것이 뇌가 보는 것‘이라는 말처럼 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뇌질환 및 혈관질환의 발병 여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 P52

눈꺼풀 근육은 필요할 때만 움직이는 팔다리 근육과 달리, 눈을 뜨고 있는 내내 움직인다. 인체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근육이기 때문에 눈꺼풀 근육에는 피로가 쌓이기 쉽다. 누구나 한 번쯤 의지와 상관없이 눈꺼풀이 꿈틀거리거나 파르르 떨리는 증상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눈이 피곤할 때나 체내에 마그네슘이 부족할 때,
안구건조증이 있을 때 눈꺼풀 떨림 증상이 나타난다. 대개 일시적이라서 부족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충분히 자면 이내 사라진다. - P52

눈꺼풀이 자주 떨리거나 떨림이 오래 지속된다면 뇌출혈이나 뇌경색 같은 뇌혈관질환이 있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얼굴근육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안면신경이 뇌혈관과 가깝게 붙어 있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안면신경이 눈꺼풀 근육을 움직여서 떨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눈꺼풀이 떨리는 주기나 기간을 세심히 관찰하고, 뇌혈관에 이상이 있는지 체크해보는 것이 좋다. - P53

흰자위와 눈꺼풀 안쪽을 덮고 있는 결막은 본래 선홍빛을 띤다. 결막에는 모세혈관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빈혈이 있으면 아래쪽 눈꺼풀을 뒤집었을 때 결막 색깔이 창백하다.
이는 눈 점막의 실핏줄로 가는 혈액량이 적거나 적혈구가 감소하는 것이 원인이다. 결막의 색으로 가장 먼저 빈혈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육안으로 보았을 때 결막이 창백하다면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해보길 권한다. - P53

한국인의 눈동자는 검은색 또는 갈색이다. 각막에 멜라닌 색소가 많아 진한 색을 띠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막을 ‘검은자위‘라고도 부른다. - P54

고지혈증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혈관뿐 아니라 각막에도 지방이 축적된다. 지방은 눈동자 가장자리에 하얗고 연한 노란색의 테두리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눈이 보내는 경고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혈관은 검은자위 가장자리 부근까지만 닿기 때문에 지방이 눈 주위의 혈관에 쌓였을 때, 검은자위를 둘러싸며 고리 모양으로 색이 변한다.
만일 한쪽 눈에만 유독 굵은 흰 테두리가 생겼다면 해당하는 쪽의 혈관이 막혔을 수 있다. 목에서 뇌로 올라가는 혈관의 문제일수 있으므로 반드시 안과를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 - P54

시력과 시야는 다르다. 시력이란 떨어져 있는 두 점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사물의 형상을 인식하고 식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시야는 시력이 미치는 공간적 범위를 가리키는데, 눈을 한곳에 고정하고 있어도 인식할 수 있는 주변 범위까지 포괄한다. - P55

다시 말해, 시력은 보려는 사물(선택)을 지각(집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이고, 시야는 보려고 하지 않았어도 보이는 영역이다. - P56

시야 이상의 증세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질병으로는 녹내장을 꼽을수 있다. 녹내장은 소리 없이 발병하여 제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실명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 P56

안압 즉, 눈의 압력이 높아지면 시신경이 눌린다. 시신경은 눈에서 받아들인 정보인 빛을 뇌로 전달하여 사물을 볼 수 있게 만든다. 안압에 의해 시신경이 손상되면 당연히 뇌로 전달되는 정보량이 줄어든다. 문제는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안압이 단번에 높아지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압은 점차 높아지며 시신경을 누르기 때문에 시야가 천천히 좁아질 때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좁아진 시야때문에 답답함을 느낄 정도가 되면 이미 녹내장이 말기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병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말기에 이르렀을때는 치료가 어렵다.
위와 같은 경우, 시야 주변부의 폭이 감소하더라도 시력은 정상적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녹내장이 진행되고 있음을 자각하기 어렵다. 시력이 1.5 정도로 좋아도 실명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 P57

침침하던 눈이 갑자기 좋아졌을 때는 백내장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러한 현상을 2차 시력‘이라고 한다. 백내장이 진행되면 수정체가 딱딱해지고, 굳어버린 수정체는 점점 크기가 커진다. 수정체의 크기 즉, 두께가 도톰해지니까 가까운 곳이 잘 보이게 되는 근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근거리 시력이 회복되었다고 기뻐하지만 말고 백내장이 발병했을 가능성도 따져보는 것이 좋다. 게다가 근거리시력의 향상은 잠깐뿐이다. 점차 백내장이 진행되면서 먼 곳을 보는 시력이 떨어지고, 수정체가 뿌옇게 변한다. 그러면 아무리 안경을 꺼도 시력이 호전되지 않고, 전보다 더욱 침침하게 보인다.
백내장은 노안과 비슷한 시기에 발병해 노안과 혼동하기 쉬운 질병 중 하나다. 따라서 중·장년기에 접어든 뒤 가까운 것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면 바로 백내장 검사를 받아보자.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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