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곳에 앉아서 글을 쓴다. 읽는 이를 위해 쓰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고, 이곳에 홀로 있다. - P97
나는 이곳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가 불안감을 덜어 준다. 글쓰기가 좋다, 이것은 날 행복하게 만든다. - P98
지난 여름 나는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그때였는데, 그 어떤 것도 이전과는 같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크누텐과 나는 늘 함께였다. 이제 크누텐은 결혼했고, 두 딸이 있다. - P98
오직 비와 어둠만이 둘을 감싸고, 나머지 우리들은 각자의 고요한 고독함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 고독함 주위에는 고요한 연대감이 자리해 있다, 그렇다, 그곳에 있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 연대감이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에게 개인이고자 함 없이, 우리는 다만 그곳에 있는 것이다, - P103
그것은 언제나 치고 있는 파도였고, 점점 더 자라고 있는 살갗이었다. - P105
나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불안은 계속 커지기만 할 뿐이다. 글을 쓸 때는 침착해지지만, 그러고 난 직후엔 불안감이 다시 찾아온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나는 안다. - P106
라인렌더(reinlendar) : 4분의 2 박자의 커플 댄스. - P108
약간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P120
그런데 우리는 내 집으로, 내 어머니한테는 갈 수가 없다.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 P125
나는 길에 남아 우두커니 선 채 보트하우스에 대해 말하지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그걸 이야기해야 했던 걸까, 이야기하기엔 그저 우스꽝스러운 것일 뿐인데. 보트하우스 안에 들어가면 안 돼. 크누텐의 아내가, 들어가선 안 돼. - P128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할 텐데, 불안감이 극심하다,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한다, - P130
내가 일어서자, 파도소리가 들린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내가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들린다, 갑자기 그것이 들린다. 나는 파도 소리를, 피오르를 듣는다, 그러자 내 몸속에서 불안감이 매우 분명해진다. - P131
어둠이 나를 감싼다, 나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내 몸속에 치는 파도의 움직임을 깨닫는다, - P132
나는 꼼짝 않고 서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다, 뭐라도 해야한다, - P133
파도는 내 삶 전체를 관통해 계속 또 계속 치고 있었다. - P134
나는 방 안쪽에 숨었다. 외출을 기피하는 이 괴벽은 토르셸과 내가 마을 축제에서 연주했던 밤 이후에 찾아왔다. 그날 저녁 이후로 나는 밖을 다니지 않는다. - P135
지난여름 나는 크누텐과 마주쳤다. 오랜만에, 적어도 10년 만에 크루텐을 다시 만난 것이다. 나는 걸어서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화창한 여름날의, 조금 늦은 오후였다, - P140
크루텐을 만난 지도 오래되었군, 분명 10년은 되었을 텐데, 다시 그를 마주 대하기가 어렵겠는걸,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크누텐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었지, 저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어, 내가 알던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란 것도, 나는 그걸 두려워하고 있었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 P141
크누텐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건 평화로운 시간이야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 그런데 아내가 저 친구를 저렇게 바라보고 있군, 저 친구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어, 하고 생각한다, 아내는 늘 저렇게 쳐다보는군, 하고 그는 생각한다, 난 다만 평화롭게 쉬고 싶을 뿐이야, 그게 전부라고, 그런데 아내가 저렇게 저 친구를 들여다보고 있어, 저 친구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하고 그는 생각한다, - P142
그리고 크누텐은 이렇게 생각한다, 더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다 너무 옛날 일인걸. - P142
지금에 와서는 너무도 사소해 보이는 그 일들이 그때 당시에는 훨씬, 훨씬 더 큰, 거창하고 비밀스러운 일로 보였어. - P144
그러자 그의 아내가 당신 그 오만 가지 일에 호들갑 떨면서 걱정하고, 옛 친구들 만날까 흠칫거리는 짓 좀 그만둬, 그럴 거면 왜 휴가 때 여길 오자고 한 거야, 참 나, 다른 걸 할 수도 있었잖아, 안 그래, 라고 그녀가 말한다. 그러자 크누텐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걷기만 한다, - P146
그 보트하우스처럼 지금은 모든 게 너무나 달라, 그곳은 정말로 큰, 거의 내 모든 삶이었던 곳인데, 그런데 지금 거기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이,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아, 그냥 사라지지, 모든 것은 달라져, 한때 그랬던 것은 예전과는 꽤나 다른 어떤 것이 되어 버려, 사소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 그런 식인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냥 그런 거야, 하고 생각한다. - P147
그는 피오르를 바라보며, 길을 따라 걸어 보트하우스를 지나친다, 그리고 그는 오늘 나를 만난 일을 생각한다, 여러 해 동안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지, 못 본 지 적어도 10년은 되었을 거야, 우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고, 밴드에선연주도 함께했어, 그리고 오늘 그 친구와 다시 마주쳤지, 이상하게도 그 친구랑은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어, 난 그 친구를 다시 만나는 걸, 다른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걸 두려워해 왔지, 너무나 오래전이어서, 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런데 아내는, 크누텐은 그의 아내를 떠올린다, - P151
그는 오늘 그녀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알아챘다. 그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다. - P152
크누텐은 길가에 서서, 작은 섬을 내다본다, 그러다가 내가 몸을 돌려, 크루텐을 쳐다보더니, 몸을 돌린다, 저 친구가 날왔다는 걸 내가 알아차려선 안 되기 때문이지, 그런 거지, 하고 크루텐은 생각한다. - P153
그렇지만 저 친구는 날 봤어, 저 친구는 고개를 들었고, 다시 내렸지, 저 친구는 분명 날 봤어, 그리고 이제 저들은 뭍으로 갔지, 저들은 작은 섬에 머물 셈이겠지, 늘 이런 식이야, 난 오늘 아내가 저 친구를 보는 눈빛을 알아차렸어, 늘 이런 식이었지. - P155
크누텐은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린다, 그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그 자리에 앉아서 머무르기로 마음먹는다, 그냥 여기 앉아 있자, 하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를 듣는다, - P156
아내는 이 짓을 그만둬야 해, 계속 이릴 순 없어, 그녀가 그 친구를 쳐다보는 눈빛, 그건 일어나선 안 될 일이야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 P158
무도회에서의 그 여자아이의 일은, 그건 그저 약간의 장난이었을 뿐이야,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데도 그 후에 난 정말 이상해졌고, 무척이나 몸을 사리게 됐어, 연습도 더는 하기 싫어졌지, 그렇지만 그건 너무나 옛날 일이야, 하고 생각한다. - P159
그녀가 다가와 그의 곁에 앉는다. 크누텐이 산책하니까 좋았어, 라고 묻자, 그녀가 응, 그랬어, 라고 말하고는 당신 이제 진정된 거야, 이성을 다시 찾았느냔 말이야, 당신이 이런 식으로 굴면 나는 참을 수가 없어, 라고 말한다. - P160
크누텐은, 목소리가 들리는군, 그녀는 그 친구를 데리러 갔던 거야, 그 친구의 집에 그 친구를 데리러, 그를 여기 데려오기 위해, 목소리가 들리는군, 아내의 목소리, 그 친구의 목소리, 목소리만 들려, 아내는 그 친구를 데리러 갔던 거야, 하고 생각한다, 그 친구네 집에 가다가, 아마도 아내는 길에서 그 친구를 만나고서, 이리로 데리고 온 걸 테지, 하고 그는 생각한다, - P162
말을 꺼내야 해, 평범한 방식으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것에 대해서, - P165
크누텐은 자기 잔을 들어 올려 창에 비친 자신에게 건배를 한다, - P174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묻고, 내가 하는 일을 말해 주고, 그런데 어째서 난 늘 어색해해야만 하는 걸까, 아내는 민속춤마당에서 연주를 하는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데, 어째서 난 늘 어색해해야만 하느냔 말이야, 그럴 순 없어, 견딜 수가 없다고,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술병을 꺼내어 한 모금 들이켠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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