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트하우스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지난번에 읽었던 욘 포세의 '3부작' 에서 보트하우스 라는 단어를 여러번 봤었던지라 이 '보트하우스'는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 궁금하여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보트하우스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추억이 담겨있는 공간이자 현재도 함께 있는 공간이었다. 어릴적 화자와 화자의 친구인 크누텐이 함께 들락날락(?)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때묻지 않은 순수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조금 다르다. 현재 화자는 독신이지만, 친구인 크누텐은 이미 결혼도 했고 두 아이도 있는 유부남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어떤 배경적인 차이가 서로간의 이질감을 발생시키고 그로 인해 여러가지 오해들을 불러 일으킨다. 소설 중후반부로 가면 크누텐의 아내가 마치 화자를 유혹하는듯한 장면들이 여러번 나오는데, 어릴적 화자와 친구인 크누텐이 순수하게 지냈던 보트하우스라는 공간은 이제 예전의 순수함보다는 뭔지모를 불순한 느낌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진다. 첫 파트는 화자의 생각과 심리가 주로 표현되는 반면 두번째 파트는 화자의 친구인 크누텐의 관점에서 그의 생각과 심리상태가 서술된다. (마지막 세번째 파트는 이야기의 마무리 성격으로 상대적인 분량이 적은 편이라 논외로 한다.) 여기서 좀 흥미로운 것은 첫 파트와 두번째 파트 모두 동일한 사건을 놓고 관점만 달리하여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똑같은 사건을 첫 파트에서는 화자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고, 두번째 파트에서는 크누텐의 시선으로 본다는 말이다. 내가 100자평에 '데칼코마니 '같이 소설을 디자인한 것 같다고 쓴 것도 결국 동일한 사건을 각 사람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은 표현이다.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을 쭉 읽다보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좀 오실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똑같은 사건일 경우 사람이 달라도 전반적으로 보는 관점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면 각 사람마다 동일한 사건도 얼마든지 다르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소설 속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예로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 것과 관련하여 동일한 행동을 가지고도 한쪽에서는 정당한 체벌이었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거는 아동학대로 고소해야 마땅한 사안이다 라는 식으로, 사람이 자기가 처해있는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서 자기에게 유리한 아전인수 격으로 생각하는 경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국 사람은 객관적으로 특정상황을 보기보다는 자기가 보고싶고 생각하고 싶은대로 보고 생각하는 동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내용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면 크누텐의 아내는 자신이 크누텐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크누텐의 친구인 화자에게 자꾸 은밀하게 접근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화자는 이를 거부하려고 하고 실제로도 그에 걸맞게 행동(혼자 집에 가고 싶어함)하려하는데, 이것을 멀리서 지켜보던 크누텐은 자신의 아내와 친구인 화자가 서로 아주 둘이 난리(?)가 난 것처럼 스스로 오해를 하고 체념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화자와 크누텐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을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서 정말 겉으로 보이는 게 결코 전부가 아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을 제대로 보려면 당사자들의 내면까지 봐야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머릿속이나 마음속으로 일일이 들어가 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실제 인간관계에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말이나 행동만을 참조하여 그것들을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결합하여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단정짓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속 두 인물을 살펴보면서, 결국 핵심은 동일한 사건을 보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방이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그렇지 않고 나와 보는 관점이 좀 다르거나 독특한 관점으로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쟤는 틀렸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게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욘 포세의 작품을 보다보면 특정 문구가 반복되는 것을 여러번 볼 수 있는데, 이 '보트하우스' 에서도 어김없이 그러한 표현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욘 포세의 작품을 읽을 때는 책이 잘못써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었는데 4번째 욘 포세의 작품을 읽다보니 이러한 표현 방식이 머릿속에 내재되어 있는 근원적인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여러가지 다양한 생각들과 감정들, 어떤 느낌들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구들은 그런 순간순간의 것들이라기보다는 평상시 우리 안에 꾸준하게(?) 내재되어 있는 어떤 감정이나 느낌들, 지속적으로 나를 지배하는 어떤 정서 같은 것들을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내 머릿속 기저에 깔려있는 생각이나 감정이 어딘가에 앵커링(anchoring)되어 있어서, 어느순간 잠시 이탈했다가도 다시 원래 기저에 깔려있는 생각이나 감정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특별히 이 '보트하우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감정이 불안감이라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소설이나 혹은 현실세계에서는 또다른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욘 포세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반복)이 처음에는 많이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마음먹고 생각하면서 내 스스로 생각하는 깊이가 조금이나마 깊어진 듯 하다. 누군가는 그냥 혼자서 헛소리를 짓껄인다고 까내릴지도 모르겠으나 그거는 니(?) 생각이고, 나는 내 생각이 이끄는대로 생각해보련다.
욘 포세의 작품을 4권째 읽으면서 새롭고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게 되어서 흥미롭고,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름의 재미라면 재미도 느꼈던 것 같다. 작품 자체가 재밌냐고 물어보신다면 case by case 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욘 포세는 명확한 결론이나 교훈을 준다기 보다는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자꾸 상상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만한 작가인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