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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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깨닫거나 느꼈던 것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생각이 100%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부분 수긍할 수 있었고 생각과 고민을 많이 했던 흔적이 느껴졌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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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다시 읽는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향인들이 다양한 외부활동들로 인해 소진되기 쉬운 에너지를 재충전하거나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들에 대해 살펴봤었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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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회의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은 직급이나 직위에 따라 현실적으로 실천하기는 좀 힘든 경우들도 있을 수 있기에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잘 판단하여 적용해야 할 것이다.

시끄럽고 북적이는 곳은 가급적 피한다. 주변 소음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아껴 둬 중요한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 P133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은 하루를 늦게 시작한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 날은 집에 일찍 들어간다. - P133

가능한 한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업무를 처리하고 대규모 회의는 되도록 지양한다. 회의를 주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오래 진행할지를 직접 결정해 남들의 선택에 휘둘리지 않도록 한다. - P133

저녁에는 전화를 받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등의 업무를 하지 않는다. 다음 날을 위해 재충전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 P133

에너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끼면 사교 모임에서 일찍 벗어나 에너지를 유지한다. 어차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 P133

"당신이 죽을 때가 돼도 여전히 마치지 못한 할 일 목록이 남아 있을 겁니다.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해요." - P133

당신의 인생은 지난 수 년 동안 당신이 내린 모든 선택의 총합으로 이뤄진다. - P134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당신이 그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다. - P134

내향적인 사람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살기 쉽다. 그렇다고 외향적인 사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우리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가 없다. 은퇴할 때쯤 보상을 받으리라 믿으며 전속력으로 달려도 결국 50년이 지난 뒤에 남는 건 별 의미 없이 쌓인 인맥과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 성공했다는 기록뿐일 것이다. - P134

인생에 더 많은 것을 채우려 들지 말라.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과 일을 파악하고 거기에 집중하라. 인생의 목표를 명심하며 산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쉽게 결정할 수 있다. - P134

"선택할 때는 좀 더 까다로워져야 한다." - P134

100달러 지폐를 떠올려 보라. 지폐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저 특정한 방식으로 인쇄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이 종잇조각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 P134

외향적인 사람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으려고 하지 말라. 그냥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된다. - P135

더 자주 거절하는 법을 배우라. - P135

일정에 휴식 시간과 여유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라. - P135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을 더 많이 하라. - P135

내향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라. - P135

미리 ‘사교 활동 에너지 예산‘을 책정해 에너지를 과도하게사용하지 않도록 하라. - P135

시간도 마찬가지다. 본질적으로 1분이라는 시간은 가치가 없다. 그 1분 동안 무엇을 하기로 선택하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 P135

돈이 시간과 다른 점은 꼭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돈은 저축하거나 투자할 수 있으며 서랍에 넣어 둬도 된다. 하지만 시간을 그렇게 다룰 수는 없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결정한대로 따라야 한다. - P136

어떤 선택은 당신의 삶에 에너지를 더하는 반면 어떤 선택은 에너지를 고갈시킬 것이다. - P136

내향적인 사람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건 단지 비축해 두고 싶어서가 아니다. 타인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다. - P136

월트 디즈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저 돈을 벌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영화를더 많이 만들기 위해 돈을 버는 거죠." - P136

에너지 관리는 평생의 여정이다. - P136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상태로 오랫동안 지내는 건 오른손잡이가 하루 종일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과 같아요." - P139

내향적인 사람만의 세 번째 마스터 무브는 바로 영향력이다. 우리의 영향력은 그 존재를 뽐내지 않은 채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만들어져 영감과 진실에 굶주린 세상을 바꾼다. - P139

우리는 그저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의 관점을 들여다보고 경청하며 조용히 영향을 끼친다. - P140

영향력은 훨씬 더 조용하고 미묘하게 무대 뒤에서 모든 것을 실현하는 내향적인 사람의 힘이다. - P140

"내향적인 사람은 근본적으로 성격 싸움에서 이길 준비가 돼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폰만 들고 체스 게임을 하려는 셈입니다. 이길 확률이 높지 않죠.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게임을 해야만 해요." - P141

내향적인 사람의 강점은 영감을 불어넣는 능력인 반면, 외향적인 사람의 강점은 설득하는 능력이다. 그 말은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 모두 자신에 충실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으면서 우리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 P142

외향적인 사람은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금방 바꿀 수 있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향적인 사람은 깊은 신뢰를 구축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다. - P142

진정한 영향력은 이목을 끄는 게 아니라 관계를 맺는 데 있음 - P142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공유하는 각자의 생각을 먼저 잘 들은 다음, 그 정보를 처리해 이해하는 과정을 선호한다. 결국 우리는 생각을 가장 늦게 공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이 대개 잘 정리돼 있으며 고려할 가치가 있음을 모두가 인정한다. - P144

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창의적이고 실행 가능한 해결책에 도달하는 데 내향적인 사람의 생각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 P144

외향적인 사람들은 논의에 활기를 불어넣곤 하지만, 그 때문에 아무도 내향적인 사람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향적인 사람은 편안하고 적절히 계획된 방식으로 타인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몇 가지 기본적인 기술을 익혀 두는 게 좋다. - P145

내향적인 사람이 거대한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먼저 인지한 뒤 편하게 생각을 전달할 만한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 P145

"조용한 사람이 가장 큰 성과를 낼 때가 많습니다." - P145

우리는 100퍼센트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걸 핑계로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으며 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를 발판 삼아 대화 중에 우리를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도 있다. - P145

내향적인 사람은 타인이 스스로 원해서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 P145

설득하는 능력은 외향적인 사람에게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내향적인 사람도 설득의 기술을 의식적으로 배우고 다듬으면 다른 사람을 설득해 행동에 나서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 P145

내향적인 사람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원래 자연스럽게 잘하던 것에서 비롯된다. - P146

내향적인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제법 진귀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토록 관심을 갖고 집중해서 들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가치 있게 여긴다고 느낄 법도 하다. 당신이 시간을 내 의견을 들어 줬으니 상대방 역시 당신의 생각을 기꺼이 경청할 것이다. 이 패턴은 진심으로 경청하는 데서 시작한다. - P146

명확하게 질문하되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지는 말라. 상대의 생각을 소중히 여긴다면 대화를 기록하는 것도 좋다. - P146

들은 내용을 검토하고 짜임새 있는 결론을 도출하라. 당신의 생각을 확실히 정리했다면 ...(중략)... 생각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면 된다. - P146

생각을 머릿속에만 두면 아무리 뛰어난 생각이라 한들 아무도 알아주지 못할 테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공유한다면 가치있는 공헌으로 명성을 쌓을 수 있다. 점점 사람들은 당신이 이런 역할을 맡아 풍부한 통찰력을 제공하리라 기대할 것이다. - P147

결코 외향적인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외향적인 사람의 언어를 배울 필요는 있다. - P147

만약 당신이 내향적인 성격에 가깝다면 내향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며 안정감, 편안함, 즐거움, 성공을 경험하면 된다. 외향적인 사람의 능력을 배우고 계발했더라도 그 능력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며 살지 않아도 상관없다. - P147

내향적인 사람의 모국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라. 특히 말보다 글로 소통하라. 외향적 능력은 적절한 상황에 선택적으로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나머지 시간에는 본모습 그대로 편안히 지내기 바란다. - P147

진정으로 시너지가 발휘되는 순간은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서로 존중하면서 상호보완적으로 강점을 조합해 협업할 때다. - P148

깊이 생각하는 능력, 글 쓰는 능력, 명료한 사고력 등 당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기 바란다. 조용히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면 더 좋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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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자신이 살면서 느꼈던 것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거나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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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다가 ‘불꽃놀이‘ 라는 제목의 글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저자가 이것을 전쟁에서 화약을 쓰는 것과 비교, 대조하는 표현들이 아주 신박하게 느껴졌다. 또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인도의 시바 신이 소개되는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최근 함께 읽고있는《코스모스》책에서 시바 신의 이미지를 봤던 기억이 떠올라서 반가웠다.

내가 보기에, 정신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의 재산을 순식간에 잃는 것과 돈의 신성함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고 유일하게 가능한 구제책을 의미하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는 일과 돈이 유일한 우상인 것과 반대로 찰나적인 유희를 즐기는 성향이나 우연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 변덕스러운 운명에 대한 신뢰가 더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바로 그와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던 문제들을 매번 누가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외부 세계에서 다시 접하게 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 아니다.

어떤 인생 문제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일부러 찾지 않았는데도 바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

이런저런 책을 읽는 동안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영원한 수수께끼와도 같은 문제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헤쳐나가는 것이다. 그와 같은 문제들은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단지 체험할 뿐이다.

끝에 가서 결국 삶은 우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을 새로운 욕구와 열의로 추진할 수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시간으로 이루어진 것은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으며 시간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

삶의 상태와 이상 그리고 시대는 반드시 틀에 박힌 대로 차례차례 진행되어 서로 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기도 한다

절대자의 왕국 또는 아득히 먼 시간 속으로 옮겨 놓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인간의 이상향이 매 순간 실제 체험과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 많은 위안이 된다.

우리에게는 존재가 허락되지 않는다 한낱 강물일 뿐 우리는 온갖 형태 속으로 기꺼이 흘러든다.

언제나 우리는 떠돌아다니고 언제나 우리는 길손이다.

신은 점토와 같은 우리를 손에 쥐고 주무른다.
점토는 말이 없고 조형이 쉬우며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점토로 형체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구워지는 일은 결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비겁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오늘밤 내가 어디에서 자게 될지 알고 계실까?)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나는 우리 시대의 찬란함이나 위대함도 믿지 않을뿐더러 우리 시대의 어떤 ‘지도적 이념‘이라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런 반면에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나의 경외심은 무한하다.

내가 자연의 힘을 기만하면서까지 감탄해 마지않으며 애정을 갖게 되는 발명품들도 더러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자연의 현상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사랑한다.

나는 진심이 담긴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건축물을 바라봄으로써,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낸 인간의 정신에 경탄한다.

이른바 유익하다고 하는 그 성과물에는 항상 불쾌한 침전물이 따라다닌다. 그런것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천박하고 편협하며 지나치게 성급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이 주는 자극에 너무나도 쉽게 휩쓸려 들어갔다가 곧 그 무가치함이나 탐욕스러움에 부딪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유익하다고 하는 그 문화 현상들은 어디서나 추잡한 짓거리와 전쟁, 죽음, 은폐된 불행 등의 긴 꼬리를 남긴다.

인류는 증기 기관과 터빈 장치를 갖는 대신에 끝없이 파괴되어 가는 지구와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며, 노동자와 기업가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 그 일그러진 영혼의 모습, 파업과 전쟁 등 불행하고 끔찍한 일들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쓸모없는 예술일수록 아쉬울 때 임시변통으로 이용되는 일이 적으며, 사치와 게으름, 유치함 등을 지니고 있는 예술일수록 나는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알고 보면 인류가 항상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며 철저히 현실적이거나 유용한 것만 따지지도 않을뿐더러그렇게 탐욕스럽거나 타산적이지도 않다

불꽃놀이는 굉장한 대포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그 소리는 전쟁과 살인에 대한 패러디로서, 약삭빠른 인간이 만들어 내고 사용한 가장 진지한 힘을 음악적이고 해학적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처참한 비명 소리 대신에 황홀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매우 현명하고 신중하며 미리 계산된 그 전쟁은 결코 일반적인 전쟁처럼 어리석고 무식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물론 진짜 포탄이 오고 가는 실제의 전쟁도, 또 장군들이 지휘하는 전쟁도 매우 현명하고 상세한 계획과 사전 예측을 기초로 하고 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전쟁은 항상 예측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결국 확실하게 계산된 전술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비열한 짓거리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소규모의 전쟁에서는 모든 일이 예상했던 대로 이루어졌으며, 발단과 서막에서부터 전개, 지연 그리고 감탄을 자아내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의도했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전쟁이 참모진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이며 야만적인 행위가되어 버리는 것과는 달리 그것은 분별력 있고 유희적이며 철저하게 정신적인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아무런 부작용 없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탕진해 버리느냐가 관건이었다.

신적이고 정신이 빛을 발하는 삶의 공간에 대한 기억, 아름다움이란 모두 그토록 빨리 사라지고 결국 시들어 버린다는 것

내가 보기에 완전히 매혹당한 구경꾼 대부분이 그때 체험한 감정, 즉 경건한 느낌은 주일날 교회에서 신도들이 설교를 들을 때 받는 느낌과 아주 유사한 것 같았다.

우리는 인도 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시바 신이 새로운 피조물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춤을 추면서 세상을 마구 짓밟는 그 최후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비대해진 국가 권력과 무가치한 자원 전쟁, 셀 수없이 많은 동식물의 멸종, 아름다움과 쾌적함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도시와 시골의 모습에서 세계사, 다시 말해 우리 시대의 역사가 깊이 병들어 있는 것을 본다. 공장들은 악취를 풍기고 물은 오염되어 있으며 언어와 가치, 사고 및 신앙 체계까지 병들어 시들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그 붕괴 과정의 맞은편에 과학 기술적인 지능과 그 성과의 눈부신 발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곧 기계화된 삶의 원심분리기에서 빠져나와 우주로 향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사색가들보다 오히려 대중에게 더 많은 위안이 되고 있는 듯하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열정으로 벌겋게 타오르면서 우리의 두려움이 우리에게 데려다 준 지배자에게 아첨한다.

다가올 행복에 대한 거짓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오늘을 영원히 내일에게 제물로 바친다.

불안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먼 옛날을 부러워하며 뒤돌아본다.

그러나 우리 발밑에는 대지가 충실하게 제자리를 지키면서 어머니처럼 묵묵하게 자연을 다스리고 씨앗과 새싹으로 자신의 영원한 생성을 표현한다.
우리가 아무리 겁에 질린 아이들처럼 소리를 질러도 대지는 미소만 지을 뿐이다.

보라 우리 위에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은총이자 피난처인 정신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방황하는 자녀들을 위한 약속과 위로를 가득 담은 채 정신은 많은 자녀들을 어머니에게 되돌려 보내는가 하면 다른 자녀들은 빛으로 데려간다.

영원한 대지와 정신 사이에서 그 모성의 세계와 부성의 세계 사이에서 세상의 혼 사랑의 기적이 피어난다.
사랑의 기적은 혼란스러운 세상의 소음이 조화를 이루도록 조절하고 그 마술로 우리의 얼어붙은 몸을 활활 타오르게 하며 형제인 우리들을 성스러운 합창단에 가지런히 세운다.

말과 시선 그리고 몸짓으로 사랑을 표현하라.
그러면 항상 기다리고 있는 늙은 대지가 네게 또 아버지 같은 영혼이 네게
자신의 감각과 영원한 힘을 열어 줄 것이다.

고대 중국의 고전에서 말하는 ‘현자‘나 ‘완성된 자‘란 인도 철학이나 소크라테스 철학에서의 ‘선한 인간‘과 똑같은 유형이다. 그런 인간이 지니고 있는 힘은 그가 누군가를 죽일준비가 되어 있는 것에 있지 않고, 반대로 죽임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붓다에서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귀함과 모든 가치, 업적과 삶에서의 완전한 순수성과 유일무이함은 바로 거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신이 생각했으며 여러 민족의 문학과 지혜가 수천 년 동안 이해해 왔던 인간은 자신에게 쓸모가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기뻐할 줄 아는 능력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관을가지고 태어났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기쁨에는 항상 정신과 감각이 똑같이 관여한다. 그 때문에 인간은 궁핍하고 위태로운 삶의 한가운데서도 자연이나 그림에서의 색채, 폭풍이나 바다 혹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 소리와 같은 것들에 대해 기뻐할 수 있고, 이해나 고민거리를 떠나 세계를 전체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언제든지 극복할 수 있으며 감각 덕분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감각‘이라는 것은 바로 당연한 것의 일치, 혹은 세상의 혼란을 통일과 조화로 예감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유쾌함이란 장난이나 자만심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인식이자 사랑이며 모든 현실을 긍정하고 모든 나락과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깨어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성인과 기사의 미덕이며, 방해할 수 없고 나이가 들어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이다.

유쾌함은 아름다움의 비결이며 모든 예술의 실체를 드러내는 본질이다. 인생의 찬란함과 끔찍함을 자신의 시로 경쾌하게 찬미하는 시인과 그런 것이 현재 그대로의 모습으로 울려 나오게 하는 음악가는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며, 비록 처음에는 우리에게 눈물과 고통스러운 긴장감을 가져다주더라도 결국 이 세상의 기쁨과 밝음을 배로 늘리는 사람이다.

모든 민족과 언어가 신화나 우주진화론 또는 종교에서 세계의 깊이를 재려고 아무리 애써 봐도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이자 최고의 경지는 바로 그 유쾌함이다.

그대가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 그대가 꿈꾸고 체험하는 것 그것이 기쁨이었는지 혹은 슬픔이었는지 그대는 확신할 수 있는가?
올림사음과 내림가음, 반음내림마음과 반음올림라음 그대의 귀는 그런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가?

고마운 마음으로 우리는 떠나야 한다. 이 땅의 한바탕 유희에서 세상은 우리에게 기쁨과 고통을 주었고 많은 사랑을 주었다.

우리는 그대가 우리에게 허락한 행복과 고난을 이제는 더 이상 맛보고 싶지 않다.

그는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에 불평하지말고, 그런 절망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일 것을 충고했다. 자연의 추함과 무의미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가 그것에 맞설 수 있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그것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가운데 최고의 것이고, 또한 유일한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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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 책의 중후반부를 지나고 있는데, 오늘 읽기 시작하는 부분은 뭔가 좀 추상적인 얘기들이라 약간 뜬구름 잡는 듯한 말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애써보고자 한다. 예전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읽었을 때도 내용이 다소 난해했다는 얘기들이 있었는데, 오늘 읽는 부분이 그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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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밑줄 친 부분에서 ‘무의식‘ 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는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최근 함께 읽고 있는《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라는 책에서 ‘무의식이 현실을 만든다‘ 라는 문장을 봤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이를 통해 ‘무의식‘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더 알아봐야겠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은 서로 대립되는 것들 뒤로 물러나 그로 인한 혼돈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적어도 한 번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판단 기준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의 표현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도덕심이나 의협심, 혹은 근사한 겉모습 따위는 모두 떨쳐 버리고 우리의 충동과 욕구, 불안,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그것이 이뤄졌을 때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가 비로소 우리가 살아 내야 하는 실제의 삶을 위한 가치관을 세우고, 긍정과 부정,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규율과 금지 사항을 정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낯선 힘과 관계를 맺는 것과 같다

atman(아트만): 인도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인간 존재의 영원한 핵을 말하는데이는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브라흐마가 우주작용의 근거라면 아트만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근거 짓는 핵이다.

내가 알고 있으며 예감하고 있기도 하지만, 바로 나 자신이 내면적으로는 아직 소유하고 있지 못한 그 무언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아프게 만들었던 것, 나의 생각과 작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내가 《싯다르타》에서 묘사하고자 했던 것

심리 분석은 구제의 수단이자 동양의 가르침(붓다, 베단타, 노자)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길

심리분석이 단순한 치료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새로운 가르침‘, 즉 새로운 단계의 인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는 것

학문은 돈벌이 혹은 하찮은 장난으로 전락해버렸다(칸트와 헤겔을 비롯하여 모든 독일 철학자들이 사색의 결과를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그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문학은 오락이자 장난이며 기만에 불과하고 그 전체가 허영으로 가득 찬 장사판과도 같다.

에른스트 찬과 토마스 만 혹은 강호퍼와 헤르만 헤세 사이에는 이제 이렇다 할 차이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곳에나 도덕과 신성한 가치, 그리고 초개인적인 힘을 얻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려는 시도가 결여되어 있다. 모두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명성, 혹은 어떤 당파를 위해 일하고 노력하며 생각하고 정치 활동을 한다.

노동을 하고 정신적 노력을 기울이며 그것을 더 높이 세우려는 시도는 오직 인류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모두 강물처럼 함께 흘러 들어가야 하는 것이 옳다. 그 강물 안에서는 마치 초기 교회의 성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개개인의 업적이나 실수는 즉시 익명의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진지하게 그것을 믿을 수 있고, 기쁨이나 신념, 그리고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것들이 독일 작가의 손끝에서 써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고통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계에 이르면 고통은 끝이 나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삶의 색채를 띠게 된다. 그래도 고통스러운 것은 여전하겠지만, 그럴 때의 고통은 생명이자 희망이다.

고통스러웠던 것만큼 나는 또 고독했다. 지금 나는 내게 최악이었던 시기와 조금도 다를바 없이 외롭다. 하지만 고독은 나를 더 이상 달랠 수도 없고 아프게 할 수도 없는 독약과도 같다. 나는 그 독성에 대한 저항력이 충분히 강해질 만큼 그것을 많이 마셨다. 그러나 그것은 독이 아니라 단지 고독이 변한 것일 뿐이었다.

우리가 받아들일 줄 모르고 사랑할 줄 모르며 고맙게 받아 마실 줄 모르는 것은 모두 독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고 우리의 삶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생명이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오랫동안 나는 사색의 힘을 과대평가해 왔으며 사색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기도 했다. 사색을 하는 동안 나는 패배자가 되기도 하고 승리자가 되기도 했다.

나는 사색을 통해서 배운 것이 없으며 내가 읽은 글의 수많은 저자들이 지니고 있는 사상으로부터 얻은 것은 더더욱 없다.

나는 단번에 세계를 확실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수없이 많은 본보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무언가를 새기고 따를 수 있는 근사한 순간들 가운데 일부를 경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오로지 그처럼 보기 드문 순간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이 그와 같은 순간을 체험할 수 있는 수천 가지의 수단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믿으려 하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칸트나 쇼펜하우어, 셀링을 통해서 체험한 것은 <마태 수난곡>이나 만테냐의 그림,《파우스트 Faust》 등에서 체험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우월한 가치를 지니는 철학이란 창조적인 철학자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제자나 독자 혹은 비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자는 모든 존재가 성숙과 성취의 순간에 느끼는 것, 이를테면 여인이 출산할 때나 예술가가 창작할 때 혹은 나무가 계절과 해가 바뀔 때 느끼는 것을 자신의 세계 창조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이 그런 것을 ‘단지‘ 무의식적으로 체험하는 반면에 철학자는 ‘의식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그저 의식 하나에 그처럼 우월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물의 범위를 끊임없이 내 의식의 시야 안에 두고 있다는 것은 나의 자아가 지니는 가치와 그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 사이에서 복잡하지 않고 막힘없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일뿐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물체이며, 로마 웅변가의 유명한 비유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몸 안에서 무의식은 위胃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한다.

논쟁을 벌일 의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내 생각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당신의 존재가 좁고 깊은 호수라고 한번 상상해 보라.
그리고 그 수면이 바로 의식이다. 그곳은 밝은 빛을 비추고 있으며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일이 그곳에서 일어난다.

수면에 있는 물 분자 자체는 쉴 새 없이 바뀐다. 끊임없이 밑에 있는 물 분자가 위로 올라오고, 또 위에 있는 물 분자가아래로 내려가면서 흐름이 생기고 보충을 하기도 하고 위치이동이 일어난다. 또한 어느 물 분자나 한번쯤은 위에 머물고 싶어한다.

물로 이루어진 호수처럼 우리의 자아 혹은 우리의 정신 역시 수천, 수백만 개의 분자, 즉 끊임없이 성장하고 교체되며, 무언가를 소유하고 기억하며 표현하려는 욕구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에서 우리의 의식이 보는 부분은 좁은 수면뿐이다. 정신은 수면 밑에 펼쳐진 무한하게 넓은 부분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넓고 어두운 공간을 벗어나 좁은 수면의 밝은 부분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교체가 진행되는 정신은 풍부하고 건전하며 다행히도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도 없이 많은 생각들을 마음속에 품는다. 그런 것들은 밝은 표면 위로 올라오는 일이 결코 없으며 밑에서 고통스럽게 썩어 간다. 그런 생각은 부패해 가며 고통을 주는 것이기에 의식에 의해 계속 거부를 당하게 되고 의심과 우려의 대상이 된다. 해롭다고 인식되는 것은 표면 위로 올라올 수 없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모든 윤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다.

사실상 해롭거나 이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선하거나 중립적이다.

개인은 누구나 자신에게 속하며 스스로에게 유익하지만 표면 위로 올라와서는 안 되는 것들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 윤리는 그런 것들이 위로 올라오면 불행이 따른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행복이 따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표면 위로 올라와야 하며 윤리에 복종하는 사람만 불쌍해질 뿐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지 않았던가!

단지 관념적인 입장이나 어떤 미학적인 염세주의 때문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삶이 슬픔과 고통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그들의 운명이다.

그런 사람들은 쾌락을 느끼는 것보다 고통을 느끼는 데 더욱 재능이 있다. 그리고 숨 쉬는 것과 잠자는 것, 먹는 것, 소화시키는 것 등 가장 단순하고 본능적인 행위는 모두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고통스럽고 번거롭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삶을 긍정하고 고통을 이기며 자포자기하지 않으려는 욕구를 내적으로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기쁘고 유쾌한 것이나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따뜻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반드시 가지려 한다. 게다가 평범하고 건강하며 정상적이고 성실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그처럼 그럴싸한 것들에게는 대단한 가치를 둔다.

한편 자연은 그런 사람들의 인생행로에서 최고로 멋지고 복잡한 것을 완성시킨다. 그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경외심을 갖게 되는 것, 바로 유머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혹은 너무나 감상적이고 별로 잽싸지 못한 데다가 지나치게 즐거움을 좇으며 위안받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도 때때로 흔히 유머라고 하는 것이 생겨난다. 그것은 깊고 지속적인 고통 속에서만 자라는 수정과도 같으며, 어쨌든 그것은 인류의 생산물 가운데 좀 더 나은 것에 속한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힘든 삶을 그대로 견뎌 내고 심지어 찬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 유머는 희한하게도 다른 사람들, 즉 건강하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항상 정반대로 작용하여 마치 억제할 수 없는 삶의 기쁨과 유쾌함이 폭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머를 들으면서 건강한 사람들은 허벅지를 마구 내리치며 큰 소리로 웃어 댄다.

항상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쓴다고는 하지만, 유머리스트들이 내세우는 제목과 주제는 모두 구실에 불과하다. 사실상그들의 주제는 예외 없이 단 한 가지뿐이다. 즉 별난 슬픔과더러운 (이렇게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사, 그리고 삶이 그토록 비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근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다.

구두 수선공은 구두 수선공으로 남아야 하는 것처럼 은자도 은자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진 직업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기웃대는 행동을 할 때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겠고, 사람들도 그것을 납득하겠지만, 보통은 단지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 당시에는 삶을 밝고 긍정적인 것으로 보았던 반면, 지금의 나는 삶을 사랑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그 고립감은, 나의 내면에 인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까닭 모를 욕구가 자리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게임 규칙에 따라 인생을 유쾌한 단체 게임으로 여기고 함께 즐기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은 얼마나 빨리 배우게 되는지,
또 게을러빠진 개나 게걸스럽게 먹어 대는 돼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육체적인 나쁜 습관과 나태함은 정신적으로도 그와 같은 상태를 수반하는 법이다.

나태함이 이성보다 더 강하고, 게을러서 살찐 배가 조심스럽게 호소하는 정신보다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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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개정증보판 포레스트 에디션) - 나를 숨 쉬게 하는
김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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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가진 특유의 섬세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종종 쓰는 말들의 이면에 숨겨진 뜻을 보다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본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 말들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읽으면서 저자가 왜 유명한 프로 작사가인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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