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정신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의 재산을 순식간에 잃는 것과 돈의 신성함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고 유일하게 가능한 구제책을 의미하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는 일과 돈이 유일한 우상인 것과 반대로 찰나적인 유희를 즐기는 성향이나 우연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 변덕스러운 운명에 대한 신뢰가 더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바로 그와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던 문제들을 매번 누가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외부 세계에서 다시 접하게 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 아니다.
어떤 인생 문제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일부러 찾지 않았는데도 바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
이런저런 책을 읽는 동안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영원한 수수께끼와도 같은 문제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헤쳐나가는 것이다. 그와 같은 문제들은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단지 체험할 뿐이다.
끝에 가서 결국 삶은 우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을 새로운 욕구와 열의로 추진할 수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시간으로 이루어진 것은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으며 시간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
삶의 상태와 이상 그리고 시대는 반드시 틀에 박힌 대로 차례차례 진행되어 서로 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기도 한다
절대자의 왕국 또는 아득히 먼 시간 속으로 옮겨 놓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인간의 이상향이 매 순간 실제 체험과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 많은 위안이 된다.
우리에게는 존재가 허락되지 않는다 한낱 강물일 뿐 우리는 온갖 형태 속으로 기꺼이 흘러든다.
언제나 우리는 떠돌아다니고 언제나 우리는 길손이다.
신은 점토와 같은 우리를 손에 쥐고 주무른다. 점토는 말이 없고 조형이 쉬우며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점토로 형체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구워지는 일은 결코 없다.
(하나님은 오늘밤 내가 어디에서 자게 될지 알고 계실까?)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나는 우리 시대의 찬란함이나 위대함도 믿지 않을뿐더러 우리 시대의 어떤 ‘지도적 이념‘이라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런 반면에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나의 경외심은 무한하다.
내가 자연의 힘을 기만하면서까지 감탄해 마지않으며 애정을 갖게 되는 발명품들도 더러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자연의 현상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사랑한다.
나는 진심이 담긴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건축물을 바라봄으로써,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낸 인간의 정신에 경탄한다.
이른바 유익하다고 하는 그 성과물에는 항상 불쾌한 침전물이 따라다닌다. 그런것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천박하고 편협하며 지나치게 성급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이 주는 자극에 너무나도 쉽게 휩쓸려 들어갔다가 곧 그 무가치함이나 탐욕스러움에 부딪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유익하다고 하는 그 문화 현상들은 어디서나 추잡한 짓거리와 전쟁, 죽음, 은폐된 불행 등의 긴 꼬리를 남긴다.
인류는 증기 기관과 터빈 장치를 갖는 대신에 끝없이 파괴되어 가는 지구와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며, 노동자와 기업가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 그 일그러진 영혼의 모습, 파업과 전쟁 등 불행하고 끔찍한 일들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쓸모없는 예술일수록 아쉬울 때 임시변통으로 이용되는 일이 적으며, 사치와 게으름, 유치함 등을 지니고 있는 예술일수록 나는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알고 보면 인류가 항상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며 철저히 현실적이거나 유용한 것만 따지지도 않을뿐더러그렇게 탐욕스럽거나 타산적이지도 않다
불꽃놀이는 굉장한 대포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그 소리는 전쟁과 살인에 대한 패러디로서, 약삭빠른 인간이 만들어 내고 사용한 가장 진지한 힘을 음악적이고 해학적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처참한 비명 소리 대신에 황홀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매우 현명하고 신중하며 미리 계산된 그 전쟁은 결코 일반적인 전쟁처럼 어리석고 무식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물론 진짜 포탄이 오고 가는 실제의 전쟁도, 또 장군들이 지휘하는 전쟁도 매우 현명하고 상세한 계획과 사전 예측을 기초로 하고 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전쟁은 항상 예측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결국 확실하게 계산된 전술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비열한 짓거리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소규모의 전쟁에서는 모든 일이 예상했던 대로 이루어졌으며, 발단과 서막에서부터 전개, 지연 그리고 감탄을 자아내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의도했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전쟁이 참모진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이며 야만적인 행위가되어 버리는 것과는 달리 그것은 분별력 있고 유희적이며 철저하게 정신적인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아무런 부작용 없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탕진해 버리느냐가 관건이었다.
신적이고 정신이 빛을 발하는 삶의 공간에 대한 기억, 아름다움이란 모두 그토록 빨리 사라지고 결국 시들어 버린다는 것
내가 보기에 완전히 매혹당한 구경꾼 대부분이 그때 체험한 감정, 즉 경건한 느낌은 주일날 교회에서 신도들이 설교를 들을 때 받는 느낌과 아주 유사한 것 같았다.
우리는 인도 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시바 신이 새로운 피조물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춤을 추면서 세상을 마구 짓밟는 그 최후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비대해진 국가 권력과 무가치한 자원 전쟁, 셀 수없이 많은 동식물의 멸종, 아름다움과 쾌적함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도시와 시골의 모습에서 세계사, 다시 말해 우리 시대의 역사가 깊이 병들어 있는 것을 본다. 공장들은 악취를 풍기고 물은 오염되어 있으며 언어와 가치, 사고 및 신앙 체계까지 병들어 시들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그 붕괴 과정의 맞은편에 과학 기술적인 지능과 그 성과의 눈부신 발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곧 기계화된 삶의 원심분리기에서 빠져나와 우주로 향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사색가들보다 오히려 대중에게 더 많은 위안이 되고 있는 듯하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열정으로 벌겋게 타오르면서 우리의 두려움이 우리에게 데려다 준 지배자에게 아첨한다.
다가올 행복에 대한 거짓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오늘을 영원히 내일에게 제물로 바친다.
불안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먼 옛날을 부러워하며 뒤돌아본다.
그러나 우리 발밑에는 대지가 충실하게 제자리를 지키면서 어머니처럼 묵묵하게 자연을 다스리고 씨앗과 새싹으로 자신의 영원한 생성을 표현한다. 우리가 아무리 겁에 질린 아이들처럼 소리를 질러도 대지는 미소만 지을 뿐이다.
보라 우리 위에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은총이자 피난처인 정신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방황하는 자녀들을 위한 약속과 위로를 가득 담은 채 정신은 많은 자녀들을 어머니에게 되돌려 보내는가 하면 다른 자녀들은 빛으로 데려간다.
영원한 대지와 정신 사이에서 그 모성의 세계와 부성의 세계 사이에서 세상의 혼 사랑의 기적이 피어난다. 사랑의 기적은 혼란스러운 세상의 소음이 조화를 이루도록 조절하고 그 마술로 우리의 얼어붙은 몸을 활활 타오르게 하며 형제인 우리들을 성스러운 합창단에 가지런히 세운다.
말과 시선 그리고 몸짓으로 사랑을 표현하라. 그러면 항상 기다리고 있는 늙은 대지가 네게 또 아버지 같은 영혼이 네게 자신의 감각과 영원한 힘을 열어 줄 것이다.
고대 중국의 고전에서 말하는 ‘현자‘나 ‘완성된 자‘란 인도 철학이나 소크라테스 철학에서의 ‘선한 인간‘과 똑같은 유형이다. 그런 인간이 지니고 있는 힘은 그가 누군가를 죽일준비가 되어 있는 것에 있지 않고, 반대로 죽임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붓다에서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귀함과 모든 가치, 업적과 삶에서의 완전한 순수성과 유일무이함은 바로 거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신이 생각했으며 여러 민족의 문학과 지혜가 수천 년 동안 이해해 왔던 인간은 자신에게 쓸모가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기뻐할 줄 아는 능력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관을가지고 태어났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기쁨에는 항상 정신과 감각이 똑같이 관여한다. 그 때문에 인간은 궁핍하고 위태로운 삶의 한가운데서도 자연이나 그림에서의 색채, 폭풍이나 바다 혹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 소리와 같은 것들에 대해 기뻐할 수 있고, 이해나 고민거리를 떠나 세계를 전체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언제든지 극복할 수 있으며 감각 덕분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감각‘이라는 것은 바로 당연한 것의 일치, 혹은 세상의 혼란을 통일과 조화로 예감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유쾌함이란 장난이나 자만심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인식이자 사랑이며 모든 현실을 긍정하고 모든 나락과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깨어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성인과 기사의 미덕이며, 방해할 수 없고 나이가 들어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이다.
유쾌함은 아름다움의 비결이며 모든 예술의 실체를 드러내는 본질이다. 인생의 찬란함과 끔찍함을 자신의 시로 경쾌하게 찬미하는 시인과 그런 것이 현재 그대로의 모습으로 울려 나오게 하는 음악가는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며, 비록 처음에는 우리에게 눈물과 고통스러운 긴장감을 가져다주더라도 결국 이 세상의 기쁨과 밝음을 배로 늘리는 사람이다.
모든 민족과 언어가 신화나 우주진화론 또는 종교에서 세계의 깊이를 재려고 아무리 애써 봐도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이자 최고의 경지는 바로 그 유쾌함이다.
그대가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 그대가 꿈꾸고 체험하는 것 그것이 기쁨이었는지 혹은 슬픔이었는지 그대는 확신할 수 있는가? 올림사음과 내림가음, 반음내림마음과 반음올림라음 그대의 귀는 그런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가?
고마운 마음으로 우리는 떠나야 한다. 이 땅의 한바탕 유희에서 세상은 우리에게 기쁨과 고통을 주었고 많은 사랑을 주었다.
우리는 그대가 우리에게 허락한 행복과 고난을 이제는 더 이상 맛보고 싶지 않다.
그는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에 불평하지말고, 그런 절망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일 것을 충고했다. 자연의 추함과 무의미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가 그것에 맞설 수 있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그것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가운데 최고의 것이고, 또한 유일한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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