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건 잠시 잊혀질 순 있어도 박멸할 수는 없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그냥‘, ‘괜찮아‘ 라는 간단한 말 속에 잠재된 의미 또한 그랬다.

마지막 부분에 책 제목이 들어간 문장이 나온다. 음절로는 몇 개 안되지만 읽었을 때 뭔가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문장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만든 문장이기도 했다.

시간과 기억은 저무는 것이 아닌 접어놓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와의 기억 또한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겠지만, 당장은 다 떠오르지 않더라도 해가 거듭된 다음에는 필히 떠오르리라 믿는다. - P283

언젠가의 다정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듯 지금 이 순간의 다정 또한 언젠가의 나를 지탱할 것이다. - P283

복잡한 감정을 말로는 다 풀어낼 수 없고, 마음을 다 보여줄수도 없을 때, 우린 ‘그냥‘이라고 말한다. 혹은 ‘괜찮아‘ 정도로 간단히 아무 일 없다는 듯 이야기하고 속마음은 꺼내지못한다. 그 감정이 너무 가볍고 별것 아니어서가 아니라 때론 무겁고 너무 큰일이어서 그렇게만 표현하고 속으로 묵혀두곤 한다. - P286

이토록 불완전한 삶을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존재한다면,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건네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렇다면 나 자신에게도 아무런 설명 없이, 별일 없다는 듯그 말을 건네줄 수 있는 거 아닐까. - P286

아무리 온전치 못하더라도, 불안하더라도, 해낸 것이 아직은 없더라도 부족하더라도 슬프더라도 아프더라도. 잡고 싶었더라도 그렇지만 놓쳤더라도. 마음으로는 붙잡고 싶은데 스스로 도망쳤더라도. 괜찮은 척하다가도 저도 모르게 울컥하며 엎드려 울더라도, 그럼에도 결국 해내면 그만이다. 과정에 불과하다. 잘하고 있다. 그대로만 지내면 된다.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고.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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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12장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행동 전략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여기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전략들이 나오기에 흥미롭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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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민사분쟁‘에 관한 내용에서 양측의 변호사들이 의뢰인(물주)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한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두고 본문에서는 민사소송을 ‘의뢰인에게는 영합 게임zero sum game이지만 변호사에게는 비영합 게임nonezero sum game 이다‘(p.410) 라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그냥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던 것들이었는데, 오늘 독서를 통해 이렇게 구체적인 문장으로 소송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를 정리해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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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오는 사례 중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명목상으로는 전쟁 중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에 공격을 삼가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본문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었던 TFT(Tit For Tat, 이에는 이 눈에는 눈)전략의 일환으로 상호간에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서로간의 공격을 최대한 삼갔던 두 나라 군대 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인데 이를 통해 상호간에 인명피해를 최소화하여 결과적으로 win-win전략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상호간에 협동하는 전략이 최선인 경우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현실에서는 이와 같은 협력을 자주 보기 힘든 게 아쉬울 따름이다. 상호간에 영합 게임zero sum game이 아닌 비영합게임nonezero sum game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전략의 성공은 어떤 다른 전략이 제출되느냐에 달려 있다 - P398

리그전 방식이란 각각의 전략이 다른 전략들과 돌아가면서 모두 대전하는 방식이다. - P399

폭넓은 여러 전략들에 대해 잘 대항하는 전략을 액설로드는 ‘강건하다‘라고 부른다. - P399

ESS의 중요한 특징은 그 전략이 전략들의 집단 내에서 이미 다수를 점하고 있을 때 계속 좋은 성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TFT(Tit For Tat, 이에는 이 눈에는 눈)가 ESS라는 것은 TFT가 우위를 점하는 환경에서는 TFT가 잘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우리는 일종의 ‘강건함‘으로 간주할 수 있다. 진화론자로서 우리는 이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강건함이라고 보고 싶을 것이다. 왜 그렇게 중요한가? 왜냐하면 다윈주의의 세계에서 승리는 돈으로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자손의 수로 지불되기 때문이다. - P400

다윈주의자에게 성공적인 전략은 전략들의 집단 내에서 그 수가 많은 것들이다. 어떤 전략이 계속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전략이 다수일 때, 즉 자기 자신의 사본이 많은 환경에서 특히 잘되어야 한다. - P400

이제 경기장은 TFT처럼 ‘마음씨가 좋으면서도 ‘분개할 줄 아는‘ 전략의 독무대가 됐다. - P401

못된 전략이 모두 절멸하고 나면 어떤 마음씨 좋은 전략도 TFT나 서로 간에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마음씨가 좋아 상대방에게 협력의 카드를 내놓기 때문이다. - P402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칼날처럼 예리하게 운명을 좌우하는 임계 빈도가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칼날의 한쪽 면에서는 TFT의 빈도가 임계빈도를 초과하여 선택은 TFT를 점점 더 선호하게 된다. 칼날의 다른 면에서는 항상 배신하는 전략이 임계 빈도를 초과하여 선택은 점점 더 항상 배신하는 전략을 선호하게 된다. - P404

‘우연‘이라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일 뿐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알려지지 않은 또는 불특정한 이유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05

점성粘性이라는 것은 각 개체가 출생 장소 근처에서 살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 P405

혈연관계인 개체들은 단순히 용모뿐만 아니라 갖가지 다른 면에서도 닮는 경향이 있다. - P406

TFT는 ‘시샘하지도 않는다‘. 액설로드의 용어로 시샘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많은 돈을 물주로부터 뜯어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보다 많은 금액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 시샘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상대가 당신과 같은 돈을 얻었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 많은 금액을 물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한 완전히 만족한다는 의미다. - P408

TFT가 실제로 게임에서 ‘이기는‘ 일은 결코 없다. 잘 생각해 보면, TFT는 보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배신하지 않으므로 어느 게임에서든 ‘적‘ 이상의 득점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있다. 기껏 잘돼야 상대방과 비길 뿐이다. 그러나 각각의 비기는 게임에서 고득점을 얻게 된다. - P408

우리가 민사 ‘분쟁‘이라고 하는 것에는 실제로 크나큰 협력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경우가 흔하다. 영합 대립으로 보이는 것에 약간의 선의를 보태면 쌍방에 이익을 주는 비영합 게임으로 바꿀 수 있다. - P409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법조인 출신으로 영합 게임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 P411

(법정은 적어도 아직 논쟁의 예의범절을 보존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변호사끼리는 시종 물주를 뜯어낼 협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P411

사실 실생활의 많은 측면은 비영합게임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이 종종 ‘물주‘ 역할을 하고 개개인은 서로의 성공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경쟁자를 누를 필요는 없다. 이기적 유전자의 기본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우리는 서로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세계에서조차 협력과 상호 부조가 어떻게 번성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액설로드의 말대로 어째서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P414

게임의 정확한 라운드 수가 확실치 않더라도 현실 생활에서는 그 게임이 어느 정도 지속될지 통계적으로 추측하는 것이 종종 가능하다. 이 평가는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 P415

TFT류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자가 배신에 의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보복의 위협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 보복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은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방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 P418

TFT류 전략의 중요한 특징은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장기간의 상호 보복의 연쇄를 진정시키는 데 한몫한다. - P419

상호 신뢰의 안정된 패턴을 유지하는 데 예측 가능성과 의례도 중요하다 - P419

"형식적이고 정기적인 발포 의례는 이중의 메시지를 보낸다. 사령부에게는 공격을, 적에게는 평화를 전하고 있다" - P420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운동은 대화를 통한 교섭, 즉 상황을 알고 있는 전략가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흥정하여 실현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의 행동에 반응함으로써, 일련의 국지적인 관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 P420

컴퓨터에 입력된 전략은 확실히 무의식적인 것이었다. 그 전략들을 마음씨가 좋은가 아닌가, 관대한가 아닌가, 시샘이 심한가 아닌가 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전략들의 행동이었다. 그 전략을 설계한 프로그래머들이 이러한 성격을 가졌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전략과 무관하다. 매우 못된 인간이라도 마음씨 좋고 관대하고 시샘하지 않는 전략을 작성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반대의 일도 가능하다. - P421

어떤 전략이 마음씨가 좋은지 아닌지는 행동에 따라 식별되는 것이지 그 전략의 동기나 (전략은 동기를 가질 수 없다) 프로그래머의 성격에 따라 식별되는 것이 아니다(그 프로그램이 컴퓨터에서 작동할 때는 이미 배경 속에서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다).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은 그 전략을 몰라도, 아니 아무것도 몰라도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 P421

우리는 자연스레 그의 낙관적 결론(시샘 없고 관대하며 마음씨 좋은 전략의 승리)이 자연계에도 적용되는지 여부를 묻게 된다. 물론 대답은 "예"다. 유일한 조건은 자연이 때때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과, 미래의 그림자가 길어야 하며, 그 게임이 비영합 게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은 생물계의 도처에서 확실히 충족되는 것이다. - P421

헌혈 행위는 헌혈하는 개체의 사망 확률을 증가시키기는 하지만, 이 사망 확률의 증가는 수혈을 받은 개체의 생존 확률의 증가에 비하면 매우 낮았다. - P427

다른 암컷(흡혈박쥐의 사회집단은 암컷의 집단이다)에게 주는 피는, 주는 개체에게는 받는 개체에게만큼 그렇게 귀중한 것이 아니다. 먹이를 구하지 못한 날, 피를 얻은 개체는 헌혈 선물로 인해 엄청난 혜택을 입게 되는 것이다. - P427

생명체에 대해 유전자의 관점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생물체가 자신의 수명 말고 자신과 그 혈연자의 번식 성공도에 ‘마음을 쓸‘ 이유가 별달리 없을 것이다. - P431

어떤 관점(근본적인 생물의 매개체가 몸이냐, 유전자냐)을 취하더라도 자연선택이 직접 유전자에 작용하는 일은 없다. DNA는 단백질의 고치 안에 들어 있고 막으로 싸여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되기 때문에 자연선택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만일 자연선택이 DNA 분자를 직접 고르려 한다고 해도 이를 위한 어편 기준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녹음테이프가 똑같아 보이듯 유전자도 어느 것이나 다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 P432

유전자 간의 중요한 차이는 그 영향으로서만 드러난다. 이것은 보통 배胚 발생 과정에 대한 영향, 즉 신체의 형성과 행동에 대한 영향을 뜻한다. - P432

성공적인 유전자란 하나의 배 내의 모든 다른 유전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환경에서 그 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유전자다.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성공적인 성체, 즉 잘 번식하여 같은 유전자를 미래 세대에 전해 줄 수 있는 성체가 되도록 배를 발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 P432

표현형phenotype이라는 용어는 하나의 유전자가 신체로 발현되는 것, 즉 배 발생 과정을 통해 유전자가 그 대립 유전자에 비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말할 때 쓰인다. 특정 유전자 몇 개의 표현형은, 예를 들면 녹색의 눈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유전자는, 예를 들어 녹색의 눈과 고불거리는 머리카락처럼 둘 이상의 표현형에 영향을 미친다. - P432

자연선택이 어떤 유전자를 선호하는 것은 유전자 그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그 결과, 즉 그 유전자가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 P433

다윈주의자들은 보통 그 영향이 생물의 몸 전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유전자에 관해 논의해 왔다. 이들은 유전자 그 자체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 이론의 핵심에 패러독스가 있다는 사실이 대개 자각되지 않는다. - P433

‘감수 분열‘이란 염색체의 수가 반으로 되어 난세포와 정세포를 생성하는 특별한 종류의 세포 분열 - P433

정상적인 감수 분열은 완벽하게 공정한 제비뽑기와 같다. 대립 유전자의 쌍에서 한쪽만이 운 좋게 정자나 난자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쌍 중 어느 쪽이 들어갈지 확률은 같으므로 만일 다수의 정자(또는 난자)를 평균하면 그중의 반이 대립 유전자 쌍의 한쪽을, 반이 다른 한쪽을 포함하게 된다. - P433

감수 분열은 동전 던지기처럼 공정하다. 우리는 대개 동전 던지기가 무작위적인 과정이라 생각하지만 이것도 사실 바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얼마나 세게 동전을 튕기느냐 등 여러 사정에 따라 영향을 받는 물리적 과정이다. 감수 분열 또한 물리적 과정이며 유전자의 영향을 받을수 있다. - P434

만일 눈 색깔이나 머리카락의 고불거림 등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감수 분열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생겨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돌연변이 유전자가 자신이 대립 유전자보다 더 빈번하게 난자에 들어가도록 감수 분열에 영향을 준다고 가정해 보자. 이와 같은 유전자를 ‘분리 왜곡 유전자 segregation distorter‘라고 하는데 이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 P434

돌연변이에 의해 분리 왜곡 유전자가 생기면 이들은 집단 내에 거침없이 퍼져 나가며 그 대립 유전자는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감수 분열 구동meiotic drive이다. 신체와 체내 모든 다른 유전자의 번영에 미치는 효과가 비참할지라도 감수 분열 구동은 일어날 것이다. - P434

생물 개체가 교묘한 방법으로 사회적인 동료를 ‘속일‘ 가능성이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 P434

분리 왜곡 유전자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생쥐의 유전자다. 생쥐 한 마리가 두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어려서 죽거나 불임이 된다. 따라서 t는 동형 접합 상태에서는 ‘치사 유전자‘다. - P434

(유전자 부작용의 거의 대부분은 불리한 것이며, 새로운 돌연변이는 보통 유리한 효과가 불리한 효과를 능가할 때에만 퍼진다. 만일 불리한 효과와 유리한 효과가 함께 생물의 몸 전체에 적용된다면 생물체에게 그 순효과는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불리한 효과는 생물체에, 유리한 효과는 유전자에게만 적용된다면 생물체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순효과가 완전히 불리한 것이다) - P435

생물 개체는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그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존재다. 그 이유는 아마도 생물 개체의 각 부분이 아주 일체화되고 통합되어 서로 긴밀히 협조하기 때문이다. 생명에 관한 질문은 보통 생물 개체에 관한 질문이다. 생물학자는 생물 개체가 왜 그것을 하고, 또 왜 저것을 하느냐고 질문한다. 생물학자는 종종 왜 생물 개체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느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그들은 생물 물질이 왜, 무엇 때문에 모여서 생물체를 구성하느냐고는ㅡ이렇게 물어야 하는데도ㅡ묻지 않는다. - P436

우리는 생물 개체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낡은 태도를 우리의 생각에서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 P437

하나의 유전자가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은 보통 그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는 몸에 미치는 모든 영향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이 유전자가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종래의 정의다. - P437

어떤 경우에라도 한 유전자가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은 그 유전자가 스스로를 다음 세대 속으로 밀어 넣기 위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여기서 한 가지 추가할 것은 그 도구가 생물 개체의 체벽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 P437

우리는 자연선택에 관한 한 생물 개체의 이익은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실제로 중요한 이익은 껍데기에 개체를 보호하는 속성을 부여하는 유전자의 이익이다. - P439

다윈주의적 (즉 자연선택에 의한) - P440

자연선택은 선택 대상들 중에 유전적 차이가 없는 한 적응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 -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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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엘리트 축구 시스템의 문제점을 몸소 느낀 저자는 자기 자식들이 축구를 하겠다고 하자 기존의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으로 두 아들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과거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니다 싶은 것들은 과감하게 빼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훈련들을 새롭게 개발하는 식으로 하여 최선의 훈련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는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가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당시의 과정이 내가 최근 함께 읽고 있는《몰입》이라는 책에 나오는 과정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온전히 몰입한 나머지 잠을 자다가도 꿈속에서 아이디어가 생각날 정도였다는 저자의 일화를 보며 저자가 전심으로 축구에 몰입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정도로 몰입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었다. 지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저자의 아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눈만 뜨면 축구 생각을 했다. 길을 가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한번은 자다가 꿈속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선뜻 잠에서 깼다. 아,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다! 내일 프로그램에 적용해봐야지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났더니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참 황당했다. 그때부터 머리맡에 메모장을 두고 잠을 잤다. 아무리 사소한 발상이라도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그 자리에서 빠르게 기록해두었다. 그중 어떤 것은 꽤 쓸 만했다. 매일 이렇게 훈련 프로그램을 계속 고치고 다듬어나갔다. - P104

모든 것은 기본기 습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나는 체험을 통해 이십 대 초반의 왕성한 에너지가 고갈되면 이십 대 후반부터 선수의 기량은 전적으로 어릴 때 쌓은 기본기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고 뼈저리게 느낀 것이었다. 쉽게 넣을 수 있는 골을 넣지 못하거나 골대 앞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은 기본기 부족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체계적인 훈련으로 어릴 때 익힌 동작이 반사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이미 늦었다고 봐야 한다. 찰나의 간결한 볼 터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 P104

끊임없는 변수에 대응하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차곡차곡 밑바닥부터 쌓지 않으면 기량은 어느 순간 싹 사라진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으려면 바닥부터 사다리를 딛고 가야 한다. - P104

우리는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에게만 눈길을 주지 바닥부터 한 단계씩 차분히 발을 딛고 오르는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오르고 싶다면 한 칸 한 칸 차례로 조심스레 밟고 가야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건너뛰면 위험하다. 기본기 습득 과정에는 중간에 빠진 사다리 가로대, 즉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까지 들어가야 한다. - P104

경기 때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몸의 균형,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부상을 막을 재간이 없다. 그러니 무리한 동작은 삼가야 한다. - P104

자연스러운 동작은 공에 대한 감각에서 나온다.
축구의 비밀이 어디에 있을까.
축구공에 있다.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외엔 길이 없다. - P105

볼 감각이야말로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는 지름길이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선수의 수명이 좌우된다. - P105

나는 선수가 스물다섯 살 정도가 됐을 때 최고의 기량을 낼 수 있도록 각 시기에 맞춰 단계별로 꼼꼼하게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훈련하는 동안 이 생각은 더욱 강화됐고, 나는 이를 유소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했다. 철저한 기본기를 중심으로 나이대에 맞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 - P105

어느 날 갑자기 축구를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고된 훈련을 통해서만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아서도 안 되고 첫술에 배부를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 P105

우리는 우리가 걷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갓난아이 때는 네 발로 기어 다녔다. 그다음에 두 발로 섰고, 일어서는 일도 단번에 되지 않았다.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그러다 가까스로 첫걸음마를 뗐다. 수학을 공부하는데 미적분을 하려면 곱셈 나눗셈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아이가 태어나 걷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은 넘어지고 엎어져야 한다. 축구라고 다르겠는가? 세상 이치가 그러한데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게 결과만을 바라본다. 승리와 영광만을 소망한다. - P106

제대로 싸워서 이기려면 수도 없이 패배하고 좌절해봐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좌절은 앞날이 보장된 좌절이자, 실패가 아닌 경험이다. 이 과정을 겪어야 사람은 성장한다. - P106

그래서 내린 결론은, 기본기에 답이 있다, 몸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축구의 비밀은 공에 있다, 이 세 가지 정도다. - P107

이 세상에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본기가 그때 비로소 발현된 것일 뿐이다. - P107

긴 항해를 떠날 때 사람들은 바다에 그냥 오지 않습니다. 배를 띄운다는 것은 위험과 직결되는 갖가지 변수를 동반하는 일입니다. - P108

눈앞에 닥친 일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진정한 성과를 얻으려면 그만큼 사전 준비가 꼼꼼해야 합니다. 끈질긴 물밑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 P108

축구는 볼에 비밀이 있습니다.
볼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져도 괜찮습니다. 미래를 봐야 합니다.
오늘 이겼다 해도 미래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P108

나는 흥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면서, 이 아이가 커서 축구선수로 성공하겠지, 프로선수가 되겠지, 프로선수가 돼서 어느 정도 돈을 벌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런 생각은 결단코 해본 적이 없다. - P110

아이의 행복보다 부모의 목표와 조급함이 앞선다. - P110

부모님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 해도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또다른 인생이 있다. - P110

"놀아라, 하고 싶은 대로 놀아라." - P110

방목이라는 것은 무질서나 내팽개침이 아니다. 자유라는 연료가 마음껏 타올랐을 때 비로소 창의성을 발휘하고 발견할 수 있다. - P111

"네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축구선수가 못 되고 일반 학교에 가야 한다면 기술이나 농업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 가거라. 거기서 조금 일찍 하교하고 너 좋아하는 축구를 해라.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잡을 땐 연봉을 가장 조금 주는 데를 찾아라. 연봉 조금 주고 일찍 퇴근하는 곳을 찾아라.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것이 축구라면 축구를 해라." - P111

나는 내 아이들이 돈을 위해 살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 길에 돈이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안 따라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돼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돈만 좇는 삶을 산다면, 그것을 과연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 P111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문제로 호되게 고생도 해본 나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미리 걱정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 P111

"네 삶을 살아라. 주도적인 네 삶을 살아라." - P111

남들만큼 돈을 벌지 못할지언정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주도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세우고, 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시간도 벌면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 - P111

돈에 내 인생을 다 빼앗기지 말고 진짜 내 인생을 누릴 시간도 벌어야 한다.
그 시간에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공차기이면 그 시간에 공을 차면 된다. - P112

아이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자신을 응시하는 시간이. - P112

일찍부터 승패에 노출된 아이의 경우 승부욕은 강해질지 몰라도 ‘생각하는 축구‘, ‘즐기는 축구‘를 하기는 어렵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을 하려다가 몸이 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 P113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최상의 몸으로 운동장 위에서 최고의 경기를 펼치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기에,
아들이 축구장 안에서 더없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걸 돕고 싶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P113

본인이 선택한 길, 본인이 행복하면 됐지요. - P114

축구가 좋다니 할 수 있도록 도왔을 뿐입니다. 아이가 원하는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축구를 원하니까. 힘들다 해도 매 순간 재미있게, 그렇게 사는게 진짜 인생이니까요. - P114

축구는 열한 명이 하는 것이지만, 나는 축구는 개인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 P115

열한 명의 선수 개개인이 강해질 때 그 팀도 강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 원리를 거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조직력부터 이야기한다. 개인의 능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조직력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능력이 확보된 상태라면 전략 전술의 조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 P115

내가 축구에서 기본을 강조하는 이유도 강한 개인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감을 가질 때라야 팀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 P115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한다. - P116

우리가 강해지려면 먼저 내가 나로서 당당하게 혼자 설 수 있어야 한다 - P116

나를 강하게 만들 수 있었던 건 나 스스로밖에 없었다. 당당히 홀로 서야만 했다. - P116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만의 훈련법을 만들어 내 몸을 도구 삼아 실험했다. - P116

‘왜?‘라는 질문을 던져라.
가르쳐주는 대로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 P117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을 강조하는 스포츠 심리학자들도 많지만 내 경우에는 루틴을 만드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루틴이 때로는 강박이 되어, 루틴을 그대로 행하지 않을 경우 선수에게는 또 다른 강한 불안 요소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 P118

한번 살아보자고 별짓을 다 했다. - P119

나는 축구가 너무도 하고 싶었다. 이것만큼은 정말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잘하고 싶고 버티고 싶었다. 나는 축구를 잘해야만 했다. 그래야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객지에 홀로 나와 축구라는 동아줄을 죽을 둥 살 둥 붙잡았다. - P119

나에게 축구는 곧 나의 인생이다.
축구로 인해 많은 연구를 해야 했고 생각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행복했다. - P119

반복의 중요성은 축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떤 종목이든 운동선수들이 몸의 다양한 기능을 익히는 건 반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슈팅 하나만 하더라도 수십만 번을 반복해야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 P120

불 꺼진 방 안에서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경지.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축구선수는 공을 좀 다룬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온전한 몸과 정신을 가진 이가 밥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는 것이 기본이듯, 모든 것은 이 ‘기본‘에서 시작된다. - P121

하루를 쉬면 본인이 알고 이틀을 쉬면 가족이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말처럼,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가치는 ‘겸손‘과 ‘성실‘이다. - P121

나는 농부의 마음이다. 365일 파종한다.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 - P121

나는 ‘하나‘라는 숫자부터 시작한다. 이 하나를 익히기까지 꼼꼼하게 하다 보면 다른 이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하나의 기술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둘‘의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 P121

몇 년이 지나도록 기본기만 쌓는 우리 아이들이 더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담컨대 기본기를 익힐 때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언정 그다음 단계에서부터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적응한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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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즘 자주 쓰이는 용어 중 하나인 ‘밈‘ 이라는 것에 대한 얘기를 잠깐 언급했었다. 오늘은 이 ‘밈‘ 과 관련한 보다 더 자세한 내용들이 나온다. 요즘 사람들이 ˝밈, 밈˝ 거리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듯하다.

"(...) 밈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유전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은 수백만 전 세계 사람들의 신경계 속에 하나의 구조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 P365

약간 정확도가 떨어지는 자기 복제자가 일단 우주상 어디에라도 나타난다면 이들은 무한한 힘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다. 그 이유는 이들이 다윈의 자연선택이 작용할 기반이 되며, 충분한 수의 세대가 지나면 매우 복잡한 체계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조건이맞기만 한다면, 복제자들은 자동적으로 떼를 지어 자신들을 담고 다니면서 자신들이 복제를 계속할 수 있도록 작동하는 체계, 또는 기계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P583

『이기적 유전자』의 10장까지는 한 종류의 복제자, 즉 유전자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1장에서 밈에 대해 설명하면서, 나는 일반적인 자기 복제자에 대해서 설명하려 했고 유전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이려고 하였다. - P583

DNA는 자기 복제를 하는 하드웨어 조각이다. 각 조각은 고유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경쟁자인 다른 DNA 조각과는 그 구조가 다르다. 뇌에 들어 있는 밈이 유전자와 비슷하다면, 밈은 자기 복제를 하는 뇌 구조로, 이 뇌 저 뇌 속에서 뉴런의 연결이 어떻게 재조합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P583

심리적 매력이라는 것은 뇌에 작용하는 매력이며, 뇌는 유전자 풀 속의 유전자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는다. - P366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현상을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유전자가 자기 복제자이기 때문이다. - P366

넓은 의미에서 모방은 밈이 자기 복제를 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자기복제를 할 수 있는 모든 유전자가 성공적이지 않은 것처럼, 어떤 밈은 밈 풀 속에서 다른 밈보다 성공적이다. 이것은 자연선택과 유사하다. - P367

과학에는 논리뿐 아니라 일종의 사회학이 존재한다. 어떤 아이디어는 옳지 않음에도 널리 (적어도 당분간은)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는 훌륭함에도 수년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결국 과학적 상상력을 파고들면서 되살아나기도 한다. - P587

그 크기에 비례하는 성장속도에 이미 도달한 성장 과정을 우리는 지수적 성장 exponential growth이라고 부른다. 전형적으로 지수적 성장 과정을 보이는 것으로 질병의 확산을 들 수 있다. 한 사람은 몇 명의 다른 사람에게서 바이러스를 받고 또 같은 수의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달하면서 질병에 걸린 사람의 수는 점점 더 그 속도가 빠르게 증가한다. - P588

지수적 성장 곡선을 판정하는 방법은 로그를 취해서 그래프를 그렸을 때 직선이 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누적 수치에 대해서 로그를 취한 그래프를 그리는 것은 편리하고도 대중적인 방법이다. - P589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밈 중에도 급격하게 퍼져 나가 단기적으로는 성공하지만 밈 풀 속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유행가나 뾰족한 스파이크힐 등이 그에 해당된다. 한편 유대교의 율법과 같이 수천 년에 걸쳐 계속 퍼져 나가는 것도 있는데 이는 보통 기록된 언어가 가지는 특출한 영속성 때문이다. - P368

과학자가 어떤 아이디어를 듣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할 때 그는 그것을 어느 정도 변화시키게 마련이다. - P368

밈의 전달은 연속적인 돌연변이를 거치며 다른 것과 혼합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 P368

가령 우리가 "오늘날 생물학자는 모두 다윈의 이론을 믿고 있다"라고 해도 모든 생물학자의 뇌에 다윈이 쓴 단어들이 똑같은 사본으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다윈의 이론에 관하여 독자적 해석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다윈의 저작을 직접 읽었기보다는 최근에 쓰인 책에서 읽어 배웠을 것이다. - P370

‘아이디어 밈‘은 뇌와 뇌 사이에 전달될 수 있는 실체로서 정의될 수 있을지 모른다. 즉 다윈 이론의 밈이란 그 이론을 이해하는 모든 뇌가 공유하는 그 이론의 본질적인 바탕이다. 사람들이 그 이론을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는 정의상 다윈 이론의 밈의 일부가 아닌 셈이다. - P370

유전자를 자기의 생존이라는 목적의식을 가진 능동적인 존재로서 생각하는 것이 편리했던 것처럼 밈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하면 편리할지 모른다. 어느 경우에도 신비스럽게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목적이란 어떤 경우에나 단순한 은유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전자의 경우에 이 은유가 얼마나 유용했던가. 그것이 단순한 은유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 후에 우리는 유전자에 대해 ‘이기적인‘, ‘잔인한‘ 등과 같은 형용사까지 사용했다. 이와 똑같이 이기적인 밈이나 잔인한 밈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 P371

유성생식의 경우, 개개의 유전자는 염색체상에서 같은 장소를 차지하려는 대립 유전자와 경쟁한다. - P371

밈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대립하는 밈이없는데도 밈이 ‘이기적‘이라거나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견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밈들이 서로 일종의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 P371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다. 뇌에서는 아마도 저장 용량보다 시간이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의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를 받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372

한 밈이 어떤 사람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 P372

(의학 백신과 컴퓨터 백신은 바이러스의 ‘약해진 종류‘를 주사하는 것이라는 점까지 비슷하다) - P593

바이러스를 막는 프로그램이 진보하면 새 바이러스가 이에 맞서 또 다른 진보를 하게 될 것이다. - P593

돈이 되는 직업은 전문화되기 마련이다. - P593

진짜 의사는 인간의 악의가 만들어 내지 않은 자연의 문제를 해결한다. - P593

유전자의 경우, 유전자 풀 속에 공共적응된 유전자 복합체가 발생할 수 있다 - P372

아마도 우리는 건축, 의식, 율법, 음악, 예술, 문서화된 전통이 조직화된 교회를 서로 돕는 팀의 공적응된 안정한 세트의 일례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 P372

지옥불이라는 아이디어는 단순히 그 자체가 갖는 강렬한 심리적 충격 때문에 불멸의 존재가 된다. 그것이 신의 밈과 연관되어 버린 것은, 이 둘이 밈 풀 속에서 서로의 생존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73

믿음도 종교라는 밈 복합체의 또 다른 구성 요소다. 이것은 증거가 없어도ㅡ증거를 무시하고라도ㅡ맹신함을 의미한다. - P373

어떤 종류의 밈에게든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 - P373

맹신이라는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 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 수단을 행사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 P373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더라도 다른 의식을 행한다면 맹신은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죽어야 한다고 선고할 수 있다. - P374

맹신의 밈은 특유의 잔인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번식해 간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 P374

믿음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세뇌시키는 아주 훌륭한 전략이므로 그 믿음을 깨는 것은 어려운일이다. 그러나 믿음이란 결국 무엇인가? 믿음은 사람들이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 (그야말로 아무거나)을 믿게 만드는 심리 상태다. - P594

만약 확고한 근거가 있다면 믿음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 근거만으로도 사람들은 믿게 될 테니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흔히 되뇌는 "진화 그 자체도 믿음의 문제다"라는 주장이 어리석은 것이 된다. 사람들이 진화를 믿는 것은 단지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엄청난 양의 공공의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 P594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믿음은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경우에는 더 이상의 정당한 사유 없이 살인을 하거나 목숨을 바치게 할 수도 있다. 키스 헨슨Keith Henson은 밈에 너무 심취하여 자신의 생존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 대해 ‘미모이드memeoid‘라는 용어를 붙였고, "벨파스트나 베이루트 등지의 저녁 뉴스에 이러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P595

믿음의 힘은 동정, 용서, 관대 등 인간 감정에 대한 모든 호소로부터 사람들을 무디게 만든다. 순교자의 영혼은 곧장 천국으로 향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공포로부터도 무디다. 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가. 종교적 믿음은 전쟁술 연보의 한 장을 장식할 만한 것이며, 활, 군마, 탱크, 수소 폭탄과 한자리에 나란히 설명될수도 있을 것이다. - P595

밈과 유전자는 종종 서로를 보강하지만 때로는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예컨대 독신주의 같은 것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성 곤충과 같이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독신주의를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실패하게 돼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독신주의의 밈은 밈 풀 속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 P374

나는 공적응된 유전자 복합체가 진화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밈의 복합체가 진화한다고 추측한다. 선택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문화적 환경을 이용하는 밈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 문화적 환경은 함께 선택되는 밈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밈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의 속성을 가지게 되며, 여기에 새로운 밈은 쉽게 침입할 수 없다. - P375

문화적 특성의 진화와 그 생존 가치를 문제 삼을 때는 누구의 생존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 P376

어떤 문화적 특성이 단지 그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진화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 P376

일단 유전자가 재빠른 모방 능력을 가진 뇌를 그 생존 기계에게 만들어주면, 밈은 자동적으로 세력을 얻을 것이다. - P376

유전자든 밈이든, 단순한 자기 복제자는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결국에는 이롭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 P377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 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줄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 P378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 P378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 P378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 P378

환원주의자들에게 뇌란 결정된 생물학적 물체로서, 그 특성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행동과, 우리가 행동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생각이나 의도를 만들어 낸다. - P596

유전자는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 모든 행동 양상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반드시 행사한다. - P597

우리, 즉 우리의 뇌는 우리 유전자의 명령에 반항할 수 있을 만큼 유전자로부터 떨어져 있고 독립적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우리가 피임법을 사용하는 것도 작은 반역이다. 우리가 큰 규모의 반역 역시 꾀하지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 P597

만일 ‘마음씨 좋은 놈‘이라는 일상적인 말을 그에 상응하는 다윈주의의 말로 바꾸면, 마음씨 좋은 놈이란 자기를 희생하면서 동종의 다른 구성원을 도와 이들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전해지도록 하는 개체다. 따라서 마음씨 좋은 놈은 그 수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가 가진 좋은 마음씨는 다윈주의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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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Part 1 관계의 언어 중에서 ‘연애의 균열‘ 이라는 제목의 글부터 읽는다. 지난번 포스팅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생각하는 것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데 그 한 문장 한 문장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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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종종 쓰는 말들에 내재된 뜻을 좀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보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사랑이 아픈 이유는 돌아보며 참고할 연애의 데이터가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무 정보 없이 맨 마음으로 부딪히는 인생 단 한 번의 연애, 첫사랑. 만개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피어낼 줄만 알았던 순진한 처음.

보통의 흐름은 이렇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짝사랑의 고통‘, 여명의 빛이 트이는 순간 같은 ‘썸의 시기‘, 마침내 입 맞추는 장면에서 멈춰버린 드라마 같은 ‘연애의 시작‘, 적당히 흥이 나고 적당히 분위기 있는 미디엄템포의 노래를 닮은 ‘안정기‘. 이어서 감각으로 먼저 느껴지는 가을을 닮은 ‘이별의 징조‘, 가장 익숙했던 것들이 가장 슬픈 것들로 바뀌어가는 ‘이별‘. 한때는 상대에게 제일 소중했던 내 감정 혹은 상대의 감정이 거추장스러워져버리는 초라한 한 사람만의 시간.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애는, 두 우주가 만나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우주다.
당연히 완전히 다른 생태계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덜 상처받고 더 사랑받기 위해 죽어버린 지난 우주의 검색창을 뒤적인다. 검색의 행위가 지나치다 싶을 때, 연애는 어김없이 삐걱거린다.

연애에 균열이 생기는 가장 잦은 이유는 의심에서 비롯된다.

의심은 공포스러운 순간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사이렌 같아서, 학습된 것이 없이는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새로운 관계는 기차의 방향처럼 시간을 따라 앞으로 가고 있지만, 우리는 자꾸만 거기에 거꾸로 올라타 지나간 기억을 본다. 앞으로 펼쳐질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놓친 채. 마주 보고 앉아 다른 곳을 바라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이 만든 새로운 우주는 생명력을 잃어간다. 결국 또 한 번의 아픈 기억, 그리고 반복.

나는 ‘사랑은 마주보는 일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더 정확히는, 마주 보며 시작해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감정서랍이 있다. 상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질지라도, 그때 느낀 감정들은 어딘가에 저장이 된다.

감정의 서랍은 냉장고와 달라서 열고 닫을수록 풍성해진다. 비록 나의 경험치가 아닌 일임에도, 진심으로 내 마음속의 서랍을 열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향인‘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것‘들에 민감한 편이라 ‘기 빨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가 끝난 후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거였단 걸. 놀랍게도 그걸 인정하고 나자 많은 게 편해졌다. 괜스레 아는 사람이 겹치면 나오던 험담도 사라졌다.

나는 싫어한다는 감정을 두려움으로 오역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단순했다. 피하고 싶은 마음은 두려워서만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지 않나. 싫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던 것을. 다만 두렵다는 마음이 나를 쓸데없이 움츠러들게 하는 게 문제였다.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기도, 주기도 한다. 모든 걸 무난하게 중화하려는 습관이, 그 당연한 감정에 불필요하게 많은 이유를 주렁주렁 달아줬던 것 같다.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혀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단순히 그 사람이 싫다고 단정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혹시 당신이 예전의 나처럼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당장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반드시 정교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더라고. 그냥 당신에게 해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냥 그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는 거라고.

인상을 찌푸린 얼굴로 또는 격앙된 목소리로 뱉는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은, 잦은 빈도로 누군가를 향한 비난을 내포한다.

"걔는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을 벌거벗기면 결국 그 말은 ‘걔는 잘못됐어‘ 또는 ‘개는 이상한 애야‘라는 의미더란 말이다. 그걸 느끼고 난 후부터 입버릇처럼 이 말을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의 비좁은 경험치나 견해를 고백하는 걸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관점을 의심하면 또 다른 관점으로 어떤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확실히 나의 세계를 확장하거나 견고히 해주었다.

때로는 관용적으로 쓰는 말들은 잘못 쓰인 채로 굳어진 근육 같다. 익숙해져서 더이상 통증이 느껴지지 않지만, 점점 더 악화되어가는 상태∙∙∙. 습관적으로 툭툭 내뱉는 표현을 의심해보면 조금이라도 빨리 바로잡는 게 좋은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쉴 새 없이 자기의 단점을 고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급적이면 좋은 걸 더 많이 보는사람은, 아마도 안에 좋은 게 더 많은 사람일 테다.

인간에게 ‘객관적‘ 시각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의 좋은 면에 투영시켜 좀 더 나은 세상을 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어느 정도의 뒷담화는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벤틸레이션(ventilation: 환기) 역할을 해주거든요. 인간은 누구나 대놓고 말하긴 뭐할 정도의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뒷담화를 하는 데 지나치게 죄책감을 가질 바엔 차라리 시원하게해버리세요."

나는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부정적 감정이 깃든 일에는 어느 정도의 룰이 있으면 좋다는 주의다.

나의 경우 뒷담화를 듣게 될 때 충분히 공감하며 듣되 그 감정을 공유하지는 않겠다는 룰이 있다. 실제로 그 사람에게 불만인 점들은 그의 입장에선 충분히 타당하나 내게는 개인적으로 타격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부적절한 것들에는 중독성이 있으며 중독성이 있는 것들은 습관이 된다는 사실이다. 최대한 멀리 하되, 부득이 이를 하게 된다면 그에 따른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나쁜 것들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굳이 상기하며 마무리짓는 것을 내 뒷담화의 룰로 정의해본다.

즉각적으로 그 모든 데이터가 도식화되지 않는, 그럼에도 드리우는 불길한 기운에 휩싸이는 현상을 우리는 ‘싸하다‘ 고 말한다.

잘못을 한 사람은 석고대죄라도 할 수 있지만, 잘못을 당한 사람은 사과를 받는다 하여도 그 사과가 소화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밖엔 할 수가 없다. 사과는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행위‘이지만, 억울함과 분노는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미안하다‘라는 말은 말꼬리가 길수록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은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심어두는거라는 깨달음을 준 누군가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이며.

악플은 흡사 미세먼지와도 같다. 매우 유해하고, 늘 존재하지만, 딱히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

악플이란 건 잠복균 같은 거지, 즉발성 타격을 주는게 아니란 걸 알았다.

악플은 ‘표현의 자유‘라는 알량한 말로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약해진 순간,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태에 숨통을 조여오기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버리는 마음의 쓰레기 같은 게 악플일 테니까.

아쉬운 건 다정한 사람들은 말수가 적다는 거다.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게 익숙한 사람,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풀어헤치기보다는 품어 버릇하는 사람들. 이는 다정한 이들이 가진 특성이다. 굳이 어딘가에, 나의 마음을 글자로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혹시 악플에 상처받는 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본 적이 있다면, 좀 더 요란스럽게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말들을 써보기를 부탁한다. 그 한마디가 어쩌면 소중한 그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상처 난 곳은 움츠러든다. 생각하건대 어쩐지 마음에 난 상처도 그럴 것 같다.

세상이 물건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가장 무용할, 그러나 사람들로 이루어져있기에 제일 필요한 것. 그게 ‘포장‘이 가진 철학이 아닐까.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소중하다의 ‘소(所)‘는 ‘~하는 바‘, ‘~하는 것‘ 등의 의존명사 역할을 하고 ‘중(重)‘은 말 그대로 무거움을 뜻한다.

귀중하다는 것은 희소성 있고(貴:귀할 귀) 무거운 것, 즉 누가 봐도 그러한 것들에게 붙여지는 말이지만 소중하다는 것은 그와는 확실히 다르다.

소중한 것은 글자가 뜻하는 것처럼 힘을 들여 지켜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종종 말로만 그것을 소중하다 칭한 채,
방치한다.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에 그렇다. 꽃을 보고 드는 반가운 마음은 이것이 곧 시들 것을 알기 때문이고, 청춘을 예찬하는 이유도 쏜살처럼 빨리 사라져버림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과 적응의 동물이기에 이 유한성을 잊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기에, 하루하루는 소중하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같이 이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갈 것이다‘

기억이 가진 슬프고, 동시에 위대한 속성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흐려지고 잊어진다.

‘이별 그 자체보다 슬픈 것은 이별의 흔적조차 흩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종류의 통증은 인간의 간사함을 확인시켜준다. 죽을 만큼 아플 때는 이것만 벗어날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그 통증이 사라질 때쯤이면 아픔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통증은 한 큐에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슴 한편이 아리는 종류의 이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 사랑이 너무나 특별하기 때문이라는 반증이다.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픈 이별로 힘들다면, 그건 상처가 아니라 차라리 별이다. 시간과 중력에서 자유로워 언제나 우리가 올려다본 곳에 떠 있는 별.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을 잊어갈 것이다.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살아간다.

수줍은 부끄러움은 대책 없이 미소가 배시시 흩어지는 거라면, 수치스러운 부끄러움은 놓친 도시락 통에서 반찬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같은 거랄까.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 든다는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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