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본문의 스토리 맥락에서 큰 비중이 있다거나 특별히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우리의 신체 중에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이 사례처럼 생계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라면 그 소중함의 무게가 좀 더 묵직하게 느껴질 듯하다.

대개의 기타리스트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다치게 되면 존재 이유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 P25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나에 대한 단순한 기억에 지나지 않아." - P26

"산은 그것을 보는 각도, 계절, 시각 또는 보는 사람의 기분 하나에도 그 모습을 싹 바꾸어버리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산의 일부분, 아주 하찮은 일부분만 파악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30

나는 성교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그것은 뭔가 한정된 형태의 가능성을 연상케 한다. - P33

"자네는 사념思念만이 존재하고 표현이 뿌리째 뽑힌 상태를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양 박사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지옥이지. 사념만이 소용돌이치는 지옥이야. 한 줄기의 빛도 없고 한 움큼의 물도 없는 땅속의 지옥이지. 그리고 그것이 지난 42년간의 내 생활이었네." - P60

"양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대체 어떤 느낌이죠?"
"특별한 건 없네. 그저 양이 있다고 느끼는 것뿐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느끼는 거야. 양이 내 속에 있다고 말이야. 아주 자연스런 느낌이지." - P62

"양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중국 북부, 몽고 지역에서는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라네. 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양이 체내에 들어온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라고 여겨지고 있지. 예를 들어서 원元나라 시대에 출판된 어떤 책에는 칭기즈칸의 체내에는 ‘별을 짊어진 백양‘이 들어가있었다고 쓰여 있지." - P63

"사람의 체내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은 죽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있다네. 그리고 양을 체내에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죽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나 양이 달아나버리면, 그 불사성不死性도 상실되는 거지. 모든 것은 양에 달린 거네. 양은 마음에 들면 몇십 년이라도 같은 데에 있고, 마땅찮으면 홱 나가버리지. 양이 달아나버린 사람들은 보통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고 불리는데, 즉 나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거네." - P63

"나는 양이 내 몸속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줄곧 양에 관한 민속학이라든가 전승을 연구하기 시작했네.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오래된 책을 뒤져보기도 했지. 그러던 중 사람들 사이에 내 속에 양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것이 내 상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네. 내 상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나는 ‘정신착란‘이라는 딱지가 붙여져 본국으로 소환되었어. 이른바 식민지병이라는 거지." - P63

"근대 일본의 본질을 이루는 어리석음은, 우리가 아시아의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거네. 양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지. 일본에서의 면양 사육이 실패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양모 식육의 자급자족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되었기 때문이고, 생활에서의 사상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던 거네. 시간을 따로 떼어 결론만을 효율적으로 훔쳐내려고 한 거야. 모든 일이 그래. 다시 말해서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은 거지. 전쟁에 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 P64

"양의 목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모르지"라고 양 박사는 내뱉듯이 말했다. "그걸 알 수 없다네. 양은 내게는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았거든. 하지만 놈에게는 뭔가 거대한 목적이 있었지. 그것만은 나도 알 수 있었어. 인간과 인간의 세계를 변화시킬 만한 거대한 계획 말이야." - P64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이미 양의 자취는 없었어. 그제야 비로소 나는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네. 한마디로 지옥이야. 양은 사념만을 남겨두고 간거야. 그러나 양 없이는 그 사념을 방출할 수 없어. 그것이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는 거지." - P65

나는 양 박사를 떠난 뒤의 양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양이 옥중의 우익 청년의 체내에 들어갔다는 것. 그는 출옥하여 곧 우익의 거물이 되었고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 정보망과 재산을 쌓아 올렸다는 것. 전쟁 후 A급 전범이 되었으나, 중국 대륙에서의 정보망과 교환한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는 것. 대륙에서 가지고 돌아온 재산을 밑천으로 전후의 정치·경제·정보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장악했다는 것 등등. - P66

"‘양이 빠져나간 사람‘에게 있어서 어설픈 의식 따위는 차라리 없는 게 편하다네." - P66

"그 인물의 경우도 나와 마찬가지야. 이용가치가 없어진 거지.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고, 양은 한계에 이른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어. 아마 그는 양이 진짜로 원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겠지. 그의 역할은 거대한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고, 그 역할이 끝나자 버림받은 거지. 마치 양이 나를 수송 수단으로 이용했듯이 말일세." - P67

"나는 그 양에는 더 이상 말려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내가 그 좋은 예지. 그 양에 말려들어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왜냐하면 양의 존재 앞에서는 일개 인간의 가치관 따위는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네. 그러나 어쨌든 자네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 - P71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거야." - P73

"나도 가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도대체 무얼 찾으면 되는 것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르는 겁니다. 저의 아버지는 줄곧 무엇인가를 찾으시던 어른이랍니다. 지금도 찾고 계시죠. 저도 어려서부터 계속 아버지의 꿈에 나타났던 흰 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지요. 그래서인지 인생이란 그런 것이구나, 라고 믿어버리게 된겁니다.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것이 진짜 인생이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 P74

"양 박사의 역할은 끝났어. 그 뒤의 양의 행적은 우리가 찾아야만 한다고." - P75

아이누 :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 열도 등지에 분포하는 소수민족. - P80

이시카리가와 : 홋카이도에 있는, 일본의 3대 강 중의 하나. - P80

사일로 : 곡식 · 마초 등을 저장하는 탑 모양의 건축물. - P93

현재가 현재이기를 포기해버린다면 역사는 역사가 아닌 게 되어버린다. - P95

역사는 조금씩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었다. - P100

사람들은 모두 무관심과 권태라는 굵은 고삐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 P103

"걱정 마, 아무리 형편없는 마을에도 여관은 반드시 있는 법이거든." - P108

"16세기의 스페인에서는 양을 몰 때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온 나라에 있어서 임금님도 거기는 들어가지 못했다는군." - P120

"어쨌든 양은 겁만 먹지 않으면 온순한 동물이어서 개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니까." - P120

"댁은 자신의 인생을 따분하다고 생각하나?"
"모르겠어요."
"양도 비슷하겠지"라고 관리인은 말했다.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해봤자 알 턱도 없을 테니까. 마른풀을 먹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가벼운 싸움도 하고, 배 속의 새끼 생각도 하면서 겨울을 나는 거지." - P133

"양들도 싸움을 하나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잘 싸우지"라고 관리인은 말했다. "무리 지어서 행동하는 동물은 모두 그렇지만, 양의 사회에서도 양마다 확실한 서열이 정해져 있어. 한 울타리 속에 50마리의 양이 있으면 서열1위부터 50위까지 있지. 그리고 모든 양이 자신의 위치를 똑바로 인식하고 있어."
"대단하네요"라고 하는 그녀.
"그래서 관리하기가 쉬운 거야. 제일 높은 서열의 양을 끌고가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니까." - P135

"어떤 양이 다쳐서 힘을 못 쓰게 되거나 하면 서열이 불안정해지거든. 그러면 그 아래의 양이 위로 올라오려고 도전하지. 그렇게 되면 사흘가량은 우당탕거리며 소란을 피워대는거야." - P135

"그런데 제일 불쌍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씨받이 수컷이지. 양의 하렘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들어본 적 없다, 라고 우리는 말했다.
"양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교미의 관리야. 그러니까 암컷은 암컷끼리, 수컷은 수컷끼리 격리시킨 다음 암컷 우리 속에 수컷을 한 마리만 넣어주는 거야. 대개 제일 강한 서열 1위의 수컷이지. 다시 말해서 가장 좋은 씨를 받는 거야.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면 씨받이 수컷은 원래의 수컷 우리로 되돌아 오는데, 그동안 우리에서는 새로운 서열이 정해지게 되지. 씨받이 수컷은 교미를 한 덕분에 체중이 절반이나 준 형편이니까 어떤 놈과 싸워도 승산은 제로야. 그런데도 다른 모든 양과 차례로 한 번씩은 싸워야 하니 참담한 거지." - P136

"양은 어떤 식으로 싸우나요?"
"머리로 박치기를 해. 양의 머리는 무쇠처럼 단단하고 속이텅 비어 있어." - P136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확실히 낡게 마련인가 보다. - P150

음악은 사상만큼 기억 속에서 퇴색하지 않는다. - P158

주위의 모든 사물을 흐르는 대로 맡겨두는 수밖에 없었다. - P163

어딘가에서 초점이 어긋나 진짜 나는 현실의 내가 아니게 되고 만 것이다. - P166

그녀가 없어 쓸쓸했지만, 쓸쓸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구원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쓸쓸함이라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작은 새들이 날아가버린 뒤의 고요한 모밀잣밤나무 같았다. - P168

여기서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지 않으면 시간에 대한 정상적인 감각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 P169

아무리 생각해본들 이치에 닿지 않는 상황에서 이치에 닿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72

두 지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기묘한 일이었다. 멀리 떨어진 대지 위에서 사람들이 지금도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나를 배제한 채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가장 기묘했다. - P173

"가끔 말이지, 그, 양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부딪쳐서 그렇게 된다고. 뭐 나쁜 뜻이 있었던 건 아니야. 게다가 당신도 나를 책망하는 듯한 말을 해서." - P182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양 사나이는 동물과 똑같다. 이쪽이 가까이 가면 물러서고, 이쪽이 물러서면 다가온다. 계속 여기에 있을 거라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캐내면 되는 것이다. - P184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면 특별히 알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걱정거리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 P194

요컨대 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나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다. - P196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207

혼란이 가라앉자 이번에는 울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기괴하고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쥐는 뭔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검은 옷의 남자도 뭔가를 알고 있다. 나만 아무것도 모른 채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은 모두가 어긋나 있고, 내 모든 행동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물론 내 인생은 항상 그런 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누구도 책망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이런 식으로 나를 이용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용하고, 짜내고, 때려눕힌 것은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정말 마지막 한 방울이었던 것이다. - P208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고 지금 당장에라도 산을 내려가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가장 간단한 일은 소리 내어 울어버리는 것이었지만 울 수도 없었다. 훨씬 뒤에 내가 정말로 울어야 할 뭔가가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 P209

모든 것이 나와는 관계없이 전개되고 있다. 나의 존재와는 관계없이ㅡ누구의 존재와도 관계없이ㅡ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다. 눈은 내리고 다시 눈은 녹는다. - P212

"나에게도 화를 낼 권리는 있어"라고 나는 말했다. 나 자신을 향해 한 말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화를 낼 권리는 있다. - P2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