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너무나도 당연하면서도 또 너무나도 중요한 말이다. 독자들에게 작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줌과 동시에 분야를 막론하고 어떤 직업이든 간에 그 직업에 걸맞는 본질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책무는 조금이라도 질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 P80

내가 여기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격‘이라는 점입니다. 상은 어디까지나 그 자격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작가가 행해온 작업의 성과도 아니고 보상도 아닙니다. 하물며 결론 같은 것도 아니에요. 어떤 상이 그 자격을 어떤 형태로든 보강해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 작가에게는 ‘좋은 상‘이라는 얘기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혹은 도리어 방해물이 되고 성가심의 원인이 된다면, 그것은 유감스럽지만 ‘좋은 상‘이라고 할 수 없다, 라는 얘기입니다. - P84

문학상의 가치는 사람 사람마다 각각 달라집니다. 거기에는 개인의 입장이 있고 개인의 사정이 있고 개인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한 묶음으로 취급해 논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문학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도 단지 그것뿐입니다. 일률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일률적으로 논하지 않았으면 한다. - P84

(오리지널한) 창조성에는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강고한 아이덴티티와 개인적인 스타일이 있어서 그것이 재능에 반영되고 녹아들어 개인적인 몸과 형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성이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 기존의 견해를 타파하고 상상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날갯짓하면서 마음속으로 완전한 세계를 수없이 다시 만들고, 나아가 그것을 항상 비판적인 내적 시선으로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
_뇌신경외과 의사 올리버 색스,《화성의 인류학자》 - P88

오리지낼리티는 많은 경우, 허용과 익숙해짐에 의해 당초의 충격력을 상실하는데 그 대신 그런 작품은ㅡ만일 내용이 뛰어나고 행운이 따라준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ㅡ‘고전‘(혹은 ‘준華고전)으로 격상됩니다. 그리고 널리 사람들의 경의를 받습니다. - P91

체감은 하나의 중요한 ‘참조 사항reference‘으로서 사람들의 정신에 편입됩니다. 즉 음악을 애호하는 사람들의 기초적인 자양분이 되고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 P91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하고, 특히 기성의 표현 형태에 푹 잠겨 그 속에서 지반을 구축해온 기성 권력establishment에게는 타기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다져둔 지반을 그것이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95

오리지낼리티는 그것이 실제로 살아 움직일 때는 좀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 P97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form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P98

요컨대 한 사람의 표현자가 됐든 그 작품이 됐든 그것이 오리지널인가 아닌가는 ‘시간의 검증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시기에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표현자가 불쑥 튀어나와 세간의 강한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만일 그/그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면, 혹은 싫증이 나버렸다면, 그/그녀는 ‘오리지널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단순히 ‘한 방‘으로 끝나버립니다. - P99

스타일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실제 사례를 남기지 않고서는 ‘검증 대상에 오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여러 개의 샘플을 펼쳐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지 않고서는 그 표현자의 오리지리티가 입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P99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무엇이 오리지널이 아닌가, 그 판단은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독자와 ‘합당한 만큼 경과한 시간‘의 공동 작업에 일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 P100

단지 나에게 한 가지 구원이라고 할까, 적어도 구원의 가능성이 된 것은 내 작품이 많은 문예비평가로부터 미움을 받고 비판을 받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고명한 평론가에게서는 ‘결혼사기‘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아마 ‘내용도 없는 주제에 독자에게 얼렁뚱땅 사기를 친다‘는 것이겠지요. 소설가의 일에는 많든 적든 마술사illusionist 같은 부분이 있으니까 ‘사기꾼‘이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역설적인 상찬인지도 모릅니다. - P101

나는 누군가에게서 비판을 받을 때마다 되도록 긍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뜨뜻미지근한 흔한 반발밖에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보다는 설령 네거티브라고 해도 분명한 반응을 이끌어내는게 더 좋을 것이다, 라고. - P103

‘원천源泉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
_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 P103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정점定點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P105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P105

우선 필요 없는 콘텐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정보 계통을 깨끗하게 해두면 머릿속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것입니다. - P106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106

머릿속에서 ‘없어도 되는‘ 콘텐츠를 모조리 치워버리고 사안을 ‘뺄셈‘적으로 단순화하고 간략화하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만큼, 말로 하는 만큼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닐 수 있습니다. 나는 ‘소설을 쓴다‘는 것에 처음부터 그다지 깊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무욕無慾이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할까, 거꾸로 그게 쉽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 P108

나는 그 이른바 ‘숭숭 뚫린‘ 바람 잘 통하는 심플한 문체에서부터 시작해 시간을 들여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조금씩 내 나름의 살을 붙여나갔습니다. 구성을 좀 더 입체적 중층적으로 만들고 골격을 조금씩 키워 좀 더 범위가 넓고 복잡한 이야기를 채워 넣을 태세를 정비했습니다. 그에 따라 소설의 규모도 점차 커져갔습니다. - P108

진행의 과정 자체는 의도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뒤돌아보고 ‘아, 결국 그런 흐름이었구나‘라고 깨달은 것이지 처음부터 정확히 계획했던 것은 아닙니다. - P108

만일 내가 쓰는 소설에 오리지낼리티라는 게 있다면 그건 ‘자유로움‘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108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 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 P109

순수한 내적 충동이란 그 자체의 형식이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습득해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P109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 P110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ㅡ혹은 자기 자신까지도ㅡ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 P110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 P110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P111

번역은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작업이라서 표현 의욕과는 관계없이 거의 일상적으로 할 수 있고 동시에 글쓰기에 아주 좋은 공부가 됩니다. - P111

‘소설 안 쓴다고 죽을 것도 아닌데, 뭘‘ - P111

한참 소설을 안 쓰다 보면 ‘이제 슬슬 써도 될 것 같은데‘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눈 녹은 물이 댐에 고이듯이 표현해야 할 재료들이 안에 축적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날, 참을 수 없어서(라는 게 아마도 가장 좋은 경우) 책상 앞에 앉아 새 소설을 시작합니다. - P112

They produced a sound that was fresh, energetic and unmistakably their own.
(그들이 창조해낸 사운드는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들 자신의 것이었다.)
아주 심플한 표현이지만 이것이 오리지낼리티의 정의로서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113

오늘이라는 날 속에 또 다른 새로운 날이 생겨난 것 같은, 그런 상쾌한 기분 - P114

이론 따위는 빼고, 그냥 단순하게. - P114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 P118

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 P118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이라는 게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졌는지, 그것을 기본부터 체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118

특히 젊은 시절에는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소설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체력입니다. 아직 눈이 건강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동안에 이 작업을 똑똑히 해둡니다. 실제로 문장을 써보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순위로 보자면 그건 좀 나중에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 P119

그다음에 할 일은ㅡ아마 실제로 내 손으로 글을 써보는 것보다 먼저ㅡ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事象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어찌 됐건 찬찬히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을 굴려본다. 하지만 ‘생각을 굴려본다‘라고 해도, 그 일의 시시비비나 가치에 대해 조급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결론 같은 건 최대한 유보해서 뒤로 미루도록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 일의 원래 모습을 소재=material로서 최대한 현상現狀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는 것입니다. - P120

주변 인물들이나 어떤 일에 대해 사사삭 콤팩트하게 분석해서 ‘그건 이런 거야‘ ‘저건 이러저러해‘ ‘걔는 이러이러한 녀석이야‘라는 식으로 단시간에 명확한 결론을 내놓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내 의견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인데) 소설가로는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평론가나 저널리스트가 더 적합하겠지요. 혹은 (어떤 종류의) 학자가 적합합니다. - P120

소설가로 적합한 사람은 이를테면 ‘이건 이렇다‘라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내려지더라도, 혹은 자칫 내려질 것 같더라도, ‘아니, 잠깐,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어‘라고 멈춰서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일이란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나중에 뭔가 새로운 요소가 불쑥 튀어나오면 얘기가 백팔십도 달라질지도 모르잖아‘라는 식으로. - P120

내가 목격한 광경을, 만난 사람들을, 혹은 경험한 사상事象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례‘로서, 말하자면 표본으로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기억에 담아두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에 대해 나중에 좀 더 마음이 침착해졌을 때,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다양한 방향에서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검증하고 필요에 따라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P121

어떻든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할일은 재빠른 결론을 추출하는 게 아니라 재료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축적해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원재료를 많이 저장해둘 ‘여지‘를 자기 자신 속에 마련해둘 일입니다. - P122

우리의 기억 용량에는 한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최소한의 프로세스=정보처리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 P123

많은 경우, 내가 기꺼이 기억 속에 담아두는 것은 어떤 사실의(어떤 인물의, 어떤 사상事象의) 흥미로운 몇 가지 세부입니다. 전체를 통째로, 그대로 기억하기는 어려우니까(라고 할까, 기억해봤자 분명 금세 잊어버릴 테니까) 그곳에 있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디테일을 몇 가지 추출해서 그것을 다시 떠올리기 쉬운 형태로 머릿속에 보관해두도록 합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최소한의 프로세스‘입니다. - P123

그것은 어떠한 세부인가. ‘어라?‘ 하는 생각이 드는, 구체적이고도 흥미로운 세부입니다. 가능하면 잘 설명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론에 맞지 않거나 줄거리가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거나 미스터리하다면 두말할 것 없이 좋습니다. 그런 것들을 채집해서 간단한 라벨(날짜, 장소, 상황)같은 걸 딱 붙여 머릿속에 보관해둡니다. 말하자면 그곳에 있는 개인 캐비닛의 서랍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 P123

물론 전용 노트를 만들어 거기에 써두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보다는 머릿속에 담아두는 쪽을 좋아합니다. 노트를 항상 들고 다니기도 번거롭고, 일단 문자로 적어두면 그걸로 안심하고 싹 잊어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 다양한 것을 그대로 척척 넣어두면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남을 것은 남습니다. 나는 그런 기억의 자연도태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 P124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번 머릿속에 들어가면 그리 쉽게는 잊히지 않는 법입니다. - P124

소설을 쓸 때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런 구체적인 세부의 풍부한 컬렉션입니다. ...(중략)... 뇌 내 캐비닛에 보관해둔 온갖 정리 안 된 디테일을 필요에 따라 소설 속에 그대로 조립해 넣으면, 거기에 나타난 스토리는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내추럴하고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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