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전문이 아닌 쪽에 손을 대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단 달가운 얼굴은 하지 않습니다. 백혈구가 체내의 이물질을 배제하려고 하듯이 접근을 거부하려고 듭니다. 그래도 위축되지 않고 끈질기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차츰 ‘에이, 어쩔 수 없지‘라는 식으로 묵인하고 동석을 허락해주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처음에는 상당히 반발이 심합니다. ‘그 분야가 좁을수록, 전문적일수록, 그리고 권위적일수록, 사람들의 자부심이나 배타성도 강하고 거기서 날아오는 저항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 P13
소설이라는 건 누가 뭐라고 하든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폭넓음이야말로 소설이가진 소박하고도 위대한 에너지의 원천의 중요한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 P16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않습니다. - P16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 P16
아무리 널찍하다고 해도 그 링에는 아마 적정 인원이라는 게 있는 것이겠지요. - P18
너무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 혹은 특출하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나는 항상 생각합니다. 소설을 쓴다는ㅡ혹은 스토리를 풀어간다는ㅡ것은 상당히 저속의 기어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실감으로 말하자면, 걷는 것보다는 약간 빠를지도 모르지만 자전거로 가는 것보다는 느리다, 라는 정도의 속도입니다. 의식의 기본적인 작동이 그런 느린 속도에 적합한 사람도 있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 P20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置換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 P20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무튼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입니다. 이건 ‘이를테면‘을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입니다. - P23
하나의 개인적인 테마가 있다고 합시다. 소설가는 그것을 다른 문맥으로 치환합니다. ‘그건요, 이를테면 이러저러한 것이에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치환paraphrase 속에 불명료한 점,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그것에 대해 ‘그건요. 이를테면 이러저러한 것이에요‘라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한 ‘그건요, 이를테면 이러저러한 것이에요‘가 끝도 없이 줄줄 이어집니다. 한없는 패러프레이즈의 연쇄지요. 꺼내도 꺼내도 안에서 좀 더 작은 인형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 같은 것입니다. 이토록 효율성이 떨어지는, 멀리 에둘러 가는 작업은 이것 말고는 달리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듭니다. 맨 처음의 테마를 그대로 척척 명확히, 지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다면 ‘이를테면‘이라는 치환 작업은 전혀 필요없으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 P23
효율성 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중층적으로 성립합니다. 그중 어느 쪽이 빠져도(혹은 압도적인 열세여도) 세계는 필시 일그러진 것이 되고 맙니다. - P24
천재에게는 천재의 속도가 있고 지식인에게는 지식인의 속도가 있고 학자에게는 학자의 속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속도는 대부분의 경우, 긴 스팬을 두고 보면 소설 집필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 P27
물론 직업적인 소설가 중에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뇌 명석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세간에서 말하는 두뇌의 명석함뿐만 아니라 소설적으로도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본 바로는 그런 두뇌의 명석함만으로 일할 수 있는 햇수는ㅡ알기 쉽게 ‘소설가로서의 유통기한‘이라고 말해도 무방하겠지요ㅡ기껏해야 십 년 정도입니다. 그 기한을 넘어서면 두뇌의 명석함을 대신할 만한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합니다. 말을 바꾸면, 어느 시점에 ‘날카로운 면도날‘을 ‘잘 갈린 손도끼‘로 전환하는 게 요구됩니다. 그리고 좀 더 지나면 ‘잘 갈린 손도끼‘를 ‘잘 갈린 도끼‘로 전환하는 게 요구됩니다. 그 같은 몇 가지 전환 포인트를 제대로 뛰어넘은 사람은 작가로서 한 단계 거물급이 되고, 아마도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을 것입니다. 뛰어넘지 못한 사람은 많든 적든 도중에 자취를 감추게ㅡ혹은 존재감이 희미해지게ㅡ됩니다. 혹은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 원래 안착했어야 할 곳에 쓱 자리를 잡게 됩니다. - P28
소설가에게는 ‘원래 안착했어야 할 곳에 쓱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게 해주신다면 ‘창조력이 감퇴한다‘ 는 것과 거의 동일한 의미입니다. - P28
소설가는 어떤 종류의 물고기와 같습니다. 물속에서 항상 저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서는 죽고 마는 것입니다. - P28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충동drive. 장기간에 걸친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 이건 소설가라는 직업인의 자질이자 자격이라고 딱 잘라 말해버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 P28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분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단 한 가지, 실제로 물에 뛰어들어 과연 떠오르는지 가라앉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난폭한 말이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생겨먹은 모양이에요. - P29
인생 설계란 웬만해서는 예정대로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 P34
(내 인생에는 왜 그런지 이따금 이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 P36
아무리 거기에 올바른 슬로건이 있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도 그 올바름이나 아름다움을 뒷받침해줄 만한 영혼의 힘, 모럴의 힘이 없다면 모든 것은 공허한 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 P40
말에는 확실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올바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공정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말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제멋대로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 P41
필시 보통 사람의 이십 대는 좀 더 즐거웠을 거라고 상상이 되는데, 나에게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청춘의 나날을 즐길‘ 여유 같은 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책을 읽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나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 P43
‘그렇구나, 인생이란 이런 식으로 술술 지나가는 것이구나‘ - P44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 P45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顯現‘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쏙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 P46
‘어차피 멋진 소설은 쓸 수 없어. 그렇다면,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기성관념은 버리고 느낀 것,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써보면 되지 않을까‘ - P48
아무튼 뭐든 좋으니 ‘평범하지 않은 것‘을 해보자, - P49
설령 언어나 표현의 수가 한정적이어도 그걸 효과적으로 조합해내면 그 콤비네이션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감정 표현, 의사 표현은 제법 멋지게 나온다 - P50
‘괜히 어려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 P50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 - P50
짧은 문장을 조합하는 리듬감, 번거롭게 배배 꼬지 않는 솔직한 말투, 자신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적확한 묘사. 그러면서도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일부러 쓰지 않고 깊숙이 감춰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 - P51
언어란 원래 터프한 것입니다. 기나긴 역사가 뒷받침해주는 강인한 힘을 가진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거칠게 다루든 그 자율성이 손상되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 P52
언어가 가진 가능성을 생각나는 한 모든 방법으로 시험해보는 것은, 그 유효성의 폭을 가능한 한 넓혀가는 것은, 모든 작가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리입니다. 그런 모험심 없이는 새로운 것은 탄생하지 않습니다. - P52
내가 이 작품(『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완성도에 결코 만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완성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미숙하고 결점이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의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밖에는 안 나왔다, 라고. 하지만 첫 소설을 어떻게든 일단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모양새로 끝까지 써내면서 나는 하나의 ‘중요한 이동‘을 이루어냈다는 실감을 얻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때의 에피퍼니의 감각에 어느 정도 내 나름대로 응할 수 있었다, 라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P53
소설을 쓸 때 ‘문장을 쓴다‘기보다 오히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 있습니다. 나는 그 감각을 지금도 소중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컨대 머리로 문장을 쓴다기보다 오히려 체감으로 문장을 쓴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리듬을 확보하고 멋진 화음을 찾아내고 즉흥연주의 힘을 믿는 것. - P54
인생이란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것입니다. - P55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 P57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 (감사하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苦役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57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 (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나에게는 그런 ‘자격‘이 누구에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어진 것입니다. 나로서는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그저 솔직히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자격을ㅡ마치 상처 입은 비둘기를 지켜주듯이ㅡ소중히 지켜나가면서 지금도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을 일단 기뻐하고 싶습니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 - P58
입장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얘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눈앞의 문이 열리는 것이니까요. - P65
아직 내가 본래 가진 힘의 이삼십 퍼센트밖에 쓰지 못했구나 - P65
시간을 들이면 이보다 좀 더 좋은 것을 쓸 수 있다ㅡ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 P66
(상이라는 건 많든 적든 격려라고 할까 축하의 뜻 같은 것이 있어서 그 폭을 넓히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니까) - P71
시비를 걸자면 얼마든지 걸 수 있어요.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하자면 얼마든지 감사하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 P71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라는 것이겠지요. 그 하나는, 자신이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고, 또 하나는 그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독자가ㅡ그 수의 많고 적음은 제쳐두고ㅡ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실감입니다. 그 두 가지 확실한 실감만 있다면 작가에게 상이라는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런 건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혹은 문단적인 형식상의 추인追認에 지나지 않습니다. - P73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많은 경우, 구체적인 형태에 의한 게 아니면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진실입니다. 문학작품의 질은 어디까지나 무형의 것이지만, 상이든 메달이든 그런 것이 주어지면 거기에 구체적인 형태가 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형태‘에 눈길을 던질 수 있습니다. - P73
한 편의 작품이 진실로 뛰어나다면 합당한 시간의 시련을 거쳐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 작품을 기억에 담아둡니다. - P74
문학상은 특정한 작품을 각광받게 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지는 못합니다. - P75
책을 읽는 습관이 일단 몸에 배면ㅡ그런 습관은 많은 경우 젊은 시절에 몸에 배는 것인데ㅡ그리 쉽사리 독서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 P76
매체나 형식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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