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에는 상업도 물론 발달했지만 종교(기독교)의 영향력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여전히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듯하다. 상거래를 보다 효과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하기 위한 복식부기 회계가 등장하기 전까지 종교를 가지고 있던 상인들은 신에 대한 자신의 도덕적 부채를 별도로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도덕적 부채를 갚는 것을 속죄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나온다.

회계가 단순히 상거래를 기록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개개인이 신 앞에서 거짓없이 솔직해지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나름대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물질적 이득을 추구하는 상거래와 종교적인 신앙이 서로 양립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나의 막연한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 때문인듯하다.

근데 또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나의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이 다소 올드(Old)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종교인 또는 성직자들도 엄밀히 말하면 사람인데 솔직히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교회의 목사든 절의 승려든 성당의 신부든 혹은 뭐 여타 다른 종교 또는 심지어 사이비 종교 교주들에 이르기까지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헌금 많이 하는 성도나 신도를 보면 해당 종교의 종교인들도 그 사람을 보는 눈빛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여기서 추가로 더 얘기하다가는 얘기가 산으로 자꾸 갈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복식부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회계는 도덕적 계산을 기록하는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영적 삶의 본질이었다. - P56

종교는 계약을 토대로 한다. 인간은 신에게 조공을 해야 하며, 그것을 잊거나 게을리하면 심판의 순간에 벌을 받을 것이다. 이 심판에서 주어지는 상은 이익이 아니라 이승에서의 삶과 영혼의 영생이다. - P56

율법과 그것을 담은 복잡한 법전은 도덕적 계산의 모델이었다. 신봉자들은 도덕적·영적 계산을 통해 하느님이 자신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파악해야 했다. 탈무드 율법에는 모든 행동에 상응하는 도덕적 부채가 있다. - P57

그러나 유대교도와 기독교도가 장부 기록에 힘써야 하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정리할 수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이 그들을 위해 장부를 기록하고 있으니 무의미한 일일까? 생명의 책에는 의인의 이름을, 죽음의 책에는 하느님의 적들을 기록하는 건 결국 하느님이 아니시던가.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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