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동안 손놓고 있었는데, 때마침 우연한 계기가 되어 약 1년여만에 다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어느 특정 분야에 국한된 체계적인 공부가 중시되었다면 현재는 다양한 분야들을 골고루 접목하면서 배우는 네트워크적인 공부가 각광받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네트워크적인 공부를 ‘창조적 공부‘라는 용어로 지칭하는데, 이는 최근 AI의 급속한 발달과도 일정부분 일맥상통한다.

1년 전 포스팅에서 저자는 이 책을 자신의 무의식이 이끄는대로 물흐르듯 썼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반드시 체계적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관심사와 흥미에 입각하여 어떤 것을 공부해나갈 때 이 책의 제목처럼 ‘창조적 시선‘이 발현되고 그에 따르는 창조적인 생각들과 행위들이 생겨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본문을 읽으면서 저자가 그간 얽매여있던 제도권 교육체계의 틀에서 벗어나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지식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자인 나도 저자의 무의식 속으로 함께 들어가서 저자의 창의적인 생각들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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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쭉 읽다가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리추얼이라는 것에 대해 나오는데, 독자인 나는 이 리추얼의 대표적인 사례로 문득 세월호 추모식이 생각났다. 워낙 전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던 사건이기도 하고 이 사건의 유족들이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가족들을 해마다 추모하며 그 당시를 회상하며 다시는 그와같은 불의의 사고가 이 땅에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 등을 보면서, 오늘 본문에 나온 리추얼의 진정한 의미를 좀 더 심도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와같은 리추얼 행사를 통해 유가족들의 불안과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본문에 나오는데, 리추얼이라는 것이 단순히 형식적인 의식의 차원을 뛰어넘어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또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창조적 공부는 스스로의 ‘메타언어‘를 창조할 때 가능하다.  - P22

바우하우스 공부를 통해 얻어낸 내 최종 메타언어는 ‘감각의 교차편집‘이다. 근대가 끊임없는 분류의 과정이었다면 새로운 세계는 근대에서 만들어진 ‘편집의 단위‘를 또 다른 맥락에서 재편집할 때 가능해진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제시하고 바우하우스에서 구체화되는 ‘종합예술‘이 바로 그 시작이다. 나는 바우하우스에서 실험된 ‘종합예술‘에서 ‘감각의 교차편집‘이라는 내 나름의 메타언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감각의 교차편집‘ 개념은 AI로 야기된 오늘날의 지식 혁명을 설명하는 데도 매우 통찰적이다. - P23

신뢰받는 것은 참 모순적 감정이다. 부담스러움과 행복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 P24

괴테와 실러의 도시, 그리고 인류 최초의 창조 학교라 할 수 있는 바우하우스가 있었던 바이마르 - P34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곡 - P35

「세네치오」는 파울 클레가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의 선생으로 초빙된 바로 그 이듬해인 1922년에 그린 그림이다. ‘세네치오‘는 식물 이름이다. 클레는 이 그림의 부제를 발트그라이스 Baldgreis‘라고 붙였다. ‘곧 늙는다‘는 뜻이다. ‘세네치오‘의 독일어 이름이 Gewöhnliches Greiskraut (평범한 늙은 풀)‘인 것에서 착안한 클레 특유의 말장난이다. 클레 자신의 ‘광대풍 자화상‘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 P37

클레는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더불어 추상회화의 개척자로 여겨진다. - P37

바우하우스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 - P37

바우하우스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불과 14년 유지됐던 독일의 작은 ‘예술학교‘다. 그것도 정치적·경제적 혼란으로 바이마르, 데사우, 베를린 세 도시를 전전하며 겨우 유지됐던 작은 학교다. - P38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10번》의 1악장만을 겨우 완성하고 1911년 심장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1악장 이외에는 대략의 스케치만 남겨놓고 말러가 사망한 까닭에 말러의 《교향곡 10번》은 여러 사람에 의한 완성본이 존재한다. - P38

독일이 통일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동독 지역의 구석구석에는 사회주의의 엉성한 흔적이 지금도 여전하다. 심리적·문화적 차원의 진정한 통일은 분단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완전히 은퇴해야 진정한 통일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1945년에 분단되어 1990년에 통일했으니 독일의 분단 기간은 45년이다. 그러니까 2035년이 되어야 비로소 독일의 통일이 완성된다. - P39

내게는 바이마르 시절의 바우하우스가 가장 중요하다. 유럽의 모든 아방가르드 예술가가 몰려들어 예술과 기술의 통합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논의했기 때문이다. 데사우 바우하우스는 그러한 혼란스러운 논의가 일단락된 후 ‘기능주의‘ 신념이 본격적으로 구현된 학교다. 베를린 바우하우스는 나치에 쫓겨 다니며 어떻게든 폐교만은 면하려고 했던 시기의 학교다. - P39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 P42

통일되기 전, 서베를린의 중심은 카이저빌헬름기념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쿠담 지역이었다. - P43

2019년 바우하우스는 설립 100주년이 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독일 정부는 5,600만 유로를 투입하여 바이마르, 데사우 바우하우스 관련 건물들을 새롭게 개관했다. 나치 독일, 그리고 동독 사회주의에 묻혀 있던 독일의 문화적 자존심을 새롭게 기억하려는 시도다. 2023년 현재,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는 여전히 보수 중이다. - P44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은 ‘창조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일까? 이 같은 궁금증이 생기면 나는 바로 ‘구글 엔그램 뷰어 Google Ngram Viewer‘에 들어가 검색한다. 아뿔싸, 검색 결과는 놀라웠다. creativity는 불과 100년도 안 된 단어였다. 단어의 사용 빈도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잘 살펴보면 creativity는 192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80년 이후에나 비로소 꽃을 피운 단어였다. - P46

어떤 대상에 관해 알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대상, 그 언어가 도대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의 문화적·사회적 맥락, 즉 구성사적 맥락을 읽어야 그 뜻이 정확해진다. - P46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언젠가 만들어진 것이다. - P46

 어떤 대상을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과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내가 현재의 그대상을 바꿀 수 있다. 아예 새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면 내가 개입할 영역이 전혀 없다. 그저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구성사적 관점, 즉 역사적 관점이 중요한 것이다. - P47

‘지식의 종속‘이란 바로 이 지식의 구성사적 맥락에 무지할 때 생긴다. 대부분의 학문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구성된 것이다. 특히 ‘심리학‘이나 ‘사회학‘ 같은 근대 학문은 구성사적 맥락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국 사회에 쓸모 있는 지식이 된다. - P47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창조‘는 불가능해진다. ‘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관한 질문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 P48

어느 날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은 없다! 에디톨로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은 과거 어느 한때의 ‘편집물‘이다. 존재하는 것들의 편집 과정과 그 맥락의 이해를 전제로 하는 에디톨로지에서 ‘창조‘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만들어진 것, 즉 편집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편집의 방식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사람에게만 창조의 기회는 주어진다. - P48

‘creativity‘라는 단어가 192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면 그 시대에 ‘창조‘와 관련된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서술할 수 있는 정확한 개념이 그 당시에는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서 새로운 개념, 즉 ‘창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 P48

‘창조‘라는 개념 구성을 필요로 했던 첫 번째 사건은 ‘의식의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의 등장이다. ‘의식의 흐름‘은 1890년에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1842~1910가 심리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Psychology》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이다. - P48

한 개인의 의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마치 강처럼 흘러간다 ...(중략)... 불연속적 단위로 자를 수 없다. - P49

에디톨로지에서 창조의 단위로서 편집의 단위를 가정하는 것은 인간 의식에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마치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선‘을 불연속적 ‘점‘의 연속으로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49

인간의 무의식에 들어가는 통로로 프로이트는 ‘자유연상 Freie Assoziation‘을 주장했다.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유로운 연상을 좇아가면 무의식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 또는 ‘자유연상‘이야말로 창조적 사고의 본질이다. - P49

우리가 가장 창조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멍한 상태라고 해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는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고 있다. ‘의식의 흐름‘의 폭이 논리적 사고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너무 넓어져서 그 범위를 도무지 확인할 수 없기에 멍하니 있는 것이다. - P49

가끔 지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가만히 그 흐름을 되짚어가면 그 출발점이 어딘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자기 상상력의 범위에 스스로도 놀라게 된다. 멍하니 있을 때, 보통 사람도 천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그 천재적인 생각을 구체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 - P49

‘천재‘는 의식의 흐름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다. - P50

‘자유연상‘이나 ‘의식의 흐름‘이 창조와 연관되는 가장 결정적인 까닭은 ‘메타언어meta-language의 창출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디톨로지적으로 표현한다면 ‘의식의 흐름‘을 통해 편집의 차원을 달리하는 생각이 가능해진다. 통상의 맥락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이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 낯선 연결고리를 개념화할 때 ‘메타언어‘가 창출되는 것이다. - P50

최근 ‘메타언어‘와 유사한 개념들이 많이 사용된다. ‘메타표상meta-representation‘. ‘메타인지metacognition‘ 등이다. 철학적 개념으로는 ‘자기 성찰self-reflection‘이다. - P50

1979년,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ohn H. Flavell, 1928~은 메타인지를 "인지적 현상에 대한 지식과 인식 knowledge and cognition about cognitive phenomena"이라고 정의했다(Flavell 1979, pp. 906-911).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 즉 ‘생각에 대한 생각thinking about thinking‘이 바로 ‘메타인지‘라는 이야기다. - P50

이 책에서 말하는 ‘메타언어‘란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 혹은 ‘어떤 개념이나 현상 배후에 숨겨진 의도와 맥락을 밝혀내는 또 다른 언어‘를 뜻한다. - P50

‘의식의 흐름‘이나 ‘자유연상‘이 심리학에서 개념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일어난 ‘시각적 전환visual turn 때문이다. 사진기의 출현으로 이제까지의 역할을 잃게 된 화가들이 ‘재현‘에서 자유로워져 인상주의,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주의까지 이르는 변화와 발전이
‘시각적 전환‘의 내용이다. 객관적 세상의 ‘재현‘이 아닌, 시각적 인상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게 된 ‘시각적 전환‘은 인간의 공간 의식과 시간 의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 P50

인간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언젠가는 봤던 것을 새로운 맥락에서 떠올릴 뿐이다. - P51

재현, 즉 모방할 수 없게 되었으니 화가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추상회화가 가능해지자, 인간의 의식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 즉 ‘편집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 P51

‘시각적 전환‘은 인간의 ‘섹슈얼리티sexuality‘에 관한 혁명적 인식 전환도 가져왔다. 이 같은 시각적 전환이 없었다면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나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의 ‘야한 그림‘은 물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도 없다. - P51

사진기가 가져온 인간 의식의 혁명적 전환을 주목하는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20세기 전반에는 발터 벤야민, 20세기 후반의 학자로는 프리드리히 키틀러 Friedrich Kittler,
1943~2011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키틀러는 아예 기술결정론을 주장하며 사진기를 ‘시각적 미디어‘가 아니라 광학적 미디어‘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미학은 언제나 기술에 종속된다는 환원론적 주장이다. - P51

만국박람회 등을 통한 동서양의 만남은 ‘시각적 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의 우키요에와 같은 시각적 자극은 특별했다. 이를 당시 유럽에서는 ‘자포니즘Japonism‘ 이라 불렀다. 원근법적 재현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를 선명한 색채, 밝은 화면, 과장된 명암대비, 뚜렷한 윤곽선으로 그려내는 우키요에는 인상주의 이후의 화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재현‘의 대안적 가능성을 일본 회화에서 찾으려 했다. - P51

"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야. 넌 훌륭한 연주자이고, 넌 저기에 앉으면 되겠네. 거기가 제일 좋은 자리야!" - P53

담당하는 창조의 영역이 각기 다르다 - P53

단순하게 가자. 정말로 단순하게. - P54

모든 창조적 작업은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의 편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얼마나 세련되게 편집하는가다. - P55

‘촌스럽다‘는 것은 그 편집의 결과가 소비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 P55

오늘날 바우하우스식 타이포그래피로 여겨지는 소문자의 산세리프sans serif 글자체가 바로 (헤르베르트) 바이어 Herbert Bayer의 작품이다. 그는 이 글자체를 ‘유니버설 타입Universal-Type‘이라 불렀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그래픽 디자인graphic design‘이라고 부르는 영역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 P56

‘기억한다‘는 인지적 과정은 의미 구성을 전제로 한다. - P58

일상에서 기억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를 ‘리추얼ritual‘이라고 한다. 리추얼을 통해 존재의 의미가 확인될 때 불안과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리추얼이 발달한 집단일수록 응집력이 강하다. ‘함께 있다‘는 의미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힘들수록 리추얼은 반복된다. - P58

집단 리추얼의 기초는 역사적 기억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단 기억collective remembering‘으로서의 역사학은 ‘의미구성학意味構成學이라 해야 옳다. 각 개인들의 흩어진 기억들을 모아 집단의 이야기로 편집해내기 때문이다. - P58

부정적 의미에서 이 같은 집단 리추얼의 힘이 가장 발달한 곳은 북한이다. 김일성 광장에서 군사퍼레이드를 죽어라 반복하는 이유는 집단 유지가 불안한 까닭이다. 세계의 독재국가가 다 망했지만, 오직 북한만이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이 집단 리추얼 때문이다. 북한의 각종 리추얼은 현대 국가에 적합한 형태가 아니다. 전근대적 종교에 가깝다. 북한은 종교 국가라고 봐야 한다. 동독의 마지막 독재자인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 1912~1994가 가장 흉내 내고 싶었던 인물이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이다. 1912년 동갑내기였던 둘은 실제로 매우 가까웠고, 수시로 만났다. 호네커는 김일성의 군사퍼레이드를 흉내 내고 싶어 했다. 그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바로 몇 달전에도 동베를린의 중심가인 운터덴린덴 거리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했다. 이미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을 호되게 겪은 독일인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김일성식 리추얼‘은 어떤 감홍도 없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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