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영혼은 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 담는 그릇에 따라 물의 형태가 달라지듯, 우리 영혼도 담긴 육체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개는 개의 감각으로, 고양이는 고양이의 몸으로, 몸에 갇힌 영혼은 그렇게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 P53
우리는 어쩌면 잠수복을 입고 바다를 유영하듯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래 입은 옷은 벗기 힘든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두려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마도 성인聖人들은 세상을 육체의 닫힌 감각이 아닌 영혼으로 바라보라고 이야기했나 보다. - P53
"이 삶도 모르는데 저세상 일은 알 수가 없다" _공자 - P53
마치 나무의 맨 끝이 곧 맨 앞인 것처럼, 타인의 생의 끝에서 느낀 메시지를 품고 돌아서서 다시 삶을 향해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주 느낀다. 정상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를 끊임없이 다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 P53
우리 몸속 혈관을 전부 연결하면 무려 지구를 세 바퀴 도는 길이가 된다. 그 길고 긴 혈관에 피가 도는 시간은 단 46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사람이 기적이다. 솟아오르는 힘의 표출이고, 솟아오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이다. - P54
여태껏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끼리의 연결과 대화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난 가지만 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P54
주변을 돌아보면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하나도 없다. - P54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있을 뿐,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다. - P54
"죽음은 이미 지나갔던가 또는 앞으로 올 것인가. 죽음 속에 현재는 없다" _보에티우스 - P54
원문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동아줄로 바늘귀를 꿰는 것보다 어렵다"이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보다 훨씬 논리에 맞는 비유가 아닌가. 히랍어로 ‘gamta‘는 동아줄이고, ‘gamla‘는 낙타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성경을 필사해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t‘가 ‘l‘로 잘못 옮겨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필기체로 쓰면 혼동하기 쉬운 글자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졸지에 동아줄이 낙타가 되고, 또 졸지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기이한 상상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 P61
(습한 환경에 놓인 시신은 부패가 진행되지 않고 밀랍처럼 변하게 되는데, 이를 ‘시랍화‘라 한다. 이러한 시신은 부패가 진행된 경우보다 오히려 손상에 대한 해석을 하기가 더 용이하다). - P66
인간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은 경험해보지 못한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 외계인을 예로 들어보면, 우리는 외계인을 만난 적이 없기에 외계인의 외모를 상상할 때 인간이나 동물의 생김새를 기준으로 변형시킬 뿐이다. 눈이 백 개 달렸다거나 혀가 촉수처럼 뻗어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치에 근거해 거기서 조금씩 거짓을 보탤 뿐이다. - P70
의학도들에게 유명한 격언이 있다. "말발굽 소리가 나면 얼룩말이 아니라 그냥 말을 떠올려라." 환자에게 어떤 증상이 발생했을 때, 선입견을 갖지 말고 증상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 P72
법의학자는 때로는 죽은 이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어야한다. 아무런 항변도 호소도 할 수 없는 망자의 옆에 우리가 서 있을 것이다. - P72
일반적으로 사람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 P77
멍이 들었다는 것은,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 P78
내가 그 아이들을 후원한 것은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지원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이 함께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주면 좋겠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그저 엄청난 슬픔과 파괴 속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가장 먼저 본 우리 모두가 그 아이들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 P84
누군가의 과실로 사랑하는 이를 보내서야 안 되지만, 그 가족을 더욱 괴롭혔던 것은 죽음을 가리고 있던 거짓이었다. 거짓을 밝히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아버지를 그 누가 도와줄까. 죽음 앞에서 유족들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들이 많다. 그때 내가 같이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싸움을 시작할 때 뒤에 있어주고, 오해가 있다면 풀어주고, 억울하다면 같이 맞서줘야 하는 것까지가 나의 일이다. - P92
가족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뭔가 이해되지 않고 미심쩍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제대로 이해시켜줘야하지 않을까? 죽음의 진실을 자세히 밝혀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객관적 진실을 전하되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날, 유가족과 병원을 중재해줄 기관의 필요성을 절실이 느꼈다. - P99
부검을 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죽음, 그 진실을 밝히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구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문제를 찾아내는 것, 그래서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 거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 P99
사고는 중립적으로 봐야 한다. 고의가 전혀 없었음에도 의도치 않게 나쁜 결과가 벌어지는 것이 사고다. 절차대로 최선을 다해 조치를 했음에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변수들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료사고라고 하면, 무조건 의료 과실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의료진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됐을 때를 의료 과실이라 하고, 실수가 입증되지 않았을 때는 의료 ‘사고‘라고 해야 한다. - P100
임상법의학을 다룰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 조건은 의사가 얼마나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느냐이다. 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사고인지, 과실치사인지, 고의성이 있는지 등병원 내 사망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제삼자가 면밀하게살펴보고 진실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가 의사와 환자, 양쪽을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만진실도 규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100
어떤 죽음이든 곱씹어보면 그런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원인이 있다. 이것을 찾아내 해결한다면 상당히 많은 죽음을 막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법의학의 이러한 역할에 대해 ‘예방법의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 P102
아주 사소한 일, 사소한 선택으로 우리 삶은 참 많이 달라질 수 있다. - P103
‘숨김없이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할 테니, 오늘 이 자리의 대화부터는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P105
마음속에 가득한 불신부터 제거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05
사람은 불안해지면 집중력이 흐려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면 또 사고가 생길 수 있다. - P105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이걸 끌어나갈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다. - P108
환자와 병원을 중재하는 역할은 법의학 관련 교수가 하면 가장 좋다. 법도 알고, 의료체계도 알고, 경찰도 상대해본 경험이 있으니 여러 상황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법의학 교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P109
법의학자로 일해온 우리들은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알기에 그들의 격한 반응과 무너지는 심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당장은 반감을 보이고 거칠게 나와도 결국 소통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소통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들과 라포가 형성된다. 즉, 신뢰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P110
나는 유족들과 대화하거나 합의할 때는 마음을 담는다는 중요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환자나 가족들의 말과 행동만 볼 게 아니라, 그 이면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그 마음을 보아야 유족들도 그런 우리의 마음을 받아준다. 병원 사람들이 죄다 자신들을 속이고 사기를 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 아닌 마음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 P112
나는 이 일을 오래 해온 덕분에 때로는 슬픔과 서운함이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유가족의 성난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 P113
배운 대로, 교과서대로, 원칙대로 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는 매뉴얼대로 일을 처리하기에 앞서, 그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주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 P113
사람이 몸이 아프면 활기가 넘치던 때와 달리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된다. 병원에 들어가면 환자복부터 갈아입힌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일상의 상당 부분을 의사가 시키는 대로, 병원의 스케줄대로 따라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수차례 피를 뽑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검사를 받는다. 내 마음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아프면 몸과 마음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 P114
크든 작든 사고가 일어나면 우선 괜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환자의 마음부터 보듬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상의 주도권을 뺏긴 상태로 의료진에게 의지하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덩달아 오해의 마음도 커지게 마련이다. - P115
감정이 악화되기 전에 그 마음을 헤아려주고 다독여주어야 한다. 스트레스와 같은 마음의 고통이 병을 악화시킬 수 있듯이, 반대로 의사의 따뜻한 한마디가 병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의사와 환자 간에 쌓인 정서적 교감은 불신과 오해, 감정적 분노도 사그러뜨릴 수 있다. - P115
어쨌든 사실관계를 올바르게 정리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 P116
"의미를 찾을 때 사람은 생존할 수 있다." - P117
언젠가 해방될거라는 희망에 매달렸던 이도, 신에게 의존했던 이도, 반드시 선이 악을 이길 것이라는 신념에 의지했던 이들도 삶의 의지를 놓을 때 자신만의 의미를 찾은 이들은 견뎌낸다 - P118
실제로 이 책(《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원제는 ‘맨즈 서치 포미닝 Man‘s Search for Meaning‘ , 우리말로 번역하면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 P118
인간은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부단히도 그 해답을 찾아가는 존재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안전하고 공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 P119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게 해주려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즉 목표를 얘기해주어야 한다 ...(중략)...그것이 빅터 프랭클이 말한 ‘로고테라피 logotherapy‘, 즉 ‘의미치료‘다. - P120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_신현림 시인의 시「나의 싸움」 - P120
인간은 원래 의미 없는 짓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여야 하며 뭘 해야 하는지 의미를 부여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 P121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P122
거역할 길 없는 진리들도 인식됨으로써 사멸한다. - P122
부조리함을 극복하거나 부정하려 애쓰지 말고 차라리 받아들이라 - P122
부조리함에 희생된 이들끼리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함에 맞서는 반항이며 삶에 희망을 안겨주는 유일한 방법 - P122
조금 이르거나 느리거나 방법이 다를 뿐 인간이 죽는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니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겼지?‘라며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의 답을 찾으려고 평생을 바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부조리의 답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겠지만, 그 속에서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의미를 찾아가길 바란다. 그것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이 할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다. - P123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끝끝내 생존한 사람들은 평소에 강한 인내심으로 많은 고난을 극복해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고난이 닥치기 전까지 행복했던 시간이 많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그동안 삶 속에서 바로 그 행복을 자주 경험한 사람들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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