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사뭇 진지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 바쁜 삶 속에서 잊고 지냈던 중요한 것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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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혀지고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기록이 남아있다면 기록했던 것을 보고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서 죽음과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기록에 대한 얘기가 나왔냐는 식의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이것은 저자가 법의학자로 일하면서 정확한 원인미상의 죽음이 생각외로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만약 망자들이 죽기 전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었다면 보다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아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저자의 생각이다.

독자인 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죽음과 관련된 기록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남기게 되는 기록들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블로그나 북플 앱을 통해 독서기록을 남기는 것도 내가 독서한 내용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그분들의 몫이고, 어쨌든 나는 기록하지 않으면 읽었던 책의 내용들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이렇게 글을 남긴다. 물론 잘 쓰면 더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읽고 알게 되거나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기록하는 데 더 중점을 두는 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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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 중에서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그리스의 마지막 철학자였던 플루타르코스가 자신의 아내에게 썼던 위로의 글이 나온다. 플루타르코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한 사람인데, 자신이 일 때문에 집을 떠나있던 동안 딸아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플루타르코스 자신도 물론 고통스럽고 슬펐겠지만 자신 못지 않게 슬퍼하고 있을 아내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 편지에서 플루타르코스는 딸아이에 대한 고통스러운 생각으로 인해 자신의 딸아이에 대한 기억마저 지우지는 말자는 말을 아내에게 건넨다. 슬픔에 파묻혀 딸아이가 주었던 기쁨마저도 잊어버리진 말자는 게 이 편지의 핵심이다.

저자는 이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이 업무상으로 만나게 되는 유족들에게 자신이 유가족의 슬픔을 이루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아이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은 잊지 마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위로를 건넨다고 한다.

법의학자의 직업 특성상 유가족들을 자주 만날 수 밖에 없을텐데 저자의 말이 유가족들에게 100% 위로가 되기는 물론 힘들겠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나은 다른 어떤 위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당연히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지만, 어차피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죽음으로 인한 고통의 바다에서만 허우적대기보다는 살아생전에 망자와 함께 했던 좋았던 추억들을 잘 간직하고 그러한 기억들을 더듬어보려는 태도가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바람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은 이렇게 썼지만 만약 내가 당사자가 된다면 이렇게 담담하게 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자가 인용한 플루타르코스의 얘기처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 왠지 그냥 맞는 것 같다. 이는 어쩌면 고전이 괜히 고전인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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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맨 마지막에는 영혼에 대한 저자의 의문이 나온다. 솔직히 독자인 나는 평소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의 궁금증에 호기심이 생겼다. 영혼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라. 죽음에는 분명한 교훈이 있다."

내가 책의 저자라면, 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죽음을 기록하고 또 논평할 것이다.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삶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_몽테뉴《수상록》 - P5

"모든 의사들이 사람을 살리려 하지만, 저는 이미 사망한 사람을 통해 놓친 것이 무엇일까를 되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7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 P8

"우리가 보는 것들은 모두 다 죽어가는 것들이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 P9

그렇다. 새순도, 갓 태어난 아기도 계속 늙어가고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무엇도 더 젊어지는 것은 없다. - P9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삶의 맨 끝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뒷면처럼 언제든지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다. - P9

‘팩트fact‘라는 단어는 라틴어 ‘파케레facere‘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만들다, 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로 제시되지만 거짓일 수 있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 P10

"여러분, 눈이 쌓였다고 눈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실은 겨울이라는 환경이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그러니 눈만 보지 말고 겨울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 P11

인간이 하나의 객체로 성장해 어떤 쓸모를 다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기대고 희망을 얻을 것은 사람뿐인지도 모르겠다. - P12

어떤 죽음인들 갑작스럽지 않을까. - P19

"건강한 눈은 보이는 것은 모두 보아야 하며 ‘나는 초록색만 보고 싶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건강한 청각과 후각은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냄새 맡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 P21

인간의 몸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맡고 싶은 것만 맡을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 P21

사연 없는 시신은 없다. - P22

멍의 색깔이 다양하다는 것은 손상의 시기가 제각각 다르다는 것으로, 이는 상습적이고 만성적인 구타의 흔적으로 볼 수 있었다. - P23

모르투이 위워스 도켄트 Mortui vivos docent,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의학도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라틴어 격언이다. 죽은 자가 자신의 몸을 통해 산 자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의미다. 이 격언에 등장하는 ‘도켄트docent‘라는 말이 파생되어 ‘닥터doctor‘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만큼 의학이 발전하는 데 있어서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알 수 있다. - P23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은 이제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보여줄 기회는 마지막 단 한 번뿐이 남지 않았기에 더욱 절실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 침상에 누운 그들을 내려다봐줄 의사가 되어주는 것, 법정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억울함을 밝혀줄 증언자가 되는 것, 그것이 법의학자의 역할이다. - P24

법의학자는 의사이자 고인의 대변자이며, 철저한 과학적 증거로 사실만을 말하는 사람이다. - P25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도 의사가 필요하다는 생각 - P29

젊은이의 직업 선택의 십계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 P30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 P30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 P30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 P30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 P30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 P30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P30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P30

9.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 P30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 P30

모든 만남은 기적이다. 서로의 존재도 모른채 각자 다른 우주를 살고 있던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혜성의 충돌처럼 기적 같은 일이다. 어쩌면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어느 날 길을 걷다 발을 삐끗하기만 했어도, 운명은 나비효과처럼 변화를 일으켜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 P31

지금까지 내게 있었던 일 중에 어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혹은 내게 없었던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났더라면, 나는 법의학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모든 만남은 기적이며, 그래서 나는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고맙고 감사하다. - P32

물에 빠져 부패한 시신에서는 사인을 규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의학이 그때보다 훨씬 더 발전한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 P33

내가 그랬듯 모든 법의학자는 직업 선택의 십계를 따른 사람들이다. 월급이 적은 곳,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고, 오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황무지 같은 곳,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곳으로 기꺼이 걸어온 사람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한 사람들,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을 택한 사람들이다. - P35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격변의 시기에 법의학자가 국가 권력의 편에 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권력과 자본에 양심을 속이려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 P36

나는 스스로에게 단 한 점 부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도록 모든 일에 조심 또 조심하게 되었다. 법의학 선배들이 이토록 외롭고 힘들게 지켜온 원칙과 신념을 이어가기 위해. - P36

물결 이는 수면 위에 비죽 튀어 나와 있는 그것은, 사람의 발이다. 추락해 바다에 빠진 이카로스의 발.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마을은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그리고 어디선가 누군가는 죽어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죽어가겠지만 우리는 아무런 인식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차마 안타깝게 죽어가는 어린 소년의 얼굴을 볼 수 없어 발만 그린 것일까.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_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프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의 그림을 보고 난 뒤 남긴 저자의 생각 - P39

사람의 죽음이 국가에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절차인 ‘사망 등록‘은 사망진단서 발급 일자로부터 한 달 이내에만 관할 주민센터에 접수하면 된다. - P42

시신의 이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인 법의학자는 ‘사망-장례-사망 등록‘의 전 과정에서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전문가의 검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 P42

아주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관행으로 굳어진 문화여서 우리는 ‘장례(화장 혹은 매장)후 사망 등록‘이라는 절차가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하지만, 대다수 외국에서는 우리와 정반대의 절차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 영국, 일본 등의 경우에는 사망 등록이 먼저 이루어져야만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유족이 사망 신고를 하면, 법의학자와 같은 전문가의 검토하에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것을 인증받은 뒤에야 화장 혹은 매장 허가증을 국가로부터 발급받을 수 있고, 그래야 장례식을 치르고 고인을 묻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와는 순서가 정반대다. 어느 쪽이 합리적인 사회일까. - P43

보이지 않고, 기록해두지 않고, 근거를 밝히지 않는 일들은 머지않아 우리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매년 원인을 모른 채 사라지는 2만 8천 명의 사람들이 애초에 우리 사회에 없었던 것처럼 기억에서 휘발되듯이 말이다. - P44

실패한 사례는 잘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성공한 사례만을 보고 잘못된 편향에 빠지는 것을 가리켜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고 한다. - P46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_세네카 - P47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을 고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는 사인 없이 죽어간 2만 8천 명 속에 있다. 우리 옆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사람들, 죽어간 사람들 속에 우리 사회의 불완전함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는 거기서부터 찾아야 한다. - P47

보려고 해야 볼 수 있고, 알려고 해야 알 수 있다. 이미 썩어 뼈만 남은 코끼리의 화석에서는 결코 코를 찾을 수 없다. - P47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앎으로써 인생을 이루어나가듯이, 죽음에도 앎의 완성이 필요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죽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망자를 대신하여, 살아남은 우리가 죽음의 육하원칙을완성해야 한다. 그것은 떠나간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또 그들을 밀어낸 이 세상을 살아갈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 P48

어린아이가 돌연사하는 경우, 사법당국에서는 혹시 모를 아동학대의 가능성을 확인해야만 하기 때문에 부검을 강제집행하게 된다.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긴 하지만, 이로 인한 부모의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고려해 설명을 해야 하는 법의학자에게는 괴로운 순간이다. - P50

"제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이겠지만, 그 아이가 부모님들께 주었던 보석 같은 추억들이 퇴색하지 않을 정도로만 슬퍼하시기 바랍니다." - P52

그리스어 ‘타나토스thanatos‘는 ‘죽음‘을 의미하는데, ‘어두운‘, ‘흐린‘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P52

그리스어 ‘프네우마pneuma‘는 ‘숨결‘, ‘숨쉬기‘, ‘영혼‘ (물리적 몸을 차지하고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활기찬 원리 또는 개체라는 라틴어 psyche)을 의미한다. 우리 몸의 숨구멍을 통해 영혼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이것이 멈추면 몸을 떠난 영혼이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뜻이다. - P52

영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는 몸을 통해 고통과 통증도 느끼지만 슬픔과 그리움, 아쉬움, 사랑도 느낀다. 무엇이 주인일까, 몸일까 영혼일까? 만약 몸을 떠난 영혼이 나의 진짜 정체성이라면, 굳이 몸을 통해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는 뭘까?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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