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자신의 서열을 과시하고 유지하는 정교한 신호들을 사용한다‘ 는 이야기를 했었다.

오늘은 이것의 사례 중 하나로 늑대들이 자신의 서열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묘사하는 문장들로 시작한다. 여기 나온 늑대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생김새만 다를 뿐 어쩜 인간 사회와 저리 똑같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나온 늑대 사례를 보면서 문득 과거 중고등학교 시절에 소위 말하는 ‘일진 양아치 무리들‘이 힘없고 선량한 학생들을 괴롭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근데 그 일진 양아치 무리들도 본능적으로 어떤 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웬만해선 잘 건드리지 않았다. 아마도 걔네들을 잘못 건드렸다간 자신들의 신상에 안좋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떤 것을 서열화 한다는 게 일장일단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계급이나 서열이라는 것도 전체적인 사회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시스템의 일부라고 본다면 그로 인한 단점보다는 장점에 좀 더 포커스를 두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거기서 파생되는 부작용들을 조정해나갈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은 분명 있어야 할 것이다.
.
.
.
뒤이어지는 내용에서는 과학적인 것과는 별개로 종교의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종교라는 것이 비록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어떤 객관적이고 증명가능한 측면에 있어서는 약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물리적인 실체를 뛰어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안정감을 심어주는 등의 긍정적인 역할이 있기에 오랜 세월 동안 소멸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존속되고 있다는 게 이 부분의 핵심 내용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약간 의외였던 것이 저자가 과학자이다보니 객관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과학의 입장에서는 초월성을 추구하는 종교의 도전(?)을 탐탁치 않게 여길만도 한데, 본문의 논조가 의외로 서로가 서로를 상호보완하면서 발전해나가자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의 전반적인 논조는 ‘경험론‘으로 대표되는 과학 쪽에 좀 더 무게 중심이 쏠려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에 대해 마냥 배타적인 태도만을 취하고 있지는 않았기에 뭔가 ‘열린 마음‘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기본 전제로 깔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언제든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 있다‘ 는 생각인데, 이런 생각을 이 11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
.
.
이어서 이 책의 마지막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초반부에 나온 내용만 간단히 언급하고 본격적인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통섭‘의 속성과 그 세계관에 대해 언급되는데, 아마도 여기까지 읽어온 독자라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동의할 만한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읽었던 유시민 저자의 책《문과 남자의 과학공부》에서 자주 접했던 내용이라 본문의 내용이 크게 거부감없이 다가왔다. 이런 걸 보면서 참 배경 지식의 유무가 독서의 체감 난이도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늑대의 무리에서 서열이 높은 동물은 머리, 꼬리, 귀를 세운 채 ‘거만하게‘ 다리를 빳빳이 세우고 유유히 걸으며 다른 늑대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라본다. 경쟁자가 나타나면 그 우두머리 늑대는 털을 곤두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며 먹이와 영역 사수를 위한 행동을 취한다. - P447

반면 지위가 낮은 늑대들은 이와 정반대의 신호를 사용한다. 즉 높은 늑대들을 만나면 슬슬 피하며 꼬리와 귀를 내리고 머리를 숙이며 털도 곤두세우지 않고 이빨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엎드려 살금살금 도망가며 상대가 달라고 하면 먹이나 영역을 내어 준다. - P447

험악하게 쳐다보면서 때때로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공격할 태세가 되었음을 알린다. - P447

만일 다른 행성에 사는 행동과학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한편으로 동물의 복종 행동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종교와 권위에 대한 인간의 복종 행위를 관찰하고는 둘 사이의 기호론적 유사성을 곧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가장 유력한 인간 집단의 일원인 신에게 가장 정교한 형태의 순종 의례가 바쳐진다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 종이 해부학적인 구조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적 행동에 있어서도 인간 아닌 영장류 선조로부터 단지 최근에야 진화적으로 분기된 종이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 P448

집단에서 지위가 높은 일원이 되는 것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 이것은 문화적 복잡성에 물들지 않은 본능적 행동을 가진 동물들을 연구한 수많은 사례들에서 밝혀졌다. 이것은 비단 우세한 개체뿐 아니라 열등한 개체들에게도 해당된다. - P448

한 집단의 일원이 되면 홀로 생존하는 것보다 적들에 대한 더 나은 방어 수단이 생기며, 먹이, 서식지 그리고 짝에 대한 더 나은 접근 가능성이 제공된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집단 내의 예속 관계가 반드시 영속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세한 개체가 약해지고 죽으면 부하 중 몇몇의 서열이 올라가고 그들이 더 많은 자원을 점유하게 된다. - P448

인간은 영장류의 후손답게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들, 특히 수컷 지도자들에게 쉽게 넘어간다. 이 같은성향은 종교 조직에서 가장 강하다. 예찬자 집단은 바로 이와 같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게다가 만일 그들이 최고의 유력자, 즉 전형적으로 대부분 남성의 형상을 가진 신에게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고 알려지면 그들의 권력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 P448

예찬자 집단이 종교 조직으로 진화하면서 최고의 존재자라는 이미지는 신화와 예배 의식을 통해 강화된다. 때가 되면 그 종교를 창시한 자들과 그 후계자들의 권위는 신성한 경전에 새겨진다. 그러면 모독자로 알려진 말 안 듣는 아랫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 P449

인간의 마음은 상징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감정 영역에 있어서도 절대로 원숭이의 거친 느낌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은 모든 차원에서 최대한의 보상을 제공하는 문화를 형성하려고 한다. - P449

종교에는 제식이 있고 최고의 존재자와 직접 접촉하는 기도가 있으며, 동료 신자들로부터 위안이 있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견뎌 낼 수 없었을 슬픔을 이겨 낸다. 또 종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해 주며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더 큰 전체와 드넓은 교감을 느끼게 해 준다. 바로 이와 같은 교감이 핵심이며 이것으로부터 솟아나는 희망은 영원하다. - P449

종교는 영혼의 암흑상태로부터 빛으로 나아가는 영적 여행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보여 준다. 몇몇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영적 여행이 생전에 가능하다. 마음은 더 고차적인 깨달음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일정한 방식으로 성찰을 거듭하여, 드디어 더 이상의 진전이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면 전체와의 신비한 통합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 P449

위대한 종교들 가운데 이와 같은 깨달음(전체와의 신비한 통합 상태)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는 힌두교의 사마디 (samadhi, 선정(禪定), 삼매(三昧), 즉 명상의 최고 경지), 선불교의 득도(得道), 수피교(Sufi)의 파나(fana), 도교의 무위(無爲), 오순절 기독교도(Pentecostal Christian)의 부활 등이 있다. 이와 유사한 깨달음은 환각에 빠진 문자 이전 시기의 주술사들도 경험했다. - P449

"그것은 완전하고 위대한 어떤 것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는 행복감이다." _윌라 캐더(Willa Cather) - P450

물론 신성을 발견하고 자연의 전일함 속으로 들어가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영원한 어떤 것을 파악하고 그것에 의지하는 경험은 행복감에 틀림없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찾아 헤맨다. 그들은 이것을 찾지 못하면 궁극적인 의미도 없이 삶 속에서 길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돈다고 느낀다. - P450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뇌의 회로와 심층적인 유전자의 역사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비로운 합일(mystical union)이라는 개념은 가장 강경한 경험론자라 할지라도 하찮게 보아 넘길수 없는 주제이다. 그것은 진정 인간 정신의 일부이고 수천 년 동안이나 인류의 마음을 채워 왔으며 초월론자뿐 아니라 과학자들도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는 문제들을 제기해 왔다. - P450

그녀(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1563~1565년 회고록에서 기도를 통해 신비로운 합일에 도달하기 위해 밟아 나갔던 단계들을 기록했다. 그녀는 헌신과 간구의 평범한 기도를 넘어 두 번째 단계인 침묵의 기도로 나아갔다. 여기서 그녀는 "신의 종이 되겠다는 단순한 동의"를 스스로 이끌어내기 위해 심력을 모았다. 주님이 "커다란 은총과 축복의 물"을 채워주실 때 깊은 위안과 평화로움의 감각이 그녀를 엄습했다. 그때 그녀의 마음은 세속의 일에 관심 갖기를 멈췄다. - P451

기도의 세 번째 상태에서는 성녀의 정신이 "사랑으로 취하여" 온통 신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찼다. 이런 생각에 생기를 불어넣고 통제하는 분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 P451

오, 나의 왕이시여,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마력의 힘 아래 여전히 있다는 것을 보고 계시지요. 제가 당신께 간청하노니, 제가 교제해야만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사랑에 취하도록, 그렇지 않으면 아무하고도 사귀지 않도록 허락하소서. 아니면, 제가 이 세상 속의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도록 명하소서. 아니, 저를 아예 이 세상에서 데려가소서. - P451

기도의 네 번째 상태에서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신비로운 합일 상태에 다다른다.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고 오직 실현되었다는 기쁨만이 느껴집니다. 모든 감각들이 바로 이 느낌에만 집중되는 까닭에 감각들 중 어떤 것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영혼은 신을 열심히 찾아 헤매는 동안에도 의식을 갖고 있으며 달콤하고 흘러넘치는 기쁨으로 마치 거의 실신할 지경에 있습니다. 숨쉬기도 힘들고 몸의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합니다. 저의 영혼은 신의 영혼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며 그분과 결합되는 순간 마침내 그분께서 주신 은총을 이해하게 됩니다. - P451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초월적 존재와 불멸에 대한 충동은 매우 강렬하다. 초월론은 특히 종교적인 믿음을 통해 강화될 때 심리적으로 충만하고 풍요로워진다. 그것은 어쨌거나 옳다는 느낌을 준다. 이와 비교하면 경험론은 메마르고 부적절해 보인다. 궁극적 의미를 모색하는 여행에서 초월론자의 길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쉽다. 바로 이것이 경험론이 아무리 마음을 파헤친다 해도 초월론이 계속해서 인심을 얻고 있는 이유이다. - P452

과학과 종교가 충돌할 때마다 과학은 늘 종교적 도그마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보람도 없는 일이었다. 미국만 해도 1500만 명의 침례교도들이 있고,
그들은 기독교의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를 선호하는 최대 종파이다. 반면 세속적이고 이신론적인 인문주의를 표방하는 대표 기구인 미국 인문주의 협회의 회원은 단지 5,000명에 불과하다. - P452

역사와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온 바가 있다면, 그것은 열정과 욕망이 진리와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 P452

인간의 마음은 신을 믿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것은 생물학을 믿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뇌가 진화하고 있던 선사 시대에 큰 이점을 제공했다. 따라서 이것은 근대의 산물로서 전개되었던, 그래서 유전 알고리듬의 보증을 받지 못하는 생물학과는 날카롭게 대립된다. 이 두 믿음 체계(종교와 생물학)가 실질적 차원에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불편하지만 진리이다. 그 결과 지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를 동시에 열망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 양자 모두를 완전하게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신학은 과학과 유사하게 추상을 향해 진화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소하고자 한다. - P452

우리 선조들이 섬겼던 신들은 신적인 인간이었다. 헤로도토스가 주목했듯이, 이집트 인은 자신의 신들을 이집트 인으로 그렸고(때로 몸의 부분들은 나일 강변의 동물들로 나타내기도 했다.), 그리스 인들은 그리스 인으로 표상했다. - P453

히브리인들의 큰 공헌은 모든 신들을 합쳐 단일 위격인 야훼ㅡ사막의 부족들에게 걸맞은 족장ㅡ로 만들고 그의 현존을 지적으로 다뤘다는 점이다. 조각된 성상은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 인들은 신의 현전을 더욱더 만질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성경에서는 아무도, 심지어 불타는 덤불 속에서 야훼에 다가갔던 모세마저도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유대인들에게는 야훼의 진짜 이름 전체를 발음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전능하고 인간 만사에 소소히 개입하는 유일신이라는 관념은 서구 문화에 지배적인 종교적 이미지로서 오늘날까지도 존속돼 왔다. - P453

계몽시대에는 유신론을 보다 이성적인 관점과 화해시키기를 바라는 자유주의적 유대 · 기독교 신학자들이 증가하면서 인격신(God-as-person)의 개념이 후퇴했다. - P453

17세기의 걸출한 유대인 철학자였던 스피노자는 신성을 우주의 도처에 현전하는 하나의 초월적 실체로서 그려 냈다. 그는 신이나 자연은 상호 교환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천명했다. 그 철학적 노고 때문에 그는 파문을 당한 채 암스테르담에서 추방되었고 그의 저작들에 대해서는 온갖 저주가 퍼부어졌다. - P453

이단 심판이라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신으로부터 인격을 박탈하는 작업은 근대를 통해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20세기의 가장 유력한 개신교 신학자 중 한 명인 폴 틸리히 (Paul Tillich)에게 있어 인격신의 존재를 단언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무의미한 것이었다. 자유주의적인 현대 사상가들 중 다수는 구체적인 신성을 부정하면서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존재론의 가장 극단이라 할 수 있는 이런 신학에서 모든 것은 한결같고 끊임없이 펼쳐지는 관계들의 복잡한 그물망의 일부가 된다. 신은 만물 어디에나 존재한다. - P454

‘만물 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은 물리적 우주의 여러 가지 힘들에 대해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술하는 서로 연결된 방정식들의 체계를 일컫는다. - P454

만물 이론은 "아름다운" 이론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최소한의 법칙으로 끝없는 복잡성의 가능성을 표현하는 우아한 이론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대칭적인 이유는 모든 시공에 걸쳐 불변하기 때문이다. - P454

만물 이론은 필연적이다. 일단 한번 진술되면 그 어떤 부분도 전체를 무효로 만들지 않고서는 변경될 수 없다. 살아남은 모든 하위 이론들은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공헌에 대해 언급했던 것과 같이 궁극적 이론에 영원히 포섭된다. - P454

아인슈타인은 "이론의 가장 큰 매력은 그 논리적 완전성에 있다. 만일 그 이론에서 도출된 결론들 중 어느 하나라도 틀렸음이 판명된다면 그 이론은 포기되어야 한다. 전체 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 P454

과학은 한때 서구 문명 전체를 주재하던 인격신으로부터 우리를 너무 멀리 떼어 놓았다. 과학은 시편 기자가 그토록 사무치게 표현해 놓았던 우리의 본능적 갈망을 만족시키지못했다. - P455

사람은 그림자와도 같은 나날을 살고, 헛되게도 교만한 환상으로 스스로를 불안하게 하는도다. 그는 그의 보물들을 누가 모았는지 알지 못하노라. 주여, 무엇이 저를 위로할 수 있겠나이까? 저의 희망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 P455

인류의 영적 딜레마의 본질은 우리가 하나의 진리를 받아들이게끔 유전적으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P455

그러나 우리는 정령들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람들은 성스러운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지적으로 합리화된 더 큰 목적을 어떤 형태로든 지녀야만 한다.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동물적 절망에 굴복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또 사람들은 시편의 기자와 함께 "무엇이 저를 위로할 수 있겠나이까?"라고 계속해서 탄원한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정령들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 P457

우리는 하나의 단일한 유전자군(gene pool)을 이룬다. 이 유전자군으로부터 각 세대마다 개인들이 태어나고 또 그 속으로 용해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산과 공통의 미래를 통해 하나의 종으로서 영원히 통합되어 있다. 사실에 기반을 둔 이 생각으로부터 우리는 불멸성에 대한 새로운 암시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며 새로운 신화도 여기서 진화해 나올 수 있다. - P458

종교적 초월론과 과학적 경험론 중 어떤 세계관이 우세한지는 인류가 미래를 어떤 식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면 모종의 화해에 이를 수도 있다. 즉 한편으로는 윤리와 종교가 여전히 너무 복잡하여 오늘날의 과학만으로는 깊이 있게 설명될 수 없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와 종교는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율적인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 P458

과학은 윤리와 종교 속에서 가장 흥미롭고 아마도 자신을 겸허하게 만드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며, 반면 종교는 자신의 신빙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과학의 발견들을 한데 통합시키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 P458

종교는 경험적 지식에 모순되지 않는 인류 최고의 가치들을 불후의 시적 형식 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때 그만큼의 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력한 도덕적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맹목적 신앙은 제아무리 열정적으로 표출된다 할지라도 충분하지 못하다. - P458

과학은 자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조건에 대한 모든 가정들을 가차 없이 시험대 위에 올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감정들의 기반이 발견될 것이다. - P458

두 가지 세계관의 경합이 가져다줄 최종 결과는 인간 서사시의 세속화와 종교 자체의 세속화가 될 것이다. 그 과정이 아무리 지난하더라도 그것을 위해서는 상호 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공개 토론을 계속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적 엄격함을 견지해야 한다. - P458

통섭은 봉합선이 없는 인과 관계의 망이다. - P459

통섭 세계관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현상들ㅡ예컨대, 별의 탄생에서 사회 조직의 작동에 이르기까지ㅡ이 비록 길게 비비 꼬인 연쇄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물리 법칙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이 공통 유래를 통해 모든 다른 생명들과 친척 관계에 있다는 생물학적 결론은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모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DNA 유전 암호를 공유하는데 이 암호는 RNA로 전사되고 결국 동일한 아미노산을 지닌 단백질로 번역된다. - P460

계통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구대륙 원숭이와 유인원 사이에 위치한다. 화석 기록은 인간의 직접적인 조상이 호모 에르가스테르나 호모 에렉투스임을 보여 준다. 그것은 인류가 20만 년 전쯤에 아프리카에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몇십만 년동안 진화해 온 우리의 유전적 인간 본성은 문화의 진화에 여전히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P460

역사에서 우연이 담당하는 결정적 역할을 깎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작은 사건들도 큰 차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 지도자의 성격이 전쟁이나 평화냐를 결정할 수도 있고 하나의 기술 혁신이 경제를 바꿀 수도 있다. - P460

통섭 세계관의 요점은 인간 종의 고유한 특성인 문화가 자연과학과 인과적인 설명으로 연결될 때에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여러 과학 분과들 중에서 특히 생물학은 이런 연결의 최전선에 있다. - P460

20세기를 마무리하며, 자연과학은 복잡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새로운 근본 법칙을 찾는 일에서 새로운 종류의 종합ㅡ 이것을 전일론이라 불러도 좋으리라ㅡ으로 그 초점을 옮겼다. 예컨대, 우주의 기원, 기후 변동의 역사, 세포의 기능, 생태계 조직 그리고 마음의 물리적 기초에 관한 연구 등은 복잡계를 이해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이런 탐구들에서 가장 잘 통하는 전략은 조직의 여러 수준들을 가로지르는 정합적인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포생물학자들은 분자 집합체의 여러 수준을 넘나들며 연구하고 인지심리학자들은 집합적인 신경 세포들의 활동 양상에 관심을 기울인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P461

그렇다면 왜 이와 동일한 전략을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통합하는 데 써서는 안 되는가?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다. 두 영역 간의 차이는 단지 문제의 크기 차이일 뿐 문제의 해답을 찾는 데 필요한 원리들의 차이는 아니다. - P461

인간의 조건은 자연과학의 가장 중요한 미답지이다. 역으로 자연과학에 의해 드러난 물질세계는 인문·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미답지이다. 그렇다면 통섭 논증은 다음과 같이 압축될 수 있다. 두 미답지는 동일하다고. - P4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