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재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특별히 오늘 나오는 부분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연이 되어 연재와 전략적으로(?) 붙어다니는 지수라는 친구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지수는 남의 집에 갈 때 빈 손으로 가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는 친구라 연재의 집에 갈 때도 각종 간식거리들을 사들고 갔다고 한다. 그 결과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줄로만 알았던 연재는 단 몇 주만에 몸무게가 3kg이 늘었다고 한다. 오늘 처음 밑줄 친 문장은 지수와 시간을 함께 보내던 연재가 살이 찌고 나서 스스로 느낀 점을 표현한 문장인데 표현이 참 신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밑줄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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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연재와 휴머노이드 로봇인 콜리 간의 대화가 나온다. 콜리는 사람들이 위기의 순간에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할지 우선순위를 매기는 순서에 따라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얘기를 하면서 왜 꼭 위기의 순간으로 소중한 사람의 순위를 매기는지 의아해한다. 그러자 연재는 좋은 것은 쉽게 나눌 수 있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나름대로 현명한 답변을 한다.

근데 연재는 콜리의 질문에 답변을 함과 동시에 전략적으로 자신의 파트너가 된 지수와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만약 물에 빠졌을 때 나는 지수를 몇 번째로 구할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순위가 꽤 높게 나오자 연재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럼 지수는 나를 몇 번째로 생각할지‘를 말이다.

사람들마다 인간관계에서 우선순위가 각자 다를 것인데,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하나 더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연재가 고민했던 것처럼 상대에게 몇 번째 우선순위일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자기 스스로가 먼저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일단은 맞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언급한 우선순위라는 것은 늘 상대적인 것이기에 얼마든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1순위가 영원한 1순위가 되라는 법은 없다. 지금은 비록 후순위로 여겨질지라도 추후에 발생하는 다른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앞순위로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고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관계 중에서 혈연인 가족 관계 같은 경우야 그 우선순위가 크게 변동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혈연 이외의 관계인 경우에는 아마도 내가 앞서 언급한 것들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연재와 지수도 피 한방울 안 섞인 그저 친구 관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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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투데이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여러 단계들 중에 연재는 새로운 난관을 만나게 되는 데, 여기서 상세한 내용을 다 얘기할 순 없지만 자신이 과거에 일했었던 가게의 점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그 난관을 극복하는데 성공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참 사람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점장과 연재는 그닥 좋게 헤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조차도 시간이 지난 뒤에 도움이 되어 돌아오는 걸 보면서 평소 인간 관계에서 설령 껄끄럽거나 조금 불편한 것이 있을지라도 원수같은 관계로만 헤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로 다시 부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몸에 쌓인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구하는 거요. 그건 아낀다는 뜻이래요."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할거냐는 질문이 나왔어요. 그게 소중한 사람의 순위를 매길 때 사용되던데... 그런데 참 이상한 비유예요. 왜 꼭 절망의 상황에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누구에게 먼저 줄 거냐는 비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좋아하는 걸 나누는 건 쉽게 할 수 있잖아. 근데 절박한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건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잘 못 해."

지수에게 자신은 과연 몇 번째일까?

그려놓은 모델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했고 3D로 바꿔보기도 하며 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지만 큰 혁명을 상상했다.

연재는 무언가에 열중할 때 빛나는 인간이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빛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투데이가 뛸 때와 같아요, 지금."
...(중략)...
"행복해하고 있어요. 투데이가 뛸 때처럼 당신도요."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 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행복이라는 건 결국 자신이 느끼지 못하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단어 아닌가.

"저는 호흡을 못 하지만 간접적으로 느껴요. 옆에 있는 당신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저를 행복하게 하고 싶으시다면 당신이 행복해지면 돼요. 괜찮지 않나요?"

"옆 사람이 불행한 건?"
"그건 못 느껴요."
"왜?"
"제가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외면한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게 아니던데."

"가족들의 불행을 마주본다는 건 내가 외면했던 내 불행을 마주 보는 거랑 같거든."

콜리에게는 지난 일인 것처럼 말했지만 아직도 연재는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 흐름을 끊고 불행을 대면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다.

"밥 먹으면 식곤증으로 졸려서 공부할 때 힘들어."

숨이 없는데 어떻게 욕망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늘을 보고 싶다는 콜리의 욕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만큼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야 한다

투데이는 달릴 때 행복한 아이다. 태어나서 줄곧 주로를 달리는 것밖에 하지 못한 말은 결국 달림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 동안 마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관절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주로를 달리는 것이 투데이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몇 주를 마방에만 갇혀 있던 투데이가 며칠 전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서는 것조차 힘들 거라던 복희의 말과 달리 투데이는 기쁨의 울음을 쏟으며 주로를 활보했다. 물론 짧은 시간이었고 그 후에는 고통에 무너졌으나 마방에 있었을 때와 달리 웃고 있었다. 투데이는 웃고 있음이 확실했다. 콜리의 말이 맞았다. 수 만개의 바늘이 찌르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평생을 달려 온 투데이는 달리는 것이 더 행복했다.

주로를 보고 달리지 않는 연습을 해야 했다. 오로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그 현장에 서 있을 수 있는 속도. 완주를 하더라도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있는 속도.

"고칠 게 보이지 않으면 고치지 않아도 괜찮아요."

"왜 그런 것들이 있는 건가요?"
"너는 모든 것에 꼭 이유가 다 필요해?"
...(중략)...
"세상에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기수가 되기 위해서이고 인간이 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이유가 있어서예요. 무의미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이 휴머노이드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하기야 몇 세기를 보내며 인간이 차근차근 쌓았던 지식을 한번에 압축해 만든 존재였으니 인간 개개인보다 뛰어난 건 당연했다.

"틀렸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세상에는 원래 이유가 없었어. 인간들이 이유를 가져다 붙인 거지. 그러니까 순서를 따지자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먼저야."

"누구라도 틀려. 원래 살아가는 건 틀림의 연속이야."

콜리는 자신을 살아 있다고 표현해준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당신도 저를 그냥 데리고 온 건가요? 이유 없이요?"
...(중략)...
"응, 그냥 데리고 왔어."
"고마워요. 저도 당신이 그냥 좋아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낯선 것에 도전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나요? 인간에게는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능이 있나요?"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아나요?

"내가 너를 친하게 생각하듯이 너도 나를 친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연재는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숱한 시간동안 이해받지 못해 상처 입은 날들이 쌓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 터였다.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과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모두에게 존재했다. 적어도 연재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해받기를 포기했다.

이해에는 한계가 있고, 횟수가 있고, 마지노선이 있다. 그 선을 넘으면 이해해주던 사람은 어느 순간 상대방의 이기심을 지적했다.
"그런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몇 번씩 그렇게 가면 우리는 뭐가 돼?"

이해받기를 포기한다는 건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연재는 상대방의 모든 행동에 사사건건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저렇게 행동하면 저렇구나, 하고 말았다.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해서 그러는지 싫어해서 그러는지 따위를 생각하면 너무 많은 이해심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이해를 포기하면 모든 게 편해졌다. 관계에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 적어도 지수를 만나기 전까지, 연재의 세계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였다. 적막이기도 했다. 지수는 연재에게 강풍으로 불어왔다. 잠잠했던 연재의 돛을 한 방에 날렸다.

처음에는 싫었지만 계속 싫지는 않았다.

"네가 로봇광인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로봇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지. 너보다 콜리가 더 인간적이겠다."

"내가 더는 못 온다고 해도 너는 알았어가 아니라 아쉽다고 했었어야지. 아쉬웠으면. 물론 네가 아쉽지 않았으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때..."

아쉽다. 아쉬움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은 지 오래되서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쉬움에는 약간의 설움이 섞여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아쉽다는 단어를 꺼내면서, 아쉬움에 면역되지 않은 마음이 설움에 정복당하는 듯했다.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아예 없다. 다들 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집을 더 신경써야 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고. 그냥 무감각해진대. 상처받지 않으려고 달팽이집으로 들어가는 거랑 똑같다고 그랬어."

세상 모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오직 연재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다면.

"내가 너를 그냥 데리고 왔다고 했잖아. 사실 그거 거짓말이야."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연재가 이것만은 콜리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이 다 망가진 채로 건초더미에 누워서 나한테 하늘이 예뻤다고 말하는 네가 불쌍했어. 그리고 순간 내가 너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도 들었어. 그대로 내버려두면 너는 사라지겠지만 내가 데리고 오면 사라지지 않으니까. 같잖은 연민이지. 그래도 후회 안 해. 나는 내가 좋아했던 걸 그동안 싫어한다고 믿고 살았는데, 아니더라고. 너 만지면서 알게 됐어. 그리고 지금 내 말에는 대답하지 마. 명령이야."

콜리는 연재의 명령을 지켰지만 처음으로 명령을 어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 충동이 몸체 내부에서 실제로 일어났는지, 콜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속에서 무언가 어긋남을 느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연재를 방해할 수 없어 가만 충동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떨리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지만.

"언니는 자유롭고 싶은 거지?"
"나는 이미 자유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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