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읽었던 내용 중에 그동안의 포스팅에서 그닥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던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은혜와 연재의 친척인 ‘서진‘이라는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 ‘서진‘은 이런저런 것들을 취재하는 기자로 소개되는데, 여기서 상세히 다 밝힐 순 없지만 우연한 기회에 은혜와 연재가 연관되어 있는 어떤 일을 취재하다가 그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

한편 지난번 포스팅에서 다뤘던 내용에서는 경주마인 투데이를 살리기 위한 은혜와 연재의 프로젝트(?)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 위에서 소개한 ‘서진‘이 중요한 키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3분의 2정도 읽었는데 이 소설의 남은 부분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조금씩 흥미진진해지는 느낌이다.
.
.
.
결국 예상대로 서진이 키맨 역할을 하면서 은혜와 연재의 프로젝트가 그들이 계획한 방향대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

한편 이어지는 글에서는 은혜와 연재의 엄마인 보경에 대한 얘기가 잠시 등장한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등장하지만, 독자인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의도치않게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린 전직 소방관이자 자신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꿈을 꾸는 장면으로 묘사되는데, 중간중간 등장하는 문장들에서 보경이 자신의 남편을 향한 그리움의 감정이 느껴졌다. 물론 보경과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 감정을 100%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꿈에서 깬 뒤 보경은 자신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너무 오랫동안 잠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라 헐래벌떡 일터로 향하려 하지만 휴머노이드인 콜리가 일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보경에게 말한다. 이미 일할 사람들이 다 가있으니 걱정할 필요없이 그냥 쉬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래서 보경은 쉬면서 콜리와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콜리가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 인상적이었다. 밑줄에도 몇 문장 쳐봤는데, 독자인 내가 느낀 요지만 언급하자면 물리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겠지만 주관적인 시간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었다. 읽으면서 참 공감되는 말이었다. 자신에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행동을 할 때는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하게 되어 시간이 훌쩍 지나가지만, 지루하고 따분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는 콜리의 말처럼 1분이 1시간처럼 흐르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독자인 나는 이 부분에서 자신이 현재 놓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시간의 흐름을 결정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상황과 환경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곳이 천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여기서 답은 명백하다. 누구의 시간이 더 잘 흘러가겠는가? 당연히 전자일 것이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본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천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어찌보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지옥처럼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이제 위에 적어본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천국처럼 느끼며 살아갈 것이고 그 결과 자신이 하고싶은 일에 몰입하면서 시간도 술술 잘가서 행복한 삶을 살아감과 동시에 일에 따른 보상으로 금전적인 영역도 풍족하게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지옥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살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일에 몰입하기보다는 그저 시간만 때우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할 것이고 그결과 1분이 1시간처럼 느리게 흘러가서 불행한 삶을 살 것이고 일적으로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기에 금전적으로도 부자가 되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감사하라는 말은 정말 여러 다른 책들에서도 봤던 것인데 오늘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게 된 것 같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관계없이 그 안에서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어느 때보다도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안 돼."
"무슨 일인지 알게 되면 될걸?"

아이들이 원하는 건 너무나 간단했고, 명료했고, 분명했다. 투데이의 삶이다.

서진은 구구절절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그 경마장을 조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치욕스러웠는지 아느냐고.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더 그럴듯한 명목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생명이 주로를 뛰는 경기였으므로, 짜놓은 판에 맞추려면 생명에게 가혹한 학대가 가해져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투데이가 달리는 걸 좋아했어. 나도 그 자세히는 모르지만 언니한테는 그게 위로였나봐. 아니면 군더더기 없는 행복이었든가."

"그런데 너무하잖아. 달릴 수 없으니까 죽으라는 건."

"고작 이틀에서 14일로 삶을 연장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 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부장님도 끝내 서진의 판단을 이해할 것이다. 기자란 무언가를 살리는 직업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니까.

"당신의 결정 덕분에 투데이는 행복할 거예요. 그리고 투데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저도 행복하다고 느껴요."

그간의 정을 토대로 한 배려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

약자가 굴복할 수 있는 순간은 아무도 그 일을 알지 못했을 때뿐이라고, 모두가 알게 된 이상 더는 굴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좋은 파트너인 것 같아요."

관리자의 언성이 커졌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함을 잃지 않아야 통하는 법.

"악행은 누군가가 반드시 알아내게 되어 있어요. 오늘 저희가 찾아온 게 아저씨한테 온 마지막 행운인 줄 아세요. 나쁜 짓 하고 살지 마세요."

도태되면 결국 고생은 제 몫이었다.

인간은 아프면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콜리는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는 도리어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대화였다.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보경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노라 약속했던 사람이 오래도록 비워둔 자리를 뜻하지 않은 것이 채웠다.

"콜리잖아요. 콜, 리. 콜, 미. 발음이 비슷하지 않나요? 언제든 저를 부르세요. 콜-미."

세상에 생명을 탄생시키고 책임지고 기른다는, 가정을 지키고 있다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떠들지 못할 일

자신이 알아서 끈을 놓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상의 편견과 고지식함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절망스러운 운명에서 구해내지 못했을까. 조금만 달랐더라도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운명이었는데. 고작 그 시선이 뭐라고.

독립적인 사건들처럼 보였는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모든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이 수면 위의 파동 같았다. 넓고 잔잔한 파동이 끊임없이 교차되고 연속되는, 그 에너지가 끝내 물살을 만들어버리는.

은혜가 아픈 손가락이었다면 연재는 신경이 손상된 손가락이었다. 어느 날 문득 쳐다보면 언제 다쳤는지 알 수 없는 오래된 상처가 엉망으로 아물어 있었다. 딱지를 뜯어 약을 발라 줄 수도 없었다. 상처가 흉터가 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빨리‘가 아니라 ‘천천히‘가 터져 나오는.

슬픔이 비림으로 바뀌자 후에는 꺼내려고 해도 비릿해서 꺼낼 수 없어졌다. 그렇게 계속 몸에 담아두었다. 고여서 비려질때까지. 끝끝내 썩어 마를 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지겨워. 지겹다고. 그러니까 우리 그만 좀 하자.

잊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오래 머물고 싶지도 않았다.

잘 가, 조심해서 가.

방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창밖으로 아침 해가 뜨는 것과 세상이 색으로 덧칠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순간은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졌는데 그곳(좁은 방)에서는 반대로 1분이 1시간으로 느껴졌어요."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는 이론에 대해서는 연재가 말해줬어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이라고요. 제가 투데이와 함께 달릴 때 느꼈던 시간이 접힌 듯한 현상은 실제라고요. 생명은 저마다 삶의 시간이 다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인간은 함께 있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사는 건 아니네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을 뿐 모두가 섞일 수 없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맞나요?"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결승점이 어디인지, 완주의 상품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태어났으므로 자연히 출전하게 된 경기를 하고 있노라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지쳐 기절하듯 침대에 누워야만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 시간은 멈춰 있어."
화재가 난 빌딩 속에 있던 소방관을 기다리던 그 시간에 멈춰 있어. 반드시 살아서 나오리라 믿고 있는 그 시간 안에서.

시간이 흘러 보경은 그곳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시간은 그곳에서 1초도 흐르지 않았다. 보경이 매일 일찍 일어나 쉬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그 지긋지긋한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음을,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달리기였음을 인정해야 했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정적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수면 위에 돛을 펼치고 있었다.

"흐르게 하는 법을 잊었어."
시간은 고여 있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생각했다가도 여지없이 그날로 빨려 들어갔다.

슬픔을 겪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지구에 고여버린 시간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중략)...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저는 실수로 만들어진 거라고 연재가 말했어요. 저를 결정하는 제 안의 칩 하나가 다른 휴머노이드와 다르다고 했어요."
"..."
"연재는 실수와 기회가 같은 말이래요."

콜리의 말처럼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려면 행복으로 그리움을 이겨냈듯이 현재의 시간도 흐르게 해야 했다. 그날에 함께 묶여 나아가지 못한 관계부터 풀어내면 되지 않을까. 보경은 너무 가까워서 미뤄두었던 실타래부터 잡았다. 연재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적당한 답변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몸짓이었다.

아이가 아님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인정했을 뿐이지, 보경은 아직까지는 그 세상을 자신이 온전히 책임지고, 슬픔을 삼켜야 하는 어른의 세계로 연재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