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부드럽고 온화하지 않은 정도만 되어도, 한국에선 쉽게 ‘쎈언니‘, ‘걸크러쉬‘ 호칭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여성의 기본값이 은연중에 책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나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남녀가 각각 똑같은 기본값의 성질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적인 차이에서 오는 성향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지 않겠나.
그러나 성별에 따른 ‘모범 성향‘이라는 게 없는 이상, 어떤 성향도 유년기에 ‘잘못된 점‘으로 치부되지 않을 테고 그것이 잘 자라 한 사람의 고유한 강점 또는 질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극적인 남자 또는 적극적인 여자라서 가질 수밖에 없는 특별함을 발견할 수도 있다.
성향의 기본값은, 나의 사회적인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기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나는 세상은 방구석에서 뭐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모든걸 바치는 덕후들과 무리에서 늘 튀어가며 소리쳐준 나대는 이들로 인해 변해왔다고 믿는 사람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자아가 있다 ...(중략)... 결이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나‘임에 틀림없지만, 세포분열을 하듯 수많은 상황 속에 각기 다른 ‘역할‘로도 존재한다.
심지어 꼭 집단에서뿐만 아니라 누구의 앞이냐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 힘들다.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어떤 이유로든 내게 소중한 누군가의 앞에서, 그에 맞는 나의 역할 또는 모습이란 건 분명히 있다. 가면과는 분명히 다르다. 중요한 건 내가 팀장임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모든 팀원들은 결국 나라는 줄기에서 뻗어난 가지라는 걸 잊지 않는 거다.
A&R(Arists & Repertoire) : 아티스트 발굴, 육성, 음반제작을 하는 직무
A&R은 프로듀서의 손발 역할을 한다. 프로듀서가 앨범의 방향을 정하면, A&R은 이에 맞는 곡과 가사를 수급하고 작곡가를 매칭하기도 한다.
일이 순조로울 때는 실무자의 공이 빛난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것이 A&R의 책임이 되진 않는다. 그건 전적으로 프로듀서나 제작자의 몫이다.
내가 한 일의 경우 어떤 ‘결정‘ 하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최종적으로 그 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하는 일은 프로듀서의 역할이고, 어떤 통찰과 계산이 필요한 일이며,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질 능력과 강단은 없는 사람이란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 하나만 잘하면 되는 일을 하는 게 훨씬 쉬웠다. 지시한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패닉이 오고 결국 팀원들은 할 일이 없고 나만 일을 떠안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은 될 때까지 해보는 노력 끝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해보고 또 해보다 결국 인정하게 되는 쓸쓸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어떤 부분에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의 ‘벽‘에서 뒤돌아봐야 알 수 있는 나만의 가능성이 있다. 즉 한계에 부딪힌다는 건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도 된다.
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이 말은, 스스로는 깨닫기 힘든 부분이 잠재력 그리고 가능성이라는 뜻도 된다. 땅 끝에 닿아본 사람만이 지도를 그려낼 수 있듯, 한계치에 닿아본 사람만이 스스로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다.
무모한 자들은 뼈아픈 실패를 겪지 않았거나, 그 실패들이 남긴 데이터를 망각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겁이 많은 자들은 지켜야 하는 것들의 가치를 아는 자들이다. 또 자신과 얽힌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일에 대한 신중함이 있는 자들이다.
삶에 있어서 충동보다는 지구력으로 대처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나는 겁이 많은 편이야‘ 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은 더욱 호감이다. ‘겁이 없음‘을 매력적인 무기로 휘두르지 않는 그들은, 결과적으로 늘 강했다.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남성성이나 여성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만 보면 슈퍼스타들이 대개 그렇다. 마이클 잭슨이라든지, 마돈나라든지.)
‘동작‘은 유행을 타지만, ‘표현‘은 그렇지 않기 때문
가사를 표현하는 몸짓을 취하는 것이 무대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사랑받는 작품은 결국 그런 본질에서 탄생하는가 보다.
사람은 본인 고유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특별한 나만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하곤 한다. 그러고는 정작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본능적으로 배척한다. 이것은 낯선생명체를 거부하는 동물적인 본능에서 기인한 습성이겠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 본능을 이성으로 거를 수 있어야함에도, 자주 그러기를 실패한다. 그리고 반짝이는 그 특별한 사람을 성의 없는 한 마디로 정의해버린다. ‘이상하다!‘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어봐야 우리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앞으로 살면서 우리는 아마도, 수없이 많은 ‘이상하다‘는 말을 툭 하고 내뱉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그 말을 ‘특별하다‘고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음미하며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살아남는다‘는 말은 꾸역꾸역 버틴다는 말로 들렸다.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을 붙일 만큼 구차하고 초라한 모습이 떠오르는 말이었다. 사람 많은 배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 비루하게 항해를 하는 사람이 상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은 묘하게도, 5년 차, 10년 차가 될 때마다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살아남았고‘, 그러기 위해 많은것들을 했다. ‘살아남는다‘는 말은 단순히 존재감 없이 그럭저럭 발을 걸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살아남아보며 깨달았다.
나를 살아남게 해준 순간들이 있다. 좋은 가사를 써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고뇌하는 순간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가사가 잘 나오지 않을 때, 슬럼프가 찾아올때, 밀려 나가지 않으려 버틸 때 등의 초라한 시간들이 내가 살아남을지 아닐지를 결정해주었다.
가사가 잘 나올 때에는 세상 무서울 게 없다. 앉은 자리에서 서너 개씩의 가사가 쏟아져 나오던 때에는 오는 일을 하느냐 마느냐 선택의 문제만 있을 뿐 고민할 게 없다. 문제는 내가 본 어느 누구도, 이런 컨디션이 늘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는 ‘감‘이라는 것이 떨어지면,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이 된다. 감이란 게 있을 때라 쳐도 그 감이 통하는 ‘때‘가 있을 뿐, 나이가 들면 새로운 세대가 보기에 낡고 촌스러워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감‘으로 하는 일들이다.
시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는 패션이다. 90년대 패션, 80년대 패션으로 묶여지는 스타일에는 해당 시대가 인장처럼 새겨져 있다.
패션처럼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을 예민하게 타는 것이 바로 ‘언어‘다. 젊은 가사를 젊을 때 쓰는 것과, 젊은 가사를 쓰려고 썼을 때 나오는 언어의 질감은 확연히 다르다. (어르신들이 애써 젊은이 행세를 하며 인터넷에 글을 쓰면 모두가 알아볼 수 있지 않던가.)
돌아보면 쉬운 일이지만, 닥치면 어려웠던 모든 일들은 이 ‘인정‘이었다. 나의 한계를 느꼈을 때, 더이상 힘으로 밀어내는건 객기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되도록이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음악도 결국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일은 너무 잘하는데 인성 이슈가 있는 사람들은 앞서 말한 ‘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낙오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러나 실력 있는 일꾼으로 날아다닐 때 나쁜 사람이 되는 건, 그 사람의 본성 탓이 아닐 때도 있기에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일이 잘될 땐 평소보다 몇 십 아니 몇 백 배의 사람들이 꼬이고 그중에는 내게 해로운 사람이 태반이기에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워질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자신감이란 건 가지를 종종 쳐주지 않으면 오만이 되기 십상인데, 이 밸런스를 잡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한 번 아쉬웠어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두 번 오지 않기 시작하면 영영 기회가 오지않는 곳이 프리랜서 업계의 현실이니까. 괜찮은 인간이 되고픈 마음 한편엔 생존본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좋은 클라이언트랑만 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돌이켜보면 그건 행운에 가깝다.) 작품 하나가 아쉬운 커리어일 땐 더더욱.
15년 전쯤 업계의 중심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다른 파트의 일들을 이해하기에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있는 이름들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또 자존심은 너덜너덜해졌을지언정 자존감은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아우라를 갖고 있다.
감이라는 건 비단 창작업에서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유난히 수행능력이 빛나는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감이 좋은 때다. 감은 영원하지도 않지만 한 번 왔다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시 한 번 돌아왔을 때 그것을 펼칠 기회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그리고 그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내 지난날들엔 비굴하고 비참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시선도 많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빛나는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살아남기‘라는 것이다.
금 밖으로 나가면 게임이 끝나는 동그라미 안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휘청거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올 것이다. 그때 볼품없이 두 팔을 휘저어가며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 그 멋없는 순간 스스로 겸연쩍어 선 밖으로 나가떨어진다면 잠깐은 폼날지언정 더이상 플레이어가 될 순 없다.
기억하자. 오래 살아남는 시간 속에 잠깐씩 비참하고 볼품 없는 순간들은 추한 것이 아니란 걸. 아무도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수는 없단 걸.
20대는 물론이요,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감이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채집한 느낌들이 나의 어딘가와 만나서 탄생하는, 그러니까 결국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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