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은 고대 문서와 논리적 부연 설명에 기초한 고전적이고 "난해한" 중세식 학문의 견고함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요란한 기교보다는 자신의 용어로 자연과 인간 조건에 대한 연구를 하자고 제안하며 현학적인 철학에 의존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 P63
그(프랜시스 베이컨)는 "마음은 처음 본 대상을 재빨리 흡수하고 저장하기 때문에 나머지 다른 과정이 어디에서 시작되든 실수는 계속해서 퍼지고 교정되지 않은 채로 지속된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에 대한 비범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지식은 잘 구성되지 않고 "토대가 없는 장엄한 구조물을 닮는다." - P63
사람은 마음의 그릇된 힘들을 존경하고 확대하여 참이 될지도 모를 것들을 무시하거나 파괴한다. 더 많은 도움을 얻어 이 같은 작업을 새롭게 시작하고, 탄탄하고 견고한 토대로부터 과학, 예술 그리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재건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 P63
그는 탐구의 모든 방법들을 검토해 본 후에 그중 귀납적 방법이 제일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귀납은 수많은 사실들을 모으고 그 패턴을 간파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써서 최상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면 우리는 선입견을 최대한 버려야 한다. - P64
베이컨은 학문 분야가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맨 아랫부분에는 자연사가 있고 그위에는 자연사를 포괄하는 물리학이 있으며 맨 위에는 그 밑의 모든 것들을 설명하는, 그러나 어쩌면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힘과 형태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형이상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 P64
르네상스인(전인(全人)에 가까울 정도로 박학다식한 지식과 다양한 재능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 - P64
"이제 서로 평화를 이루고 당신의 눈을 자연으로 돌려 그 자연을 지배하는 통일된 힘을 발견하라. 그리고 자연의 성과 요새에 진격하여 점령하고 인간 제국의 영역을 확장하라." - P64
"무언가를 정직하게 추구하다가 죽는 사람은 피가 철철 나도록 다쳤어도 전혀 아픈 것을 느끼지 않는 사람과 같다." - P67
"인생의 순례 여행에서 나의 영혼은 이방인이었다." - P67
그(베이컨)는 종합을 향한 열정으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다. 그의 탁월한 문학적 재능은 『학문의 진보(The Advancement of Learning)』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종합 능력과 문학적 재능은 계몽 시대의 서막에 가장 필요했던 자질이었다. - P67
지식에 대한 그의 위대한 공헌은 박식한 미래 지향적 지식인의 전범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고전 문헌으로부터 연역 추론을 하고 기계적인 학습을 해야 하는 학문과 결별하고 세계와 교감하는 학문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문명의 미래가 과학에 있다고 선언했다. - P67
그(베이컨)는 실험으로 지식을 계속해서 시험해 보는 것이야말로 학문의 최전선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실험은 현대 과학처럼 통제된 조작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실험은 인문학이 정보, 농업 그리고 산업을 통해서 세계에 변화를 가져다주려면 꼭 사용해야 할 그런 방법이었다. - P68
그(베이컨)는 학문의 커다란 가지들은 끝이 열려 있어서 계속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나는 너에게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기저에 흐르고 있는 지식의 통일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유행하게 된 분야들 간의 뚜렷한 구분을 거부했다. - P68
그(베이컨)는 현상을 기술하되 편견을 갖지 말고 그것들의 공통된 형질을 모아 중간 단계의 일반성을 가지도록 만들고, 그런 다음 상위 수준의 일반성으로 나아가는 것을 귀납의 절차라고 이야기했다. - P68
인간의 이해는 건조한 빛이 아니다. 오히려 의지와 감정이 주입되어야만 ‘과학이라 부를 만한‘ 과학으로 발전한다. - P69
자연과 그 비밀은 시나 우화와 마찬가지로 상상의 자극을 받는다. 결국 베이컨은 우리에게 금언, 삽화, 이야기, 우화, 은유 등을 사용하라고 충고한다. 그것들은 발견자가 독자들에게 진리를 그림처럼 분명하게 전달하는 수단인 것이다. - P69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밀랍으로 만든 서판과 같지는 않다. 서판의 경우 옛 것을 문질러 지우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쓸 수가 없지만, 마음의 경우 새로운 것에 쓰지 않고는 옛것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 P69
그(베이컨)는 정신 과정을 정확히 밝힘으로써 학문의 모든 가지들을 가로지르는 추론 방식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가 말했던 마음의 우상들을 떠올려 보라. 그는 이것을 통해 훈련받지 않은 사상가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를 지적했다. 그 우상들은 실제로 인간 본성을 왜곡하는 프리즘이다. - P69
종족의 우상은 무질서한 혼돈 상태보다는 좀 더 질서가 잡혀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한편 동굴의 우상은 한 개인의 믿음과 열정이 갖는 특이한 성질을, 시장의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유도하는 말의 힘을, 극장의 우상은 철학적 믿음과 잘못된 증거를 의심 없이 수용하는 것을 상징한다. - P70
그(베이컨)는 이런 우상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각자의 주위에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각자가 경험한 실재를 전달하는 최선의 방법을 혼신을 다해 모색하라고 역설했다. - P70
베이컨은 획득된 지식을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했으며 결국에는 과학을 발전시키고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으로서 인문학(예술과 문학을 포함하는)을 철저히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은 넓은 의미에서 시(詩) 혹은 시의 과학이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 P70
베이컨은 질서 정연하게 통합된 학문을 인간 조건 향상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 P70
그(베이컨)는 지식의 통합을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Instauratio Magna)라고 불렀는데 말 그대로 ‘위대한 부흥‘ 또는 ‘새로운 시작‘이다. - P71
그(베이컨)는 위대한 학자에게만 겸손함과 때 묻지 않은 오만함이 감동적으로 공존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 훌륭한 인물이었다. - P71
데카르트는 명확한 연역을 통해 각 현상의 핵심적인 골격만 남기는 과학적 방법을 보여 주었다. 그는 세계는 3차원이므로 우리가 지각한 것을 세 좌표계의 틀에 맞추라고 했다. 이것이 오늘날 데카르트 좌표계(Cartesian coordinate)라고 불리는 것이다. 세 좌표계를 이용하면 어떤 대상이든 길이, 너비, 높이를 정확히 명시할 수 있다. 이로써 수학적 조작을 통해 본질을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 P72
데카르트의 가장 소중한 비전은 지식이 궁극적으로 수학으로 추상화될 수 있는 상호 연계된 진리 체계라는 것이었다. - P72
데카르트는 학문의 제1원리로 방법론적 회의를 주장했다. 모든 지식은 그의 앞에 노출되어 강력한 논리적 틀을 갖춘 시험을 통과해야했다. 그는 부정할 수 없는 유일한 전제만을 허락했다. 그것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널리 알려진 경구이다. - P72
이것은 가능한 모든 가정을 체계적으로 제거하여 이성적 사고의 논리적 바탕이 되고 엄격한 실험을 고안할 수 있는 하나의 공리 집합만을 남기는 것이다. - P73
개별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물리적 부분들의 집합으로서의 세계에 관한 연구, 즉 환원주의 - P73
미적분은 해석기하와 더불어 물리학의 중요한 두 가지 수학 기법이다. 이후에는 화학, 생물학, 경제학에서도 사용되었다. - P73
독창적인 실험가이기도 했던 뉴턴은 과학의 일반 법칙들이 물리 과정의 조작을 통해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프리즘을 연구하다가 빛의 굴절과 색의 관계를 증명했고 이것을 통해 백색광이 여러 색의 빛이 합성된 것이라는 빛의 본질과 무지개 생성의 비밀을 밝혀냈다. - P74
프리즘을 통해 태양 광선이 굴절되면 서로 다른 파장이 무지개색 가시광선 스펙트럼으로 나뉜다. 색 있는 빛들을 다시 반대로 굴절시켜 태양 광선 같은 백색광을 생성할 수도 있다. - P74
뉴턴은 자신의 발견을 응용하여 최초의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다. 이 망원경은 한 세기 후에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 (William Herschel)에 의해 완성되었다. - P74
뉴턴은 1684년에는 중력에 관한 질량ㆍ거리의 법칙을, 1687년에는 세 가지 운동 법칙을 정식화했다. 이 수학적 정식화들을 통해 그는 근대 과학 최초의 위대한 도약을 성취했다. - P74
그(뉴턴)는 코페르니쿠스가 정립하고 케플러가 타원임을 입증한 행성 궤도가 그의 역학 법칙들로부터 유도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의 법칙들은 정확했으며 태양계에서 모래알까지 모든 무생물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었다. - P74
그(뉴턴)에 따르면 우주는 질서 정연할 뿐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신의 웅대한 설계 가운데 적어도 일부분은 종이 위에 몇 줄로 적을 수 있다. 그의 성공으로 인해 과학 행위에 있어서 데카르트적 환원주의는 신전에 모셔지게 되었다. - P74
뉴턴은 마술과 혼돈이 지배하던 곳에 질서를 확립했다. 따라서 계몽사상에 미친 그의 영향은 막대하다. - P74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년, 영국의 시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시로 그를 칭송했다.
자연과 자연법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신이 가라사대 "뉴턴이 있어라!" 그러자 모든 것이 밝아졌다. - P75
중력 법칙과 운동법칙은 강력한 출발점이 되었다. 그 법칙들은 계몽 운동 학자들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뉴턴의 해법을 인간 만사에 적용하면 어떨까? 이러한 착상은 계몽 운동의 대들보 중 하나로 성장했다. - P75
1835년이 되자 아돌프 케틀레는 훗날 사회학이라 불리게 되는 "사회물리학"을 학문의 토대로 제안했다. 동시대인인 오귀스트 콩트는 진정한 사회과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콩도르세를 이어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화학과 생물학에 관해 자기 멋대로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치철학에 관하여 자기 멋대로 생각해도 될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도 결국 아주 복잡한 기계일 뿐이다. 그들의 행위와 사회 제도가 아직은 정의되지 않은 그 어떤 자연법칙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 P75
중국 과학사의 대가인 조셉 니덤(Joseph Needham)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관심은 세계의 전일론적인 속성과 별에서 산 그리고 꽃과 모래에 이르는 존재자들의 조화롭고 위계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자연의 존재자들은 분리될 수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계몽사상가들이 받아들이듯 불연속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인들은 17세기 유럽 과학이 획득한 추상화와 분석적 연구의 출발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 P76
중국에서는 왜 데카르트나 뉴턴과 같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것들이었다. 중국인들에게는 추상적으로 체계화된 법칙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다. 이것은 진(秦) 왕조(기원전 221~206년) 시기에 봉건제가 군현 제도로 전환될 당시, 엄격한 통치 법률을 제정한 법가(法家) 사상가들이 중국 지식인들에게 안겨준 비참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의 엄격한 법치주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어서 개인의 욕망보다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법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 P76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사실은 중국 학자들이 세상 만물을 창조한 인격적인 신에 대한 생각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우주에서 자연을 창조한 이성적 존재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꼼꼼하게 기술한 대상들은 보편 원리를 따르지 않으며, 우주적 질서 내의 존재자들이 따르는 특별한 규정 안에서 움직인다. 말하자면 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 즉 일반 법칙이라는 개념이 꼭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탐색하려는 시도 또한 거의 없었다. - P76
서양 과학이 앞서 나갔던 이유는 환원주의와 물리 법칙을 통해 우리의 감각을 넘어서는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발전은 우주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낯선 것으로 만들었다. 20세기 과학의 부적이라 할 수 있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인간의 마음에는 궁극적으로 낯선 것이다. - P76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Max Planck)를 비롯한 이론물리학의 선구자들이 창안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인류뿐 아니라 외계인들도 알 수 있는 진리이다. 즉 이 이론들은 인간의 마음에만 국한되지 않는, 정량(定量) 가능한 진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확립되었다. 물리학자들은 훌륭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그들은 수학의 도움을 받지 않는 직관이 가지는 한계를 드러내 주었다. 그들은 매우 힘들게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 P77
이론물리학과 분자생물학은 원래 인간에게 잘 맞는 것이 아니었다. 과학적 발전의 대가로 인간은 실재가 인간의 마음으로 쉽게 잡을 수 없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했다. 이것은 과학적 이해의 주요 교의이다. - P77
인간이라는 종과 인간의 사고방식은 진화의 목적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다. - P77
우리는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다른 법칙들과 수치들로 이루어진 다른 우주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 P78
창조 행위는 단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우주들의 부분 집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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