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최재천 교수의《곤충사회》라는 책에서 생태계의 조화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볼 수 있었다. 특정 부분만을 보기보다는 보다 넓고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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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차茶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차에 담겨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차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들도 덤으로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그리고 차茶를 마실 때 쓰는 그릇에 관한 얘기도 나오는데, 그릇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깊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 하자면 내 경우 드립백 커피를 즐겨마시는데 커피를 마실 때 주로 사용하는 컵과 텀블러가 각각 하나씩 있다. 솔직히 겉모습만 보면 그닥 특이할 것 없이 평범하게 생긴 것들이지만,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보니 왠지 모르게 정情 같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 저자도 차茶를 마시는 그릇에서 이와 비슷한 정情을 느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체를 봐야지 어느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소위 과학자니 전문가니 하는 사람들도 한 부분밖에 볼 줄 몰라요. 과학을 맹신하지 말고 자연을 이해해야 합니다. - P238

업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밭에 뿌리는 씨와 같습니다. 이 업이라는 씨는 인간이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게 업의 파장이고 흐름이에요. 이 흐름은 결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 P240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 P242

이 세상 모든 것은 우리가 그것을 눈으로 인식하기 전부터 존재합니다.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해서 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꽃망울 속에 꽃이 들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P244

안 보이는 상태에서 인因을 쌓고, 그것이 드러나 연緣이 되는 것입니다. - P244

눈에 보이는 것은 사라져도 그 안에 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생명은 우주의 영원한 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P244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에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삶을 사느냐, 어떤 삶을 이루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 P245

우리가 몸으로 움직이는 동작과,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으로 하는 생각은 모두 업이 됩니다. 업이라는 것은 하나의 행위입니다. 좋은 행동이라든가, 좋은 말이라든가,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업을 쌓게 돼요. 이와 반대로 행동하면 어두운 업을 쌓게 됩니다. 나쁜 업이 자꾸 되풀이되면 하나의 힘으로 변하게 돼요. 그것을 업력業力이라고 합니다. 혹은 업장業障이라고도 해요. - P245

업력이 커지면 이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억제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 법칙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가게 돼요. 내 정신으로, 내 의지로 억제할 수 없는 힘, 자제할 수 없는 그런 힘이 되어 버립니다. - P245

모든 것이 그렇듯 문화나 제도가 사람 위에 있을 수 없어요. 차를 마시는 것도 사람, 차를 즐기는 것도 사람이지, 차가 규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에요. 차는 그냥 마시는 것이고, 그냥 즐기는 것입니다. 과도한 격식은 경계해야 합니다. - P254

흔히 차를 기호품嗜好品이라고 하지요. 기嗜는 즐기다, 호好는 좋다, 이런 뜻입니다. 좋아서 즐기는 거예요. 하지만 적당히 즐겨야지 이를 너무 지나치게 가까이 하면 해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그렇지 않습니까? - P256

차는 한마디로 청적淸寂의 세계입니다. 청淸은 맑다는 뜻이고 적寂은 고요하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단순히 맑고 고요하다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의 적寂은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모든 복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뜻합니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 말하자면 침묵의 세계예요. - P258

차를 마시는 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생잎을덖은 후 마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발효를 시킨 후 마시는것입니다. 녹차가 전자이고, 홍차나 보이차 같은 것이 후자입니다. - P259

좋은 차는 빛깔과 향기와 맛을 두루 갖춰야 돼요. 이것은 꼭 차만이 아닙니다. 음식도 그래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하더라도 음식 빛깔이 죽어 있으면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잖아요. 또 그 음식 나름의 어떤 향취가 있어야 돼요.
물론 맛도 있어야 되지요. 이렇게 빛깔과 향기와 맛을 두루갖춘 것이 좋은 차입니다. - P259

너무 쉽게 얻으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니까요. - P262

두 번째로 올라온 찻잎이 좋습니다. - P264

차 생산에는 수량水量도 중요한데, 비를 충분히 맞으면 부드러워집니다. 그래서 두 번째 딴 찻잎이 좋다고 하는 겁니다. 이때 제대로 맛이 숙성이 돼요. 처음 나온 찻잎이라고 해서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장삿속에 속지 마세요. - P264

찻잎은 적기에 따야 돼요. - P264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따는 차가 제일 좋습니다. - P264

찻잎은 아주 섬세해야 돼요. 찻잎이 무슨 고춧잎처럼 커지고 그러면 섬세한 맛이 없어요. 섬세한 차는 양이 많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비싸요. - P264

처음 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비싼 차 사서 마시지 않아도 돼요. 처음에는 비싼 거 마셔 봐야 뭔지 몰라요. 나중에 차 맛을 좀 알게 되면 그때 사도 됩니다. - P264

차는 보관도 잘해야 합니다. 잘못 보관하면 아무리 좋은 차도 그 맛이 변해요. 녹차는 일 년 지나면 못 먹습니다. - P264

보관이 잘된 차가 좋은 차입니다. 보관은 냉동실에 해야 돼요. 냉장해도 안 돼요. 그런데 차 파는 집에 가 보면 냉동 시설이 없는 곳이 많아요. 그러면 엽록소 보존이 안 돼요. 엽록소가 파괴되면 차의 싱그러운 맛이 사라집니다. - P265

물도 중요합니다. - P265

우리는 그냥 수돗물을 쓰면 됩니다. 정성을 좀 부린다면 하루쯤 받아 놔요. 그러면 침전물도 거를 수 있고 냄새도 사라져요. - P265

차를 우릴 때는 물을 충분히 끓이세요. 그렇다고 또 물을 너무 오래 끓이면 안 돼요. 그러면 좋은 성분이 파괴됩니다. - P266

물이 끓으면 다기를 가십니다. 다기를 가신 후에는 물을 알맞게 식혀야 돼요. 바로 뜨거운 물을 부어 버리면 데치는 거랑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건 참 맛없습니다. 찻잎이 섬세할수록 물을 잘 식혀야 돼요. - P266

우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것에 묘미가 있어요. 너무오래 두면 쓴맛이 일고, 빨리 따르면 덜 우러나요. - P266

홍차 같은 것은 한 잔 우려 마시면 그만이지만, 녹차는 석 잔까지도 우릴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물을 가득 붓지 말아야 합니다. 잔의 한 절반쯤 차도록 부어야지 처음부터 그냥 가득가득 부으면 먹기 전에 배부르다니까. 한 절반쯤 붓는게 좋아요. 그래야 그 차에 운치가 담겨요. - P267

마시다 보면 저절로 요령이 생겨요. - P267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차 한잔 마시려면 그런 정성, 그런 집중 같은 게 있어야 된다, 그런 정도로 이해하면 돼요. 그래야 차 맛을 알아요. 차를 마셔야 되겠다고 하면 조금은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내 심성이 맑아집니다. - P267

차를 좋아하게 되면 그릇을 따지게 됩니다. "그릇이 있기에 차를 마셔야 된다." 이런 말도 있어요. 좋은 그릇, 아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그릇이 있으면 차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뜻이에요. 물론 그릇이라는 건 차를 마시기 위한 도구이지만, 차를 마시다 보면 차만 훌쩍 마시는 게 아니고 다기를 매만지는 즐거움이 있어요. 차를 마시다 보면 그릇을 보는 심미안審美眼이 열립니다. - P268

차를 마시다 보면 묘한 것을 알게 돼요. 바로 그릇도 쉬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그릇도 사람처럼 쉬고 싶어 해요. 그걸읽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안 그러면 나중에 꼭 그릇이 깨지더라고. 그릇도 쉬게 해 줘야 돼요. - P269

엄마들도 아이 표정을 보면 아이 기분이 어떻다는 걸 그냥 알 수 있잖아요. 그렇듯이 그릇도 표정을 짓습니다. 다기가 됐건 항아리가 됐건 그릇이 쉬고 싶어 할 때는 쉬도록 해 줘야 돼요. - P269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 너무 피로해서 쉬고 싶어 하면 그걸 읽을줄 알아야 해요. 그릇에 대한 것이든 사람에 대한 것이든 무감각한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해요. 사랑을 지닌 사람만이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 P269

그릇에는 두 개의 생애가 있어요. 하나는 전반생前半生 이고 하나는 후반생後半生입니다. 도공이 그릇을 막 만들었을 때, 그때 그 그릇의 생은 전반생입니다. 이때는 절반의 생명밖에 없습니다. 그릇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릇을 쓸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때 후반생이 부여됩니다. - P269

처음에는 만든 사람의 입김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조금 낯설고 생소합니다. 그러다 그릇의 아름다움을 내가 발견하고 그릇의 쓰임새를 알면 그때부터는 내 따뜻한 정이 그릇에 들어갑니다. 내가 혼을 불어넣는 거예요. 그러면 그릇이 달라집니다. - P270

우리가 아무렇게 막사발로 쓰던 것을 다기로 써요. 그릇이 지닌 아름다움, 새로운 생명력을 캐낸 것이에요. 만든 사람은 그런 걸 생각을 안 하고 만든 것이지만, 쓰는 사람이 그걸 발견해 낸 거예요. 그걸 발견해 내는 눈을 가진 거예요. - P271

사람도 그렇잖아요. 누군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짝을 제대로 만나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좋은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요. - P271

여행을 할 때 어디를 가느냐,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와 함께 가느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여행길에서 스승을 만날 수도 있고 원수를 만날 수도 있는 거예요. - P271

여행길이 그런 것처럼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길벗을 잘 만나야 돼요. 그리고 또 내가 좋은 길벗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록 전반생은 힘들고 어려웠더라도 후반생이 빛이 납니다. 스승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 P271

차의 성질이 그러하듯이 다기도 단순하고 수수한 것이 좋습니다. 수수해야 돼요. 어떤 그릇은 처음 보면 화려하고 예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그릇들은 쓰다 보면 싫증이 나기도 해요. 수수하고 무던한 거, 그게 좋은 거예요. 그런 그릇이 오래갑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좋은 친구는 담담한 차와 같고 수수한 다기와 같습니다. - P271

그릇도 수수하고 무던한 것, 마음 편하게 두고 쓸 수 있는 것이어야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가닿았다는 뜻입니다. - P272

차를 마실 때는 사람이 많으면 안 된다고 해요. 사람이 많으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시끄러우면 아늑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즉 아취雅趣가 줄어듭니다. - P274

차를 마실 때, 나 홀로 마시는 것을 이속離俗이라고 해요.
세속을 떠났다는 의미예요. 차를 마시는 가장 높은 경지입니다. 또 둘이 마시면 즐겁다고 해요. 서넛까지도 괜찮아요 그런데 다섯이 넘어가면, 이건 참 곤란해요. 그때부터는 차 마시는 거 아니에요. - P274

번잡하게 여럿이 먹으면 그건 차한테 미안한 일입니다. 차는 좋은 친구와, 마음 활짝 열어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와 마실 때 즐겁고 좋은 겁니다. 이 즐거움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요. - P276

또 차를 마실 때는 모든 일손을 놓아야 돼요. 마음이 한가해야 됩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기도 매만지고 차의 빛깔과 향기도 음미해 보세요. - P276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눌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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