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휘트니 미술관이 다운타운으로 이사하면서 비게 된 건물을 메트가 분관으로 사용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 분관의 공식 명칭은 ‘메트로폴리탄 브로이어 미술관‘ 인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기존의 메트와는 달리 깔끔한 분위기가 나는 건물이라고 한다. p.271에 밑줄 친 것은 브로이어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품들 중 일부다.

뒤이어 읽다가 p.275에 밑줄 친 부분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서 느낀 것은 어떤 의미있는 결과물과 더불어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이었다.

때론 의도와는 달리 그 과정 중에 넘어지거나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실패 또한 궁극적으로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실패한 것은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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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읽다가 ‘조르나타‘ 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본문에 별도로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검색창에 검색해보니 이탈리아 어로 ‘하루의 일‘ 이라는 것을 지칭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본문에서 미켈란젤로가 완성한 천지창조 천장화와 벽화의 경우 570일이 걸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조르나타‘라는 용어를 써서 표현하자면 570 조르나타만큼 일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듯하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새로운 용어에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였기에 나름대로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arer (르네상스 시기의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판화가. 국내에는 소묘 <기도하는 손Betende Hinde>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가 반쯤 그리다 만 <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는 잉크로 스케치된 예수의 얼굴에 살이 덧붙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 P271

앨리스 Alice Neel의 <흑인 징집병Black Vietnam War Draftee〉은 초상화 속 인물이 단 한 번 모델을 서고 사라지자 작가가 이 자체로 완성된 그림이라고 선언한 작품이다. - P271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실력과 인내심을 발휘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냈을때 결국 그것이 넘칠 정도로 좋은 것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 P272

무엇이 됐든 그것을 정말로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지, 수월해 보이는 외양을 지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우리는 잘 안다. - P272

내가 자랑스러웠던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꽤 자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 듯하다. - P272

‘몹수스가 니사와 결혼을 하는데, 사랑에 빠진 연인이 바라지 못할 게 뭔가‘는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 P273

곤란한 상황 속에서라도 최선을 다해 기쁨을 찾아내자 - P275

<더러운 신부 혹은 몹수스와 니사의 결혼식The Dirty Bride of The Wedding of Mopsus and Nisa> - P273

내가 뜻밖으로 느꼈던 것은 거장의 ‘지문‘을 그토록 부자연스럽고, 일그러지고, 불완전하고, 초보적인 것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 P275

완벽한 외양을 갖춘 완성품만으로는 예술에 대한 배움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에 들어간 고통을 잊지 않아야 한다. - P275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궁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보는 데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P275

그리고 사실 평생 처음으로 나도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엄청나게 무질서하고 즉흥적인 과정을 밟으면서 두 명의 작은 인간과 그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완벽하지도,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겠지만 말이다. - P275

메트 브로이어 미술관은 결국 계약 기간을 끝내지도 못하고문을 닫았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관람객 숫자가 고르지 않다는 이유로 불과 4년 만에 폐관했다. 메트처럼 엄청난 기관이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면 실험을 해야 하고, 실패를 하기도 한다. - P275

만일 어떻게든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랬듯이 높게 쌓아 올린 비계 위에 서서 턱을 치켜들고 설 수 있다면 거장이 하루에 얼마만큼의 작업을 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P280

매일 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 giornata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 P280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담은 조르나타 네 개, 팔을 뻗고 있는 신도 조르나타 네 개 조각들을 세어보면 미켈란젤로가 붓과물감통과 모래, 회반죽 자루를 가지고 흙손(이긴 흙이나 시멘트 등을 떠서 바르는 연장)으로 그 높은 곳에서 570일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280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예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날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더없이 전념했기 때문이다. - P280

거장 마사초Masaccio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출신 화가. 당시에는 새로운 기법이었던 원근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인물화와 프레스코화를 남겼다) - P281

미켈란젤로는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에게 심한 매질을 당했다. 부오나로티 가문은 빈털터리였지만 귀족이었고 그의 아버지 로도비코는 아들이 손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했다. 그물처럼 교차하는 선들로 세심하게 공을 들여 음영을 표현한 작품을 보면서 로도비코가 한 가지 면에서는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업은 육체노동이었다. 반복적이고 지루하며 몸을 쓰는 노동, 숙련이 가능한 노동인 것은 확실하지만 지름길도 없고, 인내심을 가지고 한 획 한 획긋는 것 말고는 일을 진척시킬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겸허한 작업인 것이다. - P282

세상은 쉽게 그릴 수 있는 모델이 되어주지 않는다. 안전한 길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 차례 시도해서 다듬어 놓은 방식을 통해 복잡함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위험한 길은 시각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것을 펜으로 표현할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방법이다. - P283

미켈란젤로는 아마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대상과 사랑에 빠졌던 듯하다. 바로 약 6백 개의 근육과 약 2백 개의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 말이다. 이 전시실에는 그가 자신의 눈과 손과 두뇌에 의지해서 생명력을 불어넣은 인간의 몸이 있다. - P283

"결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 P284

‘리비아인 시빌(시빌sibryl 또는 시빌라sibylla는 고대 그리스 문화권에서 신탁을 받는 예언자를 뜻한다.)‘ - P284

종이 위의 무엇 하나 그냥 그린 건 없다. 한 획 한 획마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는 에너지와 야심과 헌신이 깃들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빈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모든 근심을 잊고 혼신의 힘을 바쳐 주어진 과제를 해냈고, 씁쓸한 불평 따위는 일이 끝난 후에나 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데 이보다 나은 방법이 또 있을까? - P287

대부분의 관람객이 미켈란젤로가 70년 정도 걸려 완성한 작품들을 ‘끝내는데‘는 한 시간 가량이 걸린다.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미켈란젤로의 성미를 아는 나로서는 그가 이 사실을 알면 꽤 짜증을 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전쟁 관련 소묘만 해도 수백 시간을 소비한 작업들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재미있는 여흥에 불과하다. - P289

조르조 바사리 (메디치 가문의 후원하에 다양한 프레스코화를 제작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우피치궁의 설계 등을 맡았던 건축가. 1550년에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전기를 담은 『미술가 열전』을 출간하면서 후대에는 미술사학자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P289

로마의 지붕들 위로 높이 솟아오른 돔을 짓는 것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바로 그래서 우리가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이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 것이다. - P290

소박한 그림에서 그는 그저 무지개 모양을 거듭해 그리면서 마음에 드는 곡선을 찾으려 하고 있다. 아무리 위대하다 칭송을 받는 그일지라도 결국 어린아이 같은 연습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는 사람인 것이다. - P290

80대에 접어들어서도 미켈란젤로는 사소한 실수로 성 베드로 성당의 완공이 늦어지게 된 일로 크게 자책했다. "수치심과 슬픔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라고 그는 당시를 기록했다. - P292

1490년대에 제작된 그의 <피에타 Pieta> (미켈란젤로의 걸작이며 피에타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된 작품)가 거장의 명성에 걸맞는 걸작이라면 이 <론다니니 피에타 Pieta Rondanini> (미켈란젤로의 유작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의<피에타>와는 달리 성모가 예수를 선 채로 끌어안고 있는 구도 때문에 축 늘어진 예수의 몸이 부각되어 더 처연한 느낌을 자아낸다)에서는 고통과 내밀한 슬픔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 P292

앨라배마주의 지스 벤드에서 퀼트를 만드는 수십 명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도 읽었다. ‘어렵다‘는 표현이 너무 자주 나와 후렴구처럼 느껴졌다. "어려움에 처했어요...", "어려운 시기였죠...", "어려운 길을 가야 했어요...",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일한 건 주님도 아실 거예요...", "쉽지 않았어요. 어려웠죠." - P293

루시는 밭에서 다른 일도 했다. 날마다 밥을 먹는 시간에 바느질할 퀼트 재료를 조금씩 가지고 밭으로 나간 것이다. 대부분의 퀄트 작품은 블록 아홉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루에 블록 하나쯤 완성하면 만족했다. 루시 T. 버전의 조르나타였다. - P294

캘리코(날염을 한 거친 면직물) - P294

로레타가 천 조각들을 배열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녀는
"바짓가랑이 뒷부분처럼 해지지 않은 천은" 뭐든 다 사용했다고 했다. 어쩌면 바느질을 시작하기 전에 "헌 셔츠와 치맛자락, 반바지의 바짓가랑이 부분에서 구해낸 조각들을 모두 펼쳐서 배열을 해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날마다 당장할 부분만을 생각하며 작업을 해나가다가 어느 날 예술품을 완성하는 방법으로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 P301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 - P302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 - P302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 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 P302

이제는 내 삶이 지금 보이는 지평선 너머까지 뻗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의 관록은 갖추게 되었다.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테고, 그 방향을 나 스스로 잡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내 삶은 여러 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그 말은 현재의 챕터를 언제라도 끝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 P305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전시실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던 한때가 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미술관 밖으로 휘리릭 날아가서 몸과 마음이 움찔거리고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 더이상 경기장 밖에 서서 게임을 잠자코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 P306

전시실을 찾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 큰 도시와 넓은 세상을 어떻게 만나게 해줄지를 계획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두려우면서도 흥분되는 미래다. 솔직히 말해서 코딱지만 한 우리 집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일만으로도 벅차고, 바깥 세상과 다양한 관계를 맺기 위해 더 강인하고 용감해질 방법을 배우고 싶다. - P307

나는 가이드를 하기 위해 조사하고, 투어 내용을 적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준비를 하는 내가 얼마나 신나 하고 있는지 문득 깨닫는다. 이야기를 하는 일, 나만의 것을 만드는 일이다. - P307

‘브링리, 무슨 말이야, 오늘이 마지막 근무잖아! 한군데 처박혀서 보초를 서라고 할 수는 없지. 전시실들을 쭉 둘러보면서 작별 인사를 해 정 돕고 싶으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친구들 자리를 잠깐씩 지켜주면 돼. 건투를 빌어요, 브링리 씨! 다음!" - P308

"탈출하는 데 성공했구먼, 젊은이. 게다가 아직 머리카락이 남아 있기까지 하잖아." - P309

이제 곧 ‘전 직장‘이 될 이곳이 본질적으로 사람들을 입장시키고 자유롭게 헤매고 다니는 것을 허락한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친구들을 찾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모두들 보이는 곳에 서 있을테니. - P309

전시관 몇 개가 보수공사를 거쳤고, 수백 개의 새로운 전시물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크게 보면 15세기 예술품들이 10년 더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메트가 달라 보인다면 그것은 그곳을 보는 사람의 눈이 변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P310

이런 전시실에서는 천 번을 둘러봐도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동안 내가 이 벽 너머의 세상을 얼마나 조금밖에 보지 못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 P311

앙시앵 레짐 시대(15세기에서 18세기 후반에 걸친 프랑스의 왕정시대, 대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 P311

나는 이 미술관을 떠나고 나면 나이가 나보다 곱절이나 많은 세상 반대편에서 태어난 사람과 좋은 친구가 되는 일이 일상적이지 않은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메트 경비원들 사이에서 그런 일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 P313

경비 일이라는 것이 "아무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종일 걸려서 해야 하는 일"이라며 우리끼리 농담을 하곤 했다. - P314

다시 찾게 될 때 나는 방문객일 것이고, 여덟 시간에서 열두 시간 동안 한곳에서 서성거리는 대신 언제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음 전시실로 옮겨갈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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