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생각을 통해 이런저런 것들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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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중간중간 저자의 글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랑이 결코 무게로 느껴지지 않기를,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는 게 지금까지 오래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거 같아요. 경험이 누적되서 그것이 속에서 웅성거려야 해요."

눈에 안 보일 뿐 있기는 있는 것

암처럼 고약한 게 정말 두려워하는 건, 목숨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아니라 저런 해맑은 무욕이 아닐까

흙과 자유는 아이를 싱싱하고 생기있게 한다.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해야 하는 건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

작가에게 쓸 수 없는 원고를 조르는 건 빈털터리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다. 돈은 꾸어서라도 줄 수 있지만 원고란 그런 융통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라는 돈을 못 줄 때는 모질고 독하게 굴어야 하지만, 원고는 못 써 줄 때일수록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나의 작가적 관록(?)이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식물이 자라는 걸 바라는 것처럼 가망없는 일

앞에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연히 내 집이 제일이다. 자주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내 집에 돌아올 때의 감격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집은 편안한 만큼 헌 옷처럼 시들하기가 십상인데 그 헌 옷을 새 옷으로 만드는 데는 여행이 그만이다.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거기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게 신의 부르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언덕방에 들어가자 곧 살 것 같았던 것은 적당한 무관심 때문이었다.

적당한 무관심이 숨구멍이 돼 주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손님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공경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해주는 친척집보다 불친절한 여관방을 차라리 편하게 여기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필요한 것이 알맞게 갖춰져 있고 홀로의 시간이 넉넉히 허락된 편안한 내 방이 언제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릿한 향수와 깊은 평화를 느낀다.

사람 사는 형편엔 수많은 층수가 있고

나에게 시골 맛이란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의미했다.

멀미 중 사람 멀미가 제일 고약한 것은 평소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던 인류애니 인도주의니 하는 것이 실은 얼마나 믿을 게 못 된다는 자기혐오 때문일 것이다.

어찌 이다지도 보기 좋을까. 평범한 시골이 마치 신이 정성을 다해 꾸민 정원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기도 하지만 위대한 영혼 또한 자연의 정기가 되어 자연을 빛나게 한다.

정기가 없는 자연은 그냥 경치일 뿐이었다. 경치는 아무리 좋은 경치라해도 눈으로 보는 것으로 족하지 마음속으로 스며오진 않는다.

너무 쉬운 대답은 믿을 게 못된다.

그래, 이왕 얹혀 가는 거 동행에게 부담이나 안 되게 먼지처럼 얹혀가자. 먼지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먼지처럼 자유롭게.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시도 한국인임을 잊을 수 없었음은 일종의 강박 관념이었다. 경제, 문화적인 선진국을 처음 보았을 때의 열등감이나, 하나라도 더 보고 배워야지 싶은 사명감, 흉잡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자존심 등이 다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콤플렉스였다.

남의 정치체제나 문화, 국민소득 등을 우리와 비교하지 않고 나름대로 사는 양상으로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서로 일정을 의논해서 계획을 세우는 일을 연변식으로는 "회의하여 조직한다" 라고 말했다.

우린 자고로 ‘목구멍이 포도청‘ 이란 말로 밥줄을 위해선 철조망 밑을 기는 절대적인 비굴까지도 합리화해 왔다.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달린 밥줄은 과연 중요하다. 신성하기까지 하다.

표리(表裏)가 부동한 건 결코 존경이 아니다. 또 남을 존경함으로써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진정한 존경은 아니다.

"내 더러워서....." 라는 욕지거리가 목구멍에서 가래처럼 끓는 걸 참고 떠는 아양과 존경을 구별 못하는 윗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다.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건 기독교 정신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이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란 바로, 참으로 그리고 골고루 민주적인 사고와 생활 방법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어떤 자리에서나 극단적인 편견에 치우친 말일수록 목청이 높다. 극단적인 편견이란 남의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걸 나타내는 목소리까지도 우선 배타적이다. 남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배제하려면 제 목청을 높일 수밖에 없다.

남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으면 그건 이미 극단적인 편견이 아니다. 극단적인 편견이 때로는 옳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게 혐오감을 주는 이유는 바로 그 폐쇄성 때문에 그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만이 절대로 옳다는 극단적인 편견이란, 목청이 실제로 높지 않더라도, 온당한 양식(良識)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피곤하게 만들어 결국 두 손을 들고 말게 만드는 폭력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 P129

폭력이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마음을 열고 얼마든지 남의 옳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살찌우려 들지만 편견은 남의 옳은 생각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이다. 결국 폭력이나 편견이나 똑같이 허세일 뿐 진정한 힘은 아니다. - P129

정말 두려운 건 목청 높은 편견이 아니라, 그 목청에 대세를 맡겨 버리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 P130

우린 예로부터 말 같지 않은 말이나 사람답지 않은 사람과는 대항해서 시비를 가리느니보다는 슬쩍 피하는 걸 점잖은 사람이 지킬 미덕으로 여겨 왔다. 여북해야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 P130

그러나 나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 중에서 이 속담만은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똥을 피하는 건 더러워서일 뿐 무서워서가 아니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변명은 될지 몰라도 여럿이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 대해선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너도나도 똥을 피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똥통이 되어 버릴 것이 아닌가. 똥은 피할 게 아니라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게 수다. - P130

인간답게 사는 길도 나만 인간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인간답지 못하다. 이웃이 까닭 없이 인간다움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나만은 오래오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어리석음이다. - P130

법 대신 편법을, 원칙 대신 변칙으로 사는 걸 은연중 권장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된 사회다. 마찬가지로 특혜나 특사가 자주 있어야 하는 사회도 인간다움이 그만큼 자주 짓밟힌 사회라는 혐의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인권만은 특혜로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 P136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일매일 크리스마스만 같았으면 좋겠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8월 한가위만 하여라"라는 우리의 옛 속담은 8월 한가위의 풍요를 말해 주기보다는 8월 한가위를 뺀 허구한 날의 허리띠를 졸라맨 궁핍을 말해주듯이 그 노인의 말은 크리스마스의 기쁨보다는 크리스마스를 뺀 날들의 고독을 더 실감 나게 말해 주고 있었다. - P153

어머니가 내 집에 오셔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계신 걸 보는 것은 슬프다. 어머니가 보고 계신 건 창밖의 풍경일까? 당신의 지난날 일일까? - P154

창밖의 풍경도 지난날도 하염없이 흐르고 차디찬 죽음의 예감이 우울하게 서린 어머니의 노안(老眼)은 크나큰 비애다. - P154

나의 어머니가 보기 좋을 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행복해 보일 적의 어머니가 제일 보기 좋다. - P154

어머니가 참으로 행복해 보일 적은 입지도 않으실 비단옷을 해 갔을 적도 아니고, 용돈을 드렸을 적도 아니고, 고기를 사갔을 적도 아니다. 그런 효도는 평상시의 무관심에 대한 일시적인 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어머니는 잘 알고 계신다. 양로원 노인들이 크리스마스가 1년에 한 번밖에 안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듯이. - P154

그래서 그런 일시적이고도 물량적인 효도를 받으실 때의 어머니는 차라리 더 쓸쓸하다. 어머니가 정말 행복해 보일 적은 무릎으로 엉겨드는 증손자를 어루만지실 때다. 그 어린놈은 그 노인의 얼굴이 늙어서 보기 싫다는 것도 그 노인의 위치가 무력하다는 것도 아직 모른다. 따고 말랑하고 정이 흐르는 손길이 본능적으로 좋아 따르고 있을 뿐이다. - P154

내 어머니뿐 아니라 어떤 노인도 어린 손자와 함께 있을 때 슬프지 않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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