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밑줄 친 글은 ‘어릴 때 살던 동네‘ 라는 제목의 글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예전에 다녔던 초등학교에 성인이 되고 난 뒤 갔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초등학생일 때는 그 학교 운동장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성인이 되고 난 뒤 가서 본 그 학교의 운동장은 예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난 세월동안 내 몸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별도로 공사를 하지 않는 이상 운동장의 크기가 급격히 작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공간은 항상 사람의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살던 곳에 가서 커져버린 나의 몸을 끼워 넣어보는 것은 마치 성장기에 작년에 입던 옷을 입고서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03

같은 크기의 몸이라도 마음이 커져서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지금의 내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 - P203

조만간 시간을 내서 옛 동네 혹은 첫 키스를 했던 장소를 혼자 찾아가보라. 달라진 몸과 마음으로 다른 공간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내가 보일 것이다. - P203

도시에서 데이트하기 좋은 공간을 꼽으라면 단연 계단이다. 계단은 관계를 쌓는다. - P204

계단은 권력의 공간이기도 하고 미묘한 관계를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고 센슈얼한 공간이기도 하다. - P205

연인과 키스를 할 때 가능한 한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하라고 권하고 싶다. - P206

같은 인물도 조명에 따라서 다르게 나온다는 것은 셀카를 찍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 P206

기둥이라는 건축요소는 참 묘하다. 아무것도 없으면 더 좋을 것 같지만 어떤 때에는 빈 공간에 기둥이 하나 박혀 있으면 그 공간이 내 영역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 P208

벤치는 두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해준다. - P209

벤치도 등받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른 공간을 연출한다. 등받이가 없으면 잠시 앉았다가 금방 일어나서 가야 하는 벤치이고, 등받이가 있는 벤치는 느긋하게 서로에게 기대어 앉을 수 있는 벤치다. 연인은 등받이가 있는 벤치에 앉아야 한다. - P209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의 공간들을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채색을 해야 한다. 채색을 하는 붓은 전봇대 같은 기둥이 될 수도 있고, 가로등일 수도 있고, 의자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정도의 변화는 여러분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 P209

현대인이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둥근 천장을 종종 경험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우산 속이다. 우산 속은 둥그런 돔 건축의 천장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우산 속에서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 P211

연인 사이에서는 우산을 같이 써야 더 가까워진다. 같은 집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기 전까지 같은 공간 안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우산을 쓰는 것이다. 연애의 진도를 뽑고 싶다면 비오는 날 우산을 하나만 들고 가라, 연인과 일반인의 경계는 비 오는 날 우산을 하나로 쓰고 가느냐 둘이 따로 쓰고 가느냐의 차이다. - P211

건축에서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감시를 받는 공간은 안전한 공간‘이 된다는 점이다. - P215

한강시민공원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2초 텐트를 사는 것이다. 2초 텐트는 주머니에서 꺼내던지면 2초 만에 펴지면서 완성되는 텐트를 말한다. 이 시대에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이 텐트를 치면 이 도시 속에 나만의 집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드래곤볼> 만화에 나오는 캡슐 주택 같은 느낌이다. - P216

공원 운영자는 텐트 벽면의 2분의 1만 개방하면 그림자막 용도로 텐트를 허용해준다. - P217

텐트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재료다. - P218

우리의 몸을 감싸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옷과 자동차와 건축물이다. 이들은 재료상으로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 옷은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져 우리 몸을 부드럽게 감싸지만, 자동차는 주로 금속으로, 건축물은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들어진다. 모두 딱딱한 재료다. 그래서 공간도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다. - P218

텐트는 옷과 비슷한 천으로 만들어진다. 손으로 밀면 모양이 변하는 변형 가능한 부드러운 재료다. 빛도 어느 정도 투과된다. - P218

텐트는 자동차나 건축물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변형 가능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바람이 불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텐트가 부풀어 오르거나 휘는 모양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텐트는 다른 딱딱한 건축과는 다르게 자연 속에 안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 P218

어디에 펼쳐도 텐트는 평온한 공간을 만든다. 비결은 둥그런 천장에 있다. 일상의 건축에서 경험하는 모든 천장은 평평하다. 둥근 천장은 대성당 돔 밑에 가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 P219

둥그런 곡선이 있다면 곡선의 중심점이 있는 쪽에 있느냐, 반대편에 있느냐에 따라서 경험하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곡면 안쪽에 있으면 더욱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가 우리를 안아줄 때는 팔을 펴서 둥그런 형태를 만든다. 곡면 안쪽에 서게 되면 팔에 안긴 것처럼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 P219

애석하게도 현대인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직선이고 평평하다. 건물의 벽면도 평평하고, 천장도 평평하다. 그러니 도시가 무표정의 차가운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 P219

연애에 성공하려면 상대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라는 말이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흥분이 돼서 사랑할 때 심장이 뛰는 것과 비슷한 심장 상태가 되어 뇌가 옆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 P223

구불구불한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걸어도 계속해서 장면이 바뀐다. 변화가 많으니 걸어도 지겹지가 않다. - P228

덕수궁 담장은 양면성을 가진다. 안쪽에서 보면 담장은 주변의 자동차를 가리는 가림막이다. 그런데 반대편 쪽에서 덕수궁 담장을 따라 걸을 때에는 나를 가려주는 안전장치가 된다. 오히려 궁궐은 하나도 안 보이고 왼편의 근대 건축물들과 정원들이 연속적으로 보인다. 같은 담장이지만 담장의 어느 쪽에 서 있느냐, 담장을 멀리서 보느냐, 담장을 따라서 걷느냐 등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담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 P231

건축은 나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 P231

엑스라지XL 사이즈를 느끼길 원한다면 테헤란로, 라지L는 도산대로, 미디엄M은 정동, 스몰S은 인사동, 엑스스몰XS을 느끼려면 익선동을 추천한다. - P233

공장은 거대한 기계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기둥 구조로 되어 있고 천장이 높다. - P235

공장 건물은 뭐든지 변형해서 쓰기에 편리하다. - P235

젊은이들이 클럽에 가는 건축적 이유 중 하나는 어두운 데서 나를 적당히 은폐하고 다른 이성을 훔쳐볼 수 있어서다. - P236

클럽은 노출을 할 수 있는 곳이면서 관음증을 만족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 P236

클럽이 붐빌수록 단위 면적당 인구밀도가 높아진다. 다른 말로 이성과의 거리를 더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 P236

클럽은 사람이 인테리어다. 클럽 입구에서 들어오는 손님을 고르는 문지기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할 수도 있겠다. - P239

클럽에서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도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귓속말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나 하는 것이니, 클럽에서는 누구든 순식간에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다. - P239

건축에서 물은 경계의 의미가 강하다. 보통 구분된 공간을 만들고 싶을 때 건축에서는 경계에 물을 넣는다. - P248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공간은 구분된 특별한 공간이다. 연결이 단속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P249

계단은 벤치 없는 이 도시 속에서 또 하나의 의자다. - P251

같은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 다른 장소로 돌변한다.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은 우리의 일상에 배경음악을 깔아주어 평범한 공간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만든다. - P254

같은 노래를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듣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시각적 경험과 청각적 경험을 같이하게 되는 이 사건은 두 사람의 마음을 같은 주파수로 공명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 P255

요즘은 휴대폰에 플레이리스트를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플레이리스트를 교환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와 댄처럼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도시를 걷는 것은 두 사람의 마음과 역사를 교환하는 것이다. 물론 서로 호감이 가는 사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아무에게나 그러자고 하면 뒷감당은 본인 몫이다. - P255

지금의 현대 도시민은 상어와 같다. 부레가 없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계속 헤엄을 치고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우리는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계속 움직여야 한다. - P257

인도 위를 걷거나 차를 타거나 산을 가거나 도시 속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는 두 곳이다. 도서관과 벤치, 그중 벤치는 야외 공간에서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한다. - P257

꽃꽂이가 되어 있는 공간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고 준비된 공간이다.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누군가가 옷을 열심히 골라서 입고 화장도 하고 기다려준 것 같은 느낌이다. 꽃꽂이를 한 공간은 나를 위해 단장을 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 P260

누군가가 나에게 잘보이고 싶어 한다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 P260

보통 동그란 테이블은 위계가 없다. 반면 직사각형 테이블에서는 좁은 쪽에 앉은 사람이 더 권력을 갖는다. 그래서 아더왕의 원탁의 기사들은 서로간에 위계가 없이 평등함을 상징하기 위해 원탁에서 모였다. - P263

동그란 테이블의 또 다른 장점은 인원수를 가변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페에서 동그란 테이블에 네 명이 앉아 있다가 한 명 더 오면 의자를 테이블에서 조금 뒤로 빼서 원의 지름을 키워 한명 의자를 더 끼워 넣기만 하면 된다. - P263

네모난 테이블에서 가장 대화가 많이 일어나는 자리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은 사람 사이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테이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으면 좋다. - P263

사람 간의 친밀함을 만드는 거리는 45센티미터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 P263

모서리에 앉을 때도 왼쪽 얼굴을 보여주면 더 좋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왼쪽 얼굴이 오른쪽 얼굴보다 더 멋지다고 한다. 양정무 미술사 교수에 따르면 그런 이유에서 초상화는 모두 왼쪽 얼굴을 그린다고 한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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