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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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책의 마지막 파트인 수학 파트 및 후기 부분에 대해 독자인 나의 생각을 곁들여 리뷰해보겠다.


수학 파트를 읽기 전 과학에 무지한 독자인 나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것은 ‘책 제목이 엄연히《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인데 왜 수학에 대한 얘기를 책에서 다루지?‘ 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본문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풀릴 수 있었다.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과학자는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선호한다.‘(p.262)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왜 수학 파트가 과학을 주로 다루는 이 책에 함께 수록되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수학은 이 책의 앞선 파트에서 다뤘던 물리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저자가 책의 순서를 물리학 바로 다음에 수학으로 배치한 것도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저자는 수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직전 파트였던 물리학의 물리적 실재(reality)에 대해 간략히 정리한 후에 이어서 수학적 실재 및 수학의 정리(theorem)에 대해 말한다. 본문에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해와 달이 번갈아 뜨고 계절이 돌고 화산이 터지고 땅이 갈라지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물리 세계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물리학은 그런 물리적 실재實在(reality)를 설명한다.‘ (p.261)

‘수학도 물리학처럼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수학적 실재를 서술하는 학문이라면 수학의 정리定理(theorem)는 수학적 실재에 대한 관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p.261)


독자인 내가 위의 두 문장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키워드 2개는 바로 ‘인간‘ 과 ‘무관하게‘ 였다. 물론 두 번째 문장에서는 의식이라는 말이 생략되었지만 문맥상의 의미로 봤을 때 물리학과 수학 모두 인간의 의식과는 무관하며 단지 그 실재實在(reality), 즉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만을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선 리뷰에서 썼던 내용들 중에 인간의 의식을 나타내는 철학적인 자아에 대한 설명은 인문학의 영역이지만, 인간의 의식이 아닌 존재하는 실재에 대한 설명은 과학의 영역이라고 했던 말이 있었다. 이 말에 근거하여 생각하면 물리학과 더불어 수학도 결국에는 존재하는 실재를 파악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과학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손해가 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과학을 공부하는 데 수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과학과 수학은 용어가 다르기에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과학자와 수학자의 차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먼저 과학자는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주로 선호하지만, 수학자는 과학자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물리 세계와는 관계없이 그저 수학 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며(p.262) 수학을 기호와 논리로 하는 지적 유희로 삼는다(p.261)고 한다.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이 부분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수학이 ‘순수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수학자들이 이러한 내 생각에 동의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본문 내용들에 근거해 생각해보면 어떤 다른 분야에 응용될 것을 의식하기보다는 수학 그 자체에 집중하며, 기호와 논리를 이용하여 지적 유희로 삼는 태도들을 종합해볼 때 순수함을 간직한 학문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학문이 바로 수학이 아닐까 싶다.


뒤이어지는 내용을 읽다가 독자인 나는 수학이 새로운 언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는데,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수학자는 논문을 쓸 때 인간의 언어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수학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p.262)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언어‘ 는 소위 문자로 이루어져있는 한글 혹은 알파벳 등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문자로 이루어진 언어‘ 정도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의에 근거해서 생각해본다면 독자인 내 생각에 수학은 ‘기호로 이루어져있는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수학시간에 배웠던 기호들을 생각나는대로 떠올려보면, 집합, 함수, 삼각함수, 지수, 로그, 행렬, 시그마, 극한, 적분, 순열과 조합 등 여기 그 기호를 다 그리기는 힘들지만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호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수학자들은 수학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기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각종 원리들을 증명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 기호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언어‘와는 다르다보니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수학이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소위 말하는 ‘수학을 포기한 자들‘ 이라는 뜻의 ‘수포자‘ 같은 말들이 나오는 것도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호와 수식이 가득한 언어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있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다음에 나오는 내용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수학의 매력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 데 여기서 몇 문장을 간단히 소개해보겠다.

‘인간은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영원한 그 무엇을 추구한다.‘(p.269)

‘수학의 성과는 다른 무엇보다 오래간다. 문명과 언어와 권력은 사멸해도 수학의 아이디어는 불멸한다.‘(p.269)

‘수학은 한 번 진리로 판명되기만 하면 영원히 진리로 남는다. 이것이 수학의 매력이다.‘(p.270)

‘수학자는 산을 오르거나 사막을 헤매거나 지하동굴을 탐험하지 않는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만으로 영원불멸의 진리를 선포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p.270)

위에 나온 문장들을 통해 독자인 나는 수학이 가진 매력이라는 것이 결국 ‘영원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대리만족 시켜줄 수 있는 도구로써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좋게 남기고 싶어하는 일종의 ‘명예욕‘ 있는데, 어떤 수학적인 진리를 입증하게 될 경우 앞서 언급한 ‘영원성‘과 ‘명예욕‘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기에 수학의 매력이 그만큼 배가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수학자는 어떤 육체적인 수고보다는 단지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는 행위만으로도 ‘영원성‘과 ‘명예욕‘을 추구할 수 있기에 육체적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과도 배치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매력이 있는 수학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수학적인 재능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수학이라는 것이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위에서 수학의 매력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수학적 재능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일거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얘기를 뒷받침하는 문장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수학자 중에 ‘노력형‘은 없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수학 천재는 천재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노력할 수도 없는 학문이 수학이다. 수학 천재는 ‘발명왕‘과 달리 ‘99퍼센트의 노력‘으로 만들 수 없다.‘(p.279)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개인적인 솔직한 심정으로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노력으로 안되는 분야도 간혹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유현준 교수가 쓴 책에서도 99%의 노력보다 1%의 영감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읽은《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셔서 독자인 내가 알지 못하는 재능의 영역들이 분명히 있기는 한 가 보다 하고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추가로 리뷰를 쓰다가 문득 든 생각은 애초에 어떤 일이든 간에 내가 과연 99%의 노력이라도 해본적이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그렇지 못했던 경우들이 훨씬 많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재능의 유무를 떠나 일단 최선의 노력이라도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자면 이 부분을 통해 내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가 혹여나 나태해져 있지는 않았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흐트러진 삶의 고삐를 조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예전부터 이름을 들어 알고 있던 유클리드, 가우스, 피타고라스, 페르마 등과 같은 수학자들 외에도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수학자인 하디, 디오판토스, 힐베르트, 괴델 등 다양한 수학자들과 관련된 얘기들이 여기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만큼 나온다. 이 부분은 수학자들이 만들어낸 산식이나 공식이 나오게 된 배경 스토리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언급하기에는 세부적인 내용들이 많은 관계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구해서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저자는 수학 파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선망하는 경향이 있다(p.285)는 말과 함께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수학자의 삶을 너무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p.286)는 말도 덧붙인다. 여기 일일이 서술하기는 힘들지만 실제로 본문을 읽다보면 유명한 수학자들 중에 평범하게 살다간 사람보다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거나 혹은 정신병에 걸려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걸 보다보면 어느 한 쪽에 재능이 극도로 쏠려있는 경우 그외의 다른 영역에 있어서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저자도 독자들에게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듯하다.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이 다르므로 남을 부러워할 거 없이 자기 분야에서 행복을 찾고 살면 그만이라는 게 저자가 이 수학 파트에서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수학 파트에 대한 리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책의 전체 후기에 대한 얘기를 추가로 한 뒤 이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책의 후기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과학과 인문학의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이 다르다는 것(p.290)이었다. 관련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나온다.

‘과학자는 현상을 관찰하는데서 출발해 실험과 분석과 추론으로 대상의 실체에 다가선다. 그렇지만 연구결과를 이야기할 때는 반대로 한다. 자신이 알아낸 대상의 본질을 먼저 밝히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인지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p.290)

윗 문장을 독자인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 풀어보자면 과학 연구를 할 때는 어떤 ‘현상‘을 보고 ‘본질‘을 탐구한다면, 연구된 결과를 이야기할 때(저자는 이것을 ‘과학의 스토리텔링‘이라고 지칭함)는 탐구한 ‘본질‘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한 뒤 거기에 살을 붙여서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는 말이다.

문맥상 여기서 좀 더 중요한 것은 연구된 결과를 이야기하는 ‘과학의 스토리텔링‘이었는데, 저자는 본문에서 소개했던 소금물 이야기(소금물이 결합되고 용해되는 과정을 서술한 것)가 여기에 해당된다(p.290)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략적인 얘기를 하자면 원자로 대변되는 ‘본질‘에서 출발해 다른 각종 물질들이 결합했다가 다시 그 결합이 해체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식의 패턴이다. 독자인 나는 이 사례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과학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추후에 다른 과학 관련 책을 읽을 때도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보면서 읽어보면 과학을 좀 더 심도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배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뒤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문과의 고충을 알고 있다(p.290)는 말로 문과 출신 독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 책의 목차를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의 순서로 배치하게 된 이유에 대해 밝힌다. 저자가 밝힌 이유를 읽다보면 책의 목차가 그냥 아무렇게나 막 나열된 것이 결코 아님을 느끼게 된다. 또한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문과 출신 독자들을 저자 나름대로 배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연이어 저자는 문과 독자들에게 일단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부터 읽을 것(p.291)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에 더해 부끄러움은 잠시지만 행복은 오래간다(p.291)는 말과 함께 바보인줄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자신이 바보였음을 알고 바보를 면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바보를 면하겠다는 결심(p.291)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추가로 저자는 독자들 가운데 혹시라도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과학에 상대적으로 무지한 독자들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향후에 책을 쓸 때 참고해주면 좋겠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저자는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분인데, 후기를 읽다보니 과학에 대해 어릴때부터 공부했다면 자신을 이해하는데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독자인 나 또한 이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고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을 읽어나갈 때 복잡하고 난해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꾸역꾸역 천천히라도 이해하면서 읽고 나니 과학에 무지했던 내 자신에게 살짝 미안한 감정도 생기고, 한편으로는 지금부터라도 과학관련 지식들의 범위를 조금씩이라도 넓혀나간다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인문학의 가치와 한계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인문학의 한계를 넓히려면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를 키우려면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 더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과학과 인문학을 다 공부해야 우리 자신을 더욱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독자인 나도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과학 분야를 조금이나마 친숙한 분야로 바꿔준 저자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책을 계기로 하여 과학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관련 분야의 독서도 병행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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