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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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이 책의 전반적인 리뷰와 함께 뇌과학 분야까지 내가 느끼고 생각해봤던 것들에 대해 적어보았고 오늘은 생물학 파트에 나왔던 내용들과 그에 관한 나의 생각들을 적어보겠다.


저자는 뇌과학에서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 라고 정의했었는데, 생물학에 나오는 유전자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p.123)라고 말하는데 이로부터 파생된 것이 ‘삶의 의미‘와 관련된 얘기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뇌와 지금 여기 생물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 모두 과학의 관점에서는 그냥 물리적 실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뇌과학적으로든 생물학적으로든 이들(뇌와 유전자)에게 주어진 어떤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의미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결국 삶의 의미라는 것은 과학에서 찾을 수 없기에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이 효용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독자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저자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p.127)고 말한다. 즉, 인문학이 각 사람의 어떤 철학적인 삶의 의미를 찾는데 유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이 말하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는 보완재 성격으로 인문학을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 부분을 통해 인문학의 쓸모 혹은 유용성에 대해 한 층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본문을 읽으면서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정리해서 표현했다고 생각한 문장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대단히 복잡하고 독특하게 발전한 생존기계다. 유전자가 명하는 본능에 따라 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감정을 느끼며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p.128)

이 문장은 앞선 파트였던 뇌과학에서 언급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생존 기계로 지칭되는 물질적 실체인 ‘나‘ 와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철학적 자아인 ‘나‘ , 이렇게 두 종류의 ‘나‘ 에 대해 잘 파악하고 알아가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이어 읽다가 저자가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p.117)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꽤나 눈길을 끄는 얘기였다. 이유인즉, 저자의 정치 성향이 좌파에 가깝다는 걸 독자인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좌파적 성격을 많이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점에 대해 가감없이 논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본문에서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바로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능을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이기적인 본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로 인해 사회주의가 무너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솔직히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이상대로만 현실 사회가 구현되었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없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인문학적 지식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에 대한 과학적(여기서는 생물학적)지식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실패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과학적인 사실들을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역행하여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잠깐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인간 본능에 따라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실패 사례가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왔던 한 문장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 대다수가 ‘태만‘ 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 (p.143)

위에서 내가 주저리주저리 적은 내용들보다 어쩌면 p.143에 나온 이 문장이 훨씬 임팩트 있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듯 하다.


뒤이어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사례 중 하나는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심사평가원 이야기였다. 이것은 저자가 과거 참여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서술한 것인데, 이 사례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독자들이 보다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사례를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의료서비스 시장에는 환자로 대변되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수요자)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공급자) 이렇게 두 그룹이 있다. 여기서 공급자인 의사라는 역할의 본질은 아픈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지만, 결국 의사들의 뇌 또한 다른 사람들의 뇌와 동일하게 생존이라는 본업에 충실하다는 게 이 사례의 키포인트다. 이러한 생존 본능으로 인해 의사들은 가벼운 처방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잉진료를 하고 공단에 과다한 금액을 청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들의 이기적인 본능으로 인해 과잉청구된 금액을 적정한 금액으로 바로잡고 이외의 추가적인 감시감독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 바로 건강보험공단의 심사평가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감시감독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기관이 있음으로 해서 의사들의 과잉진료로 인한 부담금 과잉청구 같은 불합리한 일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생존 본능과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임팩트 있는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욕망이 이성보다, 이익이 도덕보다 힘이 세다.‘ (p.144)

개인적으로 이 문장과 관련된 과거의 기억들이 문득 떠올랐다. 과거에 나왔던 고전 소설들(예를 들어 세계 문학 같은 것들)을 읽다보면 등장 인물들이 이성에 입각해서 행동하기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행동들을 하는 것들을 보게 되는데, 이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들이 생각났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본능을 이기는 이성은 없다‘ 라는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되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이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사례를 보면서 본능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추가로 더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런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결국 본능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이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덤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 났다. ‘아는 것이 힘이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많이 알면 알수록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다. 여러모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저자께 감사드린다.


생물학 파트 관련 포스팅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음 포스팅에선 화학 파트에 대해 리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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