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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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문과 출신 사람들에게 과학이라는 분야는 뭔가 나와는 거리가 먼 분야 혹은 나랑은 관련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거라고 본다. 지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랬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여타 다른 과목들과는 다르게 과학은 과목자체에 대한 어떤 호기심이나 탐구심보다는 그저 시험을 봐야하니까 그리고 전체 평균점수를 깎아 먹지 않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과학이라는 과목은 그저 시험 때만 바짝 외웠다가 시험 끝나면 머릿속에서 다 휘발되고 사라지는 그런 과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바보같고 어리석은 생각과 태도였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우주에 갈 일도 없는데 왜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하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은 도대체 왜 외워야 하는지 그리고 각종 물리공식들은 실생활에서 과연 필요가 있긴 한건가 하는 회의감, 마지막으로 생물학 용어들은 왜 그리 난해하게만 느껴지는지 등등 진짜 과학의 세부분야들에 대해 필요성과 흥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게 과거의 나였다. 한마디로 그냥 바보 중의 바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지금도 중학교에서 과학고로 진학하는 과학에 재능이 있는 똑똑한 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 였는데,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가 우연히 지난 5월경에《최재천의 곤충사회》라는 책을 읽고 과학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샘솟아서 연관된 책을 찾다가 알게 되어 읽게 된 책이 바로《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다.


이 책이 다른 과학 책들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저자가 문과 출신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여타의 과학 교양서들은 과학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이과 출신의 과학 전공자들이 저자인 경우들이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문과 출신이다보니 일반적으로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 출신의 독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쓰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전혀 근거없는 느낌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과학 교양서들을 닥치는대로 읽고 공부하며 자신이 느끼거나 생각했던 것들을 서술하면서 문과 출신 사람들이 과학을 접하기 좋은 순서대로 책의 내용을 배치하였다고 말한다.

목차를 보면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뇌과학부터 시작하여 여기서 파생되는 생물학, 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한 화학, 화학을 이해하기 위한 물리학, 마지막에는 우주의 언어로 대변되는 수학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호기심을 심화시키는 형태로 목차를 구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나왔던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저자는 이 책이 철저히 문과 출신 독자들을 주요 타겟으로 했음을 밝히는데, 자신이 본문에 썼던 내용들 중에 이과출신들이 보면 오류라고 생각할만한 것들이 있을까 두렵다는 고백도 한다. 솔직히 문과 사람인 나의 입장에서는 저자가 본문에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 각종 과학지식들만 소화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간혹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비교적 풍부하신 분들이 이 책을 리뷰한 글들을 보다보면 자신이 이미 거의 다 알고 있는 것들이 나와서 이 책 내용의 깊이가 얕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들을 보며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같은 사람과는 달리 과학에 관심있고 깊이가 어느정도 있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저자는 이 책을 문과 출신 사람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설정하고 썼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혹여나 저자는 딱히 원치는 않지만 만약 이과출신의 독자들 중에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과학 교양서를 쓰는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책을 쓸 때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이 책을 활용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덧붙인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길었고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독자인 내가 느꼈던 내용들 중 핵심적인 것들 위주로 리뷰를 시작해보겠다.

가장 먼저 저자는 과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인문학의 토대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자아를 두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물질로 존재하는 ‘나‘ , 다른 하나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 이다. 전자의 ‘나‘는 과학의 영역이고, 후자의 ‘나‘는 인문학의 영역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로 존재하는 ‘나‘ 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했다. 독자인 나는 이것을 물질로 이루어진 외형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툭 튀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는데, 저자께서도 이러한 내 생각에 동의하실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러한 생각들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러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심오한 영역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읽으면서 때론 머리가 지끈지끈해지기도 했는데 여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예 이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텐데, 생각의 폭을 조금이라도 확장시켜보는 시도를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저자는 ‘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공부를 온전하게 하려면 당연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p.8) 라는 말을 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한 문과 출신들의 경우 앞에 나온 두 가지인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것에는 익숙할지 몰라도 뒤에 나온 두 가지인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우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을 공부한다면 뒤의 두 가지인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시각까지 갖추게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이 더 크게 확장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p.8) 는 문장도 나오는데, 지극히 문과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나를 이루는 것이 단지 어떤 생각이나 관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리적인 몸뚱아리(?)도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해준 문장이었다. 문과 출신이라면 상대적으로 어떤 물리적인 실체보다는 관념적인 철학 같은 것에 집중할 때가 많은데, 본문에 나온 이 문장을 곱씹어 읽으면서 인문학과 과학이 따로 별개의 것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이 ‘나‘라는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두 축 혹은 두 날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을 읽다보면 저자가 읽었던 과학 교양서 중 리처드 파인만이 쓴 책에 나왔던 용어가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거만한 바보‘(p.18) 라는 말이었다. 독자에 따라 이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말은 인문학과 과학 중에 어느 한 쪽은 정말 심도있게 알지만 다른 한 쪽 분야에는 무지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관계로 ‘야, 나 이정도 알아.‘ 같은 태도를 보이지만 자신이 아는 분야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내가 공부 좀 했다고 혹은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거들먹거리는 모든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인 것이다. 뭐 딱히 내세울 것도 없긴하지만 독자인 나는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지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고 만약 있었다면 반성하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인문학이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p.27)이라는 말과 함께 이것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가 인문학의 위기의 때라는 점을 지적하는데, 과학이 최신 지식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에 비해 인문학은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채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사실을 지속적으로 찾아내려는 과학과 소통하고 교류하려는 노력만이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p.29).

이 부분을 보면서 어떤 학문이라도 화석처럼 굳어지기보다는 역동적으로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지속적으로 최신 지식들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화해나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모든 건 다 변한다.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을 저자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느냐‘(p.30) 는 말을 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p.8) 는 문장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고 느껴졌다. 저자는 인문학의 익숙한 질문 형식은 ‘나는 누구인가‘ 인 반면 과학의 질문 형식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말을 한다. p.30에 나온 문장을 좀 더 알기 쉽게 풀어보자면 ‘내가 물리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를 알고난 뒤에 내가 누구인지, 즉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자아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문장 하나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p.32)

어쨌든 이 얘기를 통해 과학적인 시각과 인문학적인 시각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과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반쪽만 알고 나머지 반쪽은 전혀 모른채 살아왔다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뒤이어 읽다가 문득 자존감이 높아지게 만드는 문장 하나가 나왔는데 간단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p.32)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문장처럼 느껴졌을수도 있지만 독자인 나는 이 문장을 통해 넓디넓은 우주에서 고유한 존재가 바로 ‘나‘ 라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며 ‘나‘ 라는 사람이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표현 방식이 문학적이기보다는 과학적이다보니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의미만 놓고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통일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문장들도 있는데 몇 가지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있다.‘(p.32)

이 두 문장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어떤 하나의 물체에서 모든 것이 진화했다는 일원론의 생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각기 다를 수 있어도 속에 내재된 근원의 물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통해 우주를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universe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universal이 ‘보편적인‘ , ‘일반적인‘ 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p.32) 는 말을 하는데, 이는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인문학의 성격이 다소 주관적인 반면 과학은 지극히 사실에 입각하여 말하는 객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떤 추론이나 추측보다는 명백하고 확실하게 드러난 증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설령 인문학자라 하더라도 과학이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인문학자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순순히 물러서지만은 않는 듯하다. 저자는 과학이 객관성이라는 측면에서 힘이 센 것은 맞지만,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는 점을 근거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학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p.37). 이는 마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어느 한 쪽이 힘이 쎄더라도 힘이 약한 쪽도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 관계의 모습과 과학과 인문학 간의 관계의 모습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인간의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뇌는 단지 기계일뿐 이 기계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앞에서 언급했던 과학에서 말하는 물리적인 ‘나‘ 와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나‘ 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p.39)는 얘기로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뒤이어 저자는 앞서 언급했던 과학적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뇌다‘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대답을 사실을 기술한 문장이 아닌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p.47)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p.48) 였다고 말한다. 또한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독자인 나는 물질인 뇌와 물질이 아닌 철학적 자아가 서로 얽히고 설켜서 나온 대답인 ‘나는 뇌다‘ 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 깊이 와닿게 느껴졌다. 얼핏 보면 단순한 대답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뇌와 관련된 다소 디테일한 내용들이 쭉 나오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들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저자가 본문에 정리해놓은 뇌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직접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시길 추천드린다.

추가로 저자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든지 한계생산력분배이론 등과 같은 것들을 사용하여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들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뇌에 있는 신경세포의 성질이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유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것은 문과출신(경제학과 출신)인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추가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 중에서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으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과학자는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만 인문학자는 잘 몰라도 일단 아는 것처럼 둘러댄다는 것이었다(p.68).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자는 이렇게 둘러대는 것도 인문학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독자인 나는 이러한 비교를 보면서 위에서 언급했던 과학과 인문학의 특성들이 문득 생각났다.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기에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 반면에, 인문학은 주관적인 생각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이기에 잘 몰라도 일단 그럴싸하게만 떠들어놓고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또한 그 주관적인 생각이 논리적으로만 들어맞는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더 이상 방해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이후에 칸트의 불가지론, 거울신경세포 등을 비롯한 각종 다양한 과학 지식들을 접하고 배울 수 있었는데, 낯설게만 느껴졌던 과학 개념이나 관련 지식들을 저자가 나같은 일반인들에게 잘 풀어서 설명해 주어서 해당 내용을 이해하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했다. 마치 저자가 공부했던 과학이라는 재료를 독자들이 먹기 좋게 제공한 ‘요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또한 저자가 인문학자이다보니 맹자, 묵가, 양주학파 등 다양한 철학 사상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되면서 과학의 내용과 비교분석해볼 수 있었는데, 이를 보면서 독자인 나는 문과 출신 독자들이 과학에 접근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수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자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그냥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맨 앞에서 저자가 문과인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겨냥하면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뇌과학 부터 접근했다는 얘기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딱히 근거없는 느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뒤이어 읽다가 ‘사람은 변한다‘ 라는 말과 함께 ‘전향‘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향이라고 하면 ‘무슨 사상을 전향했다‘ 뭐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전향이라는 행동을 인문학과 과학 이렇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인문학에서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에서는 이러한 ‘자유의지‘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되는 것(p.94)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좀 더 설명하자면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로 생긴 현상(p.96)을 전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인문학과 과학이 세상을 보는 관점 혹은 패러다임이 아예 뿌리부터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이 참으로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한다면 인문학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것에 좀 더 가깝다고나 할까. 다만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과학과 인문학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일뿐 어느 것이 더 좋고 다른 것은 더 안 좋고 이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과학과 인문학의 성격은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들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선 내용들에선 이러한 것들을 그냥 머리로만 이해했다면 지금 이 ‘전향‘ 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면서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마음속 깊이,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추가로 위에서 언급했던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에 대한 내용들도 본문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도파민으로도 인간의 행동을 일정부분 설명할 수 있음을 보면서 과학의 힘이라는 게 과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감탄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특별히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는 마약 같은 것도 결국에는 도파민 분비에 혼란을 일으켜 야기되는 문제이기에 과학이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상당부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마약이외에도 사람들의 소비행동패턴 등을 연구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 중에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패턴에 영향을 준다‘(p.99) 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 쓰자면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p.99)는 말인데, 이 글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과학에서 말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우리의 자아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우리의 생각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왜 그토록 많은 자기계발서 같은 것들에서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야 신경전달물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가 얼마나 있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독자인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의 과학적 근거를 알고나자 그동안 알고 있던 생각들에 대한 믿음이 좀 더 확고해졌다.

난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이유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 책을 통해 과학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다보니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나 생각들에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재천 교수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지식의 영토‘ 가 확장됨에 따라 넓어지는 지식들과 파생되는 생각들이 내가하는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데이터도 자아에 영향을 준다(p.97) 는 말과 함께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p.100) 는 말도 덧붙인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자아에 데이터를 공급함으로써 자아가 어리석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애쓰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저자가 과학 공부를 하면서 몸소 느꼈던 것들을 단지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을 통해 실천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멋지게 느껴졌다.

저자는 뇌과학 파트를 마무리하면서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자신의 행동이 변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닌 단지 뇌라는 하드웨어가 퇴화된 것이라 여겨달라(p.100) 는 말과 함께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p.101) 는 말이었다. 독자인 나는 저자의 이 말을 보면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었다. 또한 뇌라는 하드웨어의 퇴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일단은 악과 누추함을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자(p.101) 는 저자의 말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와 뇌과학 파트를 읽으며 느꼈던 생각들을 쭉 적어봤는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길어져서 이어지는 생물학 파트부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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