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논쟁을 피하라‘는 제목의 글이 나왔었는데, 오늘도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진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설득당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펜 상호생명보험사 Penn Mutual Life Insurance Company 는 판매원들에게 분명한 지침을 내렸다. "절대 논쟁하지 말라!"

진정한 판매의 기술은 논쟁이 아니다. 논쟁과는 조금이라도 닮은 데가 없다. 사람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상대방은 말문이 막혀요. 논쟁의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저는 논쟁하고 말다툼하느라 제 삶의 몇 년을 잃었어요. 이제는 입을 닫고 살죠. 그 편이 남는 게 훨씬 많아요."

현명한 사람이었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e Franklin 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논쟁하고, 지지 않으려 애쓰고, 반박을 하면 때로는 승리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호의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승리에 불과하다."

그러니 스스로 판단하라. 무엇을 원하는가? 학문적이고 극적인 승리를 원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호의를 원하는가? 둘 다 얻을 수 있는 경우란 많지 않다.

당신은 옳을 수 있다. 당신이 주장을 펼치는 동안은 정말 옳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문제라면 당신의 옳고 그름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lson내각의 재무장관이었던 윌리엄 G. 매카두William G. McAdoo는 정신없이 정치에 몸담은 결과 "논쟁으로는 어떤 무지한 사람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내 경험에 따르면 말싸움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지능지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조금 더 잘 쳤지만 그녀가 항상 나를 이기도록 만들어주었고, 그녀는 비길 데 없이 즐거워했다."

우리의 고객이나 연인이나 남편, 아내가 혹시라도 우리와 논쟁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 논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주자.

부처는 말했다. "미움으로는 절대 미움을 끝낼 수 없다. 사랑으로만 미움을 끝낼 수 있다."

오해는 절대 말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요령이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그 마음을 달래주는 재주가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공감하며 문제를 보겠다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

링컨은 말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개인적 논쟁에 허비할 시간은 없다. 하물며 감정이 상하고 자제력을 잃는 것과 같은 결과를 받아들일 여유는 더더욱 없다. 당신과 상대가 거의 비슷하게 옳다면 아무리 큰 건이라도 양보하라. 당신이 분명히 옳더라도 사소한 건이면 그냥 양보하라. 길에 대한 권리를 놓고 개와 다투다가 물리느니 그냥 개에게 길을 내주는 편이 더 낫다. 개를 죽여봐야 물린 상처가 저절로 낫지도 않는다."

첫 번째 규칙은 다음과 같다.

규칙 1 : 논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The only way to get the best of an argument is to avoid it.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이었을 때, 모든 경우에서 75퍼센트 정도만 옳을 수 있다면 자신이 바라는 최고의 기대치에 달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한 명의 기대치가 그 정도라면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이겠는가?

55퍼센트 정도만 옳다고 확신할 수 있어도 당신은 월스트리트로 가서 하루에 백만 달러를 벌고, 요트를 사고, 꿈에 그리던 여성과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55퍼센트 옳다는 확신이 없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표정으로, 억양으로, 제스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틀렸다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절대로 아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지성, 판단력, 자부심, 자존심에 일격을 날린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일격을 받아치고 싶을 뿐 그 일격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일격을 날린 다음 당신이 플라톤과 칸트의 논리를 들이대 보았자 그의 의견을 바꿀 수는 없다. 이미 당신은 그의 감정을 다치게 했기 때문이다.

절대 이런 말로 시작하지 마라. "지금부터 당신에게 이러이러한 걸 증명하려 합니다." 나쁜 방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는 당신보다 똑똑합니다. 이런저런 걸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시죠."

이것은 도전이다. 듣는 이에게 반감만 불러일으키고, 결국 당신이 더 많은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는 당신과 싸우려 들 것이다.

아무리 우호적인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란 어렵다. 그런데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왜 스스로를 더 힘든 처지에 밀어 넣는가?

어떤 것을 증명해야겠다면 아무도 모르게 증명하라. 섬세하고 재치있게 증명해서, 당신이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어라.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말이다.
"인간들은 가르치지 않는 척 가르쳐야 한다. 그가 모르고 있는 것들은 그가 잊은 것이라고 하라."

체스터필드 경Lord Chesterfield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보다 현명해져라.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는 말아라."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되풀이해서 말했다. "내가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해 봐야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 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틀렸다는 말을 그만두기로 했다. 많은 효과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생각하기에 틀린 말을 한다고 치자. 그가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하자.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글쎄요. 자, 보세요!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도 틀릴 수 있죠. 자주 틀리기도 해요. 하지만 틀렸다면 바로잡고 싶습니다. 사실을 한 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이런 말은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 진짜 마법이다. "저도 틀릴 수 있죠. 자주 틀리기도 해요. 사실을 한 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과학자들은 어떤 것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요. 단지 사실을 찾으려 할 뿐이죠."

당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마주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논쟁은 중단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처럼 공정하고 열린 마음, 넓은 마음을 가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역시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분명히 틀렸는데, 그 사람에게 그 사실을 퉁명스럽게 말한다고 하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학식이 많고 유명한 사람에게 대놓고 틀렸다고 말하는 엄청난 실수

논리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편견, 시기심, 의심, 두려움, 질투, 자부심으로 엉망인 상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략) 자신의 견해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

제임스 하비 로빈슨James Harvey Robinson교수의 교훈적인 책 《정신의 형성The Mind in the Making》에 나오는 말이다.

"때로 우리는 어떤 저항감 없이, 심각한 감정의 동요없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가 틀렸다고 지적하면 우리는 그러한 비난에 분개하고, 우리의 마음은 완고하게 굳어 버린다."

"우리의 믿음은 별 생각 없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누군가 그러한 믿음을 빼앗아 가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 믿음에 대한 과도한 열정으로 가득 찬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어떤 이념들이 아니라 우리의 자존심이 위협 받는 상황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사에서 ‘나의‘ 라는 소소한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은 없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지혜에 이르기 위한 첫걸음이다. ‘나의‘ 저녁이든, ‘나의‘ 개든, ‘나의‘ 집이든, ‘나의‘ 아버지든, ‘나의‘ 나라든, ‘나의‘ 신이든 다 똑같은 힘을 지닌다.

"우리는 사실이라고 익숙하게 믿어 왔던 것들을 계속해서 믿고 싶어 한다. 따라서 어떤 이가 우리의 가정(가설)에 어떤 의심이라도 제기하면 우리는 분개하며, 그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모든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 결과 우리의 합리성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가 이미 믿어 왔던 것을 계속 믿기 위한 주장을 찾아 내려는 시도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다."

듣는 사람의 판단력까지 걸고넘어지는 사실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마련이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 스스로 인정할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사람이 요령있게 잘 구슬린다면 기꺼이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의 목에 소화시키기 힘든 사실을 억지로 밀어 넣으려고만 한다면 반발심만 생기기 마련이다.

조롱과 비판은 절대로 그런 결과(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를 도출해낼 수 없다.

사람을 다루고, 당신 자신을 관리하고, 성격을 개선하는 데 대한 훌륭한 제안을 원한다면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어보라. 이제까지 본 전기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고, 미국 문학에서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자서전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신이 어떻게 논쟁이라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유능하고, 상냥하고, 사람들을 잘 사귀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들려준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행동과 말을 삼가기로 했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말들도 삼가기로 했다. 심지어 내 의견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나 표현도 하지 않으려 했다."

‘확실히‘ , ‘의심의 여지가 없이‘ 등등의 말들은 피했다. 그 대신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 ‘내가 이해하기로는‘ , ‘내 생각에는 이런 거 같아‘ 라든지, 아니면 ‘지금은 이렇게 보이는데‘ 와 같은 말을 사용했다.

다른 사람이 내 생각에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경우라도 그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반박하고 그의 주장에 조리가 없음을 보여 주는 즐거움을 내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대답할 때는 어떤 경우와 상황에서는 그의 의견이 옳은 수도 있다는 이야기부터 먼저 꺼냈고, 그런 뒤 이 경우엔 내가 보기엔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태도를 이렇게 바꾸자 금방 효과가 있었다. 대화는 좀 더 즐겁게 이어졌다.

의견을 제시하며 겸손한 태도를 취했더니 사람들은 그 의견을 좀 더 쉽게, 별다른 반박 없이 받아들여 주었다. 내가 잘못을 했을 때도 예전보다 덜 창피했다. 그리고 내가 우연히 올바른 의견을 제시했을 때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포기하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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