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거의 2주 정도만에 다시 읽는다. 이 책의 지난번 포스팅에선 과학에 나오는 ‘비열‘ 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상승 기류가 발생하는 것과 기압차이로 인한 바람의 발생 방향에 대해 잠시 논했었는데, 오늘은 이 바람의 영향을 받아서 움직이는 배에 달려있는 삼각돛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이 삼각돛의 과학적 원리를 지칭하는 ‘베르누이 원리‘ 라는 것도 나오는데 이것은 단순히 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가 공중으로 이륙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원리이기도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과정들이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복잡하게 느껴졌는데, 저자의 설명을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이것의 원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배경지식을 하나 배우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뒤이어서 도자기가 중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16세기 이후 유럽에 중국문화에 대한 선망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이건 마치 요즘 우리나라의 K-POP 이 전세계를 휩쓸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문화의 전파는 문화를 수입하는 나라의 많은 부분들에 영향을 미치는 데 문화의 파급력이 정말 굉장하다는 것을 지면으로나마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속한 분야인 건축뿐만 아니라 미술이나 조경 등의 분야까지도 문화의 영향력들이 미치는 것들을 보면서 문화가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감히 계산하기 힘들정도로 크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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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픽처레스크 정원 양식‘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존 서양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상대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적 성격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이는 위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는 3인칭 시점이 아닌 내가 다른 대상들을 바라보는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똑같은 대상이라도 그것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1인칭 시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소설에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있는 것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픽처레스크 양식은 앞서 언급했던 중국 도자기의 수출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수출을 통해 전파된 동양의 문화가 기존에 서양이 가지고 있던 문화에 접목되면서 미세한 변화를 만들어 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변화의 흐름이 점차 확산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챕터를 바꿔서 ‘동양의 공간을 닮아가는 서양의 공간‘ 이라는 주제의 글이 나온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저자는 비슷한 모양의 나비 두 마리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같은 속‘에 있는 ‘다른 종‘ 끼리 이종 교배를 통해서 유전자를 공유하고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단지 나비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건축분야에도 적용되는데 건축과 관련된 본격적인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로마가 지중해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갤리선 배 바닥에서 노예들이 엄청나게 노를 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모습은 영화 <벤허>에 실감나게 담겨 있다. 갤리선은 자연의 힘을 절반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인간의 힘으로 메꿔야 했던 배다. 이런 배로는 항해 거리가 지중해를 남북으로 건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갤리선으로 만들 수 있는 문명의 무대는 지중해였고 그 보다 큰 대서양 같은 바다는 건널 수 없었다. - P168

그러다가 삼각돛이라는 기술이 발명되었다. 삼각돛은 기존의 갤리선에서 사용하던 돛과 달리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뿐 아니라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다. - P169

기존의 로마 갤리선 같은 배에 달린 돛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이는 뒤에서 오는 바람을 크게 받아서 앞으로 빨리 가게 해 주는 돛이다. 그런데 삼각돛은 배의 앞부분에 달린 삼각형 모양의 돛으로, 돛대를 축으로 회전시킬 수 있게 되어있는 돛이다. - P169

바람이 앞에서 불어올 때 삼각돛을 회전시키면 돛의 바깥쪽 바람이 안쪽의 바람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그러면 바깥쪽의 압력이 낮아져서 배를 잡아끄는 힘이 된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베르누이 원리‘ 라고 한다. - P169

베르누이 원리는 비행기를 뜨게 하는 양력의 원리이기도 하다. 비행기 날개의 단면은 위가 불룩하고 아래는 평평하다. 비행기가 앞으로 달려가면 비행기 날개 주변의 바람이 날개 윗부분은 곡면을 따라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고 아랫부분은 천천히 움직인다. 그래야 날개 뒤에 바람이 동시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의 공기는 압력이 낮아진다. 날개 위의 압력이 낮고 날개 아래의 압력이 높게 되면서 비행기를 위로 들어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베르누이 원리다. - P169

같은 원리로, 삼각돛에서 만들어지는 압력 차이로 배는 비스듬하게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면 배는 어느 정도 이동하다가 삼각돛을 반대로 회전시킨다. 그렇게 되면 반대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전진한다. 이렇게 바람이 앞에서 올 때에도 삼각돛을 좌우로 움직이면 배는 지그재그 형태로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 P169

일반적인 범선의 모습을 보면 배의 앞부분에는 삼각돛을 달고 가운데의 높은 돛은 직사각형 돛을 달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뒤에서 바람이 불면 빠르게 진행하고 앞에서 바람이 불면 삼각돛으로 진행하는 배가 만들어졌다. 비로소 인간은 인간의 노동력 없이 백 퍼센트 바람이라는 자연의 힘으로만 운항하는 배를 갖게 되었고, 항해 거리는 혁명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 P169

그럼 누가 왜 이런 돛을 만들었을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이러한 삼각돛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북위 30도 이상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구의 북반구에는 북위 30도에서 60도 사이에는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부는 편서풍이 분다. 따라서 북위 30도 위에 사는 사람들이 편서풍을 뚫고 남쪽으로 내려와 지중해에서 무역을 하려면 뒤에서 오는 바람 없이 항해할 방법이 필요했다. 이런 필요에 의해서 15세기 들어 네덜란드에서 먼저 삼각돛을 이용해서 범선을 개발했고 이후 삼각돛은 주로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 발달하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이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 P170

가뭄이 농업의 시대를 열었듯이 편서풍이라는 제약은 새로운 기술의 시대를 여는 방아쇠가 되었다. 에디슨의 말처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 P170

배는 낙타와는 다르다. 운반할 수 있는 품목의 양도 수천 배가 늘어났고, 부피가 있거나 깨지기 쉬운 품목도 대량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주요 수입 품목은 비단과 향신료에서 도자기로 바뀌게 된다. 보따리 장사에서 기업형으로 바뀐 것이다. 이전에는 낙타를 이용해서 사막을 건널 수 있었던 중동 상인들이 전 세계 무역을 장악했다면 이제는 범선으로 먼 바닷길을 건널 수 있게 된 유럽인들이 세계 무역권을 갖게 되었다. - P171

무역이 늘어나면서 유럽 사회 내 통화량이 늘어났다. 화폐는 빠르게 움직이는 경제 재화다. 화폐량이 늘어서 사회 경제내에서 부가 빠르게 이동하면 사회 내 계층 간 부의 이동이 생겨나고 새로운 부자가 생겨난다. - P171

대표적인 사례가 메디치 가문 같은 상업에 기반을 둔 계층이다. 이들은 기존의 토지와 농업 경제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부자와는 다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변화의 주체인 이들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보수적인 지배 계층보다는 변화와 새로운 문화에 호기심이 많고 개방적이다. 마치 영화나 IT 같은 당대의 첨단 기술로 돈을 버는 미국 서부 지역 사람들이 유럽과의 관계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돈을 버는 동부 지역보다 좀 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것과 비슷하다. - P172

유럽의 새로운 상인 계층은 동양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서양의 문화를 진화시켰다. 이때 15세기 동양 문화의 전령 역할을 맡은 제품은 중국의 도자기였다. 삼각돛은 지구라는 거대한 공간을 바닷길을 통해서 압축시켰고 그 길을 따라 도자기가 유럽으로 대량 흘러들어 갔다. - P172

영어권에서는 도자기를 ‘차이나‘라고 표현한다. 그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은 유럽인들이 도자기라는 새로운 유형의 그릇을 중국에서 수입해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 P173

16세기 서양의 그림들을 보면 당시 유럽 귀족들은 금속으로된 무거운 식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자기는 가볍고 밝고 심지어 아름다운 그림도 그려져 있다. 당시 서양인들에게 중국식 도자기는 첨단 과학의 결정체였다. 마치 현대의 최첨단 IT 기기와 같다고 할 수있다. 우리가 2000년대 초반에 애플의 아이폰에 열광한 것처럼 유럽인들은 도자기에 열광했다. - P173

제품을 선망하면 자연스레 그 나라의 문화를 수용하게 된다. 그 나라의 문화를 선망해도 그 나라의 제품을 선망하게 된다. - P173

문화를 팔기 위해서는 첨단 제품이 필요하다. 1970년대 우리가 <6백만 달러의 사나이> 같은 미국 드라마에 심취했던 것은 제2차세계 대전의 원자폭탄과 1969년의 아폴로 우주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1세기에 첨단 제품이 스마트폰이라면 수백 년 전에는 도자기가 그 역할을 했다. - P174

우리는 그저 닷새에 한 번씩 열리는 5일장을 통해서만 상업 행위가 이루어졌다. 매일 시장이 열리는 사회와 닷새에 한 번 시장이 열리는 사회는 화폐 통화량에서 5배의 차이가 난다. 화폐 통화량이 5분의 1 적으면 상업으로 새롭게 돈을 벌 기회도 5분의 1이 된다. 5일장의 사회에서는 상인이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회 계층의 순서는 ‘사농공상‘으로, 상인이 가장 대우를 못 받았다. - P175

조선은 국운을 바꿀 만한 엄청난 도자기 수출의 기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높은 인구밀도의 도시가 없었고 그에 따라서 제대로 된 상인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일본에게 빼앗기게 된 것이다. - P175

중국 징더전이 파괴된 틈을 타서 도자기 유럽 수출의 기회를 잡게 된 일본은 도자기가 이동 중에 파손되지 않게 종이로 도자기를 포장하였다. 이때 사용된 포장지가 목판화로 찍어 낸 그림들이었다. 이 그림들은 우키요에 Ukiyo-e라는 목판화로, 세 가지 정도의 색을 조합해서 총천연색 그림을 대량 생산했던 기술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일본의 밝고 화려한 색상의 우키요에 목판화가 서양에 알려지게 됐고 훗날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P176

고흐는 네덜란드 화가였는데, 마침 네덜란드는 동양의 도자기를 유럽에 수입해서 판매하는 주요 거점 국가였다. 수입된 도자기 상자를 뜯고 나서 버려지는 포장지가 유럽의 화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다. - P176

동양의 도자기가 서양으로 대량 유입되면서 처음으로 영향을 받은 디자인 분야는 조경이다. 왜냐하면 수입된 도자기 표면에 보통 정원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생전 처음 보는 우아한 곡선 지붕의 건축물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 P179

동양 스타일 따라 하기는 정원에 그치지 않고 문화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지금의 ‘한류‘ 같은 일종의 중국풍이라고 할 수 있는 ‘시누아즈리‘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누아즈리는 문화적으로 강력하고 지속적이었던 유럽 내 경향 중 하나로 장식, 가구, 정원 내 설치된 탑, 식기, 벽걸이 융단 등 거의 모든 디자인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 P179

조경 디자인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경 디자인을 보면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다. 전통적인 서양식 정원 디자인에는 서양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드러난다. 당시 서양인들에게 우주는 수학적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완벽한 창조물로 인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또 다른 자연을 창조해 내는 정원 디자인 역시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완벽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 P181

도자기에 그려진 중국식 정원 디자인과 중국 철학은 자연을 대하는 유럽인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곧바로 정원 디자인에 반영되어서 기존의 기하학적 형태의 정원 디자인에서 야생 상태의 자연으로 환원시키듯 디자인하는 픽처레스크picturesque 정원 디자인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 P184

자연을 모방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하는 것이 픽처레스크정원 양식이다. - P184

15세기에 들어서 삼각돛이 발명되고 난 후 공간이 압축되었고, 16세기에는 해상 무역 길을 통해서 도자기 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7세기에는 동양의 책이 번역되어서 유럽에 전파되었다. 패러다임은 꾸준히 변화하여 그 결과 18세기 들어서는 조경 디자인에서부터 서양의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픽처레스크라는 조경 디자인 양식으로 확립되었다. - P186

픽처레스크란 쉽게 설명하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드는 정원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 P186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18세기 조경가 험프리 렙턴Humphrey Repton(1752~1818)은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언덕이 될 수도, 평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원을 디자인할 때, 정원 내에 위치한 개인의 시선에서 자연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렙턴은 보는 이의 위치가 정원 내 구성 요소 간의 관계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 P186

기존의 기하학적인 정원은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내려다본 상태에서 디자인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평면의 종이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삼각형, 원, 사각형의 도형을 그리는 것과 같다. 각각의 도형은 관찰자의 위치나 관찰자의 시점에서 본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전지적 시점의 디자인의 형식에서 바뀌어, 렙턴 같은 픽처레스크 정원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1인칭 시점을 고려해서 자연을 연출한다. 픽처레스크 디자인에서는 오로지 1인칭 시점에서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의사 결정 포인트가 된다. 그렇게 디자인한 정원의 모양은 기하학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위에서 바라보는 시점에서 디자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모양은 어차피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고서는 느껴지지 않는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픽처레스크 정원에서는 기하학 대신에 자연을 흉내 낸 자연스러운 곡선을사용한다. - P187

노자는 "가장 위대한 직선은 곡선처럼 보일 것이며, 가장 위대한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다. 가장 위대한 이미지는 형태가 없다"고 말했다. - P188

동양철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 중 하나는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인데, 동양인들은 노자 사상과 같은 생각에 근거해서 정원을 디자인할 때 곡선을 사용했다. 그러한 동양적인 개념의 영향을 받아,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이너들은 정원 내에 동양식 정자를 짓고, 기하학적인 직선을 깨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도입했으며, 정원 내에 더 많은 빈 공간을 만들었다. - P188

픽처레스크 스타일은 일인칭 개인적 경험과 인식을 중요시한 디자인 방식이다.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디자인되었던 기하학적 형태는 삼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디자인한 것이며, 정원 내 구성 요소들 간의 관계성은 설계자의 관심 밖 일로,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픽처레스크 정원의 디자이너들은 정원 내 관찰자의 평면적 혹은 수직적인 상대적 위치가 정원 내 구성 요소들 간의 관계성 정립에 큰 변화를 준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 같은 관계성을 디자인에 반영했다. - P191

픽처레스크 정원을 거니는 사람들은 본인이 여러 다른 위치에서 다른 투시도적 이미지를 바라본 경험들을 바탕으로 정원의 전체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구성했다. 서양 정원 디자인에서 상대적 관계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 P191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은 서양 문화에 있어서 경직된 기하학에서 탈피하여 상대성에 가치를 두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점이 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P191

칸트는 1781년《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세상과 자아를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서양 철학의 관점에서 세상과 자아를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인 시각으로의 관점 전환을 보여 주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다른 말로 세상 위에 분리되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이 아니라 나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중심을 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일인칭 시점을 통해서 세상과 나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각이다. 이 같은 칸트의 생각은 픽처레스크 양식과 생각의 궤가 같다고 할 수 있다. - P192

외부의 색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문화권이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이끄는 매력적인 문화가 된다 - P192

18세기 들어 서양 문화에서 빈 공간을 바라보는 인식이 변화되기 시작했으며, 미의 가치를 볼 때 구조물에만 관심을 갖던 기존의 가치에서 탈피하여 빈 공간 자체에도 의미를 두는 쪽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백 년이 지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조경 분야를 넘어 미술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 P192

서양화에 빈 공간의 새로운 가치를 도입한 사람은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1872~1944), 테오 판 두스뷔르흐Theo Van Doesburg(1883~1931), 호안 미로Joan Miro(1893~1983)였다. 신조형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데 스테일De Stijil 그룹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두스뷔르흐는 이차원적인 그림이 어떻게 삼차원 공간적 의미로 변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 줬던 인물이다. - P193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유럽 추상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1897~1976)가 조각에 빈 공간을 도입한 새로운 개념의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 P193

콜더 이전 서양의 조각은 빈 공간을 만든다기보다는 부피와 양감을 가지는 입체 구조물을 만들어 내는 데 주력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을 보면 빈 공간은 몸통과 팔다리사이의 빈 공간 정도밖에 없다. 대신 서양의 조각가들은 대상의 형상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들 중 어느 것도 조각품 내에 적극적인 빈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P193

「메두사」 같은 콜더의 초기 작품을 살펴보면, 동양 문화의 특징인 빈 공간의 적극적인 도입과 모호한 경계가 나타난다. 「메두사」는 삼차원 공간에 철사로 사람의 두상 형태를 만든 작품이다. 관람객은 이 작품을 감상할 때 철사뿐 아니라 철사와 철사 사이의 빈 공간을 인식하고 이해해야 사람의 얼굴과 머리를 연상할 수 있다. - P193

콜더는 「모빌」이라는 조각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콜더는 조각을 할 때 ‘몬드리안의 그림을 움직이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했다고 한다. 실제로 몬드리안이 검정색 선으로 캔버스에 칸을 나누고 그 안에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색을 칠했다면, 콜더는 조각품 「모빌」에서 검정색 철사 선으로 빨강, 파랑, 노랑으로 칠해진 다양한 모양의 금속판을 공중에 매달아 놓고 바람에 의해서 시시각각 움직이게 설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달려 있는 물체 간의 간격과 각도가 매 시간 변화하는 양태를 띠게 되는데, 이렇게 변화하는 관계성이 조각품의 구조체 모양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이 「모빌」의 가장 큰 특징이다. - P194

콜더의 작품「모빌」은 서양 미술사에서 4차원의 시간이라는 주제를 3차원의 조각에 도입한 점만으로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성‘뿐 아니라 서양 조각에 이전까지는 없었던 ‘관계성‘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P194

이 작품에서 황금 분할은 애초에 고려되지도 않았고 중요하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매달려 있는 조각들의 상징적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 대신 「모빌」이라는 조각에서는 여러 개의 요소 간 관계가 가장 중요한 정보가 된다. 그리고 각각 매달려 있는 요소들 간에는 빈 공간이 차지하고 있다. 동양 문화의 특징인 ‘비움‘과 ‘관계‘가 콜더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 P198

콜더가 조각으로 비움과 관계라는 동양의 가치를 보여 주었다면 파울 클레Paul Klee는 회화를 통해 동양 건축에서 보이는 모호한 경계의 공간감을 보여 준다. 그의 작품 「두 개의 길Two Ways」(1932) 속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고 모든 경계가 중첩되고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모호한 경계를 가지는 공간적 성격은 기존에 벽으로 명확한 경계를 가졌던 서양 건축의 공간적 특징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동양 건축에서 기둥구조가 만드는 모호한 경계의 공간적 특징과 흡사하다. - P198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1867~1959)는 건축가로서 일본 건축과 그림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라이트는 미국 내 일본 그림을 유통시키는 가장 큰 화상畵商이었을 정도로 일본 그림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의 투시도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보인다. 첫 번째 특징은 그림에서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점이고, 두 번째 특징은 그림의 액자프레임 선이 자연스럽게 건축물의 그림으로 연결되어 주체와 배경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 P200

일단 벽이 주요 구조체로 사용되면 벽으로 구획된 공간의 특징인 경직되고 명확한 경계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라이트의 공간은 아직 전통적 서양 공간에 더 가깝다. 하지만 라이트보다 조금 더 젊었던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와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전통적인 벽 중심의 공간 구축 방식을 과감히 탈피했다. 주요 구조체로 미스는 철골 기둥을 사용했고, 코르뷔지에는 콘크리트 기둥을 사용했다. 이로써 그들의 건축공간은 동양 건축 공간의 특징인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하고 내부에서 외부로 공간이 흐르는 듯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 P201

의태mimicry는 곤충이나 새, 양서류 등이 서로의 생김새나 동작을 따라하는 것을 말한다. 포식자에게 유독하거나 맛없는 종들이 서로의 특징을 모방해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의도다. - P207

‘같은 속‘에 있는 ‘다른 종‘끼리 이종 교배를 통해서 유전자를 공유하고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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