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 믹스어랏의 대표곡인 ‘베이비 갓 백‘ 과 관련된 각종 논란들과 오해들에 대해 잠깐 다뤘었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추가로 이어진다.

서 믹스어랏은 자신이 받는 오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지키고자 애쓴다. 오히려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간의 차별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쉽게 말해 인종 차별 반대라는 메시지가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 믹스어랏의 의도와는 달리 비평가들의 시선은 다소 엇갈린다. 본문에서 건트라는 이름의 비평가는 이 ‘베이비 갓 백‘ 에 대해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 등에 근거하여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딱히 인종차별을 해결하는데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또다른 비평가인 크리스토퍼 스미스라는 사람은 ‘베이비 갓 백‘ 이 개인의 주체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나름대로 의미 있는 노래였다고 평가한다.

독자인 나는 이러한 비평가들의 평가들을 보면서 결국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기가 보고싶은 면을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위의 경우와 같이 동일한 어떤 대상(여기서는 ‘베이비 갓 백‘ 뮤직비디오)에 대해 A라는 사람은 박한 평가를 하는 반면, B라는 사람은 어떤 의미가 있다는 식으로 다르게 바라보는 것들을 보면,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 라는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바라보는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자신이 보기 나름이고 또한 그 의미를 해석하기 나름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 달 전 쯤에 읽었던 유시민 작가가 쓴《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는 책에서 저자는 과학은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에 기반하여 얘기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것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그럴싸하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꾸며내느냐가 중요하다는 식의 논조로 얘기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베이비 갓 백‘ 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비평가들의 해석이 전형적인 인문학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이 책《엉덩이즘》의 저자도 ‘베이비 갓 백‘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본문에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특별히 사람들의 생각에 무의식중에 스며드는 농담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와닿게 느껴졌다. 이러한 농담들은 은연중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고정관념을 형성시켜서 인종차별이나 각종 혐오 등과 같은 생각들을 심어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파급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독자인 나도 학창시절에 같은 반 친구들과 농담을 서로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개인적으로는 농담이라는 건 별로 의미가 없는 시시콜콜함 속에서도 약간의 진심이 가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약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농담이라는 것은 ‘무심함 속에 살짝 뿌려진 진심이라는 양념‘ 정도로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농담이라는 것에 대해 그닥 순수하게만은 바라보지 않는 편인데, 이는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진심이 그 안에 녹아들어있는 경우들을 많이 보아왔고 또한 실제로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순도 100%인 농담도 물론 아예 없지야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순도 100%인 농담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단 1%라도 진심은 녹아들어가 있다고 느껴진 경우들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는 이런 걸 ‘농담에 뼈가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베이비 갓 백‘ 이후에도 엉덩이와 관련된 노래들이 나왔다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노래를 통해 엉덩이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한 부류와 이에 대해 저급한 문화로 간주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부류간의 일종의 힘 대결이 지속되는 양상에 대해 소개되고 있다.

다음에는 절을 바꿔서 ‘제니퍼 로페즈‘와 관련된 얘기들이 나온다. 본문에 따르면 90년대 후반에 미국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제니퍼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당시 미국의 인구 변화 흐름과도 일정부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주류라고 일컬어지는 백인들에 비해 일명 유색인종이라 불리는 인구의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통계자료를 인용하여 90년대 후반에 제니퍼가 뜰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또한 이에 더해 당시 백인 젊은이들의 힙합 문화에 대한 급격한 관심 증가도 또다른 근거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통해 개인적으로 자세히는 몰랐던 힙합문화와 같은 것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엉덩이라는 것을 소재로 하지만 단순히 엉덩이에 국한되지 않고 엉덩이에서 파생된 다른 분야들, 예를 들어 패션, 음악 등에 대한 조류나 흐름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독자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얻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백인들의 흑인문화를 전유하는 과정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특별히 앞서 언급했던 힙합과 같은 개성이 강한 혹은 색깔이 뚜렷한 흑인 문화에 비해 백인들은 흑인들처럼 어떤 뚜렷한 정체성 혹은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색깔없이 단지 그냥 자신들이 유색인종들보다 우월하다는 우월의식 하나만을 유일한 정체성이라고 가지고 있는 집단처럼 느껴졌다. 어찌보면 이것은 정체성이라고 보기보다는 단지 상대적인 우월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본문에 나오는 평론가들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일종의 정체성에 대한 공허감을 느꼈던 백인들은 흑인 문화를 전유하는 민스트럴 쇼 같은 것들을 통해 흑인 문화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다고 느끼는 것들만 취하는 식으로 일종의 문화 편식을 하게되는데, 이러한 편식 중 하나가 바로 흑인들의 힙합 문화였던 것이다. 본문에서는 백인 남성들이 이러한 흑인들의 힙합 문화에 매료되어 자신의 남성성을 키우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일련의 문화라는 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진화해 나간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단지 문화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말이나 생각 등도 사람들 상호간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나간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는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폭되어 간다는 생각도 든다. 지식의 전달 혹은 전파같은 것들도 과거에는 단순히 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각종 영상매체의 발달과 그에 걸맞는 인프라의 확충으로 인해 정보의 습득 및 전파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기에 앞으로 사회의 발전 속도는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막상 쓰고보니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 책에 나오는 흑인 문화의 전파과정을 보면서 몸소 느낀 이 느낌은 그냥 막연하게 전문가들이 말하는 결론들을 단순히 듣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라는 게 아무리 말을 해줘도 자신이 직접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그 충고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이런 독서나 혹은 삶의 현장에서 하는 어떤 체험들을 통해 본인 스스로가 어떤 것에 대한 필요성이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자기 삶에 훨씬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MTV 음악 및 예능 부문 상무였던 패티 갈루치 Patti Galluzzi가 <벌처>에 설명한 바에 따르면, MTV는 "워런트Warrant의 ‘체리 파이 Cherry Pie‘처럼 파이 조각들이 여자 무릎으로 떨어지는 비디오가 온종일 나오는 근래의 경향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갈루치는 이런 뮤직비디오가 성적이고 성차별적이라는 걸 알아차렸으며, 티퍼 고어의 부모 음악 자원 센터Tipper Gore‘s Parents Music Resource Center 같은 보수 단체와 포르노그래피에 반대하는 여성들Women Against Pornography 같은 페미니즘단체 양쪽에서 그런 화면을 내보내지 말라는 압박이 들어왔다. - P259

서 믹스어랏은 이 노래와 비디오의 목적이 워런트가 "체리 파이"에서 의도한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대상화를 비판하고, 백인 중심의 지배적인 미의 기준에 도전한다고 생각했다. - P260

대부분의 록 음악 비디오들은 대놓고 성차별적이었다. 반면 창작자의 주장대로라면 "베이비 갓 백"은 성차별적인 게 아니라, 성차별 자체를 다루었다. 나아가 인종차별 자체를 다루었다. - P260

서 믹스어랏은 굴곡 있는 흑인 여성의 몸매를 추앙하는 비디오가, 90년대 초 대중문화에 깔린 못된 여성혐오와 함께 싸잡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 P260

서 믹스어랏은 비디오에서 미적 기준을 바꾸자는 정치적 메시지를 의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미적 기준을 ‘없애는‘ 것엔 어지간히 무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면 속 여성들은 정지 표지판 실루엣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천편일률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가운데는 잘록하지만 뒤는 아주 빵빵한" 모래시계 같은 몸매였다. 노래에서는 특정 부위에 지방이 붙어 있다며 여성들을 칭찬하면서도, 옆구리 늘리기 운동이나 윗몸일으키기 운동을 해서 몸매를 유지하라고도 권했다. 즉 이 노래에서 서 믹스어랏은 여전히 무엇이 올바른 몸의 구성 요소인지 결정하려 든다. 달라진 건 세부적인 정의뿐이다. - P260

여성의 몸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허용될 유일한 방법은 남성에게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이 되는 것뿐이다. 믹스는 엉덩이를 공격적으로 성애화하면서, 주류 백인 문화에서 "역겹다"고 여겨졌던 이 신체 부위가 사실 좋다고 주장한다. 모든 몸이 아름답거나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쏙 들어간 허리에 둥그런 엉덩이를 지닌 여자가 보란 듯 걸어가면 혼이 쏙 빠지기 때문"이다. 이 노래에서 여성의 몸은 남자의 시각적 만족을 위해 존재한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매력적인지 선언하는 주체는 어김없이 남성이다. - P261

"그 뮤직비디오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요." 민족 음악학자로서 올버니 대학에서 음악과 연극을 가르치는 조교수이기도 한 카이라 D. 건트Kyra D. Gaunt가 망설이는 기색없이 말한다. 그가 말하는 벡델 테스트는 영화에서 여성이 그려지는 방식을 평가하는 대중적 지표로서,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하고,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그 주제가 남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 P262

건트가 보기에 "베이비 갓 백"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인종차별적이며 고정관념에 대한 페티시로 점철되어 있다. 서 믹스어랏이 아무리 여성들에게 힘을 주려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주장해도 그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서 믹스어랏에게 동의하는 여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트는 이 노래가 여성들에게 주려는 유형의 힘에는 관심이 없다. 그에게 "베이비 갓 백"은 기껏해야 힘을 얻은 여성혐오에 불과하다. 눈요깃거리와 페티시에 정치권력을 실어줘봤자, 그 본질이 변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 P262

건트가 보기에 "베이비 갓 백" 같은 뮤직비디오에서 흑인 여성들에게 준답시고 주장하는 "힘"은, 그 안에서 떠받드는 여성들에 대한 구조적 인종차별을 해결하는 데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 - P263

그러나 《춤추는 혁명 Dancing Revolution》의 저자인 또 다른 민족 음악학자 크리스토퍼 스미스Christopher Smith는 이 뮤직비디오를 오롯이 여성 대상화로만 독해하면 놓치는 게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베이비 갓 백"에서 댄서들이 추는 춤은 당시 힙합(특히 웨스트코스트 크렁크 쪽의) 뮤직비디오의 특징이다. 그쪽 전통에서는 댄서를 "강렬하게 신체적이고, 가시적이며, 독립적인 리듬 트랙의 표현"으로 활용했기에, "체리파이" 유의 비디오에 나오는 텅 빈 눈빛으로 몸을 돌리는 인형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댄서들은 "베이비 갓 백"의 여러 부분에서 프리스타일 춤을 추며 자신만의 즉흥 안무를 펼치는데, 이는 개인의 주체성을 보여준다. 스미스가 보기에 댄서들은 단순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베이비 갓 백"의 핵심을 차지하는 존재였다. 그들의 엉덩이는 거리낌 없고 규제받지 않으며, 버슬이나 거들로 통제당하지 않는다. - P264

"이 노래의 메시지는 모든 여성이 TV와 잡지 속 대단히 마른 모델의 이미지를 통해 끊임없이 폭격 받고 있으며 (…) 여성들과 어린 소녀들에게 모든 사람이 마른 몸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 - P264

"베이비 갓 백"을 형용하는 수식어는 예나 지금이나 많다.
이 노래는 우스꽝스럽고, 기이하고, 중독성 있으며, 다소 난강하다. 춤추기 좋은 곡이고, 누가 뭐래도 재미있다. 창작자는 계속 부인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이 노래가 노벨티 송이라고 생각한다. ‘엉덩이 butt‘라는 단어가 너무나 도드라지게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용법은 딱히 공격적이거나 음란하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고 유치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믹스는 ‘엉덩이‘라고 몇 번이고 외친다. ‘뒤‘나 ‘부티 booty‘ 같은 완곡 어휘도 많이 사용하지만 특히 ‘엉덩이‘라는 단어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이 노래는 한껏 유치해진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던지는 농담 같달까. 이 노래는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고 웃을 수 있는 세계로 청자를 초대하는 듯하다. - P265

미국 온동네의 결혼식에서, 바르 미츠바 (12-13세에 행하는 유대교의 성넌 의례-옮긴이)에서, 고등학교 댄스파티에서 백인 남성들과베키(백인 여성을 뜻하는 단어-옮긴이)들은 즐겁게 ‘엉덩이‘를 외친다. 그들이 이 노래의 세계에서 악역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채로. - P265

나는 엉덩이가 컸지만, 어느 차원에선가 이 노래가 나를 위한 노래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노래는 내가 애독하는 <YM>과 <세븐틴> 잡지 표지를 장식하는 엉덩이 작은 백인여성들을 놀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내가 가진 외모와 내가 원하는 외모의 차이를 부각하고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굴욕감이 들었다. 서 믹스어랏이 소통하고자 했던 거창한 메시지가 뭐였는지는 몰라도, 우리 고등학교 벽을 넘어 의미 있게 전달되진 못했다. 그래, 그는 큰 엉덩이가 좋았나 보다. 내게 중요한 건, 나는 아니라는 거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큰 엉덩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 P266

"악의 없는 농담처럼 보이죠. 멍청한 금발이나 트워킹에 대한 농담이 악의 없어 보이는 것처럼요." 카이라 건트가 말한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농담이야말로 고정관념과 자기 인식을 형성하는 기틀이 된다. 농담은 깊은 숙고의 대상이 되는 일이 드물기에 손쉽게 우리의 무의식에 잠입한다. - P267

"제가 알기로는, 모든 노벨티 송이 이런 유형의 고정관념을 주제로 해요. 상당히 묵직한 주제를 가져다가, 가벼운 것처럼 취급하죠. 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화한다는 착각을 일으키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 P267

건트는 "베이비 갓 백" 같은 노래가 암암리에 해로울 수 있는 방식들을 설명하면서 노래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을 지적한다. 두 ‘베키‘가 엉덩이 큰 여자를 역겹다느니 창녀라느니 하며 묘사하는 부분이다. "이 말이 모두의 기억에 남았지요. 청자는 그 대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면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정신적으로 훈련받는거예요" - P267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모두 댄스 플로어에 서서 비트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밸리 걸 억양을 따라 하며 외쳤다. "딱 봐도 창녀... 역겨워... 정말... 흑인이야." 우리는 그저 흉내를 내고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우리가 외치는 말은 그냥 노래, 그냥 농담이었지만 우리는 그 말을 머릿속에 새겼고 그런 고정관념을 덩달아 마음 깊이 심었다. - P267

건트는 우리가 흑인 여성에 관한 인종차별적 개념들을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새겨넣는 방식을 두고, 일종의 후성유전과 같다고 말한다. 더 나쁜 건,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노래 자체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았다며 우쭐거린다는 것이다. 청자는 노래를 들으면서 뭔가 좋은 일을 한다고 믿게 된다. "흑인 여성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주려 하는 흑인 래퍼를 응원한다고 느끼죠. 하지만 흑인여성에게,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P268

물론 엉덩이를 다룬 노래가 "베이비 갓 백 하나뿐인 건 아니다. 1992년만 해도, "베이비 갓 백" 말고도 유행한 엉덩이노래가 또 있다. 같은 해에 렉스 앤 이펙트 Wreckx‘n Effect가 "럼프 셰이커 Rump Shaker"라는 곡을 발매해서 빌보드 핫 100 차트 2위까지 올랐다. - P268

"엉덩이는 더럽지 않아요." - P268

"우리가 엉덩이를 더럽게 그린 건 아니거든요. 그냥 엉덩이가 좀 흔들리는 것뿐이에요. 기분 나쁠 것 없잖아요. 여자들한테 존경을 표시하려는 거지, 놀리는게 아니에요. 왜 엉덩이만 나오면 그렇게들 열을 받는지 모르겠어요" - P269

사람들을 정말로 열받게 한 앨범은 투 라이브 크루: 2 Live Crow의 <애즈 내스티 애즈 데이 워너 비As Nasty as They Wanna Be>였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이 앨범도 엉덩이에 초점을 맞추었다. - P269

존경받는 역사학자이자 교수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Henry Louis Gates Jr.는<뉴욕 타임스>에 쓴 사설에서 기소를 부른 근본적인 오해를 지적했다. "투 라이브 크루는 흑인과 백인 미국 문화의 고정관념을 좀 서툴게 패러디했을 뿐이다. 이 젊은 아티스트들은 활기찬 댄스 음악에 맞추어, 과잉 성애화된 흑인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과장한 패러디 공연을 하고 있다. (환영처럼 지나가는 성기들과 같은) 과장법을 풍성하게 사용했으므로 흑인문화 코드를 유창히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이들의 가사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을 것이다." - P271

보수 단체들은 솔직한 성적 표현, 만연한 성차별, 힙합 음악 및 시각 문화의 이른바 ‘음란성‘이 백인 청년들을 타락시킬까 봐 걱정했다. 겉보기에 그들의 걱정은 성적 언어와 이미지에 관련한 것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인종차별적인 메시지가 자주 함의되어 있었다. 그들은 서 믹스어랏이 목표를 달성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니까, 뮤직비디오 속 출렁거리는 흑인 엉덩이가 백인 청소년들을 매료시킬까 봐. - P273

엉덩이는 로페즈가 지닌 신체의 자연스러운 일부이자 그를 남들과 구별해주는 특징이었다. - P279

"정말로 아직도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 P279

제니퍼 로페즈가 이름을 날린 1990년대 말에 이르자 여성의 엉덩이는 <코스모폴리탄>과 <세븐틴>처럼 여자들에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아름다운지 알려주는 걸 업으로 하는 잡지에서 단골로 다루는 신체 부위가 되었다. 2000•년대 초에는 달라진 여성의 이상적 신체에 관련해 "이제 가슴 대신 엉덩이인가?" "부틸리셔스: 남자들이 뒷모습에 대해이야기하다"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 P280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미국의 인구 구성이 유의미한 변화를 겪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점점 백인 국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1990년대에 미국 인구에서 흑인의 비율은 15.6퍼센트, 아시아 및 태평양 제도 출신의 비율은 46.3퍼센트, 히스패닉 (미국 인구 통계에서 사용하는 분류)의 비율은 57.9퍼센트 증가했다. 여전히 다른 인종보다 백인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에 있었지만 유색인종의 비율은 높아지고 있었고, 그런 경향은 2010년 내내 이어져 적어도 2050년까지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학자들은 2050년에 이르면 히스패닉 인구가 미국 인구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백인이 소수 인종이 될 거라고 예측한다. 이런 변화 앞에서, ‘주류 미국 문화‘의 정의 자체에 의문이 생긴다. - P281

"주류"란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주류라는 건 대안 · 하위문화 · 일탈 · 아웃사이더 · 별종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류란 변두리에 의해 정의되는 중심으로서, 언뜻 명백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어떤때 주류는 ‘백인‘을 가리키는 완곡어법이고, ‘대중‘ ‘보수적인‘ ‘많이 소비되는‘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이 모든 걸 합친 개념일 때도 있다. - P281

미국의 인구가 변화했다고 해서 비백인 문화의 모든 면모가 널리 수용되기 시작했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미국기업들은 늘고 있는 비백인 소비자들에게 소구하는 데 갈수록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P282

인구 변화가 주류 미국의 얼굴을 바꿔놓는 사이, 향후 30년동안 신체의 이상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백인들이 힙합 음악·패션·문화를 게걸스럽게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 P283

힙합이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장르로 등극하는 데 있어 백인 청중이 핵심 요소였으며, 힙합이 특히 젊은 백인들에게 점점 중요하고 흥미롭게 다가간 장르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283

브롱크스에서 기원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힙합은 미국에서 체계적으로 억압받는 흑인 및 라틴계로 살아가며 경험하는 불안·분노·즐거움·정치를 표현하는 문화 형태다. 힙합의 주체인 흑인과 라틴계의 역사와 경험은, 힙합 레코드 전체의 70퍼센트를 구매하는 백인들의 정체성으로는 소속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 P284

"20세기 대중문화의 역사를 쓰고자 하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흑인 애들만큼 쿨해지고 싶은 백인 애들.‘" - P284

"이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음악, 멈추지 않을 것이며 멈출 수도 없는 자들의 음악이다. (~) 그 안에 담긴 약속과 가능성, 거침과 유머와 육욕으로 모두를 집합시키는 음악이다. 다른 흑인들을, 잉글랜드의 백인 아이들과 인도네시아 중산층 아이들을 한데 모으는 음악이다. 자유가 울리고 있는데 같이 종을 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P284

재즈 이후, 백인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흑인 문화 상품에(특히 흑인 음악에) 매료되고 그 안에 녹아 있다고 여겨지는 쿨함과 진정성에 끌리는 현상은 미국에서 고정 요소가 되었다. 거의 포식자를 연상시킬 만큼 백인들이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수용한 흑인 대중음악으로는 이미 재즈·블루스·로큰롤 펑크가 있었다.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에 백인들에게따끈따끈하게 전유appropriation 당한 장르가 힙합이었다. - P285

백인에 의한 흑인 문화의 전유는 미국 대중문화와 음악의 기반 자체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 미국에서 지배 집단에 의해 주기적으로 전유되는 것은 흑인 문화만이 아니다. 타문화에서 짜릿하고 전복적이고 성적인 부분들을 취하되 문화·정치·사회같은 더 넓은 맥락은 무시하는 전유의 제스처는, 인디언·일본·인도를 포함해 수많은 비백인 문화를 거의 예외 없이 건드렸다. - P285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 이런 유형의 숭배와 모방을 일컬어 표현했듯, 백인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놀 때" 그들은 대체 무얼 찾고 있는 걸까? 아마 가장 직접적이고 흔한 답변은 백인이 문화적 정체감을 갈망한다는 것일 테다. - P285

백인에게 백인성 자체는 정체성으로서의 힘이 없다. 그들에게 백인성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인성은 규범이자, 중간이자, 다른 모든 것이 그들을 반대 삼아 형성되는 기본값이다. 한 마디로 주류다. 백인성은 너무 중립적이고 따분하고 정상적이라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질로선 실격이다. 청소년기 이후 가족과 부모에게서 분리되기 위해 많은 이가 모색하는 차별감과 개성과 반항심이, 백인성에는 없다. - P286

만일 백인성을 정체성으로 인지할 경우, 그 정체성은 불편한 것이기 쉽다. 백인의 정체성은 억압자의 정체성이다. 백인은 역사적으로, 어쩌면 천성적으로 잔인하다. 백인성은 흑인성처럼 허울만 그럴듯한 분류 (단순히 위계를 만들어내고 유지하기 위해 구성된 분류)이기에, 백인으로 정체화한다는 건 그런 인종 위계의 구성에 공모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백인성이 불편한 사람들은 정체성과 소속감을 얻기 위해 다른 문화에 기대려는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 P286

문화 전유를 주제로 한 중요한 저서 《사랑과 절도 Love and Theft》에서 저자 에릭 로트Eric Lott는 19세기와 20세기에 큰 인기를 끌었던 민스트럴 쇼(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고정관념 속흑인 모습을 연기한 공연)를 들여다보며 이런 행동을 탐구한다. 민스트럴 쇼는 오랫동안 미국 대중문화에서 유서 깊은 문화전유의 원초적 순간으로(또한 가장 선명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 P286

로트에 의하면, 주로 뉴욕 같은 대도시 도심에 사는 백인 노동계급이었던 민스트럴 쇼의 관객들은 공연을 보면서 동시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공연 속 반항적이고 본능적인 흑인성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흑인을 멍청한 아이처럼 묘사하는 악의적인 연출의 고정관념을 통해 우월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 P287

민스트럴 쇼는 백인들이 보기에 흥분되고 자유로운 흑인성의 특정 부분들과 자신을 일치시키면서, 반대로 자신의 백인성을 강화하는 방법이었다. 모리슨이 말하듯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놀았지만" 그 자리에 죽 머무르는 법은 결코 없었다. 백인들은 마지막엔 늘 흑인에게서 떨어져 나와, 흑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P287

로트를 비롯한 여러 문화 역사학자들은, 백인들이 흑인 문화 형태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데 관심을 가질 때면 어김없이 이런 이중성이 작용한다고 봤다. - P287

엘비스 프레슬리가 흑인 블루스 가수 아서 "빅 보이" 크러덥Arthur "Big Boy" Crudup이 쓴 노래 "댓츠 올라잇 That‘s All Right"을 불렀을 때, 백인 관객들을 그를 저항적이고 자유롭고 섹시하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를 흑인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야 그가 딱 봐도 백인이기 때문일테다. - P287

하지만 프레슬리의 백인성은 그가 흑인성과의 관계에서 차지한 위치에 의해 강화되었다. 그는 흔히 흑인성에 내재한 흥분과 위험과 에로티시즘을 밀반입하면서, 그것을 익숙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백인성으로 안전하게 포장해 활용했다. 그렇게 관객들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흑인성의 스릴을 두려움도, 죄책감도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됐다. - P287

전 세대와 달리, 90년대의 백인 십대들은 진정성을 내뿜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흑인 아티스트에게 마음과 지갑을 열었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코넬 웨스트Cornel West가
"백인 젊은이들의 아프로-아메리칸화" 라고 부르는 문화 소비 패턴이다. - P288

백인 아이들은 음악을 흡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우상이었던 MTV 힙합 스타들처럼 입고 말하고자 했다. 쿨해지려고, 정체성을 만들어내려고, 웨슬리 모리스에 의하면 언제나 흑인 음악의 일부였던 자유 · 즐거움 · 거침 · 유머의 느낌에 가까워지려고 그들은 도시 흑인들의 말투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특히 백인 남성들에게 힙합은 남성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되어주었다. - P288

문화 비평가 그레그 테이트가 2003년 저서 《부담스러운 건 빼고 나머지 전부》에 적었듯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 형식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백인 중산층 남성의 주제가가 되었다. 이 인구 집단이 미국의 궁극적 아웃사이더인 흑인 남성이 보이는 비극적-마법적 정력의 전시에 시간과 노력을 쏟은 것이 주된 원인"이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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