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여성들처럼 나도 몸의 실루엣을 바꿔주는 속옷을 입어본 적이 있다. 여성스러운 몸매를 만들어내는 게 자신의 몸을 수용하고, 자신의 몸에서 해방되고, 세상에 저항하는 행위였던 쿠치아와 바틀릿과는 반대로 뽕과 스판덱스를 활용해 내 몸을 바꾸려는 시도는 언제나 내 몸을 구속하는 행위였다. - P199
몸매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은 내겐 일종의 일관성을 획득하려는 시도였다. 내 몸의 바깥쪽을 안쪽과 맞추고 싶었다. 사람들 눈에 보이는 나의 자아와, 드러나지 않는 진정한 자아와 일치시키고 싶었다. - P200
뽕브라와 몸을 꽁꽁 싸매는 스판덱스는 어떤 부분은 키우고 어떤 부분은 줄임으로써 내게 이상적인 여성성에 한 발짝 다가갈 기회를 주었다. 내가 사회에서 물려받아 내면화한 젠더의 틀에 내 겉모습이 들어맞도록, 의상을 입고 일정한 여성성을 드러낼 기회를 주었다. - P200
나는 나 자신이 여성스럽다고 느낀다. 적어도 그렇게 느끼고 싶다. 나 자신을 균형 잡힌 성인 여성으로 느끼고 싶다. 세상에서 그런 지령을 내렸다. 나 자신도 내게 똑같은 지령을 내렸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면의 나와 바깥으로 보이는 내가 비슷하길 원하지만, 또한 내 겉모습이 남들에게 정상적이고, 여성스럽고, 올바르게 보이길 원한다. - P201
그러나 여성성은 하나로 정의되는 경험이 아니며 우리가 여성성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들은 무디기 짝이 없다. 큰 가슴, 풍만한 엉덩이, 쏙 들어간 허리처럼 단순하고 뻔한 표지들은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젠더 환상을 만들어낸다. 훨씬 더 유동적이고 복잡한 진실이 존재한대도, 결국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내면을 암시하는 건 여성적인 외형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모순의 정곡을 찌른다. 여성성을 단순하고 단일한 형태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여성성에 내포된 미묘한 뉘앙스들을 지나쳐버린다. - P201
내가 열세 살의 소녀로 살아가는 자유와 주체적인 성인 여성의 특질이라고 상상한 요소를 동시에 갈망한다는 것을, 가감 없이 표현해줄 브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 P201
친구 결혼식이 열리는 교회 앞에 서 있던 날, 변비를 유발하는 거들이나 풍성하게 주름 잡힌 드레스로는 내 안에 존재하는 젠더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나를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여성처럼 꾸몄으며, 내가 판에 박힌 들러리처럼 보인다는 점에 만족했다. - P201
하지만 그렇게 꾸민 나는 교회 앞에 서서,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준 아름다운 부치 butch (레즈비언 커플 가운데 전통 이성애 관계의 남성 역할을 하는 사람-옮긴이) 여성과 눈을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결혼이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이라고 목사가 단언하는 걸 들으면서 우리 둘 다 몸을 어색하게 꼼지락거렸다. 배반의 순간이었다. 나는 로맨틱 코미디 배우만큼이나 여성스러워 보였지만, 젠더와 섹슈얼리티 둘 다에 위장을 두르고 있었다. - P202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제2의 성 The Second Sex》에 적은 유명한 말이다. 여성이 만들어지는 장소는 내 몸과는 다른 환상 속 몸이 손 닿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 존재하는 란제리 가게 복도다. - P202
보부아르의 감성은 20세기와 21세기 젠더 철학에도 녹아 있다.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의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에서는 젠더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구성되고 수행되는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라 여기는 장신구를 착용할 수도 있고, 우리 몸의 어떤 부위들을 강조하거나 뽕을 대거나 조일 수도 있다. - P202
그러나 외면의 표지는 내면의 자아를 드러내지 않는다. 젠더의 수행이 외면과 내면의 대비를 오히려 고조시킬 때도 있다. - P202
버틀러는 진정한 내면의 자아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자아가 있다는, "여성성"이라는 안정적인 개념이 있다는 것은 환상이며 착각일 뿐이다. 정상은 없다. 여성적인 것도 없다. - P202
어떤 방식으로든 단 하나의 젠더로 나를 표현할 때 내가 혼란을 느끼는 이유는, 매우 여성스러운 신부 들러리 드레스를 입고 열심히 가슴과 엉덩이를 부풀려 꾸미는 게 어쩐지 얄팍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런 표현이 실제로 존재하는 다수성을 무시하고 단일성을 주장해서다. 이런 불편에는 비극이 있지만, 어쩌면 기회도 있을지 모른다. 루폴이 말했듯 "우리는 모두 벌거벗고 태어나며 나머지는 전부 드래그"니까. - P203
노마에는 여성성을 정의하고 규제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스팽스를 착용하거나 와그너의 몸에 맞게 디자인된 바지에 내 몸을 욱여넣는 헛된 시도를 할 때, 나는 그 규제를 어렴풋이 느낀다. 내가 타인이 규정한 여성성에, 정상성에 내 몸을 끼워맞추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 P203
바틀릿과 쿠치아는 나와 똑같은 의상들을 착용하면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자유를 느낀다. 그들에게 의상은 다양한 자아를 표현하는 즐거움을 주는 매체다. - P203
바틀릿이 말한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무엇이 남성이고 여성인가에 관한 개념은 추상적인 것이 됩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거죠. 내 경우엔, 맨날 청바지랑 검은 티셔츠만 입는 게 지겨웠어요. 재미있고 화려한 옷도 한번 입어보고 싶었습니다. 나자신에게 물었죠. 왜 나는 멋진 드레스를 입으면 안 돼? 그래서 나는 그런 옷을 입어도 되는 공간을 찾았습니다. 치장하는데에는 마법이 있어요. 그때 나는 더욱 나다운 내가 됩니다." - P204
엉덩이는 (혹은 적어도 그것을 가리키는 속어인 "ass"는) 먼 과거부터 노력과 언어학적으로 연관되었다. "엉덩이가 뚱뚱하다have a fat ass"는 건 게으르고 나태하다는 것과 동의어라서 "뚱뚱한 엉덩이 들고 일하러 가라" 같은 표현에서 쓰인다. 누군가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kick in the ass"는 건 움직이고 일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강한 엉덩이 hard-ass"는 타협하지 않는, 완강한 사람을 가리킨다. "엉덩이가 빠지도록 일한다 work their ass off"는 표현은 작은 엉덩이와 성실한 노동을 직접 연결 짓는다. - P208
"아름다운 다리… 아름다운 다리. 그 다리를 쓰세요! 허벅지에서 치즈버거를 한번 빼봅시다! 당근 케이크도 감자튀김도 빼자고요!" - P211
"엉덩이가 얼얼하도록 운동을 시키니까 사람들이 오더라고요. 조금 지나니까 자기 엉덩이가 보기 좋아졌고 남편이 만족한다는, 근사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더군요." - P212
"세상에, 엉덩이가 강철이 된 것 같아요". - P212
스미시가 <번즈 오브 스틸>을 내놓은 타이밍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운동이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둘러싼 개념은 뿌리부터 달라졌다. 운동 역사학자이자 뉴스쿨 대학 교수인 나탈리아 페트르젤라 Natalia Petrzcla에 의하면, 미국 피트니스 문화에서 열풍이 일어난 시기는 대체로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존재가 부상한 시기와 일치한다. 1920년대와 50년대가 그러하다. - P212
갈수록 늘어나던 사무직 종사자들은 신체를 주로 사용하는 직업의 사람만큼 많이 활동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사회적 불안이 쌓여갔다. 운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그래서 뚱뚱해질 것에 대한) 걱정은 그 시대의 중산층 문화에도 침투했는데, 그건 운동의 효과가 단지 기능적인 몸이나 건강한 몸을 얻는 것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한 몸을 지닌다는 건, 언제나 그 이상을 의미한다. - P213
페트르젤라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서 신체 운동의 개념은 흔히 애국심과 연결되는데, 국민의 신체 건강과 역량이(최근까지도) 군사적 역량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인한 몸을 지닌 사람은 전쟁에서 싸울 준비가 더 잘 되어 있다. - P213
1970년대에 신체 건강은 규율과 자기 창조라는 가치를 드러내는 중요한 방식으로 부상했다. 건강한 몸은 강건한 노동 윤리와 자신을 통제할 능력을 드러내는 시각적 상징이 되었다. 개인이 자기 운명을 개척해간다는 발상에 열중하던 미국에서, 이 두 자질은 매우 중요해졌다. - P214
개인주의의 열풍이 막 몰아치기 시작한 1968년에, 케네스 쿠퍼 Kenneth Cooper라는 이름의 공군 군의관이 《에어로빅스Aerobics》라는 책을 펴내 팔다리와 상체뿐 아니라 심장 안의 근육까지도 강화하는 운동의 미덕을 극찬했다. - P215
보디빌딩은 서커스 공연과 프릭 쇼가 남긴 자손격으로서, 거의 전적으로 남성만의 영역인 일탈적 하위문화였다. 보디빌더들은 지나치게 여성적(남자들과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고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 동성애자로 의심받았다)이라고 인식되기도 했고, 기괴할 정도로 근육의 크기를 키우고 눈에 띄게 힘을 과시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남성적이라고 인식되기도 했다. 보디빌딩은 이처럼 극단적이라서 보통 사람 대부분은 시도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P215
쿠퍼의 저서는 근육을 무지막지하게 키우지 않는 다른 근력 운동도 있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장거리 주자나 무용수와 같은 늘씬한 근육을 만드는 운동을 홍보한 것이다. 이런 몸매는 모든 젠더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특히 여성들이 열광했다. - P215
지금처럼 그때도 에어로빅 운동은 체력을 키워주고 심혈관계 건강을 개선할 뿐 아니라, 동시에 날씬한 몸매를 갖게 해준다고 약속한다. 에어로빅 운동에서 근력을 키워봤자, 남성성(혹은 부치스러움)의 표지가 될 수 있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로 이성애 규범의 한계를 넘는 일은 없었다. - P215
에어로빅 댄스(쿠퍼가 저서에 담은 개념을 바탕으로 한)는 인간 언어가 만들어진 방식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에 여러 장소에서 만들어졌다. 스핀부터 발레와 <번즈 오브 스틸>까지, 여러 형태의 운동이 태곳적의 움직임에서 제각기 진화한 결과다. - P216
주디 미세트 Judi Missett는 1969년에 시카고의 무용 스튜디오에서 세계 최초의 ‘재저사이즈 Jazzercise‘ 수업을 했고, 재키 소런슨jacki Sorensen은 이듬해 뉴저지 지역의 YMCA에서 비슷한 스타일의 에어로빅 댄스를 가르쳤다. - P216
에어로빅이 이토록 빠르게 인기를 얻은 데에는 몇 가지 합당한 이유가 있다. 우선 미세트와 소런슨의 수강생은 가족 수입에 약간이나마 여유가 있고, 시간도 조금 있고, 레이건과 닉슨에게 투표하고, 바자회에서 판매할 쿠키를 굽고, 자신의 여성성과 활력이 국가에 기여할 것이라 보는, 비교적 보수적인 중산층 여성들이었다. 소런슨의 남편은 공군이었으며 소런슨은 종종 공군 기지에서도 수업을 열었다. 도시를 옮겨 다닌 덕분에 소런슨의 운동은 미국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 P217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에어로빅의 인기는 2세대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더욱 높아졌다. 2세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성을 약함과 엮는 일에 반기를 들었고, 그들의 활동덕분에 1972년에 더 많은 여성이 경쟁 스포츠에 참여할 수있게 해주는 ‘타이틀 나인‘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 전 수십 년 동안 체육관은 많은 여성에게 적대적인 장소였다. 몸을 움직이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도, 몸을 움직이고 싶은 여성은 외로움을 느꼈다. - P217
움직이는 것(헤엄치고, 들어올리고, 뛰고, 달리는 것)은 인간에게 해방감과 연결감을 준다. 그러나 에어로빅이 등장하기 전에는 많은 여성이 그 느낌에 다가설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에어로빅 이전의 세계를, 여성의 일상에 규칙적인 운동이 존재하지 않고 운동한 몸은 남성적이며 수상한 것으로 취급되던 과거를 상상하기 어렵다. - P217
"정말로 큰 변화였습니다. (...) 여성들이 모여서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며 몸을 움직이다니요." 페트르젤라가 말한다. "힘들고 고된 운동이 섹시하고 여성적인 것의 영역에 편입된 건 정말 큰 변화였죠." - P218
에어로빅을 발명한 사람은 미세트와 소런슨일지 몰라도, 세계적 에어로빅 열풍을 불러일으킨 공로를 인정받을 사람은 따로 있다. 정치적으로는 좌파이면서 즐기는 취미는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절묘한 균형을 이뤄낸 그는 영화배우 제인 폰다Jane Fonda다. - P218
페미니스트들에겐 백치 같은 할리우드 섹스 심벌로 폄하당하고, 많은 미국인에겐 반역자로 불리는 혼돈 속에서 폰다는 새 영화 배역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준비의 일환으로 그는 길다 막스Gilda Marx의 에어로빅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미세트와 소런슨의 수업처럼 수강생을 최고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설계된 고열량 소모 댄스 수업이었다. 폰다는 에어로빅에 푹 빠졌다. 에어로빅이 너무 좋았던 그는 베벌리힐스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곧 열성적인 수강생들을 여럿 모으게 되었다. - P219
표지에서 폰다는 댄스 스튜디오로 보이는 장소의 바닥에 한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 누워서 두 다리를 공중으로 뻗고 있다. 손으로는 발등을 쭉 펴서 ‘포인‘ 동작을 한 발의 발꿈치를 잡고 있다. 포즈를 취한 폰다는 발레리나 같으면서도 강인해 보인다. 폰다의 몸은 활동할 수 있는 몸, 유연하고 강하고 누가 봐도 날씬한 몸, 남들에게 갈망 받는 몸 그리고 눈에 띄게 엉덩이가 없는 몸이다. - P219
1980년대 초에 대다수 가정에는 VCR이 없었다. 비디오테이프는 주로 영화광과 포르노 중독자들의 영역이었다. ‘홈트레이닝‘ 비디오 같은 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 칼 홈비디오Karl Home Video의 스튜어트 칼Stuart Karl은 체육관과 에어로빅 스튜디오를 아직 낯설고 환대받지 못하는 곳으로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폰다의 운동법을 더 널리 퍼뜨릴 기회를 포착했다. 칼은 폰다에게 접근해서, 운동 루틴을 영상으로 찍어보자고 설득했다. 폰다는 동의했고, 둘은 5만달러를 들여서 첫 번째 비디오를 찍었다. - P220
폰다 열풍은 인종의 경계를 넘어 퍼져나갔다. <에센스Essence>처럼 흑인 여자들을 독자로 하는 패션 잡지에서도 주기적으로 에어로빅 특집을 실었다. 폰다의 비디오를 포함해 많은 에어로빅 비디오 속 주인공은 거의 백인이었지만 수강생에는 꼭 유색인종을 넣었다. 비디오테이프의 값이 내려가면서 에어로빅 비디오는 비싼 체육관 회원권을 감당할 여유가 없는 여성들에게 접근성 좋은 운동법이 되었다. 1980년대 말에 이르자 폰다는 에어로빅을 전 세계에 대중화한 사람을 넘어 피트니스의 아이콘이 되었고, 다른 강사들이 활동할 기반을 닦아주었다. 그레그 스미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 P221
떠오르고 있던 에어로빅 강사 타밀리 웹Tamilce Webb은 이후 10년 동안 ‘스틸‘ 시리즈의 얼굴(이자 엉덩이)을 맡아 메이어와 스미시를 돈방석에 앉게 해주었다. - P224
공항에서 무얼 들어 올리려고 몸을 숙이면 누군가 등을 두드리며 물었다. "<번즈 오브 스틸> 아가씨 아니에요?" 엉덩이 하나만으로 알아볼 수 있는 유명 인사가 된 것이다. - P227
체육관 문화가 부상하고 DVD와 어플이 생겨나면서, ‘홈트레이닝‘ 비디오의 유행은 결국은 주류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번즈 오브 스틸>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피트니스 문화가 무엇을 열망하는지를 우리에게 강력하게 일깨운다. <번즈 오브스틸>은 비디오를 보고 따라 하는 사람들을 초인 비슷한 것으로 변신시키겠다고, 불완전하고 부드러운 살을 단단한 금속으로 바꿔주겠다고 약속한다. - P227
주류의 이상은 노마의 생식력 있고 튼튼한 몸매에서 앙증맞고 쫀쫀한 근육질의 엉덩이로 다시 한번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이 꿈꾸는 건 제인 폰다가 "로버의 복수"라고 부른 레퍼토리 수천 번을 반복하여 만들어진 엉덩이, 강철로 만들어진 엉덩이였다. - P227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나는 팀 스포츠를 하거나, 암벽 등반을 하거나,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여성들이 느끼는 신체적 자유와 숙달의 경험을 자주 갈망했다. 하지만 내게 운동은 싫어도 해야 하는 일로, 끊임없이 실패할 기회로 느껴지는 일이 더 잦았다. - P229
운동이 내 몸을 더 작고 더 올바른 몸으로 바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내 안에서는 운동에 대한 반항심이 들끓고, 운동으로 얻을지 모르는 즐거움은 죄다 소멸되어버렸다. - P229
나는 운동이 나를 돌보는 방법임을 잘 안다. 내가 강하고 자유롭다고 느끼게 해주는 방법인 것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게 운동은 어김없이 어느 형태의 자기비판처럼 느껴지고 만다. - P229
운동의 가능성과 현실이 이루는 이런 긴장은 에어로빅의 이야기 자체에도 녹아 있다. 누군가는 에어로빅이 여성들이몸을 단련할, 해방될 기회라고 주장했지만 에어로빅의 유행은 이상적인 몸매라는 개념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에서 여성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어떤 신체 기준이 있던 기존의 자리에 다른 신체 기준을 세울 뿐이었다. 여성 개개인에게 그 기준을 충족시킬 책임을 지울 뿐이었다. - P229
에어로빅에서 강인한 몸은 여성성과 공존할 수 있었지만, 그건 에어로빅이 신체에 관한 젠더 의식에 전면으로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어로빅에서는 언제나 전통적 여성성에 부합하는 몸매가 강조되었다. 강사들은 여성들에게 강해지되, 늘씬하고 나긋하고 이성애자 남성들에게 성적 매력을 지니는 몸매를 포기하진 말라고 권장했다. 에어로빅 스튜디오에서 우락부락한 근육은, 부치 미학은, 커다란 엉덩이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 P230
1980년대에 에어로빅과 피트니스 문화가 부상하면서 굳어진 미의 기준은 여성의 겉모습에 관한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높아지는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만 두 배로 늘렸다. 폴 푸아레와 코코 샤넬이 코르셋을 없앴으나 식단으로 통제되는 몸매를 요구한 것과 같이, <번즈 오브 스틸>도 또 다른 미학적 지령을 내리는데 그친 셈이다. - P230
에어로빅 (더 넓게는 일반적인 운동)은 변혁과 자기 계발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운동을 해서 제일 좋은 버전의 나 자신이 될 것이다. 통제되는 몸이자, 그 몸을 통제하는 몸이 될 것이다.‘ 이는 과잉 책임과 최면적 수동성 둘 다로 향하는 환상이며, 에어로빅 비디오에도 그 양면이 모두 녹아 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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