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우생학자들에 의해 사람들의 표준 치수를 측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특별히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표준화된 치수에 기반하여 제품이 생산되는 기성복 패션 산업과 관련된 내용으로 시작해본다.

기성복 패션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8세기 말에 일어났던 제1차 산업혁명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의류 제작 과정이 단순해지고 비용도 저렴해졌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서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정말 관련 업계의 판을 크게 뒤집어놓을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최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AI를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이 변화의 물결에 제 때 올라타지 못한다면 시대에 뒤처질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도 다시금 느끼게 되면서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야한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읽다보니 표준화된 수치를 얻기 위해 앞선 포스팅에서도 잠깐 봤던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통제하기가 비교적 용이한 군대에서 데이터를 측정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데이터라는 게 활용하기에 따라서 정말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데 기성복과 관련하여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남성의 표준 데이터는 그래도 편차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여성의 경우 표준 데이터가 있더라도 개개인별로 가슴 둘레와 엉덩이 둘레의 편차가 커서 의류를 표준화하여 제작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실제 신체사이즈와 맞지 않는 경우들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것과 관련하여 저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에비게일 글럼-래스버리 라는 사람의 말을 통해 여성복 업계에서 표준화된 치수로 소비자들에게 맞는 옷을 만들어내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독자인 나만의 용어를 사용하여 이것을 단순한 말로 정리하자면 ‘업계의 고충‘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뒤이어서 ‘나타샤 와그너‘라는 모델에 대한 얘기가 소개되는데 이 모델은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마르지도 않은 적당한 사이즈를 가진 모델로 많은 기성복 업체들에게 선호되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이 모델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 평균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기에 기성복 제조 업체들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맞는 옷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이런 걸 보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것보다는 뭐든지 적당한 것이 낫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물론 모든 분야에 통용되는 말은 아닐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사례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또한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의류 업계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독자인 나만의 문장으로 이 부분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의류 업체들은 사람들의 몸에 맞는 옷을 제작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목표와 더불어 의류생산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성이라는 측면을 함께 고려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표준화된 대량생산을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 몸에 딱 맞는 옷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 운이 좋아서 의류 업체가 모델로 사용한 사람의 치수와 완전히 동일한 신체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어쨌든 이러한 최적화와 경제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 어딘가에서 절충점을 찾아나아가는 과정이 의류 업계가 풀어야할 과제다. 여기서 저자는 이 과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이러한 옷과 사람의 몸이 정확히 매칭이 안되는 불가피한 상황을 본문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의 몸은 제멋대로예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람의 몸이라는 걸 획일화할 수 없다는 것과 더불어 참 인간의 다양성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또한 이는 비단 몸이나 생김새같은 외적인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살아온 환경이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들로 인해 형성되어가는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성격들 또한 각양각색이다. 문득 가수 싸이의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사가 생각났다.

˝세상이 나를 뭐라 판단해도~ 그냥 사는거야. 생긴대로˝

이 가사처럼 생긴대로 사는거지 뭐 어쩌겠나. 무슨 게임처럼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
.
다음에는 단락을 바꿔서 ‘저항‘이라는 소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 글은 뉴욕 퀸즈 애스토리아의 술집인 아이콘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여 쓴 글인데,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분야인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이 일부 등장한다. 여기서 이와 관련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글의 요지와는 논외의 얘기이므로 따로 하진 않겠다. 다만 이와 관련된 용어인 드래그 퀸, 펨, 크로스드레서 등과 같은 단어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용어들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드래그 퀸 같은 경우 본문에 별도로 의미가 나와있지 않아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여장을 한 남성을 지칭한다고 했다. 아마도 남남인 동성커플 중 한 사람이 여성의 역할을 해야할 때 혹은 드래그 쇼같은 것을 할 때 여장하는 것을 폭넖게 아우르는 단어라고 여겨졌다.

여기서 저자는 매력적인 드래그 퀸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다양한 아이템을 만드는 어떤 업체(플래닛 페퍼)의 사장 부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이 인터뷰에서 사장 부부는 이 분야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당당함을 보여준다. 자신들이 만드는 아이템들이 고객의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게 핵심적인 이유였다. 아이템을 착용한 고객들이 ‘제 모습이 달라졌어요,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라는 말을 할 때마다 해당 업체의 공동체 내에서의 기반이 보다 확고히 다져진다는 저자의 말은 많은 걸 느끼게 해준다.

갑자기 살짝 생뚱맞긴 하지만 경영학적인 마인드로 이 이야기를 바라봤을 때 독자인 나는 분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어떤 물질적 혹은 심리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는 회사가 결국 해당 업계에서 잘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위 사례에 나오는 업체는 퀴어, 즉 성소수자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데, 특정한 아이템들을 고객들에게 제공하여 고객들의 기분을 좋게해주고 자존감까지 올려주는, 고객들이 느끼기에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전달해주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 저자가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가치는 바로 ‘당당함‘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앞서 이 챕터의 제목이 ‘저항‘이기도 했고, 퀴어라는 성소수자집단의 문화에 대한 얘기를 통해 이 세상의 그 누구든 간에 자신의 몸이 어떠한 체형이든 관계없이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러한 ‘당당함과 자신감‘ 이라는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일명 뽕이라고 불리는 보정 아이템들을 착용하는 얘기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들을 보면서 저자가 ‘당당함‘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와 관련된 얘기들을 좀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눈이 튀어나올 만큼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기성복 패션 산업은 사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 표준화된 의복 치수를 만들려는 시도는 그보다도 더 최근의 일이다. 19세기 이전에는 거의 모든 의류가 지금 쿠튀르 의류가 제작되는 방식대로 하나씩, 손으로,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 P177

1300년 이전 유럽의 의류 대부분은 몸에 꼭 맞지 않고 흐르는 듯 느슨했으며, 치수도 여유로워 두루 입을 수 있었다. 중세의 튜닉엔 끈이 달려서 몸에 맞추기 쉬웠고, 사람들 대부분은 성인기 전체를 이런 튜닉 한두 벌로 지냈다. - P178

이렇듯 중세 사람들이 치수가 분화되지 않은 옷을 입고 살았던 건, 옷을 만드는 과정이 워낙 고됐기 때문이다. 옷을 만들려면 손바느질로 천을 꿰매는 것은 물론, 천을 짜기 위해 양모나 다른 섬유를 뽑는 일마저 일일이 사람이 직접 해야 했다. 그러니 당시 옷은 여러 해 동안 입을 수 있어야 했고, 신장과 몸 둘레가 달라져도 대응할 수 있어야 했다. - P178

18세기 말에 제1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직물 제조 과정이 단순화되고 직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기성복 의류를 구매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직물 공장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많은 일을 외주하게 되자, 의류를 제작하는 과정은 갈수록 단순하고 저렴해졌다. - P178

1850년대에 재봉틀과 대량 생산이 도입되자 의류 제작에는 또 한 번 대변혁이 일어났다. 옷은 전보다 더 싸졌고,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많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집에서 땀 흘려일하는 재봉사의 임금은 그만큼 상승하지 않았다. - P178

많은 기술이 그렇듯 최초의 표준 의류 치수는 군에서 개발되었다. - P178

군 간부들은 가슴둘레를 재면 신체 비율을 대략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가슴둘레를 기준으로 하는 일련의 표준 치수들을 만들어냈다. - P179

군에서 발명한 치수 체계는 전쟁 밖에서는 당시 늘고 있던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일상복으로 입을 정장을 제작하는데 활용되었다. 치수 체계는 완벽한 해법은 아닐지언정 그럭저럭 쓸만했는데, 그 이유는 남성의 몸이 여성의 몸보다 살이 적고 분포도 더 균일하기 때문이었다(난데없이 불룩 튀어나온 가슴, 살집 있는 엉덩이, 임신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 P179

남성복 시장은 점점 성장했다. 1890년대 뉴욕의 의류 지구는도시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의류 산업이 늘 그렇듯, 높은 수익이 공정한 임금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19세기 초 이후 실제로 옷 만드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민자들이었다. 처음엔 아일랜드인 이민자, 다음엔 독일과 스웨덴 이민자, 1890년대에는 남유럽과 동유럽 이민자들이었다. 그들의 근무 조건과 임금은 대체로 최악이었다. - P179

기성 남성복(즉, 가게에서 사서 수선 없이 바로 입을 수 있는 옷)이 거둔 성공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남성복과 비견할 만한 여성복 치수 체계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제조업체들은 옷걸이에 기성복을 걸어놓고 여자들이 이를 쉽게 구매하게 하면 떼돈을 벌 걸 알았으나, 방법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제일 먼저 시도된 건 옷을 반쯤만 맞춤으로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1890년대에 여성들은 가게나 카탈로그에서 4분의 3 정도 완성된 옷을 구매해서, 자기 재봉틀을 이용해 직접 몸에 맞게 수선해 입었다. 노동의 마지막 단계는 집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 P180

코코 샤넬이 단순하고 스포티한 스타일을 분주히 개척하던 20세기 초, 제조업체들은 드디어 전체가 완성된 여성복을생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성복 치수 체계를 따라 여성복 치수를 만들려고 했다. 가슴둘레를 전체 신체 치수의 기준으로 삼는 방법을 따라 한 것이었는데, 여성의 몸에 이런 방법이 잘 통할 리 만무했다. 가슴둘레는 여성의 다른 신체 부위의 치수를 조금도 알려주지 못한다. 엉덩이가 큰데 가슴이 작을 수도 있다. 다리가 긴데 가슴이 클 수도 있다. (당대에 흔했던 관행대로) 카탈로그로 옷을 주문한 여성들은 구입한 의류를 대량으로 반품하게 되었다. - P180

패션 업계에서는 1930년대에 이루어진 루스 오브라이언의 연구를 참조하여 그의 데이터를 실전에 적용해보고자 했지만, 제조업체에서는 현실적으로 그 데이터를 활용하기가 불가능했다. 치수별로 맞추어 금형을 하나하나 제작하려면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다. 오브라이언의 체계에서 제안한 치수는 27개였는데, 그만큼의 금형을 제작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58년 연방 정부 산하 표준국에서 루스 오브라이언의 데이터를 재가공하고, 가슴둘레를 기준으로 삼는 기존 치수 체계와 결합했다. 그렇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치수 체계가 탄생했다. 새로운 체계에서는 모래시계 형태의 신체를 가정하고 가슴둘레를 기준으로 8부터 38까지 짝수로 치수를 매겼다. 치수 체계 사용은 처음엔 의무였으나 1970년에 선택이 되었고, 1983년에는 아예 폐기되었다. 도무지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P181

"당신에게 맞추어 만들어진 옷이 아니라면, 실제로 당신에게 맞을 리 없습니다." - P181

예술가이자 패션 디자이너, 시카고 예술대학 교수인 글럼-래스버리는 치수의 역사와 오늘날 치수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해왔다. 그는 여성복의 치수는 실제로 옷이 몸에 맞는지에 대해 거의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당혹스럽고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나 역시 내가 산 옷이 몸에 잘 맞는다고 느낀 적은 살면서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의류 디자이너와 제조업체도 실제로 옷이 사람의 몸에 맞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니, 새로웠다. 그들도 몸에 맞는 옷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단지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의 진보한 기술과 제조업으로도 그 과업이 불가능한 것뿐이다. - P182

글럼-래스버리의 설명에 의하면 옷이 몸에 맞으려면 살이 분포된 형태와 옷이 일치해야 하는데, 살은 표준화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두 여자의 키와 몸 둘레 치수가 정확히 같더라도, 골격 위에 살이 반드시 같은 형태로 붙어 있는 건 아니다. 이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위는 가슴이다. 가령 글럼-래스버리와 내가 가슴둘레가 정확히 같더라도, 가슴 모양은 다를 수 있다. - P182

엉덩이도 똑같다. 엉덩이와 허리둘레 치수는 여성의 엉덩이 살이 분포된 방식이나 모양을 알려주지 못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엉덩이엔 규격이란 게 없으므로, 규격화된 바지 치수는 전적으로 비현실적이다. - P182

디자이너들이 옷을 만들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마네킹에 천을 걸쳐보는 것이다. 마네킹은 몸과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긴 하지만 딱딱하고, 살이 없고, 머리도 없는 토르소와 다리에 불과하다. 초기에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나 쓸모 있을뿐, 제작이 진행될수록 무용해진다. 사람들이 앉을 때, 몸을 구부릴 때, 민감한 피부를 가졌을 경우 옷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면 옷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입혀보아야 한다. 자기가 만드는 옷에 대해 제법 이해하게 된 디자이너는 다음 단계로 모델을 불러와 옷이 잘 맞는지 피팅한다. 여성복 바지를 디자인할 경우, 바지 전문 모델을 부른다. - P183

지난 10년 사이 여성복 청바지를 한 벌이라도 입어보았다면, 십중팔구는 너태샤 와그너 Natasha Wagner의 엉덩이에 맞도록 디자인된 바지를 입어보았을 것이다. 와그너는 패션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요를 자랑하는 데님 피팅모델로서 , 세븐 포 올 맨카인드7 for All Mankind, 마더Mother, 시티즌즈 오브 휴매너티Citizens of Humanity, 리던Re/Done, 페이지 Paige, 블랙 오키드Black Orchid, 빈스Vince, 프로엔자 슐러 Proenza Schouler, 갭Gap, 럭키브랜드Lucky Brand, 올드 네이비old Navy, 리바이스Levi‘s를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와 일했다. <보그>에서는 그를 "엉덩이로 이 나라를 빚어내고 있는 여성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리파이너리29 Refinery29>에서는 그에 대해 "업계 최고의 엉덩이"를 지녔다고 묘사한다. - P183

와그너의 임무는 나머지 모든 사람을 대표할 몸을 지니는 것, 노마처럼 정상인 동시에 이상적인 몸을 지니는 것, 모든 옷이 실제로 잘 맞는 몸을 지니는 것이다. - P183

"완벽하게 불완벽하다" - P184

"곡선이 과한 (허리가 아주 가늘고 엉덩이가 큰) 사람이나 몸매가 일자인 (골반이 없는) 사람에게 피팅하면, 옷이 특정한 신체 유형에만 맞도록 제약됩니다. (...) 와그너는 날씬하면서도 적당히 볼륨감이 있는 몸매라서, 양쪽의 장점을 다 가지고 있어요." 와그너를 고용하는 디자이너 한 사람이 <보그>에 설명했다. - P184

와그너는 자신이 피팅모델로서 인기 있는 이유를 이처럼 사람들에게 평균으로 인식되는 몸을 지녀서라고 말한다. "예산상 모델을 딱 한 사람밖에 고용할 수 없는 회사에서는 너무 뚱뚱하거나 마르지 않고, 너무 크거나 작지 않은 사람을 원해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1945년에 노마를 둘러싼 지배적 담론인 ‘과도함‘의 개념이 떠오른다. 와그너의 몸은 여러 면에서 일반적이지 않은데도 정상적인 몸의 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 P185

의류 업계에 표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치수를 결정하는 건 각 브랜드의 몫이다. 이는 브랜드가 제각기 이상적인 고객을 직접 결정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여러 브랜드의 옷을 입어보면, 치수에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 P185

글럼-래스버리는 브랜드마다 다른 유형의 고객에게 소구하며, 치수를 매기는 방식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설명한다. 특정 브랜드가 팔고자하는 이미지나 이상이 늘씬하고 키가 크고 엉덩이가 적당히 있는 와그너의 치수와 일치하면, 그와 같은 비율을 가진 여성의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와그너는 적합하다고 판정받는다. - P186

의류 제조업체가 관심을 가지는 건 사람들에게 맞는 옷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고객이 될 사람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 P186

와그너는 경험을 통해 벨트 고리를 요크심에 꿰매지 않으면 바지를 입을 때 뜯어진다는 걸 알고, 주머니는 어떤 형태가 최고로 편리한지도 안다. 와그너는 회사가 완벽한 핏을 완성하면 그냥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옷 뒤쪽이 내려가지 않아요. 허리 밴드가 쓸리지 않고요. 모든 부분이 몸을 알맞게 감싸주는 느낌이죠." - P186

와그너는 옷의 기초가 되는 이상적인 몸 형태를 제공한다.
그러나 회사들은 보통 옷을 한 개 치수만 만들지 않는다. 각자 조금씩 다른 수학 공식을 활용해, 프로토타입의 큰 버전과 작은 버전을 만들어낸다. ‘그레이딩‘이라고 불리는 이 과정은 글럼-래스버리가 설명하길 대단히 복잡하다고 한다. - P187

사이즈가 커질 때마다 옷에 들어가는 천의 양도 비례해 많아지므로 2사이즈와 4사이즈의 차이는 1인치지만 14사이즈와 16사이즈의 차이는 2.5인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187

천이 더 들어가는 부위도 항상 같지 않다. 회사들은 치수를 늘릴 때, 체구가 커질수록 살이 어느 부위에 붙는지를 염두에 둔다. 따라서 치수가 커져도 목둘레는 별로 달라지지 않지만 의상의 전면 중심에는 천이 1인치 더 필요할 수 있다. - P187

둘레만 늘어나는게 아니라, 길이도 늘어난다. 여기엔 4사이즈를 입는 여성이 10사이즈를 입는 여성보다 키가 작다는 가정이 들어가 있다. 옷치수가 커질수록 이런 가정들이 쌓여가고, 그만큼 옷이 몸에 잘 맞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 P187

이 지점에서 나를 당혹하게 한 건(먼 옛날부터 도통 이해할수 없었던 건) 이렇게 엉망진창인 치수 체계가 사업 모델로서 버젓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188

의류업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산업의 하나다. 제품이 고객들에게 잘 맞을 거라고 담보할 수 있다면, 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지 않을까? 분명히 이보다 더 수익성 좋고 개선된 방법이 있을 것이다. - P188

글럼-래스버리는 의류 업계에서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을 만드는 건 업계 사람들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그들도 어쩔 수 없어서라고 설명한다. "기억하세요, 옷은 당신의 몸과는 아무 상관없이 만들어집니다. 옷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요. 기본적인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을 뿐이지요." - P188

패션은 대규모 산업이라 회사가 돈을 벌 유일한 방법은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이고, 그 절차의 효율성을 높일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설령 제조업체가 한 번에 티셔츠 200벌의 패턴을 재단할 수 있다 해도, 천을 바느질하는 작업은 누군가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한다. 바느질을 할 줄 아는 로봇은 아직 없다. 우리가 입는 모든 의류는 사람이 재봉틀 앞에 앉아서 바느질한 것이다. - P188

의류 업계는 역사 내내 노동력 착취와 기타 비윤리적 노동 관행을 두루 활용해 바느질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한 낮추었지만, 그래도 획기적인 가격 인하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현실 인간의 몸에 맞도록 치수를 다양화하고 변형한 의류를 효율적으로 생산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해진다. - P188

"지금의 치수 체계가 잘 작동하려면, 우리 신체 부위가 교체 가능한 부품이 되어야 합니다." 글럼-래스버리가 설명한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부품들처럼요." - P189

그는 치수의 한계를 직접 경험해본 적이 있다. 작은 의류 브랜드를 운영했을 때, 그의 목표는 예쁜 천으로 사람들의 몸에 잘 맞는 아름답고 품질 좋은 의류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옷은 현실 사람들이 지닌 가지각색의 몸에 잘 맞지 않았다. 목표는 분명히 몸에 맞는 옷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목표는 아무리 해도 달성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실현 불가능했다. - P189

"우리의 몸은 제멋대로예요." - P189

제멋대로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깊게 남았다. 우리 몸은 반항아다. 치수에, 자본주의에, 급을 나누고 위계를 세워 통제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에 저항한다. 몸이 제멋대로라는 생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로 느껴지기에 호소력이 크다. - P189

나는 나이트크림을 바르고, 스쾃을 하고, 잘 맞지 않는 바지 안에 내 몸을 욱여넣으려 애쓰지만 그래도 내 몸에는 주름살과 셀룰라이트와 아무리 봐도 엉망이라 느껴지는 엉덩이가 있다. 내 몸은 그것을 통제하려는 내 노력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 P189

하지만 물론 모든 사람이 자기 몸을 기준에 욱여넣으려 애쓰는 건 아니다. 모두가 정상이 되려고 애쓰는 건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몸이 제멋대로라는 게, 몸이 무수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한껏 즐길 거리가 되기도 한다. - P190

퀸즈 애스토리아의 술집 아이콘에서 만나는 모든 게 그렇듯 스페셜 드링크는 유쾌하고, 말장난이 섞여 있었으며, 퀴어스러웠다. - P191

지하철을 제외하면, 아이콘은 내가 뉴욕에서 가본 곳 중 가장 다양성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인종·젠더·계급 표현이 당당히 전시되어 있었다. - P192

내가 아이콘을 방문한 목적은 우리 몸과 치수의 역사에,
노마를 만들어내고 전시한 사회의 젠더 규범에 깊이 새겨진
‘동일성과 정상성‘의 해독제를 찾기 위해서였다. 과연, 이보다 더 나은 곳에 올 수는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93

‘펨 (레즈비언 커플 가운데 전통 이성애 관계의 여성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옮긴이)‘ - P192

아이콘에서 엉덩이는 공개적으로 갖고 놀 수 있는 것, 취향과 인격에 따라 부풀리거나 줄일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엉덩이는, 우리 몸은, 그 공간 안에서 어떤 규범을 따르기는커녕 혼란을 일으킬 즐거운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궁금해졌다. 이런 다중성은 어떻게 얻어지는 걸까? 이 위풍당당한 엉덩이들은 전부 어디서 온 걸까? - P194

크로스드레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다른 성별의 것이라 인식하는 옷을 입는 사람들 - 옮긴이), - P196

"우리는 여성적인 몸을 지니지 못했지만 여성적으로 보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의상을 만들고 있었어요. 처음 우리를 찾아왔을 때 그들은 여느 사내와 다르지 않게 보이는 사람들이죠. 우리는 일단 몸부터 건드리고, 다음으로 의상을 작업했어요. 곧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드래그 퀸이나 여성적으로 보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엉덩이 뽕을 만드는 사람은 우리 전에 없었다고요." 바틀릿이 설명했다. - P197

"어떤 몸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 드래그 퀸들의 머릿속에서는 스위치가 켜집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죠. 진심으로 원하는 몸과 손톱과 가슴을 가지면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걷게 돼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고요.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호령하게 되죠." - P198

"여성이 되는 걸 상상할 때, 보통은 가슴과 머리카락과 얼굴에만 집중해요. 하지만 모든 걸 극적으로 바꿔놓는건 바로 이런 골반이랑 엉덩이죠. 많은 사람이 말해요. ‘제 모습이 달라졌어요,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 P1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