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역설적인 혁명‘ 이라는 용어가 나왔었는데 그것과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진다. 코르셋의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이제는 미의 새로운 표준이 된 날씬한 실루엣을 얻기 위해 다이어트와 운동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속박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역설적인 혁명‘ 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밸러리 스틸이라는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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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1920년대 파리의 독특한 문화현상에 대한 배경 설명과 함께 ‘조세핀 베이커‘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등장한다. 본문 내용에 따르면 이 사람은 엉덩이로 꽤나 유명세를 떨쳤다고 하는데, 특별히 베이커가 공연을 할 때 호불호가 굉장히 심하게 갈렸다고 한다. 이 사람에게 열광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뭐 저런게 다 있냐며 질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베이커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뭐 여기서 어떤 것의 시시비비를 따지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독자인 나는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지닌 가치관이나 생각에 따라서 그 신념이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의 신념과 가치관에 반대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살았던 베이커의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다.

이런 당당한 흑인 여성인 베이커의 모습에 상대적으로 엉덩이가 없던 백인 여성들도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3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백인 여성들이 베이커가 공연에서 췄던 춤을 흉내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직접적으로 본문에 적어놓진 않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방식이 나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더욱더 그 의미에 대해 곱씹어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이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을 살짝 덧붙여보자면 이 책에서는 엉덩이라는 것을 소재로 했기에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비단 엉덩이에 국한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좀 더 확장해서 본질을 살펴보자면 성별을 불문하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원래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는 속성이 있다는 게 내가 여기서 생각해본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엉덩이가 상대적으로 없는 플래퍼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그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엉덩이가 큰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엉덩이가 큰 사람의 경우 상대적으로 마른 체형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각종 운동 등을 통해 날씬한 몸매를 갈망하는 건지도 모른다.

엉덩이 이야기 외에 다른 한가지 예를 추가로 들어보자면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안에서도 공부는 잘하지만 상대적으로 노는 것에는 서툰 고리타분한 범생이도 있는 반면 공부는 상대적으로 못하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노는 것에 능수능란한 학생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두 부류의 학생들이 서로에게 가지지 못한 부분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뭐 실제로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러했고. 본질은 위에서 얘기했던 엉덩이 이야기와 동일하다고 본다. 서로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갈망한다는 것 말이다.

여기서 나는 이러한 갈망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같은 것을 할 생각은 없다. 이 갈망의 대상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그냥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갖고 있는 재능, 능력 등을 잘 활용하여 자기자신이 그저 행복하게 잘 살면 그만인 것이다. 신이 내게 준 재능을 가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잘 활용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굳이 없는 것에 집착하다보면 우울해지거나 불행해질 수 있기에 그런 류의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내가 잘하고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본다.

쓰다보니 엉덩이 이야기와는 점점 관련이 없어지는 느낌도 드는데 어쨌든 여기에 내재된 인간의 본성이라는 뿌리는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여기 일일이 적진 않았지만 엉덩이와 관련된 20세기 초의 패션의 변천사와 더불어 각종 다양한 서양의 문화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울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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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를 바꿔서 4장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보는 얘기가 가장 먼저 나온다. 여기서 눈에 띄는 장면은 이 모녀가 백화점 탈의실에 들어가 자신들이 마음에 든다고 느꼈던 옷을 착용해본 뒤에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 것이었다.

하단에 밑줄 친 문장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옷은 문제가 없어. 문제는 나야. (p.163)]

이 다섯 마디밖에 안되는 문장에 참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게 느껴졌다. 저자는 의류 제조회사가 특정한 기준에 맞춰서 대량으로 생산한 옷에 자신의 몸의 특정부분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듯 보였다.

어떠한 관점이 옳다 그르다 이렇게 함부로 판단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저자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뭐 충분히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본다. 추가적으로 이와 관련된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여보자면, 만약 해당 브랜드가 몸의 특정 부위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찾아보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디자인 측면에서 브랜드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뭐 결과적으로는 제품 제조업체와 내 몸과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가벼운 예를 하나 들자면 운동화를 살 때 나는 발볼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라 내 사이즈의 운동화라도 발볼이 원체 좁게 나오는 브랜드 제품의 경우에는 반사이즈를 업시키거나 혹은 아예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실제로 나이키 운동화의 경우 발볼이 동일 사이즈의 다른 브랜드 제품들에 비해 좁게 디자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딱 맞는 사이즈로 샀다가 발이 너무 꽉 끼인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 신발에는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 책의 주요 소재인 엉덩이와는 관련이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엉덩이든 발이든 둘 다 내 몸에 붙어있는 신체부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관련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기에는 좀 조심스럽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저자의 사고방식과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내 발볼이 비정상적으로 넓은 것인가?‘

물론 나도 이런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이러한 생각에 파묻혀 괴로워하기보다는 차라리 나이키가 나랑 맞지 않는 신발브랜드인가보다 생각하고 아디다스나 기타 다른 브랜드의 신발을 구매하여 잘 신는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아디다스 신발을 구입해서 신어본 결과 발볼이 넓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내 원래 사이즈대로 구매를 했음에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안 맞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나와 맞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비단 개인의 신체부위에만 국한지어서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생각이나 철학, 행동, 인간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넖게 적용시켜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이지 않나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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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으면서는 ‘노마norma‘ 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본문의 내용에 근거해 생각해보면 이는 ‘정상적인‘ 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normal 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었다. 이것은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우생학에 근거하여 정상적인 미국인의 모델을 설정하여 우월한 유전자만을 후대에 남기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시도에서 비롯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여기서 노마는 정상적인 미국인의 표준을 담은 모델을 지칭하는데 여자는 ‘노마‘ 라고 지칭했고 남자는 ‘노먼‘이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하단에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각각의 성별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연구자들은 남성의 경우 군인들의 신체 데이터를 측정하고 그것의 평균을 내는 작업을 했으며, 여성의 경우 과거에 국가기관에서 했던 기성복 표준 치수 측정 프로젝트의 자료들을 활용하는 식으로 나름의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표준적인 혹은 정상적인 미국인의 신체 데이터를 획득했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는 이 프로젝트의 연구자들이 ‘정상‘과 ‘완벽‘이라는 약간은 다르다고 느껴지는 단어를 마치 동의어처럼 썼다는 것에 의구심을 품기도 하는데, 그냥 단순히 직관적인 의미로만 생각해본다면 해석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튼 이 프로젝트는 우생학에 기반한 특정 신체조건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인종차별적인 성격도 섞여있었고 열등한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 또한 배제하려는 듯한 움직임도 있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 이러한 성격의 프로젝트를 했다가는 일반 대중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들었을 법도 한데, 20세기 초 당시만 하더라도 이러한 것들에 관대했던 것인지 아니면 아예 차별받는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못했던 것인지 이유야 어찌됐든 그냥저냥 별일없이 넘어갔던 것 같다. 어쩌면 우생학이라는 것이 굉장히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시기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말한다. 위에서 언급한 프로젝트들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현실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프로젝트에서 도출된 평균을 기성복 의류 업계 같은 곳에서 사용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체에는 표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p.176)이다.

처음 시작은 우생학에 근거하여 꽤나 과학적인 방식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듯 보였지만, 이 세상은 우생학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성이 많은 곳이기에 어떤 획일화된 표준을 만드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다가 문득 ‘인생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이라는 게 밖으로 보여지는 얼굴 생김새부터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능 같은 것들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것을 획일화해서 완벽한 표준이라고 일컬을만한 인생 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A라는 사람에게 적합한 길이 B라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 혹은 타고난 재능 등에 따라 마땅히 가야할 길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생길에도 정답이 없는 마당에 어떤 사람의 신체 치수에 표준이 되는 정답이 있다는 식의 사고는 그당시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고 보여진다.

이번 포스팅의 앞 부분에서 ‘조세핀 베이커‘에 대해 썼던 글이 있는데 이 베이커처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든 관계없이 그저 자신이 가진 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하든 당당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갖고 사는 게 그나마 정답이라면 정답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친다.


패셔너블한 새로운 실루엣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여성(고든 콘웨이나 코코 샤넬 같은 몸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은 다이어트나 운동을 해야 했다. 스틸이 보기에, 1920년대의 새로운 스타일은 사실 하나도 자유롭지 않았다. 오히려 마조히즘적인 자기 통제를, 심지어 자기혐오를 요구했다. - P147

20세기 초부터 몇십 년 사이에 성형수술이 발명되고 대중화되었다. 이는 자기가 타고난 것과 다른 몸매를 원하며 돈도 쓸 만큼 있는 여성들에게 급진적인 새로운 선택지가 되어주었다. 전신 마취는 아직 미숙했고 다소 실험적인 단계였다. 수술은 무엇 하나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여성들은 늘씬하고 쭉 뻗은 몸매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엉덩이와 골반의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택했다. - P148

같은 시기 여성 잡지에서는 지면에 실은 패션을 소화할 수있는 몸매로 바꿔줄, 다양하고도 미심쩍은 요법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 P148

플래퍼의 외양은 엉덩이 없이 늘씬한 몸매만으로 완성되는건 아니었다. 무언가 이국적인 부분이 더해져야 했다. - P149

19세기 중반에 서양 정부들이 일본과 무역 및 외교 관계를 맺은 뒤 모든 일본적인 것에 열광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여기에 ‘자포니즘japonism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P149

휘슬러, 모네, 프루스트,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한 많은 유럽 예술가들이 당시 각광 받던 일본 문화 상품에서 주제와 기법에 관한 영감을 얻어 서양 미학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일본의 미학이 고급 예술과 세련된 취향의 영역으로 편입된 연유다. - P149

푸아레와 샤넬은 중세 이래 서양에서 인기 있던 형태인 몸에 딱 맞게 재단하고 장식한 드레스에서 벗어나, 인도의 사리와 일본의 기모노가 "천의 평평한 부분"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라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 P150

그런데 1920년대 패션이 아시아 모티프를 채택한 데에는 또 다른 행간의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초 대중의 인식 속에서 동아시아 여성들이 고도로 섹슈얼한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이런 인식은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졌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동아시아(특히 중국) 여성을 성노동자로 가정해 미국 이민을 실질적으로 금지한 1875년의 페이지법이다. 이런 연상관계로 인해, 동아시아 여성들이 입는 전통 의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푸아레의 코트 같은 의상은 1920년대 아시아 여성의 특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인종차별적인 섹슈얼리티가 교양 및 취향의 표지와 융합한 또 다른 사례다. - P150

미국의 거의 모든 문화 현상이 그러하듯, 플래퍼는 또한 흑인성과의 관계(그리고 거리)에 의해 만들어졌다. 콘웨이의 일러스트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플래퍼는 백인이었지만, 가장 유명했던 플래퍼 중에는 흑인도 있다. 그 주인공은 1920년대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엉덩이를 지녔던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다. - P151

1920년대 중반 파리는 미국 흑인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허브 역할을 했다. 파리는 전 세계 흑인들을 만나고 어울리면서,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똘레랑스와 존경을 누릴수 있는 곳이었다. - P151

네그리튀드Négritude (흑인 시민들의 문화운동-옮긴이) - P152

파리는 백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아프리카 예술과 문화와 이국적인 흑인의 "원시주의"에 열광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 P152

미국 백인 보헤미안과 플래퍼들도 흑인성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뉴욕에서 콘웨이와 같은 플래퍼들은 할렘의 나이트클럽을 즐겨 드나들었다. 이는 그들이 흑인 문화와 교류하고, 인종 분리가 아닌 혼합을 이룸으로써 기성 문화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 P152

할렘 르네상스의 주인공인 국외자들과 현대적인 원시주의의 환상이 한데 어우러진 1920년대 파리에서, 조세핀 베이커의 가장 유명한 공연 <라 르뷔 네그르 La Revue Negre〉가 몸이 근질거리던 군중 앞에 막을 올렸다. 공연은 즉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P152

베이커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기원한 미국 흑인 고유의 춤인 찰스턴을 추었다. 파리에선 신문물이었던 이 춤은 그의 묘사에 의하면 "한쪽 골반을 반대쪽 골반에 올리고 한쪽발을 다른 쪽 발에 올려, 엉덩이를 꺼내고 손을 흔들며 추는춤"이었다. - P153

비평가들은 공연에 열광했다. 그러나 열띤 호평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여러 세기 동안 흑인 여성과 그의 엉덩이에 부여해온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이 녹아 있다. 예를 들어 〈라르 비방L‘Art Vivant)에서 앙드레 르뱅송 André Levinson은 베이커가 "고대의 동물 같은 광휘를 뽐내다가, 자애로운 식인종 같은 미소를 지으며 엉덩이를 움직여 탄복하던 관객들에게서 웃음을 자아낸다"라고 적었다. - P154

베이커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공연이 반향을 일으키리라 생각한 이유를 설명했다. "너무 오랫동안 엉덩이를 지나치게 감추고 살았다. 엉덩이는 버젓이 존재하거늘. 엉덩이를 왜 비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멍청하고, 가식적이고, 무의미하고, 오로지 깔고 앉는 용도로만 쓸모 있는 엉덩이도 있긴 하다." - P155

무용학자 브렌다 딕슨 고트실드Brenda Dixon Gottschild는 다큐멘터리 <조세핀 베이커>에서 <라 르뷔 네그르>의 초연에 대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같다"라고 묘사한다. 이 공연은 최초의 흑인 슈퍼스타를 낳았다. - P155

"어떤 사람들은 홀딱 반해버렸어요.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알던 유럽 문명이 그대로 끝장났다고 믿었죠. 싸움터는 다름 아닌 조세핀 베이커의 엉덩이였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프랑스어로 베이커 광팬을 뜻하는 "베이커마니 Bakermanie"라고 부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 P155

<라 르뷔 네그르>가 상연된 후, 베이커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 여자의 반열에 올랐다. 베이커의 이미지는 담배와 머리카락용 포마드 광고에 사용되었고, 베이커 본인은 일러스트레이터와 사진가들의 뮤즈가 되었다. 가게에서 조세핀 베이커 인형을 판매할 정도였다. - P155

<라르뷔 네그르>는 미국 흑인 고유의 춤과 베이커가 미국에서 선보인 민스트럴 및 보드빌극의 오랜 역사에서 영감을얻은, 하나의 대담한 선언이었다. 베이커는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이고 흔들면서 서유럽 전통의 춤 개념에 도전장을 던졌다. - P155

베이커의 공연은 복잡했으며, 그만큼 복잡한 유산을 남겼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20세기의 세라 바트먼이라고 말한다.
또는 부르주아 백인 관객들을 자극해 매료시키고 격분시키기 위해 전시된 또 한 명의 흑인 여성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베이커가 비판받는 지점은 자신을 이국적으로 꾸몄다는 것,
다 알면서 일부러 스스로 착취했다는 것, 나체와 바나나 스커트와 치타를 활용함으로써 아프리카에 갖는 고정관념에 장단을 맞춰주었다는 것이다. - P156

또 다른 사람들은 <라 르뷔 네그르>가 오히려 베이커가 자신에 관한 인식과 관념을 되찾아온 방법이었다고 본다. 베이커는 열정적으로 자유롭게 공연에 참여했고 큰돈을 벌었다. 또한 자신이 흑인 여성성의 고정관념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전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했다. - P156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공연에 한결같이 유머와 패러디요소를 넣었다. 코러스 걸로 활동한 이른 시기부터 그는 무대위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몸치인 시늉을 하는 것처럼 능청스러운 요소들을 넣곤 했다. 파리에서 주로 백인이었던 관객들에게 성적으로 여겨지고 대상화되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을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 P157

플래퍼는 이렇듯 다면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코코 샤넬의 환상 속 엉덩이 없는 여성들이었다. 덕분에 실제로 1920년대의 많은 여성이 곡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다이어트와 운동과 수술을 동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조세핀 베이커처럼 엉덩이를 내밀고 찰스턴을 추기도 했다. 이런 여성들 가운데 일부는 베이커의 표현을 빌리자면 "멍청하고 가식적이고 무의미해서(백인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엉덩이에 대해 거의 대놓고 비꼬는 표현이었다)" 깔고 앉는 데에나 쓰이는 엉덩이를 지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이가 조세핀 베이커의 몸에 대해, 또한 백인보다 섹슈얼하게 타고났다고 간주한 다른 유색인종 여성의 몸에 대해 상상해왔던 성적 자유를 시험해보고, 자기 몸에도 적용해보고 있었다. 흑인 여성성과 백인 여성성의 유서 깊은 관계는 그 뒤로도 역사속에서 끈질기게 이어진다. - P157

실루엣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룩한 버슬이든, 직선으로 떨어지는 플래퍼 스타일이든) 미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제스처다. - P157

의상이 디자인되고 유행이 생겨날 때, 여성 신체의 곡선은 (옷·유전·다이어트, 운동 등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젠더와 취향과 계급에 대한 더 큰 이야기를 대신하는 은유가 된다. 그안에 들어 있는 의미들은 좀처럼 이야기되는 법이 없으며 보통은 의식조차 되지 않지만, 엉덩이와 마찬가지로 엄연히 존재한다. 그 의미들은 언급되지 않기에 도리어 더욱 강력해진다. - P158

엄마는 입어본 옷을 도통 마음에 들어 하는 법이 없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에서 내비쳤던 희망은, 몸에 걸치고 단추를 채우고 지퍼를 올리자마자 씻은 듯 사라져버렸다. 밑단은 너무 길었고 허리는 너무 넓었다. 너무 꽉 끼는 재질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언어에서, 내 언어에서, 우리의 언어에서 언제나 잘못인 것은 옷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었다. "내가 키가 작아서 그래"라고 엄마는 말했다. "팔뚝에 살이 많아서 그래. 엉덩이가 너무 커서 그래." 엉덩이는 매번 도마 위에 올랐다. 그렇게, 엄마는 말하고 있었다. 옷은 문제가 없어. 문제는 나야. - P163

나는 금방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고, 곧 그 말들을 나 역시 내뱉기 시작했다. 옷을 입어본다는 건 때로 다른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만든 틀에 내 몸을 욱여넣으려 애쓰는 일 같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느낌은 실제로 벌어진 일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몸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1920년대 이후 만들어진 의류는 대부분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이다. 바지가 우리 몸에 맞지 않는 건, 우리가 지닌 몸의 비율이 의류 회사가 상상한 몸의 비율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63

패션 업계는 다양한 신체 유형의 의미를 정의하는 작업을 소리 없이 해나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옷 자체도 ‘올바름‘을 물질적으로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기능한다. 바지는 우리가 두 손으로 쥘 수 있는 물리적 사물인 한편, 우리 몸에 말그대로 ‘적합하지‘ 않은 부위가 있다고 상기시키는 상징적 도구다. 우리 몸의 특정 부위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다고 느낄때마다 우리는 어딘가에 딱 맞는 몸이, 적당한 중간의 몸이, 정확히 올바른 몸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 P164

적당한 중간의 몸이란 이상인 동시에 평균이며, 과한 부분이 없다는 점 때문에 그 자체로 완벽하다. 그렇지만 중간이란, 정상이란 대체 무엇일까? 엄마는 자기 엉덩이가 너무 크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나도 자주 같은 말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엉덩이는 대체 무엇과 비교해서 너무 큰 걸까? - P164

노마는 엉덩이뿐 아니라 신체의 모든 부분이 ‘골딜록스goldilocks‘ 지점에, 그러니까 과하지 않은 최적점에 있다. 그는 어느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딱 적합하다". 적어도 그를 설계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 P165

노마는 1945년 6월에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 전시장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전시장 반대쪽에는 그의 남성 짝인 노먼이 서 있었다. 이 한 쌍은 생식 능력이 있는 "전형적인" 성인 남성과 여성의 대표로서, 산부인과 의사 로버트 라투 디킨슨Robert Latou Dickinson과 예술가 에이브럼 벨스키 Abram Belkkie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 P165

노마는 고든 콘웨이가 그린 플래퍼와는 달랐고, 살집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깁슨 걸도 아니었다. 엉덩이는 날씬했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가슴은 뒤늦게 급히 붙여넣은 듯 보였다. 진짜 가슴을 본 적 없는 사람이 만든 것처럼, 기운찬 두 개의 구형이 흉부에 어색하게 달려 있었다. ‘표준‘을 뜻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노마는 과연 어느 모로 보나 별난 구석이 없었다. 그는 정상이었다. - P166

노마 조각상은 아주 구체적인 정상 개념을 암시한다. 백인이고 이성애자였으며 이 점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 전시장에서는 노먼이 항시 굳건히 그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장애가 없었다. 표정은 다소 시무룩했으며, 매혹적인 부분은 전혀 없었고, 두 팔을 몸옆에 붙이고 아주 꼿꼿하게 서 있었다. 과학 수업 시간에 포즈를 잡은 모델 같아 보였다. 그의 매력은 (이름대로) 정상성 자체에 있었다. 그게 제작자들의 의도였다. - P166

노마와 노먼 조각상을 만드는 일은 미국 우생학계의 프로젝트였다. 프랜시스 골턴이 만들어낸 인종차별적 과학을 바탕으로, 조르주 퀴비에를 비롯한 19세기 사상가들은 인간 신체의 위계를 정하고 집행하면서 우생학을 발전시켰다. 미국우생학자들의 한 계파는 불임시술을 통해 부적합한 사람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애썼고, 나머지는 반대 방향을 택하여 올바른 사람들에게 자녀를 낳으라고 분주히 권장했다. - P166

말하자면 노마와 노먼은 성인 버전 ‘우량아 대회‘의 우승자였다. 그들의 신체는 우생학자들이 미국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 특징들을 담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사 박물관에 우뚝 선 노마와 노먼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어떤 종류의 성인 신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 적합한지 예증했다. 바람직한 인간은 튼튼하고, 생식 능력이 있고, 장애가 없으며, 미국 본토 토박이인 백인이었다. - P167

벨스키와 디킨슨은 과학적 접근법을 따르고 싶었으므로,
노마와 노먼을 만들 때 주관적 선호가 아닌 데이터에 의존했다. - P167

"표준 의류 치수의 부재로 인해 소매업체와 소비자 모두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몸에 잘 맞는 옷을 구할 수없는 어려움이 있다." - P168

어쨌든 노마는 올바른 유형의 미국 여성을 합성해낸 결실이어야 했다. 여성성을 정의하고, 누구를 재생산하고 누구를 재생산해선 안 되는지 명확히 밝혀주는 기준이어야 했다. - P170

훗날 미국 우생학 협회의 회장이 된 샤피로는 또한 평균이어떻게 이상이 될 수 있는지 강조했다. "노마와 노먼은 노쇠가 시작되기 전인 성인의 평균에 부합하도록 디자인되었지만, 평범하거나 평균적인 몸과는 실로 거리가 먼 비율적 조화를 보인다." 그들의 평범성이야말로 주목할 만한 것이었으며, 역설적으로 독특했다. 샤피로는 말했다. "이렇게 표현하겠다. 평균 미국인의 몸매는 신체 형태와 비율 면에서 완벽함에 근접한다. 평균은 매우 귀하다." - P171

정상과 완벽을 하나로 합친 샤피로의 표현을 처음 읽었을때, 나는 그가 너무 멀리 나갔다고 느꼈다. 완벽은 어쨌거나 중간보다는 정점을 의미하고, 어떤 면으로는 다른 이들보다우위에 있는 두드러진 인간 유형을 뜻하는 단어 아닌가.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완벽한 인간은 나머지보다 똑똑하고, 아름답고, 날씬하고, 우아하다. 전형적인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다. - P171

그렇지만 샤피로의 논리는 실질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직관적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나는 나 자신의 몸을 ‘비정상‘이라 느끼는 일이 많다. 커다란 엉덩이, 약간 사시인 눈, 운동이라면 무엇이든 소질이 없다는 점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흔한 특성인데도 내 것일 땐 단점처럼 느껴질 뿐, 정상으로 여겨진 적이 없었다. 결국 정상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평균이나 흔한 특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을 가리킨다. - P171

정상적인 여성은 여성적이었지만, 너무 여성적이진 않았다. 정상적인 여성은 강했지만, 매우 강한 편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여성은 엉덩이가 있었지만, 지나치게 크진 않았다. 정상적인 여성은 일하던 공장을 떠나 미군 남성과 결혼하고, 방금 수백만 인구를 잃은 세상에 다시 사람을 채워넣는 노력에 가담했다. - P173

정상성의 개념은 언제나 특정 의제를 동반한다. 노마의 경우, 그의 신체 치수를 분석한 이들은 열정적인 우생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유색인종·장애인·퀴어를 현실에서 없애버리겠다는 욕망을 동력으로 삼아, 완벽하게 정상적인 미국인 인종을 만들겠다는 공공연한 시도를 일삼았다. 또한 미국 시민이 되는 일을 평균적인(단연코 달성 불가능한 신체를 가지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 P175

노마 지지자들은 정상성을 성문화하며 비정상적인 것까지 성문화하고 있었다. 이상을 만들어내는 일에는 언제나 반대를 향하는 프로젝트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 P175

그러나 우생학자들이 창조해낸 노마가 실제로 입증해낸 사실은, 현실적으로 어떤 몸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 P175

두드러지는 존재는 불가피하게 집단에서 떨어져 나올수밖에 없다. 그들의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한 건, 신체에는 표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가슴은 앞으로 튀어나오고, 어떤 가슴은 아래로 처진다. 어떤 발목은 굵고, 어떤 발목은 가늘다. 어떤 사람들은 어깨가 넓고 골반이 좁다. 어떤 엉덩이는 크고, 어떤 엉덩이는 작다. - P176

세라 바트먼이 착취되고 전시된 과거가 먼 옛날의 유물처럼 느껴지듯이, 우리는 이제 노마 시대를 벗어나 ‘정상‘의 해로운 환상을 초월한 상태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정상‘의 구체적 의미는 끊임없이 달라지는 반면, ‘정상‘이라는 개념 자체의 생존력은 놀랍도록 끈질기다. 공개적으로 정상성을 지지하는 큐레이터나 조각가가 없는 지금도 그러하다. - P176

노마와 노먼은 더 이상 박물관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탈의실에, 잡지에, 끊임없이 스크롤해 내려가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언제나 숨어 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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