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는 더러움, 배설물, 변과 관련되었습니다. 과거라면 ‘부자연스러운 성‘이라고 불렸을 것들이었죠. 복잡한 시대였어요" 어만은 버슬이 여성 엉덩이의 흠을 제거함으로써 위협을 줄인 복제품, 이른바 "매끈한 엉덩이"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엉덩이의 형태와 기능이 이상화되었고, 상태가 위생적일수록 엉덩이는 더 에로틱해졌다. 더러움을 연상시키지 않는, 당당히 내민 엉덩이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 P127
과거 르네상스 시대의 속옷 디자인은 그 아래 감추고 있는신체에 관한 도발적 암시를 의도한 것이었지만,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의 몸을 조이고 속박하는 코르셋은 그 자체로 욕망의 대상이었다. - P127
옷은 그 아래의 몸을 대체하는 외골격이었다. 여성이 걸친 모든 옷이 여성의 신체를 대신한다면, 속옷이 새로운 피부로 여겨진다면, 여성은 언제나 옷을 입고 있으면서 동시에 벌거벗은 셈이다. 그녀의 신체는 몸에 두른 끈과, 천의 위와 아래에 다 존재하며 끊임없이 남들에게 전시된다. 또는 적어도, 누군가의 몸은 그렇게 전시된다. - P127
"버슬! 버슬이란 무엇인가?" 1840년 10월 말, <아이리시 페니 저널 Irish Penny Journal>에 익명의 저자가 건방진 투로 적었다. "버슬은 그리스 비너스를 닮은 자기 몸매에, 호텐토트 비너스의 특징을 더하고자 하는 숙녀들이 사용하는 품목이다!" - P127
일종의 인공 엉덩이라고 할 수 있는 버슬은 여자를 그리스 비너스에서 호텐토트 비너스로 변신시켜주는 새장과 같은 기구다. - P129
버슬은 백인성과 흑인성 둘 다를 연출해주는 소품이다. 프랑스 여자가 단연코 흑인스럽다고 느껴지는 신체를 모방하게 해주고, 그다음에는 벗어던짐으로써 백인성을 되찾게 해준다. - P130
지난 여러 세기 동안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백인 문화와 패션은 가차 없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에 능숙하다. 다른 이들의 문화와 역사, 신체에서 입맛에 맞는 부분만 취하고 나머지를 내버리는 일이 흔하다. 엉덩이의 역사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 P131
문화 비평가 그레그 테이트Greg Tate가 동명의 저서에서 지적하듯 백인 문화는 "부담스러운 건 빼고 나머지 전부"를 즐거이 취한다. 원하는 것을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모른 체한다. 흑인 여성의 경우 그들의 몸에 결부된 에로티시즘을 즐기고 놀리되, 인간 이하의 존재로 분류되면서 생긴 트라우마는 버린다. - P131
1991년에 비평가 리사 존스Lisa Jones와의 인터뷰에서 시인 엘리자베스 앨릭잰더는 세라 바트먼의 신체와 버슬의 관계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이 집착하는 것,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당신이 파괴해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무엇보다도 강렬히 원하는 것입니다." - P131
버슬은 위험하고, 유혹적이며, 안전하게 숨겨져 있으면서 동시에 노출된 엉덩이를 의미한다. 그 엉덩이는 여자의 남편과 국가, 심지어 여자 자신이 집착하고, 겁내고, 따라서 무엇보다도 욕망하는 무언가를 대표한다. - P132
우리가 몸에 걸치는 물건들은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드러내고 싶은지,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이해받고 싶은지를 물질문화의 여러 유형 중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입는 옷으로 무엇을 소통하려 하는지 우리 자신도 정확히 모를 때가 있다. - P133
엉덩이를 부풀리고 장식 술을 흔들면서 1880년에 런던의길거리를 걸을 때, 그 여자들은 자신의 실루엣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착용한 버슬은 알게 모르게 점잖음과 통제에 관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인종과 식민지와 흑인 여성의 신체에 부여된 가치에 대해 시각적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 P133
세라 바트먼은 반세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삶과 죽음이 남긴 유산은 꾸준히 끌러나오는 중이다. 패셔너블한 실루엣의, 또한 패셔너블한 엉덩이의 구성 요소는 머지않아 극적으로 달라지지만, 여성성·백인성·통제에 관한 무의식들은 여성의 의복에 오래도록 수놓이게 된다. - P133
여자들이 새장처럼 뻣뻣한 버슬과 코르셋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20세기 초 이상적인 여성의 외형적 특징은 유려하고 부드러운 선이었다. - P135
깁슨 걸은 빅토리아 시대보다 여유로운 옷을 입었고, 휠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몸의 곡선을 충분히 자랑했다. 가슴은 풍만했고, 엉덩이는 둥글었으며, 풍성한 머리숱은 정수리 부근에 느슨하게 쪽을 져 올렸다. - P135
고든이 원한 건 단순히 패션을 따르는 게 아니었다. 패셔너블한 것의 정의를 바꾸는 것이었다. - P137
문자 그대로, 콘웨이는 스스로를 패션의 역사에 그려 넣었다. - P138
플래퍼가 낳은 깊고 지속적인 문화적 변화가 가장 공공연하게 드러난 분야는 패션일 것이다. 여성 신체의 곡선은 (혹은 곡선의 부재는) 다시 한번 여성성과 섹슈얼리티의 정의가 투사되는 스크린이 되었다. 몸은 또다시 강렬한 은유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 P139
19세기 사람들은 큰 엉덩이에 열중하고 심지어 집착했다. 1800년대에 패셔너블하고 여성스러운 여자가 되려면 곡선과 큼직한 엉덩이가 필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급진적 변화가 일어났다. 고작 몇 년만에 곡선미 있는 여성들은 패션 잡지 페이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P139
1910년대에 처음 등장한 새로운 실루엣은 놀랍도록 오래 인기를 끌며 한 세기가 지나도록 지배력을 잃지 않았다. 엉덩이 없이 비쩍 마르고 매혹적인 여성들은 비범할 정도로 강렬하고 탄력 있게 패션계를 제패했고, 지금까지도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 P140
"플래퍼가 스커트를 무릎 위로 올리고 스타킹을 그 아래로 말아 내렸을 때, 로마 제국의 함락 이래 최초로 점잖은 여성의 하체가 맨살로 노출되었다. 두 사건의 관계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 P140
곡선이 있던 자리를 각이 차지했다. 버슬이 있던 자리에서 엉덩이가 사라졌다. 가정성과 제약은 밤 문화와 해방으로 대체되었다. 적어도 이것이 엉덩이 없는 여성의 이야기가 서술되는 주된 방식이다. 직선이 현대성 그리고 자유와 동의어가 되어버린 이야기. - P140
‘플래퍼‘라는 단어의 어원에는 적어도 두 개의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는 플래퍼가 1890년대에 영국에서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실제로도 주로 미성년자였던) 아주 어린 성노동자를 일컫는 속어로 처음 쓰였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가 아직 신체가 성숙하지 않은, 십대 초반의 서툰 소녀를 일컫는 단어로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 P140
"퍼덕거리는(flap‘에는 날개나 팔을 퍼덕인다는 의미가 있음-옮긴이) 소녀"들은 직선으로 된 옷을 입어 흐느적거리고 퍼덕대는 팔다리를 가려야 했다. - P141
실제 어원과 상관없이 플래퍼는 어리고, 소년 같고, 성숙한 여성의 신체나 행동 등의 특성을 가지지 않은 존재로 정의되었다. 플래퍼는 이렇듯 미숙한 존재인데도 어째서인지 섹슈얼하게 여겨지는데, 이 대목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해석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P141
19세기에 섹슈얼리티를 함의한 것은 곡선미 있는 신체였다. 20세기에는 여러모로 정반대의 외형을 띤 신체가 비슷한 의미를 띠었다. 플래퍼의 특성은 점잖은 빅토리아 시대 여성과 극단적으로 달랐는데, 1910년대와 20년대에 새로운 특성이 인기를 끈 배경에는 노동·교육·성 측면에서 일어난 복잡한 사회 변화가 있었다. - P141
1860년에서 1920년 사이, 미국 도시 인구는 620만 명에서 5,43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주자 중 많은 수가 가족을 떠나 스스로 생계를 꾸리러 나온 여성들이었다. 시카고,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감시하는 부모의 눈길에서 벗어나 젊은 남성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샤프롱 Chaperone(젊은 여성과 동행하는 보호자-옮긴이)‘ 없이 로맨스를, 성적 실험을 펼칠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다. - P141
비슷한 시기인 1920년에 수정 헌법 제19조가 비준되면서, 미국의 많은 여성이 투표권을 얻었고 여자가 정치·교육·문화생활 영역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발상이 (완전히 평등하게는 아닐지언정)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 수십 년 동안 중산층·부유층 여성들은 몸을 지나치게 많이 쓰지 않으려 했지만, 새로운 시대에 인기를 끈 <훌륭한 여자의 힘과 아름다움 The Power and Beauty of Supers Womanhood> 같은 책에서는 여성이 "남자와 거의 동등한 정도로 운동과 스포츠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142
이런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의류 혁명이 일어났다. 시작은 폴 푸아레였다. - P142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그가 빅토리아 시대의 속옷을 내버린 것, 특히 코르셋에 경멸을 공표했다는 점이다. - P142
"나는 코르셋에 대항해 전쟁을 벌였습니다. 코르셋은 착용한 사람을 두 살덩어리로 분리합니다. 가슴이 있는 한쪽, 몸 뒤편의 모든 부위가 있는 다른 쪽 이렇게 둘로 나뉘는 거죠. 코르셋을 입은 숙녀는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 P142
푸아레의 완강한 반대에 힘입어 버슬과 큰 엉덩이를 암시하는 실루엣은 한 세기 동안 미국의 주류 패션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만다. - P143
코르셋에 대한 푸아레의 생각은 어느 정도까지는 여성들이 일하고 데이트하는 도시 문화에서 비롯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여성을 해방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가 발명한 의상 중엔 이른바 ‘호블 스커트‘도 있는데, 두 다리의 움직임을 크게 제약하고 오로지 잰걸음으로만 걷게 하는 이 옷은 문자 그대로 여성을 ‘묶어버렸다(‘hobble‘에는 두 다리를 묶는다는 의미가 있음-옮긴이). 패션을 대하는 푸아레의 생각에서는 다소 권위주의적인 사디즘이 내비친다. - P143
그는 자신을 패션 개혁가로 보았고, 자신이 멋대로 정한 유행을 온 세상 여성들이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패션을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여성들의 외형, 움직이는 방식, 행동, 나아가 여성들 자체를 통제한다고 믿었다. 여성들은 코르셋에서 풀려나자마자 푸아레와 맞서 싸워야 했다. - P143
하지만 곧 패셔너블한 여성들은 통치자를 갈아치웠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1910년에 여성 모자 가게를 열었고, 이윽고 노르망디에 부티크를 열어서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은 고유한 스타일의 의류를 팔기 시작했다. 샤넬이 파는 품목은바지, 단순한 스웨터, 벨트 달린 재킷 등이었다. 그렇게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드레스의 퍼프 소매와 러플은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 P143
샤넬 의류는 단순하고 현대적이었으며, 샤넬 본인과 닮은 여성들(몸에 곡선이 부족하고 엉덩이도 거의 없는 마른 여성들)에게 제일 잘 어울렸다. - P144
샤넬의 디자인은 제1차 세계대전 내내 인기를 이어나갔다. 전쟁터로 떠난 남성들 대신 이런저런 작업을 맡은 여성들이 입기에 실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 P144
흔히 ‘가르손느garçonne 스타일‘이라고 불린 샤넬의 시그니처 룩은 유럽 전역의 여성들에게 사랑받았다. 밑단이 올라가고, 허리는 내려가고, 코르셋은 버려졌다. 병원에서 간호하는 여성도, 화약 공장에서 폭탄을 만드는 여성도, 더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주는 샤넬의 스타일을 받아들였다. - P144
물론 마을 농장을 떠나 도시의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둘이나 전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샤넬 진품을 입었던건 아니다. 그들은 ‘짝퉁‘을 입었다. 기성복 패션이 부상하고있었고, 단순한 패턴과 값싼 저지 천으로 만든 샤넬 드레스는 빅토리아 시대 의류보다 복제하기가 훨씬 쉬웠다. - P144
플래퍼 패션은 분명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대중에게 널리 수용된 것은 아니다. - P144
어떤 이들은 플래퍼를 허리도, 골반도, 가슴도 없다는 의미에서 "직사각형 여자"라고 일컬었다. - P145
당대 문화에서는 의상이든, 그 아래의 몸이든,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신체적 표지에 저항할 때 가장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고든 콘웨이는 이런 여성들을 그렸다. 주류 밀매점에서 젊은 남자들과 키스를 하는 여성들, 가정생활이나 점잖음이나 장식 따위는 염두에도 없는 여성들. 콘웨이 본인도 이런 여성 중 하나였다. - P145
수수께끼 같은 버슬의 무의식적이고 은유적인 연상과는 달리, 비쩍 마르고 곡선 없는 플래퍼 스타일의 의미는 비교적 분석하기 쉬워 보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패션지형을 살펴보면, 여전히 플래퍼 스타일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 세기가 넘도록, 패셔너블한 여성의 몸매는 날씬한 몸매였다. 커다랗게 휘어지는 곡선보다는 매끈한 직선으로 감싼 몸매가 패셔너블하다고 평가되었다. - P146
패셔너블하다는 건, 아름답다는 건 (대중문화의 기준에 따르면) 날씬하고 매끄럽다는 것과 같았다. 이는 결혼에서, 사회의 규칙에서, 우리 몸 뒤쪽에 달린 묵직한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였다. - P146
플래퍼 스타일은 곧 빅토리아 시대 풍습과 의복의 족쇄를 벗어던진 여성들의 스타일이었다. 플래퍼는 틀림없이 여성스럽지만, 모성이나 가정적 면모에 제약을 받지는 않는다. - P146
플래퍼는 또한 움직이는 여성이다. 플래퍼의 이미지가 영화의 대중화와 더불어 발전한 건 우연이 아니다. 대중은 돌연 움직임에서 스타일을 발견했다. - P146
패션 역사학자 앤 홀랜더 Anne Hollander는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여성의 몸이 시각적 공간을 차지할 방법은 오로지 지방과 의복을 겹겹이 쌓는 데에 있었다고 적는다. - P147
"그렇지만 금방이라도 움직일 준비가 되었다고 인식된 몸은 움직일 공간을 차지했던 여러 겹의 외면을 대체한다. 한때 날씬한 여성의 몸은 정교한 의류를 활용한 암시나 확장이 없이는 시각적으로 빈약하고 불만족스러운 존재였지만, 이제는 곧장 행동할 준비가 된 실속 있는 몸으로 거듭났다." - P147
설령 엉덩이 없고 패셔너블한 여성에 관한 전형적인 이야기가 진짜로 해방을 암시했다 하더라도, 실제 현실은 물론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 P147
뉴욕 패션기술대학교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FIT 박물관의 관장인 밸러리 스틸 Valeric Steele은 1920년대에 복잡하고 역설적인 혁명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코르셋에서 물리적으로 풀려난 여성들이 새로운 유형의 제약을 경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몸의 형태를 바꾸고 왜곡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외부가 아니라 안으로부터 비롯된 압박이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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