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 물에 들어오면 음전하를 띤 물 분자의 산소 원자가 양전하를 띤 소금 분자의 나트륨 이온을 움켜쥔다. 양전하를 띤 물 분자의 수소 원자는 음전하를 가진 소금 분자의 염소 이온을 낚아챈다. 물을 이루는 두 원자가 그렇게 갈퀴질을 해서 소금 분자를 찢어발긴 것이 소금물이다. - P173
소금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본의 아니게 갈라선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은 물속을 떠다니다가 기회가 생기면 바로 재결합한다. 소금물 안에서 어떤 원자들은 소금 결정을 이탈하고 다른 원자들은 소금 결정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많은지는 물과 소금의 상대적인 양이 결정한다. 물이 압도적으로 많으면 이탈하는 원자가 많고 물이 적으면 복귀하는 원자가 많다. - P173
바닷가 사람들은, 이유는 몰랐지만, 바닷물이 증발하면 소금이 생긴다는 사실은 옛날부터 알았다. 그래서 얕은 갯벌에 바닷물을 가두어 물을 증발하게 두었다가 바닥에 쌓인 소금 결정을 거두어들였다. ‘천일염天日鹽‘이다. - P174
물의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가 만든 전하의 미약한 불균형 덕분에 생명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더 신기했다. - P174
생물의 세포는 화학공장이나 마찬가지다. 여러 물질이 작용해 영양분을 흡수하고 폐기물을 배출하며 신진대사에 필요한 효소를 만든다. 모든 공정에서 물이 필수다. 물이 없으면 세포라는 화학공장을 가동할 수 없다.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인간 세포 질량의 70퍼센트가 물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 P174
산소가 욕심이 많아서 다행이다. 산소가 전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 놓지 않는다면 물은 아무것도 녹이지 못할 것이다. - P174
전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지 몰랐다. 원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물질을 이루는 것, 우리 몸이 생존에 필요한 화학 공정을 가동할 수 있는 것이 다 전자 덕분이다. 전자가 하는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전등부터 휴대전화까지 전기산업과 전자산업의 모든 제품을 가동하는 것도 전자다. - P174
인문학의 사고방식과 언어습관에서는 ‘핵심‘이 중요하다. 이야기가 겉돌면 이렇게 야단친다. ‘그게 핵심이 아니잖아!‘ 언제나 변방이 아니라 중심에 초점을 맞춘다. ‘어서 핵심으로 들어가!‘ 물질도 그런 것 같다.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질량은 거의 전부 원자핵이 차지한다. 전자는 하는 일 없이 핵 주변을 서성이는 하찮은 존재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일은 전자가 다 한다. 원자핵은 가만히 있을 뿐이다. - P175
《알릴레오 북스》에서 내가 ‘일은 전자가 다 한다‘고 했더니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단호한 어조로 지적했다. ‘무리한 일반화의 오류‘ 라고, 옳은 지적이다. 우주에서는 원자핵이 모든 일을 한다. 전자는 거들지도 않는다. 원자핵이 일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P175
지구에서는 그래야 한다. 원자핵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게 바람직하다. 핵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게 거의 유일하게 좋은 일인데, 그것마저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사용후 핵연료는 최소 수만 년 동안 강력한 방사능을 내뿜는다. 핵이 단시간에 대량 분열하거나 융합하면 대폭발이 일어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 하나를 없애고수십만 명의 목숨을 빼앗는다. 스리마일 · 체르노빌 ·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사고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핵폭탄 폭발에 우리는 그런 위험을 목격했다. - P175
우주에서는 모든 일을 원자핵이 하고 전자는 존재감이 전혀 없다는 걸 알지만, 나는 전자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지구인이니까. - P175
원자는 성격이 제각각이다. 혼자서 조용히 지내는 원자가 있는가 하면, 아무 원자하고나 들러붙으려 하는 원자도 있다. 멀어져가는 다른 원자를 붙잡지 않고 다가오는 다른 원자를 밀어내지 않는 원자도 있다. 어떤 원자는 같은 원자들과 친하고 어떤 원자는 다른 원자를 좋아한다. 호시탐탐 남의 전자를 넘보는 원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전자를 슬쩍 내버리거나 길 잃은 전자를 조용히 영입하는 원자도 있다. - P176
화학자들은 물질의 성질과 변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소의 성격을 파악해 행동방식이 비슷한 원소를 그룹으로묶었다. 그게 주기율표다. 오랜 세월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작성한 주기율표는 양자역학의 도움을 받아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 P176
주기율표를 외울 필요는 없다. 구조와 사용법을 알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원소기호와 원자번호는 공부를 하다 보면 저절로 머리에 박힌다. - P176
표준 주기율표는 원소기호와 원자번호 말고도 여러 정보를 담고 있다. 원소들이 상온에서 기체인지 액체인지 고체인지 글씨 형태로 구분하고, 성질이 비슷한 원소를 그룹으로 묶어 같은 색으로 표시하며, 표준 원자량과 전자 궤도의 형태도 알려준다. 하지만 원자의 결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전자의 수뿐이다. - P178
원자번호는 그 원자의 핵에 있는 양성자 수를 나타낸다. - P178
나는 인문학의 연구 주제와 관련이 있는 몇몇 원소에 마음이 끌렸다. 1번 수소와 2번 헬륨은 지구를 오늘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우리 집을 만든 원소다. 6번 탄소와 8번 산소가없다면 생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만들었고 살게 하는 원소다. - P178
29번 구리와 26번 철, 7번 질소와 92번 우라늄은 생산기술을 혁신하고 전쟁도구가 됨으로써 문명과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 P178
원자번호 21번 스칸듐, 39번 이트륨, 원자번호 57번 란타넘부터 71번 루테튬까지는 ‘희토류 금속‘rare earth metal이라고 한다. 비금속 원소와 결합해 튼튼한 화합물을 만드는 특성 때문에 휴대전화· LED 디스플레이·콘덴서·광섬유 등 첨단 산업의 필수 원료가 되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을 추동하는 원소다. - P179
주기율표의 가로 줄을 주기週期(period)라고 한다. 1주기 원소는 둘뿐이고 2주기와 3주기는 각각 8개, 4주기와 5주기는 각각 18개씩이다. 6주기와 7주기는 32개나 되기 때문에 각각 15개씩 아래쪽에 따로 배치했다. - P179
주기율표의 세로 열은 족族(group)이라고 한다. 같은 족에 속한 원소는 성질이 비슷하다. - P179
좌측 첫 열의 수소·리튬·나트륨(소듐)·칼륨(포타슘)은 매우 사교적이다. 호시탐탐 다른 원소와 결합할 기회를 노리고 기회가 생기면 즉각 달라붙는다. 좌측 둘째 열의 마그네슘과 칼슘도 정도는 덜하지만 그런 편이다. - P179
우측 둘째 열의 염소와 요오드는 매우 사교적이고, 우측 셋째 열의 산소와 황도 그런 편이다. 그러나 맨 우측 열의 헬륨·네온·아르곤·크립톤은 혼자서 논다. 주변에 다른 원소가 있어도 아무 관심이 없다. 중간 열에 있는 탄소·질소 ·규소·인 등은 다른 원소와 뭉치려고 안달하지 않지만 뭉칠 기회가 오면 거부하지 않는다. - P179
한 주기를 돌 때마다 성격이 비슷한 원소가 나타난다. 화학자들이 관찰과 실험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주기율표를 만들었고 물리학자들은 왜 그런 주기가 나타나는지 알아냈다. - P179
앞서 말한 것처럼 지구에서는 전자가 모든 일을 한다. 그런데 전자는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고전역학으로는 전자의 운동을 서술할 수 없다. 전자는 양자역학의 세계에 속한다. - P180
원자는 중성이다. 양전하를 띤 양성자와 음전하를 띤 전자의 수가 같다. 원자핵에는 중성자를 비롯해 다른 입자도 있지만 전하를 띤 것은 양성자뿐이다. - P180
전자를 배치하는 건 더 어렵다. 전자는 자신과 똑같은 전자와 나란히 앉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전자가 다른 전자와 나란히 앉으려면 서로 다른 게 적어도 한 가지는 있어야 한다. 그 다른 하나가 바로 스핀, 자전하는 방향이다. 전자는 스핀이 다른 전자와는 짝지어 앉기도 한다. 그러나 둘까지만이다. 전자 셋을 한 자리에 앉힐 수는 없다. - P181
우리의 감각과 직관으로는 파동을 그리면서 이동하는 입자를 생각하지만, 전자는 파동하면서 이동하는 입자가 아니라 그 자체가 입자이고 파동이다. 그게 뭐냐고 되묻지 마시라. 인간의 언어로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그대로 받아들이자. - P181
우리는 고전역학으로 모든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스케일의 세상에 산다. 우리가 감각으로 인지하는 세계는 크기와 속도 모두 어중간하다. 우리는 그런 세계에서 살면서 얻은 정보와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한다. - P181
상대성원리를 적용해야 하는 광대한 우주 공간과 양자역학으로 서술하는 미시세계는 언어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수학으로 서술할 수 있을 뿐이다. - P181
전자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원자핵 주위를 돌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전자가 움직이는 영역을 가리켜 오비탈 orbital, 전자구름, 궤도, 전자껍질 등 여러 말을 쓴다. - P181
전자껍질은 여러 층이 있다. 원소 주기율표의 한 주기를 전자껍질 한 층으로 보면 된다. - P182
원소의 성질과 관련해서는 원자의 전자껍질이 몇 층이고 전자가 모두 몇 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원자핵에서 제일 멀리 있는 전자껍질, 줄여서 ‘최외곽 전자껍질‘에 전자가 몇 개 들었는지에 따라 원소의 성질이 달라진다. - P182
원자한테는 최외곽 전자껍질을 전자로 채우는 게 중요하다. 최외곽 전자껍질에 빈자리가 있는 원자는 다른 원자의 전자를 탐낸다. 주기율표 우측 2열 3열의 산소·황·염소가 그렇다. - P182
반면 최외곽 전자껍질에 전자가 한두 개밖에 없는 원자는 누구한테든 전자를 떠넘기거나 버리려고 안달한다. 주기율표 좌측 1열 2열의 수소·나트륨·칼륨·칼슘이 그렇다. 소금이 녹고 종이가 불타는 게 다 그 때문이다. - P182
반면 최외곽 껍질이 만석인 원자는 남의 전자에 관심이 없다. 헬륨·네온·아르곤 같은 원소는 아무 일을 하지 않으며 있다는 티를 내지도 않는다. - P182
산소 원자는 전자가 8개다. 1층 껍질은 전자 2개가 들어찼고 2층 껍질에는 전자 6개가 있다. 2충 껍질을 채우려면 전자 2개가 더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산소는 애타게 전자를 찾아다닌다. - P183
산소 원자가 다른 산소 원자와 전자 두 쌍을 공유해 2층 전자껍질을 채우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산소 분자(O2)가 된다. 전자가 하나뿐이어서 1층에 빈자리가 하나 있는 수소도 전자에 목마르다. 두 수소 원자가 각각 하나뿐인 전자를 공유하면 수소 분자(H2)가 된다. - P183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에게 중요한 건 전자다. 전자에 대한갈증을 채울 수 있다면 파트너가 누구든 상관없다. 여러 원자를 동시에 파트너로 삼아도 된다. 전자 2개를 원하는 산소 원자는 각각 전자 하나를 원하는 수소 원자 2개와 손잡을 수 있다. 산소는 질소에 이어 공기 중에 두 번째로 많고, 수소는 지구의 모든 원소 가운데 아홉 번째로 많으니 만나기도 쉽다. 그래서 지구에는 물이 많다. - P183
원자번호 11번 나트륨은 3층 최외곽 껍질에 전자가 하나뿐이다. 원자번호 17번 염소는 3층 껍질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다. 나트륨은 공유결합을 형성할 파트너를 찾기보다는 3층에 혼자 있는 전자를 내버리는 경향이 있다. 염소는 어디선가 버림받고 혼자 돌아다니는 전자를 보면 얼른 3층 껍질에 맞아들인다. 이런방식으로 3층 전자껍질을 비운 나트륨은 양전하를 띠고 3층 전자껍질을 채운 염소는 음전하를 띤다. 그래서 그 힘에 끌려 나트륨과 염소 원자가 1대1로 들러붙는다. - P184
원자는 도대체 왜 최외곽 전자껍질의 빈자리를 없애려고 발버둥치는 것일까? 나는 모른다. 그렇다는 사실만 안다. 원자는 최외곽 전자껍질을 채우려는 욕망 때문에 다양한 분자와 이온화합물을 만든다. 그 분자와 화합물들이 결합해 자기를 복제하는 유기분자를 형성했다. 단순했던 최초의 생명체는 자연선택이라는 필연과 유전이라는 우연을 통해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 그 진화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 종이 탄생했고, 80억 호모 사피엔스의 한 개체인 내가 있다. 이보다더 신기하고 극적이고 장엄한 창조 신화나 탄생 설화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화학이 말했다. ‘너는 내가 만든 기적이야.‘ - P184
사람의 측은지심은 한계가 없다. 동물과 식물, 심지어는 무생물한테도 연민의 정을 느낄수 있다. 시비지심도 그렇다. 무생물이라도 합당한 이유 없이 비난받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탄소 이야기를 들으면 내 안의 시비지심이 고개를 든다. - P185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은 온실가스다. 온실효과를 내는 기체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비중이 가장 크다. 분자화합물인 두 기체의 중심 원소가 바로 탄소다. 환경운동가들이 탄소 배출 행위는 흉악한 범죄자를 시장 바닥에 풀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하면서 강력한 국제적 탄소 배출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합당한 근거가 있다. 왜 지구 차원의 규제가 필요한가? 온실가스는 지구 표면 어디에서 누가 배출하든 똑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 P186
ppb는 10억분의 1, ppm은 100만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다. 대기에 매우 적게 들어 있는 기체의 농도를 표시할 때 쓴다. 1ppb는 0.0000001퍼센트, 1ppm은 0.0001퍼센트와 같다. 매우 낮은 메탄과 아산화질소 농도는 ppb를, 상대적으로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는 ppm을 쓴다. - P187
2021년 지구 대기의 평균 메탄 농도는 1,908ppb, 이산화탄소 농도는 415.7ppm, 또 다른 온실가스 아산화질소(NO)는 334.5ppb로, 셋 모두 기상관측 역사에서 가장 높았다. 메탄과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농도가 낮지만 온실효과는 각각 80배와 250배 강하다. 탄소의 억울함을 덜어주려고 이야기를 꺼냈으니 아산화질소는 논외로 하자. - P187
그 많은 탄소는 다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서 온 게 아니다. 원래 지구에 있었다.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탄소가 풀려나 산소·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위기가 생겼다. 오로지 인간 탓인 건 아니다. 화산 폭발과 자연발화 산불도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 P187
인간이 집을 데우고 자동차를 굴리고 비행기를 띄울 때마다거기 들어 있던 탄소가 풀려났다. 소와 양과 돼지를 비롯한사육 가축의 방귀와 하품과 배설물에서 나온 탄소도 만만치않았다. 숲을 훼손해 도시와 경작지를 만든 탓에 나무가 광합성으로 흡수 고정하는 탄소량이 줄었다. 탄소는 잘못이 없다. 지구에서 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예전 그대로다. 호모 사피엔스가 탄소를 악당 취급하는 것은 살인범이 칼을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P188
숯과 석탄과 석유에는 왜 탄소가 들었는가. 식물과 동물의 사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물의 몸에는 다 탄소가 있는가? 그렇다. 탄소가 없었으면 생물도 없었다. 탄소는 생물의 몸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188
화학은 무기화학無機化學(Inorganic chemistry)과 유기화학有機化學(organicchemistry)으로 나눈다. 유기화학은 유기화합물을, 무기화학은 무기화합물을 연구한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탄소의 존재 여부다.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얻는 화합물에는 탄소가 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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