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현준 교수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는데, 읽다보니 이 책이 어느덧 4번째 책이다. 읽기 전에 목차를 간단히 살펴봤는데, 동 저자의 다른 책에서 봤던 내용들이 일부 겹치는 부분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들도 있었다. 겹치는 부분은 가급적 빨리 읽거나 기억을 상기하는 정도의 용도로 활용하면 될 듯 하고, 이 책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저자만의 통찰력을 얻어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여는 글에서 밑줄 친 문장들 중에 과학관련 내용들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최근 읽고 있는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과학관련 내용들을 접하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과거에 비해 확실히 과학관련 내용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찌보면 학창시절에 과학 공부를 어느 정도 하신 분들에겐 아주 기초적인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부끄럽게도 본인은 그러지 못했기에 과학관련 내용들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제 어느정도는 과학분야에 내성이 생긴듯 하다. 최소한 막연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사라진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1차적으로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과학이라는 분야를 알기쉽게 설명해준 유시민 작가님께 감사드리고, 2차적으로는 어렵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지레 겁먹고 기피했던 과학에 대한 필요성을 뒤늦게나마 느끼고 일단 부딪혀서 낯선 내용들을 더이상 낯설지 않은 것으로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익숙한 것으로 변환시킨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쓰고보니 뭐 엄청 대단한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끄적여 놓았는데, 그냥 그동안 과학에 무지했던 어느 한 독자의 부끄러운 자기고백(?) 같은 느낌으로 봐주시면 될 듯 하다.

지금 읽기 시작한 이 책과는 다소 무관한 잡다한 얘기들이 길었는데, 어쨌든 그건 그거고 위의 첫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읽는 이 책을 통해 이런저런 유익한 것들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새로운 생각은 때론 지리적 환경이 만들어 내기도 한다. - P5

지구는 표면의 72퍼센트가 물로 덮여 있다. 이는 우주의 다른 행성들과 비교해서 아주 특별한 예외적인 조건이다. 지구에 이렇게 물이 많은 이유로 지배적인 가설은 수십억 년 전에 얼음 형태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는 것이다. 이 많은 양의 물은 태양에서 오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지구 전체로 고루 퍼지게 해 주는 에너지 전달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 P6

태양 빛은 바닷물을 데우고 바닷물은 수증기가 되어 공기중으로 올라가서 구름이 된다. 그런데 지구는 자전하기 때문에 대기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중위도에는 편서풍이 불고 이후 각종 다양한 바람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 바람에 의해서 수증기는 구름의 형태로 지구의 대기 곳곳을 돌다가 비나 눈이 되어 지면으로 내려오게 된다. 구름은 태양 에너지를 운반하는 ‘택배 상자‘ 다. 이러한 에너지의 순환 속에서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 P6

생명이 무생물과 구분되는 차이점은 에너지의 흐름이 있느냐 없느냐다. 돌과 같은 무생물은 에너지가 들어가거나 나오지 않는다. 돌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돌은 에너지의 흐름이 없는 ‘닫힌 시스템‘이다. 하지만 인간과 같은 생명체는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에너지의 흐름상 ‘열린 시스템‘이다. - P6

태양 에너지는 식물을 키운다. 우리는 그 식물을 직접 먹기도 하고, 식물을 먹고 자라난 동물을 먹고 힘을 얻는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배설하는 것은 태양 에너지가 유기물 음식의 형태로 변환된 것을 소비하는 작용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근본적으로 태양 에너지를 먹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생명은 태양 에너지의 흐름을 이용해서 생명성을 만들어 내고 유지한다. - P7

문화는 이러한 에너지 흐름의 과정 중에서 생명이 만들어 낸 2차 부산물이다. - P7

둥그런 행성의 모양, 자전축의 기울어짐, 자전과 공전,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는 지역마다 다른 ‘지리‘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지리적 배경은 각기 다른 ‘기후‘를 만든다. 각기 다른 기후는 각기 다른 ‘환경적 제약‘을 만든다. 이런 환경의 제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인간 지능의 노력이 ‘건축물‘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 P7

건축은 기후가 주는 문제에 대한 인간의 물리적 해결책이다. - P7

《뇌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가장 창의적인 순간은 빈둥거릴 때라고 한다. - P7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에 의하면 모든 쓸모 있는 에너지는 온도의 차이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우주에서 생명이 가능한 것도 최초 빅뱅의 뜨거운 폭발에서부터 점점 식어 가는 우주 사이의 온도 차이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온도 차가 없으면 에너지가 없다. 에너지가 없으면 창조와 생명도 불가능하다. - P8

과학자들은 수백억 년이 지나고 나면 우주가 전체적으로 같은 온도의 차가운 상태가 되고, 그러면 시간도 멈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무질서의 정도를 말하는 엔트로피가 늘어나면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창조는 온도 차에 의해서 시작된다. - P8

인간 사회 안에서 ‘온도 차이‘를 만든 것이 농업이다. 농업혁명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계층과 부의 ‘온도 차이‘를 만들어 내자 인간은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문화적 에너지를 만들 수 있었다.  - P8

계급의 차이는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지만 냉정히 말해서 문명 발생을 촉발시켰다고도 볼수 있다. 물론 계급 차이가 계속 존재해야 창조적인 사회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차이에 의해서 나오는 ‘흐름‘이 창조를 만드는 것이니, 사회의 계급이나 부가 고착화되면 차이에 의한 흐름이 정체되고 사회는 쇠퇴한다. 따라서 공정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사회 계급 간의 자리 배치의 변화가 많은 것이 사회 발전의 에너지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 P9

현대사회에서 계급 간의 이동이 없어져 가고 있다는 점은 발전의 에너지가 소실되고 있다는 중대한 문제다. - P9

인류 초기에 사회적인 계급의 형성은 문명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열심히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놀아도 살 수 있는 계층이 생겨나면서 누군가는 빈둥거리게 되었고 창조성이 키워졌고 문명이 발생했다. 부가 한곳에 축척되면서 사람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자본력도 만들어졌다. 그 자본력으로 무거운 돌로 만든 큰 건축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위대한 사상가들도 그러한 가운데 탄생했다. - P9

강수량의 조건은 농업의 품종을 결정한다. 세계의 문화 권역은 크게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연강수량 1천 밀리미터‘다. 연강수량이 1천 밀리미터 이상이면 벼농사, 1천 밀리미터 이하면 밀 농사를 짓는다. - P9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하는 벼농사는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 치수 사업이 필요했다. 벼농사에는 저수지와 보를 만들거나 물길을 만드는 토목 공사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밀 농사를 할 때에는 개인이 씨를 뿌리며 다니면 되고 치수를 위한 대형 토목 공사도 필요 없다. - P9

노동 방식 면에서 벼농사는 여러 명이 힘을 합쳐서 하는 방식이고, 밀 농사는 개인적으로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벼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 P10

잉여 농산물은 사회 계층을 만들었고, 나누어진 사회 계층은 잉여 시간을 만들었으며, 잉여 시간은 문화를 만들었다. 문화는 다시 기후적 제약의 차이에 의해서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을 만들었다. 1차적으로 문명의 생각이 창조되자 서로 다른 생각은 만나고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2차적인 창조가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려면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서 살아야 한다. 도시는 그런 환경을 제공해 준다. 도시는 문명 발전의 ‘필요조건‘이다. - P10

교통수단의 발달이 ‘공간의 압축‘을 만든 것이다. 공간이 압축되자 다른 문화 간의 융합이 일어나게 되었고 새로운 문화 변종이 만들어졌다. - P11

유전공학적 관점으로 비유해 본다면 다른 문화 간의 교류와 융합은 다른 품종의 교배로 볼 수 있다. - P11

자연에서 각각의 생명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진화하고 이종 간 교배를 통해서 선택된 우성 유전자를 후대에 남긴다. 이러한 우성 유전자를 가진 혼합종을 만들기 위해 자연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성을 만들었고, 서로 다른 성이 만나 매 세대마다 다른 유전자 조합을 만들도록 했다. - P12

문화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에서 발전한 문화는 이종 교배를 통해서 2차적인 창조를 만들고 그렇게 다음 세대의 문화가 탄생한다. 이렇듯 문화의 진화 과정은 생명체의 진화 과정과 동일하다. 그래서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문화를 유전자적으로 이해하고 ‘문화 유전자(밈)‘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 P12

이 책에서는 도킨스가 사용한 문화 유전자와 똑같은 의미로 ‘문화 유전자‘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문화를 하나의 유전자 정보로 보고 문화 간의 융합을 유전자의 교배로 바라보고 있다. - P12

문화적 교류는 보통 물건에서 시작한다. 사람이나 집단이 이동해서 교류하는 것은 어렵다. 언어의 장벽도 있고 외모가 다른 것도 융합을 어렵게 만든다. - P12

‘차이‘와 ‘융합‘에 이어서 새로운 창조를 만드는 요소는 ‘기술‘이다. 앞서 말한 융합 역시 교통 기술 발전이 만들어 낸 것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할수록 문화의 2차적 변종의 탄생은 가속화되고, 여기에 새로운 기술혁명까지 더해지면 문화의 파생과 결합의 방향에 큰 흐름이 생겨난다. - P13

모더니즘이란,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 전반에 걸친 새로운 변혁을 말한다. - P13

위대한 이론은 다양한 현상들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위대한 이유는 야구공의 움직임부터 복잡한 행성 간의 움직임까지 한 가지 공식으로 다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3

문화에서 새로운 생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는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생명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4

생명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열린 시스템이다. 그만큼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인 변수 요인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은 예측하거나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혜성의 궤도를 예측하는 것보다 사람이 다음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할지 예측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생물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듯이 생물이 만드는 문화나 창조도 그러하다. - P14

우주의 ‘불변의 법칙‘ 중 하나는 만물의 무질서는 증가한다는 엔트로피 법칙이다. 방을 따로 청소하지 않으면 쓰레기통이 된다. 오직 청소하고 정리 정돈에 힘과 에너지를 썼을 때에만 분위기 있는 방을 만들 수 있다. 문화도 그러하다. - P14

문화는 방대한 에너지의 흐름 과정 중에 잠깐 동안만 만들어지는 질서라는 ‘저低 엔트로피‘의 상태이다. 따라서 잠깐만 에너지의 흐름이 깨져도 문화는 서서히 소멸한다. - P14

마야나 잉카 문명은 한때 거대한 국가를 만들고 문명을 꽃피웠지만 식량이나 물같은 에너지의 흐름이 사라지자 사라져 버렸다. 서울도 농촌에서 재배하는 농작물, 중동에서 가져오는 석유, 팔당댐의 물, 발전소에서 만들어 송전해 주는 전기라는 외부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일주일도 안 돼 폐허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건축물은 그만큼 만드는 데 힘들고 유지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요구된다. 인류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모아서 건축물과 도시를 만든다. - P14

건축물과 비교해서 공예품은 전파가 쉽고, 텍스트는 공예품보다 전달과 유지가 더 쉽다. 텍스트에 담긴 사상은 번역만 되면 여러 문화권으로 퍼져 나간다. 건축, 공예품, 텍스트는 문화의 유전자 코드다. 이 문화 전달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 발전시킨다. - P15

이 책은 여러 가지 생각의 씨줄과 날줄이 오랜 시간 동안 엮어서 만들어내는 ‘문화의 카펫‘에 그려진 ‘생각의 무늬‘를 보여 주려는 시도다. - P15

이 책은 건물을 세로로 길게 자른 단면도라 할 수 있다. 시간이라는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 층을 통과하면서 1층부터 27층 그리고 옥상까지 올라가 보는 책이다. - P15

이 책에는 「모더니즘」, 「현대건축의 흐름」 등 지금은 절판됐지만 초기에 냈던 책들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건축적 관점에서 생각이나 문화가 어떻게 변하고 진화했는가를 이야기하려면 건너뛸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 P15

우리가 인간을 설명할 때 혈관의 네트워크로 인체를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장, 소장, 대장 같은 기관을 중심으로 설명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기氣의 흐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인체는 우주처럼 복잡하기 때문에 하나의 시각으로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문화와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문화와 생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공간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찔러 보며 탐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설명이 물리학 공식처럼 깔끔하고 단순 명확하지는 못할 것이다. - P16

건축물은 건축가 한 사람의 구상에서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건축주가 돈을 내는 데 동의해야 하고, 각종 행정 기관에서 승인을 해 주고, 실제로 많은 인부가 시멘트를 붓고 벽돌을 쌓아야 완성된다. - P25

고딕 성당 내부에 줄지어 서 있는 기둥 옆을 걷다 보면 리듬감이 느껴지고 창문을 보면 비례의 조화도 느껴진다. 이런 리듬감과 하모니는 건축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하지만 빈 공간이 주는 시각적 3차원 정보는 다른 어느 예술이나 문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같이 건축물의 빈 공간은 건축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사 전달 수단이요, 특징이다. 그래서 이 같은 빈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했느냐가 문화적 성격의 특징을 규정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 P26

빈 공간은 빛보다도 먼저 존재한다. 구약 성경 창세기 1장 1절부터 3절까지 보면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KJV 흠정역)라는 구절이 있다. 이 문장을 보면 보이드 공간과 빛의 존재 순서가 잘 나타나 있다. 본문의 ‘비어 있으며‘를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텅 비어 있다는 뜻의 단어인 ‘Void‘라고 표기되어 있다. - P26

과학적 사고가 거의 없던 시절에도 중동 지역에 살았던 초기 문명사회의 인간은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빈 공간인 보이드 공간을 먼저 창조하고 그 이후에 빛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 P26

현대 과학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초에 빅뱅이 있은 후 10^-43초가 지난 후에는 우주의 크기가 ‘플랑크 길이‘ 라고 하는 10^-33센티미터 정도로 작았다. 이후 10^-43초와 10^-36초 사이에 우주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10^50배까지 공간이 팽창한다. 이후 우주 공간은 10^-32초와 10^-12초 사이에 다시 10^50배로 팽창한다. 이후 쿼크, 양성자, 중성자 등이 만들어지고, 10초와 38만 년 사이에 빛의 광자가 만들어졌다. 최초의 빅뱅 이후 38만 년이 지나서야 광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도 공간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빛보다 38만 년 먼저 앞서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 P28

빛은 세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전제되는 조건이지만 그 빛조차도 빈 공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빈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 걸까? - P28

3차원의 존재는 X, Y, Z 세 가지 정보의 좌표 값을 가진다. 반면 2차원의 존재는 X, Y 두 가지 정보만 가지면 위치를 알 수 있다. - P28

인간은 가로, 세로, 높이 세 가지 정보로 규정할 수 있는, 부피감을 가지고 있는 3차원 존재다. 3차원의 인간이 온전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그보다 낮은 차원인 2차원 혹은 1차원이다. 2차원은 종이 같은 평면이고, 1차원은 선이다. 어떤 존재가 사물을 인지할 때는 자신보다 낮은 차원의 것만 완전히 인지할 수 있다. - P28

동그라미, 네모, 세모가 의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 도형들은 2차원의 ‘종이 나라‘에서 서로를 바라보면 어떤 모습으로 보이게 될까? 이들은 서로를 볼 때 똑같은 직선으로 보인다. 다만 길이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왜냐하면 동그라미, 네모, 세모는 2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사물을 1차원 이하로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9

만약에 축구공 같은 3차원의 ‘구‘가 2차원의 ‘종이 나라‘를 통과한다고 상상해 보자. 종이는 이 구를 어떻게 인식할까? 아무것도 없는 종이에 갑자가 ‘점‘이 생겼다가, 그 점이 ‘원‘ 이 되었다가, 원이 점점 커졌다가, 어느 정도 커진 다음에는 다시 점점 작아지다가 점이 되었다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 P29

2차원의 종이는 3차원을 인식할 수 없다. 대신 3차원의 구를 다른 시간대에 따라서 다른 크기의 원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인간과 공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3차원의 인간은 3차원의 공간을 완전히 인식할 수 없다. 다만 2차원으로만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 P30

인간은 외부 세계를 인식할 때 망막에 투사되는 평면적인 2차원 이미지 정보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기억력‘이다. 인간의 지능은 단기 기억력 덕분에 좀 전의 과거와 조금 더 먼 과거의 2차원 장면을 기억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의식은 초당 2백여 장의 그림을 연산한다고 한다. 기억력과 네 번째 차원인 ‘시간‘의 도움으로 망막에 잡힌 그림을 연산해서 이어 붙여 3차원의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 기억력 덕분에 우리는 3.5차원 정도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2차원의 종이가 커졌다가 작아지는 여러 장의 ‘원‘ 이미지를 이어 붙여서 ‘구‘를 상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이때 구에 대한 인식은 4차원의 존재가 파악하는 것처럼 완벽한 모습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 정면과 뒤통수를 동시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정면의 얼굴과 옆모습, 뒷모습을 보고 조합해서 그 사람을 기억할 수는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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