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부분에서 저자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와는 약간 다른 관점으로 성공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간다거나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현재 있는 위치에서 얼마나 많이 전진했는가를 성공의 척도로 삼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개인적으로는 좀 색다르게 느껴져서 앞으로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이야기들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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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지는 내용에서 가장 빈번히 만날 수 있었던 키워드는 바로 ‘품성‘ 이라는 것이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품성‘ 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인지적 능력과는 대비되는 말로써 다양한 상황 속에서의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개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주도력, 친화력, 자제력, 결의 등과 같은 것들을 품성 기량이라는 단어로 통합해서 지칭하였는데, 이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오해 중 하나는 바로 ‘품성과 성격이라는 것의 의미가 비슷한 것 아니냐‘ 하는 것인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성격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 반면 품성은 후천적으로 개발되는 것이라고 구분짓기도 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 성격은 평상시에 우리가 어떠한 것에 반응하는 방식인 반면 품성은 어렵거나 난처한 상황에서 우리가 그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을 지칭한다고도 설명한다.

또한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품성 기량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계와 같은 인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의 사회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이쯤 되면 저자가 말하는 품성 기량이라는 것을 기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방법이 슬슬 궁금해지는데, 먼저 상황적인 측면만 놓고 봤을 때 고요하고 편안한 상황보다는 뭔가 불편한 상황을 맞닥들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할 일을 미루는 이유에 대한 조금은 색다른 관점도 제시되는데, 이는 우리가 단순히 게을러서라기보다는 어떤 일을 할 때 발생하는 불쾌한 감정을 회피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이와 관련된 미국의 어느 코미디언의 사례가 책의 본문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 코미디언도 처음엔 자신에게 불편한 감정을 심어주는 행동을 회피하다가 자신이 하는 일이 계속 잘 풀리지 않게 되자 결국 나중엔 그 불편한 감정을 심어주는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였는데 벌써부터 뒤에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누군가가 별을 빛나게 했고 그 별빛은 내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타오른다."

위대한 사상가, 행동가, 지도자를 존경할 때 우리는 흔히 그들의 업무 수행 성과에 집중한다. 그래서 가장 성취도가 높은 이들을 우러르지만, 가장 적은 밑천으로 가장 많이 성취한 이들을 간과하게 된다.

여러분의 잠재력을 가늠하는 진정한 척도는 여러분이 도달한 봉우리의 높이가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먼 거리를 전진했는가다.

"서른 살이 될 무렵, 품성은 석고처럼 굳어서 절대로 다시 말랑말랑 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품성을 발달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성인은 물 건너갔다는 뜻이다.

금융과 마케팅 지식은 창업자들이 기회를 금전화하도록 도왔을지 모르지만, 주도력과 자제력은 그들이 기회를 창출하도록 해주었다. 그들은 시장의 변화에 반응하기보다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들은 훨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했고 더 많은 신제품을 선보였다. 그들은 재정적 난관에 봉착하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대출을 받으려고 애썼다.

이 증거는 품성 기량이 대단한 성취를 가능케 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러한 기량을 기르는 데 너무 늦은 나이가 없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품성은 석고처럼 딱딱해지지 않는다. 말랑말랑한 성질을 유지한다.

품성을 흔히 성격과 혼동하는데, 이 둘은 같지 않다. 성격은 여러분이 지닌 성질이나 경향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원초적 본능이다. 품성은 여러분의 본능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는 역량이다.

자신이 원칙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원칙들을 어떻게 실천할지 안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스트레스나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면 말이다.

만사가 잘 굴러갈 때 주도력이나 결의를 실천하기는 쉽다. 품성의 진정한 시험대는 상황이 여러분에게 불리할 때 그러한 가치들을 지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성격은 평상시에 여러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이고, 품성은 어려운 때에 여러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다.

성격은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 성격은 여러분의 경향이다. 품성은 여러분이 그러한 경향을 초월해 여러분이 지닌 원칙에 충실하게 도와준다.

품성 기량은 여러분이 지닌 기질이 아니다. 그 기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관건이다.

오늘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지금 당장 여러분의 품성 기량을 육성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품성 기량들이 강인함의 가장 큰 원천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인지적 기량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한다면, 품성 기량은 인간을 기계 이상의 존재로 승격시킨다.

점점 더 많은 인지적 기량들이 자동화되면서 우리는 품성 혁명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상호 작용과 관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품성 기량의 중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성공과 행복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들 하는데 품성은 왜 중요한 목표로 여기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 경력을 쌓기 위한 기량 개발에 투자하는 만큼의 시간을 품성 기량 육성에 투자하면 어떨까?

장거리를 여행하려면 적절한 종류의 불편함, 적절한 정보를 흡수하는 역량, 그리고 적절한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의지가 필요하다.

불편함의 피조물

학습이라는 참기 어려운 어색함 받아들이기

품성은 편안하고 고요한 상황에서 발달하지 못한다.

오로지 시련과 고통을 겪음으로써 영혼은 강인해지고 시각이 명료해지고 야망이 타오르고 성공을 성취하게 된다.

"내게 여행 가방의 내용물을 퍼붓지 마라."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많지만, 너무 노력이 많이 들어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18세 무렵 언어 학습 능력이 감퇴하는 게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이 아니라는 증거가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다. 교육에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

다언어 구사자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새로운 언어를 터득하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들(해즈번과 루이스)이 마침내 첫 외국어를 터득하게 된 까닭은 인지적인 장애를 극복해서가 아니라 감정적인 장애물을 걷어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놀랐다. 그들은 불편한 상태에 놓이는 게 편안해졌다.

불편함을 받아들이게 되면 서로 다른 수많은 학습의 형태에서 숨은 잠재력을 펼치게 된다.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특히 중요한 유형의 결의)를 내는게 품성 기량이다.

세 가지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써온 닳고 닳은 방법들을 포기하고, 싸울 준비가 됐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 링에 올라가고, 다른 이들이 시도하는 횟수보다 훨씬 여러 차례 실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고속 성장하는 최선의 길은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추구하고 증폭하는 방법이다.

자신이 지닌 장점만 이용하는 학습 유형에 의존하면 자신의 단점을 개선할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는 사실

여러분이 선호하는 학습 유형으로 배우면 편안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가장 좋은 학습 방법은 아니다. 때로는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학습 유형으로 배우는 게 학습 효과가 훨씬 좋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첫 번째 유형의 용기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편안한 학습 유형을 던져버릴 정도의 용기 말이다.

"나는 타고난 재능이 없었다."

대단한 연기자들이 연기 기법을 어떻게 터득하는지 생각해보면 듣고 보고 직접 해보면서 터득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관찰하고 청취하고 직접 해보는 방법만으로는 그의 성장을 촉진하기에 부족했다.

"글쓰기는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여러분이 편안한 영역을 벗어나 자신을 밀어붙일 때마다 나타나는 문제가 미루기다.

여러분의 뇌는 즉각적인 보상을 바라는 원숭이한테 사로잡혀, 해야 할 어려운 작업보다 쉽고 재미있는 작업을 고른다. 그처럼 시간과 공을 들이고도 얻는 것이라고 해야 자신이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뿐이다. 자존감을 태워 치욕의 잿더미에 얹는 셈이다.

"창작의 고통은 칭얼대며 불평하는 자들이 술 마실 핑계를 찾으려고 만든 고상한 용어다."

작가가 겪는 창작의 고통은 생각이 막혀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진도가 안 나가는 상황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의 문장들을 키보드로 두들김으로써 창작 모드에 돌입하는 소설가들도 있다.

나는 이메일에 답장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내게 추진력을 주기 위해 몸 풀기를 하는 셈이다.

글쓰기가 일상이 되면 입에서 말이 나오듯 단어가 막힘없이 지면에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을 무작위로 여러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게 날마다 글을 쓰게 했더니 산출량이 네 배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루 15분 글쓰기만으로도 총분히 진전을 보았다.

많은 이들이 할 일을 미루는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미루기는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관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러분이 할 일을 미루고 있을 때 노력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이 일으키는 불쾌한 감정을 피한다. 머지않아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일조차 회피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내가 코미디언으로 성공하려면 직접 대본을 모조리 써야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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