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프라이버시와 익명성에 관한 얘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그와 관련된 내용이 이어진다. 저자는 유명인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하면서 유명인이라고 마냥 좋은 것이 아니고 유명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님을 독자들이 느끼게 만든다. 나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모든 게 다 좋을 수도, 다 나쁠 수도 없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창의적인 사무 공간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핵심은 천장의 높이를 높인다든지 해서 빈 공간을 만들면 사람들의 창의성이 발휘될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여유없이 빽빽한 공간보다는 뭔가 텅 비어 있는 공간을 보면서 우리의 머릿속이 새롭게 환기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뒤이어 우리나라의 무슨무슨 방(PC방, 노래방 등)문화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개개인의 욕망과 현실적인 제약이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라는 저자의 얘기가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이어서 아파트와 돼지를 비교한 글이 있는데, 처음엔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었지만 저자의 설명을 통해 둘 사이에 유사한 속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p.235에 밑줄친 내용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익명성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보통 사적인 공간에서의 자유를 소유하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그 크기가 건물의 규모를 넘기 어렵다. 하지만 익명성이 보장이 된다면 우리는 한 도시 크기의 공간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 P223

우리는 모두가 유명해지기를 원하지만, TV에 많이 나오는 연예인들은 유명해지면서 동시에 이러한 익명성을 포기해야만 한다. 유명인들은 익명성이 없기 때문에 점점 더 큰 집을 소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집만이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 P223

대신 우리는 집은 작지만 대문 밖의 모든 공간에서 자유롭다. 유명인이 아닌 분들은 여러 도시를 소유한 부자인 것이다. - P223

사무 공간이라는 것은 개인의 업무를 진행함과 동시에 협업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극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좋은 사무 공간은 개방성과 폐쇄성이 적절하게 배합된 공간이다.  - P223

좋은 사무 공간은 직원들이 큰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우리가 천장고가 높은 종교 건축에 들어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같은 원리로 사무공간에서도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창의적인 생각이 더 쉽게 나오는 것이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의 사고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천장 높이가 높은 사무실이 창의적인 환경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 P225

뇌 연구가 앤드류 스마트의 책《뇌의 배신》에 의하면 사람은 아무 일도 안하고 멍 때리거나 명상을 하거나 빈둥거릴 때, 즉 뇌의 상태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되었을 때에 창의적이 된다고 한다. - P225

분명한 것은 창의적인 사무 공간이 되려면 편하게 빈둥거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 P225

사람이 사는 모습은 수천 년의 시대가 지나가도 그 형식이 조금 바뀔 뿐 그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구성이 좀 작아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가족 단위로 쉬는 형식은 똑같다. - P230

건축도 많이 바뀐 것 같지만 실상 잠자고, 밥해 먹고, 싸기 위한 공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경제와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의식이 강해지고,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욕망이 커져 온 것은 있다. 따라서 주거 공간에서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생활 속에서 사적인 공간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사는 집에서 방 하나의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230

카페는 우리의 파트타임 거실인 것이다. - P230

개인의 욕망과 공간의 부족이 충돌되는 상황에서 시장 경제는 노래방, 비디오방, PC방, 룸살롱 같은 방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의 밀폐적인 방 문화는 우리나라 사람이 방을 좋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욕망과 공간적 제약이 합쳐져서 만들어 낸 해결책으로서의 결과물이다. - P231

과거에 식량은 곧 생존이었다. 현대 사회에는 돈이 그 역할을 한다. - P235

과거에 식량 저장의 한 방편으로 돼지를 키웠다면 현대에는 돈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산다. 부동산도 돼지나 발효식품처럼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35

고대의 농부들이 돼지를 키우는 것은 남는 식량을 오랫동안 보존가능한 식량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소비 후에 남는 감자나 고구마를 돼지에게 먹이고 수년 후 기근 때에 돼지를 도살해서 식량으로 전용하는 것이다. - P234

돼지가 기근을 넘기는 방식이 되듯이 현대인들에게 돈이 부족한 시기를 넘기는 방식은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에서 아파트는 환금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돼지의 역할을 한다. - P235

대부분의 중산층 국민들은 은퇴 후 아파트를 처분해서 돈의 기근 시기를 넘긴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는 것은 옛 선조가 자신의 식량을 아껴서 돼지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돼지와 아파트는 다르지만 같은 기능을 하는 사촌지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감안하면 수많은 아파트 돼지들이 도살을 기다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 P235

건축은 사람의 수명보다 오랫동안 지속된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비로소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아내고, 사람 냄새가 배어나는 ‘환경‘이 되는 법이다. - P236

아무리 흉측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 P237

때때로 시간은 사춘기의 가슴 아픈 실연의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 건축물 역시 그렇다. - P237

쓰리베이: 3-BAY. 아파트 평면을 구성할 때 전면을 세 개의 공간으로 구획한 것으로, 흔히 방, 거실-부엌, 방으로 나누어지는 구성을 뜻한다. - P386

툇마루 공간은 우리나라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중간적인 성격을 띠는 공간이다. 그 이유는 처마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처마 아래에 있다는 것은 비가 올 때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신발을 신지 않고서 바깥바람을 쐬러 나갈 수 있는 공간임을 의미한다. 고로 외부와 내부의 중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 P240

현대 시대에서 아파트의 발코니도 이런 중간적인 성격이지만 신을 신고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툇마루와는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게다가 발코니에는 높은 난간이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난간이 낮거나 없는 툇마루에 비해서는 외부 공간과 더 단절된 느낌의 공간이기에 툇마루가 가지는 내외부의 중간적인 성격이 부족하다. - P240

다이어그램: diagram, 건물의 설계 취지, 배치, 구성, 시스템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간략화한 그림. - P386

굵은 가지에서 잔가지로 갈라져 나갈수록 나뭇가지는 나누어지고, 나누어진 나뭇가지의 끝끼리는 다시 연결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파트에서는 거실 복도에서 나누어져서 일단 방으로 들어가면 방끼리 연결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 공간 구성을 띠게 된다. - P242

집에서 아이들이 자기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으면 그대로 나머지 식구들과는 단절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수목적 관계의 공간 구성은 서구적인 사생활을 만드는 데는 효율적이다. 하지만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기에는 좋지 않다. - P242

창문과 문은 엄연히 다른 건축 요소이다. 문은 바라보면서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 문은 프라이버시를 ‘0‘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하지만 창문은 서로 바라볼 수는 있되 건너갈 수는 없는 건축 요소이다. 창문으로 연결된 공간은 적절한 사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느슨하게 관계를 형성해주는 장치이다. - P244

건축계에는 흔히 노벨상에 비유되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이 있다. - P244

건축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일 중에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져야 하고 수많은 과정을 통해서 문화, 정치, 경제, 사회가 합쳐진 종합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프리츠커 상)을 받는 것은 단순히 한 건축가가 받는 상이라기보다 그 나라의 문화 수준에 주는 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 P244

한국은 지금까지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는데,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포르투갈도 ‘알바로 시자‘라는 수상자를 배출했다. - P244

몇 천 세대가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하나는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몇 명의 건축가가 디자인하면 된다. 하지만 몇 천 세대가 주택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면 수백 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소규모인 주택은 대형 사무실의 조직으로 수행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따라서 주택은 소형 설계사무소가 주로 맡아서 디자인을 한다. - P245

건축적으로 보면 주택은 모든 건축의 줄기세포 같은 건축물이다. 주택에서 방을 여러 개 만들면 호텔이 되고, 거실을 넓게 하면 컨벤션센터가 되고 마당을 키우면 경기장이 된다. - P246

관광객이 사랑하는 도시들은 모두가 다 하나 이상 브랜드화시킨 이미지들이 있다. 뉴욕은 타임스퀘어와 센트럴 파크, 파리는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런던은 빅 벤과 템스 (Thames) 강을 내세워서 마케팅을 한다. 라스베이거스 같은 경우에는 도박과 밤새도록 켜 있는 현란한 네온사인이다. - P250

자국의 간판은 싫어하면서 외국에 나가서보는 지저분한 간판에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이것은 문화의 사대주의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지식적 배경에 의해서 외부 환경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 P251

라스베이거스를 상징하는 현란한 네온사인 역시 결국에는 간판이다. - P250

간판 경관에 대한 판단은 경험하는 사람이 그 간판을 정보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장식으로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P251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인들에게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은 정보로 인식되어 정보가 과부하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홍콩에 가서 한자로 쓰인 간판을 볼 경우엔 그것들은 모르는 글자이기 때문에 정보가 아닌 아르누보 장식과 같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 P251

아르누보: Art Nouveau,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유럽 및 미국, 남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유행한 장식 양식이다.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새롭고 통일적인 양식을 추구했는데, 특히 초기에 자연 형태에서 모티프를 빌려 새로운 표현을 얻고자 했기 때문에 덩굴풀이나 담쟁이, 섬세한 꽃무늬 등의 반복적인 패턴이 대표적이다. - P387

도시 경관의 많은 부분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 의해서 가치가 평가된다. 특히나 풍경 속에서 사인물(Signage) 같은 상징적인 요소들은 사람들 개인의 인지에 따라서 크게 차이를 갖게 된다. - P251

라스베이거스 간판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건축은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건축 공간이라는 것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 P252

공간을 완전히 다른 객체의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 P252

과거에는 공간이라는 것을 하나의 물리적인 객체로 보아 왔다. 뉴턴 같은 과학자는 시간과 공간을 따로 독립된 객체로 본 상태에서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근대 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법칙들을 고안해 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독립된 것이 아니고 하나로 연결된 개념인 시공간임을 증명해냈다. - P252

최근 들어서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같은 21세기의물리학자는 그의 책《우주의 구조》에서 시공간이라는 것 자체가 실존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의식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개념의 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런 최신 물리학의 개념은 건축 공간을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바라보는 시각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 P252

건축 공간을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보는 시각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공간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인터넷 안에서 구축된 가상 공간과 우리가 태초부터 살아온 현실 공간을 넘나들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 P252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주관적 인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 - P253

인터넷과 가상 공간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건축 공간이라는 것도 어느 하나의 확정된 물리적 조건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대신 정보의 해석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보는 것이 이 시대에 건축 공간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일 것이다. - P254

공간은 어떻게 인지되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했다. 그러다가 유럽 여행 중 우연히 17세기 화가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의 천장화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포초의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에 발전한 투시도 기법에 의해서 그려졌는데, 천장 면에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열린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완벽한 그림이었다. 2차원 평면의 정보이지만 내 뇌는 그 안에서 3차원 공간을 보았던 것이다. - P255

N차원의 존재는 N-1차원 이하의 존재만 완벽히 이해 가능하다. 몸을 가진 우리는 3차원의 존재이다. 3차원의 존재가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은 2차원의 평면, 1차원의 선, 0차원의 점일 뿐이다. - P255

어떻게 우리는 3차원의 공간을 인식할 수 있을까? 우리가 3차원 공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단기 기억력에서 나온다. 우리는 기억력을 통해서 다른 시간대의 장면 속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머릿속의 의식은 여러 시간대에 존재할 수 있는 4차원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 P255

빛이 물체를 때리면 반사된 빛이 수정체를 통해서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고, 망막에 상이 맺히고, 그 상은 전기적 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된다. 뇌는 그 정보를 연산해서 공간을 만든다. 현실은 뇌가 초당 200장 정도의 그림을 연산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자전거의 휠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어느 순간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의 뇌가 연산하는 그림의 조합이 어느 순간 거꾸로 돌아가는 연속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보아서 우리의 뇌가 무한대의 이미지를 연산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 P255

현실은 마치 우리가 만화영화를 볼 때 초당 16장의 그림을 연산해서 공간과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그림의 숫자가 영화는 초당 32장이고, 현실은 200장일 뿐이다. 같은 원리로 모니터상의 2차원 정보를 보면서 우리의 뇌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텍스트뿐인 화면의 연속 장면이 공간이 되는 것이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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